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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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재] 11월 18일 49재 법문
종범스님 2023-11-18
금일 영가 지심제청(至心諦聴) 지심제수(至心諦受) 諸法無眞實 妄取眞實相 제법이 무진실이어늘 망취진실상하야是故諸凡夫 輪回生死獄 시고제범부가 윤회생사옥이로다나무아미타불(화엄경, 수미정상게찬품) 不見諸法空 恒受生死苦 불견제법공 항수생사고斯人未能有 清淨法眼故 사인미능유 청정법안고 불교는 깨달음인데, 깨달으신 삼세제불, 역대조사, 천하선지식이 깨달은 바가 무엇인가. 영명성심(靈明性心)이라. 신령 령, 밝을 명, 신령스럽고 밝은 본성의 마음을 깨달았다. 성품 성, 마음 심. 영명성심. 또 진여원각(眞如圓覺), 참 그대로 둥글게 아는, 둥글 원, 느낄 각, 둥글게 아는 그 마음을 깨달았다. 한마디로 마음을 깨달았다 이거죠. 마음을 깨달아서 뭘 얻었나. 마음을 깨닫고 보니까 상락정토(常樂淨土)가 나타나더라. 항상 상, 즐거울 락, 깨끗할 정, 흙 토. 항상 즐거운, 다른 이물, 잡용물이 하나도 없고, 본래 그대로 청정국토가 나타나고, 극락 세대가 나타나더라. 즐거웠다 괴롭다 하는 게 아니라, 지극히 즐거워서 즐겁지 않은 곳이 없고, 즐겁지 않은 시간이 없는 극락세계가 나타나더라. 이것이 삼세제불, 역대조사, 천하선지식이 깨달은 바인데, 깨달아서 뭘 어쩌라고. 세상에서도 누가 길을 열심히 내서 닦아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힘 안 들이고 그 길을 가듯이, 이 부처님이 깨달은 이 마음과 이 세계를 믿는 사람은 가게 돼 있고, 안 믿는 사람은 못 가게 돼 있다 이거죠. 아무리 좋은 곳을 쉽게 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그 길을 믿지 않고 안 가면 소용이 없는 거죠.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 깨달은 세계고, 오늘 재를 지내는 원리입니다. 처음에 게송으로 말씀드린 것은 화엄경 수미정상게찬품인데, 뭐라고 했냐. 제법은 무진실이라(諸法無眞實).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하는 모든 현상은 진실한 것이 없다. 무상하고 허망해서, 생겼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생기고 이런 것인데, 지혜가 없는 범부 중생이 쓸데없이 그 제법 현상에 진실상을 일으키고 있다라는 거거든요. 제법이 뭐냐. 가까이는 우리 몸이죠, 몸. 조금 멀리는 눈에 보이는 거고. 이 몸이나 눈에 보이는 거나 진실한 게 하나도 없고, 영원한 게 하나도 없고, 정해진 게 하나도 없는데, 그게 그런 줄을 모르고, 이게 내 몸이라 오래 갈 것이고, 눈에 보이는 게 저게 보통 게 아니고 여러 가지 사물이 꼭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허망하고 무상한 것을 구하다가, 구하다 구하다 구하는 마음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니까, 막상 이 코에 숨이 떨어지고, 머리에 의식이 끊어지는 순간에 가만히 생각을 하니, 내가 지금까지 구하고 이룬 것이 이 죽음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많은 걸 이루고 많은 걸 구했는데, 구한 것도 이 숨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고, 이룬 것도 자기 목숨 하나 떨어지는 걸 어떻게 구제할 수가 없다. 이걸 이제 깨달아서 대부분 후회하고, 후회가 깊으면 눈물을 흘리죠. 그래서 돌아가시는 분 대부분 보면 말은 못 해도 눈물을 줄줄 흘리는 분이 상당히 많아요. 왜 그러냐. 지금까지 구하고 이룬 것이 내 죽음을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이거거든요. 그럼 내가 뭐 하러 그걸 했나. 이게 참 큰 인생 일대사여. 그래서 모든 범부가 윤회생사옥(輪回生死獄)이라. 윤회생사옥. 나고 죽는 감옥에 오고 가고 오고 가고 되풀이를 한다. 생사를 감옥으로 보죠. 생사옥. 윤회는 계속한다 이거죠. 나고 죽고, 죽고 나고. 그러면 뭐가 이제 되느냐. 여기서 깨달음을 얻으신 불조(佛祖)께서는 生也只伊麽 死也只伊麽 생야지이마 사야지이마生死與涅槃 總不干者箇 생사여열반 총불간자개라緣生水裏月 想變夢中人 연생수리월 상변몽중인火消烟滅後 還我本來身 화소연멸후에 환아본래신이로다나무아미타불(진각국사법어. 한불전6, 23중) 일체중생에게 생사 없는 본래신(本來身)이 있다. 이게 이제 불조가 깨달은 몸이죠. 본래신.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받은 몸이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받기 전부터 있었고, 이 몸이 숨진 후에까지 있는 본래신이 있다. 그 본래신이 영명성심, 진여원각인데, 그 본래신을 떡 깨닫고 보면, 생야지이마(生也只伊麽)라. 태어나는 것이 그저 이러하다. 이러할 이, 이러할 마자가 있는데, 이러하다. 이러하다라는 게 뭔가. 연못에 달이 비칠 때나, 연못에서 달이 사라질 때나, 그 연못에서 볼 때는 달이 비칠 때도 그대로 연못이고, 달이 사라질 때도 그대로 연못이다. 그걸 이마라고 그래요. 이마. 이 손이 하나 있는데 이 손가락을 폈을 때도 그냥 손이고, 손가락을 오므렸을 때도 그냥 손이지, 폈을 때 손하고 오므릴 때 손하고 다른 것이 전혀 아니다. 이게 이제 깨친 분들이 가르쳐주는 말씀이죠. 죽는 것도 이러하다. 생사 열반이 생사는 나고 죽는 거고, 열반은 불생불멸인데, 나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닌 것인데, 그게 총불간자개(總不干者箇)라. 이 영명성심에 전혀 해당이 안 된다. 근데 연생은 수리월(緣生水裏月)이요. 인연에 의해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고, 세상 생활용품의 모든 도움을 받아가지고 살아가고 하는 것이 이게 연생인데, 인연 연자, 날 생자. 그거는 수리월이라. 물 수자, 속 리자, 저 물속에 비친 달과 같다. 또 상변은 몽중인(想變夢中人)이라. 생각 상자, 변화할 변자. 변이라는 건 나고 죽는 거죠. 나고 죽는 걸 생각하는 것은 그 영명성심을 모르고, 나고 죽고 죽고 나고 이것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몽중인과 같다. 꿈 몽자, 가운데 중자, 사람 인자, 꿈속에서 꿈꾸는 사람과 같다. 몽중인이라. 화소연멸후(火消烟滅後)에, 여러 가지 이것저것 생각이 다 사라지고 지혜가 나타난 후에, 환아본래신(還我本來身)이라. 나의 본래신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이제 불교에서 이 마음을 가르칠 때, 보는 데 매이고, 듣는 데 매이고, 생각하는 데 매이고, 움직이는 데 매이는 마음을 밝은 지혜가 없다라고 해서 무명심(無明心)이라고 그래요. 없을 무자, 밝을 명자. 그리고 사물은 없고, 색이 공하고, 일심이 원명이라, 한마음이 둥글고 밝다. 이걸 보는 거를 반야심(般若心)이라 그래요. 색이 공함을 본다.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이라.공이라는 건 불생불멸인데 불생불멸을 비추어 본다. 이걸 반야라고 한단 말이에요. 반야는 누구냐, 보살인데, 무명은 범부고. 보살은 산도 보고, 사람도 보고, 하늘도 보고, 땅도 본다. 거기서 관공(觀空)을 해요. 공을 본다. 하늘을 볼 적에도 공을 보고, 불생불멸을 본단 말이죠. 죽음을 볼 때도 불생불멸을 보고, 태어남을 볼 때도 불생불멸을 보고, 관공을 하는데 범부는 집상(執相)을 한다. 붙잡을 집, 형상 상. 형상을 집착하니까 범부라 그러고, 사물 속에서 공을 보니까 보살이라 그래요. 뭘 봐도 죽음이 불생불멸이다, 이걸 딱. 이게 조견오온개공이라고, 오온이 다 공함을 본다. 이게 보살이거든요. 근데 제불은 일광변조(日光遍照)라, 한 광명이 두룻이 밝아서 보고 안 보고가 없어요. 그걸 보리(菩提)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그걸 대광명이라고, 절에 가면 석가모니 부처님 모신 곳, 부처님 모신 곳을 대광명전 뭐 이런단 말이죠. 그건 일광이 변조라. 그 마음 광명이 온 시방 법계를 항상 두룻이 비추니까 그걸 보리라고 한다 이거야. 근데 무명심 속에도 영명성심이 있다 이거죠. 신령스럽게 밝은 본성의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그 본성의 마음이 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또 머리로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하고, 행동하고 하는 그걸 쫓아가고, 쫓아가고, 쫓아가다 보면 이 생각이 텅 비었어요. 생각이 없어요. 생각이란 뜬구름과 같아서 뜬구름을 자세히 보면 구름은 없고 허공뿐이다. 그래서 생각을 딱 들여다보면 생각은 없고 지혜뿐이다. 그래서 그 지혜를 얻고 나면 이 보는 놈도 본성의 마음이다 이거죠. 그런데 지혜를 얻기 전에는, 그게 본성의 마음인 줄 모르고 보는 대상에만 쫓아가요. 쫓아가도 쫓아가도 끝날 날이 없어서,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빈 마음을 가지고 산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그 나이가 됐는데 왜 욕심을 부리냐 그러니까 그거 생판 모르는 소리여. 이 욕심은 나이가 없어요. 욕심은 체면도 없어요. 욕심은 한계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게 보면 더 보려고 그러고, 받으면 더 받으려고 그러고. 그 어떤 부모들은 ‘그만큼 해줬으면 됐지 왜 더 바라느냐’, 생판 모르는 마음이에요. 받으면 더 받으려고 하는 게 욕심이에요. 그러니까 어중간하게 주려면 아예 안 줘야 돼요. 아예 안 주면 원망도 없고, 고마움도 없고, 그거 얼마나 좋아요. 줬다가는 더 받으려고 그래요.그거 참 희한한 게 마음이에요. 받으면 더 받으려고 그런다. 멈춤이란 없다. 채우면 더 채우려고 그런다. 멈춤이란 없다 이거죠. 근데 그런 마음도 더 들어가고 들어가고 보면 뜬구름이라, 자취가 없어요. 그럼 자취 없는 속에 뭐만 남는가. 둥글고 밝은 지혜만 남는다. 그래 둥글고 밝은 지혜만 남을 때 그걸 보는 마음이 아니라 두룻이 밝은 마음이라고 광명변조심이라 그래요. 광명이 두룻이 밝은 마음이다. 부처는 그런 분들이다.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거죠. 평소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지금 듣고 계신데, 들을 만해요? 그러면 대단한 거예요. 이런 얘기를 듣고 들을 만 하면 대단한 거예요. 그래서 이런 걸 이제 가르쳐주는 것이 부처님, 또 역대 조사, 천하 선지식의 가르침이다, 이런 말씀이죠. 事事物物 隨緣沒生 覺所現發 性覺靈明 사사물물이 수연몰생이니 각소현발이라 성각영명이로다.自己本性 先天後天 行住坐臥 明明新新자기본성이 선천후천이니 행주좌와에 명명신신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사사물물(事事物物)이, 온갖 세상 물건들이 수연몰생(隨緣沒生)이라, 인연 따라서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게 뭐에, 사물에다가 아주 목적성과 절대성을 부여하면 나중에 슬픔이 생겨요. 수연몰생이기 때문에, 인연 따라서 생긴 거니까, 인연 따라서 사라져요. 근데 몇백 년 전에 돌아가신 조상 자랑하는 사람도 아직 있어요. 몇백 년 전 조상은 그 시대의 인연으로 사라졌어요, 그 시대 인연으로 생겼다가. 이걸 가르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러면 온갖 사물이 과연 뭐냐. 각소현발(覺所現發)이라, 각은 마음인데 현발은 나타난 것이죠. 소는 장소라. 마음이 나타난 장소다. 이게 깨달은 분만이 할 수 있는 말인데, 그럼 이거(종이) 이렇게 보면, 이거 이제 사물로 보는 거는 무명으로 보는 바고, 깨달음으로 보는 바는, 이거는 뭐 종이니 뭐 글자니 그게 아니라 마음이 나타난 장소다 이거예요. 각소현발. 하늘이 저기 하늘이 아니라 내 마음이 나타난 장소다.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 내 마음이 나타난 장소다. 근데 범부는 사물만 있고 각이 없다. 근데 알고 보면 모든 사물이 각소현발이라, 이 마음이 나타난 장소일 뿐이지, 그 사물 자체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라, 자체가 없다. 이걸 가르치는데 우리 범부가 알지를 못한단 말이죠. 이게(물컵) 이렇게 보면 이게 그릇이 아니라 그릇은 공한 것이고, 이 마음이 여기에 떡 나타난 장소다. 그래서 이걸 또 이렇게 들어보이는 게 이게 너의 마음이다. 이걸 가르치려고 보이는 거예요. 그릇 구경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라. 큰 스님들 법문할 때 보면 뭐 보이는 게 있거든요. 이게 바로 네 마음이 나타난 장소다. 형상에 따라가서 형상에 매달리면 허망한 슬픔만 있을 뿐이지 결과는 없다. 이걸 가르치는데, 이게 참 믿으면 바른데 안 믿으면 안 돼요. 자기 본성(自己本性)이, 자기 본래 성품이 선천후천(先天後天)이라, 하늘보다 먼저 있었고 하늘보다 뒤에까지 있다. 이걸 가르치는 거예요. 선천후천. 선이라는 거는 이거는 명사가 아니고 동사, 하늘보다 먼저 있었고, 후천, 하늘보다 뒤에까지 있다, 이거거든요. 행주좌와(行住坐臥), 돌아다닐 때나 멈춰 있을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명명신신(明明新新)이라, 밝을 명, 새로울 신, 밝고 밝고 새롭고 새롭다. 어제도 이 그릇을 봤는데 오늘 보는 마음은 어제 마음이 아니에요. 오늘 마음이요. 내일도 그릇을 보면 이게 내일 마음이 아니라 바로 그 당시 마음이란 말이죠. 이걸 신신이라 그래요. 마음이란 늙음이 없다. 마음이란 죽음이 없다. 그러니까 항상 새로울 뿐이다, 이 말이죠. 명명신신이라. 이 마음이 되면 극락세계 아닌 데가 하나도 없어요. 티끌도 극락이고, 죽음도 극락이고, 삶도 극락이고, 숨을 내쉬는 것도 극락이고, 들여 쉬는 것도 극락이고, 하늘을 볼 때도 극락이고, 땅을 볼 때도 극락이고, 이걸 이제 깨달아서 상락정토 극락세계라 하는 거거든요. 一念忘時明了了 彌陀不在別家鄉일념망시명요료하면 미타부재별가향이로다通身坐臥蓮華國 處處無非極樂堂 통신좌와가 연화국이니 처처무비극락당이로다나무아미타불(나옹가송, 한불전6,742중) 이 법문은 고려 말에 나옹 큰스님께서 남겨주신 법문인데요. 나옹집에 수록되어 있는 법문인데, 일념이 망시(一念忘時)에, 여기서 일념이라는 것은 밖으로 집착하는 한 생각, 밖으로 집착하는 한 생각이 딱 없어졌을 때, 명요료(明了了)하면, 그 본래 청정하고 밝은 지혜가 밝게 밝게 탁 나타나면, 미타부재별가향(彌陀不在別家鄉)이라, 아미타불이 저 딴 데 있는 게 아니고 바로 눈앞에 있다, 이 법문이에요. 통신좌와(通身坐臥)가, 온 몸이 안고 눕고 하는 게, 극락세계니, 연화국(蓮華國)이니, 처처무비극락당(處處無非極樂堂)이라, 곳곳이 극락당, 집 당자, 극락집 아닌 곳이 없다. 이게 이제 나옹 스님 법문이에요. 천하 선지식의 가르침이다, 이 말이죠. 그러니 극락 얘기는 이만하면 충분하고, 오늘 영가가 이제 가실 일밖에 없어요. 금일 영가 지심제청(至心諦聴) 지심제수(至心諦受) 般若淨土 極樂世界 菩提淨土 極樂世界 반야정토 극락세계 보리정토 극락세계涅槃淨土 極樂世界 西方淨土 極樂世界열반정토 극락세계 서방정토 극락세계에一念信心 一念信心 直得往生 速得往生일념신심 일념신심으로 직득왕생하시고 속득왕생하십시오나무아미타불 극락은 정토인데, 청정국토인데, 어떻게 하면 청정이 되냐. 반야심이 되면, 색이 공함을 딱 보면 거기에 극락세계(極樂世界)가 나타난다. 그걸 반야정토(般若淨土)라고 한다 이거지. 또 극락은 보리인데 광명이 두룻이 세상을 비출 때 극락 아닌 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걸 보리정토(菩提淨土)라 그런다. 극락은 열반인데, 열반은 불생불멸 상주정토, 나고 죽는 게 아니고 항상 있는 정토인데, 그 열반정토 극락세계(涅槃淨土 極樂世界), 또 극락은 서방정토(西方淨土)인데, 서방이라는 건 비유인데 백방이라. 흰 것을 서로 표현하거든요. 그래서 극락세계에 떡 가고 보면 극락은 본래 더러워진 일이 없더라. 그걸 서방정토라고 그래요. 본래 청정. 꿈을 딱 꿀 때는 온갖 나그네가 됐는데, 꿈 깨고 나니까 본래 집주인이더라. 이거와 똑같은 거죠. 극락에 가고 보니까 본래 청정해. 그래서 그걸 서방정토라고. 그래서 보통 염불을 할 때는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말하거든요. 그게 그 뜻이에요. 가고 보니 본래 극락에서 벗어난 일은 본래 없더라 이거에요. 서방정토.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오늘 영가께서 일념신심(一念信心)으로, 한 생각으로 믿는, 두 생각, 세 생각은 안 되고 한 생각으로 믿는 신심으로, 또 한 생각으로 믿는 마음으로, 직득왕생(直得往生)하시고, 곧 직자, 얻을 득자, 얻을 득자는 어조사, 바로 딴 데 둘러 가지 마시고 바로 그곳에 가서 태어나시고, 속득왕생(速得往生)하소서. 속히 그곳에 가서 태어나십시오. 오늘 법문 다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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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기도] 11월 13일 초하루 신중기도 입재 법문
도혜스님 2023-11-13
유튜브 링크 : https://youtu.be/_jiwiPqptok?si=tXZE0Qfg3yFVn26w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보현행원품을 이제 쭉 초하루마다 해왔습니다. 오늘은 참제업장(懺除業障)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종교라고 하는 것은 이고득락(離苦得樂)을 근본 목표로 합니다. 이고득락이라고 하는 것은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게 한다, 그러한 뜻이죠. 이제 사찰을 찾고, 성당을 찾고, 교회를 찾는 여러분들의 그 마음 저변에는 고통이 없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 아마 자리 잡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보통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운명이다> 이런 말을 흔히들 많이 합니다. 이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수많은 생 동안 반복적으로 한 행동 에너지, 언어 에너지, 의지 에너지가 모여서, 쌓이고 모여서 힘을 형성해서 여러분이 살아가는 데 루트를 만들어 놓은 거예요. 지금 현재 여러분은 그 루트에 따라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여러분이 전생에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뭘 하다가 왔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억울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은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나한테는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까, 또 뭐 심한 병이 들었다 하면, 다른 사람은 멀쩡하게 잘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또 뭐 암에 걸려서 힘들까, 이렇게 해서 고통스럽고 슬프고 힘들고 그렇죠. 그렇다면 여러분이 자기가 살아가는 이 루트가 마음에 안 든다, 좀 다른 사람들처럼 잘 먹고 잘 살아보고 싶다, 이러한 루트를 바꾸고 싶다 이 말이죠. 그러면 그 바꿀 수 있는 비결, 방법 이것이 바로 참제업장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나는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 나는 어떻게 하든 다른 사람보다 좀 뛰어나게 잘 살고 고통도 없이 살고 싶다, 이런 마음을 가진다면 여러분이 먼저 자기 마인드를 바꿔야 됩니다. 그럼 어떻게 바꿔야 되느냐. 첫 번째는 고통이 만들어질 수 있는 그러한 행동을 앞으로는 안 해야 된다 이 말이죠. 미리 방지를 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이미 만들어져서 나에게 올 고통의 원인을 부지런히 제거를 해야 되겠죠. 그래야만 나에게 고통이 오지 않고 여러분이 바라는 행복만 여러분에게 닥쳐올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제 첫 번째 미연에 방지를 하는 방법, 고통이 올 원인을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부터 말씀을 드립니다. 화엄경 십지품에 보면, 부처님께서 뭐라고 말씀을 하셨느냐면은, 10가지 십악업이 있는데, -여러분이 기도할 때 외우시는 그 천수경 속에 십악업 참회가 있죠. 그 십악업입니다.- 이 십악업을 짓게 되면은 상도는 지옥의 씨앗이 되고, 중도는 아귀의 씨앗이 되고, 하도는 축생의 씨앗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살생에서부터 끝에 부분까지 다 조목 조목마다 상중하의 상중하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살생을 하더라도 만일 이 살생을 중하게 하게 되면, 일반 무슨 뭐 고기라든가 이런 것도 죽이지만, 사람을 죽인다든가 이러한 아주 중죄를 짓게 되면, 그것은 바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 되고, 그 중도는 이제 아귀의 씨앗이 된다 그랬죠. 이렇게 해서 10가지에 다 해당이 되는데, 그렇게 지옥에 떨어졌다가, 또는 아귀에 떨어졌다가, 축생에 떨어졌다가 그런 것을 다 이제 받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두 가지 과보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해당되는 과보만 소개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 살생(殺生)을 하게 되면은 두 가지 과보 중에 첫 번째는 수명이 짧아요. 그리고 두 번째는 병이 많습니다. 그래서 평생 골골 병이 몸을 안 떠나고 그야말로, 요즘 말로 하면 종합병원입니다. 그러고 사는 거죠. 그다음에 두 번째는 도둑질인데 도둑질을 하게 되면 첫 번째는 가난하게 산다. 그냥 가난한 게 아니라, 말로 하자면 찢어지게 가난한 겁니다. 근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돈만 들어왔다 하면 뭐 병이 나든지, 뭐를 하든지 하여튼 나가지 손에 돈이 붙어 날 수가 없어요. 그다음에 두 번째는 뭐냐. 만약에 재물이 조금 있다고 한다면, 그건 공동의 재물이 돼서 내가 쓸 수가 없어요. 이것이 이제 그 도둑질의 과보가 되는 겁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사음(邪婬)의 과보인데, 사음의 과보는 첫 번째는 정조를 지키는 아내를 갖지를 못해요. 그럼 여러분들이 우리 보살님들, 여성 불자님들은 남편이 바람을 피웁니다. 바람둥이 남편을 만나는 거죠. 여러분들이 아무리 잔소리를 하고 뭐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 두 번째는 친족들이 내 뜻을 따라주지 않아요. 네 번째 거짓말을 하게 되면 또 어떻게 되느냐. 다른 사람에게 비방을 많이 받고, 두 번째는 속임을 당해요, 사기를 당한다 이 말이죠. 망어(妄語). 그다음에 이제 양설(兩舌)이죠. 양설의 죄는 첫 번째는 가족이 괴리해. 그리고 두 번째는 친족이 패악하다 이 말이죠. 아무리 가까운 사촌 아니라 바로 가까운 이촌 이런 사람도 패악해서 보기만 하면 두드려 패고 막 이런 문제가 생기게 되는 거죠.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이간질해서 싸움을 붙여서 문제를 만들었으니까 자기가 그런 거를 받는 거죠. 그다음에 이제 악구(惡口)는 항상 다른 사람이 나한테 악한 말을 해요. 그리고 두 번째는 어떤 고통이 있느냐 하면, 싸움을 많이 한다 이 말이죠. 다투게 된다. 그다음에 기어(綺語)의 죄는 다른 사람이 나의 말을 안 받아들여 줘요. 내가 아무리 뭐라고 뭐라고 해도 나의 말을 들어주질 않아요. 그다음에 두 번째는 말이 분명하질 못해요. 말 발음이 분명해지질 않아. 그다음에 탐애(貪愛)의 죄는 또 어떤 과오가 있냐면은 만족할 줄 몰라요, 첫 번째는. 두 번째는 욕심이 너무 많아서 항상 싫어할 줄 몰라요. 그러니까 지나치게 욕심이 많게 되면 항상 문제를 일으키겠죠. 그다음에 진에(瞋恚)의 죄는 다른 사람이 나를 자꾸 저 사람은 뭐 나쁘다 좋다, 자꾸 나의 단점, 장점을 갖고 시비를 걸어요. 그다음에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이 나를 괴롭혀요. 그다음 마지막에 탐진치의 치암(痴暗)이죠. 치암의 죄는 사견의 집에 태어나요. 그다음에 두 번째는 내 마음이 바르지 못해. 바르지 못하니까 하는 행동이 다 바르지 못하겠죠. 이렇게 해서 이 10가지 십악업의 죄를 짓게 되면은 이 10가지 십악업으로 나타나는 그 고통이 일체 중생에게 무량한 고통을 받게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이러한 고통이 나는 싫다, 안 받고 싶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십선도로 바꾸라 이 말이죠. 십악업은 절대로 짓지 말고, 십선도로 바꾸어서 10가지 착한 행을 하게 되면은, 해서 그 10가지 착한 행을 하는 것으로 법의 도반을 삼고, 법의 동산을 삼아서, -여러분들은 동산에 항상 놀러 가고, 스님들은 포행이라고 하지만 여러분들은 산보라 그러나요? 산보는 일본 말이죠. 여러분들은 이런 정원이나 공원에 산책을 가죠.- 항상 산책하는 것처럼 십선도를 행해라 이 말이죠. 그렇게 되면은 여러분들이 참 좋은 일만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십선도를 자기 혼자만 할 게 아니라, 옆에 사람에게 자꾸 권해서 하게끔 하면 자기가 하는 만큼 공덕이 생깁니다. 그렇게 하셔야 됩니다. 이것이 이제 미연에 고통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이미 생긴 고통을 그러면 어떻게 없애느냐 하는 문제인데, 이것은 이제 참회입니다. 참회를 하라고 하니까 여러분들 생각에,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큰 그렇게 뭐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뭐 꼭 참회를 해야 되나’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도 더러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참회를 해야 되느냐. 우리가 이 사바세계에 몸을 받아서 살고 있다는 자체가 참회해야 할 거리입니다. 왜냐. 업이 있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 와서 고통을 받고 살지, 업이 없다면 이렇게 올 일이 없는 거죠. 제불 보살님 같은 경우는 원력생으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원력으로 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그분들은 고통이 없습니다. 아무리 사바세계에서 우리와 같이 살아도 우리가 고통받는 그러한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해요. 같은 고통, 같은 생활을 해도 그분들은 마음 자체가 틀리고 받아들이는 것이 틀리기 때문에, 그분들은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는 것을 원력으로 와서 계시는 분이고, 그리고 마음대로, 당신이 하고 싶은 마음대로 하시는 분이 원력 보살님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무리 부자가 되고 싶어 발버둥을 쳐도 부자가 될 수가 없고, 병이 안 걸리고 싶어서 그렇게 노력을 해도 병이 들고, 이런 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거든요. 이런 것들이 전부 다 업이 있어서 그렇다 이 말이죠. 참회해야 할 거리가 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생사윤회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는 우리가 항상 참회를 해야 된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러한 참회를 해야 하는데, 청량 징관 스님께서는 뭐라고 말씀을 하셨느냐 하면, <참회를 해야 하는 사람은 역생사심(逆生死心)이 있어야 된다>. 역생사심이라고 하는 것은 생사윤회를 순 따르는 것은 쭉 따라 흘러가는 것이고, 역은 거슬러 올라가는 겁니다.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 생사윤회를 벗어나겠다는 마음을 가진 것이 역생사심이에요. 이러한 역생사심을 바탕으로 해서 10가지의 마음이 있어야만 참회가 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래서 그 10가지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첫 번째는 과보를 확실하게 믿어야 된다. 다음 생이 있다라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은 과보를 믿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윤회를 한다라는 것을 확실히 인지를 했을 때 우리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내가 이렇게 잘못 살다가 금생 뿐만 아니라 다음 생까지 내가 이렇게 되면 어떡하나” 이렇게 두려워서 잘못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교정할 수가 있는데, 이런 마음이 없으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된다 이 말이죠. 그래서 과보를 확실하게, 인과를 확실하게 믿어야 된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자기 스스로가 부끄러워할 줄 알고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자책할 줄 알아야 돼요. 실컷 잘못해놓고, 자기가 잘못해놓고 모든 걸 다 다른 사람한테 뒤집어씌우죠. “너 때문에 그랬어. 내가 이래 잘못 사는 거는 부모가 재산을 안 물려줘서 그래.” 아무리 부모가 재산을 안 물려줘도 자기가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잘 살 수가 있죠. “낳아준 것만 해도 감사하다. 이 세상에 이렇게 정말 맑은 공기를 느끼고 이렇게 햇볕이 따뜻한 이러한 날씨를 느낄 수 있게끔 만들어준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하다.” 이래야 되는데, 부모가 나를 낳기만 했지, 재산도 안 물려줬다. 또 뭐 잘못되면 나 때문이 아니고 너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하게 되면 그 사람은 고칠 성향이 없는 겁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악도에 떨어지는 걸 두려워해야 된다. 경전을 보면 삼악도의 그 지옥의 고통이 정말 극심합니다. 정법염처경이라는 경전이 있는데 그 경전을 보면은, 이제 그 죄를 짓거나, 업을 어떻게 지으면, -선업을 짓는 것도 거기에 나와요.- 어떤 선업을 지으면 천상에 어떻게 나고, 악업을 어떻게 지으면 악도에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태어나서 어떤 고통을 받는다라는 거. 이런 것이 다 세밀하게 쓰여 있습니다. 거기를 보면 그 지옥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실제로 지옥을 갔다 온 스님의 말씀을 제가 직접 그분에게 들었습니다. 그분이 이제 돌아가신 지 지금 한 10년 정도밖에 안 됐는데, 그분은 큰스님 반열에 계셨던 분인데, 8시간을 돌아가셨다가 깨어나셨대요. 그래서 이제 지옥을 보고 오셨는데, 가서 염라대왕도 만나셨다고 하네요. 저승사자가 잘못 모시고 간 거예요. 그러니까 염라대왕이 “이왕 오셨으니까 지옥 구경을 좀 하시고 가십시오.”해서 지옥에 갔는데 너무 처참해서 볼 수가 없더라는 거예요. “도저히 볼 수가 없어. 그렇게 처참하더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악도에 떨어지는 것을 우리가 두려워해야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그 양황참기도를 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거기에 보면 그 아귀들이 고통받는 그런 내용이 더러더러 나와요. 그거 보면 그 아귀들이 고통받는 것을 정말 혹심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고통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여러분들이 죄도 짓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음을 다해서 참회할 수가 있겠죠. 그다음에 네 번째는 뭐냐. 발로참회(發露懺悔)해야 된다. 자기가 잘못해놓고 딱 오리발 내밀고 난 안 했어 이러면은 안 된다는 거죠. 잘못했으면 ‘내가 잘못했다. 다음에 다시 안 하겠다.’ 이래야 된다 이 말이죠. 그다음에 다섯 번째는 상속심을 끊어야 된다. 한 번 잘못한 걸 알면 다음에는 안 해야 돼요. 근데 술을 드시는 분은 술을 끊겠다고 작심삼일을 해놓고 또 잡수죠. 또 잡숫고 또 잡숫고 이거는 안 되는 거죠. 이건 계속 상속하는 거다 이 말이죠. 술 드시는 분뿐만 아니라 도박인지 뭐 하시는 분도 보면 한 번 손대면 평생 못 끊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온 집안을 다 망가뜨리고, 자신만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 다 망가뜨리잖아요. 그래서 상속심을 끊어야 돼요. 내가 이 부분은 참 잘못했구나 싶으면 다시는 안 해야 된다. 그래야만 그게 참회가 되는 거지, 오늘 잘못해서 “부처님 잘못했습니다.” 해놓고 그다음 날 또 하고 또 하고 나서 ‘또 잘못했습니다’, 이거는 참회가 되는 게 아닙니다. 이 참회라는 것은 참은 뉘우치는 것이고, 회는 다시는 안 하겠다는 맹세가 들어있는 거예요. 그다음에 이제 여섯 번째는 보리심을 발휘해야 된다. 보리심을 발해서 수행을 어느 정도 해야, 자기 자신의 허물이 자기에게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말로 해도 자기 허물이 자기가 느껴지지 않아요. 그러니까 말로만 하는 거지 진정한 참회가 되질 않아요. 그래서 어느 정도 수행을 해야 자기 자신의 허물이 자기에게 보인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내가 이런 이런 것은 정말 이러한 업이 있구나. 이건 내가 끊어야 되겠다.” 이렇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법계에 자유자재하고 놀고 자유자재하게 살고 싶으면 반드시 참회를 하고, 그리고 항상 일상 모든 생활에서 헛되지 않게 잘 살아야 된다 이 말이죠. 그다음에 일곱 번째는 뭐냐 하면, 내가 공덕을 지어서 잘못한 것을 보완을 해야 돼요. 그러면 ‘살생을 내가 많이 했다’라고 생각이 되는 사람은 자꾸 방생을 해서 남의 목숨을 살려준다 이 말이죠. 죽어가는 목숨도 살려주고. 방생을 하라고 하면 우리 불자님들은 고기를 사서 놓아주는 것만 방생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만 방생이 아닙니다. 정말 죽게 생긴 사람을 살려주는 것도 방생이고, 마음이 아주 그냥 못 살게끔 좌절해있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것도 방생이 되는 것이고, 이렇게 해서 정말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속 좋은 일을 하고. 또 만약에 자기가 복이 없다, 내가 참 너무 가난하구나, 이 가난한 것은 아무래도 전생에 내가 이 도의 업이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되시는 분은 자꾸 보시를 하면 됩니다. 보시를 자꾸 하라 하니까 “아이고 스님 가난해서 보시할 건덕지가 없는데 어떻게 보시를 합니까?” 꼭 물질로만 하는 것이 보시가 아니에요. 무재칠시(無財七施)가 있습니다. 7가지로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보시가 있어요. 그래서 옛날에 어떤 분이 너무 가난했는데, 스님한테 와서 가난하다 하니까 이제 스님이 보시를 하라 그랬겠죠. 그러니까 “저는 너무 가난해서 보시하고 싶어도 보시할 돈이 없습니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스님께서 “그러면 보살님 빈 페트병 한 개 정도는 있겠지.” “그거야 있죠.” “그러면 그 빈 페트병에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을 담아서 지나가는 목마른 사람에게 줄 수 있지 않느냐. 그것도 보시다 이 말이야.” 이렇게 남에게 주겠다는 마음만 일으키면 꼭 돈이 손에 들어있지 않아도 얼마든지 보시를 할 수가 있습니다. 또 부산의 어느 보살님은 자기 남편이 사업을 하는데 아마 처음 초창기였던 것 같습니다. 항상 부처님께 오면 부처님께 불전 놓을 돈이 없어요. 다른 사람 보면 전각마다 다니면서 다 불전을 놓는데 자기는 놓고 싶어도 놓을 돈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 어떻게 발원을 했느냐. “부처님 다른 건 다 놔두고, 제가 앞으로 부처님께 오면 마음껏 부처님께 불전 놓을 돈만 있게끔 그렇게 살게만 해주십시오. 더 이상도 욕심을 안 내겠습니다.” 이렇게 부처님께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꾸준히 기도를 하고 노력을 했더니, 오래지 않아서 이제 남편의 사업이 잘 돼서 그분이 마음껏 불전을 놓고, 또 그 신심으로 그분이 서울 동국대학교 입학을 해서 졸업을 하고. 졸업을 4년 전엔가 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졸업할 때 아는 스님들이 가서 축하도 해주고, 그래서 아주 큰 대보살이 됐습니다. 그래서 이 보시를 한다는 것도 돈이 꼭 있어야만 하는 게 아니에요. 자기가 마음을 일으켜서 발원을 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하나 자기가 잘못된 것을 보완해 나가는 거, 이것이 일곱 번째입니다. 그다음에 여덟 번째는 정법을 항상 보호하고 호지를 해야 된다. 누가 불법을 헐뜯고 부처님 법이 어떻고, 또 부처님을 막 헐고 하면 그렇게 못하도록 막는 것이 이제 호지하는 거죠. 그리고 아홉 번째는 시방에 계시는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염불을 해야 된다. 그다음에 열 번째는 죄의 자성이 공하다는 것을 관찰을 해서 이참(理懺)과 사참(事懺)을 해야 되는데, 사참은 하나하나를 다 짚어가면서 참회를 하는 게 사참입니다. 이참은 죄의 자성이 공하다는 것을 관찰을 해서 죄의 뿌리를 송두리채 뽑는 것이 이참이에요. 그런데 이 이참에 대한 것을 여러분들이 잘못 해석을 하게 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왜냐. 죄는 자성이 없다니까 뭐 짓고 나서 “나는 죄의 자성이 없어. 괜찮아” 이건 아니거든요. 이 죄의 자성이 공한 것을 뿌리째 뽑는다는 것은 번뇌 망상을 뿌리째 뽑는 경지에 들어가야만 이것이 성립됩니다. 그러니까 일반 여러분들은 죄의 자성이 공하다고 했으니까 ‘나는 오늘 죄를 지었지만 죄는 뿌리가 없어.’ 이러면 절대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이 이 10가지의 참회에 대한 것을 확실히 잘 인지를 해서 참회를 해야 하는데, 그래서 이 참회라는 것은 참회의 공덕이 있습니다. 공덕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전생에 지은 이러한 업장이 소멸되게 되면 고통이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요. 없어지고 늘 편안하고 주변 환경이 부드러워지고 주변 환경이 좋아짐을 느낍니다. 그러면 내가 조금씩 업장이 좀 녹아지는구나 이렇게 아시면 되죠. 그래서 여러분이 이러한 업장이 녹게끔 기도를 열심히 하셔야만 하고, 여러분이 이제 살아가다가 보면 여러분 자신이 자기가 어떤 업이 있는지는 조금씩 인지가 됩니다. 자기가 살아가면서 가장 뭔가가 부족하고 뭔가가 안 되는 부분, 그것은 ‘뭔가 나에게 전생에 어떤 그러한 부분이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참회를 해야 하는데, 만약 참회를 하지 않고 그냥 ‘아이고 오늘은 그냥 바쁘니까 내일 하지, 내일 또 바쁘면 또 모레 하지,’ 이런 식으로 미루다가 참회를 못하게 되고, 만약에 그 업장이 들이닥칠 때가 되면 어떤 방법으로도 피할 수가 없어요. 하늘로도 피할 수가 없고, 바다로도 피할 수가 없고, 숲속으로도 피할 수가 없고, 산속으로도 피할 수가 없고, 심지어 아라한의 경지에 들어가도 닥쳐오는 과보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 어떤 아라한이 한 분 계셨는데 개울에 가서 이제 목욕을 하시면서 옷을 벗어서 빨아서 물을 들여서 바위에 널어놨다 이 말이죠. 요즘은 천이 물을 들여서 나오는 천이 있잖아요. 여러분도 아마 입은 옷이 전부 다 공장에서 물을 들여서 나온 걸 겁니다. 그런데 옛날에 스님들은 전부 다 광목, 무명 그런 천이기 때문에, 그 물을 한 번 들이면 빨래를 한 번 하고 나면 이게 숯물이라서 싹 빠져요. 조금 흐릿하게 남아 있지만 빠집니다. 그러면 다시 물을 들여야만 됩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제가 30대까지만 해도, 스님들이 다 숯물 들여서 입었습니다. 숯을 빻아가지고 가루를 내서 자루에 넣고 숯물을 들이거든요. 그래서 그 물을 들인 숯물이 있고, 이제 옷을 빨아 널어놓았는데, 갑자기 그 널어놓은 옷이 소가죽이 되고, 그 물을 들인 숯물이 피가 됐어요. 그런데 마침 그때에 소를 잃어버린 사람이 소를 찾으러 산으로 올라오다가 개울에 떡 와보니까 소가죽이 널려 있고 피가 있고, 그러면 어떻겠습니까? “이 스님이 소를 훔쳐간 도둑이다”, 그래서 잡혀갔습니다. 잡혀가서 감옥에 들어가서 3년을 감옥 생활을 했어요. 근데 이 스님의 제자가 국사가 됐어요. 나라 국사가 돼서 어느 날 정에 들어서 이렇게 관을 해보니까, 자기 스승님이 감옥에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조사를 하고 살펴보니까 상황이 그렇게 됐더라 이 말이죠. 아마 이분이 전생에 소를 훔친 업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도 과거생에 지은 업은 받으셨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러한 업장의 업의 그 기운이 발현을 하게 될 시기가 되면 어디에서도 못 피합니다. 그러니까 미리미리 참회를 하고 기도를 하고 또 그렇게 하면서 미연에 방지하게끔 악업은 짓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죠. 이제 한 40년 전에 부산의 어느 보살님이 있었는데, 이분이 아이를 넷을 낳았는데 남편이 덜컥 죽어버렸어요. 요즘은 여자분들도 직장을 가지고 회사에 다니고 이런 게 보통이지만, 옛날에, 한 40년, 50년 전만 해도 여자는 그렇게 나가서 일을 하는 게 드물었고 없었다고 봅니다. 또 있어봤자 공장에 가서 일을 좀 하거나, 아니면 집에 뭘 갖다가 하거나 바느질을 하거나 이런 것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분이 ‘이 네 아이를 내가 어떻게 키우느냐 도저히 자신이 없어.’ 그래서 그냥 밥도 못 먹고 드러누워서 그냥 죽겠다고 누워 있으니까, 친정어머니가 미음을 끓여다가 억지로 입을 벌리고 한 숟가락씩 집어 넣어서 목숨 연명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니가 가면 저 아이 넷은 어떻게 할 것이냐.’ 그래서 한 2주일을 그렇게 하다가, 어느 날 어떤 생각이 났느냐면은, -남편 되는 사람이 아이를 두고 간 것도 간 거지만 엄청난 빚을 남겨놓고 갔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기가 막히잖아요.- ‘도대체 저 남자가 나하고 무슨 철천지원수가 져서 나한테 이런 빚더미와 아이를 남겨놓고 갔을까’ 그게 딱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낮이나 밤이나 그 생각이 그냥 없어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미친 사람처럼 바깥으로 뛰어나가서 정처 없이 걸었다는 거에요. 하루종일 걸어서 저녁에 해가 지는데 도착한 산속에 조그마한 암자가 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절에 들어갔어요. 그 절에 들어가서 이제 스님께 그런 이야기를 했겠죠. 그러니까 그 스님이 기도를 하라고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마 3.7일 기도를 했는데, 3.7일이 내일이 마지막 회향인데 오늘 잠깐 기도하다가 졸았대요. 조는데 꿈에 자기가 어떤 사람하고 싸우고 있는데, 상대방이 드러누워 있고 자기가 그 사람 배를 타고 올라앉아서 칼을 들고 그 사람을 죽이더라는 거죠. 거기서 자기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람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죽으면서 “그래 너는 나를 칼로 죽이지만, 나는 너를 칼로 죽이지 않고 너를 바짝바짝 말려 죽일 거다.” 그렇게 죽는 광경을 꿈을 꿨다 이 말이죠. 그렇게 꿈을 꾸고 깨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아, 그 남편이 바로 내가 죽인 그 사람이구나.’ 그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그 기도를 마치고 돌아와서 그때부터 안 해본 장사가 없고 안 해본 일이 없어요. 행상도 하고, 뭐 보따리 장사도 하고, 뭐 하여튼 해서 그 남편이 남기고 간 빚 청산하고, 그 아이들 다 키워서 다 출가시키고, 나이 60이 돼서 절에 와서 그 보살님이 한다는 말이, “다른 사람들이 힘들고 어렵다 그러면 다 그게 빚 갚는 거라고, 나도 평생 빚을 갚고 아직도 빚이 남은 것 같아서 이렇게 부지런히 살고 있으니까, 잔소리 말고 빚 갚는다 생각하고 열심히 살라”고, 다른 사람한테 그랬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먹기 달린 거예요. 내가 빚을 갚겠다 생각하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노점상에 장사를 하든, 보따리 장사를 하든 오만 짓을 다 해도 이거 빚은 갚아야 되는구나, 안 갚으면 안 되겠구나 이렇게 할 수가 있어요. 근데 그걸 알지 못하고 마음을 잘못 먹게 되면 빚이야 있든 말든, 그냥 그 아이들 다 버리고 자살을 하든 뭔 수를 내겠죠. 그렇게 되면 그것으로 끝나면 다행인데, 그다음에 다시 이자가 붙어 더 큰 괴로움이 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내 마음먹기 달렸어요. 그래서 내 마음이 무엇을 짓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이 내가 살아가는 내 세상을 만들고, 나의 삶에 대한, 나에게 이익되는 모든 것들은 내 마음의 작용이 어떠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우리가 내 마음으로 설계를 잘해야 돼요. 한 생각 설계를 잘못하게 되면 그 결과가 어둡기도 하고 밝기도 하고, 행복도 희망도 고통도 다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마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 세계를 만들고 있어요. 그래서 이러한 것을 확실하게 여러분들이 인지를 하고 알아야 된다. 인지를 하고 알게 되면은 여러분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고 선업을 짓고 참회를 하고 그렇게 할 수가 있겠죠. 그럼 우리가 이제 앞으로 부자가 되고 잘 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참회를 해서 업을 비우고 복도 짓고 원력을 세워서 실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함께 발원을 한번 해봤으면 합니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시겠습니다. 나는 살생하지 않는 수행을 통해서 그 공덕으로 사람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염원합니다. 나는 도둑질을 하지 않는 수행을 통해서 그 공덕으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재물을 얻을 수 있기를 염원합니다. 나는 음란한 짓을 하지 않는 수행을 통해서 그 공덕으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기갈이 생기지 않기를 염원합니다. 나는 속이지 않는 수행을 통해서 그 공덕으로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고 마음의 평정을 얻기를 염원합니다. 이렇게 여러분들과 함께 발원을 했습니다. 이 발원이 여러분들 마음에 다 씨앗이 되어서, 언젠가는 그 씨앗이 발아를 해서 큰 공덕의 나무로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발원이 실천이 되고 실현이 되려면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좀 힘이 들더라도 그 힘이 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좀 내가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그 어려운 일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좀 억울한 일이 있더라도 그 억울한 일을 풍요롭게 받아들이라 이 말이죠. 그래야만 여러분들이 세운 이 발원이 실현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요만큼만 손해를 보면 야단이 나죠. 그러니까 좀 손해를 봐도 여러분들이 너그럽게 받아주고 이렇게 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극락이 따로 있지 않아요.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서 ‘나는 참 행복하다’ 이렇게 느끼고, 이 행복도 배워야 됩니다. 안 배우면 아무리 행복함 속에 있어도 자기가 행복한 줄을 몰라요. 그러니까 ‘참 행복하다’ 이렇게 생각하셔야 돼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이 잘한다고 알아주기를 바라지 말고 기대하지도 마십시오. 그리고 그저 나에게 지금 주어진 그대로, 내가 지금 호흡하고 살 수 있고, 지금 이 자리에서 법문을 들을 수 있는 이것만으로도, 내가 이러한 법문을 듣고 수행을 할 수 있다라는 이 자체만으로도 여러분들은 엄청난 행복함 속에 살고 있는 거고, 엄청난 기적이 생성되고 있는 세상에 여러분들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참제 업장의 수행은 여러분들의 인생을 여러분들이 만들어 가실 수 있는 그러한 수행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러한 가르침을 또는 인과를 확실하게 믿고 여러분들이 원을 세워서 늘 나날이 자기 자신이 항상 기쁘고 행복함 속에 살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시기를 부탁을 하면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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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니기도] 11월 12일 천독다라니기도 회향 법문
회주 계호스님 2023-11-12
옛날 경상도 어느 절의 뒷산에 곰이 한 마리 살았습니다. 그 곰이 가끔 절에 와가지고 스님네들이 주는 누룽지를 먹고 어슬렁 어슬렁거리면서 있다가 가기도 하고, 또 하루는 와가지고, 이 곰이 스님네들이 참선을 하니까 옆에 와가지고 가만히 참선을 하고, 흉내를 잘 내는 곰이었어요. 그러니까 참선을 하면 옆에서 부스럭거리고 막 이래야 되는데, 하나도 방해를 놓지 않고 그대로 수행을 하고 가만히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삼보에 인연이 있어가지고, 얼마 안 돼서 수명이 다해서 이 곰이 죽어서 사람 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절에 와가지고 곰 행자가 됐어요. 그래서 행자 이름이 웅행자예요. 곰 웅자(熊)입니다. 생김새가 하도 곰같이 생겼고 미련하고 그래가지고, 사람들이 웅 행자, 웅 행자 그랬어요. 근데 하루는 불을 때면서 자기가 삼매에 들은 거예요, 염불삼매에. 발에 불이 붙는 줄도 모르고 막 이렇게 염불만 하고 있는데, 조실스님이 지나가다 짝대기로 웅행자를 한 대 갈겼어요. “멍청이 같은 곰아, 뭐 하고 있느냐. 니 몸이 이렇게 타는데.” 그러니까 깜짝 놀래가지고, 자기가 삼매에 깊이 들어 있어서 몰랐어요. 그래서 가만히 자기 전생을 보니까 전생에 뭐였었어요? 곰이었었죠. 곰이지만은 자기가 그때 전생과 불법을 깨달아가지고 눈물을 흘리면서 법당에서 절을 하며 말하기를 뭐라고 했냐면은, “천 번 나고 만 번 죽음이여. 이 일이 언제 끝날 것인가. 가고 오고, 오고 가면서 무거운 짐만 더하더니, 오늘 비로소 대장부의 큰일을 마쳤구나.” 깨달음의 경지예요. 여러분들이 다라니 기도를 계속하는데, ‘왜 나는 기도 성취가 안 될까? 나는 왜 안 될까?’ 이런 생각하지 마시고, 계속 불법을 향한 그 마음으로 부단히 노력해서, 끊임없이 노력해가지고 포기만 하지 않으면은 다 이룰 수 있는 일이에요. 이 웅행자처럼.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기도를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안 되는 일은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가만히 들어보면. 저도 이제 그냥 앉아있어도 스님네들이 이렇게 하는 염불 소리가 다 들리거든요. 안 들리는 것 같아도 다 들려요. 그런데 우리가 염불을 하면서 간절함이 없으면 안 되는 거예요. 정성과 간절함이 깃들어야지만이 자비와 지혜가 모여가지고, 기도가 성취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다 성취해 마친 거예요. 제가 인과를 깨쳐가지고 인과를 주는 건 아니고, 여러분들 마음에 성취됐다면 성취된 거예요. 성취 안 됐다, 안 됐다 자꾸 하니까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긍정의 마인드가 몇 프로, 90% 이상 돼야 돼요. 부정적인 생각하면요, 될 것도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게, 불위야 언정 비불능야(不爲也 非不能也)라는 말이 초심에 나와요. 능히 하지 아니하면정 능히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다 불가능이라는 건 없어요. 할 수 있는데 안 해서 그렇지. 내가 하고 싶은, 하고 있는 능력 다 갖추고 있어요. 그렇지만은 우리가 처음부터 안 된다 안 된다고 자꾸만 하니까 안 되는 거예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거예요. 옛날에 선수들이라든지 운동하는 사람들은 ‘내가 1등 해야 되겠다, 금메달을 타야 되겠다’ 하는 생각은 요만큼도 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없어야지만이 다 할 수 있어요. 우리도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꽉 차지 않았다 하더라도, 마음속으로는 된다 된다 하는 게 있어야 돼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3일 동안 천독다라니를 했는데, 우리 진관사 신도님들은 어떻게 이렇게 복이 많은가. 도량 복, 살아가는 복, 스승의 인연, 부모의 인연, 다 그게 우리의 막중한 인연이에요. 나의 스승이 다 선지식이에요. 못하는 사람도 선지식, 잘하는 사람도 선지식, 잘하는 사람은 잘하는 사람대로, ‘나는 저 사람을 본받아서 열심히 해야 되겠다’, 못하는 사람 보면은 ‘나는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 되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세상 사람들이. 53 선지식만 있는 게 아니에요. 8만 4천 선지식이 다 내 주위에 있는 거예요. 다 도반들이에요. 그래서 진관사 신도님들은 도량뿐만 아니라 대중 스님들, 또 옆에 같이 다니는 보살님들, 이게 다 선우들이에요. 선우, 착한 벗이라는 말은 선지식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기도를 했지만은, 마음속으로 ‘혹시 나는 안 될 것 같아.’ 이런 말을 조금도 비치지 마세요. ‘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라고만 하시면 다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얼굴도 펴지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고 생각해요. 건강에는 네 가지 건강이 있어요. 몸 건강, 사회적인 건강, 정신 건강, 지혜 건강. 그다음에 여러 가지 건강이 있는데, 우리가 정말 살아가면서 자기한테 도움이 되는 건 다 선지식이라고 그랬죠. 그래서 정말 평범한 스승은 말을 하고, 그다음에 좋은 스승은 설명을 쭉 늘어놓고, 그다음에 뛰어난 스승은 모범을 보이고, 위대한 스승은 감화를 준다 그랬어요. 우리들의 스승은 누구예요? 부처님뿐만 아니라 다 여러분들이 스승이잖아요. 다 스승이에요. 그러니까 감화를 줄 수 있는 분들이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 되겠다’ 하고 감화를 준다든지, ‘나는 저렇게 해야 되겠다’라고 명심을 한다든지, 이것도 다 스승이에요. 몸의 주인은 마음이지만, 마음의 스승은 몸이라 그랬죠. 몸과 마음이 불가분의 관계예요. 몸 건강, 정신 건강이에요. 그리고 지혜 건강이라는 게 있는데, 지혜 건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신지(信智), 다음에는 각지(覺智), 원지(願智)예요. 그럼 신지라는 것은 뭐냐. 지혜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믿는 지혜가 있어야 돼요. 믿는 마음이 신지예요. 믿을 신자, 지혜 지자(信智)예요. 그 신지가 있어야지만이 인과를 믿는 마음, 모든 사람을 믿는 마음, 그게 전부 지혜인 거예요. 신지가 지혜예요. 그다음에 두 번째, 이 지혜가 있을 때는요, 행복하고 건강하고 모든 게 다 따라줘요. 옆에 사람들도 따라줘요. 잘 믿어요. 그렇지만 이 신지가 없으면 사람들이 안 믿어요. ‘저 사람은 거짓이다, 그냥 진짜가 아니다, 가짜다.’ 신지가 없으면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다음에 각지라는 게 있어요. 각지는 깨달을 각자, 지혜 지자(覺智)예요. 지혜 중의 지혜예요. 그래서 이거는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고, 모든 사물의 근본을 알아볼 수 있는 그 깨달음에서 나오는 지혜가 각지예요. 그럼 신지보다 더 높은 차원이겠죠. 각지가 돼야 해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지 않고, 집에서나 절에서나 시공을 초월해서 이렇게 할 수 있는 그런 지혜가 돼야 한다. 세 번째는 원지(願智)예요. 원하는 지혜, 희망과 목적과 목표가 뚜렷해야 되기 때문에 원력이 있어야 돼요. 원력 없는 지혜는 지혜가 아니에요. 원력이 있어야 돼요. 원이 없는 소원은 아니라 그랬죠. 큰 원을 가지고 있으면 원대로, 자기 뜻대로 다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이 기도를 하면서, ‘나는 이걸로 기도를 해야 되겠다, 나는 이런 이런 기도를 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을 항상 품고 있다가 천독다라니 할 때 그걸 다, 온 열과 성을 바쳐가지고 끝까지 한번 해보세요. 온 힘을 바쳐가지고. 그러면 뭔가 다 되는 거예요. 이루어지는 거예요. 하지 아니하면정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랬잖아요. 비불능야. 다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안 한다고 자꾸 미리 뜬금없이 생각하는 거예요. 미리 걱정하고. 괜히 가지도 않았는데 미리부터 걱정하는 거야. ‘아이고 가다가 신발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산에 올라가다가 내가 낭떠러지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이렇게 걱정하면 안 되는 거예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하면서 끝까지 가면은 마지막에 갈 수 있는 거예요. 마라톤 선수가요, 장거리 선수예요, 단거리 선수예요? 장거리죠. 쭉 이렇게 천천히 천천히 가다가, -마라톤 선수는 처음부터 뛰지 않아요.- 서서히 서서히 뛰면서 나중에, 마지막 판에 딱 올인하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처음에 시작할 때는 미미하지만은, 나중에 이거 결정적으로 딱 할 때는 그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혹시 이런 생각 한번 해보셨어요? 공진단이나 청심환 먹으면 머리가 맑아지죠. 내가 약 하나 먹어가지고 머리가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안 드셨어요? 혹시? 그런 생각 안 해보셨죠. ‘공진단이나 청심환 먹으면 머리가 맑아져서 어지러웠던 게 막 밝아졌는데, 이 알약 하나 가지고 있으면은 좋아질 수 있을 텐데. 머리가 맑아지고 남보다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 안 했다면은 그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에요. 우리는 가끔씩 가다가 어떤 때는 그럴 때가 있어요. ‘뭐 알약 하나 있으면은 이거 먹고 딱 좋아지면 좋겠다’ 할 때도 있는데 그건 현실상 없잖아요. 그렇죠? 그건 꿈이잖아요. 그렇지만 그런 꿈을 다 버려버리고, 오로지 믿는 마음, 정말로 믿는 마음이 끝까지 가야, 신심이 돈독해야 된다 그래요. 옛날에 어른들이 그러잖아요. 이제 하루종일 딴 생각하지 말고 좋은 생각만 내자. 그러면 좋아지는 거예요. 전번에 주리반특가가 현상에서 때가 문제가 있었지, 걸레에는 문제가 없다 그랬잖아요. 그렇듯이 우리 마음에도 좋은 마음만 내면 다 이루어질 수 있는 일들이에요. 안 해서 그렇지. 저도 가만히 생각하면 ‘내가 이 나이먹도록 뭐 했나, 내가 한 게 뭐 있지?’ 보면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 표시도 없어요. 오직 늙었다는 생각밖에 없다는 거예요. 늙음. 그것도 나쁜 현상은 아니에요. 왜냐면은 이 나이에 안 늙었다. 그거는 아니잖아요, 그렇죠? 늙음이 있어야지, 생로병이 있어야지 어디로 가요? 사로 가잖아요. 사는 다시 생으로 돌아오고. 리플레이 하는 거예요. 반복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생로병사, 생로병사, 생로병사 하다 보면은 언젠가는 끝이 날 때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가만히 생각해봤어요. ‘진관사 신도들이 왜 이렇게 복이 많은가?’ 기도를 많이 하기때문에. 다른 거 없어요. 기도는 성야라고 그랬잖아요. 기도는 성취예요. 기도를 안 하면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들이 지금 불안 초조하잖아요. 아들인지, 딸인지, 손주인지, 누군지 학교 가는 거 좋은 학교 가야 되는데, 좋은 학교, 좋은 학교 안 가도 돼요. 인성이 좋으면 돼요. 저는 그래요. 좋은 학교가 중요한 건 아니다. 인성이 바로 서야지. 그러니까 공부 잘하고 인성 좋으면 더 좋지만은, 그것도 안 되면은 ‘갑자기 뭐 공부 잘해가지고 뭐 어디 들어간다.’ 이런 생각은 그냥 욕심이지요, 우리도. 그러니까 조금만 해가지고, “아, 내 손주가 조금만 했으니까,” 그래도 서울에 있는 학교 가면 서울대예요. 지방에 가면 지방 대학이지. 안 그래요, 그렇죠? 그러니까 좋은 생각 내면서, ‘오늘도 나는 내가 이렇게 업장 소멸하면서, 우리 식구들이 편안하고, 우리 식구들이 다 행복하고, 이것만 해도 나는 기도 성취다.’ 기도 성취가 큰 건 아니에요. 소소한 데서부터. 제가 그랬잖아요. 마라톤 선수가 점점점점 뛰었다가 나중에 확 진입할 때 1미리미터 차이에 1등이 되는 거예요. 똑같은 거예요. 근데 우리는 단거리 선수 주자예요. 제 경험담인데 학교 다닐 때 운동을 조금 했어요. 다른 큰 운동은 안 하고, 달리기를 잘해가지고 단거리 선수에서 스타트할 때 1인자였거든요. 라인을 잘 서야 돼요. 어떤 라인을? 그냥 이렇게 가다가 나는 이 자리에 서야 되겠다 하면 옆에 있다가도 얼른 이리로 오더라고요. 그렇게 해가지고 단거리 스타트를 하니까 성공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나는 단거리 선수이지 장거리는 아니다. 느긋하게 가는 건 못하니까. 성격이 다 그래요. 좀 빠른 사람들은 단거리로 가고, 좀 느긋하고 아주 좀 끈기 있는 사람은 이렇게 장거리로 가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라인을 잘 맞춰가지고 맨날 1등 했어요. 그냥 다른 건 못해도 운동할 때만, 그렇게 달릴 때만 그래요. 그래서 이걸 내가 살아가는데 한번 배대해 봤어요. 10대는 그렇고, 20대, 30대, 40대, 50대까지는 좋았는데, 60대까지도 괜찮은데, 70대 올라가니까 찌글찌글해지기 시작하는데 이게 정상이 아닌 거예요. 그래도 받아들여야 되잖아요. 그렇죠? 이거 안 받아들이면요, 괴로워요. 낙천적인 사람이 왜 성격이 좋냐면은 관심을 안 두기 때문에, 남이 뭘 하든지 말든지 조금 덜 관심을 가져요. 근데 성격이 굉장히 날카롭고 예민한 사람들은 남이 말하는 데 신경을 쓰다 보니까, 내 살아가는 게 살림살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쭉 밀고 나가고, 부처님 말씀만 제대로 들으면은, 수지독송이란 뭐예요? 부처님의 말씀처럼 부처님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살아가면 그게 수지독송이에요. 그러니까 안 된다, 안 된다 하지 마시고, ‘아, 이렇게까지 왔는데도 정말 부처님 감사합니다.’ 안 그래요? 그렇죠. “나는 너무 고맙습니다. 정말 이렇게까지”. 이게 부처님 은혜가 아니면은 어떻게 이렇게 절에 와가지고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장애도 있기는 있겠지만은, 장애도 하나의 반전이라 생각하시면 돼요. 그걸 갖다가 반복해서 다시 일어나면 그게 장애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장애를 장애로 여기지 말고, 다시 일으킬 수 있는 힘이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여러분 열심히 기도하셨어요. 혹시 기도 잘 안 한 사람 손 들어보세요. 누가 “부처님 되고 싶습니까?” 하니까 손 하나도 안 들었대요. “부처님 되고 싶습니까?” 하면 손 들어야 되잖아요. 그렇죠? 그렇듯이 “성취하고 싶습니까?” 하면 다 손 들어야 돼요. 근데 오늘 여러분들 얼굴 보니까 다 성취된 것 같아요. 그래서 진관사 신도님들은 내외로 복이 많고, 안과 밖이 정말 이런 도량도 없다 싶어요. 우리 주지스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학생회 다녔거든요. 딱 절에 오니까 전생에 살던 곳이더라고요. 우리 주지스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 우리 주지스님은 딱 주지를 보더니 ‘저 사람이 진관사를 이끌고 갈 스님이구나.’ 이렇게 찜을 해놨다. 옛날부터 우리 주지가 살림을 잘 살아가지고 앞으로 이끌어갈 사람이다. 그 정도로 우리 스님한테 인정받은 거예요. 그러니까 얼마나 그게 인정스러워요. 저는요 기도하면서 뭐 다른 스님들도 다 잘하는데 선행 스님만 보면은 왜 그렇게 신심이 나는지. 거기다가 또 지범스님, 우리 주지스님 도반스님, 우리 사제 정호스님은요, 저보다 나이 1살 적은데 얼마나 기도 열심히 하는지 몰라요. 선우스님, 덕원스님, 응선스님, 덕구스님, 덕경스님, 창일스님, 창일스님은 일취월장이야, 염불이. 살아가면서 이런 좋은 날도 있어야지, 여러분들도 행복하잖아요. 저희들도 행복하고. 그래서 우리가 천 명이 법문을 들어도 100명이 알까 말까 하고, 100명 중에 10명이 깨달을까 말까 한다는 그런 말씀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잘 새겨가지고 요점을 잘 알고, 또 살아가면서 이렇게 살면 정말 이게 행복이구나. 부정하지 않고 긍정만 자꾸 하면서, 좋은 생각 내면은 신장님이 우리를 도와줘요. 옛날에 그랬잖아요. 콩이 세 알 나오는데 도량에 잘 사니까 콩이 다섯 알 나와가지고 두부 만드는 데 도움 줬다는 거. 다 그게 그런 거예요. 그래서 저는 신도님들 얼굴만 보면은 ‘같이 나도 저렇게 좀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불쑥불쑥 일어나요. 그렇게 안 돼서 걱정이지. 그런데 여러분들 보면은요, 이거는 참 전생사가 전전생사다. 진관사 인연은 전전생사지, 그냥 인연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게 국찰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여러분들이 봉사도 잘하고, 수륙재도 잘하고, 학교도 입학했고, 또 거기다가 같이 가끔 보면은 <옴 마니 반메 훔>, 아니면은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타야 훔>하면서, 왜 금강경 독송할 때 같이 하잖아요. 그것도 다 그런 거에요. 그러니까 항상 행복하다고 느끼시고 행복하고 건강합시다. 생각 같아서는 엄청 크게 뭐 잘할 것 같지만, 잘 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론은 다 같이 행복하고 다 같이 건강하자는 내용이에요. 열심히 하면 부처님 될 수 있다는 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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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륙재] 10월 21일 수륙재회향 법문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 2023-10-21
-감로, 함께하는 세계를 위한 축복과 환희- 고륜본불락청천(孤輪夲不落靑天)인데 연비산산공착영(連譬山山空捉影)나무아미타불 지금 진관사에서는 국행수륙대재를 49일 전부터 시작해서 오늘 회향하는 시간임을 여러분들 잘 아실 겁니다. 그동안에 우리 법사스님들의 고구정녕한 그런 무진 법문도 많이 계셨고, 또 이 의식을 행하는 여러 스님들이나 또한 많이 참석하여 주신 사부대중 여러분들께서도 수고가 많았습니다. 나는 이런 법회를 잘 할 줄 모르고, 법문도 할 줄 모르고, 그래서 안 오려고 했는데 ‘한 번 그래도 나타나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 그러면 얼굴 한번 보이라’ 하는 거구나 싶어서 왔습니다. 그런데 이 진관사에서 오늘 하고 싶은 말은, 계호스님하고, 여기 법해스님, 여러 사부대중들께서 이 시기에, 이 시류에 맞는 대단히 훌륭한 일을 했다고 칭찬하고 싶습니다. 박수 주세요. 왜냐하면 고속철이 속력을 많이 내는데, 속력을 아무리 많이 내도 철로를 이탈하지 않으면 되거든요. 그래서 진관사에서 하는 일은 이 시대에 너무나 맞고, 너무나 앞서가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우리 부처님의 본분사에 대한 법도를 조금도 이탈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더욱더 박수를 한 번 더 줬으면 좋겠습니다. 말 그대로 국행수륙재잖아요. 국가 차원으로 이런 수륙재를 했습니다, 옛날에. 그래서 우리가 그 전통을 이어서, 6.25 사변이나 등등 이런 때 이게 조금 희미하게 좀 끊어졌다가 그걸 다시 복원해서 이 진관사 국행수륙대재가 아마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문화재로 등록하려고 지금 준비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원만히 성취되기를 기원합니다. 이 국행수륙대재는 이때까지 법사스님들에게 설명도 많이 듣고, 49일 동안 지내오는 동안에 여러분들이 그에 대한 의미는 많이 알고 계시리라고 봅니다. 지금 내가 오늘 올라오는데 차가 막힌다, 뭐 한다 이래서 오기가 좀 힘들었는데, 이 많은 영혼들, 이 영혼들은 비행기를 타고 오는 것도 아니고 자동차 타고 오는 것도 아닙니다. 이 자리에 49일 전부터 어떤 행사가 벌어졌냐. 불보, 부처님의, 불보살님의 증명 하에, 옹호신장의 옹호하에 많은 위국절사 충의장졸 비명액사 무주 유주 고혼들이 많이 있는데, 그 고혼들을 다 여기 불러 모읍니다. 불러모아서 염불을 하고 깨치도록 하고 행사를 해서 이고득락하게 하는 그런 행사입니다. 동시에 망자들은 그렇지만은, 생존자들은 어떻게 되느냐. 이 행사를 통해서 우리가 의학에도 제일 좋은 게 예방의학이고, 범죄도 범죄 이후에 다스리는 것보다 범죄 예방이 최고다. 병도 병 난 다음에 치료하는 것보다 병 안 나는 게 낫지 않아요. 그래서 이런 행사는 여기에 영가들은 영가들대로 했지만은, 영가 아닌 이 현실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부 예방 차원에서, 지옥을 면하고 극락을 갈 수 있는 그런 길을 인도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가 없으면 뭐 하려고 합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은 그런 점을 다 아시고, 이렇게 많은 사부대중이 참여해서 이런 행사에 참여하니까 이거야말로 옛날에 있었던 그 국행수륙대재가 아니고 뭐냐 이거지요. 그래서 전부 다 오나라 말세에 인개왈 여는 성야라 하니 수지오지자웅(誰知烏之雌雄)고 하는 말이 있어요. 사람마다 자기 말만 다 옳다 하니까 누가 암까마귀인지 수까마귀인지 모르겠다 이런 말이 있거든요. 지금 역시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은 우려되는 것이 전부 자기만 잘났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말은 다 틀렸고, 남 하는 거는 다 글렀고, 자기만, 자기 말만 옳고 자기만 잘 안다고 생각하는 거라. 그래서 혼란이 초래되고 말세가 될까 봐 얼마나 염려스러운지 모릅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동감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청산은 원부동(靑山元不動)이요 백운은 자거래(白雲自去來)라. 청산은 원래 움직이지 않아요. 흰구름은 왔다 갔다 한다 이거라. 그러면 그게 무슨 말이냐. 나의 중심은 청산이라. 백운은 그때그때 그날 그날 일어나는 현상이라. 우리가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안 좋은 일도 있는데, 이거는 백운이라. 백운이 덮친다고 해서 산이 넘어집니까. 백운이 떠난다고 해서 산이 넘어집니까? 산은 중심이거든요. 그래서 마음은 중심이고, 생각은 백운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을 청산과 같이 굳게 가져야 된다 이거라. 생각은 이 생각도 할 수 있고 저 생각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그런 의미들을 종합해서 이 49일 동안에 법문하고 행사하는 것의 의미가 거기에 있다 이겁니다. 공지끽식(共知喫食) 이위기장(而慰飢腸)하고, 부지학법(不知學法) 이개치심(而改癡心)이니라. 다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서 그 허기를 면하려 하는 거는 누구든지 다 알아요. 그런데 이 훌륭한 진리인 불법을 배워가지고 어리석은 마음을 개선해야 되겠다 하는 걸 여러분들 다 압니까? 그런 법을 배워서, 훌륭한 정법을 배워가지고 어리석은 마음을 개선해야 되겠다, 그래야 된다 이거거든요. 이번에 이런 행사하는 것이 다 그런 뜻에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뭐하러 합니까? 그래서 여득인신불수도(汝得人身不修道)면 여입보산공수래(如入寶山空手來)라 하는 말이거든요. 인신을, 사람의 몸을 받아가지고 도를 닦지 않으면은 보배산에 가서 빈손으로 나오는 거와 한가지다. 이거는 보배산에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건 뭡니까? 헛일한다 이 말이거든. 왜 비싼 밥 먹고 왜 헛일 하고 다니냐 이거라. 여러분들은 한 사람도 헛 일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얼굴을 보니까. 그래서 이 법회는 정말 이 시대에 걸맞는 법회고 미래지향적인 법회입니다. 그리고 전 국민에게도 마땅한 법회입니다. 진관사에서 스님들 몇 사람, 신도 몇 사람 모여가지고 행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중동이니 어디니 지금 얼마나 어려운 곳이 많습니까.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습니까. 그거 다 비명액사거든요. 나는 6.15를 겪었습니다. 6.25 전쟁터에 많은 사람들이 죽는 걸 봤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제주 사건, 여수 사건, 심지어는 5· 18 사건, 세월호 사건, 또 얼마 안 됐지만, 이태원 사건 등등 이래서 너무나 아까운 비명액사를 한 그런 인간들이 얼마나 많냐 이거에요. 이런 영가들을 전부 여기 다 불러모았습니다. 여러분 안 보여서 그렇지 다 모였습니다. 다 모여가지고 좋은 법문 들려서 이고득락 다 시키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들 몰랐지요. 여기 다 왔었어요, 다. 그러니까 지금도 이렇지만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여리박빙(如履薄氷)하고 여림심연(如臨深淵)이라. 얇은 얼음을 밟는 것 같고, 깊은 저수지의 못 근처 가는 것 같이 해야 된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조심해야 된다 이 말이라. 여러분 얼음을 밟으면 어찌 됩니까? 얇은 얼음을 밟으면 안 돼요. 그리고 깊은 못에 근처에 가면 위험하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조심해야 된다 이 말이거든.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국민들은 자기가 아무리 잘났다고 큰소리 쳐도 자기만 큰소리 치면 안 됩니다. “모든 국민들이 우리가 전부 다 조심조심하고 정신 차려가지고 앞으로 이런 수륙재가 필요 없다.” 그런 말이 나오도록 좀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정말 이 시대에 한국뿐만 아니고 전 세계 인류에도 이러한 수륙재가 필요합니다. 이제 앞으로는 필요 없도록 좀 해봤으면 싶습니다. 그러나 이 행사는 그야말로 우리 민족의 무형문화입니다. 무형문화이기 때문에 이것은 필요 없더라도 보존해야 안 되겠습니까. 그래서 앞으로도 열심히 해주시고, 여기 모두 보니까 수고들 많이 하셨는데,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셔가지고,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가 되고, 더 국태민안하고, 만민이 함락하기를 기원합니다.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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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행수륙재] 10월 8일 국행수륙재 5재 법문
지운스님 2023-10-08
네, 반갑습니다. 국행수륙재라고 해서 왜 국행이 붙었는가 한번 찾아봤습니다. 그래서 이제 좀 공부를 해봤죠. 1397년에 이성계가 나라의 안녕과 국민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서 이 진관사에서 처음으로 수륙재를 봉행했다는 겁니다. 625년 전이죠. 그래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렇습니다. 우리가 왜 수륙재를 지내야 되는가. 수륙재는 물에 사는 중생, 육지에 사는 중생들, 그 영혼을 달래주고 천도하는 의식이죠. 그런데 지구상에서 1년에 이 중생들이 몇 명이 죽는가. 깜짝 놀랐습니다, 찾아보고는. 600억이나 되는 동물들이 죽습니다. 소, 돼지부터 해서, 가장 많이 죽는 중생은 닭입니다. 1년에 500억 마리가 죽습니다. 동물들하고 우리하고 어떤 면에서 차이가 없어요. 동물들도 기억할 줄 알고, 생각할 줄 알고, 아파할 줄 알아요. 감정이 있어요. 똑같은 마음을 가진 존재라는 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 얘기를 좀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왜 죽어야 하는지. 많은 생명이 죽을 때에는 거기에는 뭐가 있느냐는 겁니다. 바로 인간의 무지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 내용이 12연기(十二緣起)인데, 그 연기법에 보면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입(六入)·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 무명은 무지를 이야기하는데, 무명으로부터 결국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겁니다. 수많은 생명이 죽는 것은 이 무명, 무지에 의해서 죽는다는 겁니다. 인간의 무지에 의해 가지고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있는 거죠.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죠. 유럽 쪽이나 미국 쪽에 산불이 난다든지 홍수가 난다든지 이런 게 기후 변화에서 오는 이 동물의 죽음과 상호 관계가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학자들이 다른 고기는 그러더라도 소고기만은 먹지 않으면 지구 온도 1도는 낮출 수가 있다, 이렇게 얘기할 정도예요. 자동차 한 대가 탄소를 발생하는 것은 소 4마리하고 같이 맞먹습니다. 지구상에 있는 차보다는 소가 더 많다는 겁니다. 소가 방귀 뀌고 하품하고 전부 다 탄소입니다. 그런데 그 동물을 맛으로 먹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죠. 고기 1kg를 얻기 위해서는 곡물 4kg를 소에게 먹여야 돼요. 이런 것은 전부 다 무지에서 오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다 들었으리라 보고요. 무지, 무명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이는가에 대해서 역사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죠. 혹시 <오펜하이머> 영화를 보신 분 계시죠? 그 사건은 여러 가지 시각에서 볼 수 있지만은, 불교적인 시각에서 보면은 무명, 무지에서 일어난 비극입니다. 1938년도에 독일 과학자가 원자를 쪼개니까 엄청난 에너지가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1939년도 2차 대전이 발발을 하죠. 그리고 유대계 독일 과학자들이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 이름으로 편지를 쓰죠. 트루먼대통령에게. 히틀러가 원자폭탄을 먼저 만들면 안 된다는 거죠. 수많은 사람이 희생될 거니까, 미국에서 먼저 만들어야 된다고 탄원서를 넣는 거죠. 그런데 미국 정부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국 정보부에 정보를 제공했죠. 그래서 원자폭탄을 만들기로 한 겁니다. 오펜하이머가 책임자고 많은 과학자들을 규합해서 3주 만에 폭탄을 만들어내죠. 히로시마하고 나가사키에 폭탄이 투하됨으로 해서 약 30만 명이 한 번에 죽었습니다. 근데 이건 어디서 비롯됐습니까? 히틀러는 600만 명을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을. 무지에서 기인하는 거죠. 무명이 있다는 것은 결국 죽음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 수륙재를 왜 하겠습니까? 무지에서 벗어나야 되겠죠. 많은 생명에 대해서 우리가 이렇게 재를 올리고, 극락왕생을 빌고 이렇게 하는데, 근본적인 문제는 이 무명을 없애는 데 주력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봅니다. 능가경에 보면은 이런 얘기가 있죠. 시비라는 왕이 있는데, 이 왕이 보시하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인드라 신, 신들의 왕인 인드라 신이 한번 시험을 해봐야겠다, 그러고는 이제 비둘기로 매한테 쫓기는 연기를 하죠. 왕에게 가서 “제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저 매가 저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시비왕이 비둘기를 감싸주죠. “그거 내 먹이니까 내달라.” “그러면 이 비둘기 먹이만큼 내가 고기를 주겠다.” 그러니까 매가 하는 말이 “나는 따뜻한 피와 살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왕이 그러면은 “내 허벅지를 베어주겠다.” 허벅지를 베어주겠다 하니까 허벅지 고기는 따뜻한 피와 살이죠. 근데 그걸 가져와서 “저울에다 달아라.” 그래서 비둘기를 올려놓고 허벅지를 살을 베어서 올렸는데 부피를 보면은 허벅지 살이 더 많은데 비둘기가 더 무겁더라는 거죠. 왕이 그걸 알고 자기 몸을 올려놓습니다. 비둘기와 왕의 몸무게가 똑같은 겁니다. 이건 뭘 이야기 하는 겁니까? 생명은 평등하다는 거죠. 동일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왕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비둘기를 놓아주라. 내 몸을 너에게 주겠다.” 능가경에 나오는 이야기예요. 부처님께서 능가경에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고기를 먹지 말라.” 이렇게 얘기를 하고, 중생의 고기를 먹으면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말이 말이 되느냐 하는 거죠. 안 된다는 거예요. 고기를 즐겨 먹게 되면은 꿈자리가 시끄럽고 두려움과 불안에 떨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보로 사자나 호랑이나 고양이나 살쾡이 같은 그런 과보를 받는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먹지마라, 중생을 위해서.’ 이렇게 얘기하죠. 요즘 안 먹고는 못 배기죠, 그렇죠. 좀 줄이세요. 정말이에요. 저 고기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2003년도에 라다크에 가게 됐었어요. 청전스님하고 같이 가다가 랑둠곰빠, 처음으로 이제 절을 만나게 돼서 갔는데, 그날이 하필이면 티베트 역으로 4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이에요. 근데 거기에 신도들은 전부 다 유목민들입니다. 그래서 유목민들이 스님에게 공양 올리는 게 있었는데, 뭘 하나 주길래 한번 먹어보래요. 유목민들이 우리한테 공양 올렸대요. 근데 딱 씹으니까 명태 맛이 나는데, 이게 뭐냐고. 한번 씹어봤어요. 그러니까 야크고기를 말린 것이다. 저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입에 들어가는 걸 빼고는 다 거부했습니다. 그렇게들 얘기해요. “스님은 고기를 안 먹으면 체력을 어떻게 유지합니까?” “고기를 안 먹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러면 “코끼리는 풀만 먹었는데 힘이 왜 그리 세죠?” 제가 그렇게 반문을 합니다. 그래서 절에는 항상 콩자반이라든지 콩나물이라든지 두부가 늘 올라옵니다. 다 이유가 있는 것이죠. 그리고 때때로 국수를 먹게 되죠. 단백질 섭취입니다. 스님들이 왜 그렇게 했을까요?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중생에 대한 자비심이고, 생명의 근원에 대한 통찰력입니다. 지구상의 수많은 과학자들 천재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고기 먹는 것을 제지 못 했을까요? 무지 때문입니다. 무명 때문에 그런 겁니다. 가장 안타까운 중생 중에 하나는 뭐가 있겠습니까? 아귀가 있죠. 제가 아귀에 대해서 좀 설명을 하고, 회향 공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다음에 이제 이 공동체 대한 얘기를 좀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수륙재를 지내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공동체를 얘기 하는 겁니다. 공동체의 가치를 구현하는 일이에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빨리 경전의 주석서에 보면은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한 사냥꾼이 사슴을 잡아서 사슴의 뒷다리를 잘라서 불에 구워 먹습니다. 근데 목이 몹시 말라. 집안에 물을 아무리 찾아도 물이 없으니까, 절에 가면 늘 절에는 스님들 물을 비치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쫓아 내려갔습니다. 근데 그 많은 주전자에 물을 따라도 물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 거예요. 화가 나서 스님들을 막 욕을 욕을 하고 있는데, 노스님이 나오더니 막 그 사냥꾼의 얼굴을 보고 “물을 마시고 싶으냐” “그렇습니다.” 그냥 주전자를 딱 따르니까 물이 나오는 거예요. 그 청년이 물을 마셨습니다. 그래 스님께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네 얼굴을 보니까 아귀로 좀 바뀌어가고 있네.” 사냥꾼은 사냥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결혼하고 처자식이 생기니까 사냥을 더 많이 했던 겁니다. 그러면서 많은 생명을 죽이게 되고, 아귀로 바뀌어가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스님의 말씀을 듣고 출가를 하게 됩니다. 출가수행을 하게 되면서 “아, 생명을 많이 죽였으면 지옥에 갈 건데 지옥의 불이 그렇게 무서울까?” 이런 생각을 해서 스승한테 이 얘기를 합니다. “지옥의 불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이렇게 얘기를 하십니다. “그러면 장작을 물에 적셔서 절 마당 위에 쌓아두어라. 내가 지옥불을 가져오겠다.” 그리고 스님께서 앉아 선정에 들어가서 지옥에 가서 조그마한 불씨를 하나 가져옵니다. 가져 와서는 제자 앞에서 산더미같이 쌓은 물에 적신 장작불에 불씨를 떨어뜨리죠. 떨어뜨리는 순간 재로 바뀌어버리는 겁니다. 제자가 깜짝 놀랍니다. 그러고는 이제 더 열심히 수행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 아귀이라는 것은 욕망의 표현이에요. 우리는 수많은 아귀들이 있는데, 스님들이 발우공양하고 난 뒤에 그 청수물을 먹을 수가 있어요. 거의 물을 못 마십니다. 물을 마시면 전부 불로 화해서 물을 마실 수가 없어요. 물이 다 말라버리거나 이런 증상이 생기죠. 불쌍한 중생이에요. 이 아귀라는 중생을 구제를 해야 되겠죠. 가장 굶주리는 중생이에요. 대표적인 중생을 얘기하면은 그런 얘기죠. 우리가 수륙재를 지내서 이런 중생들을 구제하는데 회향하는 그 공덕은 어떨까. 회향에 대한 얘기를 해드리죠. 공덕이라고 하는 거는 훌륭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원인이란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모여서 수륙재를 지내는 거는 여러분의 공덕을 짓는 건데, 이것을 회향을 해야 되겠죠. 제가 서울에 살 때가 있었습니다. 80년대 초에 종운이라는 스님하고 조계사를 가게 됐습니다. 그때는 거기 살았었어요. 개운사 안에 중앙승가대학이라고 있었습니다. 강원을 졸업하고 이제 입학을 해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래서 조계사에 가게 돼서 종운이라는 스님하고 같이 이제 도반으로 가게 됐는데, 웬 처녀가 종운 스님에게 물건을 보시를 했어요. 스님은 딱 물건을 받자마자 그 처녀의 옷자락을 딱 잡았습니다. 잡고 붙들고는 그 앞에 있는 다방에 데리고 가서 물건을 다 끄집어 내놓고 이걸 왜 주느냐고 물어보는 거죠. 근데 이 처녀의 모습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키는 작고 등이 굽었습니다. 곱사등을 갖고 있었죠. 근데 얼굴은 미소를 짓고 빛나고 있었어요. 그 연유를 물어봅니다. 왜 이것을 주느냐. “스님 저는 일주일에 두 차례 조계사 가는 날을 정해서 어느 누구에게나 보시를 행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낙담을 하고, 자기 여동생에게는 편지도 오고 선물도 주고받고 애인하고 그러는데 그런 걸 보면서 자살 기도를 두 번이나 하고 죽지 못해서 이러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길을 가는데 인생에 살 만한 어떤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가니까 거기 휩쓸려 간 곳이 조계사예요. 그런데 토요일인데 법당에서 청년들의 법회가 열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하염없이 거기에 그냥 법당 밖에서 계단에 앉아서 듣게 됐습니다. 법사 스님이 뭐라고 이야기하냐면, “보시를 하라.” 그 법문을 듣고 이분이 결심했대요. 일주일에 두 번 부처님께 보시를 하겠다. 근데 이분은 만드는 재주가 있어서 물건을 만들어서 보시를 하는데, “내가 이렇게 정성들여서 내가 왜 보시를 하지.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창피스럽기도 하고.” 그러다 참고, 스님 말씀에 따라서 계속 보시를 하다가, 한 3개월쯤 지나서야 비로소 이런 깨달음이 왔다는 겁니다. ‘내가 보시를 하는 것은 본인이 모든 사람들은 다 받아서 이루어진 존재다. 우리는 부모의 은혜를 입고 동식물의 음식을 먹고 공기한테 다 받아서 이루신 존재이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이니까 베푸는 게 아니라, 당연히 내가 받아서 이룬 존재 그러면 나도 남에게 베푸는 건 당연한 일이다.’라는 깨달음이 왔다는 거죠. 큰 기쁨이 생기기 시작한 거죠. ‘내 몸의 장애가 아니라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것이 장애다’ 하고 생각을 했던 겁니다. 그리고는 내가 물건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이것을 남에게 베풀자. 그러고는 이제 인생을 바꾸게 됐습니다. 보시한다는 건 회향한다는 거에요, 얘기하자면. 그래서 이분은 파랑새라는 익명으로 글도 쓰고, 조계사에서 청소년 상담도 하고, 그러다가 나병 환자촌에 청년들하고 같이 봉사하러 갔을 때 손이 뭉뚱뭉뚱한 나병 환자들이 그냥 고맙다고 그 밥풀 묻은 데 콜라를 따라주는데 아무도 청년들은 받지를 않더라는 거에요. 자기는 받아서 마시고, 같이 포옹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았대요. 본인은 생명이라는 것은 받아서 이룬 존재이기 때문에 남에게 베풀어야 된다. 여러분들 태어나고 지금까지 채식만 하시지 않았죠? 고기를 드셨잖아요. 그죠? 저도 어릴 때 먹었습니다. 그러면 미안한 마음도 있어야 될 거고, 생명을 보존했으니까 고마운 마음이 있으면 회향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받았으면은 주는 것이 있어야 되는데, 받기만 하고 주지 않으면은 이기적인 것이죠. 그렇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모인 거 아니에요. 그러면 회향은 어떤 뜻이 있는가. 회쟁론에 보면, 용수보살의 저술이에요. 일단의 장사치라 그럴까, 옛날에는 장사를 하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다닙니다. 도적 떼들의 습격도 있고 하니까. 근데 그중에서 이제 장사를 하기 위해서 쭉 가다 보니까 발가벗은 여자애가 추위에 발발발발 떨고 있는 거죠. 그래서 한 상인이 갔어. “내 옷을 줄까?” 이러니까 여자아이가 하는 얘기가 “그 옷을 저한테 준다고 해서 저는 입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네가 옷을 입을 수 있느냐” 했더니 이렇게 얘기합니다. 요 밑에 가면 절이 있으니까 옷감을 스님에게 사정 이야기하고 맡기면은 제가 옷을 입을 수가 있습니다. 알고 보니까 아귀예요. 여자 아귀예요. 그래서 추위에 발발 떨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상인들이 그걸 보고 절에 가서 옷감을 내놓고 이 아귀에 대한, 여자 아귀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스님이 알았다고. 보시를 하고 얼마 있어서 아귀가 다시 나타나서 옷을 입고 너무 고맙다고. 이게 회향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에게 베풀어야 되는 것이죠. 삼처회향(三處廻向)은 해야 되지 않습니까? 일체중생들에게 우리가 은혜를 입었으니까 다시 돌리는 회향을 해야 될 것이고,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생사가 없는 도리를 가르쳐주시니까, 부처님께 회향을 해야되겠고, 또 하나는 우리는 이런 회향하는 목적이 삶과 죽음에서 벗어나서 불사 열반을 얻는 데 있습니다. 이야기하자면. 그래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서 무주처열반을 얻는 걸 목적으로 해야 됩니다. 그러면은 깨달음의 회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수륙재에 동참을 해서 이 모든 생명에게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사용했던 공덕을 베풀 때는 삼처회향이 돼야 되는 거죠. 마지막에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 회향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무지가 없어지는, 무명이 없어지는 거죠. 이게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을 해보십시오. 소는 36개월 되면은 도살합니다. 그럼 이제 암소는 좀 놨두죠. 새끼를 낳기 때문에. 그래서 새끼를 낳을 능력이 없으면 도살장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소고기를 너무 즐기면은 소로 태어날 과보를 받을 가능성이 있어요. 소로 태어나면은 36개월 만에 인간의 입으로 들어갑니다. 혹시 여러분 개를 키우고 고양이를 키웁니까? 어느 학자가 이렇게 기고를 해놨어요. 고양이라든지 개의 사료를 이 채식으로 전부 다 사료를 돌리면 1년에 약 76억 마리의 소나 돼지가 살 수가 있다했어요. 놀라운 일이죠. 우리는 좀 자제를 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회향을 할 때 이제 삼처회향을 하면서 마지막에는 무지가 깨질 수 있도록,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서원을 하셔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공덕을 회향하는 방법입니다, 얘기하자면. 베풀어야 됩니다. 우리는 그냥 사는 존재가 아니에요. 땅에게 베풂을 받고, 공기 베풂을 받고, 저기 나무들에게 베풂을 받죠, 얘기하자면. 그리고 많은 동물과 식물의 베풂을 받아서 이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거예요. 그래서 회향을 하시고, 또 하나는 또 어떻게 해야 되겠죠? 이렇게 모여서 이렇게 공동체를 형성해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 죽임이 아니고 생명 살림입니다, 얘기하자면. 수륙재를 지내는 것은 생명 살림의 뜻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권유를 해서 진관사만이 아니라 어느 절에도 수륙재를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될 거라고 봅니다. 생명은 인간만의 생명체가 아니라는 얘기죠. 수많은 동물의 종, 식물의 종이 사라지는데 유엔에서 걱정하는 게 생명 다양성에 대한,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왜? 자연이 훼손이 되면 수많은 동물의 종과 식물의 종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럼 인간이 살 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거죠. 같이 더불어서 같이 살아야 되는데. 그렇잖아요. 그래서 이 공동체, 수륙재라는 공동체의 가치를 확실하게 우리가 인식을 해야 되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모습을 저는 두 눈으로 지금 보고 있습니다. 진관사 국행수륙재입니다. 저는 수륙재 처음 법문을 하고 있고, 어떤 절에 가서 수륙재에 참여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여러분 앞에서 수륙재 법문하게 된 걸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공부를 조금 했습니다. 같이 이렇게 수륙재에 동참을 하고, 많은 생명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지는 것, 이 기후 변화가 앞으로, 딱 이것만 이야기하고 끝내겠습니다. 탄허스님께서 그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앞으로는 자연 재해가 많이 발생할 것이다. 빙하가 녹아서 일본은 3분의 2가 잠길 것이고, 대한민국의 동쪽에는 한 100리 정도 물에 잠기고, 서쪽에는 한 200리 정도 다시 육지가 올라올 것이다. 중국은 두 쪽 나고, 그리고 전 세계에 수많은 자연재해가 생길 건데, 그나마 대한민국은 자연재해를 가장 적게 피해를 입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은 죽을 것이지만 그나마 대한민국은 낫다는 겁니다. 그래 여러분들이 이제 앞으로 수많은 자연재해가 많이 생기고, 많은 생명체도, 많은 사람이 죽을 겁니다. 그래서 매년 이 진관사의 수륙재, 국행수륙재를 이렇게 하는 거에 대해서 많은 동참을 하시고요. 또 이곳에 누구에게라도 이 생명의 가치를 말씀드리고 같이 동참할 수 있도록, 이 수륙재 그대로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그런 자리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동참을 해야 됩니다. 역설을 하셔야 되고요. 이 공동체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를 더 아마 하겠죠. 살생을 하지 마라 하는 건 계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기회가 되시면 여러분들이 적어도 그걸 하셔야 되지 않을까. 하시고 계실 거라 보기는 하는데 포살을 하셔야 됩니다. 1년에 한 차례 정도는 보살계 수계식을 하시고, 그리고 보름마다 포살 하면 얼마나 좋겠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자비선사는 한 달에 한 번 포살을 꼭 합니다. 포살을 하고 1년에 한 차례 꼭 보살계 수계식을 꼭 하고, 심지어는 유명계까지 합니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불명을 주는 유명계 행사까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수륙재와 연관해서 그런 계율 행사, 포살 행사도 곁들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것이 바로 이제 공동체의 가치를 선양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 여기서 법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