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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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니]관세음보살 42수 진언 다라니 3년기도 회향 및 천독다라니기도 회향 법문
조계종 포교부장 가섭스님 2019-11-10
<다라니 기도로 법의 생명을 깨우자.> 다라니기도 잘 마치셨지요? 밖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더라고요. 무슨 꽃비냐 하면 낙엽꽃비. 낙엽꽃비가 다라니기도 내내 내렸어요.제가 제일 좋아하기도 하고 존경하는 법해스님이 낭랑하게 축원을 하시는데, 어찌 그리 잘할꼬. 하늘에서는 낙엽꽃비가 내리고 너무 좋았어요. 왔다 갔다 하고 있었어요. 왜 그랬냐하면, 내가 왔다 갔다 하면 좀 빨리 끝낼까 싶어서(웃음) 가야할 시간은 있고, 마음은 급하고, 할 얘기는 많고, 해주고 싶은 애기는 많고 바빠 가지고. 그래서 덕원스님한테 저기 올라가 있다가 “앞에 가있자. 내가 키가 크니까 얼굴이 보일 거다. 그럼 빨리 끝나지 않을까.”하고 왔는데, 안 먹히더라고.(웃음) 기도에 쫙 빠져있는데. 그리고 손수 쓰신 다라니를 받으려고, 뒤에서 보니까 난 BTS가 온 줄 알았어요. 줄을 쫙 서서 다라니를 받으려는 열정이 부글부글 타. 너무 좋았습니다. 다라니기도를 늘 하는 줄 아는데, 다라니기도를 해서 우리가 얻는 게 뭘까. <다라니 기도로 법의 생명을 깨우자.>라는 주제로 짧게 할까 합니다. 왜냐하면 끝나고 나서 천도재도 지내야하죠. 여러분이 천수경을 늘 외우다보면, 다라니를 늘 하다보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정구업진언>이잖아요. 그 다음 나오는 게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오방을 안팎으로 편안하게 하는 진언, 그 다음이 <개법장(진언)>, 개는 열다, 오픈한다는 뜻이에요. 절 문도 열어놔야 들어오잖아요. 법당문도 열어놔야 들어오죠. 가게도 열어놔야 돈을 벌어요.법장은 법의 창고, 곳간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그 법장은 우리 안에도 있어요.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곳간이 있는데,그 곳간을 여래장이라고 합니다. 경전에 보면 <여래를 보고 싶은 자,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 연기를 볼 것이고>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연기나 법이나 여래나 다 같은 말이지요. 내 안에 여래장이 있는데, 여래가 숨어져 있는 데가 있는 거예요. 그 법을 여래로 바꾸면 개여래장인 거예요. 내 마음에 여래의 장, 곳간을 여는 거예요.정구업진언을 하고, 내 입을 밝히고, 입이 방정이라 입으로 짓던 업이 많잖아요, 그걸 맑히고, 그리고 오방의 모든 신을 다 편안하게 하고, 내 마음의 여래의, 법의 생명의 문을 다 여는 거예요. 여래장이란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법의 생명이란 말이에요. 우리는 육신의 생명도 있지만, 부처님을 만나서 열어야 되는, 새롭게 거듭나 태어나야 되는 것이 법의 생명이에요. 이 법의 생명은 우리의 육신처럼 살아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가는 거예요. 내 마음에 여래, 법의 생명이, 심장이 뛰고 있느냐, 안 뛰고 있느냐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다라니를 열심히 읽는 것은 이 마음에 있는 법의 생명을 움터서, 성장시켜서 부처님의 나라로 가기위한 거예요. 육신은 다 유통기한이 있잖아요. 그래서 여기 앉아계신 분 중에 50년 후에 살아계신 분은 아무도 없어요. 나를 포함해서. 그런데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3,000년이 흘러오면서 사람들은 몸이 다 바뀌는데 안 바뀐 게 있어요. 뭐가 안 바뀌었어요? 법이 안 바뀌었네. 법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잖아요. 법은 여래라고 했지요. 여래는 연기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내 마음속의 법의 생명을 움터야 해요. 그래야 다음 생에 여러분이 여기 와서 다라니를 할 수 있어요. 진관사 와서. 법의 생명을 움트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난번에 200일 회향 때 와서 조금 말씀드렸는데, 절납, 절에 나온 햇수가 있어요. 우리는 승납이라고 해요. 여러분은 절납이라고 해요. 농담이에요.(웃음) 절납이 아무리 오래 되도 이 마음에 법의 생명을 움트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에요. 심각한 얘깁니다. 마음속에 법의 생명이 움트고 있느냐. 법의 생명이 작동하고 있느냐를 점검해야 해요. 다라니기도를 열심히 하면 이 법의 생명이 거듭 태어납니다. 그래서 다라니를 하는 거예요. 다라니의 공덕은 여러 가지가 대장경에도 나오고 있지만, 딱 한마디로 축약해서 <다라니 기도의 공덕은 알아서 정리된다.>입니다. 다라니기도의 공덕은 하다보면, 알아서 정리가 되요. 저도 소싯적에는 다라니기도를 꽤 했습니다. 딱 앉으면 4시간 40분 동안 물도 안마시고 했어요. 한번 잡으면 끝까지. 신도들은 자유롭게 해우소도 다녀오고 하지만. 그게 버티는 거죠. 무슨 타고난 기력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고 버티는 겁니다. 신심으로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다보면, 내가 내린 결론은, 알아서 정리가 되요.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 오면 덥고, 가을이 오면 열매 맺고, 겨울이 오면 낙엽이 떨어져 그 다음 해 봄을 준비하듯이, 다라니기도는 바로 그런 겁니다. 알아서 정리된다. 걱정, 염려가 있는 사람들 그럴 필요가 없다니까요. 다라니만 해라. 역대 큰스님들 중에 다라니 성취해서 큰스님들이 되셨어요. 그게 잘 드러나서 그렇지, 역대 큰 스님들 중에 다라니기도 안하신 분들이 없어요. “이생에 여러분들이 법해스님을 따라 열심히 다라니기도를 하는 공덕으로 법의 생명이 거듭나고 태어나서 여러분이 여래가 될 것이다. 부처가 될 것이다.” 이 말이에요.(박수) <개법장진언>이라는 진언은 <법장을 여는 참말>인데, <옴 아라남 아라다>(3번)(박수). 옴은 길상이란 뜻이에요. 모든 시작이란 뜻인데, 아라남는 무쟁삼매란 뜻입니다. 다툼이 없는, 싸움이 없는 삼매. 고요하게 일여하게 있는 것을 삼매라고 해요. 아라다는 성취한다는 뜻이에요. 다라니를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무쟁이 된 거예요. 다툼이 없어요. 다툼이 가장 심한 게 어디에요? 내 마음이에요. 돌이켜 보십시오. 어릴 때는 잘 모르는데, 살다보면 알게 되요. 제일 다툼이 심한 곳이, 전쟁이 심한 곳이 내 마음속이에요. 이것이 정리가 돼야 합니다. 그 정리되는 것이 다라니기도의 공덕입니다. 그러니까 <옴 아라남 아라다>를 할 때 내 마음속의 모든 다툼이 다 끊어져서, 그게 성취될 때 그 근원바탕으로 법이 드러난다. 쉽게 말하면 내 마음속의 지글지글 보글보글 막 끓고 있는데, 아침에 찌개 끓듯이 끓고 있는데, 거기에 다른 것들이 올라올 틈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 마음속의 번뇌를 쉬어야 다른 신통묘용한 힘이 나올 수 있는 거지요. 그러니까 다라니를 열심히 해야 된다. 그러니까 다라니 기도할 때 그렇게 해야 돼요. 처음에 힘이 붙을 때까지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나요. 그 마음을 달래가며 당겨 오죠. 자기 안으로 당겨 오다보면 그 마음이 무쟁, 다툼이 없는 상태가 되요. 그 무쟁이 다 이루어진 걸 무쟁삼매라고 해요. 무쟁삼매와 오롯하게 나와 합일된 것을 법장이라고 얘기한다 말이에요. 그걸 여래라고 하고. 부처님의 마음은 다툼이 없잖아요. 부처님과 다퉜다는 애기 들어보신 분 손들어보세요? 없잖아요. 왜냐하면 그분은 원래 그런 분이기 때문에. 그걸 성취한 분이기 때문에. 우리도 마음의 다툼이 없어야 되요. 다툼의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2가지가 딱 있어요. 뭐가 있냐? 지난 일에 대한 후회가 있어요. ‘그 때 그럴걸. 그 때 말야. 그 아파트를 사놓는 건데. 그 때 애를 거길 보냈어야 했는데.’ 이런 후회가 있죠. 또 하나는 걱정이에요. ‘나이는 자꾸 먹는데 어짜노, 애는 결혼을 해야 하는데 안가고 왜 저러고 있나.’ 별의별 걱정이, 오지 않는 거에 대한 걱정이 있어요. 부처님께서 기사굴산에 계실 때 이야기입니다. 어떤 장자가, 나이가 지긋하게 먹은 분이 권력도 있고, 누릴 만큼 누린 분이에요. 그런데 늘 마음속에 찜찜한, 뭔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는 거예요. 그걸 ‘부처님께 여쭤보면 해결을 해 주시겠지.’ 하고 부처님을 찾아가는데, 부처님을 찾아가는 길에 죽 수행자들이 있었어요. 남루한 옷에 편안한 얼굴에 앉아서 좌정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 모습이, 얼굴이 너무 편해 보이는 거예요. 자기가 못 느꼈던 그런 기운을 느낀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가서 솔직하게 이야길 했습니다. “부처님. 제가 늘 마음이 후회스럽고, 늘 뭔가 걱정이 됩니다.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그런데 오다보니까 스님들이, 대중승가들이 있는데, 보니까 마음이 늘 밝고 맑고 편안하고, 그렇게 늘 편안하게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 “나의 제자들은 과거의 일로 인해서 후회하지 않고, 미래의 오지 않은 일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늘 지나간 다음에 후회하고 늘 오지 않은 일 때문에 걱정을 한다. 마치 오뉴월 한여름에 뙤약볕에 베어 논 갈대처럼 메말라간다.” 가만히 보면 우리가 늘 후회와 걱정 때문에, 오뉴월 갈대를 베어 놓아보세요. 빠짝 말라, 배배 꼬여 물을 줘도 펴지지가 않아요. 한번 꼬인 마음은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무쟁하는 마음을 얻으려면 지난 일에 후회하지 말고, 후회 안하고 지난 일에는 참회를 하는 거예요. 아직 오지 않은 일을 걱정 하는 게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일에 서원을 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습관적으로 후회와 걱정을 합니다. 왜 걱정을 합니까, 서원할 수 있는데. 대학입시가 얼마 안 남았으니까 대학입시기도를 하면서도 ‘우리 아이만 꼭 붙게 해주세요.’하지 말고, ‘우리 아이가 대학을 붙어서,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부처님을 잘 볼 수 있는 인연을 맺게 해주십시오.’ 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학 들어가서 열심히 살아요. 합격만 바라면 합격한 다음에 공부를 안 해요. 그러니까 허한 짓 하고 다니는 거예요. 제가 소임을 살 때 어떤 젊은 분이 와서 아이가 정신이 없대요, 집중을 못하고. 스님께서 애가 정신 차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내가 안 된다고 했어요. “보살님, 가만히 들어보세요. 대학을 정신없이 다니다가, 취업한다고 정신없이 다니다가, 연애를 정신없이 하다가, 정신없이 결혼을 했네. 정신없이 신혼여행 갔다가, 정신없이 신혼살림 차렸다가, 정신없이 애를 낳아가지고, 정신없이 애를 키웠어. 그럼 정신 있는 애가 되겠어요, 정신없는 애가 되겠어요?(웃음) 자기가 정신없게 해놓고는 애가 정신없다고 그래요. 애가 정신을 차리려면 본인부터 정신을 차려야 해요. 그러니까 발원할 때도 ‘우리 남편, 사위 잘 되게 해주십시오.’ 하면 남편 사업이 잘 되긴 하지만 다른 일이 생겨요. 아프거나, 그래서 많이 절에 옵니다. 바람피우거나. 엄한 짓을 해.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남편의 사업이 잘 돼서 부처님 시봉할 인연을 맺게 해주십시오.’ ‘아이가 공부를 잘 해서 부처님 시봉을 잘 할 수 있는 인연을 주십시오.’ ‘똘똘한 손주, 손녀가 태어나서 부처님 시봉을 잘 할 인연을 맺게 해주십시오.’ 라고 태아기도해야 합니다.(박수) 걱정하고 후회하지 말고 참회 열심히 하고, 서원 열심히 세우자. 그래서 다라니 기도를 열심히 하다보면 다 정리가 된다. 아셨죠? 다라니기도는 알아서 다 정리가 된다. 굳은 믿음으로 늘 부처님과 함께 하시는 그런 사부되시길 바라고요. 여기서 법문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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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기도]천일기도 중 200일 기도 회향 법문
조계종 포교부장 가섭스님 2019-10-30
- 기도는 함께 가는 길입니다. 곁을 지켜주는 마음이 모든 것을 이룹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오늘은 덕원스님의 200일 회향이라고 들었습니다. 천일기도 중에 200일은 첫 고개를 두 번째 넘는 거지요. 기도를 해보면 제일 어려운 때예요. 100일째가 제일 어렵지만, 이제 조금 기도 맛을 알면서도 어렵기 때문에 200일 째가 아주 어렵습니다. 이건 해 본 사람만 알아요. 이때에는 본인의 원력도, 다짐도 필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주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마도 오늘 진관사 신도분들께서 그런 마음을 모아주기 위해서 이 자리에 함께 하신 것 같습니다. 기도는, 그것도 천일기도는 앞으로 진관사의 천년의 역사를 준비하는 겁니다. 그동안 진관사의 천년의 역사가 많은 스님들의 기도와 회향, 원력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지금의 기도는 지금의 자신을 닦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크게 보면 진관사의 미래 역사를 준비하는 것이고, 한국불교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참으로 의미 있는 불사라고 생각하면서, 우리 덕원스님의 200일 회향을 대견하게 생각하고, 200일 회향은 본인이 원력을 세운 바도 있지만, 여기 있는 모든 분들 한 분 한분의 마음이 모아져서이루어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800일 동안도 지금 마음과 변함없이 이뤄지기를 다짐하고 약속하는 의미에서, -이건 스스로의 약속이에요, 여기 계신 분들이 앞으로 천일 회향할 때까지 곁을 지켜주는 것. 기도 중에 제일 큰 힘은 곁을 지켜주는 겁니다. - 그런 약속의 의미로 박수 한 번 칠까요! 이제 법문 다 끝났습니다.(웃음) 그래서 제 소개를 좀 하면, 제 이름은 가섭이라고 합니다. 호는 중경이라고 하는데, 가섭이라는 이름은 많이 들으셨죠? 가섭존자 때문에. 저도 덕원스님처럼 시봉이 하나 있어요. 거기도 천일기도 중인데, 그것도 북한산에서. 여기 올라가면 중흥사라고, 거기서 500일 기도를 넘겨서 600일 다 되갑니다. 그런데 상좌하나가 해인승가대학을 다닐 때 방학하면 절에 오거든요, 인사한다고. 2학년 쯤 와서 울상인 거예요.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니까, 망설이다가 “스님, 이름을 좀 바꿔주시면 안 돼요?” 하는 거예요. “누구 이름을?” “스님 이름이요.” 왜 그러냐고 하니까 보통 은사스님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위자는 무슨 자요, 아래 자는 무슨 자’라고 대답하거든요. 이름 댈 때마다 “위자는 가자요, 아래 자는 섭입니다.” 한 거예요. 그러면 스님들이 “네 스님은 가짜냐?”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맘이 상해 왔어요. “그래, 나 원래 가짜다. 가짜 아닌 게 어딨냐, 다 가짜지.” 하고 넘어갔어요. 한 6년 전에 제가 지금 포교원장 스님께 건당법호를 받았어요. 제가 중경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중자 경자예요. 중자예요, 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자도 아니에요. 그냥 중자예요. 이제 이름 안 잊어버리겠죠. 오늘 200일 회향이니까, 기도할 때 함께 곁을 지켜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함께 하는 게 중요한지 짧게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워낙 진관사는 역사가 있는 절이기도 하고, 절도 많지만, 제가 보기에는 절이라고 다 똑같은 절은 아니에요. 절중에서도 상품 절이 있고, 중품 절, 하품 절이 있어요. 진관사는 참 격조 있는 절이에요. 올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렇게 깔끔할 수가 없고, 스님들이 그렇게 정갈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기분 좋다, 편안하다고 느낍니다. 그런 사찰에는 스님들도 있지만, 그 사찰에서 함께 신행하는 신도들의 마음자세도 중요해요. 우리 마음속에는 각자의 고민과 갈등과 어려움이 있지만, 진관사에 딱 들어오는 순간 진관사와 하나로 어우러진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색깔 내지 않고, 진관사의 스님들이 이끄는 대로, 이렇게 잘 어우러진 것 같아요.(박수) 진관사는 한 폭의 그림 같아요. 그 그림은 경전 속에 나오는 화합승가가 그대로 구현되는 거 같아서 참 기분 좋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기도를 하게 되면, 잘 아시겠지만, 여러 가지 바람을 가지고, 원하는 게 있기 때문에 그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기도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 출발하는 마음이 어떤 마음이냐 보다도, 출발은 각자 다르더라도 그 과정을 거치면서 다져지는 마음이 중요하거든요.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있어요. 이 선물을 얼마큼 내가 많이 받아가는 가는, 출발은 다르지만- 우리가 진관사에 올 때 출발은 다 다르잖아요. 어떤 분은 근처에서 오신 분도 있고, 종로에서 오신 분도 있고- 올 때 마음은 ‘진관사에 가야 되겠다, 부처님 뵈러 가야겠다, 스님 뵈러 가야겠다.’ 하고 오잖아요. 이 마음으로 이 법당에 어우러져 있잖아요. 그런 마음을 다 가져왔을 때 부처님 선물을 받아갈 수 있는 건데, 마음속에 집에서 속 썩던 걸 다 끌어안고 오면 부처님 선물을 담아갈 그릇이 없어요. 그래서 오면서 이런 것을 다 내려놔야 합니다. 내려놓으라고 길에 다리도 놓고 약간 언덕도 있어 숨도 차고 그러잖아요. 법당에 부처님 앞에 딱 앉았을 때는, 명심할 것은 첫 번째는 지혜로운 마음인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자비로운 마음인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절에 다니면서 지혜와 자비는 억수로 많이 들었을 거예요. 그러나 막상 지혜가 뭐냐, 자비가 뭐냐고 물어보면 애매해요. 뭘 알기는 알겠는데, 똑 부러지게 이야기를 못하겠어요. 이건 법랍이 많아도 마찬가지예요. 요금 스님들은 출가한 이후를 승랍이라고 하고, 법계를 받으면 법랍이라고 하는데, 신도들은 절에 오래 다닌 것을 절랍이라고 한대요. 제가 여기 보니까 절랍이 10년 이상, 많게는 40년 이상이 되는 거 같은데, 절랍이 오래 되어도 지혜가 뭐냐고 가족들에게 설명할 때 잘 안 돼요. 자기 것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게 되면 자연스럽게 됩니다. 잊고 있다가도 그 자리에 가면 되는 게 자기 게 된 거예요. 자전거를 배울 때 생각해 보세요. 처음 배울 때는 엉거주춤하지만 막상 배워놓고 자전거 탈 일이 없어요. 10년을 안 타다가, 탈 일이 생겨 타면 타져요. 그게 자기 거가 된 거예요. 지혜가 뭐냐. 지혜는 맑고 밝은 마음이에요. 지혜가 생겨서 뿔이라도 생기고, 미래가 보이는 게 아니에요. 덕원 스님이 열심히 기도하는 게 특별한 능력이 생기려고 기도하는 게 아니에요. 덕원스님이 지금 기도하는 이유는 뭐냐. 지금 마음을 맑고 밝게 하기 위함이에요. 이게 출발이에요. 내가 지혜로운 사람인가를 알려면 자리에 앉아 내 마음이 맑고 밝은가를 보면 알아요. 이건 0.5초도 안 걸려요. 이건 누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본인만 할 수 있어요. 이건 부처님도 못 해줘요. 나만 할 수 있어요. 법당에 딱 앉으면 숨을 깊게 쉬면서 ‘내 마음이 밝은가, 맑은가’. 이게 출발점이에요. 마음이 밝지도 맑지도 않은데, 탁하고 어두운데, 어떠한 소원이 이루어지겠어요. 거기에 어떠한 원이 성취가 되겠습니까. 밝고 맑아야 명징하게 사물이 보이듯이, 맑고 밝아야 내가 하고자 하는 길이 명확하게 보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법당에 오시면 부처님께 삼배하고 나서 내 마음이 맑은지 밝은지 부터 살펴봐야합니다. 그리고 맑고 밝지 않다면 맑고 밝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마음 자리에 부처님의 지혜가 내려앉는 거예요. 그것도 알고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지혜를 드러내는 것뿐인데, 우리가 신앙적으로 표현하다보니까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내려앉는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두 번째는 부처님의 자비인데, 자비는 뭐냐. 따뜻한 거예요. 온화한 거예요. 그래서 내 마음이 자비로운가 살피려면 앉아서 내 마음이 따뜻한가, 온화한가, 온순한가 봐야 해요. 마음이 차갑고 굳어있는데, 거기에서 새로운 생명이 움틀 수가 없어요. 이 자비라는 것은 경전에 보면 생명을 움트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하고, 부처님을 자비체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자비로서 다가오시고, 자비로서 이끌어주시고, 자비로서 우리를 제도해 주세요. 그래서 부처님 자체가 자비에요. 부처님=자비에요. 그 자비를 맑고 밝게 쓰기 위해서 지혜가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살다보면, 이 사문만 벗어나면 맑고 밝게 , 따뜻하고 온화하게, 온순하게 하기가 쉽지 않아요. 가깝게는 제일 가까운 사람이 속을 썩이고, 제일 가까운 사람이 제일 말을 안 들어요. 제일 가까운 사람이 제일 내 뜻대로 안 돼요. 제일 가까운 사람이 누구에요? 가족? 남편? 제일 가까운 사람은 나예요. 내가 제일 내 뜻대로 안 돼요. 내 뜻대로 되려면 지혜롭고 자비로워야 되는데, 그렇게 안 되는 이유는 그 힘을 지금까지 안 길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필요한 것이 참회입니다. 참은 과거에 했었던 것을 다시 하지 않겠다고 서원하는 것이고, 회는 미래에 내가 지을 바 불선업을 짓지 않겠다고 서원을 세우는 것이 회에요. 참회는 무시이래로 모든 것을 참회하는 건데, 참회를 해야만 자기 자신이 맑아지는 것이고, 참회를 통해 자기 자신을 부처님 앞에 토해내야 해요. 그래야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는 거예요. 참회라는 것은 반성하는 건데, 우리 한국사회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어서 갈등도 하고 대립도 하지만, 저는 그 중 가장 큰 문제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 가지고 있는 것은 사회적 부, 권력, 사회적 지위도 마찬가지고, social position이 있는 사람들이 잘못했을 때 잘못했다는 말을 못하는 사회에요. 저는 이것이 가장 안타까워요. 그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정말 힘 있는 사람들이 잘못할 수 있지요, 그 때 잘못 했다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안돼요. 잘못한 걸 덮으려고 하니까 부정과 부패가 생기는 거예요. 그건 불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다보면 착하지 못한 업을 질 수 밖에 없는 한계에 살잖아요. 그걸 덮으려고 하지 마시고, 그걸 숨기려 하지마시고 그걸 그대로 드러내는 것, 그게 참회에요. 참회진언 다 아시죠?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참회진언을, 점심 먹으면서 참회진언을, 저녁에 잠들면서 참회진언을 해보세요. 참회라고 하면 내가 크게 잘못을 해서 뭔가 반성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참회진언의 뜻을 알면 이게 기가 막힙니다.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옴은 길상이란 뜻이잖아요. 못자는 부처님이란 뜻이에요. 모지는 보리, 지혜라는 뜻이에요. 사다야는 살타의 뜻이에요, 야는 복수, 여럿에게, ~들의 뜻입니다. 사바하는 이루어지다, 귀의하다의 뜻입니다. 길상의 부처님과 보살님들에게 귀의하다라는 뜻입니다. 참회진언을 해석해보면 내 마음에 길상의 부처님과 보살님들을 가득가득 채워나가는 것이 참회진언입니다. 우리의 참회에는 자기 자신을 반성하는 것도 있지만, 진참회는 내 마음속에 부처님과 보살님들을 채워나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상에서 부처님을 생각하고, 보살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보살님들의 가피력을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참회예요. 그러니까 참회진언을 해야 합니다. 참회진언을 하는 것은 부처님과 보살님들을 채워나간다는 자기 다짐이기 때문에, 그걸 통해서 자기가 성장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참회진언을 통해서 내 마음을 지혜롭게, 자비롭게 채워나가야 되겠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가 곁을 지켜줘야겠습니다. 제가 오늘 오는데, 법문을 30분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시간이 넘으면 신도들이 싫어해요. 2-3분이라도 일찍 끝내줘야 해요. 그래서 한 가지 얘기만 하고 오늘 법문을 마칠까 합니다. 중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스님이 신도들을 데리고 여행을 갔어요. 젊은 스님인데, 비가 추적추적 오는 거예요. 중국에는 성지가 워낙 많으니까 성지순례를 간 거예요. 제 얘긴 아니에요.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한 80세가 된 노보살님이 스님을 딱 만나는 순간 비가 오는데 그 비에 젖은 땅에 엎드려 오체투지를 하는 거예요. 젊은 스님이 너무 당황했어요. 말렸지만, 노보살님이 3배만 할 줄 알았는데 계속 하더래요. 가이드를 불러 절을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려달라고 했대요. 이 젊은 스님은 오도 가도 못했대요. 안 받고 가려니 신도들 눈이 있고. 우리도 생각하면 초파일 제등행렬 때 등을 들고 앞에서 가면 노보살님들이 그 아스팔트에서 절을 해요. 그때마다 울컥울컥해요. 그 절을 받기도 부끄러운 거예요. 한편으로는 진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스님도 그런 마음이었겠지요. 가이드가 노보살님에게 “절하지 마세요, 스님께서 불편해하십니다.”하니까, 그 노보살님이 합장을 하고 “나는 스님에게 절한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속의 부처님께 절을 한 것입니다.”라고 하셨대요. 이 젊은 스님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그 노보살님은 그 스님의 불성에 절을 한 거예요. 우리는 다 그걸 가지고 있잖아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노보살님들이 절을 하시는 것 보면, 절을 받으면서도 ‘저분이 나 가섭이 아니라, 내안의 가섭분에게 해야하는데.’라는 생각을 해요. 그러면서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절을 할 때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절을 하면 좋겠고, 또 절을 받는 사람들도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부처님에게 절을 하는 거구나.’하고 좀 더 겸손하게, 좀 더 겸양하게 수행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진관사 신도분들 다 그러시겠지요? 앞으로 남은 800일 동안 지금 마음처럼 변함없이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리고요. 합장을 같이 해주시겠습니까? (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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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기도] 10월 28일 신중기도 법문
주지스님 2019-10-28
으뜸가는 10월 상달 바른 신심(信心)으로 기도하기 안녕하세요. 벌써 음력으로 10월 초하루입니다. 음력10월은 결제의 달이기도 합니다. 10월 보름이 결제고, 해제는 다음해 정월 보름입니다. 날씨가 좀 쌀쌀한 거 같기도 하고, 적당히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계절이에요. 1,2,3,4,5,6,7,8,9월 지나와서 백중 49일간 지장기도 했고, 수륙재를 원만회향해서 어제 봉사자들과 같이 공양도 했습니다. 수륙재 원만히 잘 마치셨죠? 10월은 12달 가운데 으뜸가는 달이라고 해서 상달이라고 합니다. 왜 ‘상’인지 아십니까? 제일 중요한 달이라는 뜻인데, 우리가 농사를 지으면서 오곡이 풍성해서 그 고마움을 조상님들이든지, 모든 자연에 떡을 좀 해서, 과일을 좀 풍성하게 올려서 고맙다는 제사를 올리기도 하고, 모든 행사를 하는 게 10월이에요.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가 광명사(廣明寺)의 문장노(文長老)를 만나 지은 시가 있어요. 露重楓初染<로중풍초염>이요 찬 이슬 내리니 단풍이 들고 霜深菊自開<상심국자개>요 찬 서리 내리니 국화가 절로 핀다 . 晩色猿啼送<만색원제송>하니 석양 빛은 원숭이가 울어 보내고, 秋聲雁挽廻<추성안만회>라 가을 소리는 기러기가 끌고 온다. 찬 이슬 내리면 국화가 그렇게 윤기가 난다고 그래요. ‘벌써 세월이 가을이구나’, 무상함을 느끼는 거예요. <기러기 울어예는..>노래도 있지요. 가을이 되어 기러기가 ‘끼룩끼룩“하면 ‘아, 벌써 가을이구나.’ 삼월삼짇날 되면 강남 갔던 제비가 와서 가을되면 가고. 벌써 10월입니다. 10월이면 고사를 지냅니다. 안택이란 말 아시나요? 집안이 편안하길 기원하면서 안택불공 한다고 빨간 팥떡을 올려 조상들에게 기도합니다. 우리가 보통 가신신앙이라고 해서 신주단지를 모셨는데, 그 속에는 나락(쌀 처음 난 것)을 잘 모셔서 10월 상달 초하룻날에 그걸 바꿔요. 그 쌀은 다른 사람에게 안 줘요. 가족 외엔 안 줍니다. 그래야 복덕이 풍만하고 재앙이 없다고 했어요. 우리는 보통 제석신이라든지 성주신, 신줏단지라고 하는데, 절에서는 제석단지, 세존단지라고 합니다. 첫 수확한 쌀이나 나락 등을 모아 그 속에 놓고 1년 내내 잘 모십니다. 그리고 10월초하룻날 바꾸는 거예요. 마치 우리가 입춘날 소금, 팥, 숯을 준비해서 올리고 그 다음 해 입춘 날에 바꾸듯이 곡식을 바꿔줍니다. 이 곡식은 복이 담겨있기 때문에 가족들만 먹어야 재앙이 없고, 일 년 내내 무사 무탈하다고 해요. 여러분들은 그런 거 못 보셨죠? 예전 60년대 시골에서 농사짓는 곳에서는 다 하던 것입니다. 신줏단지라고 엄청난 위패를 모시는 게 아닙니다. 이 때 세존은 성주신이나 터주 같은 역할을 하는 거예요. 또 전라도 강진군의 경우에는, 베로 주머니를 만들어 쌀을 넣고 방문 뒤에 걸고 세존단지라고 모셔요. 자기 성, 시아버지 성, 시어머니 성을 가진 집에 엽전을 7개 묶어 걸어두면 잘되었다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민간신앙입니다. 그것도 10월 초하룻날 하는 풍습입니다. 10월 상달은 1년의 농사가 마무리 됩니다.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 보면 조상께 감사의 예를 올리는 기간으로 열두 달 가운데 으뜸가는 달로 생각하여 상달이라 하였다고 했어요.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舞天), 부여의 영고(迎鼓) 등 고대의 제천행사(祭天行事)가 10월 상달의 옛 모습이라 한다면 고려의 팔관회(八關會), 조선시대 민가의 고사 혹은 안택의식 등이 이어져 내려오는 모습이고, 오늘날의 상달맞이 고사, 안택굿, 시제(時祭, 예전에는 시제 후 각자 상을 하나씩 주었다고 합니다.), 산신제, 단오제 등이 그 맥을 이은 오늘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혹시 집안이 불편하고 싸움을 자꾸 하면 팥떡을 해서 동네 친척들에게 좀 나눠주세요. 먹는 게 최고잖아요. 밥 달라는 사람에게는 밥을 줘야지요. 옷 달라는 사람에게는 옷을 주고, 돈을 달라는 사람에게는 돈을 주는 것이 민간신앙이에요. 이것이 정법은 아니에요. 옛날 어르신들이 하던 걸 그대로 따라서 하면 좋은 일이 있겠다, 예전에 어른들이 정화수 떠놓고 기도했던 것이 다 가정의 무사 무탈을 기원하고, 집안에 아무 일이 없기를 기원한 거예요. 또 그런 집이 잘 되요. 형제들끼리 싸움도 안하고, 돈이 없어도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어요. 요즘은 생사가 대사가 아니라 식사가 대사예요. 먹는다는 건 생명입니다.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데, 요즘은 먹는 것도 희한하게 먹어요. 적당히, 내가 소화시킬 만큼만 드시면 됩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전하기를 “충청도 보은의 속리산 꼭대기에 ‘대자재천왕(大自在天王)의 사당이 있고, 그 천왕이 매년 10월 인일(寅日)에 속리산 법주사로 내려오는데, 산중 사람들이 음악을 울리고 이 신을 모셔다가 고사를 지낸다. 천왕은 45일이나 놀다가 돌아간다고 한다.”고 했는데 고래로 내려오는 10월 상달의 제천의식과 불교가 만난 좋은 사례라 하겠습니다. 10월 상달이 되었으니 바른 신심으로 기도해야 하는데, <법화경>에 보면, “부처님의 방에 들어가, 부처님의 옷을 입고, 부처님의 자리에 앉아 법을 설한다.” 법문을 듣기도 합니다. 여기 여러분은 부처님 자리에 앉은 겁니다. 부처님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화를 내고 탐욕을 부려야 하겠습니까? 안되지요. 慈室忍衣(자실인의), 자비의 집과 인욕의 옷을 입고서 부처님 자리에 앉아 법을 듣기도 하고 설하기도 합니다. 항상 부처님 법과 같이 대비해 보세요. 속인들과 대비하지 말고, 불법과 대비하시면, 내가 앉은 자리는 법좌다, 내가 입은 옷은 여래의 옷이다, 내가 들어온 곳은 여래의 방이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당신은 부처님>이라고 했으니까 부처님의 방에 들어가, 부처님의 옷을 입고, 부처님의 자리에 앉아 부처님의 법을 듣는다, 이러면 세상에 시시비비가 없고, 다 긍정적이 되고, 만사형통이 됩니다. 안 되는 게 없는 거예요. 안 된다, 시시비비하면 그 사람은 끝내 시시비비하다 끝납니다. 잘 못하면 심장마비 걸립니다. 우리가 신경을 안 쓴다 해도 알게 모르게 신경을 쓰거든요. 되도록 단조롭게 단순하게 생각하시고 모든 걸 편안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어렵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쉽게 갈 일도 어렵게 가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적당히 잘 가셔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신자를 “불자(佛子)”라고 하는데, “부처님의 자식(제자)”이라는 뜻입니다. 이유는 자식은 어리지만 나중에 어른이 되듯이, 중생은 어리석지만 나중에 부처님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듯이 중생이 미래에 부처님이 되기 위해서는 오정신행(五正信行 : 다섯가지 바른 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신장익(信長益)이니 믿음(신심)을 더욱 크게 자라게 하는 것이다.둘째는 계장익(戒長益)이니 계율을 더욱 잘 지키는 것이다. 셋째는 문장익(聞長益)이니 법문을 더 많이 듣는 것이다. 넷째는 시장익(施長益)이니 보시를 더 많이 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혜장익(慧長益)이니 지혜가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남자 선녀인이 바르게 신행하는 다섯 가지 길이다. - 증일아함 48권 예삼보품(禮三寶品) 제7경 첫째 믿음을 더욱 자라게 해야 한다(信長益)는 것은 진리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삿된 것을 믿는 것은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연기의 이법(理法)을 진리라고 믿고 스스로 바르게 닦아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누가 뭐라고 해도 삿된 길에 빠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절에 와서 스님의 법문을 들어야 하는데, ‘어디 용한데 있으니 가자.’고 해요. 그게 삿된 길로 가는 거예요. 점집에는 잘 되는 사람은 오는 법이 없어요. 근심걱정이 있는 사람이 가지. 그런 사람에게 겁을 줍니다. 그런 곳에 절대로 가지 마세요. 되도록 바른 믿음, 바른 견해, 바른 신심 있는 에너지가 충만한 곳에 오셔서 기도 열심히 하는 것에 충족해야지, 사사로운데 끌리면 안 됩니다. 둘째 계율을 더욱 잘 지켜야 한다(戒長益)는 것은 항상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윤리도덕을 잘 지키는 사람이 이웃과 싸움도 안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의 규범에서 벗어나면 시비에 휩싸입니다. 규범이 아니더라도 악행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십악업을 바꾸면 십선행이 되는 겁니다. 천수경에 <살생중죄 금일참회...> 참회만 하는데도 어느 때 보면 참회가 없어져요. 머리로만 하지 말고 실제로 하셔야 합니다. 실천이 최고입니다. 바르게살기를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문수의 지혜와 보현의 실천을 가지고서 지와 행을 합일하게 해야지만 바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셋째 법문을 더욱 많이 들어야 한다(聞長益)는 것은 바른 법을 배우기를 주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법당에 오래 앉아있으면 향내가 몸에 배듯이 자주 절에 나가 법문을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근공덕이 있어 불법을 깊이 알고 실천할 마음이 생길 것은 당연합니다. 넷째 보시를 더욱 많이 해야 한다(施長益)는 것은 복을 많이 지으라는 것이죠. 복이란 뒤주 속의 곡식과 같아서 채워 넣지 않으면 금방 바닥이 납니다. 남을 도와주고 선행을 베풀면 그것이 공덕의 씨앗이 되어 보물창고를 채우게 됩니다. 잘 사는 사람들은 전생에 많이 베푼 사람들입니다. 자꾸 베푸는 것이 습관화되야 합니다. 남의 것 자꾸 가지려고 하지 말고 자기 것을 주려고 생각하세요. 다섯째 지혜가 더욱 빛나게 해야 한다(慧長益)는 것은 어리석음을 씻어내고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참다운 지혜는 진리를 바로 깨닫고 깨달음의 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결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습니다. 기도 많이 하면 지혜로워집니다. 한 시간을 기도해도 열심히 일념으로 하셔야 합니다. 삼매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마음을 편안히 하고, 하루에 십분이라도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래의 방에 들어가서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았으니까 부처님 생각만 하고 좋은 생각 내시면 좋은 사람 되는 거예요. 여기서 좋은 사람이란 착하고 악한 것을 떠나서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지혜로운 사람이 최고의 불자입니다. 10월 상달, 으뜸가는 달, 모든 걸 베풀어 나눠먹는 달입니다. 다같이 부처님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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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륙재] 10월 12일 국행수륙재 회향 법문
성우스님 2019-10-12
오늘 이 법회에 동참한 여러 영가분들, 이 인연으로 오늘 이 도량에 계신 불자님들, 불보살님의 보호가 있기를 심축드립니다. 요즘 돼지들이 수난이지요? 일체 모든 미물까지 근본적으로 이고득락을 시키기 위해서 부처님이 출현하셨고, 그래서 일체중생의 이고득락을 위해서 수륙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륙재를 공덕재라고 합니다. 살아있는 이들에게는 복을 짓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 떠난 이에게는 그야말로 윤회의 모든 길에서 벗어나게끔 하기 위해서 수륙재를 지내는 겁니다. 사람으로 한세상 살면서, 해야 할 일은 공덕을 짓는 일, 공덕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한 세상 사람으로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제일 귀한 일은,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복을 짓는 일입니다. 물론 다른 스님들 같으면 <복을 짓는다.>라는 말은 사용을 잘 안 해요. 복 타령을 하면 삼류D급으로 취급을 하기 때문에. 그러나 저로서는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마는, 이 세상, 한 세상 살아가면서 복을 짓는 것보다 더 센 것은 없습니다. 복력이 있어야 수행도 하는 거예요. 불법도 이루는 겁니다. 그런데도 복을 우습게 안다. 뇌구조가 잘 못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이 세상에 복을 짓는 일, 그 복은 어떻게 지어야 하는가. 아마 이 수륙재에 동참하신 우리 불자님들, 오늘 수숭한 복을 짓는 날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수륙재에 동참하신 여러 영가분들, 아마 아주 큰 복을 짓는 날이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우리가 세상 살면서 업을 푸는 일입니다. 내가 지은 업은 얼마인지 모릅니다. 아마 잠시라도 지금 여러분들 눈을 감고 자신들을 돌아보면 자기 업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크게는 수미산보다 더 많을 테고, 없는 분들은 하나도 없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업을 푸는 일, 정말이지 적은일이 아니에요. 한 세상 다 소모해도 오히려 모자랄 겁니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라고 하지요, 하염없이 많은 세월동안 많이 쌓은 죄. 일념돈탕제(一念頓蕩除)라고 합니다. 한 생각에 다 없앨 수가 있는 겁니다. 그 만큼 부처님의 묘법은 대단합니다. 그래서 업을 푸는 일은 아주 중요하고 중요한 일인데 많은 분들이 한 세상 살면서 이것을 간과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왜? 지금 현재 업의 노예가 되어서 살기 때문입니다. 현재 업의 노예란 말, 바로 탐진치 삼독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참 안타까운 삶이지요. 탐진치 삼독을 벗어버릴 수 있는 길, 어디 있을까요? 바로 우리들의 한 생각에 있습니다. 정말 우리들의 생각, 맑은 한 생각을 일으킨다면 그야말로 업을 풀 수가 있는 겁니다. 만약에, 만약입니다만, 다겁생으로 살아왔던 업을 풀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을 떠나면서 내가 지은 업 따라 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이 세상 오실 때를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왜 하필이면 그 분이 나의 아버지였을까. 왜 하필이면 그분이 나의 어머니였을까. 정말 묘하고 묘하게도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가 되었고, 나의 어머니가 된 겁니다. 이 사실만, 우리가 의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으로 체감한다면 부처님의 법을 터득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가 없을 거예요. 왜 수륙재를 해야 하느냐. 우리 살아계신 분들은 인연 따라 불교를, 부처님 말씀을 받아들여서 실천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 떠나신 영가분들은 누가 해줄 사람이 없어요. 부득이 지어 놓은 인연들이 대신해서 해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수륙재에 많이 동참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다행하게도 이 진관사 국행수륙재를 국가무형문화재 126호로 인정받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태조가 1397년에 수륙재를 시작했습니다. 한나라를 세웠던 고조가 무엇 때문에 수륙재를 생각했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나라를 세우면서 많은 인명피해를 일으켰을 겁니다. 아무리 왕이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가장 근본적인 양심이 작동했겠지요. 근본적인 양심에서 다른 생명을 빼앗았다, 그래서 그 빼앗은 생명들에 대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국행수륙대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나라에서는 수륙대재를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 짧게 하겠습니다. 저는 20대 초반에 출가를 해서 절에서 스님들이 49재를 지낸다, 천도재를 지낸다, 용왕재를 지낸다고 하면 솔직히 그런 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습니다. ‘머리 깎고 산중에 살면서 뭐한다고 저걸 하고 있냐.’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저의 잘못된 생각이었지만은, 제가 볼 때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고 난 뒤 나이가 50정도 되었을 때, 어느 스님이 제게 간절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스님, 지장기도를 한 번 해보십시오.” 근데, 제가 젊을 때 남의 이야기를 잘 안 들었거든요. 자랑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 스님 이야기는 듣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나라 지장도량, 제일 좋다는 지장도량에 가서 100일 기도를 했습니다. 입재를 한 지 2주 만에 ‘앗! 내가 왜 이렇게 늦게 왔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환희심 넘치는 기도를 했습니다. 나이 50이 넘어서 남의 절에 가서 기도를 하려니까 거기 계시는 주지스님, 대중스님의 눈치를 봐야 하잖아요. 그래서 100일기도 회향하고, 또 우리나라 지장기도 도량, 남해에 있습니다, 에 갔는데, 보니까 비어있어요. 주지만 혼자 덩그러니 있고, 거기 가서 또 100일 기도를 했습니다. 그곳에 가니까 주지가 나보다 나이가 더 어려. 그런데는 더 처신하기가 힘이 들어요, 솔직히. 그러나 저러나 주지 눈치 보려고 온 것이 아니라, ‘나는 기도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100일 기도를 했는데, 100일 기도를 하고 나니까 그 때 또 속이 다 차질 않아요. 뭔가 속이 차질 않아. 100일 기도만 하겠다고 하고 와 놓고 더 있겠다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 그 도량 떠나기가 싫었더랬어요. 그만큼 환희롭게 기도를 했어요. 그래서 저한테 기도를 시켰던 그 스님을 만났어요. 그 스님이 밀양 표충사 앞의 토굴에서 기도를 했었거든요. “그 토굴이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니까 비어있대요. 토굴이라고 가보니 방이 딱 두 칸이에요. 그래서 가서 정말 아무도 없으니까, 저 혼자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하루에 12시간, 그 이상 해보니까 정말 기쁘고 기뻐서 정진을 몇 개월 동안 했습니다. 그런데 종단행사 때문에 불려나오면서 회향을 했습니다마는, 지장기도를 그렇게 하고난 뒤부터 ‘아, 정말 살아있는 모든 중생들은, 이 세상 떠난 중생들은 정말 그 업을 털어줘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부터는 49재 지내는데, 제가 인연이 있는 곳에는 꼭 참석을 했습니다. 젊을 때 제가 ‘이렇게 부끄러운 짓을 했구나. 부끄러운 생각을 가졌었구나.’ 제가 오늘 스님들 앞에서 발로 참회(發露懺悔)하는 겁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내 스스로 이렇게 드러내는 것을 발로참회라고 하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5,000년간 전쟁이 980여 차례 있었지요. 그 전쟁이 일어났을 때 마다 얼마나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래 시달리고 저래 시달리고 정말 얼마나 비참한 시간을 보냈습니까. 그런 전쟁, 역대 왕들, 왕권시대만 살아왔기 때문에 왕과 관리들의 횡포가 정말 적지 않았습니다. 양반이라고 자랑하시는 분들, 가끔 이야기를 듣습니다마는, 듣기가 민망해요. 배웠다는 사람들, 글 모른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은 무시하고 하대를 했습니까. 그리고 많은 가난 때문에 배 한번 부르게 밥 한번 못 먹은 때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렇게 한이 맺혔을 이 땅에 살다가 떠나신 그런 영혼들 어디로 가겠습니까. 어디 갈 수가 없어요. 못 가요. 어떻게 가느냐. 다시 이 땅에 태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이 땅에 태어나서는 또 그런 응어리진 마음, 쌓였던 업을 어떻게 하겠어요. 밖으로 표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살릴 수 있는 것은 불교의 자비사상, 이 수륙대재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생의 업이라는 것은, 여러분 법문을 들어서 잘 아시겠습니다마는, 자기 스스로 짓는 겁니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거지요. 그런데 이 생각이라는 것은 참 무서운 겁니다. 우리들의 한 생각, 그 한 생각은 우주 안에서 영원히 진동할 겁니다. 무서운 현실이에요. 우리는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면서 삽니다마는, 그 한 순간 한 순간 했던 생각들이 영원히 존재한다, 무서운 현실이에요. 그래서 업이라는 것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마는, 업 가운데 가장 제일 큰 것이 살생의 업일 겁니다. 살생의 업을 짓는다. 살생, 거기는 사람이나, 소나 말이나, 닭이나, 돼지나 개나 뭍 축생들, 내 마음속으로 죽이겠다는 생각을 했거나, 아니면 남에게 시켰거나, 내 스스로 했거나, 남이 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했거나 내 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마음속으로 했는데도 업이 됩니까? 네, 당연히 업이 됩니다. 남이 하는 것을 보고 기뻐했는데도 업이 됩니까? 네, 당연히 업이 됩니다. 정말 살생의 업이라는 것은 정말 무서운 겁니다. 살생의 업은 자기 종자를 끊게 되어있어요. 우리 불자라면 아마 삼귀오계를 받았을 텐데, 이 살생을 징치할게 아니라 방생을 해야 합니다. 방생을 함으로 해서 한 생명을, 법화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만, 일체 중생은 다 불성이 있기 때문에, 불성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비사상인 거예요. 흔히, 방생, 물고기 방생에 대해서 가끔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물고기 생명이나 사람의 생명이나 생명의 차원에서는 차별이 없습니다. 업의 차별은 있을지언정. 그렇다고 하면 불자로서는 방생을 하는 것이 좋은 신행가운데 하나입니다. 두 번째는 살, 도라고 하지요. 그건 복덕의 종자를 끊는 일입니다. 오히려 보시를 해서 남에게 베풀어서 공덕을 쌓아야 합니다. 그리고 음행, 이것은 청정의 종자를 끊어놓기 때문에, 오히려 윤리를 살려야 합니다. 네 번째는 망어, 이것은 진실의 종자를 끊기 때문에 도행이 없어지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에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주, 인간의 이성을 가장 흐리게 하는 것이 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술을 마시면 지혜종자를 끊어요. 지혜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업이 작용을 해서, <앙굿따라 니까야>에 보면 이런 구절들이 있을 겁니다. 수행승들이여 천상계에서 죽어서 천상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천상계에서 죽어서 지옥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많다.아마 스님들은 이 경전을 보신 적이 있겠습니다마는, 아마 우리 일반 불자들은 앙굿따라 니까야를 보신 분이 없을 거 같은데, 이것이 바로 육도에서 윤회하는 이야기입니다. 설령 사람으로서 복을 좀 쥐었다 하더라도, 그래서 천상에 태어났다해도 천상의 인연이 다하면 어쩔 수 없이 지옥으로 가야하는 겁니다, 슬프게도. 수행승들이여 천상계에서 죽어서 천상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천상계에서 죽어서 축생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많다. 왜 축생계로 가겠어요? 갈 수 밖에 없는 것은 내가 지어놓은 업이 있으니까.수행승들이여 천상계에서 죽어서 천상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천상계에서 죽어서 아귀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매우 많다.수행승들이여 천상계에서 죽어서 인간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천상계에서 죽어서 지옥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매우 많다.수행승들이여 천상계에서 죽어서 인간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매우 적고 반면에 천상계에서 죽어서 축생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많다.천상계에 있다가 인간세상으로 오면 아주 좋은데 오히려 축생계로 떨어진다니까 너무 슬픈 일이지요. 수행승들이여 천상계에서 죽어서 인간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천상계에서 죽어서 아귀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매우 많다.이것이 <천상계의 경>이고, 그 다음에 <인간계의 경>입니다. 수행승들이여 인간계에서 죽어서 인간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인간계에서 죽어서 지옥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매우 많다.우리가 한 세상 사람으로 살면서 사람도리를 다 안했기 때문에, 이 세상 살면서 사람 도리를 하고 사는 것은 적은 일이 아니에요.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의 도리, 사람의 도리를 다 안하면 어떻게 되나. 어쩔 수 없이 지옥세계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답답하죠. 수행승들이여 인간계에서 죽어서 인간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인간계에서 죽어서 축생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매우 많다.수행승들이여 인간계에서 죽어서 인간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인간계에서 죽어서 아귀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매우 많다. 이쯤해서, 우리 불자님들, 다음 세상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은 분들 손들어 보세요. 적네요. 천상계에 갈 자신이 있나 봐요. 다음 세상에 사람으로 꼭 태어나고 싶으신 분? 왜 이 이야기를 하냐 하면, 다음 세상에 사람으로 꼭 태어나고 싶다면 오늘부터 실행해도 됩니다. 염불을 하시던지 다라니를 하시던지 간경을 하시던지 사경을 하시던지 화두를 하시던지, 이 세상 떠날 때까지 놓치지 않고 하신다면 틀림없이 다음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을 겁니다. 이해가 됩니까? 대답 안하신 분들은 안 해도 좋다 그건가요?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요. 그건 자유니까요. 수행승들이여 인간계에서 죽어서 천상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인간계에서 죽어서 지옥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매우 많다.수행승들이여 인간계에서 죽어서 천상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인간계에서 죽어서 축생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매우 많다.수행승들이여 인간계에서 죽어서 천상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인간계에서 죽어서 아귀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매우 많다. <지옥의 경><아귀의 경>그리고<축생계의 경>까지 있습니다. 이렇게 육도를 윤회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영혼, 영가분들에게 최초로 부처님께서 하신 영가법문이 있습니다. 아마 <니까야>에 보면 <담장밖의 경>이라고 있을 겁니다. 지난번에도 제가 이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해드린 거 같은데, 부처님 당시에 빔비사라 왕이 있었죠. 이 왕은 최초로 부처님을 위해 죽림정사를 지었죠. 그래서 죽림정사를 부처님께 시주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참 기쁜 마음으로 돌아와서 잠을 자는데, 아귀들이 울어서 잠을 못 잤다고 그래요. 그래서 일어나 죽림정사에 가서 부처님께 그 이야기를 했답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신심이 나서 부처님께 절을 지어 바쳤는데, 아귀들이 울어서 지난 밤 잠을 못 잤습니다. 왜 그렇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부처님께서는 “그대가 과거 어느 생에 한 나라의 재상이었는데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베풀려고 했을 때, 그 공양을 준비했던 사람 가운데, 그대의 친척들이 공양 준비를 기쁜 마음으로 한 사람도 있지만, 기쁘지 않은 마음으로 한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아귀가 되어서 제대로 갈 곳을 못 가서 아마 이쯤 해서는 자기들이 천도를 해주면 좋겠는데, 천도를 해주지 못하니까 이렇게 아귀의 울음소리로 자기를 구원해 달라, 천도, 제도를 해달라는 뜻에서 그렇게 울음을 울은 것 같다.” 죽은 이들은 자신의 집으로 와서 담장 밖이나 벽이나 집의 세 갈래, 네 갈래로 갈라진 틈에 서있거나 문기둥에 의지해서 서있네.하지만 많은 먹을 것과 마실 것, 씹을 것과 삼킬 것을 친지들이 가지고 있어도 그들의 불선업 때문에 아무도 그 죽은 이들을 기억하지 않네.죽은 이를 연민하는 이라면 “이 공덕이 죽은 친척들에게 회향이 되기를, 죽은 친척들이 행복하기를!”라고 말하면서 깨끗하고 훌륭하고 공양 올릴만한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적당한 시간에 보시한다네.그곳에 있는 죽은 친척들도 그 자리에 모여들어 많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보시한 것에 대해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기뻐한다네.“그들 때문에 이런 것을 얻었다. 살아있는 친척들이 오래 살기를!”우리들에게 공양도 올렸고 보시한 친척들 자신들도 큰 결실을 얻는다. 사실 죽은 이들이 사는 곳에는 농사도 없다네, 목축도 쳐다볼 수 없고 돈으로 장사하는 것, 무역하는 것도 없다네.목숨을 마친 그곳에 죽은 이들은 오직 이곳에서 보시하는 것만으로 살아간다네.높은 곳에서 내린 빗물이 아래로 흘러가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보시한 것이 죽은 이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네.마치 흘러들어오는 냇물로 넘치는 강물이 바다를 가득 채우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 보시한 것이 죽은 이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네.“나에게 이러한 것을 주었고 이러한 것을 해주었다나의 친척이고 친구이고 동료였다“ 라고죽은 이들이 이전에 해주었던 일들을 회상하며 죽은 이들을 위해 공양 올려야 한다네.울며 슬퍼하고 또한 땅을 치고 통곡하더라도.죽은 이들에게는 아무 이득이 없는데도남은 친척들은 그렇게만 하며 지낸다네.거룩한 승가에게 올린 공양은 오랫동안 복덕이 되고 즉시 이익을 가져다주네.친척으로서 해야 할 도리도 보이는 것이고죽은 이들을 위해 뛰어난 공양도 행한 것이고 비구들에게 힘도 선사한 것이네그러니 그들은 적지 않은 공덕을 계속해서 실천할 것이네. 이렇게 부처님은 아귀영가를 위해서 법문을 했습니다. 제가 본 경전가운데 부처님의 최초 영가법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니까야를 다 보지는 못했습니다마는, 제가 본 니까야 경전 가운데서 이것을 보고 ‘아, 부처님의 최초 영가법문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관사 수륙대재에 동참하신 영가님들,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하십시오.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하십시오.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하십시오. 진관사 국행수륙재에 동참하신 영가분들, 거룩하신 부처님 법에 귀의하십시오. 거룩하신 부처님 법에 귀의하십시오. 거룩하신 부처님 법에 귀의하십시오. 수륙재에 동참하신 우리 영가님들,거룩한 이 승가에 귀의하십시오. 거룩한 이 승가에 귀의하십시오. 거룩한 이 승가에 귀의하십시오. 제 이야기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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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륙재] 10월 6일 국행수륙재 6재 법문
주지스님 2019-10-06
안녕하세요. 입재부터 시작해서, 초재, 2재, 3재, 4재, 5재, 오늘이 6재날입니다. 그동안에 어장스님과 어산스님들께서 대령, 관욕을 하면서, 남자영가는 상뇌라는 거울을 보고 코끼리처럼 용맹스러운 마음을 가졌고, 여자 영가는 서월이라는 거울을 보고 무소의 뿔처럼 단아하게 나아가는 마음을 냈습니다. 지금까지 대령, 관욕을 열심히 해주신 어장스님과 어산스님들께 박수 보내주세요. 진관사 수륙재는 무형문화재 12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어두운 세상과 밝은 세상의 큰 도량이며, 티끌 마다 세계마다 두루하다.”고 나옹화상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법문하기 전에 다 같이 합장해주세요. 어장스님께서 영가들에게 <지심제청 지심제청> 하셨지만, 다시 한 번, 상기하는 의미에서 제가 해보겠습니다. 상내소청진관사 국행수륙무차평등대재 유주무주 애혼고혼 유정무정 각열위열명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청 지심제수상단에 불법승 삼보께 공양하고, 중단에 천신과 신령님께 공양하며,하단에 모든 중생들에게 미치기까지충족시키고 두루하지 않음이 없네.부처님께서는 저의 공양을 받으시고 세상에 머물며 근원으로 돌아가지 마시옵소서.법보께서도 제 공양을 받으시고 두루 통하여 끊어짐이 없게 하소서.보살께서는 제 공양을 받으시고중생제도에 지치거나 싫어하지 마십시오.이승께서 제 공양을 받으시고 마음 돌려 물러나지 마시옵소서.천선께서는 저의 공양을 받으시고부처님 되기를 구하여 항상 정진하시옵소서.사람들 제 공양을 받으시고속히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십시오.삼도중생 저의 공양을 받으시고괴로움을 그치고 도심을 일으키소서.외로운 혼령께서 제 공양을 받으시고기운을 받아 형체를 이루십시오.이상의 공양과 보시한 모든 법들을 모두 모아서 널리 회향합니다. 사직은 더욱 늘어나 길어지고, 부처님의 가르침도 영원히 이어지소서.바라건대 이 공덕이 세상일체에게 두루 미치게 하시옵소서. 우리들과 모든 중생들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게 하시옵소서. 청아한 날씨입니다. 저희들이 입재부터 시작해서, 초재, 2재, 3재, 4재, 5재, 6재까지, 태풍도 불고, 아주 불편한 날씨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륙재 날만 되면 하늘도 감동을 해서인지 조용하고 잠잠해요. 오늘 날씨 굉장히 좋죠. 환희심을 내면서 이 수륙도량에 들어오기만 해도 모든 중생들은 삼업이 녹고, 모든 망자들, 유주무주 고혼들은 이고득락한다고 했습니다. 진관사 국행수륙재는 차별 없이 불법을 전하는 우리나라의 큰 불교의식이며, 모든 중생에게 고통을 치유하고 행복을 기원하는 불교의 대표적인 의례입니다. 시방법계 유주무주 영가를 천도할 뿐만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해서 모든 생명을 존중하게 하는, 뭇 존재의 안녕을 기원하는 국가적인 의례가 바로 수륙재입니다. 그리고 수륙재는 소통과 화합이며 불교의례를 통해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나아가 국민을 화합하고 국가의 번창을 기원하는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수륙재에 여러분이 함께, 저도 함께 동참해서 동감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수륙재가 우리들에게는 고통을 해소시킬 뿐 아니라, 음식을 잘 못 먹어서 생긴 병균이라든지, 비명횡사해서 돌아가신 분이라든지, 요즘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돌고 있는데 그런 동물 등, 저희가 수륙재를 해서 유주무주 고혼, 일체 삼계만령 미물들까지 극락으로 왕생케하는 그런 의식입니다. 그래서 진관사 수륙재는 3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치스럽지도 않고, 누추하지도 않아서 제도에 맞다.’라고 진관사수륙재조성기에 최고의 성리학자 권근이 말씀하셨습니다. 국행수륙재에 최고의 공덕주는 태조 이성계였습니다. 지금까지 저희가 국행수륙재를 하면서 면면이 흐트러짐 없이 내려오다가 얼마동안 없어졌다가, 저희 은사스님께서 윤년마다 한 번씩 했는데, 제가 부임하면서 매년마다 이렇게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륙도량에 들어오기만 해도, 아까 말씀드렸듯이 업장이 소멸되고 무량한 공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치스럽지도 않고, 누추하지도 않아서 제도에 맞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진관사 국행수륙재는 전물규범(올리는 규범)에 따라서 진설해서 재를 올리는데, 세종2년 1420년에 수륙재를 올리는 전물규범을 새롭게 확정했습니다. 상단에는 여물지 않은 올기쌀, 찐쌀이라고 아시죠? 찐쌀로 지은 마지를 30동이 올리고, 유과 9그릇, 두부탕 9그릇, 떡 9그릇, 삶아 건진 국수 9그릇, 과일 9그릇 등 재단과 재단 주위를 밝히는 등롱과 한지 천 장등이 올려져있습니다. 중단과 하단에는 거기에 맞춰서 상단보다는 못하지만 조금 차등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특히 삼장, 천장, 지지, 지장보살님을 삼장이라고 하는데, 그걸 중단이라고 합니다. 중단에는 호박떡 한 그릇을 별도로 올리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호박과 관련된 중국 당태종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쟁과 황위찬탈로 맞은 살육을 벌인 당태종께서 어느 날 갑자기 숨이 멎어서 명부세계로 갔습니다. 살생을 워낙 많이 했기 때문에 영가들에게 쫓기게 됐어요. 결국 이들을 위해서 금은전을 많이 베풀어 위로를 하여 풀려나서 시왕님들(초재, 이재, 삼재, 사재, 오재, 육재, 칠재, 백재, 소상, 대상 시왕님이 계세요)의 배려에 의해서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어요. 이 시왕님들에게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 됩니까?”하니까 명부세계에서는 호박만이 구할 수가 없대요. 그래서 제사 지낼 때 호박이 꼭 필요합니다. 호박이 가장 중요한 재료입니다. 호박전이라든지, 호박떡이라든지 저희들은 꼭 올리고 있습니다. 백중재에도 호박을 준비해서 올렸고, 지금까지, 초재, 이재, 삼재, 사재, 오재, 육재까지 앞으로 마지막 회향까지도 호박을 올리고 있습니다. 호박은 다산과 생성, 발전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늘이 내린 식재료 가운데 호박, 감자, 콩, 당근은 보물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제사 지낼 때 꼭 빠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호박을 꼭 진수에 올리시면 공덕이 무량하다고 했습니다. 제사 지낼 때 가장 좋은 선물이 호박입니다. 우리들은 염불하면서 좋은 생각을 내고, 분별했던 마음, 차별했던 마음 다 없애고, 좋은 마음을 내야합니다. 염불공덕이 가장 좋은 공덕입니다. 그래서 수륙재는 한마디로 말하면 무량공덕입니다. 우리는 이 좋은 수륙도량에 들어와서 좋은 마음만 내시고, 나쁜 생각, 남을 미워하는 생각, 싫어하는 생각, 살생하는 생각, 생각조차도 내시면 안 되는 거예요. 오로지 좋은 마음 내면 그 자체가 염불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적재적소에 맞게 전물규범에 맞게 진설합니다. 세 번째는 꼭 필요할 때 베풀어주기 때문에 복이 늘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중생들의 고통을 위해서 수륙재를 봉행하는 것도 하나의 베푸는 행사입니다. 배가 고플 때 밥을 먹듯이 모든 미물들에게도 이런 전물형식을 올려 상을 차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수륙재는 3가지 형식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치스럽지도 누추하지도 않아서 제도에 맞고, 두 번째는 전물규범에 따라서 진설을 해서 올리고, 세 번째는 꼭 필요한 순간에 베풀기 때문에 복이 무량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6재까지는 여기서 하고, 다음 주에는 수륙재 낮재와 밤재가 있죠. 낮재는 영산회상에 맞게 법문하는 것이 목적이고, 밤재는 의식을 행해서 시식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수륙재를 지내면서 낮재의 핵심은 영산회상의 법문이에요. 법화경을 독송하는 것도 그 의미에요. 밤재의 핵심은 감로를 베푸는 시식이에요. 여러 단을 해서 마치게 됩니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여러 의식이 있지만, 국행수륙대재는 차별 없이 불교를 전하는 큰 의식이고, 모든 중생의 고통을 치유하고, 행복을 기원하는 불교의 대표적인 의례입니다. 명나라 지욱선사께서 말하는 육바라밀 염불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실하게 염불하여 심신의 세계를 내려놓는 것이 커다란 보시이고,진실하게 염불하여 탐심, 진심, 치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지계이고,진실하게 염불하여 인과의 시비를 가리지 않는 것이 커다란 인욕이고, 진실하게 염불하여 잡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정진이고,진실하게 염불하여 휘둘리지 않고 어디에 끄달리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선정이고, 마지막으로 진실하게 염불하여 곁가지 미혹되지 않는 것이 지혜다. 염불에도 육바라밀이 있는 거예요. 이걸 명심해서 우리들의 생각을 지혜롭게 청정하게 만드는 것이, 나쁜 생각, 힘들었던 생각 다 버리고, 오로지 염불하는 것만이, -바로 부처님의 명호, 관세음보살이든 지장보살이든, 아미타불이든 명호를 부르면,- 그 생각 그대로 우리마음이 청정유연, 맑아지는 거예요. 어떤 스님이 오셔서 진관사는 한마디로 말하면 <청정 자연 화엄>이라고 하셨어요. <국토청정심청정>이라고 내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가 청정하고, 일신이 청정하면 자신이 청정하고, 여기 있으면 마음이 청정해지고, 내 마음이 청정하면 다청정하다고 느끼셔야 되요. 그래서 제가 항상 말씀드리는 것이 <다 맞다, 다 좋다, 다 옳다, 다 맛있다>, 그런 생각만 내면, 부정적인 생각만 없어도 그대로 지혜바라밀이에요. 시시비비하지 않고, 수륙도량에 들어왔으면 삼업이 녹는다고 했지요. 신구의 삼업이 다 녹는 거예요. 신구의 삼업은 말하면 십악업이 없어진다는 거예요. 살생중죄, 투도중죄 등 십악업 참회하잖아요. 생각으로 참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천으로 참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거예요. 이참도 있고 사참도 있지만은, 이치로 참회하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과거의 무시겁래 나는 무엇인가.’ ‘전생에 나는 누구인가’라고 참회하는 것은 이참인데, 그런 모습을 참선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보통 명상이라고 하죠. 명상보다 한 단계 높은 게 참선이에요. 그래서 이치로 참회하는 것은 참선이고, 사참은 사적으로 참회하는 거예요. 108배를 한다든지, 염불한다든지, 마음속으로 침회진언 한다든지, 다 사참입니다. 이참과 사참을 다 실행하면서 항상 마음으로 좋은 생각 내고 좋은 마음먹고,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공덕을 베풀면 그대로 부처님이에요. 우리의 모토가 뭐죠, <마음의 정원 진관사>이면서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법화경 사상이에요. 일체 중생 모두가 부처님이란 것을 명심하면서 다 같이 부처님 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