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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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기도]12월 22일 동지기도 회향 법문
회주 계호스님 2023-12-22
안녕하세요. 동짓날이 이렇게 추운 거 보니까 작년에 입춘날 입춘부를 갖다가 거꾸로 붙이셨죠? 거꾸로 안 붙였으면 이렇게 추운 날이 있을 수 없는데. 옛날에는 아주 더울 때를 오뉴월이라 그러죠. 아주 추울 때는 동지섣달 그러잖아요. 동지섣달. 지금은 동짓달이죠. 24절기는 입춘, 우수, 경칩, 춘분, 한식,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입니다. 그럼 첫 절기가 뭐예요? 입춘이죠. 마지막은 (동지... 아이고 관세음보살) 대한입니다. 소한, 대한 아직 안 왔잖아요. 절기는 한 달에 두 번이에요. 그래가지고 12 곱하기 2 하니까 24절기에요. 24절기 가운데 동지는 22번째예요. 그래서 24절기 중 가장 큰 명절이 동짓날이에요. 아시겠죠? 동지 잘못 알면 안 돼요. 동지가 마지막이 아니에요. 소한, 대한이에요. 그렇게 아셔야지, 또 잘못 아시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설을 4번 쇤다 그랬죠. 동지, 양력, 음력, 그다음에 입춘 그래요. 그럼 동지는 음양의 새해라고 해서 하지부터 동지가 음기에요. 그다음에 동지부터 서서히 밝은 기운이 나오니까, 하지까지가 양기예요. 그래서 동지 지나면 노루 꼬리만큼 길어진다 그러죠. 밤이 제일 긴 날이 언제예요? 동짓날이에요. 낮이 제일 짧고. 옛날에는 긴긴밤에 뭐 하냐 그러지만, 젊은 사람은 밤도 길지 않은 것 같아요. 연세가 많으면 잠이 안 온다는데, 잠도 잘 자는 노인네도 계셔요. 그러니까 동지에 제일 긴데, ‘이거 뭐 하나’ 하지만은 사실은 동지도 짧다 생각하면 짧고, 낮이 제일 짧은 날이 오늘이에요. 그래서 내일부터는 조금 1분, 1분씩 길어져요. 그래서 양기라 그래요. 그럼 두 번째 양력설은 1월 1일이에요. 음력설은 음력 1월 초하루죠. 정월 초하루가 음력 설이에요. 마지막에 입춘이 지나야지, 다음 해라고 그래요. 그래서 우리는 네 번의 설을 쇠는데, 오늘은 작은 설이라기도 해요. 아세(亞歲)라 그래가지고, 이게 팥죽을 한 그릇 먹어야지 나이가 한 살 더 든다 그랬어요, 옛날에는. 그래서 노인네고 젊은이고 나이 수대로 팥죽 옹심이를 먹는다는데, 그럼 90세면 90알 먹어야 되는데, 그래서 제가 그러잖아요, 10세를 한 알로 하자. 그런데 노인네는 90세니까 또 9알 먹다가 돌아가면 큰일 나니까 20세에 한 알, 다섯 알만 잡수셔도 돼요. 그래도 괜찮으니까, 오늘 동지 팥죽 잘 드시고.... 우리가 동지를 이렇게 하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나눔의 행사예요. 나누며 베풀며 실천하는 날이 동짓날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비우면 편안하고, 내려놓으면 가뿐하고, 나누면 행복하고, 고요하면 즐겁다.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하니까 무거운 거예요. 그러니까 그걸 다 내려놔야 되는데 못 내려놓으니까 항상 괴롭고, 항상 남하고 비교하니까 ‘나는 왜 이렇게 못 가지나’ 하고 괴로워하잖아요. 비교하는 고도 팔고(八苦) 가운데 하나가 비교 고예요. 그래서 구고에요. 생로병사 4고는 기본입니다. 팥죽나누며 이웃 위한 나눔 실천하는 날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이 생하도다.시식으로 팥죽 쑤어 이웃과 즐기리라.새 책력 반포하니 절후는 어떠한고.해 짧아 덧이 없고 밤 길어 지루하다."- <농가월령가> - 팥죽 나누며 이웃 위한 실천하는 날이라 그랬죠, 나누면서.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이 생하도다. 동지는 오늘인데, 오늘부터 이제 햇볕이 이렇게 차곡차곡 양기가 들어온다는 얘기예요. 시식으로 팥죽 쑤어가지고 이웃과 즐기리라. 그래가지고 새 책력 반포하니, 우리는 새 달력 받는 날이죠. ‘동지가 되면 달력 받는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절후는 어떠한고, 절후는 쌀쌀하고 이제 22번째예요, 절후는. 해 짧아 덧이 없고 밤 길어 지루하다. 하지만 젊은이는 지루한 거 하나도 없어요. 밤이 긴 건 하나도 없는데, 사람들이 지루하다고 하는 건 농가월령가의 한 부분이에요. 농가월령가 보면 2월달에 대한 얘기, 3월달 쭉 월령가가 있어요. 근데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이 생하도다. 동지에 대한 월령가를 이제 했고. 팥죽(豆粥) 復月霜雪至(복월상설지) 동짓달에 서리 눈이 내리니 田家寒事畢(전가한사필) 농가에는 월동준비를 마쳤다.瓦釜明豆粥(와부명두죽) 오지솥에는 팥죽 끓는 소리食之甘如蜜(식지감여밀) 먹으니 그 맛이 꿀처럼 달구나 李應禧(이응희“옥담유고”에서) 팥죽을 두죽(豆粥)이라 그래요. 그래서 우리 수륙재 지낼 때 두죽 몇 탕기 올린다는 말 들어보셨죠? 거기 보면은 두죽이 10그릇, 두죽이 다섯 그릇 그러는데, 두죽은 팥죽을 얘기해요. 그 두죽에 대한 내용의 시가 하나 있는데, 이응희라는 분이 쓴 옥담유고에 나오는 얘기에요. 復月霜雪至(복월상설지) 田家寒事畢(전가한사필) 瓦釜明豆粥(와부명두죽) 食之甘如蜜(식지감여밀) 동짓달에 서리 눈이 내리니, 어제그저께 눈 내렸죠. 바깥에 눈이 조금 쌓였어요. 또 농가에는 월동준비를 다 마쳤다. 월동준비 마치는 건 김장하고, 시골 같은 데면은 장작 패다가 겨울에 장작을 땔 수 있도록 나뭇짐을 해놓는 게 월동준비예요. 옛날에는 연탄도 꽉 채워놓고 등등했는데. 이제 절집에서 월동준비는 다른 게 아니고 김장하지요. 속가 집에도 마찬가지예요. 그게 월동준비예요. 오지솥에는 팥죽 끓는 소리, 먹으니 그 맛이 뭐처럼 달구나, 꿀맛처럼. 달달한 꿀이라고 표현한 거예요. 좀 달다, 맛있다 할 때 ‘꿀처럼 맛있다’ 이런 말을 많이 사용해요. 하나의 그거는 뭐라 그러나, 그거를 대신해서 하는 말, 비유, 이제 그렇게 얘기해요.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베풀면서 내려놓고 살면 좋아요. 그래서 이 복 짓는 달이 동짓달이에요. 공덕 짓는 달도 동짓달이고. 동짓날 그래서 팥 공양하신 분들 많으시죠. 특히 삼재 지난 분들 팥 많이 올리라 그러죠. 팥을 뿌려가지고 액땜을 하고, 벽사(辟邪)와 축귀(逐鬼)의 뜻이에요. 귀신 쫓는 거. 여기 나와요. <동지의 유래> 그래서 중국 주(周)나라에서 동지를 설로 삼은 것도 이날을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며, 역경의 복괘(復卦)를 11월, 즉 자월(子月)이라 해서 동짓달부터 시작한 것도 동지와 부활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어두운 기운에서 밝은 기운, 따뜻한 기운이 점점점점 생긴다 이 얘기예요. 그래서 동지를 양시생지일(陽始生之日)이라 그랬죠. 양의 기운이 비로소 시작되는 날이고, 다음 해가 시작되는 날이라고 하여서, 12월달은 1월을 준비하는 달이라 그랬죠. 12월 해서 마지막은 아니에요. 보통 겨울이 있다고 해가지고 봄에 꽃이 안 피는 건 아니잖아요. 봄에 싹이 트듯이 머물렀다, 생로병사가 계속 윤회하듯이, 춘하추동도 다 이렇게 머무는 거예요. 그래서 춘생하장(春生夏長) 추수동장(秋收冬藏)이에요. 봄에는 씨 뿌려서 싹이 나오고, 여름에는 그게 점점점점 자라고, 가을에는 추수하고 겨울에는 이거를 딱 저장해 놓는다. 이것도 하나의 저장의 의미예요. 그래서 작은 설이라 그래요. 그래서 우리가 동짓날 팥죽 먹는 유래가 있어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보면은요. 공공씨(共工氏), 성이 공공씨예요. 그 공공씨 아들이 재주가 별로 없었어요. 멍청이같이 멍하고, 이게 말하면 천치 비슷하게 그런. 콩과 보리를 못 가리면 뭐라 그랬죠? 숙맥(菽麥)이라 그랬잖아. 숙맥. 누가 숙맥 대답했어요? 잘했네. 숙맥이라 그래요. 그 바보 같은 아들이 언제 죽었어요? 동짓날에 죽어가지고, 역질(疫疾)귀신하면 전염병을 옮기는 귀신이에요. 요새 말하는 코로나 옮기듯이 이 아들이 공부만 못하면 되는데 죽어서도 또 전염병 올리는, 돌림병 올리는 귀신이 됐어요. 그래가지고 귀신이 됐는데 그 아들이 생전에 뭐를 두려워했어요? 팥을 두려워해가지고, 팥죽을 쑤어서 물리친 것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우리 진관사 대중 스님들이 팥을 다 주위에다 이렇게 뿌렸고, 또 마을에서는 팥을 방에다가 올려놓기도 하고, 장독간 같은 데다가 팥죽 한 그릇 올려가지고 조상들한테 제사도 지내고 기도도 올리고, ‘1년 내내 무탈하고 무병장수하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많이 해요. 그래서 아까 축귀와 벽사의 의미가 있다 그랬죠, 팥은. 그래서 우리가 뭐 시작할 때 팥 뿌리죠. 팥 뿌리고 막걸리 뿌리고 또 뭐예요? 소금 뿌리죠. 제일 처음에 팥부터 뿌려요. 나쁜 액매기하고, 그다음에 소주 먹으면 좀 어질어질하니까 이 귀신이 동하지 못하게 하려고 이렇게 막걸리를 뿌려요. 막걸리를 귀신이 왜 좋아하나? 먹고는 취해서 제대로 분간 못 하게. 좀 이렇게 돌아다녀서 이렇게 해코지하지 말라고 그런 거예요. 소금은, 우리가 왜 나쁜 사람이 오면 소금 확 뿌리잖아요. 그것도 액땜하기 위해서 소금 뿌리는 거예요. 또 왜 집 안에 어떤 사람이 왔다가 좀 재수 없으면 ‘야 소금 가져와서 얼른 그 사람 나갔으니 빨리 뿌려라’ 이런 말 들어보셨죠? 똑같아요. 이것도. 그래 이제 소금 뿌리고 그러는데. 우리 한국의 동지 풍속은 신라시대 때 선덕여왕이 있었죠. 이 선덕여왕이 황룡사에서 예불을 드리고 있는데, 지귀라는 사람이 굉장히 선덕여왕을 혼자서 흠모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누구를 통해가지고 여왕님을 좀 뵙고 싶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황룡사 구층탑에서 내가 예불을 할 때까지 기다리라 했는데, 그 기다리는 걸 못 참고 어떻게 됐어요? 죽었죠. 그래서 뭐가 됐어요? 남의 집과 재산을 불태우는 악귀가 되었어요. 아까 공공씨의 아들은 공부도 못하는 데다가 전염병 돌리는 역귀가 됐고, 또 이 사람은, 지귀는 집을 태우고, 또 뭐예요? 재산을 태우는 악귀. 귀신들은 못된 짓만 하는가 봐요. 귀신도 악귀가 있고 우리 신령님들은 다 선신이잖아요. 선신이 우리를 도와야지만이 우리가 하는 일에 장애가 없는 거예요. 선신이 안 도와주면요. 잘 안 돼요. 그래서 화장실 가서 꼭 손 씻으라는 얘기인데, 손을 안 씻으면은 화장실에 측신이 그 사람 냄새 나서 가까이 못 가, 자꾸 멀리 하다 보니까 나를 안 도와줘요. 헛디뎌가지고 엎어지잖아요. 그 화장실에서 엎어지면은 떡을 해놔도 잘 안 된다잖아, 어렵다 하잖아요. 목욕탕하고 화장실 갈 때 제일 주의해야 돼요. 노인네들은. 그래서 옛날에는 목욕탕에서 쓰러지면 약도 없다 그런 말도 있고, 속담에, 화장실에서 가면은 그 사람을 시루떡을 해가지고 아무리 해도 잘 안 낫는다 그래요. 그래서 명이 짧아진다는 말도 있어요. 그러니까 조심하는데, 악귀가 되니까 사람들이 팥죽을 쒀가지고 악귀를 물리쳐야 되겠죠. 팥도 뿌리고 악귀를 쫓는다는 이런 의미예요. 그래서 아까 팥죽의 축귀(逐鬼)라는 말이 있었죠. 그 팥의 붉은색이 이제 귀신을 쫓는 것과 삿된 것을 막는다. 벽자는 막을 벽자예요. 피할 벽자에요. 그래서 귀신과 삿된 기운을 물리치고 그런 데서 비롯했는데, 우리 조상들은 동짓날이 되면은 팥죽을 쒀가지고 온 도량에다 조금씩 팥물을 뿌려요. 근데요, 팥물도 땅에다 뿌려야지, 시멘트 위에다 뿌리면 지워지지도 않아요. 뿌릴 때 좀 지혜롭게 뿌려야 돼, 아셨죠? 오늘 잘 뿌렸나 몰라. 언제는 나무에다 뿌려서 아무리 쓸어도 안 되더라고. 그러니까 흙에다 뿌리면은 흙만 이렇게 뒤집으면 가려지잖아요. 그러니까 잘 뿌려야 돼요. 그래서 이렇게 올려놓는 팥죽은 우리가 갖다 놓고 버리지 말고, 또 다시 집안 식구들이 액땜하려면 그거 먹고 액땜하자. 보살님들이 동짓날에는 팥죽을 두 그릇, 세 그릇 가져가려하잖아요. 왜냐하면은 식구들한테 이렇게 액땜하려는 사람들 좀 먹고, 시험 치는 애들 좀 먹고, 좀 잘 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비는 형식이에요. 그래 그것도 하나의 우리들의 기복 신앙도 되지만은, 이 사실은 팥죽 쑤어가지고 화를 갖다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것도 이고득락의 의미예요. 고를 여의고 득락하는 게 우리 마지막에 자리이타행이잖아요. 그래서 고를 없애고, 락을 얻어가지고, 좋은 길로 가듯이, 이 원화소복(遠禍召福)도, 이 팥죽을 쑤어가지고 ‘액란을 물리치고 집 안에 좋은 일만 있게 해 주십시오’ 하는 것도 원화소복의 일이에요. 그러니까 원화소복을 잘하려면은 불설소재길상다라니 있죠. 그거를 하루에 7편씩 치세요. 예전에 종진 큰스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꼭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7번 하고, 불설소재길상다라니를 7번 하고 차(車)를 타면은 장애가 없고 차 사고도 안 나니까, 한 발 들여놓으면서 꼭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보살님들도 노는 입에 뭐 해요? 염불이죠. 괜히 쓸데없는 남의 입담 이렇게 구업 짓지 마시고, 열심히 기도하면은 모든 게 다 잘 돼요. 안 해서 그렇지 하면은 잘 되는 거예요. 그래서 불설소재길상다라니 한번 외워봅시다. 나모 사만다 못다남 아바라지 하다사 사다남 다냐타 옴 카 카 카혜 카혜 훔 훔 아바라 아바라 바라 아바라 바라 아바라 지따지따 지리지리 빠다빠다 선지가 시리예 사바하(3번) 소재 길상은요. 재앙은 없어지고 좋은 길상, 좋은 일만 있어주십시오 하는 그런 다라니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염불을 안 할 수 없죠. 주력이에요. 이거는 다른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잘 외워가지고 우리가 이제 집 안에 다른 액란은 없어야 되잖아요. 그래야지 보살님 늘 살기가 편안하잖아요. <동짓날 팥죽이야기(禪의 세계를 알리기 위한 설화)> 동짓날 팥죽 이야기가 또 있어요. 중국 이거는 설화에 나오는 얘기예요. 우리나라 오대산이 있죠. 중국에도 오대산이 있어요. 그래서 오대산 하면은 무슨 성지 같아요? 문수도량이에요. 그래서 중국 무착선사가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정진하였으나, 마음에 집착함이 많아가지고 문수보살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였음을 한탄하였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름도 왜 무착이라 지었냐면 하도 집착함이 많으니까 무착, 집착하지 말라고 무착이라고 이름 지은 것 같아요. 여기서도 정진을 했는데 마음에 집착이 생기니까 보이는 게 없었어요. 옛날에는 어르신 스님네들이 이렇게 정진을 하다 보면은 누가 나타난다고 하는데, 여기서도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싶었는데 마음에 집착함이 생기니까 못 봤어요. 그냥 지나쳤죠. 그래서 자기가 너무 내가 수행력이 없구나 하고 앙산스님한테 가가지고 다시 이제 정진을 열심히 해서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러니까 동짓날 무착선사가 팥죽을 쑤고 있는데 홀연히 가마솥 그 팥죽 위에서 누가 나타났어요? 문수보살. 자기가 이제 문수보살보다 더 능가한 거예요. 누가. 무착선사가. 처음에는 공부가 덜 돼가지고 집착이 많다 보니까 문수보살이 나타나도 알아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팥죽을 이렇게 쑤다 보니, 깨달은 후에 팥죽을 이렇게 젓다 보니까 팥죽 위에서 문수가 자꾸 알찐알찐거려요. 그러니까 깜짝 놀래가지고 문수보살을 어떻게 했어요? 후려갈겼죠. 그냥 가만히 비키라 비키라도 아니고, 주걱 가지고 문수보살을 갈기니까, 문수보살이 깜짝 놀라서 “이보게 나 문수네, 문수네” 하니까 “문수는 문수고, 무착은 무착일 뿐이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제 이렇게 이르는 거예요. 깨닫지 못할 때는 문수보살을 못 봤는데 딱 자기가 깨닫고 나서 문수보살이 나타나니까 ‘문수보살을 내가 괜히 찾았구나. 내 스스로 문수고, 내 스스로 무착인데, 무착이 어디 있고, 문수가 어디 있냐.’ 이제 이게 선학적인 설화예요. 보통 사람들이 이런 얘기 하면 안 돼요. 주걱 가지고 쑤다가 문수가 뭐고 누가 뭐고 이런 건 안 되고. 왜 살불살조(殺佛殺祖)란 말 있죠. 선어록에. 부처도 죽이고, 누구도 죽이고 조사도 죽이고 한다니까, 진짜 모르는 사람들은 스님네들이 진짜 죽이는가 보다 이러는데, 그건 아니에요. 그거는 선어록에 나오는 하나의 선구예요. 여기서도 집착이 많았을 때는 문수를 못 알아봤는데, 자기가 깨닫고 나니까 문수고 무착이고 다 필요 없다 이거예요. 이게 득도한 내용이에요. 이건 이제 설화를 가져다가 이제 알리기 위해서 이렇게 한 거에요. 옛날에는요, 팥죽을 많이 쒔는데, 스님네들이 자랑하기 위해서 가마솥에 팥죽을 쑤는데 자기네들 배를 타고 가서 저었다 그래요. 서로서로 누가 더 많이 쒔다고 자랑하니까, 어떤 스님네들은 우리는 팥죽을 스무 가마 쒔다, 삼십가마 쒔다, 무슨 말을 하냐고, 우리는 큰 가마솥에다 얼마나 가마솥이 큰지 저을 수가 없어서 배를 타고 저었다. 그런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스님네들이 농담 삼아 이제 절 집에서 그런 말을 가끔씩 해요. 동짓날에 얼마나 팥죽을 많이 쒔나 이제 그런 얘기에서 나오는 얘기인데, 또 팥죽 쑬 때 아까 옹심이 얘기했죠. 나이만큼 먹는 습관도 있고, 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가 이제 한 살을 더 먹게 되는 속설 같은 것도 있는데 동짓달을 시작으로 해서 나이가 한 살 더 먹는다 그래요. 그래서 작은 설이라 그랬죠. 그런 이제 얘기가 있어요. 그래서 동짓날에도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랬죠. 보통 그런데 이번에는 애매하게 10일이에요. 10일이면은 중간도 아니고 초도 아니고, 그러니까 10대, 10살도 그렇고 30전까지는 주의하셔야 돼요. 그러니까 애동지잖아요. 열흘이니까. 중순에 들면 중동지예요. 보름에 들면 중간 동지라 그러고, 또 이제 그믐께 들면은 뭔 동지라고 그래요? 노동지라고 하는데 우리가 보통 애동지, 노동지 이거는 상관없잖아. 보살님들은 절에 와서 가져가니까, 애동지가 들었든 무슨 동지가 들었든 집에서 안 쑤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집에서 안 쑤고 절에서 안 가져오면, 사 먹는다 하더라고.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그럼 절에서 못 먹으면 시장에서 사 먹으면 되지요. 동지에는 팥죽 먹는다는 의미가 중요하니까 무슨 죽이면 어떻겠냐고 드시라고 그런 말을 가끔 하는데, 오늘은 여러분들이 진관사 오셔서, 팥죽 오늘 다 가져가실 거죠? 드시고 가져가고 그래도 돼요. 그래서 오늘 넉넉히 쒔으니까 제가 그랬잖아요, 동지는 이웃과 더불어 나누고 베푸는 그런 달이니까, 저희들도 이제 한 3일 전부터 많이 나눔의 행사를 했어요. 저기 구청이라든지 어린이집이라든지 노인 복지관 같은 데도 돌리고, 신도님들도 연세가 많으셔서 절에 못 오시는 분들도 돌리고 그랬어요. 오늘 여러분들은 젊었고 노보살님이래도 가져가셔서 또 드시면 더 좋아요. 가져가 드세요. 그래서 불가에서는 동지에 팥죽을 올리는 의미는 부처님의 가피로 악귀를 몰아내는 원화소복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랬죠. 그래서 소재길상다라니를 해가지고 악을 물리치고 길상한 것을 얻고 또 복을 부르고 그래서 이고득락의 의미도 있다. 그러니까 열심히 기도해서 악을 물리친다는 의미로 보시면 돼요. <동지기도를 맞이하여 새해에는> 그래서 동지 기도를 맞이해서 새해에는 기쁨이 있어야 되겠죠. 부처님을 뵙는 기쁨. 둘째는 법을 듣는 기쁨, 세 번째는 보시하고 후회하지 않는 기쁨, 보시해가지고 후회하고 이런 사람은 없죠. 여기는 없는 것 같아요. 진관사 신도님들은 뭐든지 잘 보시를 해서, 남도 도와주고. 우리가 바깥에 신발이 삐뚤어지면 똑바로 놔줄 줄 알고, 그리고 또 이렇게 식판을 드릴 때 노보살님들 먼저 드리려고 하는 그런 마음이 보이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런 마음이 다 진짜 진보시에요. 그러니까 나보다, 내가 하려고 하는 것보다 노인네들을 위해서 보시하는 것도 하나의 보시에 들어가요. 그다음에 넷째는 뭐예요? 뭔가 모든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는 게 최고의 복이에요. 그러니까 남을 불편하게 하는 거는 복이 아니에요. 그래서 복이 모자라면 뭐라 그래요? 박복하다고 하잖아요. 박복하다라는 말 들어보셨죠? 지혜가 모자라면 천치라 그랬잖아. 우치라 그랬잖아요. 지혜가 모자라면, 아까 그랬잖아요, 숙맥이라 하듯이, 지혜로워야 되는데 지혜가 없으면은 바보. 저번에 우리가 수륙재 때 주리반특가 얘기했죠. 자기가 빗자루로 쓸어라, 빗자루질 해라, 이렇게 계속 하니까 거기에는 문제가 없는 거예요. 다 자기한테 문제가 있는 거지. 그러니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의 탓도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허물도 보면 안 돼요. 불자들은 좋은 생각 내고 좋은 맘만 내셔야 돼요. 그래서 우리가 보통 상불원천(上不怨天)이라 그러고 하불우인(下不尤人)이라 그래요. 상불원천, 원자는 원망할 원자예요. 그래서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위로는 뭐 잘 안 되면 누구 탓하고 원망하고 그러죠. 절대 그러면 안 돼요. 아래로는 하불우인이에요. 아래로는 다른 사람에게 허물을 탓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요. 탓하면 안 돼요. 그게 중용에 나오는 얘기인데 우리가 가만히 있다가 급하면, 다급하면 부처님한테 와서 매달리죠. 멀쩡히 평상시에는 아무것도 안 하다가 급하면 부처님 다리 붙잡고 거기에 매달리는 사람이 있어요. 그냥 꾸준히 하셔야 돼요. 그러면서 제가 어디 보니까 평상시에는 잘 향을 켜지도 않다가, 절에 안 오다가 급하면 절에 와가지고 막 다급해가지고 ‘뭐 해달라, 뭐 해달라, 스님 뭐 해주세요, 뭐 해 주세요,’ 하는데 그거 그러면 안 돼요. 평상시에 열심히 부지런히 여일하게 하셔야 돼요. 오늘 잘했다 내일 못 했다가 3일날 또 못 했다가 5일 날 되면 잘했다가 그렇게 들쑥날쑥하면 안 되겠죠. 꾸준히 해야지, 성적이 좋아야 돼요. 절에 다니는 성적이.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면 안 돼요. 그냥 쭉 몰려서 구경만 하고 이래도 안 돼요. 자기의 신심력과 원력과 신심과 우리들의 공덕력이 있어야 돼요. 살아가는 데. 참 최고가 신심(信心)이에요. 신심이 있어야 되고, 묵언(默言)해야 되고 무집착(無執着)해야 되고 집착이 없어야 되죠. 편안해야 되고 마음이 동하지 않고 부동심(不動心)이 돼야 되고 인내(忍耐)가 있어야 돼요. 인욕(忍辱)이 있어야 돼요. 참지 못하고 발끈해가지고 싸움하고. 싸움하는 것도 자기한테 좀 뭐가 있어서 싸움하는 거지, 싸움 잘하는 사람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구설이 없으면 싸움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자꾸 헐뜯다 보니까 입으로 싸움하잖아요. 이 싸움하는 건 입으로 하는 거죠. 몸으로 하는 거는 구타라 그러죠. 그런 것도 조심해야 돼요. 신구의 삼업을 잘해야 돼요. 주리반특가가 깨친 그 게송 있죠. '수구섭의신막범 여시행자 능득도(守口攝意身莫犯 如是行者 能得道)', 입으로나 몸으로 행동을 함부로 하지 말고 이와 같이 행하는 사람이 능이 도를 깨칠 수 있다 그랬죠. 그래가지고 주리반특가가 그걸 깨쳐가지고 자기가 신통력이 셌는데, 부처님께서 발우를 들고 가시다가 주리반특가한테 맡겼잖아요. 그러니까 벌써 알고 맡긴 거예요. 파사익왕의 초대에 당신은 쭉 들어갔는데, 스님네들을 점검하다가, 문지기가 ‘아니 반특가는 깨치지도 못했는데 왜 들어가냐’고 못 들어가게 했어요. 그렇지만 거기서 나는 깨쳤다 안 깨졌다 이런 말 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막 안 들어가고 밖에서 있었는데, 나중에 부처님이 발우가 있어야 발우공양을 할 수 있잖아요. 공양을 못하고 있었는데 주리반특가가 그걸 알고 팔을 어디까지 밀었어요? 부처님한테까지 팔을 쭉 내밀었잖아요. 부처님은 다 알고 계시고, 파사익왕하고 제자들이 깜짝 놀랐어요. 언제 주리반특가가 신통력이 있어서 이렇게 팔을 내밀어서 부처님께 줬나 하고 물어보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만 번, 천 번, 만 번 들어도 한 번 행동하는 것만 못하다.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 최고다” 그랬어요. 여러분들은 아는 것에 그치지 말고 아는 것은 세지변총(世智辨聰)이고 지식이에요. 정말 깨치는 거는 마하반야바라밀이에요. 그래서 지혜도 바라밀이 되야 되고, 보시도 바라밀이 겸한 보시를 해야 돼요. 자기는 돈도 없는데 막 빌려가지고 하는 사람 있죠. 그건 안 돼요. 남의 돈 빌려가지고 뭐 한다, 뭐 이렇게 보시하라니까 빚 내가지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지마시고, 그냥 나는 몸으로 좀 보시해서 봉사를 해야 되겠다. 이 봉사도 하나의 보시에요. 그냥 잘 이렇게 보시해가지고 도와주는 봉사도 하나의 우리가 보면은 실천행을 하는 분이에요. 보현보살이에요. 그래서 보현보살은 마지막에 보현보살행을 하시면서 남을 위해서 도와줘서, 남을 위해서 희생해야 되겠다 하고 쭉 이렇게 행원을 하잖아요. 오늘 이제 팥죽도 드셨고 우리도 살아가면서 장애도 없어지고 병도 없고 무탈해야 되겠죠. 그러니까 열심히 기도하고 남을 위해서 기뻐하는 그런 게 있어야 돼요. 그래서 이 네 가지 기쁨이 항상 충만하고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재앙이 모두 소멸해가지고, 1년 내내 평생 내내, 재앙은 평생 내내 없어야 좋아요. 어떤 해는 올해는 내가 좀 이렇게 안 좋을 때는 보시를 확실하게 하세요. 베풀면은 그 나쁜 게 보시함으로 인해서 없어질 수도 있어요. 그리고 많이 아플 때는 저희 스님 보니까 선방에다 공양시키더라고요. 공양금을 보내가지고. 그러니까 그것도 재물이 많다 보면은 이 몸이 많이 약해져요. 그래서 재승박덕(才勝薄德)이라고도 해요. 재물이 덕보다 많아 고가 좀 있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보살님들도 열심히 기도하면서 팥죽 먹고 되도록 힘이 있으면은 무조건 남을 위해서 베푸는 것밖에 없어요. 우리도 스님네들이 이렇게 많은데 제가 못한 걸 해주니까 얼마나 좋아요. 고맙잖아요. 그래서 동방아라도 한벌 해서 보시해야 되겠다 이런 마음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입춘 전에 여러분들 동방아 회향하겠습니다. 주지스님께서도 내복 공양을 하신대요. 그럴 때는 다 베풀고. 그러면 그게 다시 액땜이 돼서 원화소복이 되는 거예요. 오늘도 여러분들 팥죽도 드시고, 배도 고프시죠? 아침도 덜 드시고 오셨으니. 오늘 법문 마칠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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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법회]1217 일요법회 법문
자현스님 2023-12-17
안녕하세요. 오늘 이제 말씀드릴 내용은 이렇게 연말연시에 지금 무슨 시즌이냐면 동지, 좀 있으면 동지, 그리고 새로운 한 해를 맞는, 진짜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이제 음력 설까지 사람들이 약간 떠다니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안 좋아하거든요. 저는 예전에 전두환 대통령 때 양력으로 통일하려고 했을 때 ‘그게 좀 관철이 됐으면 국가 경쟁력이 더 좋았을 건데’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양력은 양력대로 뭐 시무식 한다 하고, 또 그게 음력 설까지 이렇게 흐트러진 분위기가 가면서 한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가 흐지부지돼요. 그러니까 음력이 맞다, 양력이 맞다를 얘기하는 게 아니고, 조금 사람이 안정적이지 않고, 제일 안 좋은 게 이렇게 떠다니는 듯한 느낌, 개인적으로는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래서 <방향이 정해지면 사실 힘든 거는 힘든 것도 아니다. 방향이 안 정해져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때가 가장 힘들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이 좀 특이해요. 그리고 이제부터 다음 주가 동지입니다. 22일이 동지. 그리고 예전에 그 동지가 설날이었어요. 원래는 동지가 불교 명절 아니에요. 그냥 전통 명절의 일부가 수용된 겁니다. 그런 식으로 수용되는 게 칠석하고 동지가 가장 대표적이에요. 그리고 제사도 마찬가지죠. 제사도 기제사는 불교에 없어요. 제가 늘상 말씀드리지만, 안으로 제자, 그러니까 제비 제자로 들어가는 거는 없어요. 불교 안에는 원래는 없어. 그래서 불교 재사는 다 밖으로 재자, 그건 재개한다는 뜻이고, 몸과 마음가짐을 바로 해서 올바른 관점들을 가지고 이렇게 하려는 게 불교의 목적인 거고, 안으로 제자는 돌아가신 분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그런 유교적인 특징적 문화 구조입니다. 그래서 그럼 불교에서는 왜 그렇게 하느냐. 위탁입니다. 위탁. 해달라고 하니까 그래서 수수료 받고 해주는 거예요. 주력 상품은 아니고. 근데 이게 발음이 또 애매하게 같아서, 안타깝게도 그걸 계속 헷갈려요. 그런데 19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제사라고 안 했었다니까. <죄> 발음이었었다니까. 그게 죄 발음이었는데 지금은 <제> 발음으로 완전히 바뀌면서 두 발음이 글자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발음상에서 차이가 없어서 계속 혼란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세상에는 오래 겪어봐도 배우지 않으면 모르는 부분들도 있어요. 어떤 거는 오래 지나면 스스로 알게 되는 게 있고, 그렇게 가장 대표적인 게 이제 언어 같은 거고, 그거는 그래서 어학을 잘하는 사람이 꼭 머리가 좋으냐. 그거는 상황에 따라 다르죠. 그러니까 환경 자체가 아버지가 외교관이었어요. 이렇게 해서 굴러다니다 보면 스스로 체득되는 게 어학이고, 어떤 거는 꼭 배워야만, 익숙하다고 아는 게 아니고 꼭 배워야만 되는 것들도 있고. 그래서 동지 같은 경우도 사실 동짓날 팥죽 먹고 뭘 어쩌고저쩌고 한다더라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봤지만, 내용적으로 배우지 않으면 안 들어옵니다. 이런 거는 안 들어옵니다. 팥죽을 아무리 먹어도, 제삿밥을 아무리 먹어도, 제사에 대한 내용을 모르고, 동지에 대한 내용은 모릅니다. 그러면 그런 것들이 다 사라지는 문화인데 그런저런 해서 이제 끝내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마 이게 우리나라가 점점 더 선진화되면 잘 모르겠어요. 선진화가 어디까지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게 합계 출산율이 너무 떨어지니까, 이게 이제 올라가다가 발목을 잡히지는 싶은데, 선진화될수록 문화적 역량이 훨씬 더 강화됩니다. 그래서 전통문화에 대한 부분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 그다음에 어떻게 그것을 현대화시킬 것이냐라고 하는 게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관건이 되거든요. 그래서 동지에 대한 얘기를 해드리려고 해요. <동짓날 팥죽 먹는다> 뭐 이런 얘기는 들어보셨잖아요. 그리고 거기에 새알심을 먹고, 그 새알을 나이만큼 먹는다는 둥. 근데 지금 여러분들 연세는 나이만큼 먹으면 죽어요. 동지가 제삿날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거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아요. 그래서 동지 어떤 날인지는 다 아실 거예요. 그게 이제 태양이 가장 낮이 짧아서, 태양이 부활하는 날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동지는 다 따졌어요. 태양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이 지구에 어떻게 보면 생명이 유지되는 데 있어서 태양보다 중요한 거는 사실은 찾아보기가 어렵죠. 그런데 신화들을 보면 태양신들은 또 이게 조금 만만합니다. 벼락신이 제일 세고. 기독교의 여호와 같은 경우도 그게 벼락신 계열, 아니면 시나이산의 화산신, 그러니까 화산이라든지 벼락이라든지 불은 통제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게 어떻게 보면 신격적으로 좀 더 강력한 모습들을 보이고, 태양은 이게 강력하긴 한데 맨날 동일하게 움직이는 거야. 그러니까 신화 구조 속에서 보면 조금 만만합니다. 이렇게 돌아가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벼락하고는 비교가 안 되죠. 태양이 훨씬 중요하죠. 그래서 제우스도 그렇고 인도의 힌두교에 제석천도 그렇고, 다 벼락신이에요. 벼락이 뭔가 포스가 강렬하지. 그리고 통제 안 되고. 그리고 저 마른 벼락 같은 거 치면, 유목 문화 쪽에서 그 마른 벼락 치면 진짜 뭔가 있어 보이거든. 조짐도 없이. 그래서 진짜 하늘에서 뭔가 소리들이 나오는 것 같고. 물론 우리 같은 경우는 이제 부부싸움 하나 이런 정도 생각을 하겠지만, 또 신성하게 여기는 분들도 굉장히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태양의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기 때문에, 그래서 태양 숭배라는 건 전 세계적으로 다 있고요. 이제 강도의 차이들이 있는 거고. 그리고 태양의 시작점이 이제 동지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태양을 시작점으로 해서 한해가 시작된다라고 생각했던 그런 문화 구조가 있어요. 그게 이제 동아시아에 존재했었던 그 흔적이 지금까지 동지로 남아 있는 거고. 그다음에 기독교 전통에서도 예수의 탄생일을 잘 모르는 거죠. 그러다가 로마의 동지, 로마의 동지를 그냥, 예수 탄생일을 어떻게 알겠어, 그게 뜬 사람도 아니고, 처음부터 집안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잘 나가는 사람도 아니고, 마구간에서 태어난 사람의 출생 연도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도 기독교 안에서는 기원전 4년 정도 아니냐라고 말하는 정도고, 생일을 알 수 있다는 건 더 불가능한 얘기고, 그래서 나중에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이제 동지, 로마에서도 굉장히 큰 명절이었어요. 특히 양력을 치는 데 있어서는 태양의 시작이기 때문에 동지는 양력입니다. 동지, 하지 뭐 이런 거. 해니까, 해니까 양력이에요. 그래서 예전에는 지금은 동지가 안 움직이고 예전에는 동지가 계속 움직였어요. 지금 설날처럼. 예전에는 음력 설은 안 움직인 거죠. 달력을 음력으로 썼으니까. 그 대신에 동지, 입춘 이런 애들이 계속 움직였거든요. 근데 지금은 동지는 안 움직이고, 그래서 동지는 보통 21일에서 23일 사이에 들고, 로마 쪽은 25일에 드는 거예요. 그게 이제 약간 위치가 달라서, 그래서 크리스마스도 동지예요. 그래서 우리가 동지를 두 번이나 한다니까. 그래서 우리 동지 한 번 하고, 제네 동지하고. 이거 참 재밌지. 동지 두 번 하는 문화예요. 그래서 새해가 시작된다라고 생각했어요. 동아시아가 음력만 쓴다라고 생각하는데, 고대로 올라가면 유목 문화가 나타나요. 유목 문화가 존재했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양력을 썼던 문화가 존재합니다. 굉장히 재밌어. 그래서 예전에 아마 양력을 좀 썼었던 것 같고, 양력 쓰면 나중에 이제 12지가 나와요. 12지가 다 들어온 겁니다.그런 복잡한 얘기를 할 거는 아니고, 양력을 썼던 문화가 있고, 나중에 음력으로 싹 바뀌거든요. 음력으로 바뀌고, 그리고 지금까지 음력으로 내려오다가 근래에 다시 우리가 양력으로. 이건 서구적 경향이잖아요. 그죠? 그래서 양력으로 쓰던 문화가 맨 마지막에 남은 게 이 주나라 때. 주나라라고 들어보셨어요? 중국의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그래서 하나라는 그냥 전설적 왕조입니다. 하나라 이전에 있었던 임금이 여러분들이 한 번씩은 들어보셨고, 누군지 잘 모르겠는 요임금, 순임금입니다. 당나라의 요임금, 우나라의 순임금. 그거는 그냥 거의 전설적인 얘기고, 그다음에 하나라라고 하는 우임금이 시조인데 이것도 역사적으로만 기록만 있지, 아직 유물이 제대로 발견된 건 아니에요. 그래서 은나라 때부터, 이제 황하문명 하면 은나라 은허의 발굴 이렇게, 얼굴 표정 보니까 이게 예전에 전생에 한 번 들었던 기억, 그 정도면 정상입니다. 교과서에 나옵니다. 그래서 그 정도 생각하시면 돼요. 그리고 그 은나라를 계승하는, 그러니까 은나라 다음 왕조가 주나라예요. 그 주나라가 공자가 제일 좋아했었던 나라이기도 하고, 공자가 살았을 때를 동주시대라고 얘기를 하고, 그게 이제 여러분이 한 번씩 또 다 들어보신 춘추전국 시대입니다. 춘추전국시대. 그래서 그 주나라 때 설이 태양의 시작 동지예요. 그러니까 주나라 설날이에요. 제가 그런 얘기하는데 사람들은 1월이 정월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정월이 1월은 아니다. 정월은 왕조마다 다르다. 그러니까 주나라 때는 11월이 정월이에요. 정월은 시작하는 기준 달이라는 의미예요. 1월은 진짜 1이라는 의미가 있는 거고, 근데 지금은 1월하고 정월이 같으니까, 사람들이 ‘정월이 1월 아니에요?’ 이렇게 생각하지만 실제로 1월과 정월은 달라요. 그래서 11월달에 동지 들잖아요, 음력으로는. 잘 모르시는 분들은 강부자의 달타령 생각하시면, 동지 이렇게 그거 쭉 들어봐, 이렇게 하다 보면 11월쯤 가면 동지 얘기가 나옵니다. 동지섣달 긴긴밤 이래가지고. 이때 이제 춥고 이랬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고. 이때 달력을 줘요. 절에서 달력 주던가요? 안 줘요. 원래 동지 때 주는데, 동지 때 주면 이미 딴 달력이 다 걸려 있어. 예전에는 동지 때 줘도 문제가 없었던 이유는 뭐냐 하면, 11월달에 주는 거야. 그러니까 별 문제가 없는데, 지금은 동지가 이게 우리가 기준이 바뀌었잖아요. 양력으로 바뀌는 바람에 12월 22일날 달력을 주면 이미 다 좋은, 선점하고 있다니까. 다른 달력이. 그리고 달력을 옛날처럼 방마다 걸지도 않아요. 집에 다 해봐야 하나 정도 걸까. 이렇게 예전에 여러분들 같은 경우는 일력도 걸었잖아. 달력을 거는 게 아니고 일력 걸어가지고. 일력 뭔지 아시죠? 이게 파란 종이 줄까, 빨간 종이 줄까, 까만 종이 줄까 이래 갖고 이렇게 삼색으로 나오는 거. 그리고 그 일력 쓰는 집들이 대부분 또 특징이 날짜가 안 맞아요. 자식이 많으면 화장실 간다고 막 뜯어가지고. 그리고 그거 뒤집어서 닦아야지, 또 이렇게 닦으면 거기 빨간 거 묻어요. 그래서 동지가 설날이에요. 그래서 설날 팥죽을 먹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것들을, 삿된 것들을 다 물리친다는 빨간색 선호예요. 빨간색 선호. 그리고 그건 팥에 효과가 있는 게 아니고, 그 빨간색, 불, 태양 이런 걸 상징하는 거예요. 그래서 붉음에 대한 숭배가 존재해요. 그래서 제가 그런 얘기하는데 임진왜란, 병자호란 끝나고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이렇게까지 빨리 퍼질 수 있었던 이유가 뭐냐 하면, 삿된 거를 물리치려고 하는 거에 대한 추구, 불확실성이 많을수록 쓸데없는 거 갖고 사람들이 잘, -지금은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도 안 죽는 그런 일들,- 진짜 사소한 걸로 감기 걸렸다가 죽고, 풀 베러 가서 꼴 베러 갔다가 이렇게 풀에 잠깐 비었는데 막 썩어들어가면서 죽고, 이렇게 막 희한한 일들로 죽어요. 그래서 제가 그런 얘기하잖아요. 의료적으로는 가장 혁명적인 것 중에 하나가 빨간 약이라고. 빨간 약만 있어도 안 죽어요, 안 죽어. 근데 그 빨간 약이 없어서 죽었다니까, 진짜. 그래서 그렇게 너무 불확실한 시절이 많을 때는 삿된 것들을 다 쫓아내야 돼요. 그 삿된 게 귀신도 되고, 안 좋은 기운도 되고 이거 구분 안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거 구분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그게 바이러스도 되고 세균도 돼요. 그래서 이제 애 낳고 나면 금줄 칠 때도 숯하고 고추잖아. 고추는 빨간색이라는 그 색깔 상징이에요. 고추 자체에 에너지가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고추 자체에 에너지가 있으면 파란 고추 써도 되지. 빨간 고추를 써야 돼. 색깔하고 관련된 거예요. 색깔하고. 숯은 그 안에 불이 들었다고 생각을 해요. 옛날 사람들은. 그래서 옛날에 숯을 집 안에서 때는 것 때문에 숯을 때거든요. 방 안에서. 그러니까 우풍이 세기 때문에 화로 같은 요렇게 놓고 거기서 이제 숯을 때요. 거기서 장작을 때면 지가 죽어요. 지가 죽어. 숯을 때거든요. 아니 예전에 어른들은, 연세 많으신 분들은 댁에서 보시기도 하셨을 거야. 시골에 그런 게 있었었어. <짱구는 못말려>를 보면 짱구는 발 밑에다가 그걸 넣고 이렇게 담요 같은 걸로 싸고, 그게 일본 문화고, 우리는 이렇게 화롯불을 피는 거죠. 그리고 거기서는 숯을 쓰는 거고. 그래서 그 안에 불이 들어있다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한쪽에는 불이 들어 있고, 한쪽은 불색이고 이렇게. 그리고 장 같은 거 담을 때도 장독대 전체를 고추로 이렇게 금줄을 치는 경우도 있고, 그다음에 장 안에도 넣죠. 간장 같은 데도 고추 닦아가지고 넣고. 그거 안 해보셨어요?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게 밖으로도 못 들어오고. 그러니까 장독대 전체를 금줄로 치고, 장독 하나하나도 금줄로 치고 안에도 넣고. 혹시라도 훅 갈까 봐. 왜냐하면 장 자체의 맛이 이게 어떻게 보면 썩어버리면 발효가 안 되고 썩는 경우가 있거든.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게 옹기라는 것의 특성상, 옹기 사이에 그 균들이 다 빠지질 않아요. 그게 조금 관리를 잘못하면. 그걸 죽이기 위해서 장을 담글 때 원래 불로다가 이렇게 한번 소독을 하거든요. 그 안에다가 불을 태워서 짚 같은 걸로 한번 태웁니다. 근데 그걸로도 애들이 잘 안 죽어요. 그게 잘못되면 이제 장이 상해버리면 겨울에 먹을 게 없어요. 그래서 장에 대해서 신성시 여기는 그런 문화들이 있고, 거기에 이제 금줄 같은 걸 치는 거고. 그래서 팥에 효과가 있는 게 아니고 빨간색의 효과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거 절에서는 지금도 절 문화의 일부가 들어와 있어요. 여기도 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약간 빙의 같은 거 된 분들 구병시식이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약간 이렇게 다른 성격. 이게 그러니까 그거랑은 좀 틀려, 뭐 정신 분열이나 이런 거 하고 약간 달라. 그렇게 해서 신병 같은 거 있는 분들 뭐 해서 구병시식해달라 그러면 팥을 뿌리는 문화가 있어요. 이게 되게 재밌어. 이게 귀신들의 트랩에 해당하거나, 안 그러면 귀신을 저격할 수 있는 물건들이 많이 있거든. 제가 그런 거 진짜 전문가인데 그 얘기를 다 해드릴 시간은 안 될 것 같고, 동지 얘기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동지. 그래서 팥죽을 먹어서 안을 한번 씻어내고. 동지 의례가 뭐 하고 똑같다고 생각하시면 되냐면 설의례와 똑같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설에는 떡국 먹습니다. 떡국은 흰색이라고 하는, 그건 빛을 상징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신문에 예전에 사설 쓸 때도 그 얘기를 썼거든요. 설 떡국에는 지단 넣지 마라. 지단 넣지 마라. 후추 뿌리지 마라. 김 뿌려 먹지 마라. 원래 그 빛으로다가 그 나쁜 것들을 한번 씻어준다는 그 의미가 있어요. 그 의미가 진짜예요. 그리고 내가 이 얘기하니까 사람들이 그런 게 어디 있냐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 있어. 근데 연세 많으신 분들은 알아요. 유교 떡국하고 불교 떡국이 달라요. 유교 떡국은 수직 떡국입니다. 그래서 동전같이 생긴 거고, 그래서 돈 들어온다는 의미로 먹어요. 불교 떡국이 사선 떡국입니다. 이거는 삿된 거를 물리친다는 의미예요. 그러니까 그게 어디서도 나타나냐면 창살 구조에서도 나타나. 저렇게 정방향의 창살이 있잖아. 바둑판처럼 생긴 창살 저게 유교 창살이에요. 그리고 불교 창살은 빗살입니다. 빗살은 햇빛을 상징하는 거예요. 그 빗살입니다. 빗살무늬토기 같은 거 할 때. 그래서 나쁜 것들을 물리친다는 거예요. 그 빗살무늬 토기 쓸 때 보면 밑에가 V, 이렇게 생겼거든요. 이런 얘기하면 되게 재밌지 않아요. 국사책에 이렇게 보면, ‘야 토기를 이렇게 만들면 어떻게 세우냐.’ 아니 그렇잖아. 그냥 생각을 해보면 이게 밑에가 이렇게 판판하게 평저형으로 만들어야지, V라인으로 만들면 도기를 어떻게 써. 그런 생각 안 해보셨어요? 그게 왜 그러냐면요. 해안가나 강변에서 거기에다가 이걸 꽂아서 쓰는 거예요. 땅이 좀 무르니까 이걸 꽂아서 쓰는 거예요. 모든 인류가 예전에는 다 강변이나 이런 데 살았거든요. 그게 조금 유리하잖아, 생존에. 그래서 그걸 꽂아 쓰는 거야. 꽂아 쓰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습기를 끌어들이기 때문에, 땅이라는 게 습기를 끌어들이기 때문에, 곡식을 그 안에다 저장을 하면 상해요. 이해가 되시죠? 수분을 당기니까. 근데 이 사람들이 지금 그걸 이해를 못하는 거야. 그래서 나쁜 게 자꾸 들어와서 우리 곡식을 상하게 하는데, 이렇게 해서 그걸 안 들어오게 하려고 그래서 햇빛을 그 안에다가 새기는 거예요. 그게 빗살이에요. 그래서 삿된 것들을 물리친다라고 하는 그 개념, 그래서 흰색, 흰색 개념, 흰색이 나쁜 거를 물리친다, 빛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흰색은 빛, 팥죽색같이 이렇게 붉은색은 불 아니면 태양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그래서 둘 다 삿된 것들을 물리친다라는 의미로 보시면 돼요. 그래서 제삿떡은 무조건 백설기입니다. 고사떡은 팥시루떡. 그래서 고사떡은 삿된 걸 물리치는 거고, 그다음에 그건 낮에 하는 거고, 여자가 중심이 돼서 하는, 그 집안에 여자가 중심이 돼서 하는 거예요. 리더 여자. 제사는 그 집 안에서 리더 남자. 그리고 밤에 하는 거고 완전히 달라요. 그래서 팥의 문화하고, 흼의 문화라는 게 있어, 흰색에 대한, 그래서 우리가 백의민족 할 때도 사실은 그게 빛의 숭배, 태양숭배랑 관련돼서 내려오는 거예요. 그래서 제사용 백설기는 건포도나 콩을 넣으면 안 됩니다. 그거는 제사 전용 떡으로 개발한 거예요. 그래서 맛없어요. 어쩔 수 없어. 그러니까 흼에 대한 숭배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조선 후기에 우리가 백의민족 어쩌고 어쩌고 할 때, 그거 다 유래가 있거든. 단군부터 내려오는 또 유래들이 있어요. 그런데 박달나무, 밝은 나무, 삼위태백. 이렇게 해서 흰 거에 대한 숭배들이 나오는데, 이게 흰옷을 입으면 이게 잘 상해요. 염색을 해서 입으면 거기에 염료가 들어가면서 견고하고 그다음에 덜 빨아도 되고. 조금 더 견고해져 천이. 그래서 조선 후기에 흰색을 못 입게 하려는 정책들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이제 국민이 저항을 했어요, 그 당시에. 그래서 지금까지도 계속 백의민족 어쩌고 어쩌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흰색을 입는 게 불길한 게 아니고 길한 거예요. 길한 거. 그래서 우리는 장례를 예전에는 길한 걸로 봐서 길례로 봤었기 때문에, 유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다 길례예요. 그래서 돌아가셨다, 온 곳으로 돌아가셨다, 떠돌아다니시는 분이 돌아가신 거고 그건 길한 거다. 이래서 흰색으로 전송하는 그런 문화가 있어요. 근데 지금은 흰색으로 하면 그게 약간 조금 불길한 건가 이렇게 보시는 분도 있어. 흰색은 좋은 거,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 그래서 흰 쪽으로다가 가려고 하는 게 설날 의례에서 나온다는 거고. 그래서 떡국을 먹어서 전체를 다 씻겨 내려가는 거예요. 안쪽까지 전부 다. 그리고 팥죽도 똑같은 의미다. 삿된 것들을 전부 물리치고, 이렇게 처리를 하는 거고. 주변에도 뿌리죠. 팥죽을. 원래는 동지시가 있어요. 시가. 그게 메인입니다. 달력에 보면 동지시가 나올 거예요. 그때 팥죽을 싹, 이렇게 집 주변을 싹 뿌리게 돼 있어. 그리고 아파트같이 이렇게 잘 안 되는 경우는 문으로. 그래서 이게 설날 떡국하고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동지 팥죽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리고 그 새알은 태양의 부활을 상징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동지하고 부활은 다 연결이 돼요. 해의 부활. 그래서 기독교도 그 부활 얘기하다가 로마 동지로 이렇게 붙여버리는 거고, 그리고 주역이나 그다음에 주자가례에도 그렇게 나옵니다. 동짓날 시조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자기 집안의 가장 시조, 시작, 시작점에. 그리고 주역에는 7일 래복(來復)이다. 7일만 기다리면 다시 회복된다. 이때부터 이제 양 기운이 차면서 요렇게 올라가기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주역괘 중에서 이 동지괘가 지뢰복(地雷復)괘인데 지뢰복괘가 제일 좋은 괘 중에 하나예요. 그래서 새알이라고 하는 것은 부활의 상징이에요. 그리고 그게 태양의 부활, 다시 떠오르는 태양의 부활. 그리고 알이라고 하는 게 어디든지 다 마찬가지예요. 새로운 탄생 그다음에 더러움 없는 탄생이라는 상징성을 가져. 그래서 우리 시조들이 다 알에서 태어났잖아.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보면 새의 자손, 김알지, 박혁거세, 뭐 할 거 없이 다 알 계열이잖아.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v라인 별로 없고 동그란 얼굴 많고 이런 게 다 그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알과 관련해서 제일 유명한 게 그 데미안이잖아. 데미안. 예전에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그래서 부활한다라고 하는 그 의미, 그래서 그걸 먹으면서 내가 양기를 충만하게, 그러니까 처음 시작할 때 첫 단추를 바로 꿴다라고 하는 게 동짓날에도 있고, 그다음에 설날에도 있는 거예요. 이 두 번 다 있는 거고. 그다음에 동지가 예전에는 음력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해요. 동지가 앞에 들었다가 우리도 설 보면 설이 앞에 들었다가 뒤에 들었다가 이게 막 이러거든. 그래서 달력 받으면 설 도대체 언제 있냐 이거를 좀 보시는 분들도 많이 있거든요. 스님들은 특히 더 봅니다. 왜 어디 성지순례라도 한 번 가려면 설 전에 이렇게 빨리 갔다와애 해서 그걸 또 봐요. 그런데 예전에는 이제 음력 기준이다 보니까 동지가 움직이는 거예요. 설은 붙박이로 있는 거고. 그래서 동지가 11월 초순에 들 때가 있고, 중순에 들 때가 있고, 하순에 들 때가 있어요. 초순은 1일에서 10일 사이, 중순은 10일에서 20일 사이, 하순은 20일에 30일 사이 이렇게. 그래서 초순에 들면 한 살을 더 빨리 먹는대. 조금 더 빨리 먹는대. 그러면 애들이 좋아한대. 애들은 미래지향적이거든. 그러니까 말할 때 보면 젊은 사람인지 나이 든 사람인지를 구분하는 방식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물론 상태만 봐도 아는데 상태는 여러분들이 다 이렇게 젊어 보이기 때문에 요즘 신선술을 배우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얘기예요. 다 그 나이로 보여요. 다 그 다이로 보여. 그래서 젊었을 때는 어린 애들은, 근데 그 말하는 건 진짜 분명히 달라요. 젊은 사람들은 미래지향적인, “내가 뭘 할 거야”라는 말을 자주 하고, 그다음에 연세가 드실수록 과거 이야기를 하는데 과거도 더 옛날로 돌아갈수록 나이가 더 든 겁니다. 그래서 한 50 넘어가면 갑자기 부모님 생각이 나고, 이렇게 그게 급격하게 부모님 생각이 나거나 옛날 생각이 나면 갈 때가 얼마 안 남은 겁니다. 그래서 그럴 때는 자신을 반성하고 수렴하는 생각들을 해야 돼. 그런 정도 상황에 이르렀는데 그건 사람마다 달라. 어떤 분은 에너지가 강력하신 분은 60대까지도 진취적으로 나갈 수 있고, 확장기로 갈 수도 있는 거고, 어떤 분은 40대 중반에도. 그게 탈모랑 똑같은 거잖아. 어떤 분은 30대에도 광활하고, 어떤 분은 50대에도 부모님 유전자가 좋았는가 봐요. 이런 분들 있고. 그다음에 우리같이 이렇게 키 큰 스님들이 이렇게 보면 아무리 여자분들이 이렇게 막 머리를 세워도 위에 헬기장이 이렇게, 잘 사시는가 봐요. 헬기장 났네. 그리고 연세 드신 분들이 이제 조금 귀찮아서 염색 잘 안 하면 위에 만년설 올라오고. 그래서 동지 때, 동지가 좀 일찍 들어오면 애들이 좋아한대. 그래서 그걸 애동지라고 하고, 그다음에 연세 드신 분들은 조금이라도 늦게 나이를 먹는 걸 좋아한대.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 우리 다 나이를 까줬잖아. 어른들을 위해서. 이게 노령화 사회에 굉장한 복을 준 거예요. 근데 고마워하질 않더라고. 그래서 이제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고 하고, 그다음에 중간에 들면 이걸 중동지. 예전에는 동지 주머니라는 문화도 있었어요. 복주머니 문화. 복주머니. 요즘은 동지 주머니가 없어졌는데 동짓날 이렇게 주머니를 주는 문화가 있었었어요. 그리고 주머니를 달아매는 문화도 있었고. 지금은 사라졌는데 저희 어렸을 때만 해도 복주머니는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복조리 많이 있었었어요. 그래서 집에다 복조리를 걸어놓고. 그러니까 이게 도정 기술이 좋아지면서 복조리가 사라진 것 같아요. 그전에는 쌀에 이물질들이 많이 있었잖아요. 돌 같은 거 있고 막 이래가지고, 그래서 이제 조리로 이렇게 이렇게 해가지고 쌀만 잘 뜨게 하는, 무게 차이를 이용해서 그런 거 했었잖아요. 그래서 복만 삭삭삭 건지고 나쁜 거는 날리겠다는 게 복조리 문화야. 그리고 복주머니는 복만 착착착착 담겠다라고 하는 게 복주머니 문화예요. 그래서 복주머니 문화는 동지 쪽하고 좀 더 가까운 것 같아. 그래서 동지 주머니라고 하는 문화가 있어. 그래서 이런 진관사 같이 이렇게 상품 개발을 여기는 계속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 같더라고. 동지 주머니 제가 추천합니다. 지금 올해는 늦었고, 내년쯤에. 그런 문화가 있고. 그다음에 달력을 주는 건 이제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다. 시간의 지배자는 최고 권력자입니다. 그래서 조선의 임금은 최고 권력자가 아니기 때문에, 조선은 자치국이에요. 독립 자치국이었지만 제후국이었어요. 그래서 달력 반포권이 조선에 없었죠. 중국 거를 갖다가 쓰는 거죠. 황제만이 시간을. 그렇다고 해서 속국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나갈 때는 완전히 자치, 황제를 했거든요. 그래서 고려시대 때까지만 해도 황제 칭한 게 상당히 나와요. 그리고 개성 궁궐이 만월대 유적이거든요. 지금 만월대 개성에 고려 궁궐 유적을 보면 문이 5개예요. 임금을 만나러 들어가는데 문이 5개. 경복궁이나 창덕궁은 문이 3개입니다. 뭔 뜻이냐면 문이 3개면 제후국이에요. 문이 5개면 황제국입니다. 근데 중국에 자금성 가시면 문 5개를 통과해야 임금님한테까지 갑니다. 황제국이에요. 그게 오문 체계라고 하는 거거든요. 오문 체계, 삼문 체계라는 게 있어요. 그래서 고려 때는 오문 체계를 쓰려고 해요. 그러니까 황제 같은 걸. 요즘 진관사랑 관련된 드라마 있잖아, 고려 거란 전쟁. 그런 걸 보면 굉장히 자주적인 모습들을 고려는 보였었어요. 조선이 그게 따라지 국가라니까. 조선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왕조예요. 사실. 두드려 맞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기어. 이런 나라는 내가 생전에 처음 보는데, 알아서 기어. 나라 문 닫을 때도 전쟁을 해서 진 것도 아니고 그냥 알아서 조약으로 져. 제가 그런 얘기하잖아. 조선 국민은, 조선 백성은 자기 나라가 망한 줄 몰랐다. 진짜예요. 그러니까 한국전쟁같이 이런 상황에서 나라가 망하면 우리가 이래서 망했는가 봐. 조약으로 망하면 그건 너무 좀 심하지. 그건 약간 미개한 나라들이 끝날 때 나타나는 현상이거든. 그러니까 제대로 된 어느 정도 힘이 없는 나라들, 그렇게 되는 거지. 그래서 좀 조선이라는 나라가 슬퍼. 그래서 달력 시간에 대한 권한이 조선에 없었어요. 그래서 중국의 명나라나, 청나라 그쪽에서 황제가 달력을 반포하면 그 달력을 갖다가 다시 나눠줘요. 그래서 그런 걸 보고 청장력, 황장력 뭐 이렇게 합니다. 그래서 문무 백관들에게 달력이 딱 돌아가면 그게 다시 민간까지 쫙 퍼지게 되는, 그래서 시간의 지배자라고 하는 것이 사실 세계의 지배자라는 인식이 예전에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영국이 잘 나갈 때 그리니치 천문대를 중심으로 해서 시간의 지배자가 됐었잖아. 그러고 보면 그러니까 기준의 지배자라고 하는 거는 뭐든지 다 강력한 것 같아. 지금 우리가 미터법 쓰는 거는 프랑스잖아. 프랑스에서 만든 거잖아. 프랑스에서 이렇게 동의를 구해서 만든 거잖아. 그러니까 그런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거는 사실은 굉장한 자부심이 있는 거는 같아. 그래서 미국은 미터법 안 쓰잖아. 동지라고 하는 게 실제로는 태양의 시작, 그다음에 시간의 시작, 한 해의 시작. 그래서 그것만 말씀드릴게요. 이제 다 끝났으니까. 동지 때 한 살 더 먹는다는 풍습이 그래서 존재한다더라. 그리고 동지에는 세시 풍습이 있다. 그 이유는 뭐냐. 주나라 때 설이 동지였기 때문에. 설날이 동지였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는 이때만 동지를 지내는 게 아니고, 크리스마스라는 또 다른 동지, 로마 동지를 또 지내고 있다. 주나라 동지를 한 번 지나고 나서, 로마 동지를 또 지내고. 다 망한 나라 이게 이제 다 끝난 나라들인데 참 그걸 또 이렇게 두 번이나 한다는 것도 재밌고, 그렇기 때문에 이때 한 살 더 먹는다라는 풍속이 존재한다더라. 실제로는 태양 숭배의 문화에 입각해 있다더라. 그래서 이때 한 살 먹는다는 풍습이 있고, 그다음에 양력설에 한 살을 먹는다는 이야기가 있고, 음력설에 한 살 먹는다는 이야기가 있고, 그렇지만 띠는 입춘에 바뀐다더라. 띠는 입춘에 바뀐다더라. 그러니까 동지 지나고 설 지나고 나도, 입춘은 2월 4일 이때쯤 또 들어요. 그래서 설보다 뒤에 들 때도 있고 앞에 들 때도 있고. 또 이것도 양력이에요. 그래서 설 기준이 아니에요. 설 기준이 아니야. 그래서 띠가 바뀌는 거는 또 입춘 기준이에요. 그거는 또 다른 기준 때문에 그래요. 이게 기준들이 섞여 있는 거. 왜 이렇게 복잡합니까? 예전 왕조들이 하나로 한 게 아니고, 어느 정도 강력하면 지 색깔을 자꾸 내서 그래. 그러니까 제가 그런 얘기하잖아요. 우리 시계를 보면 그 흔적이 남아 있다. 60초라는 60진법, 12시라고 하는 12진법 체계가 남아 있고, 그다음에 10진법 체계가 있고 이 3개가 막 섞여 있거든요. 그래도 혼란스러워하진 않아. 익숙하면. 근데 동지, 입춘, 설, 이런 식으로 혼란스러운데, 지금은 왜 혼란스럽냐면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요.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데 기준은 그렇다더라라고 하는 것은 이해를 해 주세요. 그래서 꼭 연말연시 되면 그게 있어요. 해가 바뀌면서 폭죽 터뜨리고 막 하면서 무슨무슨 해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날 새해 아니다. 아직 그 해 안 왔다. 아직 그 해 안 왔다. 그 해는 입춘에 온다. 입춘에 온다. 그래서 제가 띠도 바꿔드린 적 있고. 보살님이 자기 띠를 몰라. 왜냐하면 설 뒤에 태어나니까. 근데 입춘 기준인 거 모르면 자기 띠를 헷갈린다니까. 그래서 제가 뭐라고 얘기하냐면 이런 거 복잡하고 어려우면 동지부터 입춘 때까지는 애 낳지 마세요. 그래서 환갑돼서 띠 안 분도 있어요. 저 때문에. 환갑잔치한다고 그래서 내가 뭐라 그러냐면 축복이다. 환갑을 두 번 챙겨 먹는. 당신은 환갑 두 번이다. 그래서 동지에 대한 이야기 기본적으로 이렇게 알아두시고, 어떤 시작점에서 자신을 바로하고 그다음에 삿된 것들을 물리치려고 하는 그런 의미는 어디에나 다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동지를 맞아서 동지 불공도 올리고, 그다음에 좋은 기운들, 그 태양으로부터 시작되는 좋은 기운들을, 양명한 기운을 받으면 삿되고 음한 것들은 스스로 물러난대요. 그리고 그런 식의 유풍이 나중에 정초기도 때도 한 번 더 들어와요. 그리고 그걸 작게 들이면 어디로 들어가는 거냐면 초하루 보름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기점에서 들어가는 거고. 그래서 뭐가 있냐면 일련의 모든 안 좋은 것들은, 액란은 정초에 도약한다라고 하는 게 있어요. 그리고 한 달에 안 좋은 거는 월초에, 살다 보면 노력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고 이게 그런 거 있어. 나는 운전을 똑바로 했는데 저놈이 끼어들어와 가지고 문제를 일으킨 거야. 인생의 이 돌발이 더 짜증 나요. 내가 잘못해서 문제를 일으키면 덜 짜증 나, 납득이 되거든. 그리고 내가 원인자이기 때문에 그냥 미안한 거예요. 그런데 상대적 돌발로 인해서 이런 문제들이 벌어졌을 때는 굉장히 안 좋아, 기분이. 그래서 제가 얘기하잖아. 인생이 고스톱하고 똑같아요. 든 패도 잘 들어야 되지만 뒷장이 얼마나 맞느냐가 굉장히 중요해. 그 뒷장과 관련돼서 이런 것들이 작동을 한다니까. 앞장은 내가 노력과 관련된 부분이고. 노력한다라고 다 되는 게 아니에요. 그게 조상과 관련되면 조상의 음덕이라고 하는 거고, 음덕이 있으면 양보가 생겨, 양의 과보가 생겨. 눈에 보이는 과보가 생기는 거고. 그다음에 이제 불교적으로는 명훈가피, 안 보이는 상황에서의 부처님의 가피, 이렇게 해서 일이 잘 유도리 있게 잘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 작용을 하는 거고. 그리고 이제 전통적으로는 쇳복, 쇠복이라는 뜻이에요. 돈복이라는 뜻이에요. 들어보셨어요? 세복, 이런 거 들어보신 분들은 이제 다 인생 잘 정리하셔야 돼요. 인생의 전환점을 이미 건넌 겁니다. 저는 90년대생이라서 제가 아는 건 저는 공부해서 안 거예요. 들어서 안 건 아니고 공부해서 한 거예요. 그래서 어떤 의미적인 부분에 있어서 그런 시기나 이런 것들이 있을 때 자신을 바로 하려는 생각을 한다는 거는 참 귀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마음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유지되는 게 좋고, 죽은 뒤에 다른 세계가 있다면 거기서도 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바르게 하려고 하는 그 마음, 그것의 귀함을 찾는 시간이 동지라는 말씀드리면서, 여러분들 동지 때 기도 열심히 하시고, 댁내에 행복과 부처님의 가피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리면서 오늘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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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식] 회주계호스님 포교대상 고불식 법문
회주 계호스님 2023-12-13
뭐라고 말씀드려야 될지 모르겠네요. 너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출가해가지고 살아가면서 ‘이게 절집 생활이 정말 제 생활이구나’, 한 번도 후회해보거나 한 번도 ‘내가 왜 여기 와서 이렇게 살지’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쭉 이어져가지고, 한 번도 환희롭지 않은 날이 없었고, 살아가면서 내가 ‘이 수행이 바로 삶이고, 내 생활이 바로 수행이구나’ 하는 걸 절절히 느끼면서, 오늘은 완전히 극락정토 연꽃 화장세계에 앉아 있습니다. 아까 우리 주지 스님이 <법등 계호>라 그랬죠. 네 제 호가 법등(法燈)이에요. 법 법자, 등불 등자예요. 법을 쭉쭉 이어나가 불법을 전하는 게 다 이 이름에 들어있어요. 우리 주지심은 뭐예요? 법해죠. 법 바다에요. 그러니까 사형사제가 아닐 수가 없어요. 우리 은사스님께서 “야, 법해가 네 상좌인 줄 아니” 그 말에 저는 항상 ‘제 상좌가 아닌데요. 사제인데요.’ 속으로 그러는데도, 잘 지내니까 좀 우리 스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근데 그게 정말 나쁜 말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제가 살아오면서 우리 스님이 참 알게 모르게 저희들을 이렇게 키우신 것이, 우리집 도반 스님들도 그렇고, 부잣집 절에, 잘난 절에, 잘난 은사 스님 밑에 살아가지고 맨날 그게 부러워가지고, 맨날 부자 절이라 그래요. 그렇지만 저는 부자 절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저희 마음이 부자인 줄은 알지만은, 부자 절은 아닌데 부자 절이라 하니까, 기도 잘하고, 신도들 많고, 또 스님네들이 많으니까 은근히 그게 조금 저기 한가 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자부심을 갖고, 진관사, 이렇게 대중들 모이고 스님네들 모이고 또 보살님들이 갖추어진 도량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래서 오늘 12월달은, 2023년 계묘년 12월 회향의 달이잖아요. 이 회향의 달은 사실은 2024년 갑진년을 준비하는 달입니다. 내년에 우리 주지스님 갑진해에요. 그래서 좌청룡 우백호가 모여있어요. 좌청룡은 재와 복을 불러들이고, 우백호는 나쁜 모든 재앙을 물리친다 그랬거든요. 복과 재물을 불러오는 건 용이고, 물리치는 건 호랑이예요. 그러니까 자연히 우리는 신장이 안 될 수가 없어요. 여러분들 제가 어제 그랬잖아요. 여러분들은 저희들이 신장님이 되어 주고, 저희는 여러분들이 신장이 돼가지고 앞으로 많은 일을 하면서 불법을 전하는 불자가 되어야 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오늘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제가 양주의 학에 대한 고사를 한번 말씀드릴게요. 양주의 학이에요. 옛날에 선비 4명이 자기의 소원을 이제 쭉 얘기하는데, 어떤 선비 하나는 “저는 아름답고 유명한 양주 고을의 자사가 되고 싶습니다.” 자사는 뭐예요? 요새 말하면 도지사나 뭐 이런 벼슬아치잖아요. 그러니까 두 번째 선비는 “저는 그만두고 거금, 그러니까 큰 금, 돈을 가지고서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또 한 사람은 뭐라고 얘기하냐면은, “저는 부귀 영화 다 싫고 신선이 돼가지고 학처럼 날고 싶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세 사람 소원은 다 얘기를 했죠. 양주 자사가 되고 싶고, 거금의 돈을 가지고 싶고, 그다음에 신선이 돼가지고 학이 되고 싶다 했는데, 마지막 한 사람은 뭐라고 그러냐면, “자기는 큰 돈을 허리에 두르고, 신선이 돼가지고, 학이 돼가지고, 양주 자사로 부임하고 싶다.” 그랬어요.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죠. 세상에 욕심은 한도 끝도 없어요. 100억 가진 사람이 99억만 있는데 1억이 모자라니까 남의 거 뺏어가지고 100억 채우려고 하잖아요. 그렇듯이 우리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어요. 그러니까 마음의 욕심을 다 버리고 탐심의 욕심의 불은 삼계화택(三界火宅)과 같다 그랬어요. 이 불을 뭐로 꺼야 되나. 이 탐심의 욕심은 보시의 물로 꺼야 돼요. 보시물. 그다음에 진심 내는 거는 인욕의 물로 꺼야 됩니다. 참아야 된다 얘기예요. 그럼 어리석음은 뭘로 꺼야 되겠죠? 지혜의 물로 꺼야 돼요. 지혜. 그러니 우리는 항상 보시와 인욕과 지혜가 필요해요. 바꾸어 말하면 자비, 지혜, 원력이에요. 항상 자비와 지혜와 원력을 가지고서 모든 사람을 대하면 이게 다 나의 원이 되고, 여러분의 원이 되고, 모든 사람의 원이 돼서 앞으로 불교 발전은 따놓은 당상입니다. 안 해서 그렇지. 그렇죠. 하지 아니하면정 불가능한 건 없다 그랬어요. 불위야언정 비불능야(不爲也 非不能也)라. 제가 항상 말하는 게 자비보시는 시법왕자(慈悲布施 是法王子)라 그랬습니다. 아끼고 아끼는 거는 모든 마구니의 행동이고 보시하는 것만이 왕자라고 했듯이, 우리가 모든 걸 가지고서 베푸는 것밖에 없어요, 남는 거는. 주는 거, 베푸는 거, 보시하는 거. 자비와 베풂과 공덕과 지혜가 원력이 가지고 있으면은 다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들이 안 된다고 하는 거는 안 해서 그렇지, 정말로 못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오늘 제가 쭉 출가해가지고 강사도 돼봤고, 학감도 돼봤고, 또 주지도 돼봤고, 종회의원도 돼봤고, 명사도 돼봤고, 칠증사도 돼봤고, 인례습의 다 해봤고, 포교대상도 탔습니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여러분들과 함께 부처님되는 일입니다. 아셨죠.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우리 같이 부처님 되시고. 절로 절로 저절로. 어저께 원장 스님이 너무 많이 하니까 시끄럽다고. 그래서 제가 너무 죄송했고. 오늘 저희 스님이 저렇게 턱 앉아서 “야 니네들 아무리 잘한대도 나한테 뭐한 게 있니.” 여태까지 했습니다, 잘했어. “앞으로 더 잘 할게요, 스님. 정말 스님에게 누가 되지 않는 제자들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정말 저는 그래요. 자기 권속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같이 살면 사형사제고, 조금 연세가 많으면 사숙이고 조금 나이가 더 적으면 조카예요. 자기 상좌, 자기 동생, 자기 뭐 사제, 자기 이런 건 없어요. 다 우리가 천지가 동근이라 그랬고, 만물이 다 똑같다 그랬어요.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자연을 본받는다 하는데, 자연스럽게 살아가면서 열심히 정진하고 부처님 됩시다. 저하고 원력을 갖춰서 꼭 그렇게 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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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재] 11월 18일 49재 법문
종범스님 2023-11-18
금일 영가 지심제청(至心諦聴) 지심제수(至心諦受) 諸法無眞實 妄取眞實相 제법이 무진실이어늘 망취진실상하야是故諸凡夫 輪回生死獄 시고제범부가 윤회생사옥이로다나무아미타불(화엄경, 수미정상게찬품) 不見諸法空 恒受生死苦 불견제법공 항수생사고斯人未能有 清淨法眼故 사인미능유 청정법안고 불교는 깨달음인데, 깨달으신 삼세제불, 역대조사, 천하선지식이 깨달은 바가 무엇인가. 영명성심(靈明性心)이라. 신령 령, 밝을 명, 신령스럽고 밝은 본성의 마음을 깨달았다. 성품 성, 마음 심. 영명성심. 또 진여원각(眞如圓覺), 참 그대로 둥글게 아는, 둥글 원, 느낄 각, 둥글게 아는 그 마음을 깨달았다. 한마디로 마음을 깨달았다 이거죠. 마음을 깨달아서 뭘 얻었나. 마음을 깨닫고 보니까 상락정토(常樂淨土)가 나타나더라. 항상 상, 즐거울 락, 깨끗할 정, 흙 토. 항상 즐거운, 다른 이물, 잡용물이 하나도 없고, 본래 그대로 청정국토가 나타나고, 극락 세대가 나타나더라. 즐거웠다 괴롭다 하는 게 아니라, 지극히 즐거워서 즐겁지 않은 곳이 없고, 즐겁지 않은 시간이 없는 극락세계가 나타나더라. 이것이 삼세제불, 역대조사, 천하선지식이 깨달은 바인데, 깨달아서 뭘 어쩌라고. 세상에서도 누가 길을 열심히 내서 닦아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힘 안 들이고 그 길을 가듯이, 이 부처님이 깨달은 이 마음과 이 세계를 믿는 사람은 가게 돼 있고, 안 믿는 사람은 못 가게 돼 있다 이거죠. 아무리 좋은 곳을 쉽게 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그 길을 믿지 않고 안 가면 소용이 없는 거죠.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 깨달은 세계고, 오늘 재를 지내는 원리입니다. 처음에 게송으로 말씀드린 것은 화엄경 수미정상게찬품인데, 뭐라고 했냐. 제법은 무진실이라(諸法無眞實).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하는 모든 현상은 진실한 것이 없다. 무상하고 허망해서, 생겼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생기고 이런 것인데, 지혜가 없는 범부 중생이 쓸데없이 그 제법 현상에 진실상을 일으키고 있다라는 거거든요. 제법이 뭐냐. 가까이는 우리 몸이죠, 몸. 조금 멀리는 눈에 보이는 거고. 이 몸이나 눈에 보이는 거나 진실한 게 하나도 없고, 영원한 게 하나도 없고, 정해진 게 하나도 없는데, 그게 그런 줄을 모르고, 이게 내 몸이라 오래 갈 것이고, 눈에 보이는 게 저게 보통 게 아니고 여러 가지 사물이 꼭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허망하고 무상한 것을 구하다가, 구하다 구하다 구하는 마음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니까, 막상 이 코에 숨이 떨어지고, 머리에 의식이 끊어지는 순간에 가만히 생각을 하니, 내가 지금까지 구하고 이룬 것이 이 죽음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많은 걸 이루고 많은 걸 구했는데, 구한 것도 이 숨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고, 이룬 것도 자기 목숨 하나 떨어지는 걸 어떻게 구제할 수가 없다. 이걸 이제 깨달아서 대부분 후회하고, 후회가 깊으면 눈물을 흘리죠. 그래서 돌아가시는 분 대부분 보면 말은 못 해도 눈물을 줄줄 흘리는 분이 상당히 많아요. 왜 그러냐. 지금까지 구하고 이룬 것이 내 죽음을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이거거든요. 그럼 내가 뭐 하러 그걸 했나. 이게 참 큰 인생 일대사여. 그래서 모든 범부가 윤회생사옥(輪回生死獄)이라. 윤회생사옥. 나고 죽는 감옥에 오고 가고 오고 가고 되풀이를 한다. 생사를 감옥으로 보죠. 생사옥. 윤회는 계속한다 이거죠. 나고 죽고, 죽고 나고. 그러면 뭐가 이제 되느냐. 여기서 깨달음을 얻으신 불조(佛祖)께서는 生也只伊麽 死也只伊麽 생야지이마 사야지이마生死與涅槃 總不干者箇 생사여열반 총불간자개라緣生水裏月 想變夢中人 연생수리월 상변몽중인火消烟滅後 還我本來身 화소연멸후에 환아본래신이로다나무아미타불(진각국사법어. 한불전6, 23중) 일체중생에게 생사 없는 본래신(本來身)이 있다. 이게 이제 불조가 깨달은 몸이죠. 본래신.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받은 몸이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받기 전부터 있었고, 이 몸이 숨진 후에까지 있는 본래신이 있다. 그 본래신이 영명성심, 진여원각인데, 그 본래신을 떡 깨닫고 보면, 생야지이마(生也只伊麽)라. 태어나는 것이 그저 이러하다. 이러할 이, 이러할 마자가 있는데, 이러하다. 이러하다라는 게 뭔가. 연못에 달이 비칠 때나, 연못에서 달이 사라질 때나, 그 연못에서 볼 때는 달이 비칠 때도 그대로 연못이고, 달이 사라질 때도 그대로 연못이다. 그걸 이마라고 그래요. 이마. 이 손이 하나 있는데 이 손가락을 폈을 때도 그냥 손이고, 손가락을 오므렸을 때도 그냥 손이지, 폈을 때 손하고 오므릴 때 손하고 다른 것이 전혀 아니다. 이게 이제 깨친 분들이 가르쳐주는 말씀이죠. 죽는 것도 이러하다. 생사 열반이 생사는 나고 죽는 거고, 열반은 불생불멸인데, 나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닌 것인데, 그게 총불간자개(總不干者箇)라. 이 영명성심에 전혀 해당이 안 된다. 근데 연생은 수리월(緣生水裏月)이요. 인연에 의해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고, 세상 생활용품의 모든 도움을 받아가지고 살아가고 하는 것이 이게 연생인데, 인연 연자, 날 생자. 그거는 수리월이라. 물 수자, 속 리자, 저 물속에 비친 달과 같다. 또 상변은 몽중인(想變夢中人)이라. 생각 상자, 변화할 변자. 변이라는 건 나고 죽는 거죠. 나고 죽는 걸 생각하는 것은 그 영명성심을 모르고, 나고 죽고 죽고 나고 이것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몽중인과 같다. 꿈 몽자, 가운데 중자, 사람 인자, 꿈속에서 꿈꾸는 사람과 같다. 몽중인이라. 화소연멸후(火消烟滅後)에, 여러 가지 이것저것 생각이 다 사라지고 지혜가 나타난 후에, 환아본래신(還我本來身)이라. 나의 본래신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이제 불교에서 이 마음을 가르칠 때, 보는 데 매이고, 듣는 데 매이고, 생각하는 데 매이고, 움직이는 데 매이는 마음을 밝은 지혜가 없다라고 해서 무명심(無明心)이라고 그래요. 없을 무자, 밝을 명자. 그리고 사물은 없고, 색이 공하고, 일심이 원명이라, 한마음이 둥글고 밝다. 이걸 보는 거를 반야심(般若心)이라 그래요. 색이 공함을 본다.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이라.공이라는 건 불생불멸인데 불생불멸을 비추어 본다. 이걸 반야라고 한단 말이에요. 반야는 누구냐, 보살인데, 무명은 범부고. 보살은 산도 보고, 사람도 보고, 하늘도 보고, 땅도 본다. 거기서 관공(觀空)을 해요. 공을 본다. 하늘을 볼 적에도 공을 보고, 불생불멸을 본단 말이죠. 죽음을 볼 때도 불생불멸을 보고, 태어남을 볼 때도 불생불멸을 보고, 관공을 하는데 범부는 집상(執相)을 한다. 붙잡을 집, 형상 상. 형상을 집착하니까 범부라 그러고, 사물 속에서 공을 보니까 보살이라 그래요. 뭘 봐도 죽음이 불생불멸이다, 이걸 딱. 이게 조견오온개공이라고, 오온이 다 공함을 본다. 이게 보살이거든요. 근데 제불은 일광변조(日光遍照)라, 한 광명이 두룻이 밝아서 보고 안 보고가 없어요. 그걸 보리(菩提)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그걸 대광명이라고, 절에 가면 석가모니 부처님 모신 곳, 부처님 모신 곳을 대광명전 뭐 이런단 말이죠. 그건 일광이 변조라. 그 마음 광명이 온 시방 법계를 항상 두룻이 비추니까 그걸 보리라고 한다 이거야. 근데 무명심 속에도 영명성심이 있다 이거죠. 신령스럽게 밝은 본성의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그 본성의 마음이 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또 머리로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하고, 행동하고 하는 그걸 쫓아가고, 쫓아가고, 쫓아가다 보면 이 생각이 텅 비었어요. 생각이 없어요. 생각이란 뜬구름과 같아서 뜬구름을 자세히 보면 구름은 없고 허공뿐이다. 그래서 생각을 딱 들여다보면 생각은 없고 지혜뿐이다. 그래서 그 지혜를 얻고 나면 이 보는 놈도 본성의 마음이다 이거죠. 그런데 지혜를 얻기 전에는, 그게 본성의 마음인 줄 모르고 보는 대상에만 쫓아가요. 쫓아가도 쫓아가도 끝날 날이 없어서,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빈 마음을 가지고 산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그 나이가 됐는데 왜 욕심을 부리냐 그러니까 그거 생판 모르는 소리여. 이 욕심은 나이가 없어요. 욕심은 체면도 없어요. 욕심은 한계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게 보면 더 보려고 그러고, 받으면 더 받으려고 그러고. 그 어떤 부모들은 ‘그만큼 해줬으면 됐지 왜 더 바라느냐’, 생판 모르는 마음이에요. 받으면 더 받으려고 하는 게 욕심이에요. 그러니까 어중간하게 주려면 아예 안 줘야 돼요. 아예 안 주면 원망도 없고, 고마움도 없고, 그거 얼마나 좋아요. 줬다가는 더 받으려고 그래요.그거 참 희한한 게 마음이에요. 받으면 더 받으려고 그런다. 멈춤이란 없다. 채우면 더 채우려고 그런다. 멈춤이란 없다 이거죠. 근데 그런 마음도 더 들어가고 들어가고 보면 뜬구름이라, 자취가 없어요. 그럼 자취 없는 속에 뭐만 남는가. 둥글고 밝은 지혜만 남는다. 그래 둥글고 밝은 지혜만 남을 때 그걸 보는 마음이 아니라 두룻이 밝은 마음이라고 광명변조심이라 그래요. 광명이 두룻이 밝은 마음이다. 부처는 그런 분들이다.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거죠. 평소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지금 듣고 계신데, 들을 만해요? 그러면 대단한 거예요. 이런 얘기를 듣고 들을 만 하면 대단한 거예요. 그래서 이런 걸 이제 가르쳐주는 것이 부처님, 또 역대 조사, 천하 선지식의 가르침이다, 이런 말씀이죠. 事事物物 隨緣沒生 覺所現發 性覺靈明 사사물물이 수연몰생이니 각소현발이라 성각영명이로다.自己本性 先天後天 行住坐臥 明明新新자기본성이 선천후천이니 행주좌와에 명명신신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사사물물(事事物物)이, 온갖 세상 물건들이 수연몰생(隨緣沒生)이라, 인연 따라서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게 뭐에, 사물에다가 아주 목적성과 절대성을 부여하면 나중에 슬픔이 생겨요. 수연몰생이기 때문에, 인연 따라서 생긴 거니까, 인연 따라서 사라져요. 근데 몇백 년 전에 돌아가신 조상 자랑하는 사람도 아직 있어요. 몇백 년 전 조상은 그 시대의 인연으로 사라졌어요, 그 시대 인연으로 생겼다가. 이걸 가르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러면 온갖 사물이 과연 뭐냐. 각소현발(覺所現發)이라, 각은 마음인데 현발은 나타난 것이죠. 소는 장소라. 마음이 나타난 장소다. 이게 깨달은 분만이 할 수 있는 말인데, 그럼 이거(종이) 이렇게 보면, 이거 이제 사물로 보는 거는 무명으로 보는 바고, 깨달음으로 보는 바는, 이거는 뭐 종이니 뭐 글자니 그게 아니라 마음이 나타난 장소다 이거예요. 각소현발. 하늘이 저기 하늘이 아니라 내 마음이 나타난 장소다.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 내 마음이 나타난 장소다. 근데 범부는 사물만 있고 각이 없다. 근데 알고 보면 모든 사물이 각소현발이라, 이 마음이 나타난 장소일 뿐이지, 그 사물 자체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라, 자체가 없다. 이걸 가르치는데 우리 범부가 알지를 못한단 말이죠. 이게(물컵) 이렇게 보면 이게 그릇이 아니라 그릇은 공한 것이고, 이 마음이 여기에 떡 나타난 장소다. 그래서 이걸 또 이렇게 들어보이는 게 이게 너의 마음이다. 이걸 가르치려고 보이는 거예요. 그릇 구경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라. 큰 스님들 법문할 때 보면 뭐 보이는 게 있거든요. 이게 바로 네 마음이 나타난 장소다. 형상에 따라가서 형상에 매달리면 허망한 슬픔만 있을 뿐이지 결과는 없다. 이걸 가르치는데, 이게 참 믿으면 바른데 안 믿으면 안 돼요. 자기 본성(自己本性)이, 자기 본래 성품이 선천후천(先天後天)이라, 하늘보다 먼저 있었고 하늘보다 뒤에까지 있다. 이걸 가르치는 거예요. 선천후천. 선이라는 거는 이거는 명사가 아니고 동사, 하늘보다 먼저 있었고, 후천, 하늘보다 뒤에까지 있다, 이거거든요. 행주좌와(行住坐臥), 돌아다닐 때나 멈춰 있을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명명신신(明明新新)이라, 밝을 명, 새로울 신, 밝고 밝고 새롭고 새롭다. 어제도 이 그릇을 봤는데 오늘 보는 마음은 어제 마음이 아니에요. 오늘 마음이요. 내일도 그릇을 보면 이게 내일 마음이 아니라 바로 그 당시 마음이란 말이죠. 이걸 신신이라 그래요. 마음이란 늙음이 없다. 마음이란 죽음이 없다. 그러니까 항상 새로울 뿐이다, 이 말이죠. 명명신신이라. 이 마음이 되면 극락세계 아닌 데가 하나도 없어요. 티끌도 극락이고, 죽음도 극락이고, 삶도 극락이고, 숨을 내쉬는 것도 극락이고, 들여 쉬는 것도 극락이고, 하늘을 볼 때도 극락이고, 땅을 볼 때도 극락이고, 이걸 이제 깨달아서 상락정토 극락세계라 하는 거거든요. 一念忘時明了了 彌陀不在別家鄉일념망시명요료하면 미타부재별가향이로다通身坐臥蓮華國 處處無非極樂堂 통신좌와가 연화국이니 처처무비극락당이로다나무아미타불(나옹가송, 한불전6,742중) 이 법문은 고려 말에 나옹 큰스님께서 남겨주신 법문인데요. 나옹집에 수록되어 있는 법문인데, 일념이 망시(一念忘時)에, 여기서 일념이라는 것은 밖으로 집착하는 한 생각, 밖으로 집착하는 한 생각이 딱 없어졌을 때, 명요료(明了了)하면, 그 본래 청정하고 밝은 지혜가 밝게 밝게 탁 나타나면, 미타부재별가향(彌陀不在別家鄉)이라, 아미타불이 저 딴 데 있는 게 아니고 바로 눈앞에 있다, 이 법문이에요. 통신좌와(通身坐臥)가, 온 몸이 안고 눕고 하는 게, 극락세계니, 연화국(蓮華國)이니, 처처무비극락당(處處無非極樂堂)이라, 곳곳이 극락당, 집 당자, 극락집 아닌 곳이 없다. 이게 이제 나옹 스님 법문이에요. 천하 선지식의 가르침이다, 이 말이죠. 그러니 극락 얘기는 이만하면 충분하고, 오늘 영가가 이제 가실 일밖에 없어요. 금일 영가 지심제청(至心諦聴) 지심제수(至心諦受) 般若淨土 極樂世界 菩提淨土 極樂世界 반야정토 극락세계 보리정토 극락세계涅槃淨土 極樂世界 西方淨土 極樂世界열반정토 극락세계 서방정토 극락세계에一念信心 一念信心 直得往生 速得往生일념신심 일념신심으로 직득왕생하시고 속득왕생하십시오나무아미타불 극락은 정토인데, 청정국토인데, 어떻게 하면 청정이 되냐. 반야심이 되면, 색이 공함을 딱 보면 거기에 극락세계(極樂世界)가 나타난다. 그걸 반야정토(般若淨土)라고 한다 이거지. 또 극락은 보리인데 광명이 두룻이 세상을 비출 때 극락 아닌 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걸 보리정토(菩提淨土)라 그런다. 극락은 열반인데, 열반은 불생불멸 상주정토, 나고 죽는 게 아니고 항상 있는 정토인데, 그 열반정토 극락세계(涅槃淨土 極樂世界), 또 극락은 서방정토(西方淨土)인데, 서방이라는 건 비유인데 백방이라. 흰 것을 서로 표현하거든요. 그래서 극락세계에 떡 가고 보면 극락은 본래 더러워진 일이 없더라. 그걸 서방정토라고 그래요. 본래 청정. 꿈을 딱 꿀 때는 온갖 나그네가 됐는데, 꿈 깨고 나니까 본래 집주인이더라. 이거와 똑같은 거죠. 극락에 가고 보니까 본래 청정해. 그래서 그걸 서방정토라고. 그래서 보통 염불을 할 때는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말하거든요. 그게 그 뜻이에요. 가고 보니 본래 극락에서 벗어난 일은 본래 없더라 이거에요. 서방정토.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오늘 영가께서 일념신심(一念信心)으로, 한 생각으로 믿는, 두 생각, 세 생각은 안 되고 한 생각으로 믿는 신심으로, 또 한 생각으로 믿는 마음으로, 직득왕생(直得往生)하시고, 곧 직자, 얻을 득자, 얻을 득자는 어조사, 바로 딴 데 둘러 가지 마시고 바로 그곳에 가서 태어나시고, 속득왕생(速得往生)하소서. 속히 그곳에 가서 태어나십시오. 오늘 법문 다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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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기도] 11월 13일 초하루 신중기도 입재 법문
도혜스님 2023-11-13
유튜브 링크 : https://youtu.be/_jiwiPqptok?si=tXZE0Qfg3yFVn26w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보현행원품을 이제 쭉 초하루마다 해왔습니다. 오늘은 참제업장(懺除業障)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종교라고 하는 것은 이고득락(離苦得樂)을 근본 목표로 합니다. 이고득락이라고 하는 것은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게 한다, 그러한 뜻이죠. 이제 사찰을 찾고, 성당을 찾고, 교회를 찾는 여러분들의 그 마음 저변에는 고통이 없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 아마 자리 잡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보통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운명이다> 이런 말을 흔히들 많이 합니다. 이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수많은 생 동안 반복적으로 한 행동 에너지, 언어 에너지, 의지 에너지가 모여서, 쌓이고 모여서 힘을 형성해서 여러분이 살아가는 데 루트를 만들어 놓은 거예요. 지금 현재 여러분은 그 루트에 따라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여러분이 전생에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뭘 하다가 왔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억울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은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나한테는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까, 또 뭐 심한 병이 들었다 하면, 다른 사람은 멀쩡하게 잘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또 뭐 암에 걸려서 힘들까, 이렇게 해서 고통스럽고 슬프고 힘들고 그렇죠. 그렇다면 여러분이 자기가 살아가는 이 루트가 마음에 안 든다, 좀 다른 사람들처럼 잘 먹고 잘 살아보고 싶다, 이러한 루트를 바꾸고 싶다 이 말이죠. 그러면 그 바꿀 수 있는 비결, 방법 이것이 바로 참제업장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나는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 나는 어떻게 하든 다른 사람보다 좀 뛰어나게 잘 살고 고통도 없이 살고 싶다, 이런 마음을 가진다면 여러분이 먼저 자기 마인드를 바꿔야 됩니다. 그럼 어떻게 바꿔야 되느냐. 첫 번째는 고통이 만들어질 수 있는 그러한 행동을 앞으로는 안 해야 된다 이 말이죠. 미리 방지를 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이미 만들어져서 나에게 올 고통의 원인을 부지런히 제거를 해야 되겠죠. 그래야만 나에게 고통이 오지 않고 여러분이 바라는 행복만 여러분에게 닥쳐올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제 첫 번째 미연에 방지를 하는 방법, 고통이 올 원인을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부터 말씀을 드립니다. 화엄경 십지품에 보면, 부처님께서 뭐라고 말씀을 하셨느냐면은, 10가지 십악업이 있는데, -여러분이 기도할 때 외우시는 그 천수경 속에 십악업 참회가 있죠. 그 십악업입니다.- 이 십악업을 짓게 되면은 상도는 지옥의 씨앗이 되고, 중도는 아귀의 씨앗이 되고, 하도는 축생의 씨앗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살생에서부터 끝에 부분까지 다 조목 조목마다 상중하의 상중하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살생을 하더라도 만일 이 살생을 중하게 하게 되면, 일반 무슨 뭐 고기라든가 이런 것도 죽이지만, 사람을 죽인다든가 이러한 아주 중죄를 짓게 되면, 그것은 바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 되고, 그 중도는 이제 아귀의 씨앗이 된다 그랬죠. 이렇게 해서 10가지에 다 해당이 되는데, 그렇게 지옥에 떨어졌다가, 또는 아귀에 떨어졌다가, 축생에 떨어졌다가 그런 것을 다 이제 받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두 가지 과보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해당되는 과보만 소개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 살생(殺生)을 하게 되면은 두 가지 과보 중에 첫 번째는 수명이 짧아요. 그리고 두 번째는 병이 많습니다. 그래서 평생 골골 병이 몸을 안 떠나고 그야말로, 요즘 말로 하면 종합병원입니다. 그러고 사는 거죠. 그다음에 두 번째는 도둑질인데 도둑질을 하게 되면 첫 번째는 가난하게 산다. 그냥 가난한 게 아니라, 말로 하자면 찢어지게 가난한 겁니다. 근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돈만 들어왔다 하면 뭐 병이 나든지, 뭐를 하든지 하여튼 나가지 손에 돈이 붙어 날 수가 없어요. 그다음에 두 번째는 뭐냐. 만약에 재물이 조금 있다고 한다면, 그건 공동의 재물이 돼서 내가 쓸 수가 없어요. 이것이 이제 그 도둑질의 과보가 되는 겁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사음(邪婬)의 과보인데, 사음의 과보는 첫 번째는 정조를 지키는 아내를 갖지를 못해요. 그럼 여러분들이 우리 보살님들, 여성 불자님들은 남편이 바람을 피웁니다. 바람둥이 남편을 만나는 거죠. 여러분들이 아무리 잔소리를 하고 뭐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 두 번째는 친족들이 내 뜻을 따라주지 않아요. 네 번째 거짓말을 하게 되면 또 어떻게 되느냐. 다른 사람에게 비방을 많이 받고, 두 번째는 속임을 당해요, 사기를 당한다 이 말이죠. 망어(妄語). 그다음에 이제 양설(兩舌)이죠. 양설의 죄는 첫 번째는 가족이 괴리해. 그리고 두 번째는 친족이 패악하다 이 말이죠. 아무리 가까운 사촌 아니라 바로 가까운 이촌 이런 사람도 패악해서 보기만 하면 두드려 패고 막 이런 문제가 생기게 되는 거죠.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이간질해서 싸움을 붙여서 문제를 만들었으니까 자기가 그런 거를 받는 거죠. 그다음에 이제 악구(惡口)는 항상 다른 사람이 나한테 악한 말을 해요. 그리고 두 번째는 어떤 고통이 있느냐 하면, 싸움을 많이 한다 이 말이죠. 다투게 된다. 그다음에 기어(綺語)의 죄는 다른 사람이 나의 말을 안 받아들여 줘요. 내가 아무리 뭐라고 뭐라고 해도 나의 말을 들어주질 않아요. 그다음에 두 번째는 말이 분명하질 못해요. 말 발음이 분명해지질 않아. 그다음에 탐애(貪愛)의 죄는 또 어떤 과오가 있냐면은 만족할 줄 몰라요, 첫 번째는. 두 번째는 욕심이 너무 많아서 항상 싫어할 줄 몰라요. 그러니까 지나치게 욕심이 많게 되면 항상 문제를 일으키겠죠. 그다음에 진에(瞋恚)의 죄는 다른 사람이 나를 자꾸 저 사람은 뭐 나쁘다 좋다, 자꾸 나의 단점, 장점을 갖고 시비를 걸어요. 그다음에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이 나를 괴롭혀요. 그다음 마지막에 탐진치의 치암(痴暗)이죠. 치암의 죄는 사견의 집에 태어나요. 그다음에 두 번째는 내 마음이 바르지 못해. 바르지 못하니까 하는 행동이 다 바르지 못하겠죠. 이렇게 해서 이 10가지 십악업의 죄를 짓게 되면은 이 10가지 십악업으로 나타나는 그 고통이 일체 중생에게 무량한 고통을 받게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이러한 고통이 나는 싫다, 안 받고 싶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십선도로 바꾸라 이 말이죠. 십악업은 절대로 짓지 말고, 십선도로 바꾸어서 10가지 착한 행을 하게 되면은, 해서 그 10가지 착한 행을 하는 것으로 법의 도반을 삼고, 법의 동산을 삼아서, -여러분들은 동산에 항상 놀러 가고, 스님들은 포행이라고 하지만 여러분들은 산보라 그러나요? 산보는 일본 말이죠. 여러분들은 이런 정원이나 공원에 산책을 가죠.- 항상 산책하는 것처럼 십선도를 행해라 이 말이죠. 그렇게 되면은 여러분들이 참 좋은 일만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십선도를 자기 혼자만 할 게 아니라, 옆에 사람에게 자꾸 권해서 하게끔 하면 자기가 하는 만큼 공덕이 생깁니다. 그렇게 하셔야 됩니다. 이것이 이제 미연에 고통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이미 생긴 고통을 그러면 어떻게 없애느냐 하는 문제인데, 이것은 이제 참회입니다. 참회를 하라고 하니까 여러분들 생각에,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큰 그렇게 뭐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뭐 꼭 참회를 해야 되나’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도 더러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참회를 해야 되느냐. 우리가 이 사바세계에 몸을 받아서 살고 있다는 자체가 참회해야 할 거리입니다. 왜냐. 업이 있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 와서 고통을 받고 살지, 업이 없다면 이렇게 올 일이 없는 거죠. 제불 보살님 같은 경우는 원력생으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원력으로 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그분들은 고통이 없습니다. 아무리 사바세계에서 우리와 같이 살아도 우리가 고통받는 그러한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해요. 같은 고통, 같은 생활을 해도 그분들은 마음 자체가 틀리고 받아들이는 것이 틀리기 때문에, 그분들은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는 것을 원력으로 와서 계시는 분이고, 그리고 마음대로, 당신이 하고 싶은 마음대로 하시는 분이 원력 보살님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무리 부자가 되고 싶어 발버둥을 쳐도 부자가 될 수가 없고, 병이 안 걸리고 싶어서 그렇게 노력을 해도 병이 들고, 이런 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거든요. 이런 것들이 전부 다 업이 있어서 그렇다 이 말이죠. 참회해야 할 거리가 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생사윤회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는 우리가 항상 참회를 해야 된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러한 참회를 해야 하는데, 청량 징관 스님께서는 뭐라고 말씀을 하셨느냐 하면, <참회를 해야 하는 사람은 역생사심(逆生死心)이 있어야 된다>. 역생사심이라고 하는 것은 생사윤회를 순 따르는 것은 쭉 따라 흘러가는 것이고, 역은 거슬러 올라가는 겁니다.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 생사윤회를 벗어나겠다는 마음을 가진 것이 역생사심이에요. 이러한 역생사심을 바탕으로 해서 10가지의 마음이 있어야만 참회가 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래서 그 10가지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첫 번째는 과보를 확실하게 믿어야 된다. 다음 생이 있다라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은 과보를 믿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윤회를 한다라는 것을 확실히 인지를 했을 때 우리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내가 이렇게 잘못 살다가 금생 뿐만 아니라 다음 생까지 내가 이렇게 되면 어떡하나” 이렇게 두려워서 잘못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교정할 수가 있는데, 이런 마음이 없으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된다 이 말이죠. 그래서 과보를 확실하게, 인과를 확실하게 믿어야 된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자기 스스로가 부끄러워할 줄 알고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자책할 줄 알아야 돼요. 실컷 잘못해놓고, 자기가 잘못해놓고 모든 걸 다 다른 사람한테 뒤집어씌우죠. “너 때문에 그랬어. 내가 이래 잘못 사는 거는 부모가 재산을 안 물려줘서 그래.” 아무리 부모가 재산을 안 물려줘도 자기가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잘 살 수가 있죠. “낳아준 것만 해도 감사하다. 이 세상에 이렇게 정말 맑은 공기를 느끼고 이렇게 햇볕이 따뜻한 이러한 날씨를 느낄 수 있게끔 만들어준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하다.” 이래야 되는데, 부모가 나를 낳기만 했지, 재산도 안 물려줬다. 또 뭐 잘못되면 나 때문이 아니고 너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하게 되면 그 사람은 고칠 성향이 없는 겁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악도에 떨어지는 걸 두려워해야 된다. 경전을 보면 삼악도의 그 지옥의 고통이 정말 극심합니다. 정법염처경이라는 경전이 있는데 그 경전을 보면은, 이제 그 죄를 짓거나, 업을 어떻게 지으면, -선업을 짓는 것도 거기에 나와요.- 어떤 선업을 지으면 천상에 어떻게 나고, 악업을 어떻게 지으면 악도에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태어나서 어떤 고통을 받는다라는 거. 이런 것이 다 세밀하게 쓰여 있습니다. 거기를 보면 그 지옥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실제로 지옥을 갔다 온 스님의 말씀을 제가 직접 그분에게 들었습니다. 그분이 이제 돌아가신 지 지금 한 10년 정도밖에 안 됐는데, 그분은 큰스님 반열에 계셨던 분인데, 8시간을 돌아가셨다가 깨어나셨대요. 그래서 이제 지옥을 보고 오셨는데, 가서 염라대왕도 만나셨다고 하네요. 저승사자가 잘못 모시고 간 거예요. 그러니까 염라대왕이 “이왕 오셨으니까 지옥 구경을 좀 하시고 가십시오.”해서 지옥에 갔는데 너무 처참해서 볼 수가 없더라는 거예요. “도저히 볼 수가 없어. 그렇게 처참하더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악도에 떨어지는 것을 우리가 두려워해야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그 양황참기도를 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거기에 보면 그 아귀들이 고통받는 그런 내용이 더러더러 나와요. 그거 보면 그 아귀들이 고통받는 것을 정말 혹심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고통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여러분들이 죄도 짓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음을 다해서 참회할 수가 있겠죠. 그다음에 네 번째는 뭐냐. 발로참회(發露懺悔)해야 된다. 자기가 잘못해놓고 딱 오리발 내밀고 난 안 했어 이러면은 안 된다는 거죠. 잘못했으면 ‘내가 잘못했다. 다음에 다시 안 하겠다.’ 이래야 된다 이 말이죠. 그다음에 다섯 번째는 상속심을 끊어야 된다. 한 번 잘못한 걸 알면 다음에는 안 해야 돼요. 근데 술을 드시는 분은 술을 끊겠다고 작심삼일을 해놓고 또 잡수죠. 또 잡숫고 또 잡숫고 이거는 안 되는 거죠. 이건 계속 상속하는 거다 이 말이죠. 술 드시는 분뿐만 아니라 도박인지 뭐 하시는 분도 보면 한 번 손대면 평생 못 끊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온 집안을 다 망가뜨리고, 자신만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 다 망가뜨리잖아요. 그래서 상속심을 끊어야 돼요. 내가 이 부분은 참 잘못했구나 싶으면 다시는 안 해야 된다. 그래야만 그게 참회가 되는 거지, 오늘 잘못해서 “부처님 잘못했습니다.” 해놓고 그다음 날 또 하고 또 하고 나서 ‘또 잘못했습니다’, 이거는 참회가 되는 게 아닙니다. 이 참회라는 것은 참은 뉘우치는 것이고, 회는 다시는 안 하겠다는 맹세가 들어있는 거예요. 그다음에 이제 여섯 번째는 보리심을 발휘해야 된다. 보리심을 발해서 수행을 어느 정도 해야, 자기 자신의 허물이 자기에게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말로 해도 자기 허물이 자기가 느껴지지 않아요. 그러니까 말로만 하는 거지 진정한 참회가 되질 않아요. 그래서 어느 정도 수행을 해야 자기 자신의 허물이 자기에게 보인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내가 이런 이런 것은 정말 이러한 업이 있구나. 이건 내가 끊어야 되겠다.” 이렇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법계에 자유자재하고 놀고 자유자재하게 살고 싶으면 반드시 참회를 하고, 그리고 항상 일상 모든 생활에서 헛되지 않게 잘 살아야 된다 이 말이죠. 그다음에 일곱 번째는 뭐냐 하면, 내가 공덕을 지어서 잘못한 것을 보완을 해야 돼요. 그러면 ‘살생을 내가 많이 했다’라고 생각이 되는 사람은 자꾸 방생을 해서 남의 목숨을 살려준다 이 말이죠. 죽어가는 목숨도 살려주고. 방생을 하라고 하면 우리 불자님들은 고기를 사서 놓아주는 것만 방생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만 방생이 아닙니다. 정말 죽게 생긴 사람을 살려주는 것도 방생이고, 마음이 아주 그냥 못 살게끔 좌절해있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것도 방생이 되는 것이고, 이렇게 해서 정말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속 좋은 일을 하고. 또 만약에 자기가 복이 없다, 내가 참 너무 가난하구나, 이 가난한 것은 아무래도 전생에 내가 이 도의 업이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되시는 분은 자꾸 보시를 하면 됩니다. 보시를 자꾸 하라 하니까 “아이고 스님 가난해서 보시할 건덕지가 없는데 어떻게 보시를 합니까?” 꼭 물질로만 하는 것이 보시가 아니에요. 무재칠시(無財七施)가 있습니다. 7가지로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보시가 있어요. 그래서 옛날에 어떤 분이 너무 가난했는데, 스님한테 와서 가난하다 하니까 이제 스님이 보시를 하라 그랬겠죠. 그러니까 “저는 너무 가난해서 보시하고 싶어도 보시할 돈이 없습니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스님께서 “그러면 보살님 빈 페트병 한 개 정도는 있겠지.” “그거야 있죠.” “그러면 그 빈 페트병에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을 담아서 지나가는 목마른 사람에게 줄 수 있지 않느냐. 그것도 보시다 이 말이야.” 이렇게 남에게 주겠다는 마음만 일으키면 꼭 돈이 손에 들어있지 않아도 얼마든지 보시를 할 수가 있습니다. 또 부산의 어느 보살님은 자기 남편이 사업을 하는데 아마 처음 초창기였던 것 같습니다. 항상 부처님께 오면 부처님께 불전 놓을 돈이 없어요. 다른 사람 보면 전각마다 다니면서 다 불전을 놓는데 자기는 놓고 싶어도 놓을 돈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 어떻게 발원을 했느냐. “부처님 다른 건 다 놔두고, 제가 앞으로 부처님께 오면 마음껏 부처님께 불전 놓을 돈만 있게끔 그렇게 살게만 해주십시오. 더 이상도 욕심을 안 내겠습니다.” 이렇게 부처님께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꾸준히 기도를 하고 노력을 했더니, 오래지 않아서 이제 남편의 사업이 잘 돼서 그분이 마음껏 불전을 놓고, 또 그 신심으로 그분이 서울 동국대학교 입학을 해서 졸업을 하고. 졸업을 4년 전엔가 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졸업할 때 아는 스님들이 가서 축하도 해주고, 그래서 아주 큰 대보살이 됐습니다. 그래서 이 보시를 한다는 것도 돈이 꼭 있어야만 하는 게 아니에요. 자기가 마음을 일으켜서 발원을 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하나 자기가 잘못된 것을 보완해 나가는 거, 이것이 일곱 번째입니다. 그다음에 여덟 번째는 정법을 항상 보호하고 호지를 해야 된다. 누가 불법을 헐뜯고 부처님 법이 어떻고, 또 부처님을 막 헐고 하면 그렇게 못하도록 막는 것이 이제 호지하는 거죠. 그리고 아홉 번째는 시방에 계시는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염불을 해야 된다. 그다음에 열 번째는 죄의 자성이 공하다는 것을 관찰을 해서 이참(理懺)과 사참(事懺)을 해야 되는데, 사참은 하나하나를 다 짚어가면서 참회를 하는 게 사참입니다. 이참은 죄의 자성이 공하다는 것을 관찰을 해서 죄의 뿌리를 송두리채 뽑는 것이 이참이에요. 그런데 이 이참에 대한 것을 여러분들이 잘못 해석을 하게 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왜냐. 죄는 자성이 없다니까 뭐 짓고 나서 “나는 죄의 자성이 없어. 괜찮아” 이건 아니거든요. 이 죄의 자성이 공한 것을 뿌리째 뽑는다는 것은 번뇌 망상을 뿌리째 뽑는 경지에 들어가야만 이것이 성립됩니다. 그러니까 일반 여러분들은 죄의 자성이 공하다고 했으니까 ‘나는 오늘 죄를 지었지만 죄는 뿌리가 없어.’ 이러면 절대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이 이 10가지의 참회에 대한 것을 확실히 잘 인지를 해서 참회를 해야 하는데, 그래서 이 참회라는 것은 참회의 공덕이 있습니다. 공덕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전생에 지은 이러한 업장이 소멸되게 되면 고통이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요. 없어지고 늘 편안하고 주변 환경이 부드러워지고 주변 환경이 좋아짐을 느낍니다. 그러면 내가 조금씩 업장이 좀 녹아지는구나 이렇게 아시면 되죠. 그래서 여러분이 이러한 업장이 녹게끔 기도를 열심히 하셔야만 하고, 여러분이 이제 살아가다가 보면 여러분 자신이 자기가 어떤 업이 있는지는 조금씩 인지가 됩니다. 자기가 살아가면서 가장 뭔가가 부족하고 뭔가가 안 되는 부분, 그것은 ‘뭔가 나에게 전생에 어떤 그러한 부분이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참회를 해야 하는데, 만약 참회를 하지 않고 그냥 ‘아이고 오늘은 그냥 바쁘니까 내일 하지, 내일 또 바쁘면 또 모레 하지,’ 이런 식으로 미루다가 참회를 못하게 되고, 만약에 그 업장이 들이닥칠 때가 되면 어떤 방법으로도 피할 수가 없어요. 하늘로도 피할 수가 없고, 바다로도 피할 수가 없고, 숲속으로도 피할 수가 없고, 산속으로도 피할 수가 없고, 심지어 아라한의 경지에 들어가도 닥쳐오는 과보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 어떤 아라한이 한 분 계셨는데 개울에 가서 이제 목욕을 하시면서 옷을 벗어서 빨아서 물을 들여서 바위에 널어놨다 이 말이죠. 요즘은 천이 물을 들여서 나오는 천이 있잖아요. 여러분도 아마 입은 옷이 전부 다 공장에서 물을 들여서 나온 걸 겁니다. 그런데 옛날에 스님들은 전부 다 광목, 무명 그런 천이기 때문에, 그 물을 한 번 들이면 빨래를 한 번 하고 나면 이게 숯물이라서 싹 빠져요. 조금 흐릿하게 남아 있지만 빠집니다. 그러면 다시 물을 들여야만 됩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제가 30대까지만 해도, 스님들이 다 숯물 들여서 입었습니다. 숯을 빻아가지고 가루를 내서 자루에 넣고 숯물을 들이거든요. 그래서 그 물을 들인 숯물이 있고, 이제 옷을 빨아 널어놓았는데, 갑자기 그 널어놓은 옷이 소가죽이 되고, 그 물을 들인 숯물이 피가 됐어요. 그런데 마침 그때에 소를 잃어버린 사람이 소를 찾으러 산으로 올라오다가 개울에 떡 와보니까 소가죽이 널려 있고 피가 있고, 그러면 어떻겠습니까? “이 스님이 소를 훔쳐간 도둑이다”, 그래서 잡혀갔습니다. 잡혀가서 감옥에 들어가서 3년을 감옥 생활을 했어요. 근데 이 스님의 제자가 국사가 됐어요. 나라 국사가 돼서 어느 날 정에 들어서 이렇게 관을 해보니까, 자기 스승님이 감옥에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조사를 하고 살펴보니까 상황이 그렇게 됐더라 이 말이죠. 아마 이분이 전생에 소를 훔친 업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도 과거생에 지은 업은 받으셨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러한 업장의 업의 그 기운이 발현을 하게 될 시기가 되면 어디에서도 못 피합니다. 그러니까 미리미리 참회를 하고 기도를 하고 또 그렇게 하면서 미연에 방지하게끔 악업은 짓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죠. 이제 한 40년 전에 부산의 어느 보살님이 있었는데, 이분이 아이를 넷을 낳았는데 남편이 덜컥 죽어버렸어요. 요즘은 여자분들도 직장을 가지고 회사에 다니고 이런 게 보통이지만, 옛날에, 한 40년, 50년 전만 해도 여자는 그렇게 나가서 일을 하는 게 드물었고 없었다고 봅니다. 또 있어봤자 공장에 가서 일을 좀 하거나, 아니면 집에 뭘 갖다가 하거나 바느질을 하거나 이런 것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분이 ‘이 네 아이를 내가 어떻게 키우느냐 도저히 자신이 없어.’ 그래서 그냥 밥도 못 먹고 드러누워서 그냥 죽겠다고 누워 있으니까, 친정어머니가 미음을 끓여다가 억지로 입을 벌리고 한 숟가락씩 집어 넣어서 목숨 연명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니가 가면 저 아이 넷은 어떻게 할 것이냐.’ 그래서 한 2주일을 그렇게 하다가, 어느 날 어떤 생각이 났느냐면은, -남편 되는 사람이 아이를 두고 간 것도 간 거지만 엄청난 빚을 남겨놓고 갔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기가 막히잖아요.- ‘도대체 저 남자가 나하고 무슨 철천지원수가 져서 나한테 이런 빚더미와 아이를 남겨놓고 갔을까’ 그게 딱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낮이나 밤이나 그 생각이 그냥 없어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미친 사람처럼 바깥으로 뛰어나가서 정처 없이 걸었다는 거에요. 하루종일 걸어서 저녁에 해가 지는데 도착한 산속에 조그마한 암자가 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절에 들어갔어요. 그 절에 들어가서 이제 스님께 그런 이야기를 했겠죠. 그러니까 그 스님이 기도를 하라고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마 3.7일 기도를 했는데, 3.7일이 내일이 마지막 회향인데 오늘 잠깐 기도하다가 졸았대요. 조는데 꿈에 자기가 어떤 사람하고 싸우고 있는데, 상대방이 드러누워 있고 자기가 그 사람 배를 타고 올라앉아서 칼을 들고 그 사람을 죽이더라는 거죠. 거기서 자기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람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죽으면서 “그래 너는 나를 칼로 죽이지만, 나는 너를 칼로 죽이지 않고 너를 바짝바짝 말려 죽일 거다.” 그렇게 죽는 광경을 꿈을 꿨다 이 말이죠. 그렇게 꿈을 꾸고 깨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아, 그 남편이 바로 내가 죽인 그 사람이구나.’ 그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그 기도를 마치고 돌아와서 그때부터 안 해본 장사가 없고 안 해본 일이 없어요. 행상도 하고, 뭐 보따리 장사도 하고, 뭐 하여튼 해서 그 남편이 남기고 간 빚 청산하고, 그 아이들 다 키워서 다 출가시키고, 나이 60이 돼서 절에 와서 그 보살님이 한다는 말이, “다른 사람들이 힘들고 어렵다 그러면 다 그게 빚 갚는 거라고, 나도 평생 빚을 갚고 아직도 빚이 남은 것 같아서 이렇게 부지런히 살고 있으니까, 잔소리 말고 빚 갚는다 생각하고 열심히 살라”고, 다른 사람한테 그랬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먹기 달린 거예요. 내가 빚을 갚겠다 생각하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노점상에 장사를 하든, 보따리 장사를 하든 오만 짓을 다 해도 이거 빚은 갚아야 되는구나, 안 갚으면 안 되겠구나 이렇게 할 수가 있어요. 근데 그걸 알지 못하고 마음을 잘못 먹게 되면 빚이야 있든 말든, 그냥 그 아이들 다 버리고 자살을 하든 뭔 수를 내겠죠. 그렇게 되면 그것으로 끝나면 다행인데, 그다음에 다시 이자가 붙어 더 큰 괴로움이 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내 마음먹기 달렸어요. 그래서 내 마음이 무엇을 짓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이 내가 살아가는 내 세상을 만들고, 나의 삶에 대한, 나에게 이익되는 모든 것들은 내 마음의 작용이 어떠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우리가 내 마음으로 설계를 잘해야 돼요. 한 생각 설계를 잘못하게 되면 그 결과가 어둡기도 하고 밝기도 하고, 행복도 희망도 고통도 다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마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 세계를 만들고 있어요. 그래서 이러한 것을 확실하게 여러분들이 인지를 하고 알아야 된다. 인지를 하고 알게 되면은 여러분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고 선업을 짓고 참회를 하고 그렇게 할 수가 있겠죠. 그럼 우리가 이제 앞으로 부자가 되고 잘 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참회를 해서 업을 비우고 복도 짓고 원력을 세워서 실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함께 발원을 한번 해봤으면 합니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시겠습니다. 나는 살생하지 않는 수행을 통해서 그 공덕으로 사람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염원합니다. 나는 도둑질을 하지 않는 수행을 통해서 그 공덕으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재물을 얻을 수 있기를 염원합니다. 나는 음란한 짓을 하지 않는 수행을 통해서 그 공덕으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기갈이 생기지 않기를 염원합니다. 나는 속이지 않는 수행을 통해서 그 공덕으로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고 마음의 평정을 얻기를 염원합니다. 이렇게 여러분들과 함께 발원을 했습니다. 이 발원이 여러분들 마음에 다 씨앗이 되어서, 언젠가는 그 씨앗이 발아를 해서 큰 공덕의 나무로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발원이 실천이 되고 실현이 되려면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좀 힘이 들더라도 그 힘이 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좀 내가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그 어려운 일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좀 억울한 일이 있더라도 그 억울한 일을 풍요롭게 받아들이라 이 말이죠. 그래야만 여러분들이 세운 이 발원이 실현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요만큼만 손해를 보면 야단이 나죠. 그러니까 좀 손해를 봐도 여러분들이 너그럽게 받아주고 이렇게 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극락이 따로 있지 않아요.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서 ‘나는 참 행복하다’ 이렇게 느끼고, 이 행복도 배워야 됩니다. 안 배우면 아무리 행복함 속에 있어도 자기가 행복한 줄을 몰라요. 그러니까 ‘참 행복하다’ 이렇게 생각하셔야 돼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이 잘한다고 알아주기를 바라지 말고 기대하지도 마십시오. 그리고 그저 나에게 지금 주어진 그대로, 내가 지금 호흡하고 살 수 있고, 지금 이 자리에서 법문을 들을 수 있는 이것만으로도, 내가 이러한 법문을 듣고 수행을 할 수 있다라는 이 자체만으로도 여러분들은 엄청난 행복함 속에 살고 있는 거고, 엄청난 기적이 생성되고 있는 세상에 여러분들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참제 업장의 수행은 여러분들의 인생을 여러분들이 만들어 가실 수 있는 그러한 수행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러한 가르침을 또는 인과를 확실하게 믿고 여러분들이 원을 세워서 늘 나날이 자기 자신이 항상 기쁘고 행복함 속에 살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시기를 부탁을 하면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