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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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도량참법기도] 2월 8일 자비도량참법기도 회향 법문
가섭스님 2025-02-08
네. 반갑습니다. 날씨가 많이 춥죠. 그런데도 많이 나오셨네요. 날씨가 왜 이렇게 추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이렇게 추운 게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조금 전에 새해라고 세배를 했는데, 세 번 절해서 세배인가요? 새로운 마음으로 절한다면 세배인가요?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마음으로 올해도 자비도량참법 기도를 해서 회향을 하는데, 뵈니까 신수들이 훤하시네요. 기도가 잘 된 모양입니다. 신수가 훤해요. 보니까. 신수 얘기 나오니까, 정월달에 되면은 신수 한 번씩 봐야 되잖아요. 여기 주지스님은 신수 안 봐주시죠. 법문만 해주시잖아요, 기도하고. 제가 신수를 잘 보는데. 제가 오기 전에 옛날 토정비결 보던 책을 우연찮게 봤어요. 어렸을 때 생각이 났던 게, 그 토정비결이라는 게, 토정비결, 옛날에는 시골에는 정초 되면 신수 보러 이제 절에 와요. 그러니까 스님이 이제 안 봐준단 말이에요. 근데 토정비결 보는 게 이제 그 방법이 있거든요. 자기 생년월일 맞춰가지고 숫자를 이렇게 대입해서 보는 게 있는데, 그걸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익혔어요. 그래가지고 스님이 안 계시는 날, 그걸 살짝 가져와, 스님 방에 가져와가지고 노보살님 신수를 봐주는 거예요. 이렇게. 그럼 좋은 게 뭐가 있냐 그러면 복채가 생깁니다. 복채가 생기면은 이제 그걸 가지고 뭐 하냐 그러면은, 그걸 딱 들고 동네를 가요. 산 넘으면 동네가 이제 한 10가구가 있었어요. 여기 절이 있고 10가구가 있었는데, 10가구에 있는 또래들 다 데리고 나와가지고, 거기서 한 6킬로 걸어가면 주막집이 있어요. 주막집 주막거리라고, 거기 옛날에 아주 그 동네에 그 무슨 상회라고 하는데, 거기 양곡인데 거기가 양곡상회라고 가면은 군것질거리가 많잖아요. 그러면 그날 이제 아이들 데리고 와가지고 다 풍족하게 먹게끔 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정월을 보냈던. 그러니까 인기가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내가 동네에 뜨면 난리가 납니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들어갔는데, 이제 큰 49재가 들어오잖아요. 그러면 이제 옛날에만 해도 지금은 흔하지만 옛날만 해도 바나나를 시골에서는 구경할 수가 없어요. 큰 재가 들어와야 바나나를 올린단 말이에요. 바나나를, 이제 49재가 있는 날 그 다음 날 바나나 하나 가지고 학교를 가면은, 저는 미국에서 온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제 그 기억, 나이 드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옥춘이라는 게 있어요. 옥춘. 빨간 사탕 그거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가지고 몇 개씩 가지고 다녀요. 가지고 다니다가 학교 가면은 좀 험악하게 생긴 애들 있잖아요. 힘도 세고. 저는 이제 어렸을 때는 겁이 많아 가지고, 겁 많게 생겼잖아요. 그죠? 생긴 건 이래도 굉장히 사슴처럼 여린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좀 힘이 센 애들을 잘 사귀어야 됩니다. 어떻게 하냐면 그 옥춘을 하나씩 찔러주는 거예요. 이렇게 미리미리. 그러면 애들이 그걸 얻어먹으려고, 옛날 그 옥춘이 엄청 귀한 사탕이에요. 군것질거리가 없을 때는. 하교를 하면은 애들이 쭉 따라오잖아요. 그래서 저는 가방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저기 미루나무까지 가방 들어준 사람 옥춘 한 개, 그 미루나무에서 절까지 들어준 사람 옥춘 한 개, 이렇게 해가지고 당번을 정해가지고. 근데 절에 사니까 이제 어렸을 때, 바로 위의 형은 절에 산다고 옛날에는 많이 놀렸어요. 지금은 스님들을 많이 존중하지만, 저희 70년대만 해도. 그러니까 내 대략 나이가 나오네. 70년대만 해도 절에 살면은 놀림거리가 됐어요. 그런 때였어요. 그러니까 이제 바로 위 형은 학교에 가면 늘 싸워요. 싸우는데 먹는 게 부실하니까 맨날 지는 거예요. 맞고 지고, 지고 맞고. 저는 이제 그 옥춘을 이용해 가지고 한 번도 맞거나 싸운 적이 없습니다. 그때 이제 어렸을 때 그런 이제 신수 보던 생각이 나서. 근데 그 신수라고 하는 거는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장애가 있을 건지, 아니면은 혹시라도 어떤 사고가 있을 건지를 미리 점치는 거잖아요. 토정비결이라는 게. 좋은 일은 있으면 더 좋게 하고 나쁜 일이 방지하는 건데, 자비도량참법이라고 하는 이 기도의 원래의 핵심이 신수를 좋게 하는 거란 말이에요. 신수. 그래서 그 신수라는 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업장을 녹여서 좀 더 나은 삶으로 안내하는 에너지를 안게 하는, 품게 하는 그런 힘이 있는 것이 자비도량참법이기 때문에, 정초에 많은 사찰에서 이 독송 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비도량참법을 하게 되면은 신수가 좋아진다. 신수가 좋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가 가지고 있는 업을 녹여내야 된다, 밝혀야 된다라는 거예요. 근데 이제 자비도량참법을 기도할 때, “스님들이 이제 기도하자.” 그러니까 그동안에는 입재해가지고 같이 했단 말이에요. 근데 오늘은 내가 자비도량참법을 왜 하는지에 대한 질문들을 해보자라는 거예요. 좋은 질문들을 하는 사람이 좋은 삶을 살 수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자기 자신한테 질문을 잘 안 합니다. 자기 자신한테 질문들을 자꾸 해야 돼요. 질문들. ‘내가 왜 자비도량참법 기도를 해야 되는 거지?’ 누가 하래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기도를 왜 해야 되는 거지라고 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질문한 다음에 기도를 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 이제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사회도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지만, 질문하지 않는 사회는 엄청난 많은 곤란, 혼란, 대립, 갈등이 있는 겁니다. 질문이 아주 자유로운 그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거든요. 그 삶도 마찬가지예요. 왜 질문이 중요하냐 그러면, 그 질문들을 통해서 내가 향상되는 거거든요. 강화되는 거거든요. 좋은 쪽으로 강화되는 거란 말이에요. 질문들이. 우리가 이제 어렸을 때 엄마 품에 자란 아이들이 제일 많이 하는 게 뭐예요? “엄마 왜 그래? 왜? 이건 뭐야?” 이런 질문들을 많이 하죠. 그 질문들을 통해서 그 아이가 그 사회에 맞는, 그 사회 문화에 맞는 아이로 성장하는 것이 그 질문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우리는 무턱대고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질문들을 나 스스로에게 해야 된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하는 질문들도 있죠. 우리 이제 선가에서 하는 아주 기본적인 질문들이죠. <시심마(是甚麽)>라고 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것처럼, 자비도량참법을 내가 왜 해야 되는가라고 하는 것을 원론적인 질문들을 우리가 스스로 해야 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스스로가 답을 찾기 위해서 기도에 집중해야 되는 거다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자비도량참법은, 작년에 와서도 제가 말씀을 드렸지만, 자비도량참법을 4자로 딱 축약해 가지고, 자비도량참법을 만약에 이제 체에다가 걸러 가지고 이렇게 내린다면 딱 네 글자만 남는다고 그랬어요, 제가. 기억이 까마득하죠. 까마득해, 지금. 얼굴도 보니까. 해원석결(解寃釋結)이에요. 자비도량참법 6권에 나옵니다. 해원석결. 해원석결이 뭐예요? 원망하는 마음을 풀고, 그죠, 해결하고, 그다음에 석결은 맺혀 있는 걸 푸는 거예요. 가만히 우리 삶을 보면은 연식이 많이 될수록이요. 여기 연식이 많이 됐다고 하는 얘기 아니에요, 오해하시면 안 돼요. 연식이 많이 될 수 있다. 연세가 많이 들수록 이 해원석결이 많아요. 알게 모르게 미워하는 것도 더 많아지고, 또 가슴에 맺힌 것도 많아요. 그러니까 풀어야 되는 거죠. 그 해원석결이 자비도량참법을 하는 목적이에요. 마음에서 그러한 미움을 풀고, 맺혀 있는 걸 풀어내는 것, 녹여내는 것, 이것이 자비도량참법의 원래 취지다. 그러면 이 자비도량참법이 해원석결하면 뭐가 되느냐면 그게 우리가 늘 듣던 말대로 업장을 소멸하는 게 되는 거예요. 업장소멸은, 이 업장 할 때 업은, 여기서 말하는 업은 좋지 않은 습관, 태도 이런 걸 얘기하는 겁니다. 선업을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그 악업인 거죠, 일종의. 근데 악업이라고 이제 얘기를 하는데, 악업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불선업이라고 표현합니다. 경전에서는 불선업. 좋지 않은 업인 거예요. 우리 불교는 선악이다, 뭐 그다음에 천당 지옥이다, 이런 이제 단어는 있지만,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 불교는. 그래서 선악 이렇게 하지 않고, 이건 서양 철학적인 이야기고, 불교에서는 선, 불선 이렇게 얘기합니다. 선, 불선은. 그래서 악이 선으로 바뀌는 거 어려운 거예요. 그러나 불선이 선으로 바뀌는 거는 불자만 떼내면 되죠. 하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 불선업 이렇게 얘기합니다. 선업, 불선업. 그래서 이 업을, 업장을 녹이는 건데, 그 업은 정해진 것이 아니고, 업은 불교에서 말하는 업은 진행형이다. 항상 진행형인 거예요. 그래서 업을 얘기할 때는 녹여내야 되기 때문에, 뭔가 옛날에 옛날부터 내려오던 업도 있지만, 여기서 말한 업은 지금 내 이 순간에 말하고 보고 느끼고 행동하는 바를 말하는 거예요. 거기에 집중한다는 거예요. 이게 업장을 녹여야 되는 것이 바로 자비도량참법인데, 그 업장을 녹이기 위해서 업장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형성되느냐. 경전에 보면은 뭐라고 되어 있냐면은 업이라고 하는 것이 원래 행위를 의미하잖아요. 행위. 까르마(karma) 이렇게 얘기합니다. 까르마. 근데 행위라고 하는 것은 의지에 의한 심신의 활동을 의미하죠. 의지. 우리 생각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몸과 마음의 활동, 이게 업이에요. 쉽게 풀이하면. 근데 그 업이 악업이 되는 과정이 어떻게 되냐면, 원래는 이것이 청정한 본성이었는데, 청정한 본성, 원래는 아주 맑은 본성이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것이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고 또 마음을 쓰면서 이것이 욕망하고 결합이 되면서 어기게 돼요, 본성을. 그래서 이제 본성이라고 하는 거는 본래의 성품인데, 그 본래의 성품은 무량 공덕에 그런 찬란한 빛이 있다는 거예요. 원래의 성품이, 그런데 본래 자기의 어떤 그런 무량공덕의 생명의 원래의 그런 근본재가 있는데, 이것이 욕망으로 오면서 때가 끼면서, 거기에 이렇게 지금 때가 끼어 있는 거란 말이에요. 그게 이제 업이 악업으로 되는 거죠. 악업으로 돼가는 과정인데. 문제는 뭐냐 그러면, 이거는 상대와 경계를 보고 생각하여 활동하는 그 모든 것을 말한다. 우리가 이제 이 악업이 되는, 업이 쌓이는 것은 그냥 스스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경계를 보고 생각하며 활동하는 과정에 생긴다. 그리고 본성을 어겨 경계를 보고, 또 상대에 떨어져 상대적인 그런 대립 갈등으로 대립 과정이, 대립 관계가 있게 되므로, 업의 결과는 진리의 세계에서 벗어나 대립 경계가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업이라고 하는 것이, 악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스스로 자기가 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관계망을 맺으면서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악업은. 불선업은. 근데 선업은 어떻게 되느냐. 그 관계를 이어서 이루어지기 전에 내 스스로 내 마음으로 출발하는 게 선업이에요. 선업. 그러니까 내 마음부터 밝혀야 되는 거죠. 그러한 것이 이제 악업이 되는 과정인데, 그러면은 이러한 악업, 업장이 쌓여 있는 그 업장을, 그렇게 이제 쌓여 있으면 그걸로 인해가지고 우리가 누구와 관계를 맺거나 어떠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갈 때 장애가 생기는 거예요. 장애. 장애라는 건 다름이 아니라 마음의 힘듦이에요. 마음의 힘듦. 요즘에 마음이 참 힘들죠. 안 힘든 사람 손 들어보세요. 너무 힘들어요. 왜 힘드느냐. 상대가 하는 행위로 인해 내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런데 그러한 이제 악업을 정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 번째로는 미혹에서 벗어나 청정 본심을 깨달아야 된다라는 건데 미혹이라고 하는 거는 어떤 것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거다. 미혹은 사실이 아니라 그것이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이해해서 오해하고 있는 것들이에요. 오해. 그걸 미혹이라고, 미혹이라고 그러죠. 다른 말로 무명이라고 그러죠. 무명. 무명이라고 하는 건 이제 밝지 않은 건데, 그래서 이 미혹에 빠지지 않고, 미혹은 무명이란 말이에요. 밝지 않은 거란 말이야. 그러면은 이 업장을 녹이는 첫 번째 단계가 뭐냐 그러면은 본래의 청정한 그걸 회복해야 된다 그랬잖아요. 내 마음속에 본래 청정한 찬란한 빛이 있다라고 하는, 본래 광명이 있다라고 하는 거 내 스스로가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걸 무량공덕 생명이라고 얘기를 해요. 무량 공덕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게 첫 번째의 업장을 녹이는 가장 큰 전환점이 됩니다. 예를 들면은 내가 중생이라고 하는 사고,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업은 끊어지지가 않아요. 단도직입적으로 내가 내 안에 무량 공덕 생명이 있다, 나는 원래 본래 청정한 당체다 라고 하는 걸 내가 알아차려야지만이, 그걸 알아차리려고 스님들은 수행을 하는 거고, 여러분은 기도를 하는 거고, 정진하는 거다 이 말이에요. 그걸 알아차려야 이게 그다음부터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 출발점에는 이제 업의 소멸인데, 업장 소멸인데, 그 업장 소멸하기 위해서 자비도량참법을 하잖아요. 그 자비도량참법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거는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이 다섯 가지의 마음을 갖춰야지만이 성취가 돼요. 아까 이제 오다 보니까 주지스님께서 가피를 받아라 말씀하시더라고요. 가피를 받기 위해서 우리가 이제 자비도량을 하는 거니까 그게 중요하죠. 근데 이 가피를 받으려면 이 5가지 인연을 갖춰야지만이 가피를 온전하게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 그러면, 첫 번째로는 마음에 항상 삼귀의례, 삼보에 귀의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아야 됩니다. 이거는 불자라면 당연해야 됩니다. 왜 그러냐면 여기에 아주 얼어 있는 차가운 물이 있는데, 물을 끓이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불을 지펴야 되겠죠. 불을 지피려면 그거를 삼발이에 올려놔야 되잖아요. 그렇죠. 어디에 올려놓고 끓여야 되잖아요. 우리를 건강하게 지탱할 수 있는 세 가지 삼발이 역할을 하는 게 삼보예요. 삼보. 불법승 삼보. 그리고 이 불법승 삼보에 대한 마음은 끊어지지 않아야 돼, 항상. 첫 번째가 이제 삼귀의례가 있고. 두 번째로 제일 중요한데 인과를, 인과에 대한, 인과에 대한 의심이 끊어져야 됩니다. 근데 우리가 인과를 믿는 것 같지만,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가 인과를 믿지 않는 말과 행동과 마음을 많이 씁니다. 불교의 핵심은 뭐예요? 인과법이에요, 인과법. 부처님이 깨달으신 것이 연기법이잖아요. 연기법, 인연법, 인과법이란 말이에요. 세 가지란 말이에요. 세 가지. 근데 왜 인과법에는 안에는 연기법이나 인연법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근데 부처님께서 왜 그러면 연기법을 얘기하고, 인연법을 얘기하고, 인과법을 얘기했느냐.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다른 건 다 좋지만, 이 세 가지만큼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있어요. 그걸 삼종 외도(三種外道)라고 그래, 삼종 외도, 이런 믿음은 외도다. 나의 가르침 밖에 있는 길이다라고 하는 말씀이 있어요. 첫 번째가 뭐냐 하면 존우론(尊祐論)인데, 이 세상은 절대자가 역사했다, 만들었다는 믿음을 가지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연기법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또 하나가 뭐냐면 이 세상은 모든 게 사주팔자로 정해져 있다라고 믿는 거예요. 운명 믿는 거예요. 너무 운명에 매몰돼 있는 사람. 그래서 인과법을 말씀하신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의 불의가 뭐냐 하면, 세상 그런 게 없어, 다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거야라고 믿는 사람이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인연법을 말씀하신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세 가지는 절대로 글자대로 하면 안 되는 거죠. 이 세계에 누가 절대적인 사람이 나의 삶을 만들었다, 역사한다. 이게 잘못된 믿음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모든 것이 사주팔자에 의해가지고 이루어진다. 사주팔자 얘기 나와서 얘기지만 제가 스무 살 때 사주를 배웠습니다. 스무 살 때 우리나라 아주 유명한, 우리나라에서 역학책을 제일 많이 쓴 분한테 사주를 배웠어요. 사주팔자를. 사주를 잘 볼까요? 못 볼까요? 잘 보겠죠. 그렇다고 연락하지 마세요. 아니 가끔 농담 이렇게 하니까, 진짜 연락하는 분 있어요. 사주 봐달라고. 절대 안 봐줍니다. 왜? 그러면 그렇게 자꾸 봐주면은 다음 세상에 점쟁이 될까 봐. 스님들한테 그걸 물으면 안 돼. 왜 스님한테 그러면 다음 스님 점쟁이 되세요 하는 말과 똑같은 거예요. 부처님께서 제일 경계하는 것이 점치는 거란 말이에요. 왜냐하면 인도 사회에 그게 굉장히 팽배해 있었거든. 인도 사회에. 그렇기 때문에 점치는 걸 이제 경계하셨는데, 근데 제가 이걸 배웠지만 이게 아니구나라는 걸 내가 왜 느꼈냐면 주역이라고 그래요. 주역(周易). 이 역자가요. 바뀐다는 뜻이에요. 바뀐다, 바뀐다. 이게 쉬울 이자도 되지만 역자가 이 바뀔 역자예요. 그래서 이 바뀌는데 어떻게 바뀌느냐 그러면, 자기의 마음씀에 따라 바뀌는 거예요. 기본 틀은 다 있죠. 사람마다. 성격이라는 게. 근데 그 성격에 어떤 마음을 쓰느냐에 따라 가지고, 어떻게 용심, 최상용(最相用) 중에, 화엄경에 나온 최상용 중에 어떤 용심을 쓰느냐에 따라 가지고 그 사람의 삶은 바뀌는 겁니다. 사주가 다 100% 맞는 게 아니에요. 거기에 빠져드는 순간 부처님 법은 점점 멀어져요. 우리가 이제 마음이 약해지거나 내지는 삶을 살 때 장애가 생길 때, 여기에 빠져들면 잘 기도하다가도 여기에 의지하게 돼, 결국은, 종국에는. 그래서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중요한 것이 인과를 확실하게 믿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비도량참법을하는 이유는 바로 인과를 내가 아주 철저하게, 아주 내 골수에 맺히도록 믿기 위해서 자비도량참법을 하는 겁니다. 자비도량참법 해보시면은 계속 인과에 대한 말씀이 나와요. 인과에 대한 말씀이. 그 인과는 뭐냐 하면, 내가 현재 받는 여러 가지 장애나 고통과 어려움과 슬픔과 분노와 미움은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인과에 의한 결과물이다. 그 결과는 어떻게 어떻게 해야 되냐면, 내가 풀어야 된다는 거잖아요. 내가 주인공이라는 거잖아요. 아까 얘기했듯이 해원석결의 1차적인 사람은 전 거예요. 저. 맺혀 있는 사람은. 이 자비도량참법은 중요한 것이,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즉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나의 남편이나 부인이나 자녀나 며느리나 손자, 손녀나 그런 해원 석결을 풀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자비도량참법은. 자비도량참법의 핵심은 뭐냐 하면 내가 맺혀 있는 애원과 내가 맺혀 있는 그런 업장을 녹여내기 위해 자비도량참법을 하는 거예요. 이거는 아주 철저한 겁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말씀드리는데, 혹여라도 그런 구원 기도를 하려면 다른 기도하시는 게 좋아. 이 자비도량참법하면서 ‘뭐를 성취해 주세요’ 이런 기도가 아닙니다. 이거는 이거 잘못된 길로 가는 거예요. 지금. 그러니까 우리가 자비도량참법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아야 돼요. 그래서 제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자비도량참법하는 이유, 질문들을 나한테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인과를 철저히 믿기 위한 건데. 그 인과는 나의 인과다 이 말이에요. 나의 인과. 나의 인과를 믿기 위한 거다. 그다음에는 참회를 해야 돼요. 참회. 인과를 믿고 참회. 그러니까 이제 삼귀의, 인과, 참회입니다. 이거 다 이제 기록해 놓으세요. 머릿속에다가 자비도량참법하면 요 세 가지, 두 가지가 더 남았는데 이 세 가지는 이제 기억하시는 거예요. 삼귀의, 인과, 참회, 참회하기 위한 거죠. 자비도량참법이니까. 참법이니까 참회라는 거죠. 참회는 저번 시간, 저번 법문 나왔을 때 참회진언을 한번 했죠. 참회진언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했죠. 근데 기억이 안 나죠. 뭐라고 했는지. 이게 참회인데, 참회를 번역하면은 일체의 불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옴 살바 못자 모지, 살바는 일체라는 뜻이에요. 못자 붓다, 모디 보디, 모디 사다가 보살이라는 뜻이고 야는 들이에요. 들 부처님들, 보살님들 복수, 복수. 그러니까 참회진언은 일체의 불보살님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이에요. 참회라고 하는 거는 중요한 것은 원죄에 대해서 참회하는 게 아니에요. 불교는. 참회를 통해서 자기한테 채찍질하려고 참회하는 게 아닙니다. 참회진언은 함을 통해가지고 자기한테서 생체기를 내려고 참회하는 게 아니에요. 참회진언을 하는 이유는 <참회진언을 통해서 내 안에 가지고 있는 무량공덕 생명인 부처님의 찬란한 빛을 회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참회할 때 부끄러운 마음은 있어야 되겠죠. 내가 그 어떠한 불선업을 지은 거에 대해서 부끄러운 마음이 있어야 되지만, 도리어 참회진언을 하면서 환희의 눈물이 아니라, 그 한이 맺힌 눈물도 흘리는 분이 있어요. 한이 맺힌. 그 한이 맺힌 눈물 흘리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온 세월인데’ 하면서 이제 그러면 ‘내가 살아온 거를 책으로 쓰면 10권이 더 나와.’ 이렇게 하면서 이제 막 한탄하면서 하는 건 참회가 아닙니다. 그거는 그냥 한탄인 거지, 그거는. 참회는 참회진언 할수록 마음에서 찬란한 빛이 영롱하게 빛나야지만이 참된 참회가 되는 거예요. 눈물은 그 생체기 나 있던 것들을 씻어내는 것으로서 족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참회진언을 하면서 자꾸 한탄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그거는 이제는 안녕 해야 된다, 빠이빠이 해야 된다 이 말이에요. 참회진언을 하면 절대로 그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 자기를 원망하거나 자책하거나 자기한테 생체기 주는 마음을 가지고 참회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제 참회까지 했으면 그다음에는 내 마음을 다 찬란하게 이제 빛나게 했으니까, 거기에 뭐가 올라오냐면, 그 참회진언을 통해가지고 녹아 있는 마음에 올라오는 게 뭐냐면, 보리심이에요. 그걸 발보리심이라고 그러죠. 발보리심. 보리는 지혜라는 말이에요. 프라즈냐(प्रज्ञा prajñā) 보리는 반야라는 뜻이에요. 지혜, 지혜는 뭐라고 그랬어요? 지혜는 맑고 밝은 마음이에요. 지혜는 맑고 밝은 마음이에요.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이 맑고 밝으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 밝고 맑은 마음이 쭉 지속되는 것, 그게 지혜로운 사람이에요. 그리고 마음이 늘 따뜻하고 온화한 게 쭉 이어지는 그 사람이 자비로운 사람인 거예요. 늘 맑고 밝게 따뜻하고 온화하게 마음이 쭉 유지된 사람이 누구예요? 부처님이에요. 그 사람을 깨달은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깨달은 사람이 무슨 도통을 해가지고, 막 벽으로 걸어 다니고 하늘 날아다니고 막 이런 게 아니에요. 모르는 내일을 예측해 주고 이런 것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런데 뭐 스님이 막 그 신도 앉혀놓고 전생 봐준다고 하고 요즘에 그런 게 유행이라면서요. 전생. 전생은 그렇게 볼 수 있는 게 아니고, 남의 전생을 내가 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내가 식이 맑다해서, 기도를 열심히 했다고 그래가지고 남의 전생을 말하는 사람, 그 사람은 사기꾼일 가능성이 99.9%입니다. 또 수행자가 전생을 이야기하면 안 돼요.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어떻게 쓸 거냐, 내 마음을 얼마큼 찬란한 빛으로 빛나게 해서 지금 힘들고 어려운 나의 삶을 승리하는 삶으로 이끌어줄 거냐라고 하는 걸 안내하는 것이 수행자지, 전생을 맞춰주고 내일을 예측해 주고 하는 것이 수행자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어떤 분인 거예요? 깨달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에요? 마음이 밝고 맑고 따뜻하고 온화한 사람. 그게 지속되면. 근데 여러분이 그런 마음인가요? 비상시에 그게 유지가 되나요? 쭉 유지가 되면 좋죠. 그러면은 그건 깨달은 사람이죠. 그게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되냐면 보리심을 발휘해야 되는 거예요. 항상 보리심을 발하는 마음. 제가 옛날에, 아주 옛날에 종범 큰스님을 한번 모셔가지고, 제가 주지할 때 아주 옛날에요. 한 20년 전에. 아주 까마득하죠. 옛날에 모셔가지고 법문을 초청한 적이 있는데, 법문하고 공양을 하는데 저한테 물으시는 거예요. “수행자한테 제일 중요한, 수행자뿐만 아니라 불자들한테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아느냐?” 이렇게 물으시는 거예요. 뭐를 대답을 해야 될까. 그때만 해도 내가 나름 똑똑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딱 물으시는데 말문이 탁 막히더라고요. 너무 많이 생각나잖아요. 많은 생각이 나잖아요. 대답할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지금. 그래서 말문이 딱 막혀 있는데 딱 하시는 말씀이 “보리심이다. 한순간도 보리심을, 보리심을 발하는 거를 잊지 않아야 된다. 수행자는.” 그러면 다 해결된다는 거예요. 보리심. 그걸 발보리심이라고 그러잖아요. 오늘 몇 분까지 해야 되는 거죠? 너무 긴 거 아니에요? 지금 괜찮아요? 5분 남았다고요. 발보리심인데, 제가 발보리심에 대해서 제가 추려온 게 하나 있습니다. 합장들 해보시죠. 법문이 너무 기니까 주지스님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발보리심까지만 하고. 예. 제가 게송을 한 번 읽을 건데요. 발보리심. 오늘부터 오직 대승의 마음과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는 마음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려는 마음을 밝히리니, 원하옵건대 시방의 한없는 모든 부처님과 모든 대보살과 일체 성인께서는 본원력으로 저희를 위하여 증명하시며 자비력으로 가피하여 섭수하사 오늘 발심하고는 세세생생에 견고하여 물러나지 않게 하소서. 만일 삼악도에 떨어지거나 삼계중에서 갖가지 몸으로 갖가지 고통을 받으며 견디기 어렵고 참기 어렵더라도 괴로움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매 오늘 세운 큰마음을 잃지 않겠사오며, 차라리 무간지옥에 들어가고 불구덩이에 들어가서 갖가지 고통을 받더라도 고통을 받는다고 해서 오늘 세운 마음을 잃지 않겠사오니, 이 마음과 이 서원을 부처님의 마음과 같고 부처님의 서원과 같게 하옵소서. 네. 이렇게 이제 우리가 이제 보리심을 발했단 말이에요. 그리고 여기 나와 있듯이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고통이 오더라도 오늘 세운 자비도량참법을 하면서 내 스스로 나에게 갖는 인과에 대한 인과를 녹이고 인과를 녹임으로 인해서 업장을 녹이는 이러한 대보리심을 발하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아야 된다. 그렇게 되면은 내가 가지고 있는 무량공덕 생명인 부처님이 기꺼이 나와 함께 하는 그런 삶으로 가피가 넘쳐나는, 가피가 충만한, 그리고 늘 괴로움과 갈등과 대립에서 끌려가거나 지는 삶이 아니라, 늘 괴로움에서 승리하는 삶으로, 또 늘 부처님의 찬란한 광명이 빛나는 삶으로 살 수가 있다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아까 다섯 가지 말씀드렸잖아요. 근데 회향시까지는 제가 네 가지 얘기했죠. 마지막 하나가 있는데, 하나가 회향이라고 하는 게 있는데 그거는 내년도 자비도량참법 회향 때 하는 것으로 남겨 놓고, 오늘 법담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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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기도]2월 3일 입춘기도 회향 법문
종범스님 2025-02-03
立春節 · 好時節(입춘절 · 호시절) 안녕하십니까? 을사년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 입춘 법문하러 왔는데요. 譬如闇中寶 無燈不可見비여암중보 무등불가견佛法無人說 雖慧莫能了 (華嚴經, 須彌頂上偈品)불법무인설 수혜막능료 (화엄경, 수미정상게품) 입춘에 앞서서 법문이 뭔가. 무엇이 법문인가. 이 법문에 대한 가르침이 많이 있는데, 제가 절에 와서 제일 많이 들은 법문 내용이 비여암중보(譬如闇中寶)는, 비유하건데 어둠 속에 꽉 묻혀 있는 보배는, 어둠 속에 묻혀 있어요, 보배가. 무등불가견(無燈不可見)이라, 등불이 없으면 볼 수가 없다. 보배가 있기는 있는데 어둠 속에 있어서 등불이 없으면 못 본다. 불법도 무인설(佛法無人說)하면, 부처님 법도 사람이 말하지 아니하면, 수혜막능료(雖慧莫能了)라. 비록 지혜가 있다 하더라도 알 수가 없다. 이건 화엄경 수미정상게찬품에 게송이 있는데, 이 게송이 법문에 대한 의미와 필요성을 알려주는데 계속 봉송이 되고 있어요. 그러면 어둠 속은 뭐고, 보배는 뭐고, 등불은 뭐냐 이거죠. 어둠이라고 하는 것은 중생의 번뇌 망상이에요. 번뇌 망상. 이 중생의 생각이라는 것이 항상 이어지기는 하는데, 별로 중요한 생각이 없어요. 그걸 경상도에서는 ‘하자는 생각을 하지 말라.’ 하자는 생각. 하자는 게 뭔지, 나는 고향이 충청도라 그쪽 말 잘 모르는 거 많아요. 하자는 생각, 그게 뭐냐 하면 쓰잘데 없는 생각, 이 말이여. 쉽게 말하면. 우리 중생들은 쓰잘데기 없는 생각으로 밤을 새고 날을 보내고 살아가요. 그래서 그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마라. 그 쓸데없는 생각이 번뇌 망상이거든요. 그게 어둠이에요. 그런데 보배는 뭐냐. 그 번뇌 망상 속에 청정 불성이 있다. 불성. 이 불성은 중생의 자성이고, 또 중생의 본래 광명인데, 그게 생각 속에 묻혀 있다 하더라도 그대로 있어요. 자성 본래 광명이. 그런데 그거를 누가 말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번뇌 망상 속에 들어있는 청정 불성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법문이 꼭 필요하다. 이제 이런 말씀이거든요. 그건 그렇고. 乙巳年 立春節 을사년 입춘절今日立春 迎春迎福 念佛念法 精進勝緣 금일입춘 영춘영복 염불염법 정진승연四大强健 心無迷惑 千災雪消 萬福雲興사대강건 심무미혹 천재설소 만복운흥 오늘은 을사년 입춘절(乙巳年 立春節)이라 이렇게 돼서 입춘 법회를 지금 하고 있어요. 을사년 입춘절이다. 입춘이라는 얘기는 봄이 온다는 얘기거든요. 저 앞산에 보니까 눈이 허옇게 보이는데, 그래도 눈 위로 봄이 오고 있어요. 또 봄이 왔거든요. 그러면 부처님 법으로 볼 때 봄만 온다고 의미가 있는 게 아니고요. 우리 마음이 어떻게 봄맞이를 하느냐 그게 중요해요. 봄맞이를 할 때 봄이 의미가 있지, 봄을 전혀 맞이하지 않고 보내면 의미가 없어요. 그럼 봄을 맞이하는 내용은 뭔가. 금일은 입춘(今日立春)이라. 영춘영복(迎春迎福)이라. 봄도 맞이하고 복도 맞이한다. 복을 맞이하는 노력을 하고, 복을 맞이하는 준비를 할 때 그 봄이 복과 함께 오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우리 불자가 봄을 맞이해서 복을 맞이할 것인가. 기도하고, 축원하고, 염불하고, 부처님 법을 생각하고, 정진하고, 공부하고, 마음을 잘 닦아가면 그것을 훌륭한 인연이라고 한다. 훌륭한 인연을 어려운 말로 이길 승자하고 인연 연자하고 승연(勝緣)이라고 그래요. 승연. 아주 인연 중에 가장 훌륭한 인연을. 승리라고 하는 승자가 있거든요. 승리. 그걸 승연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 승연 공덕으로 사대가 강건(四大强健)하고 마음이 건강하고, 축원에서는 심무미혹(心無迷惑)이라고 그러는데, 이 마음이 건강해야 행복해요. 이제 부모들이 실력만 키워주면 자녀가 행복할 줄 아는데, 실력은 기본이고 마음이 건강해야 돼요. 집을 잘 지어놨어도 공기가 탁하면 못 살아요, 그 집에. 건강하고 재능이 있어도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행복할 수가 없어요. 멀건 대낮이 고통을 만들고 있거든요. 그게 뭐냐 하면 마음에 쓸데없는 생각이 발동하면 그렇게 돼요. 누가 나를 괴롭히는가. 누가 나에게 고통을 주는가. 누굴 것 같아요? 답을 다 알고 계시네. 어떤 애들은 그래요. 살다 살다 부모 잘못 만나면 평생 재수 없다 이래요. 그 말 맞잖아요. 평생 재수 없다. 물건 잘못 사면 몇 년 재수 없고. 그런데 그거 다 쓸데없는 소리예요. 쓸데없는 소리. 자기 마음이 건강하면 항상 좋은 일이 생겨요. 그래서 이게 아무리 집을 지어서 새집이라 하더라도, 공기가 맑아야 되는데, 공기가 안 좋으면 전부 병이 와. 그래서 이 마음 건강을 위해서 기도도 하고, 딱 이 보고 듣는 이 마음이 무엇인가 잠깐씩만 돌아봐도 거기에 깊은 평화가 올라와요. 보고 듣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마음이란 그런 거거든요. 딴 데 있는 게 아니라 보는 데 있고, 듣는 데 있고, 생각하는 데 있고, 움직이는 데 있고. 그래서 이 이 몸을 가지고 몸으로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생각하기도 하고 움직이기도 하는데, 이 마음이 이놈이 무엇인가. 처음에는 10초만을 생각해도 거기서 무엇을 느낄 수가 있어요. 30초를 그렇게 생각한다. 이거 엄청난 거고요. 24시간 동안에 1분만 보고 듣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이 마음이 무엇인가, 한번 시작해서 1분만 지나가도 엄청난 거기 기쁨이 있고, 가벼움이 있고, 심오함이 있어요. 그게 마음공부예요. 그렇게 되면은 마음이 건강해진다. 심무미혹이라, 마음에 미혹함이 없다. 아무것도 아닌 거 그거 구하려고 목숨도 잃고, 아무것도 아닌 거 그거 구하려고 근심도 생기고 이러거든요. 기차 타고 오다 보면요. 두 노인네 부부, 노인네 옆에 가면 그날 아주 괴로워요. 그 할머니가 계속 잔소리를 하더라고. 지금부터 준비해야 된다고, 준비해야 된다고. 아 내릴 때 준비하든 말든 알아서 내리겠지. 계속 잔소리를. 그게 전부 다가 하자는 생각이야. 쓸데없는 생각. 할 때 되면 뚝 하고, 안 할 때 되면 안 하고, 계속 뭐라고 그래, 계속 뭐라고 그래. 내가 할머니들 그런 줄 처음 알았어요. 처음 알았어. ‘아이고 저렇게 사는구나. 저 할아버지 참 대단하다. 대단해.’ 그렇단 말이에요. 그게 이게 전부 말이 입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거거든요. 마음이. 한 생각을 딱 차분하게 가지면, 아니 내릴 때 되면 턱 내리고, 앉을 때 되면 턱 앉고. ‘아 지금 빨리 가야 되는데 왜 이렇게 늦어’ 내가 이러면서 막 뭐라고 그러고. 전부 쓸데없는 생각이에요. 그게 마음이 건강하면 안 그렇게 된다 이거죠. 그럼 사대가 강건하고 마음이 건강하면 천재는 설소(千災雪消)하고, 모든 재앙은 봄에 눈 녹듯이 다 녹아지고, 만복은 운흥(萬福雲興)이라, 여러 가지 복덕은 허공에 구름이 일어나듯이 일어난다. 그게 입춘절을 맞이하는 봄맞이 복맞이다. 복도 맞이하고 봄도 맞이하는 거다, 이런 얘기죠. 그건 그렇고. 그 부처님이 되면 봄을 어디서 맞이하는가. 봄을 달력에서 맞이하는가. 달력보면 입춘인 거 알잖아요. 그러면 그 달력에 봄이 있어요? 봄을 달력에서 맞이하는가. 아니면 봄을 저 산골짜기에서 맞이하는가. 또 아니면 봄을 아주 일찍이 피는 무슨 매화꽃이나 동백꽃에서 봄을 맞이하는가. 그게 아니에요. 春外春 好時節 춘외춘 호시절春有百花秋有月 夏有涼風冬有雪춘유백화추유월 하유량풍동유설若無閒事掛心頭 便是人間好時節약무한사괘심두 변시인간호시절 이 부처님들은 춘외춘(春外春)이라고, 봄 춘자, 바깥 외자, 봄 춘자. 봄밖에 봄에서 산다. 봄은 세월이거든요. 근데 세월 밖에 있는 세월이 있어요. 그걸 이제 불교에서 어려운 말로 <겁외춘>이라고도 해요. 겁, 일겁, 이겁, 세월을 말하는데, 그 겁 밖의 봄이다. 겁 밖의 봄이다. 겁외춘. 춘외춘. 그거 이제 뭐냐 하면, 춘외춘은 춘하추동이 없이 맨날 좋은 시절이에요. 그걸 호시절(好時節)이라 그래요. 좋을 호자 호시절. 봄만 좋고 뭐 겨울은 안 좋고가 아니라, 춘하추동 사시절이 나날이 좋은 시절이에요. 그게 부처님 세계예요. 춘외춘 호시절이라. 그전에 통도사 그 손님들 맞이하는 객실에 글이 여러 가지가 붙어 있었는데, 그 글이 너무 좋아서 그때부터 계속 외우던 게송이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춘유백화하고 추유월(春有百花秋有月)하고, 봄에는 온갖 꽃들이 있고, 가을에는 빛나는 달이 있고, 하유량풍동유설(夏有涼風冬有雪)이라, 여름에 그 더운 때도 가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그 여름에 서늘한 바람이 그렇게 좋더라.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이 있고, 겨울에는 눈이 있다. 약무한사괘심두(若無閒事掛心頭)라면, 만약에 쓸데없는 일이 쓸데없는 생각이 마음속에 걸려 있지 아니하면, 변시인간호시절(便是人間好時節)이라, 이것이 인간 호시절이다. 마음에 쓸데없는 생각이 걸려 있지 아니하면, 봄은 봄대로 호시절이요, 여름은 여름대로 호시절이오, 춘하추동이 좋은 시절 아닌 때가 없다, 이런 법문이에요. 그때 이게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모르겠어요. 그 말이. 인간호시절이 있다. 그럼 인간호시절은 달력에 있는 거 아니고, 햇빛에 있는 거 아니고, 저 꽃송이에 있는 게 아니고, 내 마음이 아주 넓어지고, 내 마음이 건강해지고, 내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면 항상 좋은 시절이라 이 말이죠. 一念起念 妄想執著 苦海出沒 怖畏不息 일념기념 망상집착 고해출몰 포외불식一念正念 照見空寂 寂而常照 盡力安樂일념정념 조견공적 적이상조 진력안락 法無自性 一念寂光 법무자성 일념적광常用一念 法法圓明상용일념 법법원명 그래서 이 세상에 문제가 많은데,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그걸 해결하는 방법은 뭐겠어요? 아까는 답이 금방 나오더니. 많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방법, 마음이죠. 마음. 마음 하나가 조용해지면 이 삼천 대천세계가 조용해져요. 마음이 조용해지면 그 할머니가 짜증 내는 영감님도 좋아. 근데 마음이 걱정이 일어나니까, 옆에 있는 그 할아버지가 불안한 거야. 그래서 이게 자기 마음에 걱정이 일어나서 불안한 줄을 꿈에도 몰라요. 그래서 자꾸 할아버지 탓만 하더라고. 그 내가 옆에 가서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 참 보고 있자니 딱하고 그래. 할머니 마음이 걱정이 일어나서 할아버지가 불안한 거지, 할머니 마음이 조용해지면 할아버지 가만히 있어요. 싸움도 안 그러고. 그렇다고 잠든 것도 아니고 그래요. 그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자기 마음에 있다 그거거든요. 그래가지고 이 마음 하나를 딱 맑히고 밝히면 어느 나날이 좋은 시절 아닌 때가 없다. 이게 이제 부처님 가르침이에요. 그러니까 쓸데없는 거 아주 하찮은 것 때문에 목숨도 잃고 화를 당하고 이거 전부가 이렇거든요. 그래서 이 정신치료를 하는 정신의학회에 이제 참석해 보면,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자기의 감정 조절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런 얘기를 해요. 내가 행복할 수 있느냐, 불행할 수 있느냐는 건 내 감정을 내가 얼마나 조절할 수 있느냐, 자기감정 하나 조절 못 해서 어마어마한 근심 걱정을 당하는 게 너무 많아요. 어떤 사람이 자기 오빠가 결혼해서 며느리가 새로 들어왔는데, 자기 엄마가 이 새 며느리한테만 온갖 편의를 다 제공하고, 막 사랑을 베풀고, 편애를 막 계속해서 화가 나서 마음에 들지도 않고 잘 모르는 사람하고 덥석 결혼을 해서 가버렸어요. 가 가지고 3일 있으니까 말도 없이 시아버니가 가방 딱 들고 오더래. 근데 그때까지만 해도 시아버지 모셔야 된다는 말은 꿈에도 안 했대요. 앞이 캄캄하더래. 그냥. 그뿐 아니라 맨날 울면서 살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순전히 그 자기 오빠의 부인에 대한 미움 때문에 후닥닥 결정해서 평생을 괴롭게 산다 그러더라고. 그러니까 이게 감정 조절이 얼마나 중요하냐. 지나놓고 보면 화낼 일도 아니고, 걱정할 일도 아닌데, 쓸데없이 감정을 크게 일으켜 가지고 인생사를 길이길이 힘들게 한다 이거예요. 그럼 감정 조절이 잘 되나. 기도를 많이 하면 감정에 힘이 생겨요. 웬만한 건 뭐 끄떡도 안 해. 그래서 통도사에 가면 천자각이라고 하는 대중방이 있는데, 거기에 <백전영웅은 지불법(百戰英雄知佛法)이라> 이런 말이 있어요. 백전, 100번 이상 싸움터에 나가서 전쟁을 한 영웅은 부처님 법을 안다, 지불법이라 이런 말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요. 백전 영웅이 되면 어디서 전쟁터에서 승리를 했다 하더라도 별로 동요를 안 해요. 그 뭔 말 하냐. 머리만 끄떡끄떡. 또 어디에서 크게 패배를 해서 지금 힘들게 됐다고 하는 보고를 해도, 그냥 끄떡끄떡해요. 그게 백전 영웅이에요. 그러니까 이 감정을 좀 깊이 다스리면 그 즐겁고 괴로운 게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아무것도 아니야. 자기감정으로 즐겁고 자기감정으로 괴로운 거예요. 이거를 모르는 거예요. 우리 중생이. 좋고 나쁜 것은 자기 감정이다. 이러니까 입춘 법문이 재미가 슬슬 없어져 가지고 이제 졸라고 그래, 졸라고. 아니 이렇게 힘들게 얘기를 하는데 졸면 되겠어요. 그래서 자기 감정이라는 거, 이거 아주 핵심이에요. 자기 감정이다. 그래서 이걸 전문적인 용어로는 자기 문제라고 그래요. 내가 괴로워하고 내가 즐거워하는 건 내 문제예요. 내 문제. 내 문제. 그 좋은 게 근본적으로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게 근본적으로 나쁜 게 아니고, 내가 좋아할 뿐이고 내가 나빠할 뿐이다. 내 문제다. 아이고 이거 참. 그러니까 입춘날 기도 잘하면 이 내 문제가 해결이 돼요. 내 문제가. 그래서 항상 좋은 시절이지, 나쁜 시절은 나로부터 일어난 거기 때문에 문제가 전혀 안 된다. 眞佛如如佛 日日是好日 진불여여불 일일시호일 花果及寒暑 時時好時節 화과극한서 시시호시절 그래가지고 부처님들은 진불은 여여불(眞佛如如佛)이니, 참 부처님은 언제나 부처님이 여여하다. 똑같다. 낮에도 부처님이요. 밤에도 부처님이요. 눈을 떠도 부처님이요. 눈을 감아도 부처님이오. 가도 부처님, 와도 부처님, 이걸 어려운 말로 여여불이라고 그래요. 여여불. 같을 여자 두 번 써서. 참 부처는 여여불이다. 죽어도 부처님이요. 살아도 부처님이요. 여여불. 근데 이 여여불은 일일이 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 나날이 좋은 날이다. 진불은 여여불이니, 일일이 시호일이라, 맨날 좋은 날이다. 이 말이죠. 이게 마음의 평화가 오면 이렇게 돼요. 마음의 평화가 오면 세계의 평화를 이루어요. 근데 마음의 평화를 못 이루면, 이 환경에서 평화를 못 이루어. 이렇게 이제 간단한 건데 이걸 실천을 못해요. 내 마음이 평화가 이루어지면 모든 곳에서 평화가 이루어진다. 아주 너무너무 간단한 거예요. 근데 이거 소용없어요. 이 말 30분 동안 듣고 갔어도 딱 돌아서면 왜 그랬어, 이게 왜 그랬어? 이렇게 책임을 상대방에게 지우거든요. 그랬으면 어때요? 내 마음이 평화가 딱 이루어지면 누가 어떻게 했건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래가 진불은 여여불이니, 참 부처님은 항상 변함없는 부처님이니, 일일이 시호일이라, 나날이 좋은 날이다. 화과극한서(花果及寒暑)에 꽃이 피는 세월이나 열매가 맺는 세월이나, 추운 세월이나 더운 세월이나 시시호시절이라 때때로 좋은 시절이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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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신중기도] 1월 31일 정초신중기도 입재 법문
회주 계호스님 2025-01-31
2025 을사년 새해에는 여일하게! 부단하게! 꾸준하게! 정진하기 오늘은 좋은 날이죠. 저희들이 1년에 새해를 몇 번 쇤다고 그랬죠? 네 번. 동지 한 번, 음양에 양력설 한 번, 음력 설 한 번, 입춘 한 번. 절기가 두 번이에요. 동지하고 입춘이고, 음양은 양력 1월 1일, 음력 오늘 1일은 아닌데 초 3일이에요. 그래서 정월달에는 정월 초하루 차례 지내느라고 초 3일날 법문합니다. 다른 때는 큰 스님들이 오셔서 하시는데, 제가 오늘 이렇게 또 하게 됐습니다. 무슨 인연인지. 세상은 살아가면서요. 다 인연 도리에요. 선현 공덕 짓는단 말, 아까도 뭐 이렇게 화청 들어보니까, 뭐 염불공덕 무슨 공덕 하는데, 우리가 인과관계도 다 좋은 인연으로 만난 분들이에요. 제가 맨날 그러잖아요. 진관사 신도님들은 정예 부대라고. 아주 기도를 열심히 하니까 이 도량이 너무 맑아요. 그래서 우리는 사기에 보면은, “하늘은 두 번 기회를 주지 않고 좋은 시기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고 그랬어요. 기회가 왔을 때, 지금 을사년이라 하고, 사람들이 막 올해는 뭐 뭐 이런저런 얘기가 많은데, 그런 거 다 무시해 버리세요. 오로지 일념으로, 그래서 2025년 을사년 새해에는 여일하게. 여일하다는 한결같다는 소리에요. 어제 했다가 오늘 안 하고 오늘 했다가 모레 하고 이게 아니고, 꾸준히 여일하게 부단히도 끊임없이 딱딱딱 하는 게 아주 꾸준히 하는 거예요. 그래서 “꾸준하게 정진해 보자” 하는 걸 한번 세워보세요. 그러면 1년 내내 무탈하고 아무 일도 없어요. 일은 없는데 우리가 만드는 일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다른 거 없어요. 그냥 내가 아무리 세상의 주위 환경이 어떻더라도 오로지 일관되게. 다 같이 합장 한번 해봅시다. 합장. <항상 진리를 즐기고, 진리에 머무르고, 진리를 기뻐하며, 진리의 길을 알며, 진리를 비방하는 말을 입에 담지 말고, 훌륭하게 설해진 진리에 따라 생활하자.> 이렇게 생활하다 보면요. 생활하는 그 자체가 불심이에요. 우리가 심즉시법 뭐 그렇지만은, 보통 살아가는 그대로 평상심이 그대로 도예요. 특별히 도를 찾으려고 하면 도는 없는 거예요. 내 마음속에서 찾아야지, 밖에서 찾으려고 하지 말고. 오늘 이렇게 좋은 날 초 3일날, 초하룻날 눈 오니까 초 3일까지 이렇게 오잖아요. 초하룻날 비 오면은 한 달 내내 비 온다고 그러고, 그래서 눈이 오니까, 저 아랫녘에는 너무 많이 왔대요. 30cm, 50cm 왔는데 그래도 다행히 서울 진관사는 청정도량이래서 적당히 오다가 적당히 말고 그래요. 이게 우리 여러 신도님하고 스님네들의 가피라 생각해요. 가피는 느껴지는 자의 몫이에요.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고. 내가 느끼면 “아 이게 가피구나” 하면 그냥 가피예요.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월월시호월 (月月是好月) 년년시호년(年年是好年)’이 돼야 돼요.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무슨 날? 좋은 날. 그게 다 좋은 날이 돼야 돼요. 맞다 옳다 좋다가 다 긍정적인 생각이잖아요. 살아가면서 좋은 마음만 내면은 좋은 일만 생겨요. 자꾸 나쁜 생각하면 나쁜 일만 생기고. 괜히 지나가다가도 ‘아이고 엎어지겠다’ 하면 진짜 엎어져요. 그냥 엎어진다 생각하지 말고 ‘아, 앞길이 창창하고 이렇게 밝구나.’ ‘초 3일날 이렇게 눈이 와서 밝으니까, 이렇게 아주 정말 밝은 그 백색의 그 색깔, 순백의 색깔처럼 마음도 밝아진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진짜 1년 내내 무탈해요. 그래서 제가 그랬잖아요. 금강경오가해(함허(函虛) : 1376-1433)에 보면은 역천겁이불고 긍만세이장금(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이라. “천겁이 지나도 옛날이 아니고, 만 년이 지나도 항상 오늘이에요.” 그날 그대로예요. 그래서 수행은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는 거예요. 평생 수행하다가 가는 거예요. 그래서 날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면서 몸에 뭐가 필요하듯이? 음식이 필요하듯이 내 마음의 영혼도 항상 매 순간 수행이어야 돼요. 그러니까 수행하는 마음으로 일관하다 보면은 아무 장애는 없는 거예요. 그래서 2025년 을사년에는 푸른 뱀의 해라 그러죠. 사실은요. 뱀은 호불호가 있어요. 싫어하는 것도 있고 좋아하는 것도 있고. 제가 출가하러 왔을 때요. 그 밑에 생사탕이라고 써놨더라고. 그래서 저는 생사탕이 ‘아 사탕도 생게 있구나’ 했는데, 그게 뱀탕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뱀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 누군 줄 아세요? 땅꾼. 땅꾼이에요. 그렇듯이 저는 아 생사탕에서 ‘아 사탕도 생 게 있구나, 아 왜 돌사탕이 있고, 무슨 사탕이 있었잖아요. 입에 물고 십리사탕 그런 게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 게 있구나‘ 하는 걸 알았고. 근데요. 이렇게 뱀은요. 우리가 보면 수호신이라 그래요. 수호신이라 그래가지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고 또 불교 경전에 보면요. 관자재보살의 후신이라기도 해요. 그래서 인간들의 지혜를 갖다가 이렇게 밝혀줘가지고 등불을 밝혀주는 보살을 의미하기도 해요. 그래서 뱀은 관자재보살 관세음보살의 후신이라고도 하고, 또 뱀신이 되어 가지고 낮은 곳에서 스스로 광명을 터득하고 학문을 넓히는 그런 성품을 지녔다 하기도 그래요. 그래서 허물을 벗고 성장하는 모습은 이제 과거를 벗고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니까, 뱀의 영적인 그 상징적인 지혜의 회복력과 번영을 이루는 우리가 새해를 한번 맞이해 봅시다. 그러니까 좋은 점으로 보세요. 나쁜 점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뱀은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일관 앞으로만 가요. 그래서 우리가 쭉 정진만 하다 보면은 언젠가는 부처님이 될 날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꼭 긍정적인 생각 가지고 열심히 하면 돼요. 혹시 뱀 지팡이 이렇게 휘감긴 거 보신 적 있나 몰라요. 그림에 보면은 뱀으로 된 이렇게 휘감긴 지팡이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페오스예요. 아스클레페오스를 나타내는데 혹시 주신 아세요? 술의 신은 뭔지 모르죠. 바카스예요. 술의 신이 바카스예요. 그래서 박카스만 먹으면 술은 취하지 않지만은, 기운이 아주 정신이 바짝 돌잖아요. 흐리멍청할 때 제가 그랬잖아요. 옛날에 우리 스님이 기도할 때 새벽 4시부터 박카스를 돌려 가지고 우리를 잠을 깨게 만들게 했다고 그런 영험이 있는 게 바카스예요. 그렇듯이 아까 아스클레페오스라는 신이 의술의 신이에요. 그래서 이 뱀도 의술의 신도 된다라고 보면 돼요. 그 뱀에 대한 비유경도 보면요. 우리가 뱀의 독이 몸에 퍼지는 것을 약으로 다스리듯, 그 치미는 화를 갖다가 수행자는 그걸 잘 삭혀야 돼요.(<숫파니파타>) 우리가 한 번 성질을 내면요. 뱀보를 받는다 그래요. 일기진심 수사보(一起嗔心 受蛇報)라 그래요. 한 생각에 성질, 진자는 진자, 참 진자가 아니에요. 성낼 진자예요. 입 구자가 있으면 입이 벌럭벌럭하고 화가 나면은, 눈 목자가 있으면요. 눈이 불럭불럭해요. 화낼 때 눈을 부릅뜨는 사람 있죠. 화낼 때. 입이 또 툭 튀어나오는 사람 있죠. 화가 좀 나면. 그래서 눈 목자를 쓸 때도 있고, 입 구자도 쓸 수도 있는데 아무 거를 써도 다 성낼 진자예요. 한 번 성질 내면은 뱀보을 받으니까 성질을 내지 마세요. 되도록이면 안 내면 돼요. 근데 그것도 또 안 낼 수도 없고 낼 수도 있는데, 적당히만 내세요. 많이 하시면 안 돼요. 중간, 중도. 그래서 누가 “무슨 당이냐” 그래서 “우리는 법당”이라 그랬어. 이 당 저 당도 아닌 법당. 진관사 대웅전 법당 그러세요. 네 그렇게 살면 제일 좋아요. 남한테 이렇게 악한 말 할 필요도 없고, 말로써 좋은 말 하면 세상이 다 좋게 돌아가는 거예요. 지구는 둥그니까 네모나지는 않아요. 내가 뾰족하게 해서 개갈 피우는 건 본인한테 달린 거지, 세상은 둥글어요. 그러니까 둥글둥글하게 살면 좋아요. 그래서 우리가 <계초심학인문>에 보면요. 물을 잘 마시면은 물에 아무 것도 없어요. 물은 아무 것도 없는데, 독사가 물을 마시면 그게 뭐가 돼요? 독이 되죠. 그럼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되는 거예요. 마치 칼을 가지고 의사가 시술하면 사람을 살리는 게 되고, 강도가 칼을 날리면 사람을 해치는 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조건에 따라서 다른 거지, 물 자체는 나쁜 게 아니에요. 칼 자체도 나쁜 게 아니에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좋은 게 될 수 있고 해치는 게 될 수 있으니까, 우리가 이제 올해는 을사년이라 해가지고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뱀이 허물을 벗어가지고 나쁜 업장을 다 소멸시키듯이, 지혜를 생기게 해 준다 이런 생각만 하세요. 그래서 법문지 이제 한번 보세요. 그 뒤에 보면은 춘천 청평사의 뱀에 대한 얘기도 나오고, 또 그다음에 강원도 치악산 상원사의 얘기도 나와요. 오늘은 <구렁이로 나투신 관세음보살> 얘기를 지금 말씀드리려고 그래요. 여러분들한테 설화를. 금선대 암자설화인데요. 우리가 보통 <관세음보살보문품> 보면 여청관음행(汝聽觀音行) 있죠. 구족묘상존 게답무진의(具足妙相尊 偈答無盡意). 그래서 이거는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신 부처님께서 무진의 보살에게 게송으로 말씀하시되 뭐라 했냐면은, 그대들은 관세음보살의 행을 들어라 그랬죠. 여청관음행. 선응제방소(善應諸方所), 방소는 곳곳에 따라서 알맞게, 곳에 따라서 이런 뜻이에요. 홍서심여해 역겁부사의(弘誓深如海 歷劫不思議)라. 시다천억불하니 발대청정원(侍多千億佛發大清净願)하니라. 그대들은 관세음보살의 행을 들으라. 어느 곳에든지 알맞게 잘 응하느니라. 크나큰 서원은 바다와 같이 깊어서 헤아릴 수 없는 여러 겁 동안을 천억불 부처님을 잘 모셔 받들며 청정한 큰 서원을 세웠느니라. 관세음보살이 그렇게 서원을 세운 거예요. 그래서 관세음보살은 보통 32응신이라 그러죠. 32응신뿐만 아니라 천수천안이에요. 천의 손과 천의 눈이죠. 천의 손이라는 건 자비를 지칭하고, 천의 눈이라는 건 지혜를 나타내요. 손은 실천이고 눈은 지혜잖아요. 그러니까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은 천 개의 손을 가지고 중생을 다 보살펴가지고 누가 지금 아프고 있는가, 누가 지금 괴로워하는가, 누가 학교 가고자 하는가, 누가 대학교 들어가자 하는가 다 살펴보세요. 그래서 원하는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발원만 하면 다 이루게 해주는 거예요. 적당히 넘어가니까 안 들어주시지. 적당히 하면 안 돼요. 아주 철저하게 하면은 다 들어주셔요. 그래서 관세음보살은 32응신이라고 보통 하는데, 32응신뿐만 아니라 천수천안이 되는 그런 많은 몸을 다 나투어 준다는 걸 꼭 아셔야 돼요. 그래서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정말 한번 외워보세요. 우리가 3대 경전이 있어요. 금강경, 원각경, 관음경 그래요. 관음경은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관음경이라 그래요. 그 3대 경전이 있는데, 대한불교 조계종에서는 금강경을 갖다가 소의경전으로 여기잖아요. 관음경도 그래요. 그러니까 관세음보살 아까 그 내용을 일본 사람들은요. 그걸 부채에다 써가지고 다 선물을 준다고 그래요. 우리도 좋은 구절이 있으면 그걸 잘 새겨가지고 나눠주면 좋겠어요. 그래 오늘도 여러분들한테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읽고서 가피 입은 사람의 내용을 지금 말씀드릴게요. 어떤 사람이냐면 평안북도가 어디 있죠? 이북에 있어요. 금강산의 신계산은 금강산에 있지만은, 여기 금선대라는 회천 땅에 금선대라는 암자가 있었어요. 거기에 지극정성으로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독송하는 거사가 있었어요. 우리가 보면 보살이 기도도 잘할 것 같지만은, 거사도 엄청 잘해요. 신심만 내면 거사는 더 열심히 하잖아요. 기운이 좋아가지고. 그래 이 거사 이름이 박춘보예요. 박춘보. 그냥 이 사람은 보살이 아니고 거사예요. 박춘보라는 불자가 있었는데, 설화가 되려니까 묘하게 꿩사냥 하는 걸 나타냈어요. 그냥 보문품만 했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꿩사냥을 하는데, 매가 꿩을 잡죠. 여기 대웅전 뒤에 봉이 무슨 봉인지 아세요? 매봉이에요. 매 응자(鷹峰)예요. 매봉이기 때문에 대웅전 앞에 홍제루에서 보면요, 좌철룡 우백호가 쫙 펼쳐져 있잖아. 그리고 옛날에 춘성 노스님이 뭐라고 하셨냐면은요. 70년대에 그 큰스님이에요. 우리 법당 상량식을 할 때 법문하셨던 큰스님이셔요. 근래 도인 스님이신데, 그 스님이 여기는 유봉이 엄마 가슴같이 생겨서 기도만 하면 성취된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진관사 기도 도량이잖아요. 천년 기도 도량, 천일기도가 안 끊어진다 그랬잖아요. 그래서 기도만 열심히 하면 성취되는 봉이 요 응봉이에요. 매봉이에요. 그래서 저 몽골 쪽 등에서는 사람이 장갑 끼고 매를 부르잖아요. 근데 거기에 시치미가 있어요. 이름표가 있어요. 이름표를 시치미라 그래요. ’시치미 떼다‘ 소리 들어봤지요. 시치미 떼다는 그 연역을 말씀드릴게요. 김가네 집, 이제 이렇게 우리나라 성을 한번 붙여봅시다. 외국 성은 알 필요도 없고. 예를 들면은 김가네 이가네 박가네 성이 있었는데, 박가네 집에서 그 매를 1, 2, 3을 써놨어요. 근데 이씨가 저 박가네 집의 매가 엄청 꿩을 잘 잡거든. 그걸 하나 살짝 빼가지고 이름표 다른 걸 갖다가 싹 바꿨어요. 그게 시치미 떼는 거예요. 그냥 자기네 집으로 이가네 3번 이렇게 딱 적어 놓는 거예요. 그게 시치미 떼는 거예요. 또 얘기해 줄게요. 어처구니없다 아세요? 맷돌 돌릴 때 그 손잡이가 어처구니에요. 맷돌 돌릴 때 쑥 빠지면 ‘아이고 어처구니없구나.’ 그게 어처구니예요. 그래서 매를 길들여가지고 꿩사냥을 즐겼는데, 어느 날 이제 보니까 절벽 위에 나뭇가지에 새끼를 치고 있는 매를 보았죠. 그래서 매를 발견해 가지고는 그걸 잡아가지고 집에 가서 키워 가지고 이제 꿩을 더 잡으려고 생각했어요. 마음을 잘 못 먹었어요? 잘 먹었어요? 잘 못 먹은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이게 사람이요, 좋은 성격 같으면 승승장구할 텐데 이게 기회를 또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나무를 오르다 다리가 실족됐죠. 근데 이게 떨어져 가지고 죽었으면 끝나는 건데 안 죽었어요. 딱 떨어지는 순간에, 마음속으로 관세음보살 보문품 해왔으니까, 나뭇가지에 살짝 걸쳐지니까 ‘내가 할 거는 관세음보살 명호밖에 없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관세음보살 좀 불러보자.’ 관세음보살 불러가면서 보문품도 계속 했어요. 그렇게 외우다 보니까 갑자기 발 밑에서 뭐가 나타났어요? 구렁이. 요새는요, 목에 휘감는 구렁이도 있더라고. 아나콘단가 뭔가 해가지고, 안 무는 그런 것도 있다는데. 옛날에는 그런 걸 떠나서 구렁이가 이렇게 쫙 올라오라니까 무서움을 느꼈어요. 안 느꼈겠어요? 깜짝 놀랐겠죠. ‘저게 나를 잡아먹으면 어떻게 하나.’ 깜짝 놀라 가지고 자기도 살아야 되겠다 싶어서, 사냥꾼은요. 여러 가지 도구를 다 가지고 다녀요. 이것도 가지고 다니고 저것도 다니고 칼을 또 가지고 다녔어요. 그래가지고 이 칼을 갖다가 살아야 되니까 구렁이에다 딱 꽂고는, 구렁이를 잡아야 되는데 구렁이를 잡지 못하고 꽂은 칼을 잡고 올라간 거예요. 올라가 가지고 구렁이가 이 박춘보를 깨물어야 되는데 깨물지 않고 그냥 스르르르 올라가 가지고 박춘보를 살려준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절벽에 올라가서 목숨을 건졌어요. 보문품 독송한 관세음보살 가피예요. 그래서 자기도 너무 아주 아찔하지만은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많이 독송해서 내가 살았구나’ 하고 안도했어요. 뒷날 박춘보가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읽다가, <여청관음행 선응제방소 홍서심여해 역겁부사의>에서 <홍서심여해> 딱 그 자리에 칼이 딱 꽂혀있으니 기가 막히죠. ‘야 이건 보통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정말 거기까지 외워가지고 그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홍서심여해까지만 외웠어.’ 그 뒤에는 생각도 못했어요. 역겁부사의란 말은 외우지도 못하고 계속 홍서심여해 홍서심여해 홍서심여해 하다가 가물가물하다가 살아났는데, 홍서심여해에 칼이 꽂혀 있으니까 깜짝 놀란 거예요. 자기도. 그때부터 사냥을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안 해야지 정상이지. 했으면 그건 정상이 아니에요. 마음을 바꾸어서,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도 정말 내가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으로 살았으니까 사냥은 하지 말아야 되겠다.’ 단명부 받는 이유가요. 살생을 많이 하면 단명부 받는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앞으론 살생하지 말고 열심히 기도해서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더 열심히 해가지고 정말 가피를 얻어가지고 승승장구해가지고 진불자가 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살아가면서 계속 남의 흉도 볼 것도 아니고, 계속 자기 기도만 열심히 하면 다 이루어지는 거예요. 안 해서 안 될지언정 해서 안 되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가 단불위야언정 비불능야니라(但不爲也 非不能也). 다만 하지 아니함이언정 불가능이라는, 능히 못하는 건 아니다 이 얘기예요. 다 심문에, 초심에 다 나오는 얘기들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공부하다 보면은 내가 남한테 잘하면은 그 잘하는 힘이 끝까지 다 가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지금 잘 되는 건 내 조상님들에게 적선을 다 쌓았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잘 되는 거예요. 안 되는 건 너무 살생부를 많이 한다든지, 남을 많이 때린다든지, 남에게 욕을 한다든지 이러면 좀 많이 안 되는 거예요. 십악업만 안 하면 바꾸면 뭐예요? 십악업 바꾸면 뭐예요? 맨날 살생중죄 금일참회, 투도중죄 금일참회 천수경 외우죠. 천수경만 외워도 다 부처님 되는 거예요. 내가 하는 대로 안 하고 그냥 지나치다 보니까 뭐가 안 되는 거지, 한다라고 생각하면 다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뭐든지 초순에 오셔가지고 기도하면서, 그 기도가 꾸준히 1년 내내, 아까 그랬잖아요. 여일하게 부단하게 그다음에 뭐예요? 꾸준하게 정진하기. 그런 과제를 세워가지고 공부하다 보면요, 다 되는 거예요. 안 해서 그렇지. 아까 뭐라 그랬어요? 우리가 진리대로 즐기고, 진리대로 머무르고 그랬죠. 부처님 말씀대로 행하고, 부처님 말씀대로 따라서 한다는 게 다 그게 진리대로 행한다는 거예요. 단의금구성언(但依金口聖言)이언정, 다만 부처님의 말씀을 의지할지언정, 다른 말로서 용렬한 무리의 막된 말로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게 다 초심에 다 나와요. 절집에 입문해가지고 스님네들의 기본 자세가 들어오면은 그런 게 다 내용이 들어오는 거예요. 안 익혀서 그렇지. 그걸 명심 안 하고 귀로 흘려보내서 그렇지, 하다 보면은 정말 다 그대로 하면 다 잘 되는 거예요. 그래서 법문 자주 들었다 해서 ‘아 저거 내가 아는 법문이다’ 그런 생각도 내지 마시고, 어렵다는 생각도 내지 마시고, 그래도 물 흐르듯이 순리대로 따라가면 되는 거예요. 세상이 지금 막 어지럽다 해도 그 또한 흘러가는 거예요. 왜냐하면 흐름 따라서. 그러다 보면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길이 있고, 오르막길이 있으면 또 내리막길이 있는 거예요. 좋은 일 있으면 나쁜 일 있고, 나쁜 일 있으면 좋은 일 있는데, 나쁜 일은 되도록 안 하면 계속 좋은 일이 있고, 꾸준히 나가면 그 사람들은 업장이 다 소멸된 거예요. 아직도 업이 남아 있으면은 공부하는 데 좀 어려워요. 그렇게 해서 우리가 참회하잖아요. 참회 원력 네 가지를 다 갖추어야 돼요. 수지독송하는 것도 신해행증(信解行證)도 마찬가지예요. 믿는 마음이 있어야 되고, 수행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고, 증명 이거 실천하는 게 있어야 되는 거예요. 살아가면서 탓만 하지 마시고 좋은 일만 계속 하다 보면은 승승장구 되죠. 기도는 가피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다 같이, 가피는 느끼는 자의 몫이고, 행복은 음미하는 자의 몫이고,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다. 미래에 잘 살려면 준비해야 되겠죠. 언제? 현재 지금. 세 가지 금이 있다 했잖아요. 황금, 소금, 지금. 그중에서도 지금이 제일 중요한 거예요. 내가 만나는 사람 중에서 제일 좋은 사람 지금 만나는 사람이에요. 지금 만나는 여러분들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분들이에요. 살아가는데 지금 하는 거 지금 공부하는 게 최고 좋은 일이고. 지금 수행하고 기도하는 게 최고 좋은 일이에요. 그 생각 가지고 꾸준히 가셔야 돼요. 제가 좀 법문 좀 더 하려 하다가 12시에 눈이 온다니까 빨리 마치라고 자꾸 그러는 것 같아서 잠깐만 이렇게 할게요. 세상에 소금물은 바다의 물을 딱 닦아보면 “짜다.” 그것만 하면 되지 바가지로 퍼 먹어보자 할 거 없어요. 딱 찍어보면 짜다 하면 끝나는 거예요. 우리가 기도도 열심히 하면 된다. 이걸 확신을 가지고 하면은 다 이루어지는 거예요. <다 같이 열심히 부단히 여일하게 끊임없이 정진하자>에요. 올해는 아시겠죠? 좋은 일만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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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재일] 1월 7일 성도재일 법문
법해스님 2025-01-07
불기 2568년(음력) 성도재일을 맞이했습니다. 저희가 방금 묘음합창단에서 부처님 같이 살자고 정진하자는 그런 노래가 저희에게 큰 정진의 마음을 다시 한번 더 발심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 오늘 성도를 하셨는데, 불교에서는 4대 명절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제 날짜별로 보면은 부처님 출가하신 날이 2월 8일이 고, 2월 15일이 열반하신 날이고, 4월 8일이 부처님 탄신일이고, 12월 8일이 성도절입니다. 팔자가 좀 많죠. 2월달 8일. 4월 8일. 12월 8일. 그리고 열반하신 날이 보름날입니다. 2월 15일. 그래서 우리가 절에서 이 4대 명절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데, 보통 불자는 3개는 잘 몰라요. 그냥 부처님 오신 날만, 부처님 생신날만 기억해요. 그죠? 그러는데 지금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은 진정한 불자님이신 것 같아요. 오늘 부처님께서 새벽 별을 보시고 무명을 밝히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부처님의 그런 가르침을 이제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고 불자라고 그럽니다. 부처님의 아들이다. 부처님의 아들이 그러면 어떻게 부처님을 닮아가고 그 깨달음을 성취해야 되느냐. 그거는 선·교·율(禪·敎·律).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가 말할 때는 <불교 이러면 마음> 이럽니다. 그죠? 불교 마음인데 어떤 마음이냐. 불심무구(佛心無垢), 부처님 마음에는 때가 없어요. 그 때가 없으려면 그걸 어떻게 해야 되느냐. 참선, 부처님 마음, 닦아야 되는 거예요. 닦아야 돼. 그래서 터 닦을 선자입니다. 닦으려면 어떻게 닦아야 되느냐 하면,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돼요. 내가 나를 바라봐야 되는데, 근데 바라보는데 어느 것은 좋고 어느 것은 싫다라는 또 약간의 상식을 가져야 돼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여러분들이 기본 교리, 또 부처님의 경전 이거를 다 익혀야 돼요. 그래서 그거를 이해하고, 그다음째는 뭐냐 하면, 율, 아까 터 닦을 선자, 선, 교, 부처님의 가르침, 그다음째 부처님의 율, 율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부처님을 닮아갈 수 있는 여러 가지 행위들을 율이라 그래요. 불자는 불자다운 그런 행위들이 또 있죠. 뭐 보살계를 받기도 하고, 오계, 십계를 받기도 하고, 매년 그렇게 합니다. 그거를 내가 지키는 거. 이거를 우리는 삼성이라고 그래요, 삼교, 선·교·율 이거를 꼭 지켜야 됩니다. 이제 그러면 어떻게 해서 내 마음을 닦고, 또 부처님 경전, 기본소양을 배우느냐. 우리가 이제 방정식을 하려면 1, 2, 3, 4 숫자부터 배우듯이 그렇게 배워가려면은, 처음에는 마음 챙김을 해야 합니다. 어제 제가 저녁에 정진을 하면서 진짜 유치원 마음 챙김을 했어요. <눈을, 머리를 뭐 이완을 하십시오. 눈을 이완하십시오.> 이렇게 리드를 해드렸는데, 진관사는 올 한 해를 그렇게 명상을 모든 법회에서, 기도에서, 스님들하고 같이 논의해서 하려 합니다. 내 마음을, 내가 어떤 마음인지를 보는 연습, 그걸 마음 챙김이라고 그러죠. 그거는 뭐냐 하면, 내가 이걸 하면 나쁘고 이걸 하면 좋다,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어야지만 거기에서 벗어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윤리적인 그런 삶, 악한 마음을 가지면 내가 괴로운 거예요. 성질을 내면 내가 힘들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악한 마음에서 벗어나고 어떻게 한다? 중선봉행(衆善奉行)이라 그러죠. 모든 역대 이래 부처님들이 칠불통계(七佛通戒)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악은 짓지 말고 선을 행하라. 그래야지만 본인이 편안하다. 이렇게 얘기를 해서 그거를 내가 이제 그 힘을 길러야 되는데, 그 힘을 기르는 거는 자기 마음을 보는 겁니다. 이걸 우리가 위빠사나 사마타라고도 얘기를 하고, 지관(止觀)이라고도 얘기를 합니다. 이렇게 내가 삼매에 들고. 내가 화가 났는데 그러면 멈추는 걸 먼저 해야 되겠어요, 보는 걸 먼저 해야 되겠어요? 보는 걸 먼저 해야 돼요. ‘내가 지금 화가 나고 있구나’를 그게 금방 보여지지 않는데, 화 속에 빠져 있죠? 화 속에 빠져 있는 거를 내가 늘 부처님 가르침을 하면서 지식으로 배워서 그거를 실천하려면, 일단 ‘내가 화가 나 있구나’를 보는 순간 딱 멈춰야 돼요. 그게 아주 유치원 단계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거 <뜨거운 걸 만지면 손이 덴다> 이런 지식은 알잖아요. 화가 나면 나만 괴롭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결국 자극과 반응을 하면서 살아요. 내가 눈을 놓는 순간 저 사람 꼴 보기 싫은 사람에게서 눈을 돌리고, 또 귀에 들리는 소리가 어때요? “법해 스님 참 훌륭하셔. 그 스님 조그마한데 마음은 커.” 이런 소리를 많이 듣거든요. 그런데 어떤 스님은 “그 조그맣게 못생긴 것이 말이야.” 이렇게 하면 진실은 불편해요. 그래서 제가 ‘그래 뭐 그렇지’ 하면서 제가 얼른 마음에, ‘맞아. 나 조그마하고 못생겼어.’ 이렇게 생각을 하면, 내가 내 마음을 봤어요. 그러면 화가 안 나고 거기서 딱 스톱하게 돼요. 그래서 오늘 부처님 성도 하신 날을 기해서, 원래 이제 양력은 2025년입니다. 2025년부터는 마음 챙김을 하자. 제가 모든 스님들하고 같이 법회를 할 때도, 또 제사를 지낼 때도, 행사를 할 때도, 전 프로그램에 여러분들과 같이 마음 챙김을 할 수 있게, 또 유튜브에. 여러분들 마음 챙김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니까요. 아주 엄청 선지식처럼 “나 훌륭한 엄마야, 엄마가 돼야지, 현명한 아내가 돼야지” 하는데 딱 경계가 딱 나타나면은, 애가 뭐 게임을 한다든지, 뭐 남편이 다른 여자랑 뭐 어떻게 했다고 그러면 확 그냥 얼굴이 돋아나는 거예요. 그죠. 남편을 바꿀 수도 없고, 애를 버릴 수도 없는데. 그러면 그때 ‘내가 감정에 내가 쫓아가는구나’ 경계의 심 부동화예요. 어떤 경계에 가도 내 마음이 여여해야 되는데 그게 안 돼요. 연습이 돼야 돼요. 그래서 불교는 마음의 종교이기도 하고, 불교는 실천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불교를 수행의 종교다. 매년 또 공부는 엄청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불교대학도 들고, 뭐 경전반도 들고 공부만 또, 큰 스님은 오만데 다 쫓아다니면서 법문은 엄청 들어요. 그거는 뭐냐 하면, 메뉴표을 이렇게 들고 다녀. 그럼 빨리 내가 선택해서 내가 먹어야지. 먹지 않고 메뉴표만 들고 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불교는 실천의 종교이고. 또 와도 여기 왔는데도 “아 저기 다라니 천독 기도했으니까 저 법당에 가서 좀 절하고 오세요.” 그러면 ‘아이고, 다라니 천독을 하는데 내가 어서 가서 절을 해야지’ 이게 이제 믿음이거든요. 믿음. ‘부처님 이 다라니 기도를 하니까 지혜와 자비가 충만한데 내가 뭐 그거 다 못했더라도 얼른 가 가지고 그 공덕을 내가 받아야지’ 하는 그 믿음이 있어야 되는데, 안 가려 그래요. “난 처음서부터 안 했는데요, 뭐.” 이렇게 하면 그거는 뭐냐 하면 숟가락이 국 맛을 몰라요. 숟가락이 국 속에 박혀 있는데도 이 국 맛을 몰라. 숟가락 같은 존재라니까요. 그런 존재예요. 어쨌건 지금 내가 부처님, 스님들이 봤을 때는 스님들께 귀의하고 봉사가 있다면 그냥 솔선수범해서 봉사를 하고, 마음 챙김 할 일이 있으면 마음 챙김을 하고, 그래서 시간을 쪼개고 쪼개고 그렇게 쓸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에요. 그래서 이제 마음 챙김을 진관사에서 프로그램으로 할 거고, 그다음 이제 진관사 신도님, 마음의 정원 신도님들은 내 마음을 부처님 마음으로 그렇게 하자고 올해 구호를 했습니다. 내 마음 부처님 마음. 그리고 극락정원 진관사가 되자고 그렇게 우리가 약속을 했습니다. 내 마음이 부처님 마음이 되고, 진관사가 극락 정원이. 정원을 가꾸는 데 있어서는 내 마음이 이제 경계에 와닿았는데, 그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야 돼요. 여백. 그걸 도량이라 그러는데, 그거는 내가 계속 하루에 10분씩, 우리 스님들이 유튜브에 넣어주라고 제가 얘기를 하겠습니다. 넣어주면 그걸 딱 틀어가지고, 그 시간에 맞춰 가지고 향을 하나 딱 펴놓고는, 향은 가까이 피면 안 돼요, 향은 좀 멀리 갖다 놓고는 은은하게 향기가 나게 해놓고, -약간 방문을 조금 열어놔야 돼요. 열어놓고는 그게 이 바람이 솔솔 들어와야 돼요. 바람은 에너지를 전달하거든요. 에너지를. 이 공기를 소통하고. 근데 에너지, 바람이 없으면 싹이 안 나요. 이 꽃도 못 피고. 에너지 전달력이 없으면. 그래서 조금 열어놓고는- 이제 자기 기도를 하는 거야.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이렇게 해서 개법장진언, 반야심경이라도 한 편 읽어야 돼. -그다음에는 다 제가 죽비 선물을 다 드린 것 같은데 거의 받았을 거예요. 진관사 신도님들은. 진관사 신도 정도 되면은 자기 정진하는 거기에 죽비를 하나 딱 걸어놓고, 죽비를 딱. 죽비는 우주가 열리고 닫히는 거를 이렇게 표현해 주는 거거든요. 내 마음이 열고 닫는 거를.- 그래서 딱 앉아가지고 이제 마음챙김을 해요. 처음에는 안 되면 유튜브를 딱 틀어 놓고 이제 리드해 주는 대로 마음을 따라가신다면, 그게 한 3년 정도 해야 이제 내 마음을 볼 줄 알아요. ‘나 지금 화내고 있구나. 내가 지금 뭐를 하고 있구나’라는 걸 여러분들이 보게 돼요. 보면 멈출 수 있어요.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요해져요. 거기에서 이제 몸으로 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진관사는 수륙재 도량이기 때문에 십바라밀정진을 하는 거에요. 십바라밀. 십바라밀은 육바라밀에다가, 육바라밀 보시, 항상 내가 마음으로도 보시하고, 물질로도 보시하고, 몸으로도 보시하고 이렇게 계속 다른 사람에 대한 그런 배려심을 가지는 그 사람은요, 계속 마음이 커져요. 그리고 자기 업장을 소멸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모든 종교가 <베풀어라>고 나와요. 모든 종교가 목적은 뭐예요? 행복과 편안을 기원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요. 기독교도 다 베풀어라. 천주교도 다 베풀어라 그래요. 오른손이 하는 걸 왼손이 모르게 해라. 베풀되 진짜 베푸는 생각 없이 진심으로 그렇게 하는 그게 보시입니다. 보시도 여러 종류가 있죠. 그죠? 그리고 두 번째 보시, 지계, 조금 내가 괴로울 것은 안 하는 거예요. 안 해야 돼. 거짓말을 하지 마라 했으면 안 하고, 술을 먹지 말라 하면 술을 먹지 말아야 돼요. 그런데 술을 먹지. 술 안 먹고 어떻게 사느냐고 요즘 사람들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알고 먹으면 한 번이라도 참회를 합니다. 모르고 먹으면 그거는 알고 먹는 거 하고 모르고 먹는 거는 부처님이 어떻게 표현을 하셨냐면, 여기 김 안 나는 솥이 있는데 김이 안 나니까 모르고 덥석 만지면 손이 다 덴다 그랬어요. 근데 이 이 솥이 그냥 지금 지글지글 끓고 있다 하면 슬쩍 만지잖아. 그죠. 그렇게 되기 때문에 자기가 스님이 술을 먹지 말라는데 술은 진짜 나쁜 거예요. 우리는 불교는 지혜를 추구하는 종교인데. 그러는데 술을 가까이하는 거는 이건 완전 번뇌 망상을 가지게 하기 때문에. 육바라밀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 참을 때는 참아야 돼요. 일인이 장락(一忍長樂)이라 그랬어요. 지금 못 참아 가지고 지금 나라가 어떻게 됐죠? 그런 거예요. 지금은 아주 우리 큰 선지식이라니까요. 그거예요. 인욕. 한 번 화를 일으키면 100가지 장애가 열린다 그랬어요. 복을 내가 100개를 사놨는데 화를 한 번 내니까 마이너스 900을 쓰는 거예요. 100은 다 무너지고. 그거는 마이너스 900까지 써먹어버리게 되는 거에요. 한 번 화를 내면 그만큼 나쁜 거다 그랬어요. 그리고 화를 안 내려면은 어떻게 해야 되냐면, 마음 챙김을 해서 자기 그 여백, 자극과 반응 사이에 내가 있어요. 그러는데 자극과 반응 사이에 내가 그 공간이 없으면 도량이 좁고 여유가 없으면, 그 깡패들이 그러잖아요. 눈만 잘못 떠도 막 그냥 폭력을 가하려고 그러고, 왜 그러냐 그러고 그러잖아요. 그러는데 어떤 말을 해도 “법해스님 못 생겼어요. 키도 조그마하고 말도 잘 못하면서 왜 법문에” 이러면 ‘그래 맞아 나 뭐 그래’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거는 내가 결정하고 내가 하게 돼 있어요. 그런데 그거는 내 공간, 내 스페이스가 막 클 때 그게 다 내 울타리에 들어와서 뭐라 그러냐면, 우리 회주 스님이 원래 가화만사성, 가정이 평안하려면 다 맞다, 다 좋다, 다 옳다, 다 맛있다, -여러분들 카드 있을 거예요. 아마 그거 지금 사무실에서 나눠주고 있는데 신년에 나눠줄 건가, 신도님들은.- 그런 거예요. 그만큼 여유가 생기게 돼 있어요. 우리가 보통 가진 자의 여유라고 그러죠. 아니 마음도요. 자기가 여백을 많이 가진, 여백은 그냥 되는 게 아니야. 마음이 정성을 기울이고, 많은 사람들께 공양을 하고, 또 내가 그만큼 열심히 실천을 해야 그 여백이 생기는 거에요. 불교는 공짜의 종교가 아니에요. 신이 어떻게 해준다고 되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러면 신이 해결해 주는 종교로 가야 돼. 불교는 신의 종교가 아닙니다. 나의 종교입니다. 나. 나를 가장 극대화하고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종교가 이 불교라는 거. 그래서 보시·지계·인욕·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지(智)·방편(方便)·원(願), 원이 있어야 돼. 또 자기가 원력이 있어야 가피가 있거든요. “나는 참 모든 중생을 제도하리. 나는 부처를 꼭 이루리.” 그래서 그렇게 하면은 방편, 원, 역(力), 그거를 밀고 나가는 힘이 생겨요. 생기면 그다음에는 뭐냐. 모든 세상의 중생들을 제도하리라는 그런 제도 중생의 그런 지혜를 체득하게 돼요. 그래서 지가 두 번 나오는데 육바라밀의 지, 그거는 내가 모든 거에서 해탈하는 지예요. 해탈, 내 자신이 해탈하지만, 마지막에 십바라밀의 지는 뭐냐 하면은 일체 중생을 내가 제도할 수 있는 그런 힘이 생기고 그런 힘을 체득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진관사가 수륙재도량이고 여기가 서방안락국, 서쪽을 대표하는 그런 사찰이고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숟가락이 되면 안 돼요. 알았죠? 여기 진관사 다니는데 그냥 와가지고 뭐 염불 몇 번 하고 그냥 쓱 가는 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그래서 내가 걸어갈 때도 염불을 하고, 전철 타고 올 때도 염불을 하고, 어제 제가 이제 걷기 명상을 하는데, 걸을 때도 그냥 걷는 사람들 이게 눈에 다 보여요. 진짜 마음 챙김, 우리 진관사 마음의 정원 불자님들은 걸을 때도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하면은 그 위에 연꽃이 뽕뽕 올라오는 것 같아요. 그렇게 그거를 습관을 들여. 그런데 이제 그 습관을 들이려면 우리가 마음을 오만데 다 바깥에 보는 것만 보고, 내가 그것도 바른 판단 또 바로 보고 바로 알면 되는데 바로 안 보고, 전도돼서 인식해요. 왜냐하면 내가 본 대로, 내가 아는 대로, 내 지식으로 판단을 하기 때문에. 그러는데 산은 산이고 물을 바로 봤을 때는 그게 삼매, 아까 딱 거쳐진다 그랬잖아요. 사마타가 돼요. 삼매가 된 한마음 불교는 마음의 종교요, 불교는 실천의 종교, 수행의 종교인데 그다음에는 불교는 또 뭐냐. 뭐겠어요? 불교는 자기가 부처님이라는 걸 아는 지혜의 종교예요. 지혜. 그래서 하나가 돼야 돼. 이 지혜라는 것은 하나 속에서 지혜가 나오지, 절대로 두 마음, 세 마음, 네 마음, 다섯 마음, 이렇게 해가지고는 절대로 안 돼요. 특히 보살님들은. 왜냐하면 여자는 뭐 엄청 번뇌가 많거든요. 왜냐하면 구조적으로 아이도 키워야 되고 뭐 남편도 받들어야 되고. 이래가지고는 구조적으로 여러 가지를 할 수가 있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은 잡된 생각이 너무 많다는 거, 근기가 남자들보다 조금 약하대요, 이렇게 집중하는 힘은. 그러는데 그것도 연습하면 돼요. 여자, 남자가 나중에는 정진을 하면 없어져요. 그래서 불교는 하나가 되는 종교, 지혜를 갈구하는 종교다. 이거를 여러분들이 분명히 아시면 오늘 이 성도재일을 맞이하는 그런 의미가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간이 되는 대로 염불하고, 정진하고, 또 봉사하고, 계속 유튜브 너무 많이 보지 마세요. 눈만 나빠져요. 유튜브에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하는 것 같아, 내가 요즘 사람들 보니까요. 그거 다 필요 없어요. 그래서 본인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하려면 단순해야 돼요. 단순하게. 열심히 부처님처럼 삽시다.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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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독다라니기도]1월 5일 새해 용맹정진 천독다라니기도 회향 법문
가섭스님 2025-01-05
마하반야바라밀. 다시 따라하세요. 마하반야바라밀. 무량공덕 생명. 부처님 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어쩜 이렇게 호흡이 딱딱 맞을까? 네. 올해도 이렇게 천독을 모시고 회향을 하게 된 여러분들에게 찬탄의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매년 그렇지만 올해의 천독은 작년에 했던 천독하고 또 다른 느낌으로 우리들에게 와닿고, 또 어느 때보다도 우리에게, 우리 구성원들에게 내지는 우리 공동체에 큰 위로가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다라니 한독 한독이 상처받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됐을 것이고, 또 지금의 여러 가지 어려움과 위기, 그리고 곤고함을 이겨낼 수 있는 큰 힘이 됐을 거다 생각을 하게 됩니다. 늘 쉬운 적은 없지만, 사바세계가 늘 쉬운 적은 없어요. 지금이 가장 어려울 때처럼 느껴지죠. 그래서 사바세계를 다른 말로 하면 감인(堪忍)세계라고 한다는 거예요. 감인. 감자도 참는다는 뜻이고, 인자도 참는다는 뜻이니까, 참고 참아야 되는 세계다. 세계는 삼세와 18계의 준말이 세계예요. 삼세는 뭐예요? 과거, 현재, 미래. 18계(十八界)는 뭐예요? 육식(六識)·육근(六根)·육경(六境). 육근·육경·육식. 이걸 해가지고, 이제 아함경이나 니까야에 보면은 부처님이 이 세계를 어떻게 규정하시냐면, <이 세계의 모든 것이 12처에 다 국한돼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거든요. 12처(十二處). 그게 뭐냐 하면은 육근과 육경이에요. 그리고 나중에 법문 마지막 자리에, 이 세계에 더 넓게 봤을 때, 모든 것이 이 18계에 다 들어가 있다 그래요. 그게 뭐냐면은 육근과 육경과 육식이에요. 이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거든요. 우리가 느끼는 거죠. 그래서 하나는, 삼세라고 하는 거는 시간적인 개념인 거고, 이 18계라고 하는 거는, 육근·육경·육식은 이거는 공간적 개념이 존재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이제 이 감인의 세계라고 하는 것이 시간과 공간의 어우러짐인데,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리가 참고 또 참아야 뭔가 성취되고 이루어지는 그런 세계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다라니를 해도 마찬가지잖아요. 다라니 단 한독을 하더라도 내가 참고 이겨내지 않으면 이룰 수가 없잖아요. 어렸을 때 다라니를 외울 때는, 그때는 이제 어른들 하는 거 이제 따라서 하다 보니까, 더 이제 부정확하지만, 그때도 그게 뭔가 그 의무감에 했는데, 나중에 출가하고 나서 다라니기도 하는 데 있어서 그 한독 한독이 내가 참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는 그런 힘들을 내가 갖게 되더라고요. 다라니를 함으로 인해가지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참고 참아야 되는 그런 세계에 있는데, 특히 요즘에는 그 참고 참음을 통해서, 더해서 우리가 조금 우리 각자의 구성원들에게 작은 위로들이 필요하지 않나 그런 생각들을 해보게 돼서 말씀을 드립니다. 천수경을 쭉 이제 독송하다 보면은, 처음에 이제 정구업진언을 한 다음에 그다음에 나오는 게 뭐예요?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五方內外安慰諸神眞言) 이렇게 돼 있죠. 오방내외라고 하는 거는 잘 아시겠지만 동서남북중앙이고, 또 내외라고 하는 건 안과 밖이잖아요. 그 오방과 내외에 있는 모든 신들을 안위, 안위라는 게 뭐냐면 편안하게 위로하는 거예요. 들뜨지 않고, 우리의 정신이나 우리 가지고 있는 마음들이 들뜨지 않고, 편안하게 이제 서로 위로해 줌으로 인해서 안정화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이에요. 제신이라고 하는 거는 모든 신들을 말하죠. 불교에서 신을 부정하지는 않잖아요. 화엄경에 보면은 104위가 나오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를, 우리의 삶을 도와주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어떻게 보면 다 신적인 요소들이죠. 저 산이나 저 물이나 구름이나 저 지금 밖에 흩날리는 눈보라 자체도 어떻게 보면 다 그러한 신들의 존재인 거죠. 근데 그런 신들이 흐트러지지 않고, 붕 뜨지 않고, 안정되게 서로 간에 있으려면, 편안하게 있으려면, 이런 진언이 필요하다. 진언이란 말은 다라니잖아요. 다라니 진언, 다른 말로 하면 또 다른 말로는 총지(總持)라고도 말해요. 모든 걸 담고 있다. 진언, 다라니, 한자로 표현하면 주라고도, 주(呪), 주문할 때 주. 이제 그렇게 표현하는데, 우리의 순수 말로 번역하면 그냥 참말이에요. 참말. “참말이가” 이런 말을 하잖아요. 그럼 참말이 뭐냐. 그 내용이 이제 다라니가 나오잖아요.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나무 사만다 못다남.> 나무 사만다 못다남은 나무라고 하는 거는 귀의하다, 의지하다잖아요. 사만다 못다남은 일체의 부처님과 보살님을 말해요. 일체의 보살님과 부처님, 부처님과 보살들, 그러니까 <나무 사만다 못다남은 일체의 부처님과 보살님에게 귀의한다는 의미예요. 귀의한다. 귀의합니다.> 그러니까 일체의 모든 신들을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신들을 안위하는 참말이 뭐냐. 저는 부처님께, 많은 보살님들에게 귀의합니다. 이 마음을 내는 것이 모든 신들을 안위하는 거라는 거예요. 오방내외의 모든 신들을 안위하는 것은 나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타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내 마음속으로 일체의 불보살님에게 귀의합니다라는 마음을 먼저 내야, 일체의 안위가 이루어진다. 그다음에 뭐예요?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옴은 길상이라는 뜻이고 도로 도로는 도리도리가 아니에요. 이건 음성어. 이걸 이게 소리를 낸 건데, 풀이 하면은 토닥토닥거린다. 토닥토닥. 누가 힘들고 어려워할 때 “괜찮아, 잘될 거야.” 이렇게 토닥거리듯이 토닥토닥하는 것이 도로도로예요. 그 지미는 뭐냐 그러면, 지미는 번역하면 씨앗이라는 뜻이에요. 씨앗, 종자. 그 종자에는 모든 게 다 들어가 있죠. 거기서는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줄기가 나서, 나중에는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그 종자에 그 성질이 다 들어가 있죠. 그게 지미에요. 그러니까 이 지미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그러한 에너지, 성장할 수 있는 힘, 이런 걸 얘기합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가 올라오도록 토닥토닥해 주는 거예요. 토닥토닥. 그리고 사바하는 성취하다 이런 뜻이죠. 이거는 이제 쭉 이어서 이제 번역을 하게 되면, <일체의 불보살님께 귀의하오며, 길상의 나의 좋은 씨앗에 토닥토닥 힘이 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뜻이에요. 오방내외를 안위하는 것은 첫 번째로는 귀의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우리가 서로 간에 용기와 힘을 줄 수 있도록 마음을 위로해 주고 토닥거리는 거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우리가 서로 간에 부처님인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찰보다도 진관사는 이미 그것들을 다 입으로, 마음으로, 몸으로 실천하고 있잖아요. 어떻게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이렇게 하니까 그렇잖아요. 우리는 마음에 이미 이제 그러한 예경 대상이 있기 때문에, 그다음부터는 우리가 서로 간에 정말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서로 위로하고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고 또 토닥토닥해주고 그걸 위로한 시간들이 좀 필요하다. 그게 바로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이다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그런 것들이 필요한데, 다라니라고 하는 것 자체도, 어떻게 보면은 옛날부터 많은 분들이 다라니 기도를 해왔죠. 아까 이제 법문 오기 전에 잠깐 얘기 들으니까, 주지스님께서는 80년대부터 다라니 기도를 했다니까 대략 40년이 넘었나요? 그러니까 이제 그때도 같이 했던 신도들이 있을 거죠. 그전에도 있겠죠. 다라니 기도라고 하는 거는 내가 지금 다라니기도는 하지만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동안에 많은 세월 동안 해왔던 그런 에너지들이 내가 다라니를 염송하면서 그와 합일되는 거예요. 합일되는 거. 그래서 다라니 기도가 힘이 있는 것이고. 옛날 어른들은 그래서 다라니 기도를 하게 되면은 얻게 되는 힘이 있는데 그걸 뭐라고 그러냐 그러면은, 불망 염지(不忘念智)가 이제 된다 그래요. 불망염지. 불망염지가 뭐냐 그러면은, 어떤 것들을 한 번 듣거나 보면은 잘 잊어버리지 않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이제 세월이 이렇게 흐르면 뭘 들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뭘 봐도 잘 기억이 안 나죠. 거기다 조금 더 나가면은 어느 날 냉장고를 열었는데 냉장고에서 리모컨이 나옵니다. 근데 왜 냉장고에 리모컨이 들어갔는지 몰라, 본인이. 뭔가 이제 급하다고 하다가 이제 넣어놓았겠죠. 그리고 내가 귀하게 뭔가 해놨는데 생각이 안 나는 것. 다라니 기도를 하게 되면 그런 것들이 사라진다, 극복된다는 거예요. 다라니 기도를 하게 되면 여러 가지 가피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첫 번째로 얻는 가피가 이 불망염지예요. 잘 잊어버리지 않는 거. 저희는 이제 어렸을 때는 다라니를 많이 하면은 이제 큰 부자가 된다고 그래서, 어른들이 이제 이렇게 잘 하라고 “너 나중에 잘 살고 싶지? 부자로 살고 싶지? 그러면 다라니 기도를 많이 해야 돼”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다라니 기도를 많이 하면은 그런 불망염지가 생긴다. 지혜가 밝아졌다는 거죠. 다라니 기도를 하면서 그러한 불망염지를 얻을 수 있지만, 그전에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되는 거는 여러분이 다라니 기도할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가세요? 어떤 성취를 하기 위해서, 아니면은 무엇을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겠죠. 그래서 다라니 기도를 할 때에 다라니를 번역을 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일체의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에게 귀의하는 내용이에요. 다 귀의합니다, 귀의합니다, 그런 내용이거든요. 그 귀의합니다 할 때에 입으로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는 부처님과 귀의해야 되는 거예요. 그거를 저는 이제 뭐라고 부르느냐 그러면, 무량공덕 생명이라는 걸로 표현합니다. 무량공덕 생명. 우리 안에는 무량한 공덕 생명이 존재해요. 그거를 이제 부처님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그거를 여래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또 한 자를 더 붙여서 여래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두 자로 표현하면 법장이라고 표현해요, 법장. 그래서 우리가 이제 모든 경 읽을 때 오방내외제신진언했지만, 그다음에 나오는 게 뭐예요?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이잖아요. 개법장진언이 뭐냐. 법장을 여는 참말이거든요. 그 다라니를 할 때에는 내 안에 있는 무량공덕 생명의 부처님을 열어서 밝힌 다음에 다라니를 해야 되는 거예요. 내 안에 있는 무량공덕 생명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정말로 내가 큰 보물을 가지고 있는데 그 보물이 나한테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사는 거하고 똑같은 거예요.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없잖아요. 저는 이제 이 안에 있는 무량공덕 생명이라고 하는 부처님이 계시는데, 그 무량공덕 생명이 밖에 있는 내가 예경 대상으로 부처님과 아니면 내가 독송한 다라니와 다라니를 하면서 그것이 합일돼야 된다. 합일이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면 평소에 당신은 부처님입니다라고 하는 것이 당신 안에 있는 그 무량공덕 생명을 알아차려야 된다는 말이에요. 우리가 기도를 하고 불교에 입문해가지고 정말로 큰 보물을 잊어버리고 사는 게 뭐냐 하면, 내 안에 그 무량공덕 생명이 있다는 거를 너무 늦게 알아차린다는 거예요. 이걸 먼저 알아차려야 됩니다. 알아차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늘 내 안에 좋은 일이든 싫은 일이든 버거운 일이든 걱정스러운 일이든 근심거리가 있든 그 순간순간마다, 내 안에 무량공덕 생명을 자꾸 바라봐야 돼요. 그리고 그 무량공덕 생명에 감사한 마음으로 부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지금 살다 보면 이 불확실성의 현대 사회에 살다 보면은 매 순간순간마다 감사하지 않은 그런 순간이 없을 때가 없죠. 매 순간이 감사한 거죠. 숨 한번 들어갔다가 숨이 이렇게 나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단 말이에요. 그게 어떤 힘이 나오느냐. 바로 내 안에 있는 무량공덕 생명이 나온다 이 말이에요. 무량공덕 생명 부처님 감사합니다. 한번 따라 해볼까요? 따라 해보세요. 무량공덕 생명 부처님 감사합니다. 한 번 더 해. 무량공덕 생명 부처님 감사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무량공덕 생명 부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살아서 하루를 살면서 매 순간 내가 기억날 때마다 무량공덕 생명 부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 들면서 오늘도 무량공덕 생명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것을 해야, 내 안에 무량공덕 생명을 깨워내야, 그다음부터 한 발 한 발 나가는 거예요. 무량공덕 생명을 깨어나지 못하고는 내 안에 찬란하고 영롱하고 활기찬 이 무량한 공덕 생명이 있는데, 이거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 마음에 보면 늘 근심과 걱정과 어려움과 분란과 미래는 걱정으로 있는 거죠. 근심 걱정 없을 수는 없죠. 없을 수 없는데 근심 걱정이 올라올 때마다 무량공덕 생명 부처님 감사합니다가, 무량공덕 생명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지만 그것이 성취가 된다는 거예요. 다라니 한독을 하더라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무량공덕 생명을 알아차리고 해야지만이 된다. 다음에는 꼭 무량공덕 생명 부처님 감사합니다. 무량공덕 생명은 영원한 겁니다. 이 무량공덕 생명이 다른 말로 하면 여래지만, 다른 말로 하면 자비하고 지혜지만, 이 무량공덕 생명이라고 하는 것을 내 안에, 내가 깨어내야지만이 내가 참으로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승리할 수 있는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거예요. 큰 에너지를 하나 얻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까지는 뭔가 힘들고 어려웠고 하면은 거기에 늘 끌려갔단 말이에요. 늘 끌려가고 거기에 마음이 온통 쓰여서 다른 거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했는데, 내가 무량공덕 생명을 부처님 안에서 내 마음 안에서 깨어나는 순간, 이제는 큰 위로가 되고 큰 버팀목이 될 수 있는 그러한 힘을 갖는다. 그래서 무량공덕 생명부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제 다라니를 천독을 했는데 관세음보살님께서 다라니를 염송하게 되면, 이 다라니는 이제 보통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줄여서 그냥 대다라니라고 해요, 근데 이 대다라니는 첫 번째로는 하게 되면 우리의 삶이 안락함을 얻게되요. 이거는 관세음보살님이 다라니를 하게 되면 이러한 힘을 얻는다. 다라니를 염송한 이유가 바로 이런 것 때문에 염송했다라고 말씀하신 내용이에요. 경전 상에. 그래서 관세음보살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다라니는 뭇 중생들의 안락함을 얻게 하기 위함이고, 우리가 이제 안락함을 얻기 위함이고, 그러니까 다라니를 열심히 독송을 하게 되면 첫 번째로 얻는 게 안락함이다. 두 번째로 얻는 것이 수명이에요. 수명. 오래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거죠. 제가 보니까 이 세계와 사바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거는 오래, 오래오래 얼굴 보고 사는 게 행복한 거예요. 다만 이제 건강하게 건강한 모습으로 얼굴 보고 살아야 되겠죠. 그러한 힘을 이제 다라니를 통해서 알게 모르게 얻게 된다. 그다음에 얻게 되는 것이 풍요로움, 풍요로움을 얻게 된다는 거야. 풍요로움. 다라니를 정말 지성으로 하는 사람들치고 어찌 풍요롭게 살지 못하는 사람 못 봤습니다. 금전적으로 풍요로운 것이 아니라 마음적으로. 왜 풍요롭겠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내 안에 무량공덕 생명이 있는데, 더이상 뭘 쫓기고 뭘 불안해하고 뭘 안타까워할 일이 있겠어요. 매 순간마다 무량공덕 생명을 내가 기억해 내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풍요로워진다. 다라니를 또 지극하게 하게 되면 알게 모르게 그릇된 마음지음이 사라져요. 다라니를 열심히 하게 되면은 옛날에는 아주 옹졸해가지고 내지는 빼딱해가지고 뭔가 말도 빼딱하게 하고 행동도 그렇게 하고 하던 것들이 다라니를 열심히 하게 되면 그런 것들이 사라져요. 그래서 혹시라도 자녀분 중에 빼딱하게, 빼딱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게 있으면은, 그 자녀 방에 다라니를 탁 붙여주세요. 다라니를 탁. 다라니는 그러한 힘이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다라니를 열심히 하게 되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짓던 악업들이 녹아내리는 힘이 있어요. 녹아내리는 힘. 무엇이 얼은 게, 아니면 굳어 있는 것이 녹는다는 것은 그만큼 온기가 필요하잖아요. 그 온기라고 하는 것이 있어야지만 업장이 녹거든요. 이 업장은 나의 차가운 마음, 냉혹한 마음 때문에 온 게 업장이에요. 우리가 업을 지을 때 보면은 그러하거든요. 근데 내 마음에 자비의 순풍이 불어서 다라니를 하다 보면은, 관세음보살의 가장 큰 공력인 대자대비라고 하는 순풍이 불어요. 그래서 알게 모르게 악업이 녹는다. 그다음에가 이제 가장 중요한 건데, 다라니를 하게 되면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곤란과 장애가 사라진다는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제일 힘든 건 뭐냐 하면 장애 때문이에요. 장애가 자꾸 생겨서. 마음의 장애, 생활의 장애. 뭔가 열심히 할수록 이상하게 장애가 더 많이 생길 때가 있어요. 아주 간단하게는 내가 마음을 먹고, 마음을 딱 작심을 하고 다라니만 읽으려 하면은 핸드폰이 울리고, 다라니를 하려 하면 누가 와서, 찾아와 가지고 초인종 누르고 그런 일이 생긴단 말이에요. 그걸 딱 이겨내야 돼요. 그냥 그 다라니하는데 전화가 왔는데, 못 기다리는 거야. 못 참는 거예요. 확인하고 싶어 가지고. 딱 그럴 때는 덮어놓고 내가 삼독을 하기로 했다. 그럼 3독까지는 거기에 딱 집중을 해가지고 할 수 있는 것. 그래야 힘이 생기거든요, 장애와 곤란을 떠나기 위한. 그렇게 하면서 내가 마음에 힘이 생기는 거기 때문에 그렇죠. 그다음에 마지막으로 이 다라니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무구청정(無垢淸淨)한 공덕이 생긴다는 거예요. 무구청정하다는 말은 때가 묻지 않는 아주 맑고 깨끗한 그런 공덕이 생긴다라는 거예요. 그 공덕은, 무구청장 공덕은 다른 말로 하면 무량공덕 생명인 거예요. 무량공덕 생명이 내 안에 밝게 빛나는 것.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내 안에 무량공덕 생명이 막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너무 벅찬 감사함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내 가슴에 무량공덕 생명이 있다는 그 빛을 통해서, 이거를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이 찬란한 빛을, 영롱한 빛을 나눠줄까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면 벅차오를 때가 있어요. 참 감사하다. 그게 바로 무구청정한 공덕이죠. 다라니는 이러한 힘이 있는데 이러한 힘을 통해서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늘 건강한 모습으로 뵀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예언을 좀 하는데, 제가 겨울에 눈이 올 거라는 거를 여름에 예언했어요. 내가 예언을 또 하게 되면 3월에 반드시 개나리가 핍니다. 개나리만 피느냐. 진달래도 핍니다. 벚꽃도 피고. 근데 중요한 게 뭐냐 하면, 그때 우리 마음의 정원에서 다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보게 될 거다. 맞죠. (박수) 법문을 끝내라는 소리죠. 정말 우리가 요즘에야말로 우리 사회가 좀 아픕니다. 지금. 몸살감기가 좀 들었어요. 이럴 때일수록 우리 수행자들도 마찬가지지만, 시비를 가릴 때가 아니에요, 우리는. 시비는 그거를 가리는 사람들에게 놔두고, 잘 알아서 할 거니까, 우리는 뭘 해야 되냐면, 우리는 우리 서로 서로에게 위로의 박수, 믿음의 박수를 보내줘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큰 박수 한번 칩시다. 마지막으로 합송 같이 하고 따라 하시고 법문 마무리하겠습니다. 무량공덕 생명 부처님 감사합니다. 무량공덕 생명 부처님 감사합니다.무량공덕 생명 부처님 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