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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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기도] 3월10일 음력 2월 신중기도 입재 법문
도혜스님 2024-03-10
예. 오늘은 천수경의 구성 내지 관세음보살님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천수경은 대승불교를 수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우리 불자님들의 신앙을 이끌고 가고 있는 중요한 경전이다>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우리가 매일 식탁에서 대하는 국과 밥과 같이, <우리의 마음과 신앙과 그리고 정신에 천수경은 스며들어 있다>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천수경은 <우리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대하는 경전>이기도 하지만, <대승불교의 전면적인 실천인 보현행해를 신앙의례화한 그러한 경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즉 <불교의 실체, 불교의 근본적인 사상과 정신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함축하고 있는 그러한 경전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이 천수경을 독송으로 수행하는 우리 불자님들은 입으로만 다라니를 하고 불보살님들의 명호를 부를 뿐만 아니라, <경전에 나타나 있는 불보살님들의 크나큰 원력의 삶과 존재의 실상을 관찰하면서, 온몸으로 대승불교의 이러한 정신을 실천해 나가야 된다> 이렇게 봐야만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경의 구성을 보면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예배문, 그러니까 예배문은 이제 공경문이라고 볼 수 있죠. 그다음에 공양문, 그다음에 참회문, 발원문, 송지문 이렇게 다섯 가지로 편찬되어 있어서, 여러분들의 수행과 신앙에 그지없이 도움을 주는 그러한 경전이다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앞부분에서 대승불교의 실천적인 면이다 이런 말씀을 드렸는데, 그것은 대자대비의 사상이 주된 흐름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천수경은 관세음보살님의 밀의인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소개하고, 또 관세음보살님을 예찬한 그러한 경전이다라고 흔히들 말하고 있지만, 자세히 그 천수경 내용을 살펴보면 이 천수경 속에는 초심자가 알아야 되는 불교의 기본적인 용어와 또는 올바른 신행생활 이런 것들이 잘 꾸려져 있다라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덕이 높은 큰스님들께서 불교의 모든 의식을 할 때 천수경을 독송하도록 한 것은 이 천수경이 신앙적인 기본 틀을 다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들이 불교 교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알려고 한다면은 그동안에 여러분들이 갖고 있던 상식이라든가 지식이라든가 이런 것을 다 내려놓아야 됩니다. 자기가 여태까지 자기 생각대로, 자기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사상이라든가 인생관이라든가 또는 자기 주의, 주장을 가지고 불교를 비교한다든가 또는 합리화를 시켜버리면은, 그러한 것 때문에 불교의 진정한 내용을 파악하고 알아가는 데 장애가 돼서 잘 알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를 알려고 한다면은 자기 자신이 어린애가 되어서 아주 호기심 많은 눈으로 바라보고 또 귀중한 보물을 구경할 때처럼 집중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불교를 대해야 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불교는 모든 상식, 일반 상식을 뛰어넘은 그러한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불교를 접해서 배운 그러한 것을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삶에 적용을 해본다면 여러분들이 아름답고 훌륭한 삶의 길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게 될 겁니다. 그래서 불교를 믿는다 신행한다, 이러한 모든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서 근본적으로 있어야 할 것이 뭐냐 하면은 중생의 이익입니다. 이 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물질적이거나 조건적인 것을 떠나서 근원적으로 이익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근원적으로 이익이 된다’라는 이 말은 무슨 소리냐. 여러분이 기도를 해서 가피를 체험하거나 못하거나를 떠나서, 여러분들 자신이 여러분들의 영성이 맑아지고 또 향상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은 대자의 상징이시고 또는 큰 서원을 갖고 계세요. 이 서원은 어떤 서원이냐 하면<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없애주고, 중생들에게 모든 즐거움을 주시겠다>라는 서원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서원을 통해서 지금 현재 여러분들이 많은 이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이익은 어떤 이익들이냐.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을 없애주고, 두 번째는 여러분들이 죄를 짓는 데 가장 핵심적인 욕심을 여의게 해주고, 세 번째는 여러분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또는 바라는 모든 것을 얻도록 해주신다 이 말이죠. 그런데 참 오묘한 일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을 한 번 부를 때마다 여러분들의 세포 하나까지 다 회복이 돼요. 왜 그러냐 하면은 우주 만물 전체가 전부 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현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중생의 고통이라고 하는 것을 이제 좀 한번 짚어본다면은, 그중에서 이제 우비고뇌(憂悲苦惱)가 있는데, 그것을 이제 7가지로 통틀어 볼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화난(火難), 화재가 난다든가 이런 것이고, 그다음에 두 번째는 수난(水難), 세 번째는 풍난(風難), 네 번째는 악귀난, 귀신으로 통해서 고통받는 거, 그다음에 다섯 번째는 도장난입니다. 이 도장난은 폭력이에요. 그다음에는 이제 가쇄난(枷鎖難)인데 가쇄난은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갇힌다거나, 수갑을 찬다든가 하는 이런 종류가 가쇄난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일곱 번째는 원적란인데 도적의 난을 입는 거, 이게 이제 7가지로 중생의 고통을 총괄을 한다면 이렇게 7가지로 총괄을 할 수가 있는데, 이 모든 고통들이 무엇 때문에 생겨났느냐.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있는 탐진치 삼독이라는 마음 때문에 이러한 고통이 생겨나고 여러분들은 많이 힘들어하고 어려워하고 있죠. 그리고 이제 중생들이 또 바라는 게 있죠. 바라는 것은 돈을 많이 벌어서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싶고, 또 이제 뭐 좋은 자식, 좋은 아들, 좋은 친구, 좋은 스승, 수도 없이 많은 그러한 소원과 바램들이 아마 여러분 가슴속을 들여다보면 수천만 개나 아마 넘을 겁니다. 그러한 이제 소원들이 다 있는 것을 관세음보살님은 다 얻게 해주신다 그 말이죠. 그렇다면 이 관세음보살님은 어떻게 무슨 신통이 있어서 또 우리를 그렇게 구출할 수 있냐 이 말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성품, 그것은 나에게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성품이 다 잠재되어 있어요. 그래서 내가 관세음보살을 부른다는 것은 내 몸속에 잠재되어 있는 관세음보살의 성품, 즉 부처의 성품을 드러낸다는 그러한 뜻입니다. 그래서 부처의 성품을 드러낸다라고 하는 것은 뭘 말하느냐. 내 몸속에 있는, 즉 내 몸속에 잠자고 있는 부처님을 깨어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을 함으로 인해서 내 몸속에 있던 지혜가 발동이 돼서 어떤 위난에 처해서도 그 위난을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난다는 거예요. 그 능력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의 능력이다 이 말이죠. 그 능력은 여러분이 다라니를 염불하는 공덕으로 내 몸속에 잠재되어 있는 관세음을 깨어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내 자신에게 있는 내 스스로의 관음을 깨어나게 해서, 일깨워내어서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을 성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첫 번째로 인식하고 여러분들 마음에 새겨야 됩니다. 그러면은 다라니를 어떠한 마음으로 해야 할 것인가. 첫 번째는 다라니 하는 것을 내가 의식을 하고, 두 번째는 나의 소리를 내 귀로 듣는 것을 의식을 하고, 이 두 가지를 전체적으로 의식하는 그 존재를 다시 한번 의식을 한다면은 지극한 염불이 되고 여러분의 의식이 초의식이 됩니다. 다시 한번 하겠습니다. 첫 번째 다라니를 하는 내가 의식을 하고, 두 번째 나의 소리를 내 귀로 듣는 것을 의식을 하고, 이 두 가지를 전체적으로 의식하는 그 존재를 다시 한번 의식을 한다면은 지극한 염불이 된다. 그리고 내자신이 초의식이 된다. 이것은 문훈문수(聞薰聞修)라는 것입니다. 문훈문수가 무엇이냐. 능엄경에서 나오는 말씀인데, 부처님 당시의 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처님 어떤 방법으로 수행을 하면 가장 쉽고 가장 빠르게 힘을 얻고, 생사를 벗어나서 아라한이 되고, 부처님이 될 수가 있습니까?” 이렇게 여쭈었어요. 그랬더니 부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 중에 우수한 수제자들 스물 다섯 명에게 “각자가 어떤 방법으로 공부를 했는지 발표를 해봐라” 그랬어요. 그래서 스물 다섯 명이 발표를 했는데, 이것을 이근원통(耳根圓通)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이근원통은 부처님께서 스물 다섯 분의 수행 방법을 듣고, 부처님의 지혜로 사바세계에 있는 중생들이 수행을 하는데 가장 빠르고, 가장 쉽고, 가장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 주신 겁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제가 말씀드린 이 세 가지예요. 다라니 하는 거를 내가 의식을 하고, 나의 소리를 내가 듣고, 또 이 두 가지를 전체적으로 의식하는 존재를 다시 한번 의식한다. 여러분이 이제 이것을 한번 실천해 보시면 다른 생각이 중간에 끼어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끼어들지 못하고 한 생각이 꾸준히 이어가게 되면 바로 힘을 얻고 우리가 능력이 생기게 되죠. 그래서 지극정성으로 우리가 기도를 한다라고 하는 것은 뭘 말하느냐. 관세음보살이라는 분은 초의식의 경지입니다. 그래서 우주의 관세음보살이라는 뜻인데, 이 우주의 관세음보살님과 내가 통하려면 의식이 통해야만 우리가 성취를 할 수가 있겠죠. 그렇게 되려면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은, 제일 첫 번째가 입으로 칭명하라 이 말이죠. 입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든가, 아니면 다라니를 해라 입니다. 그래서 염념상속(念念相續), 염념상속,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생각 생각이 절대로 끊어지지 않고 하나로 모아지는 것, 이렇게 다라니를 하게 되면은 내 몸에 있는 모든 세포가 힘을 내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다라니를 물질적인 것으로만 하면은 기도의 효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해야 되는데, 이 영적으로 한다라는 이 말은 무엇이냐. 나의 마음을 어떻게 하고 해야 하며, 또는 이 우주적인 힘과 영적인 힘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내가 알게 되면은 나 자신이 관세음보살이 된다는 겁니다. 내가 관세음이 되었을 때, 내가 관세음보살님의 힘을 다 쓸 수 있는 거예요. 이런 원리가 있는데 여러분이 만약에 내가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타력적으로 관세음보살님이 나에게 와서 나를 도와주실 것이다. 이 타력적이라 소리는 내 바깥에 있는 관세음보살, 그러니까 나는 따로 있고 관세음보살님은 내 밖에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런 마음으로 만약에 기도를 한다면 그 기도는 성취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진정으로 관음 행자가 된다면, 진정으로 여러분들은 우비고뇌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불이 났다, 근데 관음행자가 그곳에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혜가 생겨서 그 어려움 속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자신이 관세음보살님을 지극히 믿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동요되지가 않아요. 사람이 위급한 상황을 당하면 막 마음이 동요가 돼서 ‘어떡하면 좋나, 어떡하면 좋나’ 하다가 당하거든요. 그런데 마음이 차분해지고 동요되지 않아서 그 어려움 속에서도 지혜가 생겨난다면 피할 수 있는 이러한 것이 바로 관음의 가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제 이러한 관세음보살님인 것이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인데, 자기가 지혜를 내어서 그 어려운 과정을 피하는 도중에 자기를 도와주는 소방관이나 또는 자기를 도와주는 다른 여러분들이 있다면은 그 사람은 관세음보살님이 여러분에게 보내준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관세음보살을 여러분들이 이렇게 알고 접근해 간다면은 여러분이 하고 싶은 모든 일들이 다 성취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예문을 하나 들겠습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정말 부처님을 지극하게 신봉하고 오직 부처님만 의존하고 사는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근데 어느 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물난리가 났습니다. 나서 이제 동네에 물이 차서 들어온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이제 동네 동장이나 이런 분들이 방송을 하면서 물이 동네에 자꾸 차 들어오니까 집 안에서 어서 피해라 그렇게 방송을 하고, 또 옆집 사람들이 얼른 피하라고 와서 문을 두드리고 하고 그런데도 이 사람은 피하지 않는 거예요. ‘나는 부처님이 도와주실 거야. 나는 부처님이 도와주시니까 안 피해도 된다’는 거죠. 그리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가 이제 동네 사람들은 다 피해서 도망가고 다 그랬는데, 고집 부리고 있다가 이제 물이 점점 차니까 결국은 이제 할 수 없어서 지붕 위에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이제 둥둥 떠내려가니까 구조원들이 보트를 타고 다가와서 얼른 이 보트로 옮겨 타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다른 사람 구하라고 나는 부처님이 도와주실 거니까 괜찮다”고 그러면서 안 옮겨 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물이 점점점 해서 이제 지붕이 점점 가라앉는 거죠. 그래 안 되니까, 이제 물살이 너무 세니까 보트가 구조를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헬리콥터가 떠서 또 이제 줄을 내려가지고 이 사람 보고 줄을 잡으라고 줄을 잡으라고 아무리 해도 나는 부처님이 도와주실 거니까 안 잡는다는 거예요.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됐을까요? 그것은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시면 아실 겁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피하는 데 도움을 주는 그 사람들이 전부 다 관세음보살님이 보내신 분들입니다. 그 부처님의 도움으로 우리가 살아나는 거죠. 먼저 언젠가 제가 법문을 할 때 그랬죠. 그 봉은사에 나청호 스님이라는 분이 새벽 예불을 하는데, 어떤 여자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서 쫓아나가서 그 여자를 구해줬던 이야기를 제가 드렸을 겁니다. 생각나실 거예요. 그런 것처럼 그 주변에 그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사람에게 관세음보살님께서 듣게 하시는 거예요.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데 새벽 예불를 하는데 그 스님 귀에 그 소리가 들리겠습니까? 그건 관세음보살님이 듣게 한 겁니다. 그래서 가서 그 사람을 구제한 거예요. 이래서 여러분들이 신앙을 가지고 기도를 하고, 우리가 다라니 기도를 한다거나 또는 우리가 관세음보살님을 부르고 또는 천수경으로 통해서 기도를 한다거나 할 때, 이러한 부처님의 가피가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나고, 내가 또 어떤 것이 내가 가피를 입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만 됩니다. 그래야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또 부처님의 가피에 대한 것을 내가 직접 체험할 수 있고, 체험하게 되면 환희심이 나고 기쁘고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지금까지는 천수경의 구성이라든가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에 대한 것을 대충 말씀을 드렸고, 지금부터는 이제 본론으로 <정구업진언>으로 들어가 보겠는데요. 이 정구업진언은 <구업을 맑히는 진언이다> 그런 뜻이에요. 그래서 이 진언이라는 부분은 학술적으로나 논술적으로나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욜로(한쪽 귀) 들어갔다가 욜로 빠질 수가 있으니까, 그것은 이제 다음 언제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 구업에 대한 인과라든가 과보에 대한 것만 간단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구업이라는 게 참 무서워요. 어떻게 무섭냐 하면 우리가 이제 여러분, 그 천수경의 그 내용을 보면 십악업(十惡業)의 중간 부분에 다라니 끝에 나옵니다. 그렇죠. 그 십악업 가운데 보면은 죄를 짓는 것이 이제 신구의 삼업으로 짓는데, 신구의 신은 내 몸이에요. 몸으로 짓는 것이 세 가지고, 입으로 짓는 것은 네 가지나 됩니다. 그리고 뜻으로 짓는 것이 세 가지고. 그러면 이 입으로 짓는 게 더 많아, 많고 아주 무섭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기에 대한 예를 하나 들어보면, 부처님 당시 때에 미묘 비구니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정말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는 힘들고 어려운 고통을 겪다가, ‘정말 이제 내가 더 이상 살 수 없겠다, 죽어야 되겠다.’ 이러한 생각을 했을 때 문득 ‘부처님이라는 분이 계신다는데 한번 가서 뵙고 죽어도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부처님께 귀의를 해서 아라한이 되신 분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미묘 비구니가 아라한이 된 뒤에, 자기 후배들에게 자기의 일을 이야기했던 그런 것들이 이제 지금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인데, 앞부분에 이 비구니 스님이 겪은 일을 다 이야기하려면 너무 길고 많아요. 그러니까 무엇 때문에 이 비구니 스님이 그런 험난한 일을 당했는지, 그 과거 전생의 이야기만 이제 해드리겠습니다. 과거에 그 어느 곳에 부자가 있었어요. 그랬는데 그 부자가 자식이 없어요. 여러분도 아마 연세 많으신 분들은 젊었을 때, 남자를 우선으로 하는 그러한 사상이 우리나라에도 참 팽배해 있었죠. 지금은 좀 많이 좋아졌습니다마는, 그런 것처럼 인도 같은 곳은, 자식이 없으면 그 사람이 죽고 나면 재산이 전부 다 나라에 환속이 됩니다. 그러니까 딸이든 아들이든 관계없이 자식이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이 자식에 대한 그런 생각이 대단히 큰 부분이었죠. 자식이 없으니까 이제 첩을 들여서 자식을 보겠다. 그래서 이제 첩을 들였습니다. 그랬더니 이 첩이 들어와서 아들을 낳았어요. 그러니까 이제 첩이 인물도 이쁘기도 하지만은 젊기도 하고 아들까지 낳았으니까 얼마나 이쁘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남편이 오직 첩밖에 몰라. 그뿐만이 아니에요. 온 집안 식구들이 시어머니로부터 시작해서 첩만 알지, 이 사람은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이 됐죠. 그러니까 이제 이 부인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지금 이렇게 소외된 것은 뭐 그렇다 하더라도, 나중에 이 아이가 크고 자기가 늙고 남편이 만약에 죽게 되면 그 재산이 전부 다 그 아들에게 갈 거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게 생각해 보니까 암담하거든요. 그러면 이러한 것을 피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생각을 해보니까 그 아이를 없애는 것이 딱 좋겠어. 그래서 그 사람이 긴 바늘을 구해가지고 아이의 이 숨골에다가 깊이 꽂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가 시들시들해지더니 한 달 만에 죽어버렸어요. 여기다(숨골) 꽂았으니까 겉으로 표는 안 나는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이 엄마 되는 사람이 누가 어떻게 애를 죽였는지 모르는 거야. 이 엄마가 생각해 보니까 그 본부인이 그랬을 확률이 100%다 이 말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본부인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본부인한테 와서 “당신이 내 자식을 죽였지 않냐” 이렇게 따졌습니다. 그러니까 이 본부인이 뭐라고 했냐면은, “내가 만약 그 아이를 그렇게 죽였다고 한다면은 나는 어떤 재앙을 받느냐 하면, 내 남편은 뱀에 물려 죽고, 또 내 자식은 물에 빠져 죽거나 늑대에 물려 죽고, 또 나는 생매장이 되고, 나의 부모는 불에 타 죽을 것이다.” 이렇게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래도 당신이 나를 의심하겠느냐”이랬어요. 그렇게 무서운 맹세를 하니까 이 작은 부인이 “저렇게 맹세를 하는데 정말 죽였겠나”, 그리고 죽였다는 증거나 뭐 이런 게 하나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못 찾은 거야. 그때 그 부인은 자기가 이러한 선악의 과보에 대한 것이 정확하게 인과가 있다라는 것을 생각도 못하고,, 그렇게 맹세를 한 거죠. 근데 사실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이 누구냐, 이 미묘 비구니의 전생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미묘 비구니가 “그 사람이 누군 줄 아느냐 바로 나다.” 그래서 출가하기 전에 지금 말한 그것을 고스란히 다 겪었어요. 말도 못하는, 지금 제가 말씀드린 이것보다 더한 고통을 겪었어요. 그리고 이 미묘 비구니가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나는 지금 다행히 부처님을 만나서 아라한이 되었지만, 지금도 나는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느냐. 뜨거운 바늘이 정수리에 들어왔다가 발끝으로 빠지는 고통을 24시간 365일 계속 받고 있다. 그래서 재앙과 복이라는 것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것을 분명히 알고 수행해야 된다.” 이렇게 미묘 비구니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구업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이라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에요. 방망이나 이런 걸로 상대방을 때리면 물질적인 건데, 이 말이라는 것은 그냥 소리야. 소리인데 이 소리로 상대방에게 심한 욕을 한다든가, 상대방에게 충격을 주면 그 상대방이 쇼크사 할 수도 있고, 또 독한 말을 듣게 되면 그것이 가슴에 막혀서 평생을 고통받는 그런 경우가 허다합니다. 여러분도 상대방이 여러분에게 막 악독한 말을 한다든가 이러면 어때요? 아무렇지도 않나요? 그렇지 않죠. 속이 상하고 심지어는 화가 나서 막 생각지도 않은 행동을 하고, 이게 말의 힘이고 소리의 힘입니다. 그래서 이 구업이라는 게 참 무서운 거예요. 예를 들면, 상대방에게 “빌어먹을 놈” 이러면, 상대방이 빌어먹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빌어먹어. 상대방에게 “저 미친 놈” 이러면, 상대방이 미치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미쳐요. 그러니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야말로 몽둥이로 이렇게 하나 때리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게 이 말의 구업입니다. 그뿐만 아니죠. 누가 상대방에게 살살 말로 꼬시고 잘한다 이 말이야. 그러면 어떻게 홀딱 넘어가서 전 재산을 다 사기당하잖아요. 이 말이라는 게 이렇게 힘이 있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는 음성 교체예요. 음성 교체라는 것은 음성으로 전부 다 감정을 서로 주고받고 여러분이 지금 법문 듣고 있는 것도 소리로 듣잖아요. 이게 음성이잖아요. 이게 음성 교체입니다. 그래서 음성 교체로 이 사바 세계가 근본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소리로서, 잘못 소리를 내면 그것이 전부 다 나에게 되돌아옵니다. 근데 나갔던 말이 다시 되돌아올 때는 반드시 이자를 붙이고 와요. 그냥 오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은행에 뭡니까? 뭐 100원이라도 넣어놓으면, -100원 넣으면 이자가 안 붙겠지만,- 하여튼 쪼금이라도 붙잖아요. 그죠? 그런 것처럼 이 악한 것도 이자가 붙고, 착한 일을 해도 이자가 붙어서 돌아와요. 그러니까 이 구업이라는 거 정말 무서운 겁니다. 그래서 십악업 가운데에 망어(妄語)·기어(綺語)·양설(兩活)·악구(惡口)거든요. 기어는 비단결 같은 말이라. 상대방을 살살 비단결같이 해서 중매 서는 이런 분들은 그런 기어를 많이 하죠. 그래서 상대방을 잘못 결혼을 하게 만들면 그 사람이 평생을 망치는 거예요. 그죠. 이렇게 말이 무서운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구업에 대해서 굉장히 무섭다는 것을 인지를 하시고, 그래서 이 천수경 제일 첫머리가 구업을 맑히는 진언으로 시작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구업만이라도 먼저 맑히게 되면,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업 가운데 거의 3분의 1은 맑히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뭐냐. <구업을 맑혀야 된다.> 아시겠습니까? 이것으로 오늘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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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회] 3.1절 특별기념법회 및 (사)백초월스님 선양회 발족식 법문
문광스님 2024-02-25
안녕하세요. 문광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뜻깊은 자리에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백초월 스님 선양회가 이렇게 발족을 했습니다, 3.1절을 앞두고. 작년에도 3.1절에 왔었습니다. 와서 백초월스님 태극기에 대한 말씀을 드렸었는데, 올해 백초월 스님이 이제 80주기에 이릅니다. 그래서 6월 29일 날이 추모재 날, 기일인데요. 그때 학술대회를 할 때 태극기에 대해서 연구를 더 해서 발표를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태극기가 이 진관사에서 나오기 전에는 백초월 스님을 아시는 분이 우리 여기 계신 김광식 교수님 정도 있었고, 스님들 몇 분 아셨지 전 국민이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렇죠? 예전에 제가 탄허 스님 연구를 했는데 스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나는 문곡성이 발달해 있다. 그래서 살아서보다 나중에 세상 떠나고 나서 더 유명해질 거다.” 이러셨는데, 그래도 탄허 스님은 생시에도 많이 유명하셨더랬죠. 근데 이 백초월 스님이야말로 정말 진정한 문곡성의 기운을 받고 새롭게 한국 땅에 현신하신 분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이 진관사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해서 너무나 드라마틱한 일이 2009년에 벌어졌고요. 그리고 그 일장기 위에 그려서 태극기를 만드는 그런 문화가 있었고, 그리고 그 뒤에, 40년대 이후에 그러한 태극기가 있다는 말씀은 들어봤으나, 3.1절 당시에, 3.1운동 당시에 그렇게 실제로 했다는 유물을 그대로 보여주신 게 우리 이 진관사의 칠성각에서 그대로 드러났지요. 희유한 일입니다. 우리 국민이 지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될지에 대해서 한 번 더 경각심을 주고 있는 그런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이 들고요. 제가 오늘 우리 회주 큰스님께 그런 말씀 드렸어요. 이제 우리 진관사는요, 단순한 조계종 사찰, 서울에 있는 사찰, 그냥 불교의 절, 이런 게 아닙니다.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을 찾고 있고요. 한국에 오게 되면 서울을 오게 되는데, 이 서울을 바로 보여줄 수 있는, 삼각산을 보여주고, 그다음에 여기에서 이 고려시대부터 시작해서 쭉 흘러왔던 역사들이 다 그대로 간직되어 있고, 조선시대 무학대사가 동서남북으로 이 수도를 수호하는 그런 절들 중 서쪽을 수호하는 진관사, 그렇게 벌써 임명을 받고 있었던 그런 엄청난 사찰이고요. 거기에다가 왕조 실록을 보면, 태조실록에 딱 보면 그냥 바로 처음부터 나옵니다. 수륙재 얘기가 나와요. 진관사 수륙재 얘기가 나오고요. 그리고 그런 부분들을 보면 이 진관사야말로 한국의 모든 우리 국민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사찰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게 어르신이었던 진관 스님께서 여기를 불사를 너무 잘해 주셔서 너무나 맑고 깨끗하고, 그다음에 지금 우리 회주 스님, 그다음에 주지 스님을 비롯해서, 여기 진관사에 계신 스님들이 너무나 도량을 맑고 깨끗하게 정리를 해주셔가지고 여기에 그냥 오기만 와도 그 자체로 마음이 쉬어지고 힐링이 되는 도량이 됐어요. 거기에 템플스테이 뿐만 아니라, 이제는 사찰 음식까지 명장이 계시고, 아주 엄청난 문화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회주 스님께 그랬습니다. 문화총림이라는 말을 좀 쓰면 어떻겠느냐고. 우리 불교에서는 선원, 강원, 율원, 염불원 이렇게 있으면 총림이라고 그러거든요. 근데 이제는 그야말로 진관사야말로 서울에 누군가 외국인이 온다면 이 진관사를 보면 한국의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한국 문화의 아주 결집체다. 그래서 문화 총림이 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런 도량에서 백초월 스님의 이런 태극기가 나오고 신문이 나오면서 우리 국민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김광식 교수님께서 이제는 건국 훈장을 받으실 수 있도록 우리가 일을 해야 된다고 말씀하셨고, 그다음에 태극기 기념관도 이제 마련을 해야 된다는 게 너무나 당연하신 말씀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 백초월 스님을 저도 이제 진관사에 오게 되면서 뉴스는 봤지만 자세히 몰랐잖아요. 그래서 김광식 교수님 책도 보고, 여러 사료들도 이렇게 찾아보고 하면서, 그냥 한마디로 딱 느낌이 어떠냐 하면요. 그냥 투신하신 분이에요. 그러니까 이 <사>라고 하는 거 일체 없고, 그냥 우리 민족과 우리 국가를 위해서 그냥 투신하신 분이다, 그렇게 보여집니다. 너무 행장이 잘 보이지 않고 그러셨는데, 일심교라고 하는 거를 만드셔서 일심회를 하셨다 그래요.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스님이 지리산 영원사에서 계셨었는데 그때에 스님이 강백이셨어요. 말하자면 저도 강사지만, 저처럼 그냥 공부하셨던 스님이었던 거예요. 근데 일제시대 때 스님께서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셨어요. 그것이 우리 땅에 있는,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께서 “모든 스님들은 다 나와라. 생명을 구제하라. 살아있는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그것이 가장 중요하지. 우리나라의 모든 이 백성들을 이렇게 포악하게 살생을 하러 온 저 왜적을 그대로 둘 수 없으니, 생명을 구제해야 되니 나와라.”라고 하는 그런 방문을 날리셔서 사병 대사를 비롯해서 모든 분들이 한꺼번에 의승병이 돼서 나오셨단 말이죠. 그것처럼 그냥 정말 공부 잘하시고 훌륭하신 스님이, 선원장도 하시고 조실도 하시고 이러셨던 분이 갑자기 이렇게 나오셨던 거는 완전한 보살행이다. 보살행이라 생각해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스님께서 청주의 용화사에 계실 때 화엄경을 보시다가, 화엄경의 대의가 통만법명일심(通萬法明一心), -여러분 많이 아시죠?- 통만법명일심이라는 구절을 보시고, -만법을 통설해서 일심을 밝힌다. 화엄경의 종지가 그거다.- 이 구절을 딱 보시면서 생각하신 게 “그러네. 일심을 가지고 우리가 독립운동을 하면 우리가 해방이 될 수 있겠구나” 바로 그 생각을 하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일심 그러면, 불교는 모든 사상이 일심 사상인데, 대승기신론에도 일심이문(一心二門)이 있고, 일심 만법귀일(萬法歸一)도 있고, 모든 게 다 있잖아요. 근데 화엄경의 종지를 보시고 일심교 일심회를 만드셨다 그러니까, 스님에게는 화엄 사상이 일단 기본이 있으셨다. 그러면 스님이 그렇게 구국의 활동을 하신 건 전부 화엄의 보살행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그러니까 스님께서는 감옥에 계시다가 밖에 나오시게 되면 바로 그냥 독립운동 바로 하세요. 그러니까 여러분 저기 아시죠? 용산에서 출발하는 그 열차에 대한독립 만세를 써가지고 그냥 그걸로 의사를 하는 겁니다, 무조건 잡히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때 같이 동참했던 박수남이라는 분이 계세요. 이분이 그때 그쪽에서 일을 하고 계셨는데, 그냥 일반인이라고 봐야죠. 근데 그분이 그 일로 스님하고 잡혀서 같이 일본 감옥에 들어갔는데, 고문을 받고 10개월 만에 그 다음 해 돌아가셨어요. 얼마나 심한 고문을 받았으면. 그러니까 요즘이야 감옥이 인권이 있고 하지만, 그때 일제시대 때 상상을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스님이 2년 6개월 서대문 형무소에 계시다가 출소하시자마자 바로 또 독립운동을 하세요. 바로 만주에 독립 자금을 보내셔서 체포되셔가지고 결국은 청주교도소에서 1944년 광복을 한 해 앞두고 6월 29일 날 순국하셨어요. 입적하셨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까 1944년에 입적하신 독립투사들이 많이 계세요. 만해 한용운 스님이, 참 이게 우연인가요? 한 살 차이가 나시는데, 만해 한용운 스님이 한 살 적어요, 초월 스님에 비해서. 똑같은 날 입적하셨어요. 1944년 6월 29일. 그래서 저기 백담산을 비롯해서 말이죠, 그때 추모재 합니다. 만해 한용운스님을. 이제 그 우리가 자료를 찾으면 좋겠는데 민족 독립 33인, 거기에 백초월 스님을 넣으려고 했다라고 하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요. 이제 우리가 이런 자료들을 찾아내서, 김광식 교수님 말씀하셨듯이, 용성 스님, 만해 스님이 민족대표 33인에 우리 불교계로 들어가 계신데, 백초월 스님은 정말 그 이상의 치열하게 정말 몸을 사리지 않으시고 투신하셨다. 몸을 그냥 던지신 분이신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정말 그야말로 스님의 이 정신이 이제 세상에 빛을 발하는 시절이 왔습니다. 문화총림 우리 진관사에 스님께서 많이 계셨대요. 마포 포교당에 있었는데 거기 왔다 갔다 하시면서 경전에 아주 잘 통하셨던 것 같아요. 지금 동국대 전신인 중앙학림에서, -명진학교 중앙 이렇게 불렀잖아요,- 그때 스님을 대표 강사로 초청을 하셨는데 영원사에서 불이 나서 못 가셨다 그래요. 그다음에 박한영 스님이 그 길을 가신 거예요. 그러니까 최고의 강백이셨던 거라고 보여집니다. 그런 분이셨는데 스님께서 이런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걸 보면 정말 거룩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여담을 하나 하자면요. 이순신 장군의 3부작 영화가 있죠. 명량 그다음에 한산, 노량이라고 이 영화 삼부작이 있는데, 우리나라 역대 최고 관객이 들어간 1700만 명이 넘은 영화가 명량이에요. 명량대첩. 그 감독님인 김한민 감독님이 불자라는 거예요. 저를 만나고 싶다고 그래서 한번 만났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순신 장군 3부작이 끝났으니까, 이제 새로운 영화를 만드시고 뭐 해야 되는데, 제 유튜브도 보시고 하셨대요. 그래서 저 만났는데 한 10년을 이순신 장군 영화를 찍으면서, 이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같은 걸 보면서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살고 계셨고 어떻게 했느냐 이 행간의 의미까지 정말 보게 되더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말이죠. 굉장히 중요한 얘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그분이 불자인데, 여러분, 명량에 보면 그 스님들 승병 나오셨던 게 보여요. 불자이시기 때문에 그러셨던 거에요. 근데 여러분 최근에 남해를요, 이순신해라고 병기하는 운동이 벌어졌어요. 그래서 여러분 서명하실 수 있어요. 그 사이트가 있습니다. 그래서 국회에서 법안을 내서 그렇게 하도록 하는 걸로 지금 진행 중이에요. 이 단편적인 예, 여러분 우리 오늘 출범한 백초월 선양회가 이제 이런 일을 해야 됩니다. 모든 분에게 알려야 돼요. 모든 전 국민에게 알 수 있도록 알려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서해라고 부르는데 그게 공식 명칭이 될 수가 없대요. 중국에서 봤을 때는 동해니까 그래서 황해라고 한답니다. 그다음에 이제 우리 지금 동해라고 하는데, 일본 사람은 일본해라 그래요. 그렇죠? 독도가 자기 것이라 그러고. 여러분, 남해는 이순신 장군이 안 간 데가 없는 거죠. 그죠? 그래서 <전체를 그냥 이순신 해라고 이름을 붙이자> 이런 운동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굉장히 좋은 거 아니겠어요? 이제 앞으로 우리도 백초월 스님에 대한 이런 부분들을 연구를 좀 많이 해야 될 거라고 봅니다. 여러분 제가 김한민 감독님한테, 너무 연구를 많이 하셔가지고, 들은 얘기가 있어요. 뭐라 그랬냐면, 여러분 그 영화 보셨습니까? 노량이라는 영화 보시면 그 뒤에, 저도 감독님을 만나게 돼서 영화를 못 보다가 봤어요. 노량에 보면 이순신 장군과 마지막으로 싸워서 전사하실 때 그 나오는 인물이 백윤식 배우가 연기를 했는데 말이죠, 시마즈 요시히로라고 나와요. 여러분 우리가 가토 기요마사 그다음에 고니시 유키나가는 많이 아는데, 시마즈 요시히로는 잘 모르는데, 이 사람하고 마지막으로 이제 전쟁을 한 거예요. 이 사람이 뭐냐 하면, 우리가 이순신 장군이 종군을 하고 전쟁에 못 나가는 동안 우리 해군이 완전히 초토화가 돼요, -칠천량에서 그랬죠.- 초토화가 될 때 이긴 장군이라는 거예요. 근데 이 장군이 이순신 장군과 노량해전에서 너무 많은 피해를 입고 돌아가는 바람에 일본 역사가 바뀌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도요토미 히데요시 밑에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 이런 자기 군사들이 있는데, 그중에 핵심 중에 하나가 시마즈였는데, 너무나 많은 피해를 입고 가다 보니까,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전쟁에서 지게 돼서 도쿠가와 막부 에도 시대가 열렸다는 거에요. 근데 시마즈가 가서 사쓰마 현에서 다시 살아나는 기운이 일제시대 메이지 유신을 하면서 일제를 만들어 낸 거예요. 정한론. 한국을 정벌하자. 우리가 그때 못하고 왔으니까 다시 가자, 이렇게 해서 그게 만들어졌고, 시마즈가 있었던 그 지역이 아베 수상의 지역구였대요. 그러니까 혐한이라든지, 한국을 정벌하자라든지 그런 것들이 거기서 이어지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이 그렇게 혼을 내줬으면, 국가가 가서 큐슈 정도는 우리 걸로 한다 하든지, 또는 이제 다시는 침입을 못하게 한다는 걸 받는다든지, 이런 부분들을 정확하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걸 못하고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면서 우리가 다시 침입을 받는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 백초월 스님의 태극기는 굉장히 강렬한 자각을 지금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예전에 조선통신사 기록을 봤는데, 일본에서 유교가, 성리학이 발전을 하다가 중간에 막혀요. 막혀서 이해를 잘 못 하고 있을 때 퇴계 선생의 글을 보고 이해가 됐다 그래가지고 굉장히 열심히 성리학을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조선에서 통신사가 가면 그 사람들이 이제 막 공부했던 사람들이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갔다 와서 임금에게 뭐라고 얘기하냐면, “저 야만적인 무력만 쓸 줄 아는 저 왜놈들이 이제 정신을 좀 차렸나 봅니다. 공부를 좀 하는 것 같아요. 이제 우리 쳐들어올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러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수준이 그래요. 너무 안일한 거죠. 아베의 할아버지가 조선 마지막 총독이었던 거 아시죠? 다시 이 땅에 우리에게 반드시 온다 그랬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땅을 왜 이렇게 노립니까? 우리는 일본에 쳐들어갈 마음이 없는데. 우리 땅이 너무 좋아요. 우리 땅이 너무 좋아요. 여러분 북한산 가보셨어요? 저런 바위산이 어디 있습니까? 전 세계에. 앉아만 있어도 기운을 받을 수 있는 저런 땅이 없어요. 일본은 그냥 묘를 쓰고 나면 도시혈이라고 해서 그래서 그냥 관이 떠내려가잖아요. 땅이 움직이는데. 그래서 다 화장하고. 우리 땅처럼 이렇게 좋은 땅이 없어요. 금수강산이에요. 그래서 늘 우리 땅을 다들 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걸 잘 지켜내야 되는데, 그러려면 정신이 살아있어야 되고, 그리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지금 우리가 말이죠. 제가 요즘 한국학 에세이를 많이 썼는데 그랬습니다. 전 세계는 말이죠, 무력과 폭력의 역사였어요. 지배하고, 전체주의 식민지 만들고 이걸로만 그냥 전 세계 패권을 유지하면서 살아왔는데요. 이제는 무력의 시대는 끝났다. 물력의 시대가 왔다. 조선시대 때는 무를 숭상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문이 약했어요. 문약이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해서 이만큼 국가가 발전했으면 그다음에 국방력이 있는 상황에서 문화로 가는 거죠. 문화. 문화의 힘으로 전 세계에 지금 우리가 한류라고 하는 엄청난 그런 상황을 보이고 있잖아요. 거기에 첨병 역할을 하는 곳이 여러분 진관사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우리 김광식 교수님이 건국훈장도 추서하고 그다음에 태극기 기념관도 만든다고 하시는데, 다음에 불자이신 영화 감독님을 보면, 백초월 스님 영화 좀 만들자고 하면 좋겠어요. 세상에서 책이나 이 정도 가지고는 이렇게 선양이 많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앞으로 여기에 진관사에 딱 보시다가 어느 감독님 오셨다 그러면, 빨리 어른 스님께 모시고 가서 영화 만들자고 해서 전 국민이 알아야 됩니다. 이런 분 전 국민이 알아야 돼요. 그리고 실제로 너무나 안 알려지셨던 어른이고 정신이 위대하다. 그러니까 그런 부분을 우리가 한번 생각을 해봐야 되겠습니다. 굉장히 상징적입니다.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이렇게 그렸다는 거는 마치 말이죠, 주역에서 무극이 태극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무극이라고 하는 건 원상 하나만 있는 거예요. 원상 하나만 있는데 이게 태극이 됐다는 건 음양이 갈라졌는데 이 태극이 반으로 그냥 잘라진 것이 아니라 서로 갈마들고 있죠. 그다음에 상극인 것 같지만 상생하고 있단 말이죠. 이 세상의 모든 건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 몸도 그렇고, 우리 마음도 그렇고, 항상 음양을 왔다 갔다 하고 있죠. 그래서 이 음양이라는 세계에 살고 있지만, 음양이라는 세계를 벗어나는 세계가 바로 이게 도의 세계라 그래요. 그러니까 여기 진관 스님 계실 때 국수 먹으러 많이 오셨던 우리 탄허 스님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유불(儒佛)을 회통해서 태극을 깨닫는 것을 각이라 한다” 그러셨어요. “태극을 깨닫는 걸 깨달음이라 그러고. 태극이 뭔지 아는 걸 깨달음이라” 그랬어요. “음양인 것 같은데 세상의 모든 게 다 갈라져 있어요. 세상의 모든 게 결국 이분법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는 사유를 하는데, 그것이 결국 둘이 아니라 궁극적인 하나라고 하는 걸 아는 것, 태극을 아는 것을 각이라 한다.” 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이 일본이라고 하는 일장기 안에 태극을 다시 그렸고 괘를 그렸다고 하는 거는 원리적으로만 있는 도의 세계를 현실적으로 등장시켰다, 이런 의미를 가지는 거죠. 여러분, 우리 한국의 태극기가 전 세계 국기 중에 제일 어려운 것 중에 하나예요. 이 태극기라는 걸 깨닫는 거예요. 이만큼 힘든 그런 진리가 있으나 이건 엄연한 완벽한 진리다. 그다음에 이 태극기라고 하는 걸 봤을 때 우리 국민들 모두 그렇고 우리 진관사의 신도분들도 그렇고 다 그러실 겁니다. 가슴이 뭉클하죠.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래서 초월 스님은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고 계신 것 같아요. 우리 한국이요, 위기에 강합니다. 위기에 강한데, 위기에만 강해서 되겠습니까? 위기 아닐 때 우리가 정말 제정신을 차리고 정말 방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이제 전 세계의 문화의 중심이 되고, 전 세계 사람들이 이제 한국을 알기 시작을 했는데요. 지금 10대, 20대, 30대까지 한류라고 하는 걸 통해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를 익히고, 한국에 찾아오기도 하고, 이렇게 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는데, 이것이 그냥 그냥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 사람들이 앞으로 40대, 50대, 60대가 되면 그 나라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지 않겠어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나라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다 한국을 잘 아는 사람, 한국어로 된 노래를 들어봤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제 전 세계 대통령도 하고, 장관도 하고 이러는 시대가 앞으로 올 거예요. 그런다고 했을 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모르고, 우리의 민족혼 그다음에 우리의 어떤 한국의 정신을 모른다고 하면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제 이 백초월 스님이라고 하는 분에 대해서는 우리의 궁극적인 어떤 한국 문화의 정점으로 발전시킬 생각을 해야 되고요. 스님의 사상이나 이런 것들을 발굴을 많이 해내고, 그다음에 선양도 많이 하고, 그리고 그와 아울러 이 진관사에 왔을 때 “정말 이런 곳이 한국이구나, 한국이 원래 이런 정신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하는 걸 알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제가 조선 유학을 연구하다가 그냥 출가했어요. 조선 유학 공부. 너무 성리학 공부하다가 그냥 출가했어요. 여러분, 좀 답답했어요. 동인, 서인 나눠져 있다고요. 동인이 남인과 북인이 되고, 서인이 노론, 소론이 됐어요. 그래서 서로 토론하는 거 너무 좋죠. 의견이 갈라질 수밖에 없죠. 마치 말이죠, 무극이 태극됐다가, 태극이 양의가 돼서 음양이 됐다가 음양이 사상이 됐는데, 지금 모든 세상의 세부 분열도 이와 같이 하잖아요. 그건 당연한 일인데 항상 근본을 생각해야죠. 근본은 일심이에요. 백초월 스님이 일심 사상이야. 나는 앞으로 이제 이걸 일심 사상이라고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독립을 일심으로 하면 독립이 되겠구나, 독립 운동을 하셨던 것은 우리가 이런 좋은 땅을 유지하려면 일심이 돼야 된다는 메시지를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말이죠, 서로 서로 싸우다가 조선 말이 되면 또 나눠져서 싸웠어요. 여러분, 아관파천 후는 친러파잖아요. 그죠. 임오군란이 일어나니까 그냥 청나라 데려와서 친청파잖아요. 서재필이나 이런 분들은 또 친미파잖아요. 김옥균이나 이런 분들은 갑신정변을 일본을 등에 업고 친일을 했잖아요. 근데 우리 자체가 더 중요한 거죠. 우리 한국인이 아무리 서로 토론을 하고 의견이 분분해도, 궁극적인 목적은 같은 한국이 하나 되기 위한 거에 궁극적인 방점이 달려야 되는데, 어느 나라를 등에 업고, 나는 저 사람 되는 거는 못 보겠다, 이런 거는 문제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지금 예를 들면 아까 여기 정치하셨던 국회의원분들 많이 오셨는데 그런 거잖아요. 여러분 친A, 반A 이런 거 있잖아요. 친박, 비박, 친문, 비문 하듯이 이런 것들은 여러분 조선조에 있었던 우리의 문제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증거예요. 그렇잖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결국은 태극기 하나에 다 어울러 있듯이, 그다음에 일심으로 화합이 돼 있듯이, 그러지 않으면 또 위기가 온다는 메시지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너무나 많이 봤는데, 임진왜란 때도 봤고, 병자호란 때도 봤고, 그다음에 일제도 봤고, 그래서 목숨을 바쳐서 나라를 구하고, 이렇게 해서 많은 국민들이, 백성들이 희생을 하고 해서, 지금 이렇게 꿋꿋하게 살아왔던 그 우리의 힘으로, 이제 한류라고 하는 걸 전 세계에 알리면서 한국이 이만큼까지 왔습니다. 근데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이러한 메시지를 역사에 우리 교훈들하고 새겨서 화합해야 됩니다. 저도 한국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가장 안타까운 게 이분으로 나눠진 분열을 화합으로 만들어주는 원효의 화쟁, 회통, 그다음에 초월 스님의 일심 사상 이런 것이 앞으로 필요하다고 보여집니다. 한국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제 이걸 잘 해서 보여줘야 됩니다. 탄허 스님이 그러셨어요. 진관사에 자주 오셨던 탄허 스님이 “한국인이 하면 전 세계가 앞으로 따라한다. 대학생이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일어나서 정권이 바뀐 건 전 세계에 없었다. 우리 한국에서 그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그걸 따라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됐어요. 그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 바로 한국의 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앞으로 화합해야 된다. 화쟁해야 된다. 일심으로 나아가야 되겠다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여집니다. 여러분 평상시에 늘 3.1절이 되고, 광복절이 되면 태극기를 달고 했는데, 저는 작년에 받아온 이 진관사 태극기를, -작년에는 조금 더 컸어요. 그렇죠. 종이가 더 컸습니다.- 저는 방에 부처님 옆에 딱 모셔놓고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하여튼 민족주의가 좋아요. 근데 한국은 이 민족주의라는 게 단순한 국뽕이 아닌 것 같아요. 우리는 다른 나라를 침입해서 거기를 빼앗고 하는 그런 욕망이 없어요. 일본한테 그 정도 당하고 나면 말이죠, 어린애가 딱 그 역사책을 보고 나면 “저는 일본에 가서 총독을 한번 하겠습니다.” 이런 애가 나와야 되는데, 그런 사람 한 명도 없어요. 제가 아무리 만나봐도. 우리 땅이 그만큼 좋고, 평화를 사랑하고, 우리 한국인의 어떤 심성이 그러한가 봅니다. 대신에 다시는 이와 같은, 우리가 외세도 막아야 되겠지만, 우리 안의 분열로 인해서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 되겠다. 그것이 우리의 한국 정신으로서 일심의 정신으로 한번 피어나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갑자기 김한민 감독이 저를 다시 한 번 부르면, 이 진관사에 한번 모시고 와가지고 ‘좀 발심을 하게 만들어야 되겠다. 천만 관객이 한번 이걸 관심을 가지게 좀 해봤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이렇게 위대한 정신을 많이 알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하여튼 우리 원력을 세워가지고 이제 진관사에서 이렇게 백초월 스님 선양회가 발족을 했으니까,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새롭게 초월 스님을 알리고, 스님의 독립 정신을 알리고, 진관사 태극기를 이제 다시 한 번 우리 국민들에게 아주 새롭게 선사하는 그런 시절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초청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저도 역시 앞으로 초월 스님의 연구를 잘하고, 한국이 위대한 정말 정신의 문명으로 우뚝 서는 날까지 더 열심히 연구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사진 : 은평구의회 박정묵주임님 / 진관사 청년법회 김명재법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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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도량참법기도] 2월 18일 자비도량참법기도 회향 법문
가섭스님 2024-02-18
마하반야바라밀.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반갑습니다. 설 잘 보내셨죠?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진관사를 대표하는 분들만 앉아 계신 거죠. 얼굴 뵈니까 다 진관사다운 면모를 갖춰서 눈빛이 반짝반짝한데요. 오늘은 이제 자비도량참법 기도를 회향하는 날이기도 하죠. 저도 유튜브로 좀 봤습니다. 저도 이제 소임을 볼 때 연초가 되면 자비도량참법을 하곤 했는데, 자비도량참법은 말 그대로 자비도량이 핵심이잖아요. 자비도량을 건립하는 게 목적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제 <자비도량을 건립하자>라고 하는 주제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주지 스님께서 들어서자마자 박사를 받았다고 그러셔서 낯부끄러워서. 근데 사실은 사실이에요. 학위는 아직 못 받았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 학위 수여식이 있어요. 그래서 이제 철학 박사를 받게 됐는데, 제가 원래는 우리 주지스님하고 같이 학교 다닐 때 박사학위를 제일 빨리 받을 거라고 소문이 났었는데, 제일 늦게 받게 돼버렸어요. 중간에 한눈을 많이 팔아가지고 늦게 받았는데, 우연치않게 정토 관련된 공부를 다시 하게 됐어요. 그래서 박사학위는 이제 <조선시대 정토신앙 연구>라고 하는 걸로 학위를 받게 됐는데, 조선시대 하면은 불교가 가장 어려울 때였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조선시대의 정토를 연구한 선행 자료들이 없어서 꽤 애를 먹었습니다. 자료를 찾는데. 그래서 제가 조선시대 정토를 살펴보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해볼까 하다가, 한 15년 전에 통도사로 성지순례를 갔는데, 그때 천일 기도하는 스님이 참법 기도를 하는데, 기존에 우리는 이제 자비도량참법만 알았는데, 그 스님이 하는 책이 미타도량량참법이라는 걸 가지고 참법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책을 하나 얻었어요. 절에 와서 쭉 읽어보니까, 내용이 너무 신심이 나고 또 너무 좋았어요. 특히 제가 살던 도량이 미타도량이었기 때문에, 그러면 이제 ‘내년부터는 이 미타도량참법을 가지고 정초마다 참법기도를 해야 되겠다.’ 그래서 이제 그 스님한테 책 복사본을 내는 걸 허락 맡고, 한 1천여 권을 찍어서 신도분들한테도 나눠드리고, 또 오는 인연들한테 하나씩 나눠드렸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그 미타도량참법을 보니까 이게 조선시대에까지 면면이 이 참법 기도가 내려오는데, 이 중국에서부터 쭉 내려온 게 미타도량참법인데, 그 참법이 자비도량참법도 마찬가지지만은 굉장히 중요한 신행 내지는 수행의 한 방법으로 해왔던 거였어요. 그런데 자비도량참법만 해도 10권으로 돼 있잖아요. 그러니까 옛날에 이게 너무 기니까 이걸 줄여가지고 소미타참법이라고 줄여서 한 기록도 있더라고요. 근데 이제 우리 진관사도 하지만, 예수재나 수륙재를 하지 않습니까? 근데 옛날에는 그 수륙재나 예수재의 핵심이 참법이에요. 근데 이게 너무 길고, 이제 오래 복원이 지금 되고 있지만, 하다 보니까 이 참법이 빠지고 공양만 남아 있는 거예요. 예수재나 수륙재가 원래의 원형을 찾으려면 공양 플러스 참법이 들어가야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 참법이라는 게 그만큼 중요한데, 또 이 참법을 하면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게 뭐냐 하면, 중생의 습성을 내려놓고,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본래 붓다의 성품을 드러내는 게 참법의 가장 큰 특징이란 말이죠. 그런데 이 정토가 바로 그런 거잖아요. 정토가 이제 깨끗한 세계, 예토의 반댓말이니까, 좀 편안한 세계, 고통이 없는 세계, 그다음에 바로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세계, 이게 이제 정토인데, 조선시대 정토는 우리나라 불교가 들어와서 전래가 되면서, 정토에는 세 가지가 있거든요. 저 멀리 서방정토 세계가 있고, 그다음에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정토로 만드는 게 있고, 또 하나는 마음이 정토인 세계가 있어요, 쉽게 말하면. 근데 우리나라에서 해방 이후에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온 스님들이 많이 들어와서 정토를 하다 보니까, 유심정토보다는 우리가 사후에 가는 극락정토 서방정토 세계를 많이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조선시대의 자료를 보다 보니까 우리나라는 정토의 특징이 화엄선의 영향을 받아가지고, 화엄선이 이제 나중에 극도로 아주 최고의 수행 과정으로 가는 게 간화선이란 말이죠. 이 화엄선의 출발점이란 말이에요. 우리나라는 화엄선이 핵심이에요. 근데 화엄의 영향을 받아가지고 정토도 유심정토 성향이 강합니다. 마음이 정토라는 거예요. 마음이 정토여야 된다. 그래서 조선시대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눠서 보니까, 그 당시에 선사 스님들도 전부 정토에 관련된 책을 쓰고, 정토에 의지했던 모습들이 있어요. 근데 그 정토는 우리가 기존에 생각했던 사후 세계의 정토가 아니라, 어떤 세계다? 마음이 정토인 세계인 거예요. 깨달음의 세계인 거죠, 일종의. 그래서 그런 것들로 조금, 이제 아주 조금 연구를 해놨어요. 그래서 다행인 것은 이후에 후학들이 조선시대 정토를 연구하는데 한국적인 시각에서 정토를 보는데 조금 이바지가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보게 돼서 스스로 칭찬을 하게 됩니다. 제 자랑은 여기까지 하고요. 자비도량참법을 좀 이야기할까 하는데, 아까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자비도량을 건립을 해야 된다> 그게 목적이다 그랬잖아요. 근데 우리가 1년을 새로 열면서, 첫 페이지를 읽으면서, 그 첫 페이지에 자비도량으로 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수행 중에 하나입니다. 자비라고 하는 것이 이제 늘 얘기하지만, 자비라는 게 뭐예요? 우리 이제 젊은 불자들도 있고, 또 절납이 오래되신 노보살님도 계시는데, 자비가 뭐냐 하면, 자비가 뭐예요? 자비. 부처님이 우리에게 주었던 선물 중에, 선물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제 지혜라는 선물이 있고, 자비라는 선물이 있는데 자비는 온화하고 따뜻한 거예요. 자비스럽다. 자비스러운 마음 그러면 다른 거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이렇게 지그시 눈을 감고, 내 마음이 온화하고 따뜻한지 이렇게 떡 보면 돼요. 근데 내 마음이 산란해, 마음이 차가워, 마음이 굳어 있어, 그러면 어떻게 해요? 그건 자비한 마음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자비한 마음을 돌리는 거죠. 돌리면 되는 거예요. 온화하고 따뜻한 것이 왜 중요하냐 그러면, 온화하고 따뜻한 것이야말로 새로운 생명을 움트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입춘이 지났으니까 제가 늘 가끔씩 엄청난 예언들을 하는데 들어본 적 있죠? 제가 엄청난 예언을 하잖아요. 봄이 오면 꽃이 필 거고, 겨울이 오면 눈이 내릴 거다. 중요한 건 뭐냐면 그때 다 우리가 건강한 모습으로 볼 거다. 이건 엄청난 신령스러운 일이에요. 우리가 때가 지나도 건강하게 늘 볼 수 있다는 거는 그것만큼 신령스러운 일이 없는데, 어쨌든 봄이 오니까 봄이 오면 따뜻해지죠. 따뜻해지고 온화해지면 어떻게 돼요? 생명이 움트게 됩니다. 이제 법문하려고 쭉 내려오는데, 아주 우리 진관사 도량이 고즈넉해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습니다. 근데 이제 도량에 서 있는 나무들이 전부 지금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죠. 근데 이게 이제 온화하고 따뜻해지면 싹이 나기 시작해서, 녹음이 지고, 또 가을에는 낙엽이 지잖아요. 그런 것처럼 온화하고 따뜻한 거는 생명이 움트게 한다는 거는 변화하는 힘이 있다는 겁니다. 내 마음이 온화하고 따뜻해져야지만이 내가 뭔가 성취도 되고 뭔가 승리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마음이 굳어 있고 차가워 있고 얼어 있는 사람은 어떤 것도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절에 와서 기도 성취를 위해서 기도하는 분들, 또 무량 공덕을 짓기 위해서, 또 신행하는 분들에게 늘 강조하는 게 뭐냐 하면, 부처님 앞에 서서 발원할 때는 그 마음이 녹아야 돼요. 근데 이제 마음이 얼어 있어가지고 굳어 있어서, 아니면은 더 쉽게 말하면 뭔가 원망하는 마음, 뭔가 누구한테 미워하는 마음, 내지는 마음에 갈등하는 그런 것을 가지고 기도하면 안 된다는 거죠. 예를 들면 똑같은 원리잖아요. 언 땅에 씨를 뿌리면 안 되잖아요. 그죠. 뭔가 녹고, 좀 뭔가 포근한 데다가 씨를 뿌려야 싹이 나듯이, 그래서 자비라고 하는 건 그만큼 온화하고 따뜻한 마음을 이루는 거에요. 그다음에 도량이라는 게 있어요. 그 도량(道場)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우리가 절을, 사찰을 도량이라고 얘기하는데, 그 도량은 한자로 쓰면 도장이라고 읽어요. 도장, 태권도장 할 때 도장이거든요. 근데 왜 도장이라 안 읽고 도량이라 읽느냐 그러면, 도장은 몸에 힘을 키우는 거를 도장이라고 그래요. 몸에 힘을 키우는 거. 마음에 힘을 키우는 걸 도량이라고 읽습니다. 그러니까 도량이라고 자비도량 그러면 온화하고 따뜻한 마음의 힘을 키우는 곳이에요. 자비도량을 한다는 거는 내 마음이 온화하고 따뜻한 그런 마음의 힘을 키워는 기도인 거죠, 자비도량참법이라는. 근데 자비도량참법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미움이 남아 있다면 이게 뭔가 잘못된 거라서 이건 점검을 해봐야 됩니다. 자비도량참법을 했는데, 기도를 하고 났는데, 나가다가 보니까 신발을 누가 밟고 갔어. 근데 그거 보는 순간 욱하는 게 올라와. 이게 이제 말짱 (헛수고)이에요. 이게. 이럴 때는 이제 점검해 봐야 돼요. 근데 왜 그러느냐 그러면, 기도를 했지만 습성 때문에, 화내는 습성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자비도량참법은 한 번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해야 됩니다. 꾸준하게. 우리가 이제 진관사에서 자비도량참법을 이렇게 하는 것은 인연이 맺어진 거예요.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이 인연 맺음을 힘으로 일상에서도 자비도량참법을 꾸준하게 해야 돼요. 스님이 시키든 시키지 않든, 누가 보든 안 보든, 자기 스스로가 자비도량참법을 쭉 읽으면서 또 독서해가면서 해야 된다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자비도량참법이 힘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자비도량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자비도량참법이 지금으로부터 한 1500년 전에 만들어진 말씀이잖아요. 경전은 아니에요. 이게 자비도량참법이. 양나라때 만들어진 거잖아요. 자기 부인 치씨를 위해서 만들어진 건데, 부처님의 말씀 중에 좋은 걸 다 모아가지고 만들어 놓은 건데, 이게 중국, 한국, 대만에서 유행을 해요.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이게 1500년 동안에 내려온 거니까 얼마나 많은 다양한 것들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중간에 이제 중심 내용들은 같은 건데,- 그 중심 내용들을 몇 가지 점검해가면서 이건 꼭 해야지만이 자비도량참법을 건립할 수 있다라는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비도량참법을 해도 이게 좌로 가는 건지, 우로 가는 건지, 위로 가는 건지, 밑으로 가는 건지, 모르고 하긴 하는데 이게 방향감이 없단 말이죠. 그래서 이 자비도량참법을 하면서 이 네 가지는 꼭 명심을 해야 된다라는 차원에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우리 어린 학생들도 와가지고, 가장 쉬운 언어로 이제 말씀을 드릴게요,아이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자비도량은 온화하고 따뜻한 마음에 힘을 키우는 기도다. 이거는 이해하셨죠? 그래서 그 첫 번째가 뭐냐 하면 <의심하지 마라>입니다. 의심하지 마라. 우리가 왜 의심하지 마라 하냐 그러면, 의심은 뭐예요? 번뇌예요. 번뇌. 근데 우리는 살아오면서 법에 대한 의심을 하면 그게 자기한테 큰 도움이 되는데, 저 법은 왜 저렇게 됐을까, 저 법은 내가 왜 얻지 못할까 이렇게 의심하면 좋은데 뭘 의심하냐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의심을 해요. 내가 갖지 못한 것에 의심. 그래서 그 의심이라고 한 용어로 돼 있지만 이건 다른 말로 번역하면 번뇌라는 뜻이에요. 번뇌. 다른 말로 하면 번뇌는 뭐예요? 괴로움이라는 말이잖아요. 괴로워한다는 거예요. 여기 자비도량참법에 첫 번째 나오는 게 의심하지 마라거든요. 의심하지 마라. 이걸 아주 편한 말로 풀이하면 괴로워하지 마라라는 겁니다. 근데 우리는 괴로워하는 게 습성화돼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생각이 올라오면 의식이라는 게 있거든요. 의식. 의식이라는 게 있는데 의식은 구사론이나 이런 데서 보면, 논서에 보면, 의식의 의자는 <전 생각> 이렇게 번역돼요. 식은 <후 생각>. 그 전 생각과 후 생각이 찰나 동안에 생멸하면서 우리 생각이 바뀌는 거예요. 의식이라고 하는 게. 의식이 있죠. 의식 없는 분 손들어보세요. 난 의식이 없다. 의식이 없으면 살아있는 게 아니란 말이죠. 근데 의식도 전의식이 있고, 무의식이 있어요. 조금 어려운 걸 한번 터치해보면 전의식은 뭐예요? 안이비설신 다섯 가지 느끼는 거, 이를 전의식이라고 하고, 그다음에 생각으로 하는 거를 무의식이라고 표현하죠. 무의식. 무의식이 하도 또 다양해 이게. 이거는 우리가 조금 알아둬야 될 게, 우리의 의식의 흐름이 원래 그렇게 고정돼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 한번 분석의 틀을 통해서 나를 분석할 필요는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보는 거, 듣는 거, 맛 보는 거, 냄새 맡는 거, 몸으로 느끼는 거가 있는데 그거를 통괄하는 게 의식인데, 첫 번째 의식이 뭐냐 하면 육식이잖아요. 의식. 그게 의식이 전 생각과 후 생각이 자꾸 교차하면서 나를 만들어가는데, 그 교차하는 핵심이 뭐냐 그러면, 나라고 하는 생각이에요. 그거를 말라식(末那識)이라고 하고 염오식(染汚識)이라고 얘기해요. 염오식. 물들인다. 염오식. 이거는 이제 다른 말로는, 제가 만들어낸 말로 표현하면, 이거를 저는 정체식이라고 그래요.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낸 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여러 색깔, 세상에 여러 색이 있는데 사람마다 좋아하는 색이 다 다르고, 세상에는 너무 많은 노래가 있는데 노래하는 게 다 달라요. 어떤 사람들은 트로트 좋아하고요. 저희 은사 선생님은 트로트를 너무 좋아하세요. 제가 어디 모시고 갈 때 트로트를 틀어드리면 너무 좋아하세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또 발라드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런 것처럼 그거를 구분하는 게 일곱 번째 식인 거예요.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식이 있는데 여덟 번째 식은 이런 경험들을 다 모아놓는 의식이 또 있는 거예요. 그 모아놓는 것에 자기의 취향대로 꺼내다 쓰는 거, 저거 좋은 거, 저거 내가 싫어하는 거, 저거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 거. 이런 식으로 해서 이제 쓰는데 그러다 보니까 그 생각이 올라올 때 무시겁래로 우리가 했던 마음 중에 뭐가 있냐면 걱정과 염려라는 게 있어요. 그래서 의심하게 됩니다. 의심이 왜 이게 괴로운 거고 이게 고통이냐면, 의심하게 되면은 생각이, 어떤 사물이 바르게 보이지 않고요. 이게 굴절돼 보여요. 의심하게 되면. 굴절된다는 게 뭐냐면 바르게 들어온 게 아니라 거꾸로 보여요. 진짜가 아닌데 진짜처럼 보이고, 가짜인데 그게 진짜처럼 느껴지고 그런 거란 말이죠. 그걸 전도라고 그러죠. 전도. 의심하게 되면 전도된 마음이 생기게 돼요. 전도된 마음이 생기게 되면 어떻게 돼요? 몽상을 하게 돼요. 몽상은 뭐예요? 엄한 생각을 하는 거예요. 거기 생각을 가지고 막 이제 여러 가지 자기의 경험과 그동안에 들은 이야기, 느낀 걸 통해가지고 많은 생각들을 이 번뇌들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의심이 전도된 생각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몽상까지 가는 것, 이게 총체적으로 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괴로움인 거예요. 괴로움. 그래서 이게 첫 번째 자비로운 참법을 할 때는 그런 의심을 내려놓는 거예요. 걱정을 내려놓는 연습부터 해야 됩니다. 그리고 자비도량참법을 통해서 그런 걸 내려놔야지, 자비도량참법을 통해서 또 그게 나중에 자비도량참법을 쭉 오래하다 보면 그 힘을 얻게 돼요. 걱정을 내려놓게 됩니다. 출가해서 부처님 법을 믿고 따르는 스님들이, 저는 출가해서 가장 큰 공덕이 뭐냐 하면 다른 것보다도 편안하게 자유롭게 사는 것도 있지만, 저는 출가에서 가장 큰 공덕은 뭐냐 하면, 스스로 걱정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힘을 얻게 돼요. 그게 저는 출가의 가장 큰 공덕이라고 봅니다. 근데 우리는 너무 걱정을 많이 해요. 그러니까 그게 번뇌가 되다 보니까 괴롭죠. 그래서 의심을 내려놔라. 의심을. 그다음에 의심을 내려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면은, 그다음 나오는 구절이 <신심을 가져라>라는 거잖아요, 믿음을 가져라. 믿는 마음을 가져라. 믿는다는 건 어떤 거예요? 의심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 믿는다는 그 네 가지는 첫 번째로는 뭘 믿어야 되느냐. <내 자신을 먼저 믿어야 돼요.> 이걸 근본신이라 그래 근본신. 나를 믿어야 돼요. 그래 나를 믿는데 내 생각과 내 고집을 믿는 게 아니고, <내가 원래 다 본래 붓다로서 이 안에 원래 맑고 밝고 온화하고 따뜻한 성품이 있다>라고 믿어야 되는 거예요. 그게 그것부터 출발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 걸 드러내고, 그걸 믿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고, 또 부처님 가르침을 열심히 수행하는 스님들을 봐야 그게 합일되는 거죠. 그 채널이 맞아지는 거죠. 그래서 ‘내가 나는 중생이야, 나는 괴로운 사람이야. 나는 늘 운이 없어,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나는 왜 이렇게 재수가 없지.’ 이렇게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일도 성취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이제 우리 청년들을 만났을 때 제일 먼저 하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자기 스스로가 자기한테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법을 배워야 된다는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근데 우리는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법을 잘 몰라요. 너무 인색해. 그게 무슨 세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자기한테 칭찬이 너무 인색해요. 자기한테 칭찬이 인색하다 보니까 마음도 좁아질뿐더러 자기를 칭찬하는 게 안 되다 보니까, 남도 칭찬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첫 번째는 자기 자신을 믿는데 자기 자신을 믿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거울을 보고, 거울을 보고 화장만 하지 말고, 내 마음에도 칭찬해줘야 돼요, 내 자신에게. 내 마음속에 맑고 밝고 온화하고 따뜻한 성품이 있다라는 걸 믿는 마음을 확인해야 돼요. 그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게 첫 번째 자기 자신을 믿는 거잖아요. 그런 믿음을 만들어내야 그다음에 부처님을 봐도 부처님의 광명이 내 안으로 내려앉을 수 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봐도 그 고구정령한 말씀이 내 안에 녹아내릴 수가 있는 거죠. 스님들을 봐도 스님들 말씀이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나를 믿자. 첫 번째는 이제 의심을 드러내고 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신심을 갖는 거잖아요. 두 번째로는 자비도량참법의 가장 핵심인데 이걸 하기 위한 거예요. 이제 의심 끊어내고 신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자비도량참법이 네 글자로 압축해서 말씀을 드리면 해원석결(解寃釋結)이에요. 해원은 뭐냐 하면,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풀어내는 거예요. 그리고는 또 하나는 석자도 푼다는 말인데, 그것도 미운 마음을 푸는 거예요. 원수진 마음을 푸는 건데, 미운 마음을 푸는 건데, 이 해원석결이 이 자비도량참법을 하는 원래의 목적이에요. 양무제의 치씨 부인이 살아생전에 좀 옹졸했었나 봐요. 그래서 좀 인색한 마음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그래서 뭐가 돼요? 죽어서 구렁이가 되잖아요. 그래서 꿈에 나타나가지고 본인의 그런 나쁜 갈래에 떨어졌는데, 그걸 구제해달라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결국은 나쁜 갈래에 떨어지는 게 왜 떨어진다?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떨어진다는 거예요. 원망하는 마음 때문에 떨어진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알게 모르게 누구를 미워합니다. ‘저 원수 같은, 너만 아니었어도 내가’, 그런 얘기 많이 하죠. 근데 처음에는 사랑하는 마음이었는데 그게 원망하는 마음이 되고, 또 처음에는 좋은 인연을 만났는데 그게 서로 간에 미워하는 마음이 되는 건 왜 그럴까요? 가까이 있다 보면 그렇게 되는 거죠. 가까이 있다 보면. 멀리 있는 사람들은 해원석결, 풀 일이 없어요. 이 해원석결은 전생까지 다음 생까지 내일까지 나의 미래를 그렇게 점철시키는 것은 같이 살던 사람들로 인해서 그래요. 가장 큰 게 뭐예요? 가족입니다. 친족들이 그래요. 남과, 타인과 이렇게 같이 지내다가 원망이 되고 미워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이 다 전체가, 전체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친족 간에, 가족 간에 이 원망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서로 상처받고 서로 얼굴 안 보고 살고 그럴 경우가 많죠. 그러니까 이제 자비도량참법을 했는데 마음에 미운 마음이 안 풀린다. 이거는 또 진료를 또 해봐야 되죠. 전문적으로, 또 우리 주지스님 만나가지고 상담을 하셔야 돼요. 특단의 조치를 받으셔야 돼요. 자비도량참법을 하게 되면은 기도를 할 때 저도 그랬습니다마는, 자비도량참법을 처음에 시키면 많은 분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게 뭐냐 하면, “눈물이 나요.” 그런 얘기를 합니다. 그런 경험해보셨어요? 자비도량참법하다가 눈물 흘리신 분 계세요? 우는 분들 많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그게 뭐냐 하면, 알게 모르게 마음에 쌓였던 미움의 업식이 녹아내리는 거예요. 그 미운 마음이라는 게 사람 마음을 차갑게 굳게 하잖아요. 그게 녹아내리는 거거든요. 이게 자비의 힘인 거예요. 그게 그러니까 이제 이 자비도량참법을 하면서는 제일 중요한 게 가족들하고 잘 지내야 돼요. 가족들하고 잘 못 지내면 자비도량참법은 무릎이 깨지도록 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예를 들자면 자비도량참법을 여러분이 오늘 마치고 회향을 했잖아요. 그러면 오늘 가서 제일 할 게 뭐냐? 남편과 아내의 손을 다 잡고 “나 때문에 참 고생 많았어. 내가 앞으로 잘할게.” 이렇게까지는 안 되더라도, 미워하는 눈빛을 보내면 안 돼요. 자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들도 내가 인연을 맺어서 왔잖아요. 애가 오고 싶어 온 게 아니잖아요. 내가 만들어 놓은 인연이란 말이죠. 근데 그 인연들한테 너무 상처되는 말을 많이 했어요. 그동안, 알게 모르게. 근데 요즘에 이제 프로그램 중에, 우리 아까 주지스님께서 tv 많이 보지 말라고 했는데 이건 드라마는 아니에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고 하는 그런 프로그램 있잖아요.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시하는 그런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 있잖아요. 그 아이들을 분석해 보면 문제는 그 아이였어요? 환경이었어요? 90%가 환경이었어요. 물론 타고난 기질이 그런 아이들도 있어요. 없는 건 아닙니다마는 대부분이 뭐예요? 그 아이가 그렇게 문제 행동하는 것은 그 가정이 가졌던 환경 문제였던 거예요. 환경 탓이었던 거죠. 환경이 문제였던 거죠. 여기 우리 꼬마들이, 우리 어린 법우들이 와 있지만, 이 법우들이 이렇게 선량한 복을 지을 수 있는, 부처님 전에 앉을 수 있는 건 뭐예요? 가정환경이 좋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여기 앉아 있는 아이들이 문제아가 될 수가 없어요. 여기 앉아 있는 우리 진관사 도량에 같이 와서 함께한 아이들이 우리 대한민국을 이끌 인재들로 성장할 겁니다. 여기서 장관도 나오고, 정치인도 나오고, 또 재벌 총수도 나오고 그러겠죠. 축원의 박수 한번 보내주세요. 그런 것처럼 그 문제, 우리가 가정이라고 하는 것에서 그런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자비도량참법은 해원석결이다. 미운 마음을 덜어내는 거다 라는 거예요. 그 미운 마음을 덜어내려면은 하나의 그 좋은 기재가 있는데 그 기재가 뭐냐 그러면 발보리심이에요. 발보리심. 그래서 이 해원석결을 하는 거, 참회를 통해서 해원석결하는 건데, 그 해원석결을 참회를 제대로 하려면 마음에 보리심이 올라와야 돼요. 보리심. 보리심을 발하는 거죠. 보리는 뭐예요? 지혜죠, 지혜. 반야, 지혜, 보리 같은 말인데, 지혜심이에요. 지혜심, 반야심. 반야심을 발하는 거예요. 발한다는 거는 없는 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펼쳐내는 걸 발이라고 그래요. 출발 이렇게 하죠. 출발. 출발은 뭐예요? 여기서 출발하는 거잖아요. 어디 한 곳에서, 있는 곳에서. 그러니까 이 발보리심, 발은 원래 내가 없던 거를 받아서 만들어서 하는 게 아니고, 내 마음에 있는 보리심, 보리라는 건 반야라는 거, 맑고 밝은 마음, 맑고 밝은 마음을 드러내는 거예요. 발보리심은. 드러내면 어떻게 돼요? 맑고 밝아지니까 해원석결이 되는 거예요. 내가 미운 마음이 든다는 거는 어두운 마음이란 말이죠. 거기에 발보리심을 하는 거예요. 발보리심. 발보리심을 어떻게 해요? 알려드릴까요? 아주 쉬운데. 이렇게 앉으셔가지고 마음이 밝은지 맑은지 돌이켜보면 돼요. 얼마나 쉬워요? 이거 0.1초도 안 걸리죠. 돌이켜보는 거. 이거를 이제 요즘 말로는 메타인지라 그래요. 메타인지 들어보셨어요? 메타인지. 나의 어떤 마음에 또 다른 나를 만들어서 이렇게 살펴보는 걸 메타인지라 그래요. 전문용어로. 조금 똑똑해 보이죠. 이런 용어 쓰니까. 그래서 그렇게 돌이켜봐야지 말이 된다. 그게 발보리심이다라는 겁니다. 발보리심. 발보리심이 어려운 게 아니에요. 맑고 밝은 마음을 발현해내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발보리심까지 이루어진 다음에, 마지막으로 회향심인 거예요. 회향심. 요게 자비도량참법의 큰 줄기입니다. 회향심은 뭐예요? 내가 기도를 통해서 느꼈던 것, 고마워. 내가 이게 중 되고 이런 경험 처음 하네요. 내가 출가하고 나가지고 법문하다가 이렇게 현금을 받아보기로는. 아이고 야, 합장도 잘하네. 아이고 이런. 새로 오신 부주지스님이세요? 회향심 얘기하니까 바로 이렇게 회향을 그냥 몸으로 보여주는 애기 보살님이 계시네요. 이런 게 회향심인데, 오늘 법문 소용없어. 우리 아이가 그냥 몸으로 보여줬어요. 아기 보살님이. 근데 회향심이라고 하는 거는 뭐냐 하면, 내가 기도를 통해서 느꼈던 바의 느낌들을 내 홀로 마음으로 간직하는 게 아니라, 나의 아이들에게, 나의 가족들에게, 나의 이웃들에게, 나의 인연들에게 같이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근데 우리가 이 회향심을 잘 몰라요. 우리 불자들이 좀 약한 부분이 요 회향심이 좀 약해요. 내가 느낀 것들이 있거든요. 아주 작은 것이라도 기도하는 속에서 느꼈던 느낌이 있는데, 그리고 변화들이 있는데, 그 느낌과 변화들을 자기만 간직하고 있어요. 이제는 이야기할 때가 됐습니다. 그 이야기해서 같이 공유하면, 같이 향유하면, 뭐가 되냐면 그거를 다른 말로 전법포교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전법포교는 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 느낀 바, 내가 깨친 바, 내가 얻은 바만큼의 이야기를 나의 가족과 나의 인연들과 함께하는 거, 이게 전법포교인 거죠. 그래서 이 자비도량참법이 회향을 하게 되면, 회향심을 갖고 하게 되면 전법포교를 하는 거잖아요. 보세요. 이것만큼 전법포교에 좋은 게 뭐가 있어요? 마음에서 신심이 우러나잖아요. 지금. 그래서 우리가 자비도량참법기도를 회향한 만큼, 지금 말씀드렸던 의심을 내려놓고, 신심을 갖고, 그다음에 해원석결하고, 해원석결을 하려면 발보리심을 해야 되고, 발보리심을 이룬 다음에는 회향심까지 마음에 갖는다면 우리는 참다운 자비도량참법을 성취할 거다. 그래서 여러분 올 1년 내내 진관사와 함께, 또 우리 최고의 수행자이시고 또 진관사의 탑이신 우리 법해 스님하고 함께 자비도량참법을 건립하시기를 축원 올리면서 법담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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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하례법회] 2월 18일 신년하례법회 법문
회주 계호스님 2024-02-18
안녕하세요. 여러분들 뵈니까 제가 또 힘이 솟는 것 같아요. 지난 번에 입춘날 맞이해서 세 번째 설날 맞이했고, 이제 구정이 완전히 됐죠. 네 번째 새해입니다. 올해는 무슨 띠라고 그랬죠? 갑진년에 아주 값진 해가 될 수 있는 용이에요. 그래서 신화엄경에 보면은 용은 동쪽에 있으면서 부모님과 같고, 처음 같고, 시초와 같다 그랬죠. 일의 근본이 되고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실천행이 될 수 있다 그랬습니다. 진관사 신도님들이 4박 5일, 닷새간 자비도량참법 기도를 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여러 가지 참회업장을 다 하셨죠? 업장소멸하셨죠? 아까 가섭 스님 법문 저도 유튜브로 보고 있었는데, 스님께서 철학박사 수료해서 처음 와서 이렇게 법문하시는 것 같은데, 우리는 자주자주 큰스님의 법문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내셔야 돼요. 어렵다 생각 내지도 마시고, 자주 들어서 지나가는 인연이라도 맺어야 되거든요. 기도라는 게 성취라 그랬잖아요. 근수(勤修), 부지런히 닦는 게 바로 기도라고 그랬거든요. 올해는 청룡, 완전히 용의 해가 되는데, 이 용이라는 거는 12지 가운데 상상의 동물이라 그래요. 실제로 자축인묘사오미신유술해는 다 있죠. 쥐띠도 있고, 소띠도 있고, 토끼띠도 있고, 호랑이 띠도 있고, 여러 가지 띠가 있는데 용은 상상의 동물이라서 좀 이 변화가 무쌍합니다. 하늘 위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물속에 들어갈 수도 있고, 땅 위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데, 이 모양은 어떻게 생겼냐면요. 우리가 보통 용은 머리는 낙타와 닮았다 그래요. 그리고 뿔은 보통 사슴뿔이라 그러죠. 사슴뿔과 닮았고, 눈은 토끼와 닮았다 그러고요. 또 귀는 소귀처럼 생겼다 그래요. 목은 뱀 같고, 또 비늘은 잉어 같고, 발바닥은 호랑이 발바닥 닮았다 그래요. 그러니까 이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가늠할 수 없는 그런 모습이에요. 용꿈을 꾸면 굉장히 좋다고 하죠. 그런데 서양 문화권에서는 용이 굉장히 좋지 않은 현상으로, 마귀의 모습이다라고 하는데, 이 동양권에서는 상서로운 동물로 봐요. 그래서 왕실에서는 왕이 입는 옷은 곤룡포라 그러고, 왕이 앉는 자리는 용상이라 그래요. 그래서 왕권을 상징한다 고 합니다. 근데 절집에서는 이 용을 수호신으로 보고, 호법신장, 우리를 도와주는 그런 신장님의 역할을 해요. 약찬게에도 나오죠. 그래서 용을 상징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올해는 여러분들이 정말 용과 같은 변화무쌍한 마음이지만, 항상 일념으로, 한마음으로 생각하시면 돼요. 생각이 너무 바뀌면 이게 뚜렷하지 않아 삼매에 들지 못하죠. 그래서 보통 내가 일념에 들려면은 한 생각이 되어야해요. 우리가 독서를 할 때 독서 삼매에 들어가면, 옆에 누가 봐도 모르죠. 내가 공부의 정진에 들어가면요, 가만히 있으면 누가 옆에 와도 모를 정도로 그래야 되는데, 기도하다 말고 뒤 돌아보고, 기도하다 옆에 들어오고, 기도하다 말고 뭐 하고, 기도하다 말고 전화받고 나가고. 좀 그런 경향이 있는데, 올해는 마음을 좀 안정시켜가지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도록 합시다. 편안한 마음이 부처님이거든요. 풍요로운 마음이 불성이고, 건강한 마음이 불성이고, 자비로운 마음이 바로 불성이에요. 불성이라는 거는 좋은 마음 나쁜 마음 다 합해서 불성일 수도 있어요. 좋은 마음만 생각한 게 불성이 아니고. 우리가 파도가 그대로 물이잖아요. 그렇듯이 번뇌 즉 보리거든요. 그래서 중생과 마음과 부처님은 세 가지가 차별이 없다고 화엄경에서 얘기했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중생이라 하지만은,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 해서, 이 마음이 그대로 뭐예요? 부처님이다 이렇게 생각하셔야 돼요. 우리가 법구경에 보면 돌아갈 때 행이 두 가지가 남아요. <선행과 수행>이에요. 선행이라는 건 복을 짓는 걸 선행이라 그러고, 수행이라는 건 열반에 들어가는 걸 수행이라 그래요. 왜냐하면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 부지런히 열심히 수행한다 그러잖아요.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할 때 부처님이라는 말은 수행해서 얻어지는 결과물이에요. <선행공덕 적선지가(積善之家)>라고 그러잖아요. 선을 닦는 건 복을 닦는 거하고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복 짓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행복할 때 남도 행복한 거예요. 그런데 내가 했다는 마음 생각조차 없으면서 꾸준히 열심히 가면은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한 거예요. 내가 불편하면요, 어떤 사람이 옆에서 해도 내가 불편한 거예요. 그러니까 본인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해야 되고, 누구 탓하지 말라 그랬죠. 다 자업자득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새해를 맞이해서 새 마음으로 새로운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정진 열심히 하시면서 가피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지요. 그래서 열심히 기도 정진하면은 그게 다른 데로 가는 게 아니에요. 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나한테로 돌아오는 거예요. 하늘에다 침 뱉으면 침이 어디로 떨어져요? 내 얼굴에 떨어지잖아요. 똑같아요. 그러니까 원망하는 마음, 나빠하는 마음, 싫어하는 마음도 내지 말고 오로지 선행스러운, 착한 마음만 내면 그게 바로 부처님이에요. 오늘 아까도 주지스님 말씀하는데, 부처님학교 연다 그랬죠. 부처님이 될 수 있는 학교가 만들어져야 되는데, 학교가 여러 가지 있어요. 지혜의 학교도 있고, 공덕의 학교도 있고, 나눔의 학교도 있고, 마음의 정원의 학교도 있고, 여러 가지 학교가 있는데, 초파일, 부처님이 태어나셨잖아요. 그렇죠. 탄생일을 맞이해서 부처님학교에 다 들어오면은 무량한 공덕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만 학교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스님들도 다 학교에 들어간 거예요. 이 문에 들어오면은 벌써 일은 마친 거예요. 시작이 반이라는 말씀 들어보셨죠? 오늘 여러분들이 기도를 열심히 하는 소리가 제가 있는 저 밑에서도 다 들려요. 왜냐하면 마이크로 들리니까. 옛날에는 나가원 좁은 방에서 했을 때는 답답했는데, 함월당을 이렇게 불사를 하고 나니까, 모든 사람들이 함께, 비구니 스님, 우리 대중 스님뿐만 아니라, 청년, 청소년 법회, 어린이 법회까지 여기 다 왔잖아요. 함께 한마음으로 이루면 안 될 일이 없는 거예요. 백지장도 맞들면 낫듯이 다 이루어져요. 열심히 하면서 부처님이 될 수 있어요. 우리가 다 갖추고 있지만 안 해서 그렇게 안 되는 거예요. 할 수 있다라는 거를 여러분들이 굳게 믿고, 신심과 자비심과 지혜의 힘으로써 살아간다면 어려운 건 하나도 없다 생각해요. 과거는 없고 미래도 이제 앞으로 닥치지 않았으니까, 중요한 게 언제예요? 지금이 제일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현재를 중요시해가지고 현재를 직시하면서 살아가면은 세상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없고, 못할 것이 없는 거예요. 또 20대, 30대는 아직까지 나이가 있잖아요. 80대 ,90대 되는 사람 그런 보살님들은 연세가 있지만은 그래도 살아가면서 항상 좋은 생각 내시고, 밝은 마음, 맑은 마음 내시면 불사는 성취됩니다. 부처님 일은요, 뭐든지 이루어지지 않는 게 없다 그랬어요. 저도 가만히 생각하니까 절집에 들어온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내 나이가 벌써 이렇게 됐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온 생각밖에 안 나요. 68년도 졸업하고 절에 왔는데, 마음은 그대로 소녀 같은 마음인데, 몸만 늙은 거예요. 그래서 몸은, 보이는 세계는 물질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는 정신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내외가 명철돼요(內外明徹). 보이는 세계나 보이지 않는 세계나 똑같이 수행해야 돼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너무 잘하는데, 안 보이는 데서는 이상한 행동하고, 이중적인 생각한다는 말 들어보셨죠? 항상 여러분들이 생각을 가질 때 안과 밖이 철두철미한 사람들이 정말 성공하는 사람이지, 안에서는 잘못하다가 밖에 나가면 너무 잘하는 분들도 계시고, 안도 잘 못하고 바깥도 잘못하는 사람은 더 못하는 거죠. 그건 하근기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안과 밖이 달라지지 않도록 열심히 살 수 있는 불자가 돼야 되겠죠. 자비심을 발하고 실천행을 할 수 있는 그게 선행공덕이에요. 선근공덕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적선공덕, 선근공덕, 선행공덕.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에 돌아갈 때 행이 두 가지 남는데 선행공덕과 수행공덕만 남는다. 열심히 살면서 “내가 살아가는데 조금 남한테 좀 잘못한 게 없는가” 이걸 돌이키면서 잘할 수 있는 불자가 돼야 되고, 자비로운 마음이 몸에 배야 돼요. 아까 자비란 말 들어보셨잖아요. 고통을 주지 않는 거는 락이라 그러고, 자자는 자비로 사랑만 주는 게 자자예요. 발고여락(拔苦與樂)이에요. 그래서 고를 빼주는 거는 비고, 비증보살의 제일 으뜸인 보살이 지장보살이에요. 자에 으뜸가는 보살은 관세음보살이고, 그럼 지혜는 문수보살, 실천은 보현보살이에요. 아는 건 너무 잘 알잖아요. 안 돼서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는 아는 것보다, 지식보다도 지혜로운 사람이 돼야 돼요. 그래서 열심히 살면서 항상 올해는 작년보다는 좀 잘해야 되겠다 이런 마음 가져야 되겠죠. 그래서 갑진 한 해가 되면서 정말 용 꿈꾸는 그런 용이 되어서 상상 못하는 그런 생각은 갖지 마시고, 할 수 있는 생각, 도와줄 수 있는 생각, 이타행, 자리이타행을 할 수 있는 불자가 되도록 꼭 그렇게 명심하세요. 그럼 저도 부응해서 같이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오늘 여러분들에게 108 원력문 나눠주셨죠? 이거를 그냥 갖다 놓으면 도서관밖에 안 됩니다. 가지고 꼭 절을 한 번씩 하세요. 노보살님들은 힘이 드시면 반 배만 하셔도 돼요. 저 같은 경우도 같이 반 배하고. 또 이게 되는 여력 있는 보살님들이나 스님네들은 따라서 하면 돼요. 청정한 마음으로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청정한 마음으로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청정한 마음으로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마지막에 또 있죠. 부처님 법 전하는데 온 삶을 바치겠습니다 가 마지막 구절이에요. 그래서 108배 하면은 이게 다 공덕의 문이 되는 거예요. 아까 그랬죠. 선행은 자비의 문에 들어가는 씨앗이고, 이 수행이라는 것은 열반에 들어가는 문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우리 보살님들이라든지, 신도님이라든지, 청년 법회라든지 청소년 법회들 학생들, 어린이법회 학생들 말 너무 잘 듣네요. 아까 스님한테 보시한 학생도 있었죠? 꼭 이거 읽고 같이 따라하도록 하세요. 그래야지만이 이게 공덕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여러분들한테 나눠주는 거는 함께 같이 실천하자는 의미예요. 그러니까 꼭 실천하도록 합시다. 그래야지 진관사의 자비의 문이 활짝 열려요. 다 같이 부처님 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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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기도] 2월 12일 정초신중기도 입재 법문
종범스님 2024-02-12
- 주제 : 自己自體佛(자기자체불) - 안녕하십니까. 갑진년 정초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은 갑진년 정월 초사흘 진관사 법회 법문입니다. 有三種因果 유삼종인과①六道善惡因果 ②三乘單敎因果 ③一乘圓教因果①육도선악인과 ②삼승단교인과 ③일승원교인과因該果海 果徹因源 相入相卽 法界因果인해과해 과철인원 상입상즉 법계인과一一塵中 即見法界 三世自身 卽見佛身일일진중 즉견법계 삼세자신 즉견불신 불교는 <인과와 깨달음>, 인과와 깨달음인데요. <인간은 신행이라>, 몸으로 행하는 것이다. 또 <깨달음은 심원이라>, 마음으로 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가르치고 있어요. 그래서 몸으로는 인과를 행하고, 마음으로는 깨달음을 원하는 것이 불자다. <신행, 심원, 인과, 성불>, 그게 이제 불자인데, 인과가 뭐냐. 세 가지로 가르쳐요. 첫째는 육도선악인과(六道善惡因果). 육도는 중생 세계거든요. 거기는 선인과가 있고, 악인과가 있는데, 그것이 육도 세계라고 가르치고. 그다음에는 깨달음의 인과인데, 삼승단교인과(三乘單敎因果)라. 삼승은 보살승, 또 연각승, 성문승 그런데, 다 이 깨달음을 위해서 정진하는 분들이 삼승이거든요. 근데 이 삼승은 단교라고 해서, 홑 단자, 단일이라는 단자, 따로따로 해요. 성문이 닦는 길이 따로 있고, 연각이 닦는 길이 따로 있고, 보살이 닦는 길이 따로 있어서 이걸 단교라 그래요. 단교. 그래서 삼승단교인과가 있고. 그다음에 삼승이 더 깊어지면 일승이 되는데, 일승은 불승이라 그래서 부처님의 세계를 말해요. 그래서 삼승, 일승. 삼승은 불제자, 일승은 부처님 세계. 그래서 일승인데, 삼승은 단교인데 일승은 둥글 원자, 가르칠 교자, 원교(一乘圓教)라고 하거든요. 원교. 일승원교. 일승원교는 법계인과를 가르쳐요. 법계, 온 법계의 인과를 말하는 게 일승원교인데, 그래서 오늘 법문은 <법계인과와 구래성불>. 그럼 성불은 이제 뭐냐. 다겁성불을 또 가르쳐요. 중생 근기에 따라서 오랫동안 다겁(多劫)을 통해서 닦아야 성불한다. 이게 다겁성불이고요. 또 구경성불(究竟成佛), 불자는 끝에 가면 끝끝내 다 성불한다. 이게 구경성불이에요. 다겁성불, 구경성불, 또 찰나성불을 가르쳐요. 찰나에 성불한다. 찰나성불. 그리고 화엄경에서는 구래성불(舊來成佛). 구래가 뭐냐. 옛 구자, 올 래자인데 옛날부터 이미 성불했다. 이게 구래성불이에요. 구래성불, 옛날부터 성불했다 이거지. 그리고 이 구래라는 말을 본래라고도 써요. 본래 성불했다. 원래라는 말도 써요. 원래 성불했다. 그래서 구래성불, 원래성불, 본래성불 이렇게 가르치는 게 일승원교인데, 일승원교는 법계인과(法界因果)이기 때문에 그래요. 법계인과는 뭐냐. 일체중생, 또 제불보살, 산하대지, 이걸 삼종세관(三種世間)이라고 그러는데, 삼종세간이 전부 이게 일법계예요. 삼종세간이 한 법계다. 그래서 어떻게 되냐. 아주 짧은 한순간이 일 찰나인데, 이 법계인과에서는 일 찰라가 무량겁이에요. 이건 선악인과나 삼승단교인과에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는데, 법계인과만 통하는 거에요. 온 법계가 하나기 때문에 원일무이다. 원래 하나고 둘이 없다 이거예요. 이게 해인삼매 화엄세계거든요. 원일무이. 그래서 아주 찰나가 무량겁이고, 한량없는 세월이고, 일진이 만법계라, 한 조그마한 티끌이 온 법계에 다 해당되는 게, 이게 법계인 거예요. 그러니까 또 시작이 바로 끝이다. 발심이 바로 성불이다. 그래서 삼승단교인과는 시작과 끝이 다른데, 법계인과는 시작과 끝이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이거를, 다르지 않은 걸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상입상즉(相入相卽)이라고, 서로 상자, 들어갈 입자 시작에서 결과로 들어가고, 결과에서 시작으로 들어가고, 상입상즉 법계인과라, 그래서 시작 없는 결과는 없고, 결과 없는 시작은 없다. 그래가지고 이걸 비유로 가르친 게 10전법인데, 동전 10개. 동전 10개를 가만히 보면 동전 하나하나로 이루어졌어요. 1전이 없으면 10전도 없다. 또 10전은 전부 1전으로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1전이 10이 되고 또 10전은 1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 화엄경 성불 세계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이다. 하나가 많은 것이고 많은 것이 하나다. 이거를 <화엄경 법계 연기 불신 세계>라고 그래요. 부처님 몸의 세계다. 그래서 법계 연기 가르침은 일체중생이 다 부처님 몸 안에 들어있어요. 일체중생이 다 부처님 몸 안에 들어있고, 또 부처님이 중생의 몸 안에 들어있어요. 이게 상입상즉이에요. “아따 이게, 복 받으려 할 기도인데 이게 성불 얘기만 자꾸 합니까?” 이게 근데 성불 없는 복이 없어요. 그게 법계인과예요. 또 복 없는 성불이 없고, 복이라는 거는 너무너무 좋은 건데 생겼다 없어져요. 그게 문제예요. 복은 한 복이 오래오래 가는 게 아니라 생겼다 없어져. 그래서 이걸 생멸 세계라고 하거든요. 나고 죽는 세계다. 그런데 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상주해요. 항상 머무는 거예요. 광명이요. 늘 빛나는 거예요. 그래서 상방광명(常放光明)이라, 항상 광명을 비춘다. 이게 깨달음의 세계거든요. 그래서 이 법계인과는 <화엄성중>하면 이미 성불 한 거예요. 일즉다에요, 그게. 여기 화엄성중 정근하는 거 맞아요? 옳게 말했네. 같이 해보실래요. “시작. <화음성중>. 끝.” 이미 다 된 거예요. 이게 일즉다에요. 하나가 곧 많은 것이다. 1전이 바로 10전이에요. 10전이 바로 1전이고. 그래서 법이 가득하다. 법원만이라고 하는 걸 가르치는데, 법원만은 시작법도 원만하고, 마지막 성취법도 원만하고, 그래서 초발심이 시작인데, 초발심법과 이 구경각(究竟覺) 법문이 똑같다. 이게 상입상즉이다. 초발심이 구경각으로 들어가고, 구경각이 또 초발심으로 들어가서, 서로 들어가고 서로 하나가 된다. 이게 불승세계, 일승세계라 그러거든요. 불승세계 일승세계를 가르치는 게 화엄경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화엄 신심으로 기도를 하면, 그 정근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이미 다 성취가 된 거예요. 일전 일전이 없으면 10전은 없다. 이게 하나가 없으면 많은 것도 없다. 이게 법계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닦아서 나중에 이룬다 이거는 삼승 단교, 하나하나 가르치는 단교인과고, 하나가 모든 것이다 그러면 이거는 일승원교인과라는 말이죠. 둥글 원자, 원교인과. 성불을 딱 하고 보면 지금 성불 한 게 아니라 옛날에 이미 성불했다. 이걸 아는 게 이게 구래성불이에요. 할 때는 몰랐는데 하고 나니까 옛날에 성불을 했더라. 이걸 알게 돼요. 이거 참 묘하네. 진짜. 一乘圓敎舊來成佛일승원교구래성불問 具縛有情 未斷煩惱 福智未成 以何義故 舊來成佛耶문 구박유정 미단번뇌 복지미성 이하의고 구래성불야答 煩惱未斷 不名成佛 煩惱斷盡 福智成竟 自此已去 답 번뇌미단 불명성불 번뇌단진 복지성경 자차이거 名為舊來成佛 (法界圖記叢髓錄卷下之二.韓佛全6,829中) 명의구래성불 (법계도기총수록권하지이.한불전6,829중) 그래서 여기서 이제 혼란이 와가지고, 의상스님 저술에 보면 그게 나와요. 구박유정(具縛有情)이, 구박이라고 하는 것은 갖출 구, 얽힐 박자인데, 번뇌망상이 많이 다 얽혀 있다 이 말이에요, 중생이란 말이죠, 유정은. 미단번뇌(未斷煩惱)하고, 번뇌를 끊지 못하고, 복지미성(福智未成)이어늘, 복과 지혜를 이루지 못했는데, 이하의고(以何義故)로, 어떠한 뜻이 있어서, 구래성불야(舊來成佛耶), 옛부터 이미 성불 했느냐. 이렇게 질문하는 게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의상스님이 대답을 하기를, 번뇌미단(煩惱未斷)이면, 번뇌를 끊지 못했으면, 불명성불(不名成佛)이라, 성불했다고 말할 수가 없다. 번뇌를 못 끊었으면 성불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이거지. 그럼 뭐냐. 번뇌를 다 끊고, 번뇌단진(煩惱斷盡)하고, 복지성경(福智成竟)이라야, 복과 지혜를 다 이루어야 자차이거(自此已去)로, 이때부터, 번뇌를 다 끊고 복을 다 이루어야만 그때부터, 그다음으로 명위구래성불(名為舊來成佛)이라, 이름을 옛부터 성불했다고 한다. 번뇌를 끊은 다음에라야 구래성불을 알아요. 번뇌를 끊기 전에는 옛부터 성불한 줄을 모른다 이거예요. 그래서 그걸 비유로 말하기를 꿈에서 깨어야만 꿈이 없었다는 걸 안다. 꿈을 꿀 때는 꿈이 없었다는 걸 모른다. 이렇게 가르쳐요. 무슨 소린지 참. 아니 꿈꿀 때는 몰라요. 자기가 꿈이 없었던 줄 몰라요. 꿈 분명히 있죠. 근데 꿈 깨고 나면 꿈은 없는 거야. 꿈은 없는 거예요. 꿈은 없는데 뭐냐. 평소에 의식이 이 눈을 통하지 않고 몸을 통하지 않고 저 홀로 일어나는 걸 꿈이라고 그래요. 이걸 독두의식(獨頭意識)이라 그래요. 홀로 독, 머리 두. 홀로. 머리는 어조사고. 의식이 홀로 일어나는 걸 꿈이라고 하거든요. 평소에는 이 의식이 눈을 통해서 일어나고, 귀를 통해서 듣고, 몸을 통해서 움직이고 그러잖아요. 근데 꿈에서는 이 몸은 그대로 놔두고 의식만 이놈들이 따로 움직여요. 홀로. 그걸 꿈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평소에 생각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꿈은 별로 신경 쓸 거 없어요. 해몽하러 쫓아다닐 것도 없고요. 꿈이 뭐 어떻다고 속상할 것도 없고 그냥 꿈은 없는 거예요. 생각이 저 홀로 일어난 게 꿈이다. 그러니까 오늘 저녁에 생각이 저 홀로 뭐가 일어날지 모르거든요. 꿈을 어떻게 다스릴 수는 없어요. 지 홀로 일어났다, 지 홀로 또 사라져요. 그렇단 말이지. 그러니까 구래성불도 꿈과 같아서 꿈을 깼을 때 꿈이 없다는 걸 알듯이, 번뇌를 다 끊었을 때, <번뇌가 옛날부터 없었구나> 하는 걸 안다 이거지. 起此問意 若約十佛則 法界諸法 無非是佛 然此今日我等 盲冥凡夫 기차문의 약약십불즉 법계제법 무비시불 연차금일아등 맹명범부何能卽是十佛耶 如是難也하능즉시십불야 여시난야答意則 超情之法 友情卽是 若反情見 法界圓明 一切衆生 煩惱斷盡 답의즉 초정지법 반정즉시 약반정견 법계원명 일체중생 번뇌단진福智成竟 豈非佛耶 如是答也복지성경 기비불야 여시답야(叢髓錄 大記文. 韓佛全6,837中)(총수록 대기문. 한불전6,837중) 근데 의상스님의 훌륭한 제자분들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그 후에 의상 스님 제자 중에서 대기라고 하는 기록을 남긴 분이 있는데, 그분이 여기에 대한 해석을 했어요. 기차문의(起此問意)는, 이 질문을 일으킨 뜻은 무슨 뜻이냐. 왜 번뇌가 있는데 옛부터 성불했다고 하느냐, 이런 질문이었죠. 그러니까 약약식불즉(若約十佛則), 만약 부처님의 10불 세계, 부처님의 10가지 불신 세계가 있는데, 그 10불 세계를 근거로 하면, 법계제법(法界諸法)이 무비시불(無非是佛)이라, 부처님의 십불에서 딱 보면 이 법계 온갖 일체 현상들이 부처님 아닌 게 없다. 그러니까 이게 한마음으로 우주를 다 보면, 우주가 한 마음 아닌 게 없다. 이거 이제 여기서 속아요. 이 눈으로 온갖 걸 보니까, 이 온갖 게 따로 있는 줄 알아요. 근데 여기에는 마음이 있어요. 마음이 없으면 볼 수가 없어. 그러면 저 보이는 세계는 색즉시공이고, 이것도 어렵네, 색이 공한 거예요. 이 보는 마음만 중간 법문한다고 해. 중간 법문. 신지 광명이 상주 법계라. 그 마음의 몸, 마음의 지혜의 광명이 법계에 항상 머문다. 그래서 그 마음은 물과 같고, 이 삼천대천 우주법계는 물속에 비추어진 그림자와 같다. 그래가지고 이 불교는 온갖 세상을 수월도량(水月道場)이라고 하거든요. 물 수자, 달 월자. <이 우주만법계가 물속에 비친 달과 같다> 이렇게 가르쳐요. 그럼 달은 눈에 보이는 여러 가지 모양들이고, 마음은 물이란 말이에요. 이게 요것만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의 물속에 비추어진 그림자가 이 손 모양이고, 이 몸 모양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원숭이는 물은 못 보고 물속에 비춰진 그림자만 보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미혹한 범부는 자기 마음 물은 못 보고, 마음에 비추어진 달 그림자만 본다. 그래서 달 건지려고 원숭이가 연못에 들어가서 빠지기만 하고, 달은 없어. 그래서 세상에 뭐가 있는 줄 알고 평생 구해봤댔자 죽는 순간에는 다 한낱 티끌뿐이고 남는 게 하나도 없어요. 내가 맨날 이런 소리하니까 그 소리 좀 하지 마라고 그러는데, 죽는 순간에 남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게 왜 그러냐 하면 물속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그래요. 아들 며느리도 남는 게 없고, 내 몸도 남는 게 없고, 이게 원숭이가 달 건지려고 물에 들어갔지만 달은 안 건져져. 몸만 다 그냥 고생이단 말이죠. 그래서 세상 거 얻으려고 애를 썼지만, 몸만 늙어서 죽지 세상 건 뭐 얻어봤댔자 티끌이야. 그럼 “어쩌란 말이냐” 뭐 이렇게 이제 하는데, 그러니까 너무 욕심내지 말고 건강하게 살다 건강하게 죽어라. 건강하게 죽는다는 건 뭐냐. 죽음이 없는 걸 보고 죽어라. 건강하게 죽어라 그러잖아요. 그럼 건강하게 죽는 게 어떤 거야? 죽음이 없는 걸 보고 죽어. 그건 뭔 소리냐. 달이 물속에 없어져도 물은 영원하다. 죽음이 없는 거 보고 죽는 거지. 또 뭔 소린가 싶어가지고. 죽음이 없는 걸 보고 죽고, 삶이 없는 걸 보고 살고, 그러면 그걸 해인삼매(海印三昧)라 그래요. 바다에 비친 그림자를 보듯이 인생을 본다 이거죠. 그래서 삶이라는 건 이게 마음의 그림자인데, 삶이 없는 걸 보고 딱 살면 삶이 힘들지 않아요. 죽음이 없는 걸 보고 딱 죽으면 죽음이 괴롭지 않아. 그거 하라는 거죠. 그래가지고 이제 이 의상스님 제자가 법계 제법이 무비시불이라, 부처 아닌 게 없다. 이게 해인삼매거든요. 해인삼매. 근데 이제 범부들은 연이나 차 금일 아등(然此今日我等)은 우리들은 맹명본부(盲冥凡夫)라 그래. 이 참 이게 독특한 말을 썼는데, 맹명범부, 눈멀 맹자, 어두울 명자. 이 해인삼매, 자기 마음을 보는 데는 깜깜해가지고 그냥 맹인과 같이 어두운 중생들이다 이 말이죠. 맹명범부는 뭐냐. 하능즉시십불야(何能卽是十佛耶), 어찌 능이 십불을 감당하겠는가. 여시난야(如是難也)라, 이와 같이 질문을 했다. 그리고 밑에 것도 의상 스님이 대답한 말도 있는데 대답한 건 뭐냐. 번뇌를 끊지 아니하면은 옛부터 성불했다고 안 한다 이런 걸 이제 말했잖아요. 그러면 번뇌를 끊어서 성불하는 거는 뭐와 같으냐. 이거 복 짓기도 어렵고 참 복 받기도 어려우네. 이게 전부 복 짓고 복 받는 건데 지금 이 순간이. 그러면 번뇌를 끊고 바로 옛부터 성불했다는 걸 아는 방법은 뭐냐. 그거에 대해서 이 대기에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는데, 뭐냐 이게. 답의즉(答意則), 대답한 뜻인즉, 초정지법(超情之法)이라고 했죠, 이 해인삼매는. 법계인과는 초정지법이라. 뛰어날 초, 감정 정. 감정은 생각인데, 이 감정 생각을 뛰어넘는 법이다. 감정 생각에서 벗어난 법이다. 근데 이걸 감정 생각으로 알려니까 어려운 거예요. 초정지법이라는 말을 썼어요. 감정과 생각을 다른 말로 하면 정식이라고 쓰는데, 감정 정, 의식 식, 이 정식을 초월한 법이다. 근데 이거는 어떻게 하면 그 정식을 초월한 법에 갈 수가 있느냐. 반정즉시(友情卽是)라, 정식을 돌이키면 바로 그거다. 반정. 반정이라고 옛날 임금 반대하는 데모를 반정 데모라고 그랬는데 그게 아니고, 돌이킬 반 감정 정. 그 감정을 돌이키면 바로 그게 초정지법이다. 감정을 초월하는 법이다. 그래서 모든 깨달음이라고 하는 건 반정이에요. 반정. 그럼 미혹함이라고 하는 건 뭐냐. 순정이요. 그 감정을 따라가는 거예요. 따라갈 순자 감정 정자. 감정을 따라가면 미혹이고, 감정을 돌이키면, 반정을 하면 그게 깨달음이에요. 반정즉시라. 감정을 돌이키면 바로 그것이다. 약 반정하야 견하면(若反情見), 만약 정식을 돌이켜서 딱 보면, 그다음 말이 법계가 원명(法界圓明)하야. 이 마음 본성이 둥글고 밝아서 우주에 그대로 꽉 차 있다. 이걸 둥글 원자, 밝을 명자, 원명이라고 그러거든요. 일체중생의 본래 마음이 우주법계에 둥글고 꽉 찼어, 둥글고 밝아. 그래가지고 일체중생이 번뇌는 하나도 없고, 번뇌를 다 끊었고, 복지를 성경(福智成竟)이라, 복과 지혜를 다 이루었다. 기비불야(豈非佛耶), 어찌 불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요 생각 하나 딱 돌이키면 옛날부터 자기가 부처였다는 걸 알아요. 근데 생각이, 원숭이가 물에 있는 달 건지듯이, 밖으로 밖으로 계속 따라가는 순간에 계속 이 육도에 오르락내리락 할 수밖에 없어요. 그걸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의상스님 가르침 중에 반정성불이라, 반정하면 성불이요. 반정하면 깨달음을 이룬다. 감정을 하나 돌이키면. 그럼 반정하는 방법은 뭐냐. 기도하는 거지. <화엄성중> 하면 그 화음성중에 집중해서 감정이 다 안으로 돌아가게 돼요. 그래서 업장은 다 소멸이 되고, 거기서 지혜가 일어나서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깨달음이 멀리 있나. 고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다. 발심이 성불이기 때문에. 시작의 결과이기 때문에. 이게 이제 일승원교인데, 이렇게 가르치면 사람에 따라서 “정말로 그럴까요?” 이럴 수가 있어요. 이걸 까까중생이라 그래요. 까까중생. 그 말하면 “그게 그럴까요? 그게 그럴까요?” 이거 한도 없어. 그래서 이걸 의심하면 방법이 없어요. 뭐 인간 소통이라고 그러지, 소통은 믿어야 소통이 되지 몇 시간을 설명해도 그건 아니고요. 이러면 몇 시간 설명한 게 무용지물이요. 그러니까 이거 뭐 반정이 바로 성불이다. 순정이 바로 미혹이다 해 봤대자, “그게 그럴까요?” 하면 이건 다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다음을. 그러니까 이게 <화엄성중>해서 기도를 한 순간에 끊을 거 다 끊고 이룰 거 다 이뤘는데, 구래성불인데, 이거를 믿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그냥 자기가 다 끊고 다 이룬 걸 모르는 상태로 그냥 하는 거예요. 하긴 한 거예요. 몰라도 한 거예요. 그래서 그전에 큰 스님들이 법문을 들어도, 다 알아야 듣는 게 아니다, 모르고 들어도 그게 법문이다. 비유로 말하면, 그전에는 한약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좋은 약을 모르고 먹어도 몸에 좋다. 이거 참. 어떻게 이게 한의사도 아닌데 약이 좋은 걸 어떻게 먹는 사람이 다 아냐. 근데 그 약을 알아서 먹는 건 아니에요. 몰라도 먹는 거예요. 먹고 나면 몸이 좋거든. 그러니까 이 법문을 들을 때 잘 이해가 안 돼도 까까 소리만 하지 말고, 그럴까, 안 그럴까, 그런 소리만 하지 말고 훌륭한 법문이다, 이렇게 의심을 내지 말고 불생의심하고 신수봉행(信受奉行)하라. 믿어 받아서 봉행을 하면 되는 거예요. 다 알 수는 없어도 신수봉행하는 가운데 그게 복이 되고 지혜가 되고, 이 복과 지혜가 이제 이루어져서 내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에 옛날부터 부처였다는 걸 그때 안다. 번뇌를 끊지 못했을 때는 옛날부터 부처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게 의상스님의 가르침이에요. 꿈에서 깨어나야 꿈이 없는 줄 알지, 꿈을 꾸는 순간에는 꿈이 없는 줄 모르는 거와 같다. 그런데 제자들이 역시 그때도 마찬가지예요. 하나가 모든 것이라면, 일즉 다라고 하면, 이 중생신하고 제불신하고 상입상즉이니까 서로 들어가고서 서로 들어가니까, 이 몸이 제불신으로 들어가고 제불의 몸이 이 중생신으로 들어오고 하니까, 이 중생신이 바로 비로자나 십신불인데 비로자나 십신불이 바로 나의 몸이다. 그런데 이게, 그걸 알기가 참 어렵다 이 말이죠. 믿기는 믿는데 알기는 어려워. 이 몸이 바로 부처님 몸하고 같다. 중생신이 제불신이다. 表訓眞定等十餘德 從和尙所 學此印時 問云 不動吾身 卽是法표훈진정등십여덕 종화상소 학차인시 문운 부동오신 즉시법身自體之義 云何得見 於是和尙 卽以四句偈子 而答之云신자체지의 운하득견 어시화상 즉이사구게자 이답지운 諸根本我 一切法源心 語言大要宗 眞實善知識 제근본아 일체법원심 어언대요종 진실선지식 仍云汝等 當善用心耳 잉운여등 당선용심이表訓德 作五觀釋 一實相觀 五因緣觀 說頌曰표훈덕 작오관석 일실상관 오인연관 설송왈我是諸緣所成法 諸緣以我得成緣 是因緣觀 아시제연소송법 제연이아득성연 시인연관諸法本來不移動 能觀之心亦不起 是實相觀 제법본래불이동 능관지심역불기 시실상관 作此五觀 以呈和尙 和尙曰 是也 작차오관 이정화상 화상왈 시야 (叢髓錄卷上之一.韓佛全6,775中下) (총수록권상지일.한불전6,775중하) 그래서 이제 그 상수 제자 표훈스님, 진정스님 등 한 10분(表訓眞定等十餘德)이 종화상소(從和尙所)하야, 화상의 처소에 쫓아가서, 학차인시(學此印時)에, 이제 법계도인(法界圖印)이라고 법성계에 보면 그걸 그림으로, 이렇게 도장 형태로 돼 있어요. 그거 하나 가지고 의상스님은 이 법계인과를 가르쳤거든요. 그래서 그 법계도인을 배울 때에 문운(問云), 물어서 말하기를, 부동오신(不動吾身)이, 제법은 부동하야 본래적이라. 이게 이제 화엄경 가르침인데 일체만법이 이게 눈에 다 보이지만, 그 진실을 보고 나면 이게 생긴 것이 생긴 것이 아니다. 이걸 보는 것이 해인삼매다. 이걸 부동이라고 그래요.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이 몸이 생겨났는데, 이걸 반정으로 견하면 감정을 돌이켜서 보면, 생이 불생이라. 파도가 일어났는데 파도만 보지 않고 물을 보면 파도가 일어난 것도 역시 물이기 때문에 일어난 게 없다. 이게 해인삼매거든요. 그러니까 이 몸에서 이 몸이 나지 아니한 것을 딱 보는 게 그게 화엄 관찰이에요. 화엄경에서는 여러 가지 관법이 있는데, 모든 관법의 근원이 해인삼매예요. 그래가지고 몸을 부동의 오신이라 그래요. 움직이지 아니한 나의 몸이다. 그 움직인 건 생긴 건데, 이 몸이 생기지 아니한 내 몸이다. 이걸 무생오신. 이걸 보는 거예요. 이게 하나의 바다의 파도와 같아서 생기지 아니한 나의 몸이다. 그래서 이 부동오신이, 남이 없는 이 나의 몸이 즉시법신자체의(卽是法身自體之義)를, 법신 자체, 법의 몸 그 자체, 지금 내 몸이 법의 몸, 청정법신, 그 법신 자체의 뜻이라고 하는 것을 뭐라 그랬냐. 운화득견(云何得見)고,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옛날도 마찬가지예요. 옛날 사람들이라고 다 법문 듣는 대로 척척 알아챈 사람이 그렇게 많이 없어요. 한 둘이 있지. 한둘이 있는 거지. 그래서 “이 몸 자체가 그 법신 자체라고 하는 의미를 어떻게 아냐” 이래 의상스님한테 물었어요. 그러니까 어시화상(於是和尙)이, 의상 스님이 이 사구게자(四句偈子)로 답지운하되(而答之云), 네 가지 게송을 지어서 제자들한테 줬어요. 그 네 가지 게송이 뭐냐 하면, 이 의상 스님은 법성게 외에는 게송이 잘 보이질 않아요. 법성게는 이제 39 게송인데 법성게 외에는 게송이 안 보여. 근데 여기 보이는데 네 가지를 딱 줬어요. 첫 번째가 제연 근본은 나다(諸根本我). 모든 인연의 근본은 나다. 제연의 근본은 아라. 이 글도 참 깔끄러워, 의상스님은. 원효성사는 글이 훤출하거든요. 근데 의상스님은 아주 깔끄러워서, 잘 새겨야지 잘못하면 헛새겨요. 그래서 한문도 웬만하면 하지 말아야 돼요. 왜냐하면 했다면 고생해요. 했다면 고생해요. 이걸. 나도 옛날에 이렇게 못 새기고 달리 새겼어요. 고생하죠, 나도. 고생 안 할 수가 있나. 모든 인연의 근본은 나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자체를 떠나서 십신은 없다, 이 얘기거든요. 제연의 근본은 나다. 제연의 근본은 아요, 일체의 법원은 마음이다(一切法源心). 또 일체법의 근원, 근원이라고 하는 거는 발원지와 같고, 일체법이라고 하는 건 바다와 같은데, 이 바다도 그렇게 물이 많이 있지만, 그 근원을 보면 아주 최초 발원지 이런 건 물 한 방울 내려놓는데요, 그게. 그런데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법의 근원이다. 원천수처럼. 그런 거고 어언은 대요정(語言大要宗)이라. 말, 중생의 이 어언, 말은 모든 일의 근본이고, 줄기다. 요종이라고 그러거든요. 중요할 요자, 종교란 종자. 종은 근본이라는 말이고 요는 줄기라는 말인데, 이 말에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 말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말을 딱 하면 하기 싫은 사람은 말을 안 되도록 해요. 공부 안 할 사람은 말부터 안 하려고 해요. 공부가 그래 되나. 안 되긴 왜 안 돼. 말만 고치면 공부가 이제 되거든. 내가 한다. 근데 거짓말로 말하면 또 안 돼요. 안 할 생각하고 말로만 그러면 안 되고, 아주 일심으로 그러니까 뭐 안 하는 사람은 말부터 안 해요. 안 하려고 해요. 하는 사람은 말부터 해요. 그래서 어언은 근본이고 줄기다. 그래서 진실선지식(眞實善知識)이다. 선지식은 삼세제불인데. 그래서 이제 인연의 근본은 나고, 일체법의 근원은 또 마음이고, 말은 모든 근본이고 줄기이기 때문에, 이 세 가지가 갖추어졌을 때 진실선지식이다. 진실선지식은 삼세제불을 말하는 것이고,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다. 이런 게송을 딱 지어줬어요. 그러니까 그 제자들이 그걸 보고 그냥 해석한 게 아니라, 다섯 가지 관으로서 해석을 했는데, 이게 작오관석(作五觀釋)인데, 다섯 가지 관으로 해석을 지었어. 그런데 이제 오늘 다 못할 줄 알고, 5가지 다 안 적어오고, 첫 번째 하고 마지막 거 하고 세 가지는 생략하고 둘만 적어왔거든요. 공부 더 많이 할 분들은 그 책 소개가 여기 돼 있고 하니까 그거 찾아보면 되고 하니까. 참 좋은 건데. 이게 근데 그 가운데 첫 번째가 이 몸을 딱 보면, 이 몸은 인연으로 돼 있다. 인연을 깨달으면 아집이 사라져요. 아집 없이 죽으면 죽음이 무섭지 않고 두렵지 않아요. 죽음이 두려운 건 아집 때문에 그래요. 풀잎이 생겼다 없어질 때, 나뭇잎이 피었다 떨어질 때, 걔들이 발버둥 치지 않거든요. 걔들은 나라는 집착을 안 가지고 있어. 그래서 필 때나 질 때나 다름이 없어요. 근데 범부는 이걸 인연법인데, 이걸 나라고 집착을 해요. 나는 없고 인연은 있다. 늙는 것도 인연이고, 태어나는 것도 인연이에요. 여러 가지가 뭉쳐서 된 거예요. 그러니까 죽을 때도 인연이니까 인연법을 딱 보면 이렇게 하나하나가 가는구나, 그거 얼마나 좋아. 그래서 죽을 때 뭐 빨리 죽으려고 할 것도 없고요. 자는 잠에 죽는다고 그거 할 거 없어. 왜 자는 잠에 죽어, 억울하게. 죽는 거 딱 하나하나 보고 죽어야지. 그러니까 죽음을 피할 생각을 하지 말고 자세히 관찰을 하라. 그럼 이게 전부 인연법이기 때문에, 몸이 죽는 게 아니라 인연이 지금 나타나는 거다. 죽는 인연, 사는 인연 그런 거예요. 인연관이라는 게 있는데 인연관이 뭐냐. 아시제연소송법(我是諸緣所成法)이라, 나라고 하는 것은, 이 몸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인연, 인연이란 뭐냐. 여기 혈액도 있고, 체온도 있고, 호흡도 있고, 뼈마디도 있고, 그러는 게 이게 전부 지수화풍이라고 하거든요. 지수 화풍이 모여서 내 몸을 이루었다 이거죠. 지수화풍. 나는 지수화풍이 소송법, 이룬 것이다. 지수화풍이 모였다가 지수화풍이 흩어지니까 그 인연법만 딱 관찰하면 공포감 없어요. 이것이 바로 무아현상이라는 거죠. 인연은 무아다. 그냥 니가 없다 그러면 이게 통할 수가 있나. 그 인연법을 관찰하면 인연만 있고, 나는 없다는 걸 저절로 알게 되죠. 그리고 제연은 이아로 득성연(諸緣以我得成緣)이라, 모든 인연은 나로서 인연을 이룬다 그랬어요. 인연을 어떻게 이루냐. 물은 내 몸에 들어와서 피가 되고요, 물은. 또 따뜻한 공기는 내 몸에 들어와서 체온이 되요. 그리고 저 흙 같은 것은 내 몸에 들어와서 근골이 되요. 뼈가 된단 말이죠. 이렇게 제연은 이아로 득성연이라, 모든 인연은 나로서 인연을 이룸을 얻는다. 그러니까 이거 인연관을 딱 봐, 이 게송 넷을 인연관으로 해석을 했다, 이거예요. 그다음에 이제 제일 먼저 나온 게 이제 실상관(實相觀)인데, 실상관이라는 건 이제 뭐냐. 제법은 본래로 불이동(諸法本來不移動)이라, 제법은 이거 인연이니까 인연은 그 특징이 자성이 없어요. 자체성이 없어, 인연은 특징이. 전부 이타위성이에요. 다른 것으로서 자기를 삼는 게 인연이에요. 물도 자체가 없고, 나무도 자체가 없고, 흙도 자체가 없고, 이 몸도 자체가 없고. 그래서 제법은 본래로 인연인데, 인연은 연성은 무성이라. 인연의 성격은 본래 자성이 없다. 그래서 연생은 무생이라, 인연으로 난 건 남이 없다. 제법은 본래로 불이동(諸法本來不移動)이라. 이동이라는 건 난단 말인데, 또 사라진단 말인데, 인연은 본래 나고 죽는 게 아니고, 나도 난 게 아니고 죽어도 죽는 게 아니기 때문에 불생불멸이다. 이거란 말이죠. 진짜 이 이건 강원에서도 잘 안 하는 법문인데 정월 초에 이거 복 비는 법문을 이렇게 하고 있네. 왜냐하면 이런 엄청난 법이 화엄성중 그 한마디에 다 이루어지는 묘법이란 말이에요. 이게. 무량법이 일성묘법이라. 한 소리의 묘한 법이다. 이게 법계인과라는 거예요. 문자를 쓰니까 이걸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량대법 일성묘법, 무량대의 큰 법이 한 소리의 오묘한 법이다. 그래가지고 능관지심도 역불기(能觀之心亦不起)라, 능관지심도, 지금 이 이건 마음이고 뭐 인연은 어떤 거고 뭐를 듣고 보고 하는 게 이게 능히 보는 마음인데, 이 보는 마음도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난 게 아니다. 마음도 일어난 게 아니고 물질도 일어난 게 아니다. 이게 실상이란 말이에요. 그 실상관(實相觀)을 딱 하면 의상스님의 사구게의 가르침을 환히 통달하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해가지고 작차오관(作此五觀)하야, 이 오관을 지어서 이정화상(以呈和尙)하니, 그것으로 의상스님께 바치니, 화상왈(和尙曰), 의상 스님이 가로되, 시야(是也)라, 옳다 했다.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