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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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재] 11월 24일 49재 법문
종범스님 2021-11-24
금일 영가지심제청 지심제수 至心諦廳 至心諦受 生本無生 滅本無滅 생본무생이요 멸본무멸이로다生滅本虛 實相常住 생멸이 본허하야 실상이 상주로다夢踏青山脚不勞몽답청산각불로요影入水中衣不濕영입수중의불습이로다나무아미타불 49재는 영가분을 극락세계로 모시는 일인데 극락세계로 어떻게 가냐. 우리 몸이 인연 따라 생멸하는 몸이 있고, 불성이, 불성은 뭐냐, 아는 본성, 아는 본성이 둥글고 밝은 몸이 있다. 그래서 인연 생멸, 불성 원명, 둥글 원자, 밝을 명자. 인연 생멸하는 몸은 오온색신이라 다섯 가지가 뭉쳐서 보이는 몸이다. 불성 원명의 몸은 청정법신이다, 청정한 법의 몸이다, 이거예요. 오온색신는 연생연멸로 인연 따라 나고 인연 따라 가는 것으로서 무상한데, 불성원명신은 둥글고 밝아서, 둥글다는 것은 시방 허공보다 더 넓고 백천 태양보다 더 밝다, 시방허공 백천일광, 그건 청정법신이다. 청정이란 말은 아무것도 그거 외에 다른 것이 없다, 그런 뜻이죠. 그래서 인연생멸신을 또 거두고 불성원명 청정법신으로 돌아가면 그 세계를 극락 세계라,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래서 둥글고 밝은 아는 본성은 이 몸이 나도 본래 난 것이 없고, 생본무생(生本無生)이라, 몸이 사라져도 본래 사라진 게 없다. 생멸은 본래 허망한 것이고 실상은 항상 머문다(生滅本虛 實相常住). 실상은 뭐냐, 원명불성, 둥글고 밝은 아는 본성이다, 그거죠. 그래서 생멸을 무상이라고 그러고요, 항상함이 없다고, 불성을 실상이라고 그러는데, 진실한 실자, 모양 상자, 이 인연으로 왔다 갔다 하는 무상한 것이고 둥글고 밝은 불성의 몸은 상주라, 항상 머문다 이거에요. 그래서 그 몸으로 돌아가는 게 극락세계예요. 비유로 말하면, 몽답청산에 각불로(夢踏青山脚不勞)요, 꿈에 청산을 돌아다녔는데 방에 잠들어 있는 다리는 피곤하지가 않다. 이 몸이 인연 따라 오고 가고 해도 원명불성 청정법신은 항상 해서 늘 극락세계에 있다, 그 말이죠. 영입수중의 의불습이라(影入水中衣不濕), 물가에 가서 물을 내려다보면 자기 그림자가 물속에 들어있는데 자기 옷을 만져보면 하나도 젖지 않았다. 그래서 그림자는 물속에 들어가 있지만 내 몸은 물속에 안 들어가듯이, 이 무상한 몸은 오고 가고 하지만 청정법신는 항상 머물러서 늘 극락세계에 있다. 이런 법문인데요. 汝等一人 發眞歸元 此十方空 皆悉消殞여등일인 발진기원하면 차시방공이 개실소운이니云何空中 所有國土 而不振裂 (楞嚴經卷九)운하공중에 소유국토가 이불진열이리오(능엄경권구)나무아미타불 그러면 이 불성은 본래 우리 사람과 같고, 이 몸을 받았다가 몸을 또 버리고, 나고 죽는 것은 꿈과 같은데, 꿈이라는 것은 꿈꿀 때는 분명히 있는데 꿈꾸면 꿈은 없어져요. 그래서 꿈은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꿈에 볼 때는 분명한데 꿈을 깨는 순간에 꿈에 본 건 다 없어지고, 본래 과거부터 있던 것만 확 드러난다 이거지요. 몽경(夢境)은 없어지고 현상만 드러나는 게 꿈꾸다 꿈 깨는 거다. 그래서 이 불성을 모르고 번뇌 망상으로만 살아가다가 그 불성을 깨닫는 순간에 여등일인(汝等一人), 너희들 한 사람이라도 발진기원(發眞歸元)하면, 그 진실을 발생시켜서 불성의 근원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되냐. 번뇌망상으로 살아가고 바라보던 세상 만물은 일시에 다 없어진다, 일시에. 그걸 시방 허공, 시방공(十方空)이라고 그랬어요. 이 시방의 허공도 다 없어진다. 실개소운(悉皆消殞)이라, 사라질 소, 없어질 운자가 있는데, 다 없어진다. 운하공중(云何空中)에, 어찌 허공 속에, 소유국토(所有國土)가, 있는 바 국토가, 이불진열(而不振裂)가, 진열이라는 것도 역시 없어질 진자가 있고 없어질 열자가 있는데, 없어질 열, 어찌 없어지지 않겠는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다 얻는 순간에 깨달음을 얻기 전 세상 만물은 다 없어진 거예요. 그럼 뭐만 남았나. 깨달은 이후에 보는 세상만 드러난 거죠. 꿈꾸다가 꿈에서 깨는 순간에 꿈에 보던 건 다 없어지고 본래 꿈을 깼을 때 나타난 현상만 있다. 깨달음에서 나타난 세계를 극락세계라고 그래요. 번뇌 망상으로 살아가는 세계를 사바세계라고 그래요. 사바세계는 거기에 좋은 생각도 있고 나쁜 생각도 있고, 나쁜 생각으로 쫓아가면 고통이 오고, 좋은 생각으로 쫓아가면 즐거움이 와서, 나쁜 생각에서 고통이 오고 좋은 생각에서 즐거움이 오기 때문에, 고와 낙이 항상 반반씩 따라다닌다 그래요. 그래서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는데, 고진감래 옛날에 그렇게 썼는데, 요새 번역할 때 보면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이렇게 번역을 하더라고요. 그게 사바세계에요. 쓴 것이 다 하면 좋은 것, 단 것이 온다, 이게 고진감래인데 그건 말이 좀 이상하거든, 그러니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번역 잘했어요. 그걸 사바세계라고 그래요. 근데 극락세계는 항상 즐거워요. 그래서 극락이라고 그래요. 아주 궁극적으로 즐겁다. 왜 그러냐면 번뇌 망상 세계가 아니고 부처님이 깬 세계, 깨달음에서 얻은 세계거든요. 딱 깨닫고 나니까 극락세계더라, 깨닫기 전에는 사바세계였다, 이렇게 되거든요. 그러면 어떤 사람이 깨달음을 얻는 순간에 시방 허공이 다 없어졌는데 왜 시방 허공이 여전히 남아 있나. 그거 이제 꿈꾸는 사람은 여전히 꿈속에 있는데 꿈 깬 사람에게만 극락세계가 나타나는 거지, 옆사람이 꿈을 깼다고 그래도 꿈꾸는 사람은 그대로 꿈속에서 나올 수가 없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느낀 극락세계를 옆에 있는 사람도 모른다, 그게 극락세계에요. 극락세계에는 저런 소리(핸드폰 벨소리)도 사바세계로 보면 전화벨 소리인데, 이제 깬 세상에서 보면 극락세계인 거예요. 다 극락세계더라, 깬 세계에서 보면. 근데 이게 사바세계로 보면 무슨 소리, 무슨 소리, 무슨 소리 딱 정해서 하고. 그래서 이 극락세계라는 것은 주소도 없고 정해진 곳이 없어요. 또 무슨 누가 만들었냐, 무슨 어떤 건설회사가 만든 게 아니에요. 극락세계는 깨달음을 통해서 나타난 세계다 이거지요. 깨달음을 통해서. 그럼 뭘 깨달았느냐. 원명 불성, 둥글고 밝은 그 불성을 깨달으니까 펼쳐진 세계는 극락세계고, 자기 자신은 ‘둥글고 밝은 불성이 나다.’ 이거거든요. 그래서 우리한테 모두 둥글고 밝은 본래 불성 몸이 있는데, 꿈꾸는 거와 같은 그런 꿈 몸을 가지고 산다. 근데 꿈은 깬 순간에 없어지거든요. 그래서 사람이 이게 주인이 바뀌면 모든 물건 물건마다 모두가 다 주인이 바뀌었듯이, 꿈을 깨고 나면 꿈에서 본 건 하나도 없고 전부 현상이듯이, 이 깨달음을 얻는 순간에 풀 한 포기도 극락세계고 나무 하나도 극락세계고 티끌 하나도 극락세계고 하늘도 극락세계고. 그러니까 사바세계는 그냥 일순간에 없어지고 극락세계만 그대로 나타난다 이 말이죠. 이 법문은 능엄경이라고 하는 경 9권째에 있는 법문이고, 그다음에. 一時佛在 阿蘭若法菩提場中 始成正覺 일시불재 아란야법보리장중 시성정각其地堅固 金剛所成 上妙寶輪 及衆寶華기지견고 금강소성 상묘보륜 급중보화諸色相海 無邊顯現 常放光明 恒出妙音제색상해가 무변현현하야 상방광명하며 항출묘음하니라 (華嚴經 世主妙嚴品)(화엄경 세주묘엄품) 나무아미타불 이 법문은 화엄경 세주묘엄품 제일 첫머리에 나오는 법문인데, 어느 때에 부처님이 아란야법보리장중(阿蘭若法菩提場中), 그러니까 우리가 가서 참배하는 보리수나무 아래 거기예요. 사바세계의 눈으로 보면 보리수나무인데 깨달아서 보니까, 시성정각(始成正覺)을 하니, 기지가 견고(其地堅固)하여, 그 땅이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항상 해서 안 없어진단 말이지, 견고해서. 비유로 말하면 금강소성(金剛所成)이라, 금강이라는 것은 불변성, 또 이게 청정성, 광명성, 세 가지를 말하는데 순금이에요, 금강은. 변하지 않는다, 다른 게 섞인 게 없다. 늘 빛이 난다. 불변, 순일, 순일한 거 또 광명, 이건 온 세계가 변하지도 않고 청정하고 빛나서 깨닫기 전에는 나무 밑 풀 위에 앉았는데, 깨닫고 보니까 그냥 이게 항상 빛나고 항상 청정하고 항상 견고하다, 이 기지가 견고하야 금강소성이며, 거기에 없는 게 없다. 상묘보륜(上妙寶輪)과, 가장 묘한 보배 둘레와 중보화가(及衆寶華), 여러 가지 보배 꽃이 많이 있고 제색상해(諸色相海)가 빛깔 모양 그런 바다와 같은 세계들이 무변현현(無邊顯現)이라 끝없이 나타난다, 그게 극락세계에요. 그래서 상방광명(常放光明)하며 항출묘음(恒出妙音)이라, 항상 광명을 내고 늘 묘한 소리를 낸다. 그러니까 깨닫는 순간에 소리 소리가 다 극락 계고요, 모양 모양이 다 극락세계다, 이거지요. 그래서 한 마음이 본래 마음으로 딱 돌아가면 그냥 그대로 가 다 극락세계고요. 한 마음이 번뇌 망상으로 시름에 젖으면 물을 봐도 거기가 근심의 세계요, 나무를 봐도 근심의 세계요, 사람을 봐도 근심의 세계에요. 그래서 극락세계는 깨달은 청정심에 나타난 세계다 그 말이에요. 깨달은 청정심, 보리 청정심 그러면 번뇌 망상심은 이게 어디를 가도 근심 걱정이 따르고, 보리 청정심은 어디를 가도 극락세계 아닌 곳이 없다. 이걸 가르치는 게 불교에요. 그래서 오늘 영가를 그 부처님이 깨달은 극락세계로, 이렇게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서, 우리 힘으로는 가기가 힘드니까 부처님의 가피, 도움을 받아서 모신다 이 말이죠. 法法悉皆別 法性無二相 법법이 실개별이나 법성은 무이상이니無二法性土 清淨常樂鄉무이법성토가 청정상락향이로다나무아미타불 이 깨달은 세계는 하나하나 모양 모양이 전부가 다르게 보는 그런 세계들이 다 하나로 통하는 세계가 있어요. 그래서 하나하나가 다르다라는 거를 법 법자, 서로 상자, 법상(法相)이라 그러고, 하나하나가 다 함께 통하는 것을 법 법자, 성품 성자, 법성(法性)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이 허공의 모양으로 보면 조그마한 침공, 바늘 꽂는 허공, 또 실공, 집 안에 들어간 허공, 또 온 우주를 다 감싸고 있는 태허공, 태공이 다 다르죠. 태공이라고 그러면 끝없이 펼쳐진 허공이고, 실공이라고 그러면 실내에 들어가서 보는 허공 공간이고, 침공이라고 그러면 바늘 침, 바늘 하나 꽂았다가 빼면 얼마나 이게 작아요. 그런데 허공으로 보면 바늘 꽂은 허공이나 방 안에 들어간 허공이나 온 시방 허공이나 다를 바가 없다 이 말이에요. 다를 바 없이 함께 통하는 것을 어려운 말로 둥글 원자, 융통할 융자, 금융이라고 하는 융자가 있어서, 원융(圓融)이라고 그래요. 그것이 또 함께 다 조화를 이루는 걸 무애(無礙)라고 그래요. 없을 무자, 걸릴 애자, 장애가 없는 거. 원융무애. 극락세계는 원융무애 극락세계에요. 하늘과 땅이 장애가 없고 원융무애하고, 죽고 사는 것이 장애 없이 원융무애하고, 이걸 염불로 외울 때는 <무장무애 원융무애> 그렇게 외워요. 장애 없다는 걸 없앨 무자 두 번 넣어서 무장무애 원융무애. 이 무장무애 원융무애 극락 세계가 깨달음에서 나타난 세계다 그거죠. 이건 누가 만든 게 아니고 주소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바늘 꽂았다가 뺀 그 공간이나 방에 들어간 그 공간이나 끊임없이 펼쳐진 그 하늘 공간이나 그 공간으로 볼 때는 전부 원융무애하고 무장무애하다. 그러니까 이런 세계에 가는 게 그게 얼마나 좋은 거예요. 근데 이거 다 못 가요. 왜냐하면 번뇌 망상을 다 버리질 못해서. 그 망상 끊으면 좋은 줄 누가 몰라요. 근데 그 끊는 사람이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래요. 좋은 일 하면 좋은 거 다 알지, 근데 좋은 일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 좋은 일 하는 것이 몸에 안 배가지고, 사람은 생각이 지배하는 것보다 몸이 지배하는 게 훨씬 무서워요. 몸 습관은 좀처럼 이게 바뀌질 않아요. 생각은 작심을 할 수가 있어요. 오늘 마음을 낼 수 있단 말이죠. 작심. 내일도 마음을 낼 수 있는데, 이 몸이란 녀석은 안 따라와요. 그게 문제예요. 그래서 석가모니 같은 분들은 몸과 마음이 함께 해서 갔고 보통 사람은 마음은 있는데 몸이 안 따라가서 못 갔고 이거 차이예요. 그동안에 제자분들 중에서 많은 분들이 나와서 보살이라고도 하고 선지식이라고도 하고 이런 분들이 계속 나와가지고 이 불교가 계속 이어지고 그렇거든요. 그래서 법법은 실개별(法法悉皆別)이나, 이게 모양 모양들은 하늘 모양, 땅 모양, 물건 모양은 다 다르지만은, 이 법성은 무이상(法性無二相)이라, 법성은, 법의 그 본성은 두 가지 모양이 없다. 모든 허공 모양이 하나듯이 그래서 무이법성토(無二法性土)가 그 두 가지 모양 없는 법성의 세계가 국토, 법성국토가 청정상락향(清淨常樂鄉)이라, 다른 거 아무것도 섞인 게 없이 항상 즐거운 고향이다, 이렇게 돼요. 오늘 영가분께서 그 세계로 가시라고 지금 이렇게 의식을 잘 봉행하고 있는 거예요. 莊嚴佛剎 華藏剎海 장엄불찰 화장찰해極樂世界 常樂淨土극락세계 상락정토 十方諸佛剎 莊嚴悉圓滿 시방제불찰 장엄실원만面見阿彌陀 即往安樂剎면견아미타 즉왕안락찰하십시오나무아미타불 장엄이라는 건 나열되고 펼쳐진 것이 장엄인데, 이 장엄 부처님 세계가, 깨달음을 통해서 얻어진 그 여러 가지가 나열된 그 부처님의 세계가, 찰이라는 건 사찰이라고 하는데, 이게 차트라라고 범어인데 국토라는 뜻이에요, 찰자가. 부처님의 국토, 부처님의 나라가. 또 화장찰해(華藏剎海)라, 화장이라는 온갖 좋은 걸로, 꽃 화자, 감출 장자, 온갖 좋은 걸로 펼쳐진 세계다. 그래서 장엄불찰(莊嚴佛剎)이라고도 하고 화장찰해라고도 하는데 그게 극락세계다 이 말이죠. 고통은 하나도 없고, 번뇌망상에서 고통이 오는데 이 깨달은 세계는 번뇌 망상이 없으니까 온갖 세계가 다 극락 세계인 거예요. 그럼 번뇌망상의 특징은 뭐냐. 구하는 마음인데, 구하는 마음의 특징은 뭐냐. 만족할 줄 몰라요. 그래서 인간은 잘해 줄래야 잘해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만족 못 하는 물건들이 돼가지고. 지혜의 특징은 구하는 게 없어요. 무구. 보통 일체 중생이 구하다 죽거든요. 그러면 얻은 게 없느냐. 얻은 거 많이 있어요. 그런데 얻은 것은 며칠 지나가면 또 만족 못 해요. 많이 가봐야 한 달밖에 못 가요. 아무리 좋은 걸 얻어도. 또 다른 거 또 구해요. 그거 버리고. 그런 것이 번뇌망상인데 그 번뇌망상을 가진 인간한테 아버지가 만족시킬 방법이 있나요, 어머니가 만족시킬 방법이 없어요. 그 번뇌망상심을 바꾸는 수밖에 없어요. 근데 전부 이 부모들이 속아서 자식들 좀 행복하게 해주려고 아무리 좋은 걸 해줘도 자식은 그걸로 만족을 못 하는데. 또 부모도 만족 못 하는 것도 알아요. 모르는 거 아니에요. 알면서 또 계속 대책 없이 해줘. 뭘 해도 아들, 딸들이 만족 못 할 거다, 그거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어요. 그러면서도 안 해줄 수가 없는 거라. 계속해주고 싶어서 그냥 해주는 거예요. 그러다 해주다 죽고, 구하다 죽고. 그래서 극락세계로 가십시오, 이거 보다. 장엄불찰 화장찰해가 극락세계에요. 상락정토(常樂淨土)다. 극락이란 말은 고통이 없단 말이고, 상락이란 말은 항상 즐겁단 말이지요. 정토라는 말은 거기 다른 부정한 거 깨끗하지 않은 게 섞이지 않아서. 그래서 시방제불찰(十方諸佛剎)에, 시방의 모든 부처님 나라가 장엄이 실원만하니(莊嚴悉圓滿), 그 꾸며진 것이 다 원만해야 부족함이 없어요. 그러니 오늘 영가께서는 면견아미타(面見阿彌陀)하고, 바로 면전에서 아미타 부처님을, 극락세계에 계신 부처님을 아미타불이라고 그러거든요. 이 사바세계에 오신 부처님을 석가모니불이라고 그러고요, 그 불성에서 항상 빛나는 부처님을 비로자나불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석가모니불이 이제 아주 고생하는 부처님인데 늘 사바세계에 계신 부처님을 석가모니불이라 그래요. 극락세계에 계신 부처님을 아미타라 그러고, 항상 불성 광명을 그대로 비추는 부처님을 비로자나불이라고 그런다. 그러니까 면견아미타하고, 바로 대면해서 바로 눈앞에서 아미타불을 친견하시고, 즉왕안락찰(即往安樂剎), 곧 즉자, 갈 왕자, 곧, 바로, 지체 없이, 안락찰, 편안하고 즐거운 상락정토 극락세계로 곧 가십시오. 마지막 염불만 한 번 더 하고 마치겠습니다. 금일 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莊嚴佛剎 華藏剎海 장엄불찰 화장찰해極樂世界 常樂淨土극락세계 상락정토 十方諸佛剎 莊嚴悉圓滿 시방제불찰 장엄실원만이니面見阿彌陀 即往安樂剎면견아미타하야 즉왕안락찰하십시오 오늘 법문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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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니천독기도] 11월14일 다라니천독기도 회향 법문
가섭스님 2021-11-14
대단히 반갑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많은 분들을 법의 자리에 모시고 함께 하는 것 같아서 눈물이 찔끔 나려고 하네요. 고맙습니다. 천독기도, 다라니 천독기도 회향하시죠. 제가 와서 이 잔에 차를 줘서 딱 여니까 김이 모락모락 나요. 김이 왜 날까요. 뜨거우니까 나죠. 다라니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신심을 끓이는 과정이에요. 여러분이 천독을 하고 나면 뜨거운 찻잔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듯이, 여러분의 신심에 향기가 모락모락 지금 이 법당 안에 가득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이 김이 나는 이유가 있어요. 뜨거워서도 있지만, 이 물보다 바깥이 더 차가워서예요. 우리의 신심이나 열정이나 부처님을 향한 열정이라고 하는 것은 내 주위의 환경들이 더 안 좋고 더 어렵고 더 어지러울 때, 그 빛은 더 깊이 나는 겁니다. 천독기도라는 것은 뭐가 잘 돼서 하는 게 아니라 어려운 생활 속에서, 어지러운 마음속에서 그걸 바탕으로 하는 거죠. 또 다음 주면 수능시험이에요. 여기 보니까 고3 엄마들이 있어요. 고3 엄마들이 눈빛이 간절하거든요. 달라요, 눈빛이. 고3 엄마들이 자녀들의 합격을 위해서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를 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 천독기도를 했으니까 소원이 다 이루어지라고 하는 의미에서 우리 서로에게 큰 박수 한번 보내주십시오. 진관사에서 대학 입시 합격 천독기도를 한 분들은 딱 붙어버릴 거예요. 그렇게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근데 이번에 천독기도는 덕원스님이 일독부터 천독을 했어요. 아까 진관사 유튜브에 잠깐 들어가 보니까 덕원스님, 덕원스님, 온통 칭찬이었어요. 그래서 덕원스님을 비롯해서 우리 주지스님, 총무스님, 또 같이 기도한 우리 대중 스님들에게도 박수 한번 보내주세요. 고맙습니다. 이 천독기도라고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겁니다. 108독만 해도 어려운데, 그죠. 천독이라고 하는 것은 며칠간 정성을 들여서, 그 천독하는 그 사이사이마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들이 있겠습니까. 아마 우리 진관사에 지금 유튜브를 보고 계신 분들이나 현장에 나와 계신 분들이나 이 천독의 그 마음 마음들을 다 모아놓으면, 그 모아놓은 마음 마음들이 경전으로 치면 8만대장경입니다. 그 마음 마음대로 다 이루어지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말씀을 설했고, 그게 경전으로 이루어지게 된 거죠. 결국은 여러분의 그 간절한 마음들이 경전이라는 겁니다. 근데 그 경전이 잘 쓰여져야 되는데, 경전이 잘못 쓰여지면 안 되잖아요. 그 경전들을, 우리 마음의 경전들을 줄여서 심경이라고 그러잖아요, 마음의 경전. 근데 심경할 때, 반야심경할 때도 심경인데 마음 심자 써가지고, 그 심은 핵심이라는 뜻이에요. 핵심. 심경은 마음의 경 이렇게 해석도 되지만 핵심된 가르침이다, 이렇게 해석을 하는 게 맞죠. 우리가 천독기도를 하고 나서 어떻게 해야지만이 핵심된 가르침을 우리가 제대로 수지할 수 있는지, 받아 지닐 수 있는지 그러한 것들을 오늘 좀 나눠볼까 합니다. 우리가 천수경 대다라니를 풀네임으로 뭐라고 하냐면, 잘 아시겠지만, <천수천안관자재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입니다. 이게 풀네임이에요. 여기에 다라니를 우리가 독송해야 할 이유가 다 담겨 있어요. 이것만 이해하면 다 끝나요. 더이상 뭐 논할 게 없어요. 논하면 다 군더더기에요. 이것만 이해해야 되고, 더 나아가서는 이 풀네임에 우리 불자들이 다라니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그러한 지향점일까 가치랄까가 다 그 안에 녹아 있어요. 이걸 이해해야 됩니다. 이 풀네임에 나와 있는 천수천안 관자재보살의 광대 원만한 무애한 대비심의 대다라니라는 것을 이해를 해야 해요. 그래야지만 다라니를 제대로 독송한 거예요. 다라니를 독송하는 이유는 단순하게 우리가 일반사회에서 어떠한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것도 되지만, 궁극적으로 다라니를 하는 것은 우리가 마음을 바르게 깨치기 위한 거예요. 이걸 절대 놓치면 안 됩니다. 우리 불자들이 다라니라고 하는 것을 의지하면서, 다른 말로는 진언이라고 하잖아요, 진언기도를 하면서 우리가 잘못하면 깜빡 놓칠 수 있는 게 뭐냐면, ‘이걸 통해서 내가 뭘 이뤄야지’라는 생각만 하는 거예요. 그건 과정인 거예요. 결국은 다라니를 통해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게 뭐냐. 깨닫기 위한 겁니다. ‘부처가 되기 위한 거다’라는 거예요. 그 부처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다라니에 의지해서 장애 없이 그 길을 순탄하게 무장무애하게 가기 위한 하나의 수행 도구로 다라니를 독송하는 거죠. 다라니를 독송하게 되면 제일 먼저 우리가 얻는 것이 있어요. 그거를 가피라고 그럽니다. 다라니는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다 외워도 되고, 아니면 관세음보살 육자대명 <옴 마니 반메 훔>만 해도 되고, 더 나아가서는 <당신은 부처입니다.>, 우리 마음의 정원에서 하잖아요. 그게 다 같은 무게치예요. 같은 무게치인데, <우리가 당신의 부처입니다.>라는 걸 왜 하겠어요. 그걸 통해서 우리가 깨달음의 세계로 가기 위한 믿음의 도구로 쓰는 거거든요. 다라니를 외우면 제일 먼저 우리가 얻게 되는 것 중에 하나가 가피에요. 가피가 뭔지 아시죠. 부처님에게 내지는 불보살에게 다라니를 외우고 의지해서 나에게 오는 변화를 가피라고 그러지요. 근데 그 가피는 아주 큰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사에서 벌어진다는 거예요. 이 가피는 일상생활을 벗어나서 단 한 개도 일어나지 않아요. 형이상학적이거나 너무 본질적인 거나, 이런 것이 가피가 아니라, 우리가 늘 부딪히는 신구의에서, 말하고 또 부딪히고 마음 쓰고 하는 데서 일어난 일이고, 보고 듣고 느끼고 그런 색성향미촉법에서 육근을 근간으로 해서 다 일어난 일이 가피다라는 거에요. 그래서 알게 모르게 일어나는 가피를 명훈가피(冥薰加被)라고 그러잖아요. 법당에 이렇게 있으면 내 옷에 향이 배듯이, 어떤 향기가 몸에 은근히 배는 걸 명훈이라고 하는데 알게 모르게 어느 정도 지나고 나니까 내 삶이 변해 있어요. 나의 마음이 변해 있어요. 이걸 이제 명훈이라고 그래요, 명훈가피. 또는 꿈속에서 가피를 주기도 하죠. 아픈 사람들이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 그 가피 얘기 중에 가장 많은 게 뭐냐 하면, 몸에 벌레가 막 끓다가 벌레가 하나씩 몸 밖으로 막 기어나오는 꿈, 이런 꿈들을 꿨다, 그건 가피에요. 어떻게 보면 이제 꿈에서 가피로 나타나는 거죠. 그러고 병원 갔는데 감쪽같이 병이 나았다, 이런 얘기들 많죠, 꿈속에서 그런 꿈을 꾸면. 그러나 선근(善根)이 아주 높은 사람, 선근이 아주 깊은 사람들은 그걸 뛰어넘어서 현증가피(顯證加被)다, 내 눈앞에 나투는 거예요, 불보살이. 그런데 이거는 굉장한 믿음이 있어야지 가능한 거죠. 마음속에 요만큼이라도 의심이라는 종자가 있으면 그건 나타나지 않습니다. 나타나도 믿지 않아요. 그래서 그렇게 우리가 우리 일상 속에서 언제나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 다라니를 의지하는 사람들은 언제라도 그런 가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선근이 깊은 사람들은 그것이 가피라고 하는 걸 아는데, 선근이 없이 업장이 두터운 사람들은 밀물처럼 밀려오는 가피도 가피인 줄 몰라요.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지요. 저도 아침에 가피를 받았어요. 가피를 어떻게 받았냐면, 오다가 갑자기 위경련이 났어요, 운전하는데. 위경련, 아시죠. 경험해 본 분이 계신지 모르겠지만, 아침에 제가 찬물을 좀 급하게 마셔요. 정신 차린다고. 근데 위가 이제 연식이 좀 되다 보니까, 기능이 좀 떨어지는지 위경련이 왔어요. 그다음에 식은 땀이 나고 운전하는데 막 사지에 힘이 쫙 풀려가지고. 그리고 ‘이거 어떡하지, 약국을 가야 되나, 병원으로 가야 되나, 총무스님께 전화해서 오늘 법회 못 가요. 이렇게 얘기를 해야 되나’ 오만 생각을 넘어서 오만 한 생각이 왔다 갔다 하는데 그 순간에 딱 떠오르는 게 ‘몸이 아픈데 내가 왜 관세음을 안 찾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늘 다니면서 보살님들한테는 힘들고 어렵고 지치고 산란하고 장애가 있고 그러면 관세음보살님을 찾으라고 얘기해 놓고, 막상 내가 아프니까 약국부터 찾고 있는 거예요. 인지상정이죠. 제가 비정상적인 건 아니에요. 제가 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지. 그런데 거기서 신심이 깊은 사람이라면 관세음보살님을 찾아야지요. 관세음보살 외에 다른 보살, 본인이 의지하고 있는 대상들을 찾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탁 마음을 잡았어요. 운전하면서 계속 관세음보살님을,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한 손으로 배를 만지면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옛날에 우리 어머니가 했듯이 내 손은 약손이고. 그래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스무 번 딱 부르니까 통증이 쓱 가라앉았어요. 땀이 싹 잦아들어요. 그래서 ‘아 이게 가피가 아닌가’, 우리가 가피라고 하는 걸 너무 크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 둘러보면 내가 다라니기도를 하는 동안에 내가 경험했던 그런 가피들은 광장히 많아요. 그거를 선근이 열려야지만이 알 수 있어요. 여러분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은 이미 그런 관세음보살님의 가피 안에, 충만한 가피 안에 이미 함께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또한 아까 제목에 나와 있듯이, 관세음보살님의 광대원만한 무애한 대비심의 대다라니를 내가 제대로 하려면 지금 얘기한 이 세 가지를 우리가 일상에서 잊지 말아야 됩니다. 꼭 지켜야 돼요. 이 이야기는 내가 현재 발원한 이루고자 하는 소원을 이루는 것과 별개로, 이거는 오늘의 살림이나 내일의 살림이나 1년 살림이나 10년 살림이나 이생의 살림이 아니라, 여러분이 세세생생 법의 생명을 움트게 하는 가장 중요한 종자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다라니기도를 통해서 지금 현상적으로 현실에서 이루고자 하는 소원이라든지 장애를 없애는 그런 가피도 있지만, 다라니기도의 원래의 뜻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숨어져 있는 법의 생명이다, 그 법의 생명을 깨워내야 한다는 겁니다. 법의 생명이 깨어나지 못하면 그냥 이 육신의 생명으로만 살다 보니까 너무 버거운 거예요. 그리고 너무 힘든 겁니다. 그리고 늘 순간순간 탁탁 걸리는 거예요. 내 마음에 법의 생명이 깨어나야 합니다. 이걸 여래장(如來藏)이라고 합니다. 여래장 들어보셨어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이 여래장을 깨워야 되는데, 여래의 성품을 내 안에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는, <본래 붓다,> 이렇게 표현을 해요. 본래 붓다, 다른 말로 심즉시불(心卽是佛)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심즉시불. <마음이 곧 부처다>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고, 또 다른 말로는 견성성불(見性成佛) 이런 표현도 써요. 우리 조계종에 종지라는 게 있는데, 종지에 보면 견성성불이 나와요. 성품을 보니까 부처님은 이러더라 이런 뜻이거든요. 성품을 본다. 성품을 보는 게 여래장을 보는 거예요. 그 여래장을 깨워내야 됩니다. 우리가 천수경을 들어가기 전에 개법장진언을 하죠. <옴 아라남 아라다> 이렇게 하죠. 개라는 게 열다란 뜻이에요. 법장은 법의 창고라, 이 법장은 다른 말로 하면 여래장입니다. 여래장이 열려야 그다음에 여러 가지 그 여래 창고 안에 들어있는 보물들을 갖다가 쓸 수가 있어요. 내가 이미 여래라고 하는 창고의 어마어마한 능력과 어마어마한 지혜와 어마어마한 자비를 가지고 있는데, 그 창고는 꽉 닫아놓고 여기에 이생에 와서 알량하게 번, 알량하게라고 하면 좀 서운하겠지요, 열심히 피땀 흘려 번 그 몇 백, 몇 천, 몇 억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거예요. 이 마음의 여래장의 창고가 열려버리면 인생에 내 통장에 있는 거시기는 거시기가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야, 게임이 끝나요, 오징어 게임이 끝난단 말입니다. 우리는 오징어 게임 속에 살고 있잖아요. 그 오징어 게임을 끝내는 일이 뭐냐. 내 마음에 법의 생명을 움트게 하는 거, 법의 생명을 깨어나게 하는 거예요. 우리가 다라니 기도하는 것은 다라니를 의지하면서 내 안에 있는 법의 생명을 자꾸 길러내고 키워내고 또 성장시킬 이런 힘이 있다는 겁니다. 오늘 이 법문을 듣는 모든 분들이 ‘내 마음속에 여래장이라는 게 있대, 법장이 있대, 이거만 깨워내면 나의 허덕거림, 나의 조급함, 나의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이런 것들이 다 해결된대’, 이거 하나 아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입니다. 우린 늘 허덕대거든요. 허덕대니까 기대를 하게 돼요. 누구에게, 남편에게, 부인에게, 자녀에게, 또 나하고 인연이 제일 가까운 인연들에게 기대하고 의지하게 되고 그러다가 서운하게 되고 실망하게 되고, 그러다가 ‘정 때문에 살지, 내가.’ 이런 얘기 하게 되는 거예요. 그놈의 정 때문에. 그런 걸 다 내려놓으려면 내 마음에 이런 법의 생명을 깨어내야 돼요. 그 법의 생명이 깨어나는 데는 첫 번째로 이 관세음보살님이 어떤 분인가를 명확하게 알면 아주 쉬워져요. 우리가 큰 병이 났습니다. 큰 병이 났는데, 큰 병원에 가서 그 외과든 내과든 정형외과든 정신의학과든 그중에서 제일 잘하는 분 있잖아요. 그분의 뭘 봐요? 프로필을 보죠. 이분이 출신이 어디고, 어디서 수련의를 거치고 어디서 인턴을 거치고 이런 걸 쭉 보잖아요. 그래서 몇 년간 의사 생활을 했고 수술 경험이 몇 번이고 집도를 몇 번을 했고 그걸 알고 가면 그 의사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 더 커지듯이, 우리가 관세음보살님 이름은 알지만 관세음보살님이 어떤 공력으로서 우리를 이끌어주시는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됩니다. 그 공력을 아는 순간 그 공력 하나하나가 내 법의 창고, 여래 창고가 잠겨져 있는데 그 잠겨있는 문을 여는 비밀번호를 하나씩 누르는 게 되고, 초인종을 누르는 효과를 갖게 됩니다. 자꾸 초인종을 누르던지 비밀번호를 해야지 문이 열리죠. 그 문 앞에 가서 문 열리겠지라고 서 있다고 문이 열리지 않거든요. 엘리베이터도 몇 층 갈 건지 눌러야지만이 거기 올라가죠. 물론 요즘에는 인공지능이라서 메타버스 시대가 되니까 내가 생각만 해도, 내가 9층 가야지 하면 9층까지 가는 그런 시대가 올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게 이룰 수가 없단 말이죠. 내가 노력을 해야 돼요. 내가 실천을 해야 돼요. 수행을 해야 돼요. 그 첫 번째 관세음보살의 공력이 뭐냐 그러면, 관세음보살의 공력이 뭐예요, 대자대비잖아요. 대자대비. 이 불교의 출발과 끝은 지혜와 자비인데, 지혜와 자비 중에 선후를 나눌 수는 없지만, 그 총책, 핵심, 부처님의 체, 부처님의 본체라고 할 수 있는 게 뭐냐. 자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시불공 할 때에 유치라는 걸 하는데, 청사 유치, 유치(由致), 청사(請詞)를 하는데, 법회가 열리게 된 연유라든지 그 연유를 말씀드린 다음에 청사들이 청하는 말씀을 드려요. 그게 유치 청사인데, 거기 보면 ‘부처님이 자비를 체를 삼고’,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부처님은 자비가 체예요. 본체, 당체입니다. 그 부처님의 당체를 그대로 물려받은 분이 관세음보살님이다. 그래서 대자대비라 하는 겁니다. 줄여서 자비라고 그러죠. 그러니까 자비는 뭐예요. 자비는 아주 간단하게 따뜻하고 온화한 거, 어렵게 이해하려고 하지 마시고 그냥 따뜻하고 온화한 거죠. 따뜻하고 온화한 거는 약간 결이 달라요. 따뜻한 것은 생명을 키워내는 힘을 갖는다면, 온화한 것은 생명을 품는 기운입니다. 같은 의미지만 약간 결이 달라요. 따뜻한 것과 온화한 것이 그대로 내 마음속에 있는 거, 내 마음 상태 그게 자비지요. 여기는 그 무엇도 걸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의 첫 번째 공력인 자비, 자비라는 걸 내가 일상사에서 얼마큼 확인하고 있느냐, 일상사라고 하는 것은 내가 가장 인연이 깊은 사람을 대할 때에, 대화에서 말할 때에, 그 사람들을 대하고 마음 쓸 때에, 내가 얼마큼 자비롭느냐라는 겁니다. 그거를 확인해야 되요. 내가 늘 온화하고 따뜻하게 대하면 손해 볼 것 같죠. 지금 보면 손해 볼 것 같죠.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하루의 살림이나 1년의 살림이나 이생의 살림이 아니라 여러분이 이 다겁생래(多劫生來)에, 다겁생 살림을 좀 더 넉넉하게, 좀 더 여유 있게, 차분하게 하려면 이 온화하고 따뜻한 마음을 회복을 해야 됩니다. 두 번째 관세음보살님의 공력이 있는데, 이분이 계신 집이 있어요. 이걸 전이라고 그러죠. 보통은 각이나 전이나 이렇게 표현하는데, 대웅전, 집 전자를 써요. 임금이 계신 곳을 전이라고 그러잖아요. 근데 이분이 계신 전각 이름이 원통전이에요. 원통전, 둥글 원자에 통할 통자를 써서 원통전. 그 원통은 원래의 풀네임이 뭐냐 그러면 이근원통(耳根圓通)이에요. 이근이 뭐냐. 듣는 기능, 이 뿌리 근자는 기능으로 번역을 해요. 듣는 기능, 여러분들 다 듣잖아요. 제 얘기가 잘 들리죠. 이 듣는 기능이 원통하다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이 듣는 기능이 원통하냐. 원통하지 않아요. 듣는 게 잘 듣는 게 아니라 자기가 듣고 싶은 만큼 들어요. 듣고 싶은 대로 들어요. 듣고 싶은 것만 들어요. 이게 딱 조건이 있어요, 뭐뭐만. 이게 문제죠. 그래서 그거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돼요?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면서 막 화가 나기 시작하면서 이 단전에서 뭔가 뜨거운 불줄기가 확 올라오죠. 얼굴이 막 용광로처럼 달아오른단 말이에요. 화라고 하는 건 귀로 들어와요. 욕심은 어디로 들어옵니까. 눈으로 들어와요. 눈. 견물생심이잖아요. 화는 귀로 들어옵니다. 내가 화나는 걸 보면 거의 90%가 다 귀로 들어와요.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화가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한다가 아니라 안 듣는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잘 듣지 않는다. 이 유튜브를 보는 분 중에 저를 아는 분들은 저도 참 남 얘기 안 듣게 생겼다고 하겠죠. 눈썹이 시커멓게 그냥 남 얘기 참 안 듣게 생겼어요. 솔직히 저도 참 남 얘기 안 듣습니다. 늘 저도 그게 숙제인데, 법문하면서도 저한테 또 다짐을 하게 돼요. 잘 들어야지. 제가 복지관을 맡아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 직원들 종사자가 43명 정도 돼요. 나만 나타나면 다 어디로 사라져요. 그래서 어느 날 불러 가지고 ‘내가 무섭냐’고 그러니까 ‘편하지 않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말을 참 잘 들어야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관세음보살님이 그렇게 뭔가를 듣는 능력이 원통하다, 둥글게 신통하다는 말입니다. 통자는 신통의 준말이에요. 신통방통. 첫 번째 관세음보살 다라니 기도를 하면서 우리는 온화하고 따뜻한 마음을 얻어요. 그래야 내가 그동안 있던 장애가 녹아요. 그 온화하고 따뜻한 것 때문에 녹는 거예요. 옛날에 아주 재미난 이솝우화도 있지 않습니까. 햇살 바람 이야기. 햇살을 비치니까 옷을 벗지만, 비바람 불면 어떻게 돼요. 옷을 자꾸 입게 되잖아요. 내가 온화하고 따뜻해야지만이 내가 가지고 있는 그런 어지러움이라든지 역경이라든지 장애라든지 혼란함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사라지는 거예요.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내 마음이 온화한가 따뜻한가 10초만 잘 살피고, 거기다가 그 다음에, 내가 오늘은 누구 얘기를 잘 들어야 되겠다, 누가 뭐라 하든 간에 누구 얘기든 잘 듣고, 꼭 때리더라도 다 듣고 때려야 되겠다. 근데 우린 다 듣지 않고 듣는 중에 때려버리죠. 더 심각한 사람은 듣기 전에 때리는 사람도 있어요. 듣기 전에 때리는 사람도 아주 고약스러운 사람이죠. 근데 그게 아니라 다 듣고 한 다음에도 늦지 않는다는 거예요. 내가 이근원통이고, 잘 듣고 그다음에 행동을 해야 되겠다. 이게 두 번째 덕성입니다. 세 번째로는 관세음보살님을 다른 말로는 무외보살(無畏)이라고 합니다. 외자는 두려움 외자, 두려움이 없는 보살이다. 관세음보살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살님이에요. 두려움이 왜 생깁니까? 겁나니까. 왜 겁납니까? 내일을 알 수가 없잖아요. 아침에 제가 출발하면서 위경련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두려운 거거든요. 근데 그 두려움을 관세음보살님은 이렇게 어루만져주는 거예요. 우리가 이제 이생에 인연이 다 되어서 사직할 때쯤 되면, 제일 먼저, -기도를 열심히 한 분들을 전제로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여기 인로왕보살님이 길을 잘 안내하는 것이 먼저 보여요. 인로왕보살님이. 그다음에 내가 이제는 죽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니까 두렵잖아요. 그다음에 딱 보이는 분이 관세음보살님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이 와서 망자의 두려운 마음을 잘 위로해 줍니다. 마음이 이제 쫙 가라앉잖아요. 가라앉으면 그다음에 지장보살님이 오셔가지고 육바라밀로 마음을 탁 펴게 만들어요. 마지막 꼭지까지 딱 피게 만들어요. 그의 마음이, 그 망자가 확 열리면 그때 극락세계 아미타 부처님이 오색광명을 놓으셔서 인도를 하는 거예요. 이게 극락도에 나오는 모습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어쨌거나 어디서나 언제나 우리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분이에요. 내가 인연을 하고 있는 아주 가까운 가족들에게 친족들에게 내지는 인연들에게 어렵고 까탈스럽고 그런 존재가 아니라 항상 편안한 존재로 두려움을 없애주는 존재가 돼야 합니다. 여러분들 아까 법문 하기 전에 입정을 했어요. 죽비를 드신 스님께서 입정하고 출정할 때 땅을 딱 딱 치죠. 왜 그렇겠어요. 놀랄까 봐. 어떤 분은 ‘잘 법문 들어야지 우리 가섭스님’, 가섭스님 법문을 들어야지 하고 기대에 부풀어서 있는데, 그 순간에도 ‘가스불을 잠그고 왔나’ ‘내일 세금 내야 되는데’ 엄한 생각으로 그냥 딴 생각을 하고 일을 때 갑자기 딱 소리가 나면 놀라요. 놀라면 그게 마음에 흔적이 남아요, 흔적이. 마음은 항상 다 흔적이 남거든요. 흔적을 뭐라고 그래요? 그걸 업이라고 그래요. 그게 흔적이 많이 남아서 업이 되는데, 우리 순수 말로는 버릇이에요. 그 사람의 버릇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놀랄까 봐서 하는데, 그거는 굉장히 대중을 배려하는 거거든요. 여러분도 출정할 때의 그 마지막 터치, 대중을 위한 터치, 그 배려, 그 배려심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이 관세음보살님의 공력이 세 가지입니다. 그래서 항상 온화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항상 잘 듣고, 그리고 항상 부드럽게 주위의 인연들을 맺어가면 관세음보살님의 공력을 그대로 받아서 다라니기도의 원성취는 걱정할 바가 없습니다. 이 관세음보살님이 알아서 해준다 이 말이에요. 애프터 서비스가 확실한 분입니다. 그걸 믿어야 돼요. 믿는 것이 선근이에요. 선근이 있다, 없다, 얘기하는데 믿음이 아주 간절한 사람은 선근이 스스로 나옵니다. 그 선근의 선자가 뭐예요. 착할 선자잖아요. 착할 선자. 법원주림(法苑珠林)이라고 하는 중국의 오래된 사전이 있어요. 불교 사전인데 거기 ‘선즉 순리다’ 이렇게 나와요, 순리, 이치를 따르는 거다. 절집에 선과 악이 있는데 근데 악이라고는 잘 안 해요. 선과 불선이라고 보통 얘기를 하죠. 그 절집에서 착한 선근공덕의 착한 선자는 이치에 얼마큼 부합하느냐예요. 이치에 얼마큼 부합하게, 부처님의 말씀을 내가 잘 따라서 실천하고 수행하느냐, 그게 선근공덕을 쌓는 핵심이다. 윤리적으로 착한 일을 하는 건 당연한 거고 불교적으로 말한 선근은 부처님 말씀을 잘 따라 실천하는 거예요. 시간이 다 됐죠. 마지막으로 이거 하나는 꼭, 그런 분 없겠지만 불자는 이 세 가지는 꼭 믿어야 됩니다. 그래야 선근이 생겨요. 이 세 가지가 뭐냐. 인연법, 인과법, 연기법입니다. 불교는 이 세 가지가 잘 꿰진 거예요. 인과법, 인연법, 연기법을 안 믿으면 수행자 일수도 없고, 부처님을 따르는 재가 신도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불교는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거에요. 인과법, 인연법, 연기법. 그래서 다음에 또 이렇게 여러분과 법담을 나눌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때는 인연법, 인과법, 연기법을 가지고 하겠습니다. 대입시를 앞둔 자녀를 두신 분들은 기도 열심히 하시고, 그 자녀는 시험 당일날 일체 무장무애로 노력한 만큼 성과를 얻어서 합격하기를 바라고요. 천독기도 회향한 분들은 가지가지 소원들이 다 이루어져서 무장무애해서 가족들이 건강하고 늘 평화로운 그러한 삶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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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기도] 11월5일 음력 10월 신중기도 입재 법문
종범스님 2021-11-05
法供養行 殊勝功德 법공양행 수승공덕-- 金剛經(금강경)의 법공양 법문 -- 안녕하십니까. 오늘 신축년 10월 초하루 진관사 법문은 법공양(法供養) 이야기, 법공양 이야기, 이런 제목인데요. 내용은 금강경의 법공양 법문, 금강경의 법공양 법문, 그런 제목입니다. 법공양이라고 하면, 법문을 듣는 것도 법공양이고, 경전을 쓰는 것도 법공양이고, 경전을 배우는 것도 법공양이고, 또 경전을 읽고 외우는 것도 법공양이고, 경전을 해설하고 해석하는 것도 법공양입니다. 근데 금강경에서는 법공양을 매우 강조했어요. 善男子善女人 發阿耨菩提心선남자선녀인 발아뇩보리심如是修般若行 如是降伏其心 (善現起請分제2) 여시수반야행 여시항복기심 (선현기청분제2)通達無我法者 如來說名眞是菩薩 (究竟無我分제17) 통달무아법자 여래설명진시보살 (구경무아분제17)不取於相 如如不動 (應化非眞分제32)불취어상 여여부동 (응화비진분제32) 금강경은, 경이 한 권뿐인데, 그 경의 중심 내용이 선남자 선녀인이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善男子善女人 發阿耨菩提心)하니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라니까 깨달음을 이루려고 마음을 낸 사람들은 이런 뜻이에요, 선남자 선녀인이 깨달음을 이루려고 마음을 낸 사람들은, 응운하주(應云何住), 어떻게 머물러야 하냐. 중생들은 탐욕에 머물러요. 중생들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구하다 죽어요, 구하다가. 구해도 구해도 끝이 없는데, 그 구하는 생각, 구하는 행위, 구하는 결과를 한마디로 말하면 탐욕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일체중생은 탐욕에 머무는데, 깨달음을 이루려고 하는 보살은 어디에 머무냐. 반야에 머물러라. 그래서 발아뇩보리심한 이는 여시수반야행(如是修般若行), 이와 같이, 다음과 같이, 반야행을 닦아라. 그게 이제 보살이 머무는 데죠. 보살은 반야에 머문다. 그리고 여시항복기심(如是降伏其心)하라. 항복이라는 것은 항복을 받는다, 항복을 시킨다, 이런 뜻인데, 그 마음을 항복시켜라, 그 마음을 항복,받아라, 이게 항복기심인데, 그 마음은 뭐냐. 중생의 구하는 마음, 중생의 번뇌망상심, 중생의 탐구심, 탐하고 구하는 마음, 그 마음을 항복시켜라, 그런 뜻인데요. 그 구하는 마음을 구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구하는 마음을 항복시키라고 가르쳐요. 이게 아주 문제에요. 부모가 가르치는 거는 구하는 마음을 계속 키워서 많이 구하라고 가르치는 게 부모의 가르침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구하는 마음을 항복시키라고 가르치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게 아주 굉장히 중요해요. 왜 그러냐. 이 구하는 마음은 구해도 구해도 만족할 수가 없어요. 구한다고 힘들고, 구한 거 지킨다고 힘들고, 그거 없어질 때 없어져서 괴롭고 힘든 것뿐이에요, 구하는 마음은. 괴로움은 있는데 즐거움은 없다, 이거 참 문제네. 구하는 마음은 괴로움은 있는데 즐거움은 없다. 구하다 죽는다. 그래서 그 구하는 마음을 마구니라고 그래요, 마구니. 이 구하는 마음이 완전히 없어지도록 항복을 받으면 그게 성불이에요. 그래서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밑에서 성불했다는 것은 항마, 마구니를 항복시켰다. 그 마구니가 뭐냐. 구하는 마음인데, 구하는 마음이 종자까지 없고, 열매도 없고, 줄기도 없고, 하나도 없어지면, 대지광명이 현전해서, 큰 지혜 광명이 나타나서 신통이 자재해요.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반야행을 닦고 중생의 구하는 마음을 항복시켜라. 이걸 가르치는 게 금강경인데, 금강경이 처음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에서부터 일곱 번째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까지는 금강경에 대체분, 큰 몸을 이루는 부분이다. 이렇게 금강선론에서 구분을 하고,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제8에서부터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 제16까지 9분은 교량분인데, 교량이라고 하는 것은 비교할 교자, 헤아릴 양자, 이 비교하는 건데, 그럼 뭐와 뭐를 비교하냐. 재공양과 법공양을 비교하는 거예요. 재물로 공양하는 것보다 법으로 공약하는 것이 훨씬 높다, 그걸 가르치고요. 또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제17에서부터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제32까지는, 그게 이제 금강경 후반부인데, 단의분이라고 그래서, 끊을 단자, 의심 의자(斷疑), 이 보리심을 닦고, 중생심을 항복시키고, 대지혜를 성취하는데 온갖 의심을 하나하나 끊어주는 게 그게 금강경 구경무아분 제17에서부터 응화비진분 제32까지 단의분이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금강경은 대단, 대분, 큰 덩어리, 그걸 크게 나누면 대체분, 교량분, 단의분, 3등분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중간에 의법출생분 제8에서부터 능정업장분 제16까지가 법공양 공덕을 설명하는 내용이에요. 법공양 공덕. 須菩提 於意云何 若人滿三千大千世界七寶以用布施 是人所得 수보리 어의운하 약인만삼천대천세계칠보이용보시 시인소득福德 寧為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何以故 是福德 即非福德복덕 영위다부 수보리언 심다 세존 하이고 시복덕 즉비복덕性 是故如來說福德多(佛復告善現言)若復有人 於此經中受持乃성 시고여래설복덕다(불부고선현언)약부유인 어차경중수지내至四句偈等 為他人說 其福勝彼 何以故 須菩提 一切諸佛 及諸지사구게등 위타인설 기복승피 하이고 수보리 일체제불 급제佛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 皆從此經出 須菩提 所謂佛法者 即非불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 개종차경출 수보리 소위불법자 즉비 佛法(依法出生分제8)불법(의법출생분제8) 그러면 법공양 공덕을 금강경에서 어떻게 설명하냐. 의법출생분 제8에 보면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 보시를 하면, 이 삼천 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 금 은 유리 이 최고가는 보물로 보시를 하면, 시인소득복덕(是人所得福德)이 영위다부(寧為多不)아, 보시한 사람이 얻는 복덕이 얼마나 많겠느냐 하니까, 수보리가 언하되(須菩提言), 수보리가 말씀을 올리되, 심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하이고(何以故)요, 왜냐하면 시복덕이 즉비복덕성(是福德 即非福德性)일세. 시고(是故)로 여래설복덕다(如來說福德多)이다. 이 복덕은 세속에서 말하는 복덕이다. 중생들이 구하는 마음으로 말하는 복덕이다, 이거예요. 근데 여래가 구하는 마음으로 말하는 복덕을 말씀하시기 때문에 복덕이 많다고 했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그 말씀을 듣고, 우리가 읽는 금강경에서는 그 말이 없는데, 그 밑에는 부처님 말씀이에요. 불고수보리 하시되,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시되, 약부유인이(若復有人), 다시 어떤 사람이, 어차경중에(於此經中), 수지 내지 사구게에 능하야 이 금강경에 수지하되, 수라고 하는 거는 금강경을 배우는 거고요. 받을 수자, 지라고 하는 건 그걸 잊어버리지 않고, 쓰고 외우고, 해설하고 독송하고, 그게 지인데, 수지하되, 내지사구게등 하야(受持乃至四句偈等), 전체를 다 하는 게 아니고 4구게, 일구, 이구, 삼구, 한 몇 구절만이라도 그거를 수지 독성, 해설 서사하는데 이르러서 위타인설(為他人說)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해설을 하면 기복이 승피(其福勝彼)니라, 그 금강경 사구게를 수지 독송 서사 해설한 법공양이 삼천 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를 보시한 공덕보다 더 훌륭하다, 이렇게 설명하는 게 금강경의 법공양 법문이에요. 그러면 왜 그러냐. 하이고요 수보리야(何以故 須菩提). 일체제불(一切諸佛)과 제불아뇩다라삼먁삼보리(及諸佛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가 개종차경출(皆從此經出)이라, 다 이 경으로부터 나온다. 부처님의 깨달음과 또 부처님이 전부 이 경으로, 금강경으로부터 나온다. 布施善根 人天受福 法供養行 解脫成佛 보시선근 인천수복 법공양행 해탈성불般若照見 實相境界 不可思議 無量功德반야조견 실상경계 불가사의 무량공덕 이렇게 얘기했는데, 이게 핵심인데, 재물로 보시를 하면 그걸 보시 선근(善根)이라고 그러는데, 보시 선근, 착할 선자, 뿌리 근자, 보시에는 선행 종자가 심어져요. 그걸 선근 종자라고 그래요. 보시를 하면 선근이 심어져서 복을 받는데, 어떤 복을 받냐. 인천수복이라, 육도중생 중에서 인간 세계와 천상 세계에서 복을 받아요. 근데 이 보시만 가지고는 성불이 안 돼. 인천에서 복을 받는데 보시만, 보시만 해 가지고는 성불이 안 돼요. 그럼 성불을 하려면 어떻게 되냐. 이렇게 법공양을 해야 된다, 이 말이죠. 그 보시하면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복을 받고 천상 세계에서 태어나서 복을 받고 한량없는 복을 받아요. 이게 인천수복이에요. 그런데 깨달아서 대지 광명을 이루려면 이 법공양을 해야 돼요. 법공양은 경전을 수지 독성 서사 해설, 이게 이제 법공양인데, 배우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고 이런 거죠. 그러면 이 경전을 배우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는 데서 일체제불이 전부 출생을 하고 일체 제불의 깨달음이 다 출생을 한다. 그럼 왜 그러냐. 경전에는 세 가지 등급이 있는데, 첫째 등급은 문자(文字) 경전, 두 번째 등급은 관조 경전, 세 번째 등급은 실상경전. 처음에 딱 볼 때 종이에다가 글씨를 쓴 경전이 이게 문자 경전이에요. 이 문자를 딱 읽으면, 읽고 읽고 읽다 보면 지혜가 점점 맑아지고 밝아져서,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내 생각과 내 몸이 전부 이게 나지도 아니하고 죽지도 아니하는 불생불멸이라는 걸 환히 보게 돼요. 처음에는 문자 경전을 보다가 그다음에는 불생불멸 경전을 보게 되는 거예요. 이게 관조(觀照) 경전이에요. 그다음에는 이 관조경을 점점 깊게 보면 일체의 몸과 생각과 세계가 전부 실상 광명, 죽음이 없고, 두려움이 없고, 고통이 없는 실상 광명뿐이다. 이게 실상(實相) 경전이에요. 그래서 중생들은 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구하는 마음은 생로병사 우비고뇌, 생로병사 우비고뇌, 나고 늙고 병나고 죽고, 그 사이에서 근심하고 슬퍼하고, 우비, 괴롭고 걱정되고, 그걸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런데도 잘못하면 더 안 좋은 데 떨어질 수가 있으니까, 복을 자꾸 지어서 인간에 다시 태어나고, 그걸 인도환생이라고 그러죠. 천상에 태어나고, 그게 천상상생이라고 그래요. 천도 상생. 하늘길에 상생, 올라가서 태어난다, 인도 환생, 인간의 길에, 인간 세계에 다시 태어난다. 이게 이제 선근 보시, 보시 선근을 자꾸 닦아야 내세에도 인도에 환생하고 천상에 환생하는데, 이것만 가지고는, 이게 재물 공양인데 해탈 성불 깨달음 이게 안 돼요. 그러니까 법공양을 닦아야 된다. 그래서 법공양은 경전을 4구게등 만이라도 이걸 수지독송 서사 해설하면 성불을 하게 되는데 그게 왜 그렇게 성불이 되느냐. 경전은 문자 경전이 있고 관조경전이 있고 실상 경전이 있는데, 처음에 볼 때는 문자경을 보지만 그다음에는 자기 몸이 불생불멸을 보고 그다음에는 우주 만법이 진실 광명뿐이라고 하는 실상 경전을 보게 돼서 그 법공양의 공덕은 이로 말할 수가 없다. 이걸 가르치는 게 금강경 법공양 법문이에요. 그래서 이 법문이 의법출생분 제8에서부터 쭉 나가서 계속되는데 이게 끝없이 계속돼요. 계속되는데. 須菩提 若有善男子 善女人 初日分 以恒河沙等身布施 中日分 수보리 약유선남자 선여인 초일분 이항하사등신보시 중일분復以恒河沙等身布施 後日分 亦以恒河沙等身布施 如是無量百부이항하사등신보시 후일분 역이항하사등신보시 여시부량백千萬億劫 以身布施 若復有人 聞此經典 信心不逆 其福勝彼 何 천만업겁 이신보시 약부유인 문차경전 신심불역 기복승피 하況書寫 受持 讀誦 為人解說 황서사 수지 독송 위인해설(持經功德分제15)(지경공덕분제15) 지경공덕분에 가면 무슨 법문이 있느냐 하면, 수보리(須菩提)아 약유선남자 선녀인이(若有善男子 善女人), 어떤 선남자 선녀인이 초일분(初日分)에, 아침 나절에, 이항아사등신으로 보시(以恒河沙等身布施)하고, 이건 이제 보물을 보시한 것뿐 아니라 자기 몸을 항하, 모래 숫자와 같은 몸을 보시를 하고. 그 항하라는 게 인도의 겐지스강인데, 겐지스강이 얼마나 길고 평지를 흘러서 모래알이 얼마나 많은지, 무량수 불가량 불가칭,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게 이게 항하사 모래알인데, 어떤 사람이 아침나절에 항하사 모래알 숫자와 같은 몸으로 보시를 하고, 중일분(中日分)의 부이항아사등신보시(復以恒河沙等身布施)하고, 점심나절에 다시 또 그 항하의 모래알 숫자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고. 후일분(後日分)에 또 여기 항하사등신으로 보시(亦以恒河沙等身布施)하야, 저녁나절에 또 그와 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를 해서, 여시무량백천만업겁(如是無量百千萬億劫)을, 한량없는 세월을 이신보시(以身布施)라도, 자기 몸으로 보시를 했을지라도. 아 이거 참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약부유인(若復有人)이, 어떤 사람이, 문차경전(聞此經典)하고 신심불역(信心不逆)하면, 이 금강경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불역, 거스리지 아니하면, 금강경과 합치가 돼서 하나가 되면 기복승피(其福勝彼)니라. 그 복이 아침나절, 점심나절, 저녁나절에 한량 없는 몸으로 백천만업겁을 보시한 그 복보다 더 낫다. 그러니까 이 깨달음의 공덕은 이 세간 복덕으로 생각할 수가 없다, 이거예요. 이게 법공양 공덕이에요. 하황(何況), 어찌 하물며, 서사하고, 금강경을 서사하고 수지하고 독성해서(書寫 受持 讀誦), 위인해설(為人解說)이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전부를 다 해석한 공덕이야 말할 게 있겠는가. 이렇게 돼요. 이게 법공양 공덕을 말한 금강경 법문이에요. 그럼 이게 뭘 말하는 거냐. 깨달음이라는 게 있는데요. 깨달음.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본아를 찾는 건데, 자기 본아, 본래 나, 그러면 중생이 알고 있는 나는 뭐냐. 생로병사 우비고뇌(憂悲苦惱), 그게 중생이 알고 있는 거예요. 중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가 생노병사인데, 그 가운데 항상 우비고뇌가 있어요. 근심 우, 슬플 비, 괴로울 고, 걱정할 뇌. 이렇게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롭고 걱정하는 거. 이건 어머니도 제거해 줄 수가 없고요. 아버지도 그 근심걱정 없애줄 수가 없고요. ‘너만은 평생 행복하게 살아라’. 그거 전부 거짓말이에요. 우비고뇌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그 근심 걱정이라는 건 지위가 높아져도 안 없어지고요. 돈이 많아도 안 없어지고요. 인물이 잘나도 안 없어지고요. 몸이 건강해도 안 없어져요. 이게 생로병사 우비고뇌, 중생의 고통이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야 없어지냐. 내 본아를 찾으면 돼요. 본래 나, 그 본래 나라는 거를 부처님이 찾았는데 그게 어떻게 되냐 하면, 청정법신, 청정한 법신이 있는데 이건 불생불멸이에요. 나지도 죽지도 않는 죽음이 없는 몸을 청정법신이라고 하거든요. 그다음에 원만 보신. 원만 보신은 지혜광명이에요. 청정법신에다가 지혜광명 원만보신에다가, 또 원력 신통, 원하는 힘을 가지고 보이고 싶을 때는 보이고 보이지 않고 싶을 때는 보이지 않고, 이게 천백억 화신 원력 신통인데, 이런 세 가지 몸을 찾는 거를, 이걸 삼신 구족이라고 그래요. 삼신을 구족하고. 청정법신을 구족하고, 지혜 광명신을 구족하고, 신통 원력신을 구족하고. 이렇게 돼요. 그리고 금강경에서 말하는 오안(五眼)이 영명(靈明)이라, 다섯 가지 눈이 신령스럽게 밝다. 육안(肉眼), 육안은 근육이라는 육자인데, 인간이 보는 눈을 육안이라고 그래요. 인간은 생로병사 우비고뇌를 보는 거예요. 또 천신이 보는 눈을 천안(天眼)이라고 그러는데, 이거는 이제 세간을 더 멀리 보고 깊게 보는 게 천안이지. 그다음에 혜안(慧眼)은 아라한이 보는 눈이 혜안인데, 이거는 몸에 내가 없다. 이 4대 오온에 무아를 보는 게 그게 혜안이고요. 또 법안(法眼)이라고 하는 게 있는데 법안은 보살의 눈인데, 오온이 개공이라,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우리 몸이 다 불생 불멸이다, 이걸 보는 게 법안이에요. 그다음에 불안(佛眼)이라고 있는데, 이 부처님 눈이라고 하는 것은 이 우주의 진실 광명을 환히 보는, 이 진실을 보는 진실안이 그게 불안이란 말이죠. 그래서 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삼신을 구족하고 오안이 영명한 게, 오안이, 다섯 가지 눈이 신령스럽게 밝은 게 이게 깨달음인데, 삼신구족 오안영명. 그런데 그게 어떻게 이루어지냐. 그게 법공양으로 이루어진다. 경을 수지하고 독서하고 해설하고 서사하고 하면, 문자경을 보고 그다음에는 관조경을 보고 그다음에는 실상경을 봐서 이 깨달음을 이루는데, 깨달음을 이루면 청정법신을 갖추고, 지혜 광명신을 갖추고, 신통 원력신을 갖추고, 또 인간이 보는 눈, 천신이 보는 눈, 아라한이 보는 눈, 보살이 보는 눈, 이 우주 만물의 진실상을 보는 눈, 이렇게 다섯 가지 눈을 신령스럽게, 항상 밝게 가지고 있어서 생로병사 우비고뇌에서 한량없는 공덕을 무량업겁으로 수용하게 하는 게 이게 법공양 공덕입니다. 오늘 진관사 10월 초하루 법문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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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기도]10월6일 음력 9월 신중기도 입재 법문(유튜브라이브)
종범스님 2021-10-06
-- 공양이야기 --成佛行法 供養行성불행법 공양행 9월 초하루 오늘 진관사 법문은 공양 이야기, 공양하는 이야기, 이런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공양이란 무엇인가. 성불행법(成佛行法)이니, 성불행법, 성불을 하는 법이다, 그것이 공양행(供養行)이다. 이런 내용이고요. 供養頌 공양송獻供進供施供力 長養福慧是供養헌공진공시공력 장양복혜시공양 三世如來供養出 供養諸佛現身行 삼세여래공양출 공양제불현신행(宗梵)(종범) 공양 송을 하나 지었는데, 그 송 내용이 뭐냐 하면, 헌공진공시공력(獻供進供施供力)으로, 공양을 올리고, 공양을 올리고, 공양을 베푸는 힘으로, 장양복혜(長養福慧)가, 복과 지혜를 기르는 것이 시공양(是供養)이로다, 이것이 공양이로다. 삼세여래공양출(三世如來供養出)하니, 삼세 여래가 공양으로부터 출현을 하셨으니, 공양은 제불현신행(供養諸佛現身行)이라, 공양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몸을 나타내는 행위다. 오늘 말씀 내용이 이런 내용이고요. 三種供養(十地經論卷제3) 3종공양(십지경론권제3)一切供養者 有三種供養 一者利養供養 謂衣服臥具等 二 일체공양자 유삼종공양 일자이양공양 위의복와구등 이者恭敬供養 謂香花幡蓋等 三者行供養 謂修行 信戒行等 자공경공양 위향화번개등 삼자행공양 위수행 신계행등 그럼 공양에 대한 가르침이 뭐냐. 세친보살이라고 하는 분이 화엄경 십지경론(十地經論)을 지었는데, 그 세친보살 화엄경 십지경론에서는, 공양은 많은 공양이 있는데, 일체공양자(一切供養者)는 유3종공양(有三種供養)하니, 3가지 종류의 공양이 있으니, 일자는, 첫째는 이양공양(一者利養供養)이요. 이할 리자, 기를 양자. 이 몸을 이롭게 기르는 공양이다. 그러니 그게 뭐냐. 의복, 와구, 탕약, 음식 등등이 있는데, 여기서는 의복, 와구 등등이다(謂衣服臥具等) 이렇게만 얘기했고요. 두 번째는 공경공양이니(二者恭敬供養), 공경을 올리는 공약이니, 향화번개 등이라(謂香花幡蓋等). 향과 꽃과 깃발과 일산, 해를 가리는 일산 등등이 그게 공경공양이라 그랬고. 세 번째는 행공양이라(三者行供養), 직접 몸으로 실행을 하고 직접 몸으로 실천하는 공양으로, 행할 행자, 행공양인데, 수행 신계행 등이라(謂修行 信戒行等). 신심과 계행과 그 많은 바라밀 공덕행을 수행하는 것이 행공양이다. 이렇게 세 가지로 설명을 했고요. 通常三種供養 통상삼종공양一者 財供養 二者 法供養 三者 行供養 일자 재공양 이자 법공양 삼자 행공양財供養者 華鬘 音樂 傘蓋 衣服 香燈 (普賢行願品) 재공양자 화만 음악 산개 의복 향등 (보현행원품)法供養者 善男子 善女人 聞是經典 信解受持 讀誦修行 법공양자 선남자 선녀인 문시경전 신해수지 독송수행爲諸衆生 分別解說 是名法之供養 (維摩經 法供養品)위제중생 분별해설 시명법지공양 (유마경 법공양품) 모든 경전에서 통상적으로, -통상이라는 건 항상 모두에게서, 통이라는 건 모두 다 이 말이고, 상이라는 건 항상, 통할 통자, 항상 상자.- 통상적으로는 삼종공양(三種供養)을 말하는데 삼종공양이 뭐냐. 일자는, 첫째는 재공양(財供養)이요, 재물 재자, 이 재라고 하는 것은 모든 물질, 재화, 금전 전부를 다 합쳐서, 재물 재자를 써서 재라고 하고요. 두 번째는 법공양(法供養)이다. 법으로 하는 공양이다. 세 번째는 행공양(行供養)이다. 실행으로 하는 공양이다. 이게 통상적으로 공양을 말할 때 재공양, 법공양, 행공양, 이렇게 삼종공양을 말하는데요. 재공양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복이나 음식이나 와구나 탕약이나 기타 온갖 물질적인 것이 이게 재공양인데, 이 재공양이 부처님 생전에서부터 계속해서 제일 먼저 발달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도 기탑공양(起塔供養), 탑을 세워서 공양을 올리는데 기탑 공양은 역시 향과 꽃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물질을 부처님 탑에 공양하기 때문에 재공향이 이제 제일 먼저 발달할 수밖에 없었고요. 그다음에 존상공양, 부처님 상을 모시고 부처님 상 앞에 공약을 올리니까 역시 재공양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고, 그다음에는 장엄불찰(莊嚴佛刹), 불찰은 부처님 사찰인데, 지금 사찰이죠, 부처님의 이 절을 장엄한다. 건설하고 건립을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재화가 필요해요. 그래서 불찰을 장엄하고 존상에 공양하고, 탑상에 공양하고 또 수행 수도하는 스님들께 공양을 해야 되니까 역시 재공양이 필요하고, 그래서 이 재물로 하는 공양이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일상적인 공양이 된 거예요. 그러다가 재공양에서 공양의 내용을 더 깊게 할 필요가 있어서,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어서, 법공양이 강조되기 시작한 거예요. 법공양이라는 건 뭐냐. 유마경 법공양품에 보면, 유마경이라는 경전에는 아예 법공양품이 따로 있는데, 그 경전에 보면 법공양자는 선남자, 선녀이니, 선남자 선녀인(善男子 善女人), 복과 지혜를 닦는 신심 불자, 복혜 수행 신심 불자를 선남자 선녀인이라고 그러는데, 문시경전(聞是經典)하고, 이런 경전을 듣고, 신해수지(信解受持)하야, 그 경전을 믿고 이해하고 받아 간직해서 독송수행(讀誦修行)하며, 읽고 외우고 수행 실천을 하며, 위제중생(爲諸衆生)하야, 모든 중생을 위해서 분별해설(分別解說)하면, 구분을 하고 선후를 설명하고, 이게 분별인데 분별을 하고 또 해설을 하면 시명법지공양(是名法之供養)이니라, 이것의 이름이 법의 공양이니라.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재공양 법공양, 그런데 이제 행공양은 여러 경전에서 다 얘기하지만은 특히 화음경에서는 보현행이 행공양이에요, 보현행. 그래서 보현행이 행공양인데 화엄경 보현행원품에 보면, 보현보살 10종 서원 중에 세 번째가 광수공양원(廣修供養願)이라, 넓게 공양을 닦는 것을 원한다, 이렇게 돼 있는데, 거기에서는 재공양을 화만(華鬘), 꽃 화자, 묶을 만 자, 그냥 꽃을 낱낱이 부처님께 올리기도 하고, 꽃을 묶어서 꽃다발로 만들어서 올리기도 하고, 음악(音樂), 음성공양을 올리기도 하고, 또 의복을 올리기도 하고, 향과 등을 올리기도 하는 이런 재공양이 있고, 참으로 공양은 법공양, 수행공양을 말하는데 참으로 공양은 보현행원을 실천해서 언제까지 불퇴보리심(不退菩提心), 보리심에서 퇴보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 법공양이고 그것이 행공양이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어요. 凡諸佛 爲衆生 說佛德 意爲欲令衆生 自亦得彼果故 令 범제불 위중생 설불덕 의위욕령중생 자역득피과고 영修行 是故 正令吾 發心修行佛 但吾當果 已成佛 非他佛 수행 시고 정령오 발심수행불 단오당과 이성불 비타불也(自己未來佛) (法界圖記叢髓錄卷제4, 錐穴問答)야(자기미래불) (법계도기총수록권제4, 추혈문답) 그래서 재공양, 법공양, 행공양인데, 이게 다 중요하고 또 항상 있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성불하는 행법이다. 그래서 성불행법은 공양행이요 공양행은 성불행법이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면 다 이렇게 실행을 통해서, 경전을 읽고 외우고 이해하고 실천하고 설명하는 법공양을 통해서, 또 부처님께 항상 공양 올리는 이런 재공양을 통해서 다 성불을 하게 되는데, 성불이, 참 이게 묘해요. 신라 시대 의상 스님이 그 부석사에서 얼마 안 되는 추동이라고 하는 곳에서 100일 동안 화엄경을 말씀하셨다, 그게 이제 추혈문답(錐穴問答)이라고 해요. 추동이라는 추자하고, 구멍 혈자를 써가지고 추혈문답이라고 그래요. 추혈문답이 잘 안 전해진다고 그러는데 요즘에 연구하기를 화엄경 문답이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을 그동안에는 중국의 현수법장 저술이다 이렇게 전해졌었어요. 그런데 요즘 연구를 해보니 그게 법장 저술이 아니고 의상 스님의 추동 문답이다, 이렇게 돼서 거의 오늘날에는 신수대장경에 수록된 화엄경 문답 두 권이 의상 스님 추동에서 100일 동안 한 법문이라고 하는 것이 거의 확정적으로 지금 밝혀지고 있어요. 근데 그 추혈문답에 무슨 말씀이 있느냐 그러면은, ‘나의 미래불이 현재의 나를 인도한다.’ 이런 말씀이 있어요. 이거 잘 안 듣던 말인데, 나의 미래불, 현재는 나 있는데, 나의 미래의 나인 부처님이 현재 나를 인도한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 그러니까 거기서 말하기를 범제불이, 범자는 일체라는 말인데 범부라는 범자, 일체제불이 위중생하야(凡諸佛 爲衆生) 중생을 위해서, 설불덕(說佛德)은 부처님의 여러 공덕을 말씀하는 것은 왜 그렇게 말하겠는가. 의위(意爲), 뜻으로 생각을 하기를, 용령중생(欲令衆生)으로, 중생으로 하여금, 자역득피과고(自亦得彼果故)로, 중생 스스로도 그 부처님의 결과의 공덕을 얻게 하고자 하는 고로, 영수행(令修行)이니라, 수행하게 하는 것이니라. 이게 뭔 말이냐. 부처님이 중생을 위해서 부처님 공덕을 말하는 것은 그 중생들도 부처님처럼 불덕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설명하고 수행하는 것이다,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시고로(是故), 이런 고로 정령오(正令吾), 바로 나로 하여금 발심 수행하게 하는 부처님은, 나에게 발심하게 하고 나에게 수행하게 하는 부처님은 다른 부처님이 아니라 단오당과(但吾當果)라, 다만 나의 당래(當來) 미래에 내가 결과를 이룰 수 있는 부처님이다. 석가모니불이 이제 중생에게 발심 수행을 하게 한다면 지금 석가모니불이 나의 미래불이라는 거죠. 내가 성불하면 석가모니불처럼 된다는 거에요. 아미타불이 나로 하여금 수행하게 만든다면 나의 미래불이 아미타불이다. 비로자나불이 나로 하여금 공덕을 닦게 하고 발심하게 하고 수행을 하게 한다면 비로자나불이 나의 미래불이다. 그래서 이성불(已成佛)은, 이미 성불하신 부처님은 비타불(非他佛)이다, 나하고 다른 부처가 아니다, 자기 미래불이다. 이 법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그래서 우리가 부처님 존상을 향해서 예경을 하고 공양을 올리는 것은 내가 성불하면 저 존상의 모습과 같이 부처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지금 모시고 있는 부처님은 바로 나의 미래불이다 이거예요. 그럼 언제 성불하냐. 내가 지금 공양하는 그 행동으로 성불해요. 지금 공양행으로 성불하고 지금 예경 올리는 그 부처님처럼 성불하고. 이런 법문이 잘 없는데 이 추혈 문답에 있어요. 그래서 너무 중요해요. 그러니까 미륵불이 나의 미래불인 거예요. 그럼 언제 성불하냐. 지금 공양이 바로 성불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현재 공양하는 것이 그게 바로 성불하는 순간이고, 그 성불하는 결과의 모습은 지금 현재 예경하고 있는 부처님 모습이 앞으로 미래에 성불할 나의 모습이다. 그게 왜 그럴 수밖에 없느냐 하면 삼세여래가 일체동이라 했어요. 삼세여래가, 삼세여래가 일체동이니까, 내가 부처가 돼도 비로자나불과 똑같고 석가모니불과 똑같고 아미타불과 똑같으니까 그러니까 비로자나불이 나의 미래불이오, 석가모니불이 나의 미래불이오, 아미타불이 나의 미래불이다 이거에요. 이런 법문을 의상 스님이 하신 게 이게 화엄경에서도 교리에맞고 인과에서도 맞고 발심에서도 맞고 다 중요해요. 그러니까 법당에 와서 저게 딴 부처님이 아니라 미래의 내 모습이다. 그럼 언제 저렇게 되냐. 지금 절하는 순간에, 공양 올리는 순간에 저렇게 된다. 이게 이제 신심이고. 발심이고 수행이죠. 智通 居太白山彌理嵓穴 修華嚴觀 忽一日 見大猪過穴門 지통 거태백산미리암혈 수화엄관 홀일일 견대저과혈문及通依常 禮木刻尊像 像語通曰 過穴之猪 是汝過去之身 급통의상 예목각존상 상어통왈 과혈지저 시여과거지신我即是汝 當果之佛 通聞此語 即悟三世一際之旨아즉시여 당과지불 통문차어 즉오삼세일제지지(法界圖記叢髓錄卷제1)(법계도기총수록권제1) 그리고 의상 스님 제자 지통(智通)이라고 있는데, 지혜 지자, 통할 통자. 지통이라는 스님이 아주 유명한 스님인데 10대 제자 중에 속하는 스님이에요. 지통이라는 스님이 거 태백산 미리 암혈하야(居太白山彌理嵓穴), 태백산 미리암, 미리라는 거는 더할 미자, 이치 이자, 그냥 명칭이고, 암혈, 미리라고 하는 바위 굴, 이 말이죠. 바위 암자, 굴 혈자, 미리암혈에 머물면서 수화음관(修華嚴觀)이러니, 화음관을 닦았다, 화엄관법을 떡 닦고 있는데 홀일일(忽一日)에, 홀연히 어느 날에, 견대저가 과혈문하고(見大猪過穴門), 큰 대자, 돼지 저자, 큰 멧돼지가, 그 미리암 혈 그 문 앞에 멧돼지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급통의상(及通依常)하야, 그러고 나서 통이, 평상시처럼, 평상시에 의지해서 예목각존상(禮木刻尊像)하니, 나무로 조각한 부처님 존상에게 예경을 올리는데 이르르니, 미치니, 상어통왈(像語通曰), 그 나무로 조각해서 모신 부처님이 말을 해요. 상이 어통왈,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 관법이 깊으면 지혜 신통이 맑아져서 그 목각 존상이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겨요. 이게 관법의 신통인데, 얼마든지 생길 수가 있어요. 목각 존상이 지통 법사에게 말을 하는 거예요. 지금 이제 부처님 오셔서 부처님이 말을 해요. 뭐라고 말을 하느냐. 과혈지저(過穴之猪)는 저 바위 굴 앞에 지나가는 돼지는 시여과거지신(是汝過去之身)이오. 너의 과거의 몸이다 이랬어요. 너의 과거의 몸이다. 그리고 아(我)는, 나는 목각 존상, 나는 즉시여 당과지불(即是汝 當果之佛)이다. 바로 너의 당래 불과를 이룰 부처님이다. 그러니까 나는 너의 미래 불이다, 이 말이에요. 당과지불이라는 거는 당래하생(當來下生) 그러잖아요. 당은 미래 당자거든요. 미래의 불과를 이룰 불이 바로 나다. 목각 존상 나다, 그런 말을 한단 말이에요. 참 기가 막히지. 그러니까 존상이 있고 지통이 있고 멧돼지가 있는데, 멧돼지는 문 앞으로 지나갔고, 존상은 법당에 모셨고, 지통은 그 존상 앞에 지금 예경을 올리고 있는데, 저 존상이 하는 말이 ‘지나간 멧돼지는 너 과거의 몸이고 나는 너의 미래의 불이다,’ 이런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통문차어하고, 통이, 통문차어하고, 그 존상이 하는 말을 딱 듣고 즉오삼세 일제지지(即悟三世一際之旨) 하니라. 삼세가 과거 현재 미래가 일제라는 거는 과거제 현재제 미래제, 세(世)자와 같은 건데, 삼세가 일제라는 뜻을 깨달았다. 삼세 일제지지라. 그러니까 저기 지금 새가 울고 하는 거는 나의 과거고 지금 법당에 모신 부처님은 나의 미래다. 그러니까 나는 현재고, 그러니까 과거 미래 현재가 바로 한순간에 다 있다 이거죠. 그래서 의상 스님한테 가서 말씀을 드렸어요. 그러니까 의상스님이 ‘아, 이 법을 크게 이룰 사람이다.’ 이래 가지고 법성계, 도장으로 돼 있는데, 그걸 주고 격려를 했어요. 그래서 의상 스님 10대 제자 중에 아주 훌륭한 제자가 이 지통법사에요, 지통법사. 그러니까 우리가 예경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저 부처님은 나의 미래불이다’ 이런 신심이 필요해요. 그럼 어떻게 저렇게 되냐. 지금 공양하는 이 공덕으로 된다, 그런 거죠. 공양하는 이 공덕으로 된다. 그래서 지금 나의 행은 그 성불하는 공덕 행위고 지금 내가 예경을 올리는 부처님은 미래에 성불할 나의 모습이다. 이래서 이 공양 행위라는 것이 여래가 이 세상에 나타나는 공덕법이기 때문에 어떤 부처님이든지 공양행을 통하지 않고는 성불한 일이 없다 이거죠. 그래서 공양송에서 헌공진공시공력으로(獻供進供施供力), 상단 공양을 헌공이라고 하고 중단 공양을 진공이라고 그러는데, 이 헌자나 진자는 다 올린다는 뜻이에요. 진자도 올린다는 뜻이고. 시공력, 공양을 베푼다. 하단 영단 공양을 시식이라고 해서 시공이라는데 다 같아요. 다 올리는 거예요. 장양복해가 시공양(長養福慧是供養)이라, 복덕과 지혜를 기르는 것이 공양이다. 삼세여래가 공양출(三世如來供養出)하니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공양으로 출현을 했으니, 공양재불현신행(供養諸佛現身行)이라, 공양은 모든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몸을 나타내는 행위다. 오늘 법문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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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륙재] 10월 3일 국행수륙재 6재 법문(유튜브라이브)
성운스님 2021-10-03
참으로 반갑습니다. 오늘 수희 동참하신 우리 사부대중 다 함께 합장해서 일심 칭명 미타불 십송을 함께 하겠습니다. 나무서방대교주 무량수 여래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오늘 날씨 참 좋습니다. 상서로움이 가득한 청정법신이 상주하는 삼각산 진관사 수륙대재에 수희 동참한 고혼영가시여, 애혼영가시여, 중음영가시여 일심 칭명 미타불하소서일심 칭명 미타불하소서일심 청정 미타불하소서 부처님의 말씀을 우리가 흔히 팔만 대장, 팔만 사천 번뇌를 방편으로 제도하기 위해서 팔만 사천 법문을 하셨다. 팔만 사천 법문을 요약해서 볼 때, 이 산승(山僧)이 칠십여 성상을 불문에 살아오면서, 근자에 내 나름의 견처를 정리해 본 결과, 전부 아미타불의 총섭(總攝)이 있더라. 아미타불 안에 팔만 장경이 총섭이 있고 아미타불 안에 청정법신이 있고 원만보신이 있고 천백억화신이 있더라. 그러므로 말세 선남선녀 사부대중 모두는 일심 칭명 미타불 하면은 세세 지은 업장 소멸은 물론이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시방 현전하리라. 제가 ‘이제사 바로 이것이구나’ 그렇게 체득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 이후로 역대 조사 스님들의 말년 노후를 봤을 때, 전부 아미타불 일심 칭명으로, 모든 화두를 총섭해서 열반에 이르도록 오로지 아미타불 광명으로 삼계가 하나가 되었더라. 그러므로 산성도 근자에는 아미타불 주력에, 아침 저녁으로 시간 주어진 대로 주력에 정진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려면 한평생을 공부해도 공부를 다 할 수 없는 것이고, 난해하고 어려운 숲속에 들어가서 길을 잃어보고 헤매는 수행자가 그 얼마나 많고, 삼십년, 오십년, 백년을 수행했다 한들 한 번 분노에 백 년의 공덕림(功德林)이 허물어진 모습들을 많이 봤어요. 금일 영가께서도 오로지 일심 칭명 미타불 하면은 지옥이 바로 극락이 될 것이고 천당이 바로 견불처가 되리라. 허공을 떠도는 모든 영가들은 그 즉시 아미타불과 상주하게 되리라. 일심 칭명하는 데는 그 무엇보다도 신심이 중요한데, 그대들이 그들에게 신심을 주고 그대들이 그들에게 믿음을 주고 그대들이 그대에게 신뢰를 주되 조건 없이 줘라. 그리고 그들의 원력 따라 묵묵히 걸어가라. 그러면은 기적이 있으리. 그대가 원하는 곳에 다다르리라. 이 모든 시작은 ‘시종일관 믿음, 신심, 신심불이(信心不二)하야 불이신심(不二信心)이라 ’이런 말씀이 있거든요. 신심이 둘이 아닌데 둘이 아닌 신심은 언어도단((言語道斷)했다, 그렇게 이야기하죠. 생각의 길이 끊기고 언어의 길이 끊기는 곳. 비거래금(非去來今)이라. 바로 그 자리는 과거 현재 미래 없이 오직 시방목전(十方目前)하더라,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신심이 불이하야, 믿음과 마음이 둘 아니하여 둘 아니한 신심은 말 길이 끊어졌고 생각 길이 끊어져서 바로 일심 청정이며 바로 미타불이다. 그러므로 이 말세에 어려운 교리를 쫓아다니지 말고, 어려운 공부를 찾지 말고 오로지 일심 청명 미타불로 한국 불교는 다시 태어나야 되고 다시 부흥돼야 되고 정법 포교해야 된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견지에서 봤을 때 우리 진관사가 청정법신이 상주하는 이렇게 좋은 도량에 수륙재, 수륙대재의 특설 재단을 마련하고 유주고혼, 애혼고혼 모든 영가들을 수희 동참케 해서 우리 스님들이 믿는 마음과 신심을 다해 그 염불 공덕을 지으니, 믿는 마음에 동참한 모든 영가들이시어, 즉득 극락왕생 할지어다. 일심 칭명 미타불 하면 어떤 오역죄를 지었다손치더라도 그 즉시 소멸되어 미타 정토에 안주하리라. 극락을 가지 못하고 지옥을 가는 것은 업이 두꺼워서 못 간다고 그러죠. 업장이 두꺼워서 못 가고 죄를 많이 지어서 못 가고, 빚을 많이 져서 못 가고. 금생에 내가 이렇게 어렵게 산 것도 죄를 많이 지어서 업을 많이 지어서 그리고 한에 맺혀서 죽어갈 때 그 집착에 그 트라우마에 빠져서 바른 길을 가지 못하고 지옥에 트라우마에 빠져서 신음하는 무주 애혼 고혼 영가시어. 업장을 탓하지 말라. 그대들의 업보를 탓하지 마라. 그대들의 탐진치를 탓하지 말아라. 원래 쫓아서 탐진치 모습이었고, 냄새도 없고 모양도 없어. 모양도 없는 것에 탐착하고 집착하게 말라. 탐진치가 바로 탐이 바로 법신이요, 진이 바로 보신이요, 치가 바로 화신 일진데, 탐진치가 없다면 법신 보신 화신이 있을 수가 없으므로 탐진치가 있기 때문에 법신 보신 화신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중생이 깨달음을 갖다 쓰지 못하면은 깨달음은 탐진치가 되는 것이고, 눈 밝은 자가 탐진치를 갖다 쓰면 청정 보신 화신의 법신이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탐진치 삼독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오, 법신 보신 화신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로되, 갖다 쓰는 자에게서 탐진치 삼독이 법신 보신 화신이 될 수도 있고, 법신 보신 화신을 쓰는 자가 잘못 쓰면 탐진치 삼독이 되므로, 지금 바로 이 시간에, 이 언하에 탐진치 삼독이 허물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아간다면, 허물이 없는 자리는 묘법이여, 깨달음이 없고 청정법신자리도 없다. 허물이 없는 자리에 무슨 법이 있을 것이며, 허물이 없는 자리에 무슨 깨달음이 있을 것이냐 말이에요. 허물이 없는 자에 무슨 극락과 천당이 있을 것이며, 허물이 없는 일에 지옥과 아귀가 있을 턱이 없다. 허물이 없으므로 일심 청정이요, 일심 청정으로 무량수 무량광 미타불이다. 나무 서방 대교주 무량수여래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알고 보면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 것인데, 그렇게 어려운 걸로, 그렇게 어려운 걸로 헤매이고 또 헤매이고, 탐진치 삼독은 아주 몹쓸 놈이고, 탐진치 삼독은 아주 버려야 할 놈이고, 내가 가진 업장은 아주 못쓸 놈이고, 그거는 아주 버릴 놈이라고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어요. 탐진치 삼독이 없다면은, 번뇌가 없다면 어찌 보리가 있겠냐고, 탐진치 삼독이 없다면은, 번뇌가 없다면 어찌 보리가 있을 수 있으며, 보리가 없다면은 어찌 깨달음이 있고, 성불이 있고, 부처가 있겠는가. 탐진치 삼독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단 탐진치 삼독을 쓰되 세상을 향해서 나눔으로 쓴다면 탐진치 삼독은 대지가 되고 대행이 되고 대비가 되고 대원이 된다. 대지 문수보살이 되고 대행보현보살이 되고 대비관세음보살이 되고 대원지장보살이 되더라. 바로 탐진치 삼독을 사대 보살이 갖다 쓰면 일체의 중생을 열반 해탈게 하는 원동력이고 에너지더라, 이 말입니다. 탐진치 삼독의 에너지가 없다면, 우리 인간의 욕망이 없다면, 우리 인간의 열정이 없다면, 우리 인간의 실천 행동이 없다면, 그 인간은, 그 생명은 죽은 생명이 아닌가. 탐진치 삼독이 있기 때문에 하고자 할 원력이 나오고, 탐진치 삼독이 있기 때문에 하고자 하는 열정이 나오고 탐진치 삼독이 있기 때문에 하고자 할 행동이 나오므로 이것들이 에너지고 파워다, 이 말이에요. 이것이 바로 온 자재다 이 말이에요. 이것을 사대 보살의 나툼으로 갖다 쓴다면 이것이 바로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일체 중생을 유익하게 하는 그런 나눔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욕심은 많을수록 좋고 탐욕도 많을수록 좋고, 그래야만이 생각 속에서 에너지가 나오고, 에너지 속에서 파장이 나오고. 강한 에너지는 분노에서 강한 에너지가 나오죠. 분노를 일으킨 에너지는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어요. 그 일으킨 에너지가 분노로 인해 가지고 생산된 에너지를 사대 보살의 원력으로 써진다면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을 지옥에서 건지고도 그 공덕은 남음이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 다소 제가, 이 산승이 말씀드린 거에 대해서 동의를 아마도 못하신 분도 있을 거고, 아마도 나와 같이 동의를 함께 한 분도 있으리라고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오늘 진관사 수륙대재 육재에 참여해서 제가 말씀드리는 팩트는 칭명 미타불을 하면 그 어떠한 죄를 지어도, 그 어떠한 탐진치에 갇혀 있어도, 그 어떠한 무간지옥에 갇혀 있어도 일심 칭명, 일심 청정 돼서 미타불을 해서 바로 시방 목전이 바로 불국토다. 그러므로 목전이 불국토인데 10만 8천리 지옥길까지 갈 필요 없고 극락까지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탐진치 삼독을 내가 쓸 줄만 안다면 바로 이 자리가 화장세계요 화엄이요 법화세계다. 그리고 해탈열반이다, 그렇게 생각을 해봅니다. 탐진치 삼독을 우리는 버려야 할 것이고 끊어야 할 것이고 아주 못 쓸 행동이다, 그렇게 알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버려야 할 것도 아니고 끊어야 할 것도 미워할 것도 아니더라. 육진 번뇌를 두려워하면, 육진을 싫어하지 아니하면, 육근 육진 육식을 싫어하지 않으면 정각이라. 오히려 정각보다 낫더라. 육진을 갖다 쓰되 탐진치 삼독을 갖다 쓸 때 매하지 않는다면, 매하지 않고 내가 쓴다면 정각이라, 오히려 정각은 수성하더라. 오늘 도량 내에 계신 청법대중 모든 불자들이시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개성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능이 그것을 나쁘다고 학대하지 마시고 그것을 잘 길러서 대지로 대행으로 대비로 대원으로 쓸 수 있는 지혜를 여러분들이 자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해 보고 있습니다. 무량 무수한 수많은 애혼 고혼 영가들이시어. 우리 진관사 수륙대재 참 잘 오셨습니다. 탐진치 삼독에 물들어서 거기에 빠져서 지옥에 신음하고 있는 모든 영가들이시어, 일신 증명하시고 나의 업장과 나의 업보를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갖다 쓰실 수 있도록 참된 수행자 참된 대보살로 거듭 이 땅에 시현하시기를.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