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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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기도] 2월 4일 입춘기도 회향 법문
회주 계호스님 2024-02-04
안녕하세요. 오늘은 굉장히 좋은 날이죠. 입춘입니다. 보통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이라 그래요. 입이라는 것은 <오신다> 이런 뜻이에요. 온다, 올 래자(來)의 뜻이고, 입춘은 <봄이 옵니다>라는 뜻이에요. 봄이 오니까 우리가 봄을 맞이해야 되겠죠. 그럼 봄을 맞이하기 전에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물론 집안 청소도 열심히 해야 되겠고, 본인의 마음가짐도 좀 단정하게 해야 되겠죠. 오늘 도량에서 보니 어제부터 도량을 잘 정리해서 입춘을 맞이하더라고요.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고 할 때, 여기서 대길의 길자도 길하다는 뜻이고 복이라는 뜻이에요. 길자도 복이고, 건양다경(建陽多慶)의 양자는 봄 햇살인데 이것도 복 복자의 뜻이에요. 그리고 다경도 다 복자의 뜻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입춘을 맞이해서 봄만 오는 것이 아니라 복도 같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입춘대길하면은 <봄이 오시니까 큰 복으로 오십시오.>입니다. 그러니까 봄만 오는 것이 아니고 복도 같이 오니까, 봄은 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봄을 맞이해야 된다 이런 의미에요. 그전에 종범 스님께서 아주 정확하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건양다경에서 건양하면 이 건자는 세울 건자인데, 이르다, 온다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양의 절기가 오십니다> 이런 뜻이에요. 양의 절기는 따뜻한 기운이 오는 거고, 다경하면 복돼야 경사스럽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양의 절기가 오십니다. 많은 복으로 오십시오.>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입춘대길 하면, <입춘이 되니까 아주 길한 일만 있겠구나> 하는 의미도 되지만, <봄만 오는 것이 아니라 복도 같이 온다> 이런 의미에요. 그러므로 우리가 입춘날 완전한 새해를 맞는 거예요. 새해에 새 마음은 자기 마음에서 오는 겁니다. 어제 마음은 새 마음이 아니고, 우리가 보통 새 마음 하면 마음을 새롭게 가진다 이런 의미예요. 우리가 네 번의 설날을 맞이한다고 그랬죠. 첫 번째는 동지, 작은 설이에요. 이건 절기의 동지고, 그다음에 신정 있고 구정 있죠. 그다음에 마지막에 입춘이 있어요. 그래서 입춘이라고 할 때, 음양의 입춘인데, 하지부터 동지까지는 음기가 가득하고, 그다음에 동지부터 하지까지는 양기가 가득합니다. 그래서 네 번의 새해를 맞는데 세 번까지 왔죠. 남은 것은 구정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송구영신할 때, 송구계묘 영신갑진이에요. 갑진하면은 청룡이에요. 그것도 아주 푸른 용인데 이거는 날아오르는 격이고, 용이 하늘에 날아오르니까 얼마나 좋아요. 용꿈만 꿨다 해도 좋겠죠. 용꿈을 꾸듯이 우리는 항상 큰 꿈을 가지고 살아야 돼요. 그래서 <신화엄경론>에 보면 보현보살이 동방에 위치하기 때문에 장남이 되고, 머리가 되고. 머리라는 건 꼭대기예요. 그다음에 시초가 되고, 청룡이 되고, 즐거움이 되고, 봄의 생명이 되고, 법을 건립하는 단초가 된다 그랬어요. 그래서 <세간의 부처님 법은 다 동방을 취해서 첫머리를 삼는다>라는 얘기가 있어요. 동방에 해가 떠서 온 세상의 만물을 다 비추면, 일체가 다 명료해져요. 밝아지기 때문에. 동방은 머리가 되고 해가 뜨는 첫머리가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현보살은 실천과 행이 으뜸이에요. 그래서 장남이 되는 거예요. 장남들은 차남하고 막내하고 조금 질이 다르죠. 왜냐하면 가족을 부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도 보현보살의 실천이 중요한 거예요. 아무리 아는 게 많아도 그건 세지변총(世智辯聰)이지 실천이 아닙니다. 실천은 진리를 증득하는 유일한 검증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실천을 해야 되기 때문에, 용의 해가 중요한 거예요. 갑진년 새해를 맞아서 보현보살의 실천행으로 서로 다 화합해야 됩니다. 출가자나 재가자들이나 출세간이나 세간이 함께 어우러져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부처님을 전하는 데 노력한다면 여러분들은 청룡의 우두머리가 되고, 청룡의 장남이 되어야 해요. ‘올해는 정말 잘 된다.’는 마음을 모두가 가지면 적선공덕(積善功德)을 쌓는 거와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좋은 생각 가지고 좋은 마음 먹으면 안 되는 일이 없어요. 여러분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사셔야지, 맨날 누구 탓하면 안 돼요. 탓하다 보면 내가 탓하는 사람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좋은 마음 갖고 항상 좋은 생각 가지고 옆에 사람 도와줄 생각하는 보현보살의 행을 하고 수행정진하는 해가 되도록 합시다. 보통 입춘은 양력으로 2월 4일입니다. 음력으로 정월달에 들기도 하고 섣달에 들기도 해요. 오늘은 음력으로 12월 25일, 섣달 스무닷세인데, 정월로 봅니다. 예전에 입춘 되면은 세 가지 징후가 나타난다고 했어요, 동풍이 불어서 언 땅을 녹이고, 그다음에 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물고기가 얼음 밑으로 살살 다닌다고 합니다. 사는데 무탈해야 돼요. 탈이 없어야 된다는 얘기예요. 장애가 없어야 된다는 얘기예요. 항상 장애는 내가 만들어요. 입춘에 행해지는 민속풍습이 있죠. 봄을 맞이하는 뜻으로 대궐에서는 신하들에게 조그마한 춘첩자(春帖子)를 줘서 춘련(春聯)을 붙이기도 하는데, 보통 대구(對句)를 넣어가지고, <입춘대길 불심무구>, <입춘대길 적선공덕>, <개문만복래 소지황금출>등을 붙이고, 불설소재길상다라니, 광명진언도 다 좋은 구절이 됩니다. 그래서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이기도 하고. 날씨가 하도 추우면 입춘방(立春榜)을 보살님들이 제대로 안 붙이고 거꾸로 붙여서 날씨가 굉장히 춥다고 합니다. 2월달에도 독 깨진다 그러잖아요. 3, 4월에도 눈이 와요. 그러니까 조심하고, 항상 살얼음 위를 걷듯이 조심조심 수행 정진하면은 아무 탈이 없이 무탈하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항상 기도하는 자세로 살면 아무 장애가 없는 거예요. 기도를 정법으로 안 하다 보니까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떤 기도를 하냐. 이 기도한다는 것은 안개에 이 내 옷이 스며든다는 의미입니다. 기도라는 건 근수(勤修)라고 그랬어요. 부지런히 닦는다. 복과 지혜의 자비를 닦아야 돼요. 그래야지만 나한테 복과 지혜가 함께 어우러집니다. 또 <입춘대길 건양다경>에서, 이 건양이라는 거는 고종의 연호가 건양이라 그래서, <나라가 좀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생각했는데, 저번에 큰스님께서 법문하실 때, 건양이라는 거는 양도 복의 뜻이다, 세운다, 복에 이르른다, 이런 뜻도 있다고 해주시니까, 이거 두 가지 의미가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도 같이 적어놨어요. 그다음에 수여산 부여해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壽如山 富如海 掃地黃金出 開門百福來), 수명은 산처럼 수명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해지기를 바라고, 또 땅을 쓸면 모래가 나오는 게 아니라 황금이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문을 열면 온갖 복이 다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복을 얘기할 때 오복, 삼복 그러죠. 오복은 처음에는 수명 장수, 그다음에 부자, 그다음에는 건강한 거, 강녕(康寧)이에요. 수 수명, 부 재산, 강녕 건강. 그다음에 유호덕(攸好德) 하면은 인복이 있어야 된다 얘기예요. 그다음에 고종명(考終命), 그냥 명을 맞춰서 잘 돌아가셔야 돼요. 90세에 돌아가시든지, 80에 돌아가는 건 상관없는데, 20세나 30세에 비명횡사하면 조금 안 좋은 의미죠. 그래서 목숨도 제 명대로 사는 게 고종명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맨날 그러죠. ‘잠자는 듯이 갔으면 좋겠다.’ 그것도 잘 지어야 잘 갈 수 있어요. 또 삼복도 있어요. 삼복은 신복(身福), 몸 건강이 신복이에요. 그래서 몸 신자, 복 복자고, 그다음에 재복(財福)은 재물이에요. 그다음에 인복(人福)은 인덕이에요. 그걸 삼덕이라 그래요. 보통 오복, 삼복, 만복도 있어요. 만 가지 복을 만복이라 하고, 천복, 백복, 만복 그러는데, 이거는 복이 많이 생기는 걸 백복, 천복, 만복이라 그래요. 천 가지, 백 가지, 만 가지가 아니고, 많다의 의미의 만이라 그래요. 오만 가지 할 때 오만 가지가 다 많다는 의미로 쓰죠. “저 사람은 참 복이 많다. 저 사람 참 인덕이 좋다.” 이렇게 하는 거는 그 사람이 편안하기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지칭을 하는 거예요. 그럼 우리는 복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만 살아가는데 편안한 거예요. 그러니까 복을 지으면서 자비와 지혜를 같이 닦아야 하므로, 자비는 지혜의 열매고, 지혜는 자비의 씨앗이고 그다음에 자비와 지혜의 거름은 원력이에요. 원력이 있어야 돼요. 그래서 지혜는 친절로 나타나고 자비는 미소로 표현한다. 자비와 지혜와 원력이 함께하는 세상이 되기를 염원하면서 부지런히 닦아야 돼요. 우리가 이렇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돼야지 큰 원이 이루어질 수 있지, 원도 조그맣게 ‘우리 가정만 좀 잘 살게 해주십시오’하면 그거는 조그마한 원이지 큰 대원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지금 세상이 다 어떻게 됐어요? 평화롭지 못하잖아요. 그것도 우리들이 살아가는 데 하나의 장애물도 될 수 있는 거예요.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서 기후 조건도 이상하지요. 내년에는 더 덥다 그래요. 올해는 눈도 가끔 가끔씩 왔죠.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염불을 하든지, 주력을 하든지, 그다음에 경을 독송한다든지 참선을 한다든지 그중에 한 가지만 해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한 가지만 해도, 지옥고에는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요. 염념이 보리심하면은 걸음걸음마다 부처님이 나타난다고 그랬어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생각에 부처님이 나타나고 부처님이 안 나타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수행은 철저히 하고 계율이 그대로 위의예요. 이계위사(以戒爲師)라고 부처님 안 계실 때는 계로서 스승을 삼으라고 그랬거든요. 윤리도덕이 그대로 계율이에요. 살생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술 먹지 말라, 뭐 하지 말라, 뭐 하지 말라 많잖아요. 오계, 십계가 다 그런 일상생활의 윤리 도덕이에요. 그것만 잘 지켜도 그 사람은 정말 청정율사가 아니더라도 수행하는 진면목의 스님이에요. 누가 가르쳐주는 건 아니에요. 자기 스스로 이걸 잘 닦는 거예요. 진관사가 왜 이렇게 맑은지 모르시죠? 평생 기도만 하다 보니까. 사람, 사람, 걸음걸음마다 맨날 하는 게 신묘장구대다라니, 아니면 법화경 독송이잖아요. 그래서 법화경 독송하면 무량공덕이 생기고, 수륙재를 하다 보니까 맑아야 되는 거예요. 도량이 맑지 않으면 큰 스님이 들어오시다가도 “도량이 맑지 못하다.”고 다시 돌아가세요. 그런데, 보는 사람마다 왜 이렇게 도량이 맑으냐하면 기도하는 사람, 천일기도가 안 끊어져서 그래요. 그러니까 보살님들이 마음속으로 딴 생각 안 하잖아요. 계속 기도를 해서 염력을 두니까 주력도 끝까지 하시니까 편안한 거예요. 한 가지 일관하면은, 한 가지 잘하면 다 통하는 거예요. 하나 통하면 다 통한다는 거, 궁하면 통해요. 내가 뭐가 안 되는데, 가만히 보면은 융통성이 없다가도 뭔가 딱 지혜로우면은 그 답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보살님이 안 해서 못하는 거지, 불가능이란 건 없다 그랬잖아요. 그냥 열심히 하고 이렇게 입춘날 맞이해서 우리는 잘 해야 되겠죠.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내가 한 가지만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건 없다’라고 말씀하시듯이 열심히 하고, 마음을 잘 다스려 가지고 살아가는 데 남한테 해를 입히지 않는 그런 사람이 돼야 되는 거예요. 맨날 이상하게 딴소리만 하고, 바른 소리를 하고 바른 말을 해야 되는데 자꾸만 엉뚱한 소리 하다 보니까 그게 이상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부처님의 진리를 굳게 믿고, 그다음에 정법을 바르게 배워야 돼요. 사법이 아닌 정법이에요. 우리가 이렇게 사람 몸 받고 그다음에 정법 만난 것도 다 이게 우리들의 복이에요. 그다음에 부처님의 정도를 바르게 행하고, 그다음에 부처님의 정각을 바르게 이루는 한 해가 돼야 되겠죠.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 그래요. 습관을 잘 들여야 되는데, 세속의 습관이 안 버려지면 그대로 속인 같아요. 여러분들은 세속에 살면서도 부처님같이 살면 그대로 도인이에요. 유명한 거사들이 있는데 마을에 살면서 세속에 얽매이지 않는 그런 분들을 거사라고 지칭해요. 인도에는 유마거사, 중국에는 방거사, 우리나라는 부설거사가 있어요. 부설거사 그 집 가족은요, 다 부처님이에요, 그대로. 딸 아들까지 그대로 부처님이에요. 그러니까 부처님같이 살면서 부처님처럼 행동하면서 그렇게 살면 아무 하자도 없고 다 잘 되는 거예요. 올해 청룡의 해니까 잘 돼야 되겠죠. 장남 같이 살고, 머리 같이 살고, 꼬리가 되지 말고 항상 으뜸이 돼야 되고, 남을 보살피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되고. 오늘 불설소재길상다라니 몇 번 하셨어요? 삼칠번(21번) 했죠. 그것만 해도 공덕이 다 되는 거예요. 한 번만 해도 되는데. 그러니까 불설소재길상다라니 했죠, 육자대명왕진언 옴마니반메훔하셨죠, 광명진언을 했죠, 다 했잖아요. 아니 우리 아버지 법회도 맨날 광명진언 하잖아요. 금강경 독송할 때도 하고. 그리고 적선공덕 가행정신(積善功德 加行精進)이라 그러죠. 그다음에 <입춘대길 불심무구> 이런 것도 있고. 정조 임금님 때는요, 부모은중경에 나오는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아아나 사바하>를 인쇄해 나눠줘가지고 이거를 대문에 붙이기도 했다 그랬어요. 부모은중경은 용주사에서 부모은중경을 많이 해서, 부모은중경 경판도 거기 다 모셔져 있어요.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아아나 사바하>하면 부모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진언이에요. 혹시 부모님께 불손했다거나 부모님께 좀 무례하게 했던 사람은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아아나 사바하> 이걸 좀 많이 해보세요. 그러면 부모님이 저승에서라도 “아유 우리 스님, 스님 됐으니까 좀 도와드려야 되겠다. 아유 우리 보살, 기도를 잘 하니까 내가 좀 도와주겠다” 하면, 안 하고 싶은데도 자꾸 기도하는 마음을 내는 거예요. 그런 마음이 나도록 해야 되겠죠. 그래서 진관사 신도들을 제가 제일 좋아하잖아요. 왜 좋아하느냐. 기도를 열심히 하시기 때문입니다. 저승 가서 염라대왕님이 ‘뭐 하다 왔느냐?’ 물으면 ‘진관사에서 기도만 하고 왔습니다’ 하면 무사통과예요. ‘호박떡을 좋아하는데 호박떡을 못 했습니다’ 하면 ‘아유, 괜찮아요. 내가 봐줄 테니까 잘 가라’고 무사통과해요. 왜냐하면 기도를 너무 열심히 잘해서. 그래서 항상 기도하는 우리가 돼야 되고, 기도하는 주력하는 스님이 돼야 되고, 주력하는 보살이 돼야 되고, 그다음에 경을 독송하는 보살이 되야 해요. 금강경 독송해도 되고, 법화경 독송해도 되고, 능강경 독송해도 되고, 어떤 경이든지 자기가 마음에 드는 경으로, 지장경 해도 되는 거예요. 안 된다는 건 없어요. 이 세상에. 정해진 법은 없어요. 수학 공식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하면 다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 뒤에 보면 아홉 차리라는 게 있죠. 맡은 바에 따라서 9번 일을 되풀이해서 하면 한 해 동안 복을 받는다고 했어요. 글방에 다니는 애들은 옛날에 천자문을 9번씩 읽었다 그래요. 또는 나무를 아홉 바구니를 하고, 다른 사람들은 빨래를 9가지를 한다든지, 길쌈을 아홉 바디를 하고, 실을 감더라도 아홉 꾸리를 감고, 밥을 먹어도 9번을 먹는데, 많이씩 안 먹고 한 숟갈 먹다가 조금 이따 또 한 숟갈 먹고, 조금 이따 한 숟갈 먹도록, 그러다 보면 아홉 그릇이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홉수를 그렇게 좋아해요. 중국 사람들은 팔자를 좋아해요. 그 사람들은 팔 하면 그게 벌써 복이 온다 해서 돈이라 생각해요. 우리는 구자를 좋아해가지고 아홉자는 양수로 보기 때문에 열심히 살라는 그런 교훈적인 의미도 있어요. 세시 절기하고 명절이 달라요. 정월보름이라든지 추석이라든지 이거는 명절이고, 입춘 그다음에 우수, 경칩 이런 거는 세시 절기예요. 그러면 입춘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이 뭐예요? 소한, 대한, 대한이 마지막이죠. 소한, 대한 끝나면 또다시 입춘으로 돌아와요. 그래서 일 년에 한 달에 두 번씩 초에 들 때도 있고 중간에 들 때도 있고 해서 한 달에 두 번씩 들기 때문에 12 곱하기 2하면은 24절기예요. 아시겠죠? 그러니까 열심히 하고, 좋은 일을, 적선공덕을 하면 액을 면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다리 없을 때, 길 없는데 다리 놔준다든지, 또 우물 파서 많은 사람들에게 급수공덕 한다든지, 그다음에 밥을 지어가지고 모든 사람에게 공양을 시킨다든지 이것도 좋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공양을 많이 하는 마음을 내시면 좋아요. 올해는 청룡의 해니까 뭐든지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다 같이 부처님 되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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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기도] 1월11일 음력 12월 신중기도 입재 법문
종범스님 2024-01-11
안녕하십니까? 신년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동안 제가 건강이 좀 못 받쳐줘서, 진관사 초하루 법회에 잘 못 나오다가, 이제 계묘년 섣달 초하루를 맞이해서 오랜만에 나오게 됐습니다. 오늘 법문의 제목은 <자기미래불(自己未來佛)>, 자기 미래에 이룰 미래불, 이런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불교는 중간 목적이 있고, 궁극 목적이 있는데, 중간 목적은 현증수복(現增壽福)하고, 현세의 수명과 복덕을 이루고, 내세에 극락세계 왕생하는 걸 이루고, 이게 중간 목적이에요. 구경목적은 구경성불해서 전법도생(傳法度生)하는 거, 법을 전해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아주 궁극적인 목적이거든요. 그러면 성불을 못한 것을 범부중생이라고 그러는데, 또 성불을 한 분을 삼세제불이라 그래요. 성불을 하면 삼세제불이고, 성불을 못한 분들을 범부중생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럼 범부중생과 삼세제불의 차이점이 뭐냐. 凡夫 : 地水火風 皮肉筋骨身 見聞覺知 受想行識心범부 : 지수화풍 피육근골신 견문각지 수상행식심 生老病死 憂悲苦惱相 六道出沒 不息造業行 생로병사 우비고뇌상 육도출몰 불식조업행 범부중생(凡夫衆生)은요, 이 범위가 아주 좁아요. 범부중생이 알고 있는 몸이라는 거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로 된 이 육신, 지수화풍과 피육근골신(皮肉筋骨身), 피부와 근육과 골절 이걸 내 몸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범부중생이 마음이라고 알고 있는 거는 견문각지심(見聞覺知), 보고, 뭐 이게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이런 걸 이제 마음이라고 알고 있고, 또 수상행식심(受想行識心), 뭐 이제 감수성을 느끼고, 상상을 하고, 행동을 하고, 인식하는 이런 걸 마음이라고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평상시에 어떤 걸 느끼느냐면 생로병사(生老病死) 우비고뇌(憂悲苦惱)를 느껴요. 죽는 거 느끼고, 늙는 거 느끼고, 이렇게 뭐 태어나는 거 이런 거 느끼고, 또 근심 걱정이 많아, 그 생로병사 도중에. 그런 형상이 있고. 그리고 이것이 한 생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계속 육도출몰(六道出沒)을 해요. 이제 삼선도·삼악도가 있는데, 삼선도는 육도 중에서 좀 좋은 데고, 삼악도는 나쁜 덴데, 나쁜 데로 떨어졌다가 좋은 데로 올라갔다가 나쁜 데로 떨어졌다 좋은 데로 올라갔다, 이게 출몰을 한단 말이에요. 나왔다, 들어갔다. 근데 이게 쉬지를 않아요. 불식조업행(不息造業行)이라, 그런 업을 지어가는 거를 끝내지 않고 계속한다. 이걸 범부중생이라 그래요, 범부중생. 諸佛 : 三佛圓融 佛身無礙 身智光明 普照法界제불 : 삼불원융 불신무애 신지광명 보조법계 佛刹淨土 莊嚴具足 劫外常住 受用無盡 불찰정토 장엄구족 겁외상주 수용무진 그러면 삼세제불(三世諸佛)은 뭐냐? 이제 부처님에게는 삼불이 있다. 법신불(法身佛)·보신불(報身佛)·화신불(化身佛), 삼불이 있는데, 이거를 부모가 주는 것도 아니고, 스승이 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깨닫는 부처예요, 이거는. 깨달음으로 나타나는 게 부처님인데, 이 부처님 중에는 법신불·보신불·화신불이 있는데, 이 법신불을 어떻게 깨닫냐. 법신불은 정각을 통해서 깨달아요. 정각. 그래서 화엄경에 보면 시성정각(始成正覺)이라,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었다. 정각은 바르게 깨달은 건데, 바르게 뭘 깨달았느냐. 법신을 깨달아요. 정각은 법신이에요. 법신을 어떻게 깨닫냐. 그 생로병사, 우비고뇌, 견문각지, 수상행식심을 딱 맑히면, 그 맑아지는 순간에 본래 자기 몸을 알게 돼요. 그래서 그 깨달음으로 아는 걸 요달(了達)이라고 그러는데, 알 료자하고 통달할 달자가 있어요. 그래서 법신은 요달로 정각을 한다. 그러면 그 요달로 정각하는 몸이 뭐냐. 나의 본래 신이에요. 나의 본래 신. 그래서 정각으로 법신을 깨닫는다. 그러면 깨닫고 나면 어떻게 되냐. 법신을 깨닫는 순간에 이 견문각지, 수상행식, 일체번뇌 생각들이 지혜로 바뀌어요. 그래서 의식이 지혜가 되는 거예요. 의식과 지혜가 있는데, 의식은 범부중생의 마음이고, 지혜는 삼세제불의 마음인데, 의식이 지혜로 확 바뀌어버려요. 그래서 이 의식이 지혜로 바뀌는 거를 출현(出現)이라 그래요, 출현. 날 출자, 나타날 현자. 그래서 화엄경에 보면, 세주묘엄품은 정각이라고 그랬고, 여래출현품에서는 출현이라고 그랬어요. 그러면 출현하는 건 뭐냐? 지혜가 출현하는 건데 지혜가 왜 출현하느냐. 그 법신을 바르게 깨달은 공덕으로, 이걸 정각 공덕이라고 그래요. 법신을 바르게 깨달은 공덕으로 대지(大智) 출현이라, 큰 지혜가 나타난다. 그래서 법신을 깨달은 보답으로 나타난 부처님 몸이라고 그래서 그걸 보신이라고 그래요. 보신. 그래서 보신은 출현으로 나타난다. 그럼 법신, 보신을 갖춘 부처님은 그다음에 뭘 하냐. 백억 화신을 나타내는데, 백억 화신은 뭐냐. 응화(應化)라고 응화현이라, 출현이 아니고 백억 화신은 응화라. 참여할 응자, 변화할 화자인데, 응화신. 그 응화신은 뭐냐 하면은 물속의 달과 같다. 수월, 수월이라. 물속의 달이라는 건 뭐냐. 물속에 있는 달은 맑은 물이 있을 때는 나타나고, 맑은 물이 없으면 안 나타나요. 그래서 인연이 되면 나타나고 인연이 안 되면 안 나타나고, 그래가지고 이 응화신은 비신현신(非身現身)이라고, 몸이 없는데 몸을 나타낸다. 이게 이제 부처님의 삼신이에요, 삼신인데. 이 범부중생은 몸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피육근골신, 이걸 내 몸이라고 알고 있는 거예요. 피육근골신. 그리고 마음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전부 밖에 거 생각하는 것만 마음이라고 알고 있어요. 의식의 대상은 밖의 사물이에요. 자기 몸도 마음 밖에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이 생각 저 생각하고 살아가면서 보이는 게 생로병사고, 느끼는 게 우비고뇌예요. 근심, 걱정, 슬픔. 여기서 본래 자기법신불을 딱 깨달으면 어떻게 되냐. 석문의범 다비편에 그런 게송이 있는데, 법신은 변만백억계(法身遍滿百億界)라. 법신은 이게 끝이 없어요. 그래서 100억 세계 온 우주법계에 가득하다. 두루이 가득하다. 그게 일체중생의 본래 몸이에요. 그다음에 보광광명은 조인천(照人天)이라, 법신을 깨달으면 그 지혜 광명이 나와요. 그 지혜광명이 넓게 비추어져가지고, 인간과 천상 세계를 다 비춘다. 이게 이제 보신불이고, 앞에 법신변만백억계 하는 건 법신불이고, 응물현형(應物現形)은 담저월(潭底月)이라. 응물해서, 사물에 응해서 형상을 나타내는 것은 연못 물속에 비치는 달과 같다. 이건 화신불이에요. 이것이 이제 삼세제불이다 말이죠. 그래가지고 체원(體圓) 법신·보신·화신이 그 몸이 원만해. 그래서 앉는 데마다 보련대(寶蓮臺)라. 보배 자리에 앉고 연꽃과 같은 청정한 자리에 앉는다. 이게 이제 부처님 세계거든요. 그래서 이 범부 세계하고 부처님 세계하고는 완전히 달라서, 이게 이제 범부중생세계는 좋았다가 나빠지니까 좋은 것 자체가 얼마 못 가요. 이게 문제에요. 얼굴 잘난 게 나쁜 거 아닌데, 그 얼굴이 얼마 안 간다니까요. 누구는 젊을 때 얼굴 없었나. 그리고 몸기운 좋은 게 얼마 안 가. 그 기운 좋은 게 얼마 안 간다고요, 그게. 또 부자도 얼마 안 가고, 명예도 얼마 안 가고. 그래서 알고 보면 금방 생겼다 없어지는 것이 세상 만물이니까, 이걸 알고 보면 구할 것이 하나도 없어요, 세상에서는. 구해봐야 없어지니까. 그래서 세상 이치를 알고 나면 세상에서 구할 게 없다. 이걸 뭐로 비유했느냐 하면, 어떤 사람이 어느 집을 가만히 보니까 뭐 좋은 게 많은 것 같아. 그래서 그 집에 가서 그 안에 있는 거 전부 훔쳐보겠다고 그냥 온갖 고생을 다 해서 그 방에 딱 들어가니까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적입공실(賊入空室)이라, 도적이 빈방에 들어갔다. 없는데 어떡해요? 훔치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없어졌다. 이게 이제 인생 철든 사람의 마음인데, 처음에는 뭐 세상 살면 좋은 게 많은 것 같은데 가만히 살아보니까 좋은 게 없거든. 뭐 좋았던 한 세상 어쩌고 그러는데, 그게 금방 꿈같이 지나가 버리고 하나도 좋은 게 없더라. 그것이 도둑이 물건 훔치러 들어가 보니 아무것도 없는 걸 느끼는 거와 똑같다. 그래서 훔칠 마음 전혀 없어요. 그건 세상에서 뭘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 그러면 뭐냐. 본래 자기를 찾는 거, 그게 깨달음이거든요. 세상 것을 구해봤대자 허망하니까 본래 자기를 찾자,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법신·보신·화신이라 그래요. 법신은 정각으로 이루고, 보신은 광명으로 이루어요. 그래서 보방광명(普放光明)이요. 광명신 또 그런 정각신, 또 수월신 물에 비친 달과 같은 몸이다. 이런 건데 이렇게 돼서 이제 삼신이 원융(圓融)하고 불신이 걸림이 없어서 신지광명이 보조법계(身智光明 普照法界)라. 신은 삼신불을 말하고, 지는 이제 생각이 바뀌면 네 가지 지혜가 나타나는데 그게 보신불이에요. 네 가지 지혜는 이제 가르치는 게 있어요. 그거는 다 말 안 해도 되고. 법계를 두루 해요. 이게 삼신사지(三身四智), 이걸 부처라고 그래요. 삼신사지. 지혜가 보신불인데 지혜는 정각 공덕으로 나와. 그래가지고 불찰정토(佛刹淨土). 이 법신 보신이 딱 이루어지면 그 이루어진 공간이 부처님 나라라, 불찰이라고 그러고, 나쁜 게 하나도 없어서 그걸 정토라 그래요. 깨달으면 그게 불찰이고 그게 정토요. 장엄이 구족(莊嚴具足)하다고 모자라는 게 하나도 없어. 장엄이 다 갖춰졌어요. 그리고 거기서 계시는 부처님은 세월이 없어요. 과거 현재 미래가 없어. 겁외상주(劫外常住)여. 세월 밖에 항상 머물러. 말만 들어도 진짜 좋다. 이게 다 늙었네, 젊었네. 이게 세월 속에서 나타나는 거잖아요. 늙고 젊음이 없어. 그래가지고 뭐냐. 수용이 무진이라(受用無盡), 그 받아쓰고 즐거움이 끝이 없다. 自己未來佛 자기미래불①問 自未來佛 還化自現在者 以何文知乎 答 瓔珞經 第 八地菩薩云 “自見 己身當果諸佛 摩頂說法” 문 자미래불 환화자현재자 이하문지호 답 영락경 제 팔지보살운 “ 자견 기신당과제불 마정설법” (보살영락본엽경권하. 대정장제24권, 1018상) 故卽聖說 炳然可知 고즉성설 병연가지 이게 이제 부처님 세계거든요. 그런데 이 미혹범부에서 삼세제불로 가는 분들을 보살이라고 그래요. 미혹범부에 계속 머무는 걸 그냥 범부라고 그러고. 이제 보살이라고 그러는데, 보살이 이제 성불을 하기 위해서 공덕을 닦고 닦다 보면 팔지에 올라가는데, 팔지, 팔지에 올라간 보살(八地菩薩)은, -팔지 위에 이제 구지, 십지 하면 이제 여래가 되는데,- 팔지에 올라간 보살은 뭘 느끼느냐 하면, 자기 미래불이, 자기가 미래에 이루어질 부처가 자기 미래불이 환화현재자(還化現在者)라. 환화자현재(還化自現在)라, 도리어 자기의 현재를, 현재 자신을 교화를 시킨다. 그걸 느껴요. 자기미래불이 현재 자기를 인도를 해요. 그리고 어떻게 인도하냐. 항상 마정설법(摩頂說法)을 해요. 이 정수리 머리를 만지고 법을 설해줘요. 그걸 자견(自見)한다. 스스로 본다. 팔지보살이 되면 미래, 자아미래불이, 자기미래불이 환화자현재자 하느니, 자기를 도리어 교화하는 것을 딱 본다. 근데 이거를 어떻게 아냐. 이거는 이제 보살영락경이라고 하는데 있는데, 즉 성설이라(卽聖說), 성인의 말씀이니까 병연가지(炳然可知)라, 밝게 이거를 알 수가 있다. 팔지보살이 되면 자기 미래불이 자기를 교화해요. 자기 미래불이. ②又旣諸經云 “三世諸佛 拜敬故 諸罪業滅” 未來諸佛者 何乎 問 此他已成佛拜義 何爲自未成佛乎 우기제경운 “삼세제불 배경고 제죄업멸” 미래자불자 하호 문 차타이성불배의 하위자미성불호 答 拜他佛之義 非無而遠疎 所以者 凡諸佛 爲衆生 說佛德意 爲欲衆生 自亦得彼果 故令修行(...) 답 배타불지의 비무이원소 소이자 범제불 위중생 설불덕의 위욕중생 자역득피과 고령수행(...) 是故 正令吾發心修行佛 但吾當果(佛) 已成佛非他佛也(自己未來佛)(......) 시고 정령오발심수행불 단오당과(불) 이성불비타불야(자기미래불)(......) 그럼 자기 미래불이 이제 뭐냐라는 건데, 그러니까 이게 이제 어디 나오느냐면은, 신라 의상 스님이 신라에서 화엄경을 평생을 가르쳤는데, 그 의상 스님의 법문을 듣고 제자들이 많은 주석서를 남겼는데 그게 이제 이 책이에요. 법계도기총수록(法界圖記叢髓錄)이라고 하는데 이거는 뭐냐 하면 의상 화엄주석집이에요. 의상 화엄을 주석한 책이에요. 그래서 이걸, 고려 말에 이걸 정리해서 해인사 사간장경에 출판을 해서 그때 출판된 모습이 이런 모습(책을 보여주시면서)이거든요. 이게 얼마 안 돼서 그렇지, 이게 이건 축소한 거라 이게 4권이요. 4권. 이게 의상 화엄은 중국 화엄하고도 다른 정말로 희귀하고 심오한 화엄이에요. 의상 화엄이. 그래서 거기에 추혈문답(錐穴問答)이라고 있는데, 추혈이라는 거는 부석사에서 조금 다른 데로 가면 추동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그 추동에서 100일 동안 화엄 법문을 했어요. 그거를 지통이라는 제자가 받아 적어서 전해지는 게 이게 이제 추동 문답인데, 그 추동 문답 중에 하나를 여기 이끌어온 게 지금 오늘 말씀드리는 내용인데요. 거기에 이제 의상 스님이 “삼세제불(三世諸佛)을 배경고로(拜敬故), 삼세제불을 예배하고 공경하는 고로, 제죄업이 멸(諸罪業滅)이라 했다. 모든 죄업이 소멸된다고 했다.” 그런데 미래제불자(未來諸佛者)는 삼세 제불 중에서 미래에 나타날 모든 부처님은 무엇이냐. 미래제불은 자기 미래불이라는 거예요. 미래불은 자기 부처다. 과거불도 나왔고 현재불도 계시는데 미래불은 뭐냐. 미래불은 자기불이에요. 자기가 미래불이 되는 거예요. 이게 핵심이에요. 미래불은 내 불이다. 자기 불이다. 이거예요. 그럼 자기 불은 지금 현재는 어떻게 계시냐. 요건데 그 의상 스님 제자 지통이라는 분이 최고 상수 제자인데, 그분이 태백산에서 삼세동일체, 삼세가 동일하다는 게 이제 화엄관법인데, 삼세 동일관법을 딱 닦고 있어. 삼세동일이라는 건 할아버지가 있고, 아버지가 있고, 손자가 있는데, 할아버지는 과거요, 아버지는 현재요, 손자는 미래예요. 근데 이 한자리에 있는 거예요. 할아버지도 한자리에 있고, 아버지도 한자리에 있고, 손자도 한자리에 있어. 근데 이걸 따져보면 할아버지는 과거요. 아버지는 현재예요. 손자는 미래예요. 이게 삼세 동일이다. 삼세가 하나다, 이게 화엄이거든요. 그래서 이 삼세동일체 화엄묘관을 딱 닦고 있는데, 어느 날 보니까 자기가 머무는 그 토굴 앞에 멧돼지가 지나가요. 그래서 그걸 보고 법당에 가서 역시 불공을 올리고 절을 하는데, 그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이 말을 해요. 이게 또 수행 묘법이에요. 수행이 깊으면 법당에 계신 부처님이 말을 해요. 자기 마음이 밝아지면 온 천지에서 법을 설하는 거예요. 그래서 법당에 계신 부처님이 뭔 말하느냐. 조금 전에 지나간 멧돼지는 너의 과거고, 지금 예불하는 너는 너의 현재고, 여기 앉아 있는 나는 너의 미래다 이래요. 이거 뭐냐. 미래의 부처님은, 이 수행자의 미래 부처님은, 현재 설법하고 계시는 부처님이 나의 미래 부처님이다. 이걸 가르쳐주는 거예요. 석가모니가 나의 미래불이고, 미륵존불이 나의 미래불이고, 아미타불이 나의 미래불이다. 이게 의상 스님의 가르침이에요. 지금 현재 나한테 발심하고 공덕을 닦게 하는 불이 나의 미래불이다. 지금 절하고 있는, 바라보는 부처가 나의 미래불이다. 이게 삼세 동일체거든요.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딴 데 있는 게 아니고 지금 현재 있고, 아버지가 딴 데 있는 게 아니고 지금 현재 있고, 손자가 딴 데 있는 게 아니고 나 현재 여기 있다. 그러니까 예불로 하면 나도 지금 현재 부처님처럼 성불을 한다 이거예요. 예불이 성불이지, 지금 예불 떠나서 성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삼세가 동일하다. 이게 의상 화엄이거든요. 그래가지고 타이성불배의(他已成佛拜義)는, 그러니까 제자가 물어요. 저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저 부처님이 이미 성불해서 내가 예배하는 뜻은, 하위자미래불고(何爲自未成佛乎), 자기 미래에 성불한 부처님이 되겠는가. 석가모니는 과거에 성불을 했는데, 어떻게 내가 미래에 성불한 부처님이 어찌 되냐, 이렇게 질문하거든요. 따져 물었어. 그러니까 답하되, 배타불지의(拜他佛之義)는, 석가모니불이나 아미타불이나 이런 분들 다른 부처님에게 예배 공경을 올린다고 하는 뜻은, 비무(非無)나, 없지는 않으나, 그러나 원소(遠疎)다, 너무 본뜻에서 멀어졌고 너무 거칠다. 그렇게만 보면 안 된다 이거예요. 소이자(所以者)하고, 이유는 무엇인가. 범제불(凡諸佛)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위중생(爲衆生)하야 중생을 위해서 설불덕의(說佛德意)는, 부처님의 덕을 말하는 뜻은, 일체제불이 중생을 위해서 부처님의 공덕, 이걸 경에서는 과덕이라고 그러는데, 부처님께서 이룬 결과의 공덕, 부처님의 과덕을 말하는 뜻은 과거 부처님만 계속 공경하라고 말했겠느냐 이거에요. 지금 그 법문을 듣는 그 사람 자신이 성불하라고 말한 거지, 부처님을 그냥 찬탄만 하고 예경만 올리라고 말한 게 아니다 이거에요. 그래서 말한 뜻은 위욕중생(爲欲衆生)하야, 중생을 위해서, 자역득피과(自亦得彼果)라. 스스로도 또한 저 부처님의 과덕을 얻게 하고자 하기 위한 것이다. 부처님이 부처님 성불한 내력을 말하는 거는 그 다른 뜻이 아니다. 그 성불한 내력을 듣는 중생이 스스로 불과를 이루어서 성불하게 하고자 한 것이지, 만날 부처님만 찬탄하다 그만두라고 한 게 아니다 이거에요. 그러니까 그다음에 어떻게 되냐. 그렇기 때문에 중생을 보고 수행하라고 한 것이다. 스스로 성불하게 하기 위해서 수행하라고 한 것이지, 과거 부처님만 예경하게 하기 위해서 수행하라고 한 게 아니다. 아주 굉장히 중요한 그런 가르침인데요. 중간에 생략하고, 시고(是故)로, 이런 거로, 정령오발심수행불(正令吾 發心修行佛)은, 바로 나로 하여금 발심하고 수행하게 한 부처님은, 나를 발심하게 하고 나를 수행하게 한 부처님은 이게 이제 석가모니불이고 비로자나불이고 노사나불이고 다 그렇잖아요. 부처님은 다른 분이 아니라 단오당과(但吾當果(佛))라, 여기 당과라는 말을 썼는데 마땅 당자인데요. 우리 말에 보면 본래다, 원래다 이런 말이 있어요. 본래 원래. 그런데 후래(後來), 뒤 후자, 올 래자, 후래다. 저 미래를 말하거든요. 후래에. 또 당래하생 미륵존불(當來下生 彌勒尊佛)이라고 당래라는 말이 있어요. 마땅 당자, 올 래자, 당래도 미래를 말하는 거예요. 그럼 당과라 그러면, 당래 내가 이루어야 할 부처님의 과덕이다 이 말이에요. 당과라 그래요. 거기다 불자 쓰면 당과불. 이거 좀 어려운 말인데 당과불은 미래불이에요. 나의 당래에 이룰 부처님. 당과불. 그래서 삼세동의를 여기서 설명하는 건데 나로 하여금 발심 수행하게 하는 현재불은 오직 나의 당과불이다. 나의 미래불이다 이 소리예요. 나의 미래불을 위해서 지금 발심 수행하게 하는 것이지, 현재 부처님만 찬탄하기 위해서 발심 수행하게 하는 게 아니다. 이게 이제 의상 스님의 가르침이거든요. 그래서 이성불(已成佛)은, 이미 성불한 부처님들은 비타불(非他佛)이라, 다른 부처님이 아니다. 자기 미래불이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부처님을 보고 공경하는 것은 그 부처님이 딴 부처님이 아니고 나의 미래불이다 이거예요. 나의 미래불이다. 그러니까 예불하면 성불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뭣도 모르고 와서 예불을 했기 때문에 여러분 다 성불하게 돼 있어요. 모르고 해도 공덕은 안 없어지거든. 그러니까 부처님을 찬탄하면 바로 그게 미래의 자기 성불이여.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리면 그게 바로 자기미래불이다. 그게 이제 아버지가 있으면 이제 할아버지가 있고, 또 아버지가 있으면 밑에 또 아버지의 아들이 있으니까 손자가 있는 거예요. 과거·현재·미래가 한자리에 있어. 현재에 내가 예불하면 그게 자기 미래불이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가르침인지, 진짜 이런 게 이제 의상 화엄이거든요. 근데 의상 화엄은 중국 화엄하고 달라서, 중국 화엄은 문자 저술로 남긴 화엄인데, 의성 화엄은 제자를 깨우친 화엄이에요. 그래서 이게 제자가 끊어지면 이게 끊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문자가 안 남아가지고. 그런데 요만큼이라도 적어놨기 때문에 의성화엄주석집이라고 한 권으로 달랑달랑 들고오지만, 이게 축소해서 그렇고 여기에 어마어마한 뜻이 담겨져 있어요. 그래서 지금 출현해 계신 이미 이룬 부처님은 타불이 아니고, 다른 부처가 아니고 자기 미래불이다. 그게 삼세 통일이다. 그래요. ③又他已成佛 卽是自當果佛 所以者何 他成佛時 即得三世佛平等果 우타이성불 즉시자당과불 소이자하 타성불시 즉득삼세불평등과 또 세 번째는, 우타이성불(又他已成佛)은 다른 부처님들이 석가모니불이나 미타불이나 약사여래불이나 이런 다른 부처님, 이미 성불한 부처님은, 다른이가 이미 성불한 부처님은 즉시자당과불(卽是自當果佛)이다. 곧 자기 미래불이다. 이거지 당과라는 건 아까 얘기했죠. 당래에 이룰 결과 부처님. 지금 성불한 부처님은 석가모니불은 자기 미래불이라는 거예요. 당과불이라는 거예요. 요거 아주 중요한 거거든요. 석가모니불은 나의 미래불이다. 즉시자당가불이라. 소이자하(所以者何)고, 이유는 무엇인가, 타성불시(他成佛時)에, 저 석가모니불이 성불을 할 때에, 즉득삼세제불평등과(即得三世佛平等果)라, 삼세 제불이 다 평등함을 얻는다. 이게 이제 뭐냐 하면. 석가모니불이 성불 딱 하고 나면요, 과거불이나 현재불이나 미래불이 똑같아요. 평등해요. 제불은 다 평등해요. 그러니까 내가 미래불이 돼도 지금 석가모니불하고 똑같아요. 그래가지고 불신보변시방중(佛身普遍十方中), 불신이 시방에, 시방세계에 두루하니 삼세제불이 일체동(一切同)이라, 삼세제불이 일체가 똑같다. 내가 미래의 성불한 부처나 과거의 성불한 석가모니불이나 지금 현재의 아미타불이나 지금 현재 석가모니불이나 똑같다. 삼세제불이 일체동이라. 어떻게 이런 법문을 해 주실 수가 있었는지 참 신기해요. 이게 저 경전 목판에 들어 있는데, 어찌 이걸 내가 볼 수 있었는지 그것도 아주 신기해요. 또 봐도 이걸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모를 수 있는 사람도 많지롱. 아주 신기한 게 많아요. 아주 신기한 게 많아. 그래가지고 타성불시(他成佛時)에, 저 석가모니불이 성불할 때에, 즉득 삼세 제불이 평등과(即得三世佛平等果)라, 곧 삼세제불이 평등한 결과를 얻는다. 똑같아 과거불이나 현재불이나 미래불이. 그러니까 내가 미래불이 됐을 때 지금 석가모니불이나 아미타불이나 똑같다 이거에요. ④又吾當果佛 即是他今成佛 所以者何 吾得當果佛時 卽得三世佛 平等法故(......) 우오당과불 즉시타금성불 소이자하 오득당과불시 즉득삼세불 평등법고 (錐穴問答,法界圖記叢髓錄卷4,175公司) (추혈문답, 법계도기총수록권4,175공사) 또 있어요. 오당과불(吾當果佛)은, 내가 마땅히 미래에 이룰 불은 즉시 타금성불(即是他今成佛)이니, 저들, 저 지금 부처를 이룬 부처님들이니, 소이자하(所以者何)고, 이유는 무엇인가. 오득당과불시(吾得當果佛時)에, 내가 당래 불과를 이룰 때에, 즉득삼세불 평등법고(卽得三世佛 平等法故)라, 바로 삼세불이 평등한 법을 얻는 까닭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 부처님들은 나의 미래불이다. 그러니까 지금 부처님께 예경을 올리고 찬탄을 올리고 찬불가 또 불공을 올리는 것은 바로 나의 미래불을 이루는 거다. 그 미래불을 이루면 지금 내가 절한 부처님하고 내가 이룬 부처님하고 삼세불이 평등하기 때문에 지금 현재 계신 분이 나의 미래불하고 똑같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절 한 번 하면 바로 부처님이 되는 거예요. 부처님 될 때 과거불, 현재불이 똑같다. 삼세제불이 일체동이라, 이런 진심으로 이제 부처님을 예불할 때 바로 불신을 얻어서 온 법계에 두루한 것이다. 이거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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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독다라니] 1월 7일 새해 용맹정진 천독다라니기도 회향 법문
도혜스님 2024-01-07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해에 복 많이 지으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오. 복을 많이 지어야 받겠죠, 그죠. 그리고 천수다라니 기도하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모두 소원 성취하십시오. 이제 여러분이 천수다라니 기도를 하셨는데, 이 천수다라니 기도는 <관세보살님의 심장이다> 이렇게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래서 이 관세음보살님께서는 현실에,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의 이 세계에서 괴로움을 받는 모든 인간들의 음성을 마음으로 듣고, 고통을 구제해 주시는 전지전능자이시고, 또 우리 인간이 간절하게 기원을 하고 요구하는 그 요구에 따라서 몸을 나타내주시는 대비, 구세대비자(救世大悲者)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천수다라니를 보편적으로 이야기할 때 <대비주(大悲呪)>다 이렇게 많이 흔히들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러면 이 대비주라고 하는 것은 자비에서 <비>자를 더 좀 강조한 그러한 말입니다. 비는 정말 안타깝게 여긴다, 불쌍하게 여긴다, 이러한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생들이 공포와 고통에 너무 걱정, 근심이 많은데,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가 없고, 또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그러한 문제에 봉착을 했을 때, 만약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고 관세음보살님을 부른다면, 관세음보살님 자신께서 “내가 언제 어느 곳에 서든지 간에, 천 개의 귀를 갖고 듣고, 천 개의 눈을 갖고 보아서, 그 고통받는 중생을 내가 다 구제하겠다. 만약에 그렇게 관세음보살님을 칭명을 했다, 그러니까 관세음보살님을 불렀는데 구제를 받지 못하는 중생이 있다면, 나는 영원히 성불을 하지 않겠다.” 이렇게 서원을 세우신 분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서원이 있기때문에 불교를 믿든 안 믿든 관계없이 누구라도 고난에 처했을 때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면 그 고난을 면하고 또 복을 받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인연 따라서 관세음보살님을 직접 친견할 수 있는, 그러한 경우가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이러한 가피를 입고 직접 체험하는 일이 수없이 많습니다만, 한 가지 예를 들어드리면은, 90 내지 한 100년 전에 우리나라에 아주 큰 홍수가 나서, 서울 남대문까지 잠기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저 강남 봉은사에 나청호(羅晴湖)라는 분이 주지 스님으로 계셨어요. 근데 새벽 예불을 하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면서 막 몸부림을 치는 그런 소리가 귀에 들렸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예불을 하다가 뛰쳐나갔어요. 나가서 지금 영동고등학교 있는 그 앞까지 가보니까, 막 큰물이 져서 소도 떠내려오고, 사람도 떠내려오고, 집도 떠내려오고, 막 엄청난 그런 것들이 떠내려오는 거예요. 근데 그중에서 어떤 여자가 지붕 꼭대기에 막 뭘 붙잡고 서서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더랍니다. 그래서 그 곁에 뱃사공들이 있어서 이 스님이 “저 사람을 좀 건져내라” 그러니까 뱃사공들이 돈을 주면 모를까 안 건진다는 거예요. “건지러 갔다가 나도 죽으면 어찌합니까?” 이러고 안 건져요. 그래서 “그럼 얼마를 주면 되느냐. 쌀 한 가마씩 주겠다. 한 사람씩 건질 때마다 쌀 한 가마씩 주겠다” 그랬더니, 이제 그 뱃사공들이 가서 처음 건진 여자가 양수리에 있는 여잔데 거기에 수종사 신도였더랍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건져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자다가 눈을 떠보니까 자기가 물속에 잠겨 있더랍니다. 그래서 너무 당황해서 처음에는 부처님 생각도 안 나고, 하느님 예수님 찾다가 찾다가 생각하니까 관세음보살님이 생각이 나서, 그렇게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다가 그 지붕을 만나서 지붕 위에 올라갔대요. 그랬더니 뱀도 지도 살겠다고 막 지붕에 쫓아 올라오는 바람에 너무 무서워가지고, 막 정신을 놓고 그냥 관세음보살님 부른 거예요. 이제 우리 관세음보살님께서 천 개의 귀를 갖고 듣고, 천 개의 눈을 갖고 보신다 했습니다. 그런데 천 개, 이 천이라는 숫자는 많은 것을 표현하는 것이지, 딱 천 개만이 아니에요. 관세음보살님이 화현하시는 이 듣는 소리는 만 개의 귀, 만 개만 되는 게 아니라 수천만 개의 귀로 듣고, 또 수천만 개의 눈으로 보시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석가모니 부처님을 천백억 화신 석가모니불 그러거든요. 그러면 천백억으로 화신을 나툴 수 있다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관세음보살님도 천백억 화신의 몸을 나투어서 일체중생을 구제해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이렇게 관세음보살님이 또는 관세음보살님께서 천 개, 만 개의 귀로 듣고 눈으로 봐서 중생을 구제하신다는 이 말씀이 실제로 증험이 되고 있는 사례입니다. 그러니까 이 나청호라는 스님 귀에, 그 여자가 관세음보살님 부르면서 막 소리 지르는 거, 그것을 거기 거리가 얼마나 떨어졌는데 그게 거기까지 들리겠습니까?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으로 이 스님 귀에 들리게끔 만든 거죠. 이렇게 해서 이제 그 여자가 건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이제 수많은 관세음보살님을 믿고 신앙하는 이러한 관음신앙이 전 세계에 지금 다 널리 전파가 되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 관음신앙이 굉장히 지금 성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관세음보살님은 언제 어떻게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셨느냐 이 말이죠. 관세음보살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이 세상에 태어나서 공부를 해서 보살이 되신 그런 분이 아닙니다. 화신 부처님이세요. 화신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소개로 우리가 알게 된 겁니다. 그러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관세음보살님을 소개하게 됐느냐 하면은, 부처님 당시 때에 월개장자라는 분이 있었어요. 이 장자라고 하면은 요즘 말로 하면 재벌쯤 되는, 준재벌쯤 되는 그러한 사람을 옛날에 장자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돈도 좀 있고, 세간에서 좀 인지해 주는 그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이 얼마나 인색한지, 돈은 많아서 부잔데 얼마나 인색한지 거지가 문 앞에 오면 다 쫓아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자기 집을 넘보지 못하도록 담을 3배로 높이 쌓아가지고 놓고, 그러고 살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제 인도의 풍습이 그때 당시는, 수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관대한 그런 문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 부처님의 제자들만 걸식을 하고, 수행을 하는 게 아니라, 그때 바라문 종족이라든가 수행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래서 그분들을 우대하는 그러한 문화가 있어서, 누구든지 밥을 하거나 음식을 하면 자기들 먹기 전에 조금씩 떠 놓았다가 수행자가 오면 드리는 그런 문화가 있었는데, 이 집은 절대로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의 제자인 스님들이 가도 절대로 문도 안 열어주고, 때로는 두들겨 맞고 오기도 했다 이 말이죠. 그러한 소리를 들으시고 부처님께서 “그러면 내가 한번 가보겠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러한 인색한 사람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그러신 거죠. 그래서 이제 부처님이 이 월개장자 집에 오신다 소리가 소문이 나니까, 그 월개장자에게 딸이 하나 있었어요. 여시녀라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딸이 생각하기를 이제 부처님에 대한 소리를 많이 들은 거예요. 평소에 부처님이 거룩하시고 뭐 어쩌고 저쩌고 들으니까, ‘내가 이번에 부처님을 한번 만나봐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제 문을 열고 나가니까, 부처님이 오시는데, 광명을 놓으시고 옷도 가지런하게 잘 입으시고 오시는데, 햇빛처럼 찬란한 거예요. 얼마나 그냥 환하고 좋은지 말로 다 할 수 없어. 그래서 너무 좋고 감격이 돼서 어떻게 했느냐 하면은, 쫓아 들어가서 자기 아버지한테 “아버지, 아버지, 저기에 황금 사람이 오시는데 그 황금 사람에게 공양을 좀 올려야 되겠다. 내가 공양을 올려도 되지만은 아버지께서 복을 짓는 게 좋지 않겠느냐” 이렇게 제의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장자가 딸이 그렇게 하니까 “그래, 그러면 어떤 그릇에다가 무엇을 담아드릴까?”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 딸이 “우리 집에서 제일 좋은 그릇에 담아서 드리면 좋지 않겠느냐.” 이제 그때 당시에 유리그릇이 굉장히 귀했다 그래요. 그래서 그 “유리그릇에 공양을 담아서 드립시다.” 이렇게 해서 이제 유리그릇에 음식을 담아서 이 장자가 들고 나갔습니다. 나갔는데 부처님이 이제 오셔가지고 그 유리그릇에 부처님 얼굴이 비치니까, 그 유리그릇이 황금으로 변해버렸어요. 그러니까 이 장자가 그릇을 드리려다가, 이 장자가 원체 인색하고 탐심이 많잖아요, 그릇을 드리면 황금덩어리로 그냥 드리는 게 되니, 너무 겁이 나서 그냥 그릇째로 들고 도망을 해서 자기 집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그러니까 이제 부처님께 공양을 못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날부터 이 딸 여시녀가 전염병이 들었어요. 문둥병처럼 온몸에 막 뭐가 나가지고 부르터서 고름이 나오고 막 피가 흐르고 이러는 거예요. 그리고 온몸에 열이 나고 야단이 났어. 그러니까 이 딸이 자기 아빠한테 그럽니다. “이것은 아마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려다가 올리지 못한 과오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한번 다시 모셔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 아버지가 하는 말이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그렇게 신통력이 있다면 왜 그렇게 거지처럼 빌어먹고 다니느냐.”고 그랬어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온 베살리성 전 국민이 이 여시녀와 똑같은 전염병이 들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온 나라가 그냥 완전히 야단이 났죠. 그래서 어쩔 수가 없으니까 이제 국왕이 나섰습니다. 어떤 개인이 나서서 될 일이 아니라. 그래서 국왕이 나서서 마갈타국 빔비사라왕에게 부탁을 했어요. “부처님이 다시 한 번 우리 베살리성에 오시도록 줄을 좀 놔달라.” 이래가지고, 이제 부처님이 오시게 됐는데, 부처님이 오셔가지고는 마갈타국에 한 발을 놓고, 베살리성에 한 발을 들여놓고 그러고 서 계시는 거야. 이리로 오시지도 않고 저리로 가시지도 않고 그러고 서 계세요. 그러니까 온 천지에 구름이 쫙 끼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뭔가 좀 이상하죠. 쎄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월개장자가 나와서 부처님께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하고 빌었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그렇게 빌 필요 없다. 네가 지은 복은 네가 받을 것이고, 네가 지은 죄는 네가 받는 것이지, 나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어. 그러니까 나한테 굳이 그렇게 빌 필요가 없다.” 그렇게 이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이제 주위에서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너희들이 믿는 신은, 그 당시에 너희들이 믿는 신은, 그때는 다 신을 중심으로 믿었기 때문에, 신을 존중해서 믿는다. 근데 나는, 부처인 나는 임금의 아들이고,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인간이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너희들이 인간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인간이기 때문에 믿질 않아.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늘에서 동동동동 떠서 내려오는 신이 있어야 믿음이 생긴다 이 말이지.” 그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하니까?” 부처님께서 그럼 “서쪽을 봐라.” 그랬어요. 서쪽을 바라보니까 아미타부처님께서 관음 세지 두 보살을 거느리시고 나타나셨는데, 그야말로 온 천지의 광명을 놓으시고 나타나셨어요. 그렇게 거룩하실 수가 없어. 모든 사람이 아주 그냥 다 깜짝 놀랄 정도로 그러한 아주 거룩한 모습으로 이제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아미타 부처님의 좌보처가 관세음보살님이고, 우보처가 대세지보살이세요. 근데 관세음보살님이 병을 하나 갖고 계신데, 그 병에 버들가지가 하나 꽂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님께서 그 버들가지로 그 병에 있는 물을 가지고 쫙쫙 뿌리니까 온 베살리성에 다 비처럼 물이 내렸습니다. 그래서 그 물을 맞는 사람은 전부 다 전염병이 싹 다 나았어요. 그래서 그때 이 여시녀가, 이 월개장자의 딸 여시녀가 그 관세음보살님의 거룩한 모습을 본을 따서 성상을 만들었다 그럽니다. 만들어서 모시고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서 나중에 백제의 성왕이 그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을, 성상을 그대로 본을 떠서 다시 조성을 했어요. 해서 모시고 있다가 일본에 불교를 전해줄 때 그 관세음보살님의 성상을 경전과 함께 보내주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관세음보살님이 지금 나가노에 선광사(善光寺)라는 사찰에 지금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이러한 연기를 통해서 관세음보살님이 이 세상에 나타나시게 되셨고, 관세음보살님이 갖고 계시는 그 병의 물이 모든 사람의 병을 낫게 해주고 소원을 성취시켜준다라는 말이 퍼지면서, 모든 사람들이 이제 관세음보살님을 칭명하고 기도하고 하는 이런 것이 이제 전파가 됐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이 기도하신 신묘장구 이 대다라니는 업을 파하고 업을 소멸시켜준다고 해서, 파업장다라니(破業障陀羅尼)라고도 하고, 또 지옥, 아귀, 축생의 모든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게 해준다라고 해서 멸악취(滅惡趣陀羅尼), 파악취다라니라고도 이름을 하고, 또는 아주 극히 어려운 환경에 고통에 처해 있는 사람을 구제하는 데 아무 장애가 없다고 해서 무애다라니(無碍陀羅尼)라고도 하고, 수명이 짧은 사람이 이 다라니를 하면 수명이 길어진다고 해서 수다라니(壽陀羅尼), 또는 이 다라니를 열심히 하면 빨리 성불을 한다고 해서 속초상지다라니(速超上地陀羅尼)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가지 이름을, 때에 따라서, 그 뜻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이름을 갖고 불려지기는 하지만은, 이 다라니는 모든 다라니의 근본 다라니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러분들이 불공을 할 때도 천수경을 하고, 천도를 할 때도 천수경을 하죠. 그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기도를 할 때도 천수경을 하고 기도를 해요.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기도나 이런 불공이나 할 때 꼭 반드시 해야만 하는 근본 염불이 다라니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또 관세음보살님께서 수업겁 동안 서원을 세우고, 일체 모든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력을 세웠기 때문에, 우리가 이제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는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이다, 관세음보살님의 가슴이다> 이렇게 모두들 칭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여러분에게 기도하는 마음 자세를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할 때에 어떤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 되느냐 할 것 같으면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발원, 또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기도하는 축원의 마음부터 먼저 일으켜야 됩니다. 근데 이제 여러분들이 기도를 할 때 다급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관세음보살님, 그저 뭐 해 주십시오, 뭐 해 주십시오.” 이렇게 하지,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을 축원하는 그러한 일은 좀 드물죠. 아니면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 축원부터 먼저 하고 하나요? 그러기가 쉽지가 않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기도를 할 때 다른 사람부터 행복해지기를 먼저 기도하는 마음, 이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그런 마음으로 기도를 했을 때, 여러분들은 그 기도가 백발백중 성취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만큼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마음 자세가 중요한 거예요. 그런 마음 자세를 가져야 되고, 또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기 능력 따라, 형편 따라, 자기 능력껏 형편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보시를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또 다른 사람이 힘들 때 그 사람을 이롭게 해주고, 그리고 그 힘든 사람과 함께 해 주는 그러한 노력을 꾸준히 하다가 보면 여러분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욕심, 분노, 어리석음, 이것을 탐진치라고 하죠, 이 세 가지의 번뇌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싹 녹아 없어지고 복과 지혜가 한없이 증장한다는 겁니다. 한없이 증장해서 가득 쌓이게 된다라고 합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기도를 할 때는 정성스럽게 간절하게 해라. 간절하게 하는 게 그럼 어떻게 해야 간절하게 하는 거냐?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배가 고픈 사람이 음식을 찾듯이,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여러분, 고양이 쥐 잡는 거 보셨어요? 못 보신 분도 많으실 것 같아요. 요즘 분들은 고양이가 쥐 잡는 거 아마 잘 못 보셨을 거야. 고양이가 쥐 잡을 때 쥐구멍을 딱 바라보고 만 24시간도 꼼짝 안 하고 쳐다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그렇게 못하실 것 같아요. 그죠? 그렇게 간절하게 할 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기도는 반드시 성취를 한다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은 자기가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는데 그 기도가 어떻게 성취가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반드시 성취한다. 왜냐하면 ‘관세음보살님이 그런 서원을 세웠고 내가 이렇게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 안 될 이치가 있겠느냐’ 이렇게 믿고 열심히 하셔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또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행을 해야 돼요. 물론 이제 그 기도하는 자체가 선입니다. 선이라서 그 기도하는 사람의 동작 하나하나가 다 선이기는 하지만은, 가끔 이제 일부의 분들을 보면 기도하는 그 자체만 중요시를 하고, 선행을 하는 것을 소홀히 하는 그런 분들이 더러더러 있거든요. 관세음보살님의 기도를 하는 사람은, 관음기도를 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는 거예요. 왜 안 되느냐. 관세음보살님의 주체가 바로 대비입니다. 대비. 대자 대비예요. 대비이기 때문에 이러한 대비의, 관세음보살님의 대비의 마음을 여러분들이 배워야만 하고, 그 대자비의 기운 속에서 여러분들이 기도를 성취하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기도하기 전보다 더 선행을 닦아야만 된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선행을 닦는 데 있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해야 되느냐. 스스로 잘못을 참회를 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 또는 다른 사람을 항상 기쁘고 즐겁게 해주는 일, 또 한 가지는 다른 사람이 불만을 가졌을 때 그 불만을 없애주고 편안하게 해주고, 또 지극한 정성으로 다른 사람을 돕고 보시를 하고, 이러한 모든 일들은 관세음보살님이 여러분에게 깨우쳐주는 또 다른 기도 방법입니다. 그래서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선행을 하게 되면 그 선행은 바로 기도 성취를 돕는 촉매제가 됩니다. 그래서 이제 이러한 예를 증명을 하는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은,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옛날에 왕덕성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왕덕성이라는 사람이 나이가 어렸을 때, 꿈에 어떤 노스님이 오셔가지고 뭐라고 했냐면은 “네가 18살까지만 살고, 수명이 짧아서 18살까지만 살 수가 있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이제 꿈을 깨고 나서 자기 아버지한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니까 그 아버지가 ‘아이들의 개꿈이다’ 그러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 버렸어요. 근데 이 아이가 정말 18살이 됐을 때 아버지 꿈에 또 그 노스님이 나타나셨어요. 나타나서 “너의 아들에게 염라대왕의 사자가 지금 오고 있다. 만약에 큰 선행을 하지 않으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급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 아버지가 깜짝 놀래가지고 꿈을 깨자마자 관세음보살님께 가서 서원을 세웁니다. 열심히 기도를 하면서 “제가 열심히 기도도 하고, 선행을 해서 많은 어려운 사람을 돕겠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아들 수명을 늘려주십시오.” 이렇게 서원을 합니다. 서원을 하고 그때부터 이 아버지가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도 할 뿐만 아니라, 불경을 찍어서 법보시를 하고, 가난한 사람이 죽어서 초상이 나면 관을 보내주고, 가난한 사람이 아이를 낳으면 미역을 보내주고, 또 어려움에 처해 있어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도와서 그 사람을 구제해 주고, 이렇게 열심히 선행을 했습니다. 해서 한 1년 정도 지나니까, 그 노스님이 꿈에 다시 나타나셔서 “네가 열심히 그렇게 선행을 한 공덕으로 너의 아들의 수명이 길어져서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까지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실제로 그 왕덕성이라는 사람이 90 몇 살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우리가 기도를 하는 그 마음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작업이 기도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천수다라니 기도를 하든, 또 관세음보살님 명호를 부르고 기도를 하든 간에, 그것만 가지면 된다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라는 거죠. 자기 마음부터 바꿔야 돼요. 자기 마음이 바뀌어야만 자기에게 다가오는 환경이 따라서 바뀝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분들은 반드시 자기 마음을 변화를 시켜야 된다. 그럼 어떻게 변화를 시킬 것인가. 참회하고 감사하고 사섭법(四攝法)을 실천해서 사람을 돕고 또 선행을 하고, 그리고 나서 진정한 마음으로 자신이 자기를 확신할 수 있도록 자기가 마음을 바꿔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기도를 했을 때 그 사람은 아주 빠른 가피를 입을 수가 있습니다. 근데 이제 여러분에게 이 기회에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관세음보살님 뭐 되게 해 주십시오. 뭐 되게 해주십시오. 뭐 되게 해 주십시오.” 관세음보살님 한 번 불러놓고 되게 해 주십시오는 10번 하고, 이런 기도는 이게 기도 성취가 어렵습니다. 그거는 자기 욕망에 매달려 있는 거지, 진정한 기도가 아니에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관세음보살을 열심히 불러서 관세음보살님과 여러분이 하나가 돼야 돼요. 그리고 결과는, 기도 성취에 대한 결과는 관세음보살님께 맡겨야지, 되게 해주든 안 되게 해주는 것은 관세음보살님께 맡기고, 내가 해야 할 일은 뭡니까? 관세음보살님과 하나가 되는 작업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10년 전에 수원 어느 포교당에 원주 스님이 계셨는데, 몸이 많이 안 좋으셨대요. 그래서 병원에 가봤더니 폐결핵 3기, 그런데 수술을 받아야 되는데 수술비가 천만 원이 든다 그랬답니다. 그래서 이 스님이 ‘무슨 수로 천만 원을 만들며, 폐결핵 3기라고 하는데 나을 확률도 없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어떤 생각을 했냐면은 내가 그냥 기도하다가, 100일 기도를 하다가 죽게 되면 몸을 벗고, 만약에 가피를 주신다면 다행이고, 뭐 이렇게 해서 자기가 살겠다는 것을 다 놓아버리고, 밀양 표충사에서 백일기도를 붙여서 부지런히 기도를 하다가 새벽에 각혈을 하고 쓰러졌어요. 새벽에 아마 기도를 하다가 혼자 법당에서 쓰러지니까 아무도 쓰러진 줄도 몰랐어요. 그래서 각혈하고 쓰러졌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의사 두 분하고 간호사 3명이 들어와서 이 스님 폐를 꺼내서 구멍 난 것은 메우고 다 기워 수리를 다 하시더라는 거예요. 다 해가지고 붙여주고 나가셨어요. 아마 그렇게 쓰러져 있었던 시간이 한 2시간 넘었던 것 같더랍니다. 그런데 자기가 법당에서 쓰러졌는데, 정신을 차리고 나니까 몸이 멀쩡해졌어요. 병원에 가보니까 싹 다 나은 거예요. 그래서 이 스님이 너무 감사해서, 100일 기도를 해서 병이 나았는데 너무 감사해서 감사 기도를 천일기도를 하는데, 100일은 이 기도처에서 하고, 100일은 저 기도처에서 하고, 전국 기도처를 돌면서 기도를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분을 어디서 이제 다른 스님이 만났냐면, 저기 낙산사 홍련암에 가서 그 스님을 만났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결과는 관세음보살님께 맡기는 겁니다. 번뇌 망상, 그러니까 여러분이 뭐 되게 해주십시오, 뭐 되게 해주십시오는 번뇌 망상이에요. 그리고 욕심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내려놓고, 결과는 관세음보살님께서 알아서 하십시오. 여러분은 관세음보살님과 하나 되는 기도를 해야 된다. 그러면 이 관세음보살님은 이근원통(耳根圓通)의 분입니다. 그럼 이근원통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기도를 할 때 자기가 자기 소리를 듣고 기도를 해요. 그럼 소리를, 음성을 큰 소리로 내는 것도 좋지만은, 내지 않아도 자기가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그 자체를 놓치지 않고 인지하는 겁니다. 그러면 망상이 들어올 수가 없어요. 그러한 방법을 터득하신 분이, 통달하신 분이 관세음보살님이시거든요.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은 능엄경에 25 원통 가운데 이근원통을 성취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기도할 때 딴생각하시지 마시고, 자기가 관세음보살하는 그 소리를, 만약 소리를 내서 관세음보살을 할 때는 자기가 자기 소리를 듣고 하고, 또 소리를 못 낼 때는 자기가 관세음보살을 하는 자기 자신을 놓치지 말고 붙들고 있어야 돼요. 그러면 관세음보살과 자기가 하나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근데 붙들고 있다가, 또 금방 ‘우리 집에 가스 잠그고 왔나, 우리 손자 넘어졌나’ 이러죠, 그죠? 그러시지 마시고. 그렇게 해서 관세음보살님과 여러분이 하나가 돼서 삼매가 오면은, 몇 초만이라도 삼매를 정하면, 그 기도는 완전 성취입니다. 그건 뭐 쳐다볼 것도 없어요. 완전 가피를 입는 당상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관세음보살은 무량한 자비를 갖고 계시는 그런 분이다, 그 말이죠. 그래서 끝으로 관음 예문의 구절을 여러분에게 쭉 한번 읽어드리려고 합니다. 가없는 중생의 아픔, 끝없는 중생의 소원. 얼마나 애달팠으면 천의 손이 되셨을까. 얼마나 사랑하였기에 천의 눈을 하셨을까. 재앙의 세월이 온다 하여도 내게는 두려움 이미 없도다. 님의 눈 어느 때고 나를 보시니 내게는 두려움도 이미 없도다.멸망의 세상이 된다 하여도 내게는 근심 걱정 이미 없도다. 님의 귀 어딜 가나 나를 들으시니 내게는 근심 걱정 이미 없도다. 내 음성 다 들어주시고 내 모습 낱낱이 살펴주시는관세음보살님 자비하신 어머니여. 원하옵나니 자비시여. 이 도량에 밝아 오시어 저희들의 작은 공양을 받아주소서. 이것이 관음 예문의 한 구절입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님들이 오늘 기도하신 이 회향 공덕으로 모두 소원 성취하시고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지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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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재] 1월 1일 49재 법문
종범스님 2024-01-01
금일 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生也猶似 水中印月 死也還是 無跡晦月 생야유사 수중인월이요 사야환시 무적회월이라隨緣隱現 依舊如然 一輪空月 孤朗碧天수연은현은 의구여연이나 일륜공월은 고랑벽천이로다나무아미타불 오늘 이렇게 영가를 극락세계 보내기 위해서 재를 모시고 공덕을 닦고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 극락 가는 길이 너무도 쉽고 가깝고 간단하니까, 오늘 재를 잘 모셔서 극락세계 바로 가시도록 잘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법은 생사는 없고, 마음은 항상 하고, 머무는 데는 극락이다. 이걸 깨달으셨어요. 생사는 없다. 본무생사(本無生死), 마음은 항상 하고 일심은 상주하고, 본무생사 일심상주(常住). 항상 상, 머물 주. 생사는 본래 없고 마음은 항상 머물러 있고, 항상 머무는 한마음이 있는 곳은 극락세계다. 그걸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극락세계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얻은 곳이에요. 극락세계는 건축하듯이 만든 데가 아니고, 깨달음으로 얻어진 것이다. 예를 들면 꿈에서 굉장히 고생을 하다가 꿈을 탁 깨니까 그 꿈에서 본 건 없고 본래부터 있는 평시현상을 얻었다. 그러면 그 평시 현상을 사람이 손으로 만들었냐? 아니고 꿈을 깸으로 말미암아 평시 현상을 얻었다 이거죠. 그럼 평시 현상을 어떻게 이뤘느냐. 꿈을 꿨기 때문에 이룬 거죠. 그럼 생사가 왜 있냐. 한마음이 미혹해서 생사가 있고, 한마음이 깨달음을 얻으면 한마음은 항상 하고 극락세계는 여전하다. 그걸 깨달은 게 부처님이거든요. 생사는 본래 없고 한마음은 항상 하고 극락세계는 그대로 있다. 그래서 첫마디가 생야유사 수중인월이요(生也猶似 水中印月),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물속에 달이 비치는 거와 같다. 달이 물속에 비춰서 물가에 가서 보면 달 모양이 보이는데, 달이 물속에 떨어진 것도 아니고 물이 달 있는 대로 올라간 것도 아니고, 그냥 보이는 거예요. 이걸 인연법이라 그래요. 물도 가만히 있고, 달도 가만히 있는데, 그 물가에 가면 물속의 달이 보인다. 그게 인연법이다. 이 죽고 사는 건 다 인연법으로, 현상은 보이는데 실상은 없다. 사야환시 무적회월(死也還是 無跡晦月)이라,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또한 무적회월, 자취없는 그믐달과 같다. 그믐날 되면 달 모양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 모양만 안 보일 뿐이지 달은 그대로 있다. 수연은현(隨緣隱現)은, 인연 따라서 달이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하는 것은 의구여연(依舊如然)이나, 옛날부터 그냥 항상 있는 일이나, 일륜공월(一輪空月)은, 하나의 둥그런 달바퀴가 허공에 그대로 있는 것이 공월인데, 물속에 비친 달을 수월이라고 하고, 물 수자, 허공에 있는 달을 공월이라 그래요. 일륜공월은, 한 일자, 바퀴 륜자, 하나의 둥그런 모양으로 보이는 허공의 달은 고랑벽천(孤朗碧天)이라, 홀로 밝다. 이걸 고랑이라 그래요. 외로울 고자, 밝을 랑자. 푸른 하늘에 홀로 밝다. 물속에 달이 보이든 그믐달이 돼서 달이 안 보이든, 초생달이든 또 지는 달이든 뜨는 달이든 여러 가지 모양이 있지만, 실제 달은 일륜공월인데, 한 바퀴 허공달인데, 푸른 하늘에 홀로 밝은 것이 한 바퀴 허공달이다. 그래서 사람이 태어나기도 하고, 늙기도 하고, 세상을 떠나기도 하는데, 이 일심상주, 상주일심, 항상 머무는 한 마음. 마음이 항상 머무는 세계는 달이 보이든 안 보이든 아무 상관없이 홀로 밝은 거와 같이 생사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거죠. 그걸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일심은 항상 머물고 생사는 본래 없다는 걸 딱 깨닫는 순간에 그것이 생사해탈이고, 그것이 극락왕생이에요.생사해탈 극락왕생. 본무생사 일심상주. 그 도리가 극락세계 가는 도리에요. 一切唯心 心外無法일체유심 심외무법心外無法 一切唯心심외무법 일체유심 그럼 이제 불교에서는 뭘 가르치느냐. 모든 것은 마음이다. 생사도 마음이고, 극락도 마음이고, 해탈도 마음이고, 그래서 일체가 유심(一切唯心)이다. 일체가 오직 마음이다. 이게 부처님이 깨달은 거예요. 일체가 유심이다. 심외무법(心外無法)이다. 마음 밖에는 없다. 무법, 없을 무, 법 법. 법이라는 건 사물인데, 마음 밖에는 사물이 없다. 모든 사물이 오직 마음이다. 심외무법이니, 마음밖에 법이 없으니 일체의 유심이라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다. 그래서 마음 하나를 딱 챙겨서 마음속에 머물고 마음속에 자재하면 그것이 극락세계죠. 일심에 자재하면 극락세계다. 사물에 출몰하면 그것이 생사윤회다. 물건 따라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 그게 생사윤회고요. 일심 한마음에 자재하면 극락세계다. 이 도리가 극락 가는 도리거든요. 그러면은 이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어서 극락세계 항상 계시는 거 하고, 중생이 늘 죽고 사는 거 하고, 이게 전부 한마음에서 이루어지는데, 죽고 사는 마음에서 죽음이 없는 세계로 가는 게 극락왕생이거든요. 근데 죽고 사는 것도 마음이고, 극락세계도 마음이니까 마음에서 마음으로 가는 거예요, 이 극락왕생이라는 게. 무슨 차 타고 가는 것도 아니고 비행기 타고 가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가는 게 극락왕생이다. 見聞覺知 受想行識 生老病死 憂悲苦惱견문각지 수상행식 생로병사 우비고뇌寂照圓明 靈明性覺 莊嚴淨土 極樂世界적조광명 영명성각 장엄정토 극락세계 一心迷惑 生老病死 一心智德 極樂世界 일심미혹 생로병사 일심지덕 극락세계一心迷惑 ①依根意識 : 觸境發識 了別境界일심미혹 ①의근의식 : 촉경발식 요별경계 ②獨頭意識 : 業識所現 無物見物 ②독두의식 : 업식소현 무물견물一心智德 ①般若智見 : 照見空相 智到彼岸일심지덕 ①반야지견 : 조견공상 지도피안 ②菩提智光 : 大寂光明 普照法界 ②반야지광 : 대적광명 조견법계菩提智光 : 寂照心 圓明心 普照心 靈明心반야지광 : 적조심 원명심 보광심 영명심 具足一切智 遍知一切法구족일체지 변지일체법一切國土中 一切無不現일체국토중 일체무불현(화엄경, 여래현상품) 그러면 이 마음이라는 게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마음이 있어요. 견, 보는 마음, 문, 듣는 마음, 각, 느끼는 마음, 미각, 혀로 느끼고 몸으로 느끼고, 후각, 코로 느끼고, 안이비설신 이러거든요. 또 생각으로 느껴요. 이거를. 지각이라 그래요. 이것이 수상행식(受想行識)을 해요. 견문각지로 수상행식을 한다. 받을 수, 감수를 해요. 또 이걸 상상을 해요. 그게 상이에요. 행동을 해요. 인식을 해요. 이걸 중생심이라 그래요. 견문각지 수상행식이 일심을 미혹한 중생의 마음이다, 이렇게 가르쳐요. 그래서 마음은 중생심이 있다. 그 중생심 중에 이제 범부중생이죠. 범부심. 범부의 마음은 견문각지 수상행식,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감수하는 마음, 상상하는 마음, 행동하는 마음, 인식하는 마음, 이놈을 가지고 살아요. 그래서 뭘 느끼냐.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느껴요. 생로병사. 또 생로병사에는 우비고뇌(憂悲苦惱)가 있어요. 근심 우, 근심이 자꾸 생겨. 슬플 비, 슬픔이 생겨. 비애가 생겨. 고뇌, 괴로움이 생겨, 걱정이 생겨. 이게 범부의 마음인데 이걸 범부심이라고 하거든요. 이거를 어려운 말로 의식이라 그래요. 의식. 그 마음에는 이렇게 의식심이 있다. 그러면 이 의식심은 이 몸으로 느끼는 의식이 있어요. 이걸 의근의식(依根意識)이라고 그러는데, 의지할 의자, 뿌리 근자. 이 몸을 뿌리에다가 비교해서 눈으로 느끼는 안식. 근데 이게 보통 사람은 눈이 본다 그러면은 눈동자가 보는 줄 아는데 그게 아니에요. 눈동자는 뿌리일 뿐이고, 이건 뿌리와 같아. 이 여기에 이제 식이 나오는데, 안근이, 이 눈 뿌리가 촉경을 하면, 경계에 접촉을 하면 거기서 의식이 발동을 한다. 이걸 촉경발식(觸境發識)이라고 그러죠. 촉경발식. 이게 손은 이게 신근 뿌리인데, 이걸 경계라고 그래요. 경계 경자, 경계. 이 대면 이 몸이 이게 바로 느끼는 게 아니라 의식이 몸에 식이 발동을 해서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 운명을 했을 때 눈동자는 그냥 있는데 보지 못하면 그건 식이 발동을 안 해서 그래요. 발식을 안 해서 그렇다. 그래서 귀도 마찬가지에요. 이근인데 듣는 뿌린데 이근이 촉경을 하면 소리와 접촉을 하면 발식을 해요. 촉경발식 코도 마찬가지고요. 코는 비근인데 비근이 냄새 같은 데 접촉을 하면 거기서 식이 발동을 해서 느끼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의식은 무슨 특징이 있느냐 하면 전부 경계만 쫓아가는 특징이 있어요. 경계만. 눈에 보이는 거 쫓아가고 귀에 들리는 거 쫓아가고 몸에 접촉되는 거 쫓아가고. 전부 경계만 쫓아가요. 이래서 이걸 이제 의근의식이라, 근에 의해서 이제 식을 발동시키는 의식이 있는데, 또 의식 중에는 독두 의식(獨頭意識)이라고 그래가지고, 홀로 독, 머리 두, 머리 두자는 어조사고 홀로 일어나는 의식이 있어요. 의근의식이라는 건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게 이제 근에 의지해서 느끼는 의식이고 안 보면 안 보여요. 근데 독도의식이라는 거는 이 안이비설신의 눈과 귀가 다 잠들어 있는데 홀로 꿈을 꿔요. 이거는 눈, 귀, 코, 입 상관없이 홀로 일어나는 의식이다. 이래가지고 독도 의식이라 그래요. 그러면 선정에 깊이 들면 눈으로 보고 귀로 안 들어도 많은 세계가 보이는데, 그런 것도 몸 상관없이 보는 거기 때문에 독도 의식이다. 근데 뭐든지 이 의식은 쫓아가는 의미가 있어요. 쫓아가. 보는 대로 쫓아가고 듣는 대로 쫓아가고 이게 범부의 마음이에요. 그러면 이 촉경발식을 하면, 이 경계에 접촉해서 식이 일어나면, 요별경계(了別境界)라 이 경계를 자세히 살피고 판단하고 취사하고 취하고 버리고 이 짓을 해요. 그게 범부의 범부심이에요. 그리고 독도 의식이라는 건 저 혼자 꿈꾸고 저 혼자 돌아다니는데, 그 녀석은 뭘 하는 녀석이냐 하면, 절대 혼자 다니는 게 아니라 평소에 몸에 익혔던 경험으로 그 의식이 일어나는 거예요. 평소 경험이 없으면 꿈을 못 꿔요. 이걸 평소 경험에 의해서 의식이 일어나는 거를 불교 용어로는 업식(業識)이라고 그래요. 업은 경험이고 의식이 일어나는 건 의식이란 말이지. 업식. 그래서 이 꿈꾸는 내용을 가만히 보면 다 들었던 거, 또 비슷한 거, 보았던 거, 비슷한 거 이런 게 꿈에 보여요. 그래서 그건 업식소현(業識所現)이라, 경험의 인식으로 나타나는 바다. 그래가지고 순전히 자기 경험, 자기 인식으로 무물견물(無物見物)이라, 물건이 없는데 물건을 봐요. 그게 꿈이에요. 꿈에서 본 물건은, 사물은 다 없는 거예요. 근데 자기 경험 자기 인식으로 보는 거예요. 무물견물이라. 어떤 사람이 꿈에 나를 꿈을 꿔서 내가 꿈에 스님하고 같이 있었다 그러는데, 나는 같이 안 있었거든요. 그 사람이 저 홀로 꾼 거예요. 그게 무물견물이야. 내 없는 데서 나를 봤거든. 이런 거를 꿈이라는 건 자기 경험의 인식으로 물건 없는 데서 물건을 보는 거다. 이렇게 인도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중국의 장자라는 사람이 꿈에 나비가 됐는데 이걸 몰랐어요. 꿈에 본 나비와 내가 생시에 사는 나는 어떤 관계가 있나 몰랐던 거예요. 근데 이게 불교에서는 꿈에 나비가 됐다고 하는 것은 업식소현으로 평소 경험이 나타난 바로, 무물견물이라, 나비 없는 데서 나비 본 거거든요. 이 문화라는 게 이래요. 천하의 지식인이고 천하의 머리가 좋은 사람인데 꿈에 나비가 본 거를 해석을 못했어. 이상하다. 근데 불교에서는 업식소연이다. 업으로 나타난 바다, 무물견물이다. 물건 없는 데서 물건 보는 게 꿈이다. 이게 중생심이에요. 그다음에 이렇게 살아서 안 되겠다. 이거 깨달음을 얻어야 되겠다. 이게 보살인데, 보살은 지혜심을 가져요. 이런 의식심에서 벗어나서 그 지혜를 인도말로 반야라 그래요. 반야는 경계를 쫓아가는 게 아니고 경계를 바라보는 거예요. 산이 보이면 산을 딱 본다. 이거 조견(照見)이라고 그러는데, 바라볼 조자, 조명할 조자가 있거든요. 볼 견. 사람이 보이면 사람을 딱 본다. 하늘이 보이면 하늘을 딱 본다. 이렇게 보는 대로 쫓아가지 않고 바라보면 공상이라는 걸 봐요. 이게 조견공상(照見空相)이에요. 공상이라는 건 뭐냐. 형상이 나도 난 것이 아니고 형상이 사라져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 불생불멸을 공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반야로 보면 일체 사물이 불생불멸상이다 보는 거예요. 그러면 이 생로병사는 여기 이 세상인데, 불생불멸 세상은 저기 저 세상이에요. 그래서 지도피안(智到彼岸)이라, 그 불생불멸을 보는 지혜로 피안에 도달한다. 이게 보살 마음이에요. 보살 마음은 반야고 범부 마음은 의식이고. 그래서 의식의 마음에서 이제 반야의 마음으로 또 이제 보리의 마음으로 가는 게 극락세계예요. 수속 밟을 것도 없어요. 자리 옮길 것도 없고. 조견공상이라. 딱 생각을 움직이지 말고 바라보면 있는 게 그대로 없는 거와 똑같아요. 그걸 비유로 말하면 얼음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얼음은 없고 물이다. 그래서 얼음 속에서 물을 보는 거예요. 죽고 사는 데서 죽고 사는 게 없는 걸 보는 게 이게 반야다 말이죠. 그걸 보살이라 그래요. 그래서 마하반야 바라밀 이게 불교예요. 반야로 피안에 간다. 죽고 사는 곳에서 죽고 사는 곳이 없는 곳으로 간다. 도피안. 이게 전부 마음으로 되는 거예요, 이게요. 그다음에 삼세제불은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부처님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인데, 큰 깨달음을 이제 이룬 분들인데, 이 생각이 완전한 지혜로 이루어지면 대적광명(大寂光明)이 되요. 자취는 하나도 없는데 항상 비춰. 이게 대적(大寂)이라 큰 대자, 고요할 적자. 이게 해도 자취가 있고 달도 자취가 있고 별도 자취가 있는데 이 보리 광명, 보리는 깨달음이거든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보리 광명은 대적광명이라. 자취가 어디도 없는데 광명이 비춰요. 마음도 찾아보면 없는데 희로애락을 느끼듯이, 자취는 하나도 없는데 늘 밝다. 대적광명. 보조법계(普照法界), 널리 법계를 비춘다. 이게 제불의 마음이에요. 모든 부처님 마음이에요. 범부의 마음은 경계를 쫓아가서 생사윤회하고, 보살의 마음은 형상에서 공상을 봐가지고 피안에 도달하고, 제불의 마음은 자취 없는 광명으로 온 법계를 다 비춘다. 이게 극락세계에요. 온 법계를 다 비추니까 극락세계. 그래서 이 깨달은 지혜 광명을 적조심(寂照心)이라고 그래요. 적조. 고요하게 비치는 마음이다. 이 적조심에 극락세계가 있어요. 극락세계가 있느냐 없느냐 이런 말을 하는데, 이거는 생각으로 골몰하면 극락세계 안 보이고, 고요한 마음으로 돌아가면 극락세계가 그대로 나타난다. 또 원명심(圓明心)이라 그래요. 둥글 원자, 밝은 명자, 둥글고 밝은 마음. 고요하게 비추는 마음. 둥글고 밝은 마음. 우리 생각이 그렇게 변하는 거예요. 또 보조심(普照心), 넓게 비추는 마음, 영명심(靈明心), 신령 영자, 밝을 명자, 신령스럽고 밝은 마음. 이 마음은 아주 신령스럽고 밝은 거예요. 사람은 60, 80이 됐는데, 2살, 3살 때 거 다 기억해요. 그러면 이 기억이 어디에 들어있느냐. 머리에 들어있느냐. 뱃속에 들어있느냐. 아무리 뱃속 갈라봐도 마음 안 보여요. 그런데 기억은 해요. 그래서 이걸 무표색이라 그래요. 표시 없는 빛깔이다. 그 마음을 무표색(無表色)이라, 마음 표시가 없어요. 근데 움직여. 그래서 그걸 무표색이다. 불교에서 그렇게 가르쳐요. 그래가지고 성불을 하게 되면 의식은 다 소멸되고 지혜가 원만해서, 보살은 피안도 보고 또 생사도 느끼는데 제불 부처님이 되면 생사 의식은 완전히 없어졌요. 그래서 그 생사 없는 광명만 널리 비춘다. 이래가지고 이걸 생사는 하나도 없고 생사 없는 광명만 완전한 걸 일체지(一切智)라고 하는데요. 일체지. 생사가 없고 생사가 없는 지혜, 또 광명이 항상 하고 광명을 비추는 지혜, 이런 지혜를 다 갖췄다고 일체지라고 그럽니다. 일체지, 생사 없는 지혜, 광명을 비추는 지혜, 이걸 구족해서 다 갖추어서 변지일체법(遍知一切法)하고, 일체법을 두루 알고 이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지혜를 얻으면 뭐를 보더라도 불생불멸이오. 일심상주라. 일심은 상주하고 만물은 나되 나는 것이 아니고 죽되 죽는 것이 아니다. 그거에요. 물속에 온갖 것이 비춘다 하더라도 물을 모를 때는 그 물속에 비추어진 그림자만 막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했는데, 물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면 물 속에 뭐가 비추어지고 보여도 물뿐이에요. 그림자는 없는 거예요. 그렇듯이 이 마음을 하나 밝히고 나면 세상 만물이 전부 마음뿐이에요. 세상 만물은 없는 거예요. 그걸 무상하다 그러고 비법이라고 법이 아니다. 무상비법인데 항상함도 없고 법도 아닌데 일심을 몰라서 무상한 거를 영원한 걸로 착각하고 쫓아가요. 법이 아닌데 법으로 알고 거기에 매달려. 그러다가 이제 죽을 때쯤 되면 허망하다는 걸 알고 내가 잘못 살았다 울어. 근데 거기서 멈추지 않아요. 또 다시 보이는 현상을 또 쫓아가. 이게 윤회거든요. 내세에는 뭐 좋은 집에 태어나고 싶다. 좋은 집에 태어나도 그것도 얼마 못 가. 내세에는 좋은 사람 만나고 싶다. 좋은 사람이 그게 몇 년 가나. 결혼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상대 편이 나의 이상형이다. 그 이상형 지금 모습이 10년도 안 가는데. 10년 후에는 어쩔 건데. 이 사람 아주 미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 깨달음을 얻어서 마음에 자재해야 되는데, 만물에 매달려서 생사에 윤회한다. 이걸 지적하는 게 이제 부처님이거든요. 깨달음을 얻어서 만물에 자재하면 되는데, 자재라는 건 뭐냐. 물속에 뭐가 비치던 물은 그대로 물이에요. 사람이 비춰도 물이고 나무가 비춰도 물이고 산이 비춰도 물이고. 근데 물을 모를 때는 물속에 나무가 있고, 사람이 있고 산이 있는 줄로 알아요. 그래서 거기 쫓아가서 그거 건지려고 하다가 건지지 못하고 옷만 다 버리고 고생만 하고 나오는 거지. 이게 중생의 고통이라는 거지. 고통. 그래서 인생사는 물속에서 달 건지는 거다. 달이 보이니까 안 건질 수도 없고, 건지는 거예요. 건져도 건져도 안 건지니까 계속 건지는 거예요. 그러다 기운 떨어져서 이제 가는 거지. 그래서 이 세상에서 뭘 얻어도 오래 안 가요. 그러고 뭘 얻어도 이 코에 숨지는 걸 막을 수가 없어요. 책을 수백 권을 저술해도 코에 숨지는 거 그거 못 막아요. 다른 명예나 재산이나 이런 거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지식이 자기를 구제하지 못한다. 근데 그 한참 그 지식을 추구할 때는 몰라요. 논문 하나라도 더 써서 유명 교수가 되려고 그냥 밤낮없이 고생하거든요. 근데 자기 죽을 때 자기 논문을 보나. 왜냐하면 자기 논문이 그거 별수 없다는 걸 자기는 알거든. 자기도 구제하지 못할 지식을 쌓다가 죽고, 자기 코에 숨지는 거 어쩔 수 없는 거 그거 하다가 죽고 그게 인생이에요. 그걸 안 하면 갑자기 어떻게 해볼 방법도 없고, 근데 마음을 환히 점점 닦아보면 세상사도 어렵지 않게 되고, 마음 닦는 일도 어렵지 않게 될 때가 있는데 그걸 보살이라 그래요. 범부로 있을 땐 잘 안 돼요. 안 돼도 고생하면 돼요. 처음부터 보살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 부처님의 이 보리 광명의 지혜는 일체 국토 중에 일체의 온갖 국토 중에 일체무불현(一切國土中 一切無不現)이라 나타나지 않는 데가 없다. 이게 화엄경 말씀인데 이게 이제 여래의 지혜광명이거든요. 여래의 지혜 광명은 이건 이제 마음은 항상 하고 생사는 본래 없다. 머무는 곳이 다 극락세계다. 그래서 이제 제사 지낼 때 염념보리심(念念菩提心)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 생각생각이 부처님 깨달은 마음이면, 곳곳이 편안하고 즐거운 극락세계다. 그렇게 제사를 지내요. 염념보리심 처처안락국. 그러니까 오늘 영가께서 이런 세계로 잘, 한 생각 돌이켜서 바로 가시라. 기차표 예약할 것도 없고, 뭐 비행기표 알아볼 것도 없고, 앉은 자리 방석에서 떠날 것도 없고, 바로 가시라, 이런 말씀이거든요. 지심제청 지심제수法性圓融 常住法界 莊嚴淨土 極樂世界 법성원융 상주법계 장엄정토 극락세계에一念往生 一念往生 無盡受樂 無盡受樂일념왕생하시고 일념왕생하시여 무진수락하고 무진수락하십시오나무아미타불 얼음을 이제 큰 덩어리 얼음, 작은 덩어리 얼음, 뭐 여러 가지 조각된 얼음을 녹이면 똑같은 물이에요. 그래서 얼음 모양은 다 다른데 물은 똑같다. 이걸 원융이라 그래. 원융 막힘없이 융통한다 이거거든요. 이게 상주법계에요. 법성원융은 상주법계라(法性圓融 常住法界). 항상 머무는 세계다. 근데 장엄정토(莊嚴淨土)예요. 여러 가지로 이제 만들어 놨는데 그게 청정심으로 보면 전부 다 깨끗하고 한마음이 청정하니까 온 사물 세계가 다 더러움이 없더라. 그래서 이게 이제 오늘날도 큰 정신 건강의 문제인데,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원망하고 자기가 무서워하는 건 전부 그게 자기 노이로제, 자기 스트레스예요. 자기 생각은 다 자기 노이로제다. 노이로제라는 건 쉽게 말하면, 가진 걸 모르는 게 노이로제다. 내가 많이 가지고 있는데 자기 가지고 있는 걸 하나도 몰라. 그리고 안 가진 것만 더 가지려고 그래요. 그게 스트레스거든요. 그게 전부 자기 문제예요. 원망하는 것도 내 문제고, 두려워하는 것도 내 문제고, 근심 걱정하는 게 전부 내 문제예요. 자기 한마음이 깨끗해지면 바로 극락세계인데, 그가 아주 자기 마음을 깨끗이 할 생각은 안 하고, 맨날 돌아가신 부모 원망하고, 또 몇 대 위에 조상도 원망하는 사람이 있어요. 친구 원망하고 세상 원망하고, 세상원망하고, 몇천 년 전에 돌아가신, 몇백 년 전에 돌아가신 조상을 내가 바꿀 수가 있나. 상대편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나. 내가 바뀌면 하늘도 바뀌고 땅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는데, 나는 안 바꾸고 밖을 원망하니까 그걸 생사윤회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건 전부 내 문제다. 나의 노이로제요, 나의 스트레스요. 자기 걱정이다. 그것이 다 사라지면 법성원융 상주법계다. 근데 이게 장엄정토다. 하나하나 이렇게 돼 있는 게 다 공덕으로 이루어진 청정국토지, 거기서 뭐 나쁘다고 뺄 거 하나도 없고, 좋다고 취할 거 하나도 없고 그대로 정토다. 그게 극락세계란 말이에요. 장엄정토 극락세계. 그러니까 오늘 영가께서는 한 생각으로 두 생각 갖지 말고 사바세계에 더 머물 생각을 하면 극락 못 가거든. 사바세계는 생사가 있는 세계고, 극락세계는 생사가 없는 세계인데, 생사가 있는 이 사바세계에 좀 머물고 싶다. 자식 생각도 나고, 사업 생각도 나고. 지금 있는 자식이 오래 가나, 100년 후에는 하나도 없을 텐데. 지금 있는 사업이 오래 가나, 얼마 지나면 다 없어져요. 근데 그게 마음에서 안 지워진단 말이에요. 그거를 번뇌라고 그래요. 알기는 아는데 떠날 수는 없어. 그러니까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깨끗이 하다 보면 나중에는 저절로 된단 말이죠. 그래서 이 장엄정토 극락세계에 두 생각 갖지 말고 한 생각으로 가시고 한 생각으로 가셔서 가는 걸 왕생이라 그런다고요. 왕생. 갈 왕자, 날 생자. 무진수락(無盡受樂)하시고. 거기 가서 끝없이 즐거움을 받으시고, 끝없이 즐거움을 받으십시오. 오늘 법문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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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식] 1월1일 시무식 법문
주지 법해스님 2024-01-01
새해가 밝았습니다. 작년에 보고, 올해 처음 보네요. 여러분들 올 한 해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또 건강하시고,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렸는데, 좋은 마음 먹고, 좋은 일이 많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올해는 갑진년(甲辰年)이에요. 갑진이라는 것은 <푸른 청룡>이다 이래서, 우리가 옛날에 민간에도 경인 백호((庚寅 白虎)는 재앙을 막고, 갑진 청룡은 복을 불러온다고 하는 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업을 많이 짓게 되는 것은, -일단 복을 받고 싶죠, 그죠, 다들?- 복을 받으려면 먼저 있는 복을 아껴야 된다. 늘 제가 말씀드리는 것처럼, 있는 복이 있다고 너무 허영을 부리고 그냥 사치나 하고 갑질이나 하고 이렇게 하면은, 그거는 복을 받는 일이 아니라 죄를 받는 일이고, 본인 스스로도 죄를 짓는 일이고, 남이 또 그걸 보고 어떻게 해요? 흉을 보잖아요. 남도 죄를 짓게 하고. 이거는 죄업이에요. 첫 번째는 있는 복을 아끼고, 두 번째는 복을 짓는 일을 자꾸 하는데, 복 지을 때는 내 마음이 기뻐요. 뭐를 해도 그 갸륵한 자비의 마음이 나오기 때문에 마음이 기쁘다는 거. 그렇게 해서 뭐든지 열심히 하면은 그게 다 복이 돼요, 자신에게도 복이 되고, 여러분들께도 복이 되고, 또 진관사 사중에 복이 되고, 사중에 복이 되다 보니까 어떻게 돼요? 진관사를 찾아오는, 모든 종교를 넘어 모든 분들이 행복한 마음을 담아가게 되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복을 짓고 그러면 자연 절로 절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서 복 받을 일만 생기는 거예요. 그리고 본인이 행복해지게 돼요. 그렇게 된다라는 거를 꼭 여러분들이 기억하시고요. 우리가 이제 오늘 1월 1일부터 내가 먹는 마음을 여러분들이 계속 살피는 거에요. ‘나 한 사람이 참 복된 사람이구나. 나 한 사람이 진관사를 참 이익되게 하는구나. 나 한 사람이 진관사에 오는 사람들을 다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나는 대단한 사람이구나. 나 한 사람이 스님들, 동료들에게 다 말 한마디라도 잘해드려야 되겠다.’ 이런 마음을 매일 잊어버리지 말고, 그 마음을 여러분들이 마음에 새기신다면, 진관사에 그 생활했던 그 시간을 떠올렸을 때, 또 도반들이, 스님들이, 여러 누구누구가, 예를 들자면 법해스님, “스님이 주지스님이셨을 때 가장 신바람 났어요. 행복했어요.” 이렇게 하면 제가 어떡하겠어요? 그 무섭고 두려운 고통스러운 거를 생각하겠어요? 그때 주지 살 때 신바람 나게 했던 걸 기억하겠어요? “그때 그랬지. 그때 참 시간을 쪼개가면서, 열심히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더 부처님 길로 이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하게 할까, 어떻게 하면 복을 더 받게 할까,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의 괴로운 마음을 내려놓게 할까,” 이런 생각을 하겠지요. 이 생각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실 갑진년은 복을 많이 짓자, 첫 번째 주지 스님부터 <복을 많이 지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복을 많이 짓고, 우리 스님들도 무조건 복을 많이 짓도록, 그렇게 하도록 같이 함께 늘 대중공사하고, 또 같이 의논하고, 같이 함께 기도하고, 정진해요. 또 우리 직원 여러분들도 스님들 준한 수준으로, 그게 뭐냐 하면은, 등급이 높아지는 거예요. 진관사 직원, 국장님을 비롯해서 인품을 충분히 갖추셨어요. 다들. 오히려 어떤 때는 스님들보다 훨씬 더 훌륭해요. 그래서 주지스님 분신이 되어서 다 주지스님으로, 법해 스님 1, 2, 3, 4, 다 되도록, 법해 스님 1, 2, 3, 4. 우리 식구 모두하면 법해 스님이 지금 50 몇 명이 되잖아요. 그죠? 그래서 다 갑진년 한 해 열심히 신바람 나게 하는데, 이게 몸이 아픈 거는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자기 몸을 잘 조율하고, 마음을 잘 다잡아 가지고 그렇게 해서 복된 일을 하자. 갑진년 해도 복이 오는 해고. 그러니까 그렇게 해 나가시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많이 웃자. 웃으면 복이 오죠. 여러분들 복 받고 싶죠. 그러니까 웃을 일을 많이 만들자. 웃을 일을 많이 만들고 많이 웃자. 또 웃게 해줘서 무슨 마음이 생겨요?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잖아요. 그죠? 감사한 마음을 가지자.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은, 지금 이순간, 오유지족(吾唯知足)이 돼야 해요. 내가 오직 만족할 줄 아는 거에요. 1일이 되어 지금 8시가 됐는데, 그 8시간밖에 안 됐는데도 저부터도 잘 안 됐어요. 돌아와가지고 마음속에 나쁜 마음이 막 일어나는 거예요. 잠깐이었는데. 그래서 제가 또다시 마음을 돌렸어요. ‘야, 아직 멀었다, 멀었구나.’ 이런 생각, 또 경계가 또 와요. 한 고개 넘었는데 두 고개가 또 오는 거야. 또 와가지고 제 마음이 북받쳐 올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아직 멀었구나’ 했는데, 부처님 앞에 제가 딱 서는 순간, “부처님 제가 참회합니다. 부처님을 뵈니까 아까 마음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여러분들도 주지 스님도 그러는데, 주지스님보다 우리 진관사 스님들이랑 신도님은 더 훌륭하셔요. 더 훌륭해야 또 마땅하고. 그런데 저처럼 그런 마음이 일어날 때는 마음을 빨리 되돌리고, 안 될 때는 부처님 앞에 서 보세요. 서면 부처님하고 한마음이 되는 순간, 아까 좀 전에 있었던 마음은 부끄러운 마음으로 본인을 참회하게 됩니다. 그래서 만족할 줄 알고 정직하게 살자. 올해는 정직한 순간 복이 와요. 남은 속여도 나는 속일 수 없다라는 거. 그러면 부끄럽지 않다는 거. 그렇게 되면 공덕이 쌓인다라는 거를 여러분들이 꼭 명심하고요. 올해는 사찰음식 해로, 일단 밥 잘 먹자. 밥을 잘 먹어야지, 건강하고 또 건강. 그리고 두 번째 마음 잘 쓰자. 그것만 명심해서 마음도 잘 쓰고 밥도 맛있게 먹고 그러다 보면은 어떻게 부처님 마음이, 보리심이 증장이 되어 가지고, 그냥 모든 일이 절로 절로 저절로 될 겁니다. 그렇게 하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다 건강하시고 또 신바람 나고. 또 스님들은 원래는 정진의 해로, 사찰 음식을 하지만, 각자 자기 정진에 힘이 없으면 시간만 낭비하고 너무나 억울해요. 그래서 정진하는 그런 해가 되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음의 정원 진관사를 한번 외쳐볼까요? 마음의 정원 진관사.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절로 절로 저절로. 부처님 법을 전합시다. 네. 오늘 이 네 마디가 여러분들을 아주 복되게 하실 겁니다.마음의 정원 진관사에서 모든 사람을 당신은 부처님처럼 보고, 또 그렇게 부처님처럼 보는 순간 모든 일이 절로 절로 저절로 이루어지고, 그 절로 절로 저절로 이루어진 그 마음을 널리 회향하기 위해서 부처님 법을 전한다면 진관사가 복된 도량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