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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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니기도] 11월 12일 천독다라니기도 회향 법문
회주 계호스님 2023-11-12
옛날 경상도 어느 절의 뒷산에 곰이 한 마리 살았습니다. 그 곰이 가끔 절에 와가지고 스님네들이 주는 누룽지를 먹고 어슬렁 어슬렁거리면서 있다가 가기도 하고, 또 하루는 와가지고, 이 곰이 스님네들이 참선을 하니까 옆에 와가지고 가만히 참선을 하고, 흉내를 잘 내는 곰이었어요. 그러니까 참선을 하면 옆에서 부스럭거리고 막 이래야 되는데, 하나도 방해를 놓지 않고 그대로 수행을 하고 가만히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삼보에 인연이 있어가지고, 얼마 안 돼서 수명이 다해서 이 곰이 죽어서 사람 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절에 와가지고 곰 행자가 됐어요. 그래서 행자 이름이 웅행자예요. 곰 웅자(熊)입니다. 생김새가 하도 곰같이 생겼고 미련하고 그래가지고, 사람들이 웅 행자, 웅 행자 그랬어요. 근데 하루는 불을 때면서 자기가 삼매에 들은 거예요, 염불삼매에. 발에 불이 붙는 줄도 모르고 막 이렇게 염불만 하고 있는데, 조실스님이 지나가다 짝대기로 웅행자를 한 대 갈겼어요. “멍청이 같은 곰아, 뭐 하고 있느냐. 니 몸이 이렇게 타는데.” 그러니까 깜짝 놀래가지고, 자기가 삼매에 깊이 들어 있어서 몰랐어요. 그래서 가만히 자기 전생을 보니까 전생에 뭐였었어요? 곰이었었죠. 곰이지만은 자기가 그때 전생과 불법을 깨달아가지고 눈물을 흘리면서 법당에서 절을 하며 말하기를 뭐라고 했냐면은, “천 번 나고 만 번 죽음이여. 이 일이 언제 끝날 것인가. 가고 오고, 오고 가면서 무거운 짐만 더하더니, 오늘 비로소 대장부의 큰일을 마쳤구나.” 깨달음의 경지예요. 여러분들이 다라니 기도를 계속하는데, ‘왜 나는 기도 성취가 안 될까? 나는 왜 안 될까?’ 이런 생각하지 마시고, 계속 불법을 향한 그 마음으로 부단히 노력해서, 끊임없이 노력해가지고 포기만 하지 않으면은 다 이룰 수 있는 일이에요. 이 웅행자처럼.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기도를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안 되는 일은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가만히 들어보면. 저도 이제 그냥 앉아있어도 스님네들이 이렇게 하는 염불 소리가 다 들리거든요. 안 들리는 것 같아도 다 들려요. 그런데 우리가 염불을 하면서 간절함이 없으면 안 되는 거예요. 정성과 간절함이 깃들어야지만이 자비와 지혜가 모여가지고, 기도가 성취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다 성취해 마친 거예요. 제가 인과를 깨쳐가지고 인과를 주는 건 아니고, 여러분들 마음에 성취됐다면 성취된 거예요. 성취 안 됐다, 안 됐다 자꾸 하니까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긍정의 마인드가 몇 프로, 90% 이상 돼야 돼요. 부정적인 생각하면요, 될 것도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게, 불위야 언정 비불능야(不爲也 非不能也)라는 말이 초심에 나와요. 능히 하지 아니하면정 능히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다 불가능이라는 건 없어요. 할 수 있는데 안 해서 그렇지. 내가 하고 싶은, 하고 있는 능력 다 갖추고 있어요. 그렇지만은 우리가 처음부터 안 된다 안 된다고 자꾸만 하니까 안 되는 거예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거예요. 옛날에 선수들이라든지 운동하는 사람들은 ‘내가 1등 해야 되겠다, 금메달을 타야 되겠다’ 하는 생각은 요만큼도 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없어야지만이 다 할 수 있어요. 우리도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꽉 차지 않았다 하더라도, 마음속으로는 된다 된다 하는 게 있어야 돼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3일 동안 천독다라니를 했는데, 우리 진관사 신도님들은 어떻게 이렇게 복이 많은가. 도량 복, 살아가는 복, 스승의 인연, 부모의 인연, 다 그게 우리의 막중한 인연이에요. 나의 스승이 다 선지식이에요. 못하는 사람도 선지식, 잘하는 사람도 선지식, 잘하는 사람은 잘하는 사람대로, ‘나는 저 사람을 본받아서 열심히 해야 되겠다’, 못하는 사람 보면은 ‘나는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 되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세상 사람들이. 53 선지식만 있는 게 아니에요. 8만 4천 선지식이 다 내 주위에 있는 거예요. 다 도반들이에요. 그래서 진관사 신도님들은 도량뿐만 아니라 대중 스님들, 또 옆에 같이 다니는 보살님들, 이게 다 선우들이에요. 선우, 착한 벗이라는 말은 선지식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기도를 했지만은, 마음속으로 ‘혹시 나는 안 될 것 같아.’ 이런 말을 조금도 비치지 마세요. ‘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라고만 하시면 다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얼굴도 펴지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고 생각해요. 건강에는 네 가지 건강이 있어요. 몸 건강, 사회적인 건강, 정신 건강, 지혜 건강. 그다음에 여러 가지 건강이 있는데, 우리가 정말 살아가면서 자기한테 도움이 되는 건 다 선지식이라고 그랬죠. 그래서 정말 평범한 스승은 말을 하고, 그다음에 좋은 스승은 설명을 쭉 늘어놓고, 그다음에 뛰어난 스승은 모범을 보이고, 위대한 스승은 감화를 준다 그랬어요. 우리들의 스승은 누구예요? 부처님뿐만 아니라 다 여러분들이 스승이잖아요. 다 스승이에요. 그러니까 감화를 줄 수 있는 분들이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 되겠다’ 하고 감화를 준다든지, ‘나는 저렇게 해야 되겠다’라고 명심을 한다든지, 이것도 다 스승이에요. 몸의 주인은 마음이지만, 마음의 스승은 몸이라 그랬죠. 몸과 마음이 불가분의 관계예요. 몸 건강, 정신 건강이에요. 그리고 지혜 건강이라는 게 있는데, 지혜 건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신지(信智), 다음에는 각지(覺智), 원지(願智)예요. 그럼 신지라는 것은 뭐냐. 지혜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믿는 지혜가 있어야 돼요. 믿는 마음이 신지예요. 믿을 신자, 지혜 지자(信智)예요. 그 신지가 있어야지만이 인과를 믿는 마음, 모든 사람을 믿는 마음, 그게 전부 지혜인 거예요. 신지가 지혜예요. 그다음에 두 번째, 이 지혜가 있을 때는요, 행복하고 건강하고 모든 게 다 따라줘요. 옆에 사람들도 따라줘요. 잘 믿어요. 그렇지만 이 신지가 없으면 사람들이 안 믿어요. ‘저 사람은 거짓이다, 그냥 진짜가 아니다, 가짜다.’ 신지가 없으면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다음에 각지라는 게 있어요. 각지는 깨달을 각자, 지혜 지자(覺智)예요. 지혜 중의 지혜예요. 그래서 이거는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고, 모든 사물의 근본을 알아볼 수 있는 그 깨달음에서 나오는 지혜가 각지예요. 그럼 신지보다 더 높은 차원이겠죠. 각지가 돼야 해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지 않고, 집에서나 절에서나 시공을 초월해서 이렇게 할 수 있는 그런 지혜가 돼야 한다. 세 번째는 원지(願智)예요. 원하는 지혜, 희망과 목적과 목표가 뚜렷해야 되기 때문에 원력이 있어야 돼요. 원력 없는 지혜는 지혜가 아니에요. 원력이 있어야 돼요. 원이 없는 소원은 아니라 그랬죠. 큰 원을 가지고 있으면 원대로, 자기 뜻대로 다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이 기도를 하면서, ‘나는 이걸로 기도를 해야 되겠다, 나는 이런 이런 기도를 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을 항상 품고 있다가 천독다라니 할 때 그걸 다, 온 열과 성을 바쳐가지고 끝까지 한번 해보세요. 온 힘을 바쳐가지고. 그러면 뭔가 다 되는 거예요. 이루어지는 거예요. 하지 아니하면정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랬잖아요. 비불능야. 다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안 한다고 자꾸 미리 뜬금없이 생각하는 거예요. 미리 걱정하고. 괜히 가지도 않았는데 미리부터 걱정하는 거야. ‘아이고 가다가 신발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산에 올라가다가 내가 낭떠러지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이렇게 걱정하면 안 되는 거예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하면서 끝까지 가면은 마지막에 갈 수 있는 거예요. 마라톤 선수가요, 장거리 선수예요, 단거리 선수예요? 장거리죠. 쭉 이렇게 천천히 천천히 가다가, -마라톤 선수는 처음부터 뛰지 않아요.- 서서히 서서히 뛰면서 나중에, 마지막 판에 딱 올인하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처음에 시작할 때는 미미하지만은, 나중에 이거 결정적으로 딱 할 때는 그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혹시 이런 생각 한번 해보셨어요? 공진단이나 청심환 먹으면 머리가 맑아지죠. 내가 약 하나 먹어가지고 머리가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안 드셨어요? 혹시? 그런 생각 안 해보셨죠. ‘공진단이나 청심환 먹으면 머리가 맑아져서 어지러웠던 게 막 밝아졌는데, 이 알약 하나 가지고 있으면은 좋아질 수 있을 텐데. 머리가 맑아지고 남보다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 안 했다면은 그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에요. 우리는 가끔씩 가다가 어떤 때는 그럴 때가 있어요. ‘뭐 알약 하나 있으면은 이거 먹고 딱 좋아지면 좋겠다’ 할 때도 있는데 그건 현실상 없잖아요. 그렇죠? 그건 꿈이잖아요. 그렇지만 그런 꿈을 다 버려버리고, 오로지 믿는 마음, 정말로 믿는 마음이 끝까지 가야, 신심이 돈독해야 된다 그래요. 옛날에 어른들이 그러잖아요. 이제 하루종일 딴 생각하지 말고 좋은 생각만 내자. 그러면 좋아지는 거예요. 전번에 주리반특가가 현상에서 때가 문제가 있었지, 걸레에는 문제가 없다 그랬잖아요. 그렇듯이 우리 마음에도 좋은 마음만 내면 다 이루어질 수 있는 일들이에요. 안 해서 그렇지. 저도 가만히 생각하면 ‘내가 이 나이먹도록 뭐 했나, 내가 한 게 뭐 있지?’ 보면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 표시도 없어요. 오직 늙었다는 생각밖에 없다는 거예요. 늙음. 그것도 나쁜 현상은 아니에요. 왜냐면은 이 나이에 안 늙었다. 그거는 아니잖아요, 그렇죠? 늙음이 있어야지, 생로병이 있어야지 어디로 가요? 사로 가잖아요. 사는 다시 생으로 돌아오고. 리플레이 하는 거예요. 반복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생로병사, 생로병사, 생로병사 하다 보면은 언젠가는 끝이 날 때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가만히 생각해봤어요. ‘진관사 신도들이 왜 이렇게 복이 많은가?’ 기도를 많이 하기때문에. 다른 거 없어요. 기도는 성야라고 그랬잖아요. 기도는 성취예요. 기도를 안 하면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들이 지금 불안 초조하잖아요. 아들인지, 딸인지, 손주인지, 누군지 학교 가는 거 좋은 학교 가야 되는데, 좋은 학교, 좋은 학교 안 가도 돼요. 인성이 좋으면 돼요. 저는 그래요. 좋은 학교가 중요한 건 아니다. 인성이 바로 서야지. 그러니까 공부 잘하고 인성 좋으면 더 좋지만은, 그것도 안 되면은 ‘갑자기 뭐 공부 잘해가지고 뭐 어디 들어간다.’ 이런 생각은 그냥 욕심이지요, 우리도. 그러니까 조금만 해가지고, “아, 내 손주가 조금만 했으니까,” 그래도 서울에 있는 학교 가면 서울대예요. 지방에 가면 지방 대학이지. 안 그래요, 그렇죠? 그러니까 좋은 생각 내면서, ‘오늘도 나는 내가 이렇게 업장 소멸하면서, 우리 식구들이 편안하고, 우리 식구들이 다 행복하고, 이것만 해도 나는 기도 성취다.’ 기도 성취가 큰 건 아니에요. 소소한 데서부터. 제가 그랬잖아요. 마라톤 선수가 점점점점 뛰었다가 나중에 확 진입할 때 1미리미터 차이에 1등이 되는 거예요. 똑같은 거예요. 근데 우리는 단거리 선수 주자예요. 제 경험담인데 학교 다닐 때 운동을 조금 했어요. 다른 큰 운동은 안 하고, 달리기를 잘해가지고 단거리 선수에서 스타트할 때 1인자였거든요. 라인을 잘 서야 돼요. 어떤 라인을? 그냥 이렇게 가다가 나는 이 자리에 서야 되겠다 하면 옆에 있다가도 얼른 이리로 오더라고요. 그렇게 해가지고 단거리 스타트를 하니까 성공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나는 단거리 선수이지 장거리는 아니다. 느긋하게 가는 건 못하니까. 성격이 다 그래요. 좀 빠른 사람들은 단거리로 가고, 좀 느긋하고 아주 좀 끈기 있는 사람은 이렇게 장거리로 가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라인을 잘 맞춰가지고 맨날 1등 했어요. 그냥 다른 건 못해도 운동할 때만, 그렇게 달릴 때만 그래요. 그래서 이걸 내가 살아가는데 한번 배대해 봤어요. 10대는 그렇고, 20대, 30대, 40대, 50대까지는 좋았는데, 60대까지도 괜찮은데, 70대 올라가니까 찌글찌글해지기 시작하는데 이게 정상이 아닌 거예요. 그래도 받아들여야 되잖아요. 그렇죠? 이거 안 받아들이면요, 괴로워요. 낙천적인 사람이 왜 성격이 좋냐면은 관심을 안 두기 때문에, 남이 뭘 하든지 말든지 조금 덜 관심을 가져요. 근데 성격이 굉장히 날카롭고 예민한 사람들은 남이 말하는 데 신경을 쓰다 보니까, 내 살아가는 게 살림살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쭉 밀고 나가고, 부처님 말씀만 제대로 들으면은, 수지독송이란 뭐예요? 부처님의 말씀처럼 부처님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살아가면 그게 수지독송이에요. 그러니까 안 된다, 안 된다 하지 마시고, ‘아, 이렇게까지 왔는데도 정말 부처님 감사합니다.’ 안 그래요? 그렇죠. “나는 너무 고맙습니다. 정말 이렇게까지”. 이게 부처님 은혜가 아니면은 어떻게 이렇게 절에 와가지고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장애도 있기는 있겠지만은, 장애도 하나의 반전이라 생각하시면 돼요. 그걸 갖다가 반복해서 다시 일어나면 그게 장애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장애를 장애로 여기지 말고, 다시 일으킬 수 있는 힘이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여러분 열심히 기도하셨어요. 혹시 기도 잘 안 한 사람 손 들어보세요. 누가 “부처님 되고 싶습니까?” 하니까 손 하나도 안 들었대요. “부처님 되고 싶습니까?” 하면 손 들어야 되잖아요. 그렇죠? 그렇듯이 “성취하고 싶습니까?” 하면 다 손 들어야 돼요. 근데 오늘 여러분들 얼굴 보니까 다 성취된 것 같아요. 그래서 진관사 신도님들은 내외로 복이 많고, 안과 밖이 정말 이런 도량도 없다 싶어요. 우리 주지스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학생회 다녔거든요. 딱 절에 오니까 전생에 살던 곳이더라고요. 우리 주지스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 우리 주지스님은 딱 주지를 보더니 ‘저 사람이 진관사를 이끌고 갈 스님이구나.’ 이렇게 찜을 해놨다. 옛날부터 우리 주지가 살림을 잘 살아가지고 앞으로 이끌어갈 사람이다. 그 정도로 우리 스님한테 인정받은 거예요. 그러니까 얼마나 그게 인정스러워요. 저는요 기도하면서 뭐 다른 스님들도 다 잘하는데 선행 스님만 보면은 왜 그렇게 신심이 나는지. 거기다가 또 지범스님, 우리 주지스님 도반스님, 우리 사제 정호스님은요, 저보다 나이 1살 적은데 얼마나 기도 열심히 하는지 몰라요. 선우스님, 덕원스님, 응선스님, 덕구스님, 덕경스님, 창일스님, 창일스님은 일취월장이야, 염불이. 살아가면서 이런 좋은 날도 있어야지, 여러분들도 행복하잖아요. 저희들도 행복하고. 그래서 우리가 천 명이 법문을 들어도 100명이 알까 말까 하고, 100명 중에 10명이 깨달을까 말까 한다는 그런 말씀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잘 새겨가지고 요점을 잘 알고, 또 살아가면서 이렇게 살면 정말 이게 행복이구나. 부정하지 않고 긍정만 자꾸 하면서, 좋은 생각 내면은 신장님이 우리를 도와줘요. 옛날에 그랬잖아요. 콩이 세 알 나오는데 도량에 잘 사니까 콩이 다섯 알 나와가지고 두부 만드는 데 도움 줬다는 거. 다 그게 그런 거예요. 그래서 저는 신도님들 얼굴만 보면은 ‘같이 나도 저렇게 좀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불쑥불쑥 일어나요. 그렇게 안 돼서 걱정이지. 그런데 여러분들 보면은요, 이거는 참 전생사가 전전생사다. 진관사 인연은 전전생사지, 그냥 인연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게 국찰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여러분들이 봉사도 잘하고, 수륙재도 잘하고, 학교도 입학했고, 또 거기다가 같이 가끔 보면은 <옴 마니 반메 훔>, 아니면은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타야 훔>하면서, 왜 금강경 독송할 때 같이 하잖아요. 그것도 다 그런 거에요. 그러니까 항상 행복하다고 느끼시고 행복하고 건강합시다. 생각 같아서는 엄청 크게 뭐 잘할 것 같지만, 잘 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론은 다 같이 행복하고 다 같이 건강하자는 내용이에요. 열심히 하면 부처님 될 수 있다는 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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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륙재] 10월 21일 수륙재회향 법문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 2023-10-21
-감로, 함께하는 세계를 위한 축복과 환희- 고륜본불락청천(孤輪夲不落靑天)인데 연비산산공착영(連譬山山空捉影)나무아미타불 지금 진관사에서는 국행수륙대재를 49일 전부터 시작해서 오늘 회향하는 시간임을 여러분들 잘 아실 겁니다. 그동안에 우리 법사스님들의 고구정녕한 그런 무진 법문도 많이 계셨고, 또 이 의식을 행하는 여러 스님들이나 또한 많이 참석하여 주신 사부대중 여러분들께서도 수고가 많았습니다. 나는 이런 법회를 잘 할 줄 모르고, 법문도 할 줄 모르고, 그래서 안 오려고 했는데 ‘한 번 그래도 나타나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 그러면 얼굴 한번 보이라’ 하는 거구나 싶어서 왔습니다. 그런데 이 진관사에서 오늘 하고 싶은 말은, 계호스님하고, 여기 법해스님, 여러 사부대중들께서 이 시기에, 이 시류에 맞는 대단히 훌륭한 일을 했다고 칭찬하고 싶습니다. 박수 주세요. 왜냐하면 고속철이 속력을 많이 내는데, 속력을 아무리 많이 내도 철로를 이탈하지 않으면 되거든요. 그래서 진관사에서 하는 일은 이 시대에 너무나 맞고, 너무나 앞서가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우리 부처님의 본분사에 대한 법도를 조금도 이탈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더욱더 박수를 한 번 더 줬으면 좋겠습니다. 말 그대로 국행수륙재잖아요. 국가 차원으로 이런 수륙재를 했습니다, 옛날에. 그래서 우리가 그 전통을 이어서, 6.25 사변이나 등등 이런 때 이게 조금 희미하게 좀 끊어졌다가 그걸 다시 복원해서 이 진관사 국행수륙대재가 아마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문화재로 등록하려고 지금 준비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원만히 성취되기를 기원합니다. 이 국행수륙대재는 이때까지 법사스님들에게 설명도 많이 듣고, 49일 동안 지내오는 동안에 여러분들이 그에 대한 의미는 많이 알고 계시리라고 봅니다. 지금 내가 오늘 올라오는데 차가 막힌다, 뭐 한다 이래서 오기가 좀 힘들었는데, 이 많은 영혼들, 이 영혼들은 비행기를 타고 오는 것도 아니고 자동차 타고 오는 것도 아닙니다. 이 자리에 49일 전부터 어떤 행사가 벌어졌냐. 불보, 부처님의, 불보살님의 증명 하에, 옹호신장의 옹호하에 많은 위국절사 충의장졸 비명액사 무주 유주 고혼들이 많이 있는데, 그 고혼들을 다 여기 불러 모읍니다. 불러모아서 염불을 하고 깨치도록 하고 행사를 해서 이고득락하게 하는 그런 행사입니다. 동시에 망자들은 그렇지만은, 생존자들은 어떻게 되느냐. 이 행사를 통해서 우리가 의학에도 제일 좋은 게 예방의학이고, 범죄도 범죄 이후에 다스리는 것보다 범죄 예방이 최고다. 병도 병 난 다음에 치료하는 것보다 병 안 나는 게 낫지 않아요. 그래서 이런 행사는 여기에 영가들은 영가들대로 했지만은, 영가 아닌 이 현실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부 예방 차원에서, 지옥을 면하고 극락을 갈 수 있는 그런 길을 인도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가 없으면 뭐 하려고 합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은 그런 점을 다 아시고, 이렇게 많은 사부대중이 참여해서 이런 행사에 참여하니까 이거야말로 옛날에 있었던 그 국행수륙대재가 아니고 뭐냐 이거지요. 그래서 전부 다 오나라 말세에 인개왈 여는 성야라 하니 수지오지자웅(誰知烏之雌雄)고 하는 말이 있어요. 사람마다 자기 말만 다 옳다 하니까 누가 암까마귀인지 수까마귀인지 모르겠다 이런 말이 있거든요. 지금 역시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은 우려되는 것이 전부 자기만 잘났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말은 다 틀렸고, 남 하는 거는 다 글렀고, 자기만, 자기 말만 옳고 자기만 잘 안다고 생각하는 거라. 그래서 혼란이 초래되고 말세가 될까 봐 얼마나 염려스러운지 모릅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동감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청산은 원부동(靑山元不動)이요 백운은 자거래(白雲自去來)라. 청산은 원래 움직이지 않아요. 흰구름은 왔다 갔다 한다 이거라. 그러면 그게 무슨 말이냐. 나의 중심은 청산이라. 백운은 그때그때 그날 그날 일어나는 현상이라. 우리가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안 좋은 일도 있는데, 이거는 백운이라. 백운이 덮친다고 해서 산이 넘어집니까. 백운이 떠난다고 해서 산이 넘어집니까? 산은 중심이거든요. 그래서 마음은 중심이고, 생각은 백운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을 청산과 같이 굳게 가져야 된다 이거라. 생각은 이 생각도 할 수 있고 저 생각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그런 의미들을 종합해서 이 49일 동안에 법문하고 행사하는 것의 의미가 거기에 있다 이겁니다. 공지끽식(共知喫食) 이위기장(而慰飢腸)하고, 부지학법(不知學法) 이개치심(而改癡心)이니라. 다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서 그 허기를 면하려 하는 거는 누구든지 다 알아요. 그런데 이 훌륭한 진리인 불법을 배워가지고 어리석은 마음을 개선해야 되겠다 하는 걸 여러분들 다 압니까? 그런 법을 배워서, 훌륭한 정법을 배워가지고 어리석은 마음을 개선해야 되겠다, 그래야 된다 이거거든요. 이번에 이런 행사하는 것이 다 그런 뜻에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뭐하러 합니까? 그래서 여득인신불수도(汝得人身不修道)면 여입보산공수래(如入寶山空手來)라 하는 말이거든요. 인신을, 사람의 몸을 받아가지고 도를 닦지 않으면은 보배산에 가서 빈손으로 나오는 거와 한가지다. 이거는 보배산에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건 뭡니까? 헛일한다 이 말이거든. 왜 비싼 밥 먹고 왜 헛일 하고 다니냐 이거라. 여러분들은 한 사람도 헛 일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얼굴을 보니까. 그래서 이 법회는 정말 이 시대에 걸맞는 법회고 미래지향적인 법회입니다. 그리고 전 국민에게도 마땅한 법회입니다. 진관사에서 스님들 몇 사람, 신도 몇 사람 모여가지고 행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중동이니 어디니 지금 얼마나 어려운 곳이 많습니까.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습니까. 그거 다 비명액사거든요. 나는 6.15를 겪었습니다. 6.25 전쟁터에 많은 사람들이 죽는 걸 봤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제주 사건, 여수 사건, 심지어는 5· 18 사건, 세월호 사건, 또 얼마 안 됐지만, 이태원 사건 등등 이래서 너무나 아까운 비명액사를 한 그런 인간들이 얼마나 많냐 이거에요. 이런 영가들을 전부 여기 다 불러모았습니다. 여러분 안 보여서 그렇지 다 모였습니다. 다 모여가지고 좋은 법문 들려서 이고득락 다 시키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들 몰랐지요. 여기 다 왔었어요, 다. 그러니까 지금도 이렇지만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여리박빙(如履薄氷)하고 여림심연(如臨深淵)이라. 얇은 얼음을 밟는 것 같고, 깊은 저수지의 못 근처 가는 것 같이 해야 된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조심해야 된다 이 말이라. 여러분 얼음을 밟으면 어찌 됩니까? 얇은 얼음을 밟으면 안 돼요. 그리고 깊은 못에 근처에 가면 위험하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조심해야 된다 이 말이거든.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국민들은 자기가 아무리 잘났다고 큰소리 쳐도 자기만 큰소리 치면 안 됩니다. “모든 국민들이 우리가 전부 다 조심조심하고 정신 차려가지고 앞으로 이런 수륙재가 필요 없다.” 그런 말이 나오도록 좀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정말 이 시대에 한국뿐만 아니고 전 세계 인류에도 이러한 수륙재가 필요합니다. 이제 앞으로는 필요 없도록 좀 해봤으면 싶습니다. 그러나 이 행사는 그야말로 우리 민족의 무형문화입니다. 무형문화이기 때문에 이것은 필요 없더라도 보존해야 안 되겠습니까. 그래서 앞으로도 열심히 해주시고, 여기 모두 보니까 수고들 많이 하셨는데,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셔가지고,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가 되고, 더 국태민안하고, 만민이 함락하기를 기원합니다.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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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행수륙재] 10월 8일 국행수륙재 5재 법문
지운스님 2023-10-08
네, 반갑습니다. 국행수륙재라고 해서 왜 국행이 붙었는가 한번 찾아봤습니다. 그래서 이제 좀 공부를 해봤죠. 1397년에 이성계가 나라의 안녕과 국민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서 이 진관사에서 처음으로 수륙재를 봉행했다는 겁니다. 625년 전이죠. 그래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렇습니다. 우리가 왜 수륙재를 지내야 되는가. 수륙재는 물에 사는 중생, 육지에 사는 중생들, 그 영혼을 달래주고 천도하는 의식이죠. 그런데 지구상에서 1년에 이 중생들이 몇 명이 죽는가. 깜짝 놀랐습니다, 찾아보고는. 600억이나 되는 동물들이 죽습니다. 소, 돼지부터 해서, 가장 많이 죽는 중생은 닭입니다. 1년에 500억 마리가 죽습니다. 동물들하고 우리하고 어떤 면에서 차이가 없어요. 동물들도 기억할 줄 알고, 생각할 줄 알고, 아파할 줄 알아요. 감정이 있어요. 똑같은 마음을 가진 존재라는 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 얘기를 좀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왜 죽어야 하는지. 많은 생명이 죽을 때에는 거기에는 뭐가 있느냐는 겁니다. 바로 인간의 무지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 내용이 12연기(十二緣起)인데, 그 연기법에 보면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입(六入)·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 무명은 무지를 이야기하는데, 무명으로부터 결국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겁니다. 수많은 생명이 죽는 것은 이 무명, 무지에 의해서 죽는다는 겁니다. 인간의 무지에 의해 가지고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있는 거죠.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죠. 유럽 쪽이나 미국 쪽에 산불이 난다든지 홍수가 난다든지 이런 게 기후 변화에서 오는 이 동물의 죽음과 상호 관계가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학자들이 다른 고기는 그러더라도 소고기만은 먹지 않으면 지구 온도 1도는 낮출 수가 있다, 이렇게 얘기할 정도예요. 자동차 한 대가 탄소를 발생하는 것은 소 4마리하고 같이 맞먹습니다. 지구상에 있는 차보다는 소가 더 많다는 겁니다. 소가 방귀 뀌고 하품하고 전부 다 탄소입니다. 그런데 그 동물을 맛으로 먹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죠. 고기 1kg를 얻기 위해서는 곡물 4kg를 소에게 먹여야 돼요. 이런 것은 전부 다 무지에서 오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다 들었으리라 보고요. 무지, 무명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이는가에 대해서 역사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죠. 혹시 <오펜하이머> 영화를 보신 분 계시죠? 그 사건은 여러 가지 시각에서 볼 수 있지만은, 불교적인 시각에서 보면은 무명, 무지에서 일어난 비극입니다. 1938년도에 독일 과학자가 원자를 쪼개니까 엄청난 에너지가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1939년도 2차 대전이 발발을 하죠. 그리고 유대계 독일 과학자들이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 이름으로 편지를 쓰죠. 트루먼대통령에게. 히틀러가 원자폭탄을 먼저 만들면 안 된다는 거죠. 수많은 사람이 희생될 거니까, 미국에서 먼저 만들어야 된다고 탄원서를 넣는 거죠. 그런데 미국 정부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국 정보부에 정보를 제공했죠. 그래서 원자폭탄을 만들기로 한 겁니다. 오펜하이머가 책임자고 많은 과학자들을 규합해서 3주 만에 폭탄을 만들어내죠. 히로시마하고 나가사키에 폭탄이 투하됨으로 해서 약 30만 명이 한 번에 죽었습니다. 근데 이건 어디서 비롯됐습니까? 히틀러는 600만 명을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을. 무지에서 기인하는 거죠. 무명이 있다는 것은 결국 죽음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 수륙재를 왜 하겠습니까? 무지에서 벗어나야 되겠죠. 많은 생명에 대해서 우리가 이렇게 재를 올리고, 극락왕생을 빌고 이렇게 하는데, 근본적인 문제는 이 무명을 없애는 데 주력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봅니다. 능가경에 보면은 이런 얘기가 있죠. 시비라는 왕이 있는데, 이 왕이 보시하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인드라 신, 신들의 왕인 인드라 신이 한번 시험을 해봐야겠다, 그러고는 이제 비둘기로 매한테 쫓기는 연기를 하죠. 왕에게 가서 “제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저 매가 저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시비왕이 비둘기를 감싸주죠. “그거 내 먹이니까 내달라.” “그러면 이 비둘기 먹이만큼 내가 고기를 주겠다.” 그러니까 매가 하는 말이 “나는 따뜻한 피와 살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왕이 그러면은 “내 허벅지를 베어주겠다.” 허벅지를 베어주겠다 하니까 허벅지 고기는 따뜻한 피와 살이죠. 근데 그걸 가져와서 “저울에다 달아라.” 그래서 비둘기를 올려놓고 허벅지를 살을 베어서 올렸는데 부피를 보면은 허벅지 살이 더 많은데 비둘기가 더 무겁더라는 거죠. 왕이 그걸 알고 자기 몸을 올려놓습니다. 비둘기와 왕의 몸무게가 똑같은 겁니다. 이건 뭘 이야기 하는 겁니까? 생명은 평등하다는 거죠. 동일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왕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비둘기를 놓아주라. 내 몸을 너에게 주겠다.” 능가경에 나오는 이야기예요. 부처님께서 능가경에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고기를 먹지 말라.” 이렇게 얘기를 하고, 중생의 고기를 먹으면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말이 말이 되느냐 하는 거죠. 안 된다는 거예요. 고기를 즐겨 먹게 되면은 꿈자리가 시끄럽고 두려움과 불안에 떨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보로 사자나 호랑이나 고양이나 살쾡이 같은 그런 과보를 받는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먹지마라, 중생을 위해서.’ 이렇게 얘기하죠. 요즘 안 먹고는 못 배기죠, 그렇죠. 좀 줄이세요. 정말이에요. 저 고기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2003년도에 라다크에 가게 됐었어요. 청전스님하고 같이 가다가 랑둠곰빠, 처음으로 이제 절을 만나게 돼서 갔는데, 그날이 하필이면 티베트 역으로 4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이에요. 근데 거기에 신도들은 전부 다 유목민들입니다. 그래서 유목민들이 스님에게 공양 올리는 게 있었는데, 뭘 하나 주길래 한번 먹어보래요. 유목민들이 우리한테 공양 올렸대요. 근데 딱 씹으니까 명태 맛이 나는데, 이게 뭐냐고. 한번 씹어봤어요. 그러니까 야크고기를 말린 것이다. 저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입에 들어가는 걸 빼고는 다 거부했습니다. 그렇게들 얘기해요. “스님은 고기를 안 먹으면 체력을 어떻게 유지합니까?” “고기를 안 먹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러면 “코끼리는 풀만 먹었는데 힘이 왜 그리 세죠?” 제가 그렇게 반문을 합니다. 그래서 절에는 항상 콩자반이라든지 콩나물이라든지 두부가 늘 올라옵니다. 다 이유가 있는 것이죠. 그리고 때때로 국수를 먹게 되죠. 단백질 섭취입니다. 스님들이 왜 그렇게 했을까요?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중생에 대한 자비심이고, 생명의 근원에 대한 통찰력입니다. 지구상의 수많은 과학자들 천재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고기 먹는 것을 제지 못 했을까요? 무지 때문입니다. 무명 때문에 그런 겁니다. 가장 안타까운 중생 중에 하나는 뭐가 있겠습니까? 아귀가 있죠. 제가 아귀에 대해서 좀 설명을 하고, 회향 공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다음에 이제 이 공동체 대한 얘기를 좀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수륙재를 지내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공동체를 얘기 하는 겁니다. 공동체의 가치를 구현하는 일이에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빨리 경전의 주석서에 보면은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한 사냥꾼이 사슴을 잡아서 사슴의 뒷다리를 잘라서 불에 구워 먹습니다. 근데 목이 몹시 말라. 집안에 물을 아무리 찾아도 물이 없으니까, 절에 가면 늘 절에는 스님들 물을 비치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쫓아 내려갔습니다. 근데 그 많은 주전자에 물을 따라도 물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 거예요. 화가 나서 스님들을 막 욕을 욕을 하고 있는데, 노스님이 나오더니 막 그 사냥꾼의 얼굴을 보고 “물을 마시고 싶으냐” “그렇습니다.” 그냥 주전자를 딱 따르니까 물이 나오는 거예요. 그 청년이 물을 마셨습니다. 그래 스님께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네 얼굴을 보니까 아귀로 좀 바뀌어가고 있네.” 사냥꾼은 사냥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결혼하고 처자식이 생기니까 사냥을 더 많이 했던 겁니다. 그러면서 많은 생명을 죽이게 되고, 아귀로 바뀌어가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스님의 말씀을 듣고 출가를 하게 됩니다. 출가수행을 하게 되면서 “아, 생명을 많이 죽였으면 지옥에 갈 건데 지옥의 불이 그렇게 무서울까?” 이런 생각을 해서 스승한테 이 얘기를 합니다. “지옥의 불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이렇게 얘기를 하십니다. “그러면 장작을 물에 적셔서 절 마당 위에 쌓아두어라. 내가 지옥불을 가져오겠다.” 그리고 스님께서 앉아 선정에 들어가서 지옥에 가서 조그마한 불씨를 하나 가져옵니다. 가져 와서는 제자 앞에서 산더미같이 쌓은 물에 적신 장작불에 불씨를 떨어뜨리죠. 떨어뜨리는 순간 재로 바뀌어버리는 겁니다. 제자가 깜짝 놀랍니다. 그러고는 이제 더 열심히 수행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 아귀이라는 것은 욕망의 표현이에요. 우리는 수많은 아귀들이 있는데, 스님들이 발우공양하고 난 뒤에 그 청수물을 먹을 수가 있어요. 거의 물을 못 마십니다. 물을 마시면 전부 불로 화해서 물을 마실 수가 없어요. 물이 다 말라버리거나 이런 증상이 생기죠. 불쌍한 중생이에요. 이 아귀라는 중생을 구제를 해야 되겠죠. 가장 굶주리는 중생이에요. 대표적인 중생을 얘기하면은 그런 얘기죠. 우리가 수륙재를 지내서 이런 중생들을 구제하는데 회향하는 그 공덕은 어떨까. 회향에 대한 얘기를 해드리죠. 공덕이라고 하는 거는 훌륭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원인이란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모여서 수륙재를 지내는 거는 여러분의 공덕을 짓는 건데, 이것을 회향을 해야 되겠죠. 제가 서울에 살 때가 있었습니다. 80년대 초에 종운이라는 스님하고 조계사를 가게 됐습니다. 그때는 거기 살았었어요. 개운사 안에 중앙승가대학이라고 있었습니다. 강원을 졸업하고 이제 입학을 해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래서 조계사에 가게 돼서 종운이라는 스님하고 같이 이제 도반으로 가게 됐는데, 웬 처녀가 종운 스님에게 물건을 보시를 했어요. 스님은 딱 물건을 받자마자 그 처녀의 옷자락을 딱 잡았습니다. 잡고 붙들고는 그 앞에 있는 다방에 데리고 가서 물건을 다 끄집어 내놓고 이걸 왜 주느냐고 물어보는 거죠. 근데 이 처녀의 모습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키는 작고 등이 굽었습니다. 곱사등을 갖고 있었죠. 근데 얼굴은 미소를 짓고 빛나고 있었어요. 그 연유를 물어봅니다. 왜 이것을 주느냐. “스님 저는 일주일에 두 차례 조계사 가는 날을 정해서 어느 누구에게나 보시를 행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낙담을 하고, 자기 여동생에게는 편지도 오고 선물도 주고받고 애인하고 그러는데 그런 걸 보면서 자살 기도를 두 번이나 하고 죽지 못해서 이러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길을 가는데 인생에 살 만한 어떤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가니까 거기 휩쓸려 간 곳이 조계사예요. 그런데 토요일인데 법당에서 청년들의 법회가 열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하염없이 거기에 그냥 법당 밖에서 계단에 앉아서 듣게 됐습니다. 법사 스님이 뭐라고 이야기하냐면, “보시를 하라.” 그 법문을 듣고 이분이 결심했대요. 일주일에 두 번 부처님께 보시를 하겠다. 근데 이분은 만드는 재주가 있어서 물건을 만들어서 보시를 하는데, “내가 이렇게 정성들여서 내가 왜 보시를 하지.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창피스럽기도 하고.” 그러다 참고, 스님 말씀에 따라서 계속 보시를 하다가, 한 3개월쯤 지나서야 비로소 이런 깨달음이 왔다는 겁니다. ‘내가 보시를 하는 것은 본인이 모든 사람들은 다 받아서 이루어진 존재다. 우리는 부모의 은혜를 입고 동식물의 음식을 먹고 공기한테 다 받아서 이루신 존재이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이니까 베푸는 게 아니라, 당연히 내가 받아서 이룬 존재 그러면 나도 남에게 베푸는 건 당연한 일이다.’라는 깨달음이 왔다는 거죠. 큰 기쁨이 생기기 시작한 거죠. ‘내 몸의 장애가 아니라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것이 장애다’ 하고 생각을 했던 겁니다. 그리고는 내가 물건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이것을 남에게 베풀자. 그러고는 이제 인생을 바꾸게 됐습니다. 보시한다는 건 회향한다는 거에요, 얘기하자면. 그래서 이분은 파랑새라는 익명으로 글도 쓰고, 조계사에서 청소년 상담도 하고, 그러다가 나병 환자촌에 청년들하고 같이 봉사하러 갔을 때 손이 뭉뚱뭉뚱한 나병 환자들이 그냥 고맙다고 그 밥풀 묻은 데 콜라를 따라주는데 아무도 청년들은 받지를 않더라는 거에요. 자기는 받아서 마시고, 같이 포옹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았대요. 본인은 생명이라는 것은 받아서 이룬 존재이기 때문에 남에게 베풀어야 된다. 여러분들 태어나고 지금까지 채식만 하시지 않았죠? 고기를 드셨잖아요. 그죠? 저도 어릴 때 먹었습니다. 그러면 미안한 마음도 있어야 될 거고, 생명을 보존했으니까 고마운 마음이 있으면 회향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받았으면은 주는 것이 있어야 되는데, 받기만 하고 주지 않으면은 이기적인 것이죠. 그렇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모인 거 아니에요. 그러면 회향은 어떤 뜻이 있는가. 회쟁론에 보면, 용수보살의 저술이에요. 일단의 장사치라 그럴까, 옛날에는 장사를 하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다닙니다. 도적 떼들의 습격도 있고 하니까. 근데 그중에서 이제 장사를 하기 위해서 쭉 가다 보니까 발가벗은 여자애가 추위에 발발발발 떨고 있는 거죠. 그래서 한 상인이 갔어. “내 옷을 줄까?” 이러니까 여자아이가 하는 얘기가 “그 옷을 저한테 준다고 해서 저는 입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네가 옷을 입을 수 있느냐” 했더니 이렇게 얘기합니다. 요 밑에 가면 절이 있으니까 옷감을 스님에게 사정 이야기하고 맡기면은 제가 옷을 입을 수가 있습니다. 알고 보니까 아귀예요. 여자 아귀예요. 그래서 추위에 발발 떨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상인들이 그걸 보고 절에 가서 옷감을 내놓고 이 아귀에 대한, 여자 아귀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스님이 알았다고. 보시를 하고 얼마 있어서 아귀가 다시 나타나서 옷을 입고 너무 고맙다고. 이게 회향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에게 베풀어야 되는 것이죠. 삼처회향(三處廻向)은 해야 되지 않습니까? 일체중생들에게 우리가 은혜를 입었으니까 다시 돌리는 회향을 해야 될 것이고,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생사가 없는 도리를 가르쳐주시니까, 부처님께 회향을 해야되겠고, 또 하나는 우리는 이런 회향하는 목적이 삶과 죽음에서 벗어나서 불사 열반을 얻는 데 있습니다. 이야기하자면. 그래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서 무주처열반을 얻는 걸 목적으로 해야 됩니다. 그러면은 깨달음의 회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수륙재에 동참을 해서 이 모든 생명에게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사용했던 공덕을 베풀 때는 삼처회향이 돼야 되는 거죠. 마지막에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 회향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무지가 없어지는, 무명이 없어지는 거죠. 이게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을 해보십시오. 소는 36개월 되면은 도살합니다. 그럼 이제 암소는 좀 놨두죠. 새끼를 낳기 때문에. 그래서 새끼를 낳을 능력이 없으면 도살장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소고기를 너무 즐기면은 소로 태어날 과보를 받을 가능성이 있어요. 소로 태어나면은 36개월 만에 인간의 입으로 들어갑니다. 혹시 여러분 개를 키우고 고양이를 키웁니까? 어느 학자가 이렇게 기고를 해놨어요. 고양이라든지 개의 사료를 이 채식으로 전부 다 사료를 돌리면 1년에 약 76억 마리의 소나 돼지가 살 수가 있다했어요. 놀라운 일이죠. 우리는 좀 자제를 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회향을 할 때 이제 삼처회향을 하면서 마지막에는 무지가 깨질 수 있도록,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서원을 하셔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공덕을 회향하는 방법입니다, 얘기하자면. 베풀어야 됩니다. 우리는 그냥 사는 존재가 아니에요. 땅에게 베풂을 받고, 공기 베풂을 받고, 저기 나무들에게 베풂을 받죠, 얘기하자면. 그리고 많은 동물과 식물의 베풂을 받아서 이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거예요. 그래서 회향을 하시고, 또 하나는 또 어떻게 해야 되겠죠? 이렇게 모여서 이렇게 공동체를 형성해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 죽임이 아니고 생명 살림입니다, 얘기하자면. 수륙재를 지내는 것은 생명 살림의 뜻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권유를 해서 진관사만이 아니라 어느 절에도 수륙재를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될 거라고 봅니다. 생명은 인간만의 생명체가 아니라는 얘기죠. 수많은 동물의 종, 식물의 종이 사라지는데 유엔에서 걱정하는 게 생명 다양성에 대한,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왜? 자연이 훼손이 되면 수많은 동물의 종과 식물의 종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럼 인간이 살 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거죠. 같이 더불어서 같이 살아야 되는데. 그렇잖아요. 그래서 이 공동체, 수륙재라는 공동체의 가치를 확실하게 우리가 인식을 해야 되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모습을 저는 두 눈으로 지금 보고 있습니다. 진관사 국행수륙재입니다. 저는 수륙재 처음 법문을 하고 있고, 어떤 절에 가서 수륙재에 참여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여러분 앞에서 수륙재 법문하게 된 걸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공부를 조금 했습니다. 같이 이렇게 수륙재에 동참을 하고, 많은 생명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지는 것, 이 기후 변화가 앞으로, 딱 이것만 이야기하고 끝내겠습니다. 탄허스님께서 그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앞으로는 자연 재해가 많이 발생할 것이다. 빙하가 녹아서 일본은 3분의 2가 잠길 것이고, 대한민국의 동쪽에는 한 100리 정도 물에 잠기고, 서쪽에는 한 200리 정도 다시 육지가 올라올 것이다. 중국은 두 쪽 나고, 그리고 전 세계에 수많은 자연재해가 생길 건데, 그나마 대한민국은 자연재해를 가장 적게 피해를 입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은 죽을 것이지만 그나마 대한민국은 낫다는 겁니다. 그래 여러분들이 이제 앞으로 수많은 자연재해가 많이 생기고, 많은 생명체도, 많은 사람이 죽을 겁니다. 그래서 매년 이 진관사의 수륙재, 국행수륙재를 이렇게 하는 거에 대해서 많은 동참을 하시고요. 또 이곳에 누구에게라도 이 생명의 가치를 말씀드리고 같이 동참할 수 있도록, 이 수륙재 그대로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그런 자리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동참을 해야 됩니다. 역설을 하셔야 되고요. 이 공동체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를 더 아마 하겠죠. 살생을 하지 마라 하는 건 계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기회가 되시면 여러분들이 적어도 그걸 하셔야 되지 않을까. 하시고 계실 거라 보기는 하는데 포살을 하셔야 됩니다. 1년에 한 차례 정도는 보살계 수계식을 하시고, 그리고 보름마다 포살 하면 얼마나 좋겠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자비선사는 한 달에 한 번 포살을 꼭 합니다. 포살을 하고 1년에 한 차례 꼭 보살계 수계식을 꼭 하고, 심지어는 유명계까지 합니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불명을 주는 유명계 행사까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수륙재와 연관해서 그런 계율 행사, 포살 행사도 곁들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것이 바로 이제 공동체의 가치를 선양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 여기서 법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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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행수륙재] 10월 1일 국행수륙재 4재 법문
회주 계호스님 2023-10-01
-바보 반특(槃特)비구의 게송으로 절의 정문을 세 번 두드리다- 안녕하세요. 오늘 제가 법문할 내용은요, <바보 반특 비구의 게송으로 절의 정문을 세 번 두드리다>라고 했는데, 제목이 너무 좀 그렇죠? ‘그냥 반특비구로 해도 되는데, 왜 바보 반특 비구라고 했을까’ 여러분들 의심나지 않습니까? 의심나죠. 바보는 뭐의 반대말이에요? 천재의 반대말이죠. 앞에 왜 수식어가 바보냐 했냐면은, 이 반특비구가요, 너무 똑똑하고 과거세에는 아라한을 다 증득을 했던 분이에요. 근데 살면서 법을 좀 나눠주고 모든 사람한테 알려줘야 되는데, 법을 아낀 과보로 바보가 된 거예요. 보통 경전에서도 나오지만은, 치문에 선사가 어린 동자를 훈계하는 내용에 <쓸어라> 할 때 소지할 때 소(掃)자 있죠, 소하고, 빗자루 추자(箒)가 있어요. 반특 비구는 사실은 주리반특가인데, 그냥 반특가라고 해놨어요. 반특가는 하도 바보처럼 말도 잘 안 듣고 어리숙해서, 부처님께서 “쓸어라” 하면은 빗자루를 잊어먹고, 빗자루로 해라 하면 쓸어라를 잊어버려요. 그러기를 3년 동안 하다가 나중에는 이제 깨달아서 아라한이 됐어요. 그게 치문에 나오는 아함경의 내용이고. 오늘은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의 술천품(述千品)에도 나오는 얘기가 있는데, 법화경에 아라한이 된 바보 반특가존자라고 나왔어요. 그러면 그 내용은 뭔가 하면은, 주리반특가와 형제가 마하반특가가 있었어요. 근데 이 주리반특가는 부처님 제자 가운데 마음으로 만들어진 몸을 창조하는 가운데 으뜸이에요. 마음으로 만들어진 몸을 창조하는 가운데 으뜸이면은 마음으로 뭐든지 다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의 그 수식어는 마음의 전개에서 능숙한 제자 가운데 으뜸이에요. 그러니까 두 가지 수식어가 있죠. 마음으로 만들어진 몸을 창조한 가운데 으뜸인 제자가 누구예요? 주리반특가에요. 또 하나는 마음의 전개에서 능숙한 제자 가운데 으뜸인 제자가 주리반특가인데, 주리반특가 형이 마하반특가라고 그랬죠. 마하반특가와 주리반특가 형제가 외할아버지 집에서 자랐습니다. 왜 외할아버지 집에서 자랐느냐면은 이 어머니가 부잣집 딸인데 하인하고 좀 눈이 좀 맞아가지고 도망다니다가 큰 길에서 마하반특가를 놨어요. 큰 길에서 도망다니다가. 마하라는 말은 큰 대자의 뜻이에요. 마하반특가는 큰이라는 뜻이고, 반특가는 길이라는 뜻이에요. 큰 길에서 낳아서 마하반특가고. 그럼 동생은 도망다니다가 이제 적은 길에서, 조그마한 좁은 길에서 나와서 주리반특가예요. 근데 이제 형은 아주 똑똑해요. 그래서 외할아버지 집에서 자라다가, 나중에 이 할아버지가 절에 다니는 걸 좋아해서, 부처님이 법문하는 걸 좋아해가지고 주리반특가하고 마하반특가하고 같이 다녔는데, 마하반특가는 너무 똑똑해 가지고 자라서 부처님 제자가 되어 아라한을 벌써 증득했어요. 형이 아라한을 증득한 위치에 있으니까 주리반특가도 나도 형님 따라서 부처님 제자가 되겠다 하고 절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석 달이 되도록 게송을 하나도 못 외우는 거예요. 형인 마하반특가의 소임은 뭐냐 하면은 공양청을 받아가지고 그 명단을 적는 그런 소임이에요. 그러니까 다른 비구스님들은 다 명단에 적어가지고 오늘 공양이 들어왔으면 다 공양을 했는데, 누구만 제해 놨겠어요? 주리반특가. 못 외우니까 바보잖아요. 이제 신도들한테도 창피하고 자기 동생이지만은 공양에 청하지 않고 딱 체크해가지고 제했어요. 그러니까 반특가가 기분이 좋겠어요, 안 좋겠어요? 안 좋겠죠. 막 화가 나가지고 “나 스님 노릇 안 하고 집에 돌아가야 된다”하니까 부처님이 딱 관하고 “안 되겠다.”하고 주리반특가를 불렀어요. 그러면서 천을 하나 줬어요. 이런 천을 하나, 하얀 수건을 주면서 “반특가야, 이걸 가지고 마루를 닦아라.” 그랬어요. 그래서 밀고 당기면서 “라조화라낭 라조화라낭” 마루를 닦자예요. 마루 닦자, 마루 닦자, 마루 닦자 해서 계속 닦다 보니까 마루가 반질반질 빛나는데, 이 주리반특가가 어떤 생각이 나냐면 ‘조건 지어진 거는 변화하는구나.’ 천이 나쁜 게 아니에요. 밑에 뭐예요? 때죠. 때가 이게 조건 지어진 게 변화되니까, 때가 있음으로 해서 이 걸레가 뻣뻣하게 변했으니까, 그 무상의 진리를 또 깨달았어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또 한 번 더 불러가지고 설법을 하시기를, “비단 이것만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에도 때가 있는데, 욕망, 갈등, 진심, 악심, 무지, 이런 것들이 다 이렇게 끼어가지고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네가 만약에 이런 거를 다 제거하면은 나중에 아라한이 될 것이다”라고 이제 말씀을 해줬어요. 그러니까 이 주리반특가가 열심히 또 하다 보니까 “천이 더러운 것이 아니구나. 마음의 때, 그러니까 탐진치 탐심의 때, 그다음에 성냄의 때, 어리석음의 때 이것 때문에 모든 것이 이렇게 됐구나” 싶어서 열심히 정진해가지고, 욕계를 떠나서 색계의 사선정을 얻어가지고, 아까 뭐라 그랬어요? 마음으로 만들어진 몸을 창조하는 가운데 으뜸이 누구예요? 주리반특가죠. 그래서 마음의 전개에서 능숙한 제자 가운데 으뜸으로 알려진 수행자가 주리반특가예요. 주리반특가가 대단하죠. 그래서 보통 바보 같은 사람을 우리나라에서는 뭐라고 말해요? 천치란 말도 있죠. 혹시 숙맥(菽麥)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숙맥은 뭐가 숙맥이에요? 콩 숙자, 보리 맥자잖아요. 콩인지 보린지 분간 못 하는 사람을 숙맥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부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과거세에 법을 아끼지 말아라.>. 법을 아끼면은 이런 과보를 받으니까, 우리가 알면 남한테 베풀어서 알려줘야 돼요. 왜 그걸 갖다가 안 알려주고 왜 몰래 하잖아요. 뭐 시험 칠 때 속인들이나 답안지 누가 볼까 봐 그렇게 몰래 하는 거지, 절에 들어와서는 스님들이 그러면 안 돼요. 보살님들도 그러면 안 되겠죠. 오늘 확실히 아셨죠? 법을 아껴가지고 뭐가 됐어요? 바보가 됐죠. 그러니까 과거세에 아라한 증득했지만은 너무 무지하고 이렇게 아껴서 법을 아끼는 과보로 바보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바보 안되려면은 법을 널리 펴가지고 “불법을 전합시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우리도 배워가지고 잘 널리 알려야 돼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불법을 배울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지만이 그 사람은 부처님이 될 수 있는 복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역으로 복이 안 되면요, 복도 지을 복이 없는 거예요. 복도 지어야지 복을 받잖아요. 그렇듯이 우리는 항상 남에게 잘해줘야 된다는 이타행을 해야 돼요. 불심무구(佛心無垢)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불심무구. 부처님 마음은 때가 없다 얘기해요. 우리들도 번뇌 망상이 끼어가지고 이렇게 부처님이 안 됐지, 그것만 없으면 아라한을 증득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이 주리반특가처럼 되지 말고 법을 널리 펴가지고, 과거에는 그렇다 해도 현재는 깨칠 수 있는 그런 역량을 가지고서 수행을 해야 된다는 내용입니다. 올해 진관사 국행수륙재는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10주년, 조선시대 최초로 왕실 수륙사가 건립되고 수륙재가 봉행된 지 625주년, 정전70주년을 맞이했어요. 근데 오늘이 무슨 날이에요? 국군의 날이죠. 내일은 노인의 날이에요. 모레는 개천절이고, 10월 9일은 한글날이고. 옛날은 10월 24일 유엔 데이라고 그랬죠, 이제 그거는 또 없어졌더라고요. 10월달은 행사가 많아요. 한글에 대한 행사도 많은데요. 여기서는 수행과 신행의 중요한 작법 하나를 이제 말씀드리려고 하는데, 국행수륙재를 하면 세 가지 조건이 맞아야지 국행이라 할 수 있어요. 뭐냐. 처음에는 수륙 도량. 태조 이성계께서 진관사를 몇 번 오셨냐 하면, 세 번이나 거동하셨어요. 임금님이 오시는 걸 거동이라 그래요. 그다음에 수륙사라 해가지고 저기 탑이 있는데, 거기에 수륙사가 3층 59칸인데, 여기 3층이라는 거는 상단 중단 하단을 말하는 거예요. 그럼 상단에는 고려의 사람들을 영가를 넣겠어요, 이조의 사람들을 넣겠어요? 이태조 이성계께서. 이조 사람들이겠죠. 상단에는 이성계, 이씨 왕조의 사람들을 상단에다 올리고, 중단에는 고려에 충신들, 돌아간 사람들, 자기 본인들이 다 죽인 사람들을 중단해 놓고, 하단에는 보통 일반 유주무주 고혼들을 다 하단에 놨어요. 그래서 59칸 수륙사가 있는 사찰은 진관사밖에 없어요. 사당 사자예요. 그리고 수륙답이라 그래가지고, 전답이에요. 거기서 충당해가지고 그걸 가지고 국행수륙재를 지내기 때문에, 세 가지 조건이 갖추어진 곳이 진관사 도량이에요. 여러분들이 이런 걸 알아야 되기 때문에 법문을 많이 들어야 해요. 이런 말씀을 몇 번이나 다 했는데 또 지나면 잊어먹어요. 그럼 또 알아야 되고 자꾸 배워야 되잖아요. 그렇죠? 진관사 도량이 이렇게 맑고, 계속 하루하루 모습이 달라져요. 물론 이렇게 살아가는데 현상이 바뀌어지는 것도 보면요. 저는 요새요, 가만히 보면은 이렇게 걷다가 우리 집 뜰을 이렇게 보면 산당화 있죠, 산당화가 지금 꽃을 피우고 있어요. 그래서 그냥 철없는 산당화다 그러는데, 그게 또 겨울에 동지 지나서 또 꽃이 꽃대가 올라와요. 그래서 이 철없는 불쌍한 산당화 맨날 그러잖아요. 그게 하루하루 관찰해보면은 세상에 제행무상이란 말이 있죠. 살아가면서 이게 영원한 건 없어요. 부처님 진리만이 영원하고 법만이 영원하지. 세상에 이런 다 현상계는 다 바뀌는 거예요. 조건의 현상을 이렇게 주리반특가가 깨쳐가지고 아라한이 됐듯이, 이걸 느끼면은 세상이 무상하니까 부지런히 뭐 해야 돼요? 공부해야 되죠. 그래서 우리가 수행도 수행이지만, 모습도 불교다워서 우리가 <위의가 바로 불교>라고 그랬거든요. 위의는 몇 가지가 있냐면 팔만세행과 삼천위의가 있어요. 세세하게 따지면 팔만가지 세세한 게 다 있고, 삼천 위의는 그 위의가 그렇게 많은데, 한마디로 말하면 위의가 바로 불교라는 그런 모습이에요. 그래서 우리 모습도 다른 사람들이 그냥 막 이렇게 다니는 것보다 단정하게 보이면은, 사람들이 ‘스님의 용모가 참 좋다. 용모가 가관이 아니고 용모가, 모습이 참 좋으니까 우리도 저렇게 스님네들처럼 단정하게 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는 거예요. 그리고 또 살아가면서 계로서 스승을 삼으라는 말도 있죠, 부처님 유언에.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계행을 열심히 지키고. 진관사가 이렇게 쭉 이어온 것이 또 그랬잖아요. 보시와 계행, 수행이 세 가지라 했는데 따지고 보면 육바라밀이에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고, 그다음에 그걸 줄이면은 계정혜 삼학이에요. 그러니까 여기에 다 들어간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신심이 있어야 되고, 단정해야 되고, 또 묵언을 해야 되고. 여기에서 왜 묵언이란 말이 나오냐면은 법구비유경의 술천품을 보면 바보 반특가 이야기가 나온다 그랬죠. 코살라국의 반특이라는 비구는 주리반특가의 준말이 반특이에요. 그러니까 주리반특가라고 생각하면 돼요. 매우 우둔해서 뭐에게? 500 나한에게 3년 동안 배웠으나 게송 하나도 외우지 못했어요. 그래서 깨우지 못하니까 불쌍하게 여긴 부처님께서 게송 하나를 주셨죠. 守口攝意 수구섭의 말하고 생각함에 신중하고 身莫犯(非) 신막범 행동에 있어 어긋나지 말라.如是行者 여시행자 이와 같이 행하는 수행자는能得度(世) 능득도 능히 큰 깨달음을 얻으리라. 수구섭의(守口攝意), 말하고 생각하며 신중히 하고, 행동에 있어서 그릇되게 하지 말라. 이런 내용이에요. 왜냐면은 제가 이제 신구의(身口意), 손을 가지고 법인 하잖아요. 이 작법이라는 게 법인인데, 밀교에서는 삼밀가지(三密加持), 신구의 삼업을 삼밀가지로 해서 즉신성불(卽身成佛)하는 그 밀교의 수행법은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는 밀교가 아니니까, 이 찰요에는 법인(法印)이 굉장히 많이 나와가지고 작법이 많아요. 법인이 많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보통 합장할 때는 -한번 다 같이 해봅시다.- 이렇게 하는데, 금강건합장은 이렇게 해가지고, 요 오른쪽이 왼쪽을 딱 눌러요. 제가 이렇게 합장을 할 때 “왜 합장을 수계산림 가면 똑바로 하랬는데 왜 스님은 법인하면서 왜 저렇게 할까?” 이건 금강건합장이에요. 그리고 금강박 할 때는 이렇게 하고. 그리고 연화합장 할 때는 연꽃처럼 볼록하게 이렇게 하는 게 연화 합장이에요. 그래서 이걸 넣어서 표시를 하는데. 하도 주리반특가가 뭐를 해도 게송을 못 외우는 거예요. 그래서 <수구섭의신막범.> 여기 지금 보이죠, 저기. 여기 옆에는 이게 소통이에요. 우리가 집에서 말하면 편지꽂이 있죠, 조그맣게 얘기하면은. 근데 이거를 누가 공양을 했냐면은요. 강영식 회장님하고 조명숙 보살이 이렇게 하나하고, 이쪽에는 강혁준, 이재희, 강정율, 강다연, 강은수 가족이 이렇게 소통 시주를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도 보시를 좀 해가지고 뭐라도 좀 해야 되겠다. 저 금판(禁板)은 주지스님이 했습니다. 다 같이 박수쳐주세요. 제가 지금 금판을 보면서 뭔 생각을 했냐면은 저 금판이 올라가면 체중계같이 저렇게 해놨잖아요. 그러면은 올라가 가지고 그게 넘어지면은 ‘업장이 커가지고 내 몸이 육중해서 그렇구나.’ 이렇게 생각하셔야 돼. 마음속으로라도. 근데 요거 <수구섭의 신막범>하면은, 말과, 여기 수구 하면 입을 단속하라는 얘기죠. 그래서 수구섭의, ‘뜻을 생각하고 말을 하고 생각함에 신중히 하라’ 얘기예요.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얘기예요. 그래서 신구의 삼업을. 그리고 신막범, ‘몸으로는 행동을 함부로 하지 말라’인데, 이와 같이 행하는 사람이 능히 도를 깨치리라. (빼보면) 여시행자 능득도 나오죠. 이와 같이 행하는 수행자가 능히 도를 깨달으리라. 이걸 깨쳤어요. 누가? 주리반특가, 아까 반특가 바보 반특가라 그랬잖아요. 주리반특가가 이 게송을 깨쳤어요. (이게 뒷면이고.) 개문게開門偈捲箔逢彌勒 권박봉미륵 발을 걷으면 미륵불을 맞이하고 開門見釋迦 개문견석가 문을 열면 석가모니불을 뵈리니 三三禮無上 삼삼례무상 위없는 분께 아홉 번 절 올리고 遊戲法王家 유희법왕가 법왕의 집에서 즐거이 노니소서. 지금 진관사에서 이거 몇 백 년 만에 처음으로 행하는 얘기인데, 낮재, 밤재가 있죠. 토요일이 낮재잖아요. 낮재 때 시련, 대령, 관욕하고 나서 부처님 앞에 보례삼보(普禮三寶)하는 게 있죠. 개문게라고 있어요. 그래서 권박봉미륵(捲箔逢彌勒), 발을 여니까 미륵불을 맞이하고, 또 개문견석가(開門見釋迦), 문을 여니 석가모니 부처님을 뵙고, 삼삼례무상(三三禮無上), 무상이 없는 분께 9배 절을 하노니, 유희법왕가(遊戲法王家) 이랬거든요. 법왕의 가에서 즐겁게 노니소서 하는 내용이 저거예요. 저걸 들고 이제 마지막에 우리가 이제 대문 앞에 가서 하면은 그 앞에 이제 시자가 대문을 닫았다가 열어줘요. 빼 가지고 제가 이제 한번 해볼게요. 오늘은 실습이 많습니다. 이쪽을 앞으로 해가지고, 제가 이렇게 들고 있으면은, 이제 어장 스님이 먼저 개문개를 해요. 아까 얘기했죠. ‘발을 걷으니까 미륵불을 맞이하고 부처님 문을 여니까 부처님을 뵈오니 그러니까 위 없는 부처님에게 9번 절하고 법왕의 가에서 즐겁게 노니소서’ 하고 나면은, 제가 이제 옆에서 -일어서서 한번 해볼까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이거를 가지고 문을 세 번 딱딱 두드려요. 그러면 시자가 대문을 열어줘요. 대문을 통해 어장스님이 먼저 가고, 제가 가면서, 뒤에 영가들이 다 올라와 가지고 부처님 앞에다가 쭉 9번 절하고 나서 그다음에 안치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 보셨죠? 이거를 금판이라고 그래요. 금판. 몇 백 년 만에 진관사에서 처음 하는 거예요. 우리나라 수륙재에서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진관사에서만 이렇게 하는 겁니다. 주리반특가가 아까 <수구섭의 신막범 여시행자 능득도>라는 게송을 깨우쳐가지고 있었는데, 하루는 코살라국의 파사익왕이 공양 대접을 했어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발우를 들고 가시는데, 부처님이 주리반특가에게 발우을 딱 맡겼어요. 하나하나씩 이제 점검해서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문지기가 아니 바보 반특가는 ‘게송도 하나 못 외우면서 어디 들어가려고 하느냐.’ 그런데 다른 사람 같으면은 나는 게송을 깨쳐서 지금 아라한이다라고 이렇게 말할 텐데 한마디도 안 했어요. 안 하니까 이제 부처님께서 이런 일이 있을 거다라고 아시고는 미리 발우를 준 거예요. 그러니까 나쁜 사람이 와서 뭐라고 해도 묵빈대처(默賓對處)하는 게 우리들의 기본이에요. 거기다 말대꾸 해가지고 뭐 깨쳤다, 안 깨쳤다 말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이제 부처님이 막 공양을 하려하니 발우가 없는 걸 본 거에요. 아라한이면 신통을 가진 분이에요. 벌써 다 보이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팔을 길게 늘어뜨려서 발우를 부처님께 올렸어요. -스님이 받아보세요. 스님이. 오늘은 뭐 실습을 많이 하네.- 그걸 보고 모두 깜짝 놀래요. 팔은 누구 팔이죠? 주리반특가 팔이잖아요. 팔이 부처님 앞에 발우를 딱 주고. 그러니까 파사익왕과 대중들이 깜짝 놀래가지고 그곳으로 몰려와가지고 이게 어찌 된 일이냐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천 마디 게송을 알고 천 마디 문자를 다 알아도 한 마디 게송을 외워가지고 깨닫는 것만 못하다고 딱 설명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누구를 인정하는 거예요? 주리반특가를 인정해가지고 벌써 깨쳤다라는 걸 이제 알린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까 그랬죠. 이렇게 주리반특가가 내민 긴 팔에 들린 발우로 공양을 잘 마쳤어요. 이 게송이 경전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준 내용이에요. 그러니까 수행과 실행을 바로 하라는 얘기예요. 여기서는 우리가 終日數他寶(종일수타보)하나 自無半錢分(자무반전분)라 그러잖아요. 아무리 은행에 돈을 많이 세어도 자기 건 안 되잖아요. 그렇듯이 우리가 남의 것만 계속 계산하면 안 되고 자기 스스로 깨달아서 해야지만이 이룰 수 있다는 그런 내용이에요. 오늘 부처님께서 이렇게 저희들한테 게송을 주셨는데, 제가 이렇게 가만히 생각하니까 이것도 우리들의 인연이다. 주리반특가의 내용을 주면서 전전생에 다 깨친 분들인데 법을 너무 아끼는 과보로다가 바보가 됐다. 그래 바보는 되지 말아야 되잖아요. 그렇죠? 여러분들도 오늘 개문게의 게송이라든지, 수구섭의 신막범 여시행자 능득도하듯이 다 이렇게 깨달음을 얻어가지고. 이 수륙도량은 4가지로 뭐라 그러죠? 무량공덕. 수륙재의 공덕은 무량공덕이에요. 그래 네 가지로 표현하면 무량공덕이기 때문에, 이 수륙도량에 들어와도 뭐가 다 녹는다 그래요? 과거의 삼업이 다 녹고 업장소멸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환희용락해가지고 깨달음에 이르러서, 아주 얼굴도 환하고. 모든 것이 기도하는 사람 보면요, 욕심이 없기 때문에 맑아요.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서 맑게 보이는 게 수행자의 모습이에요. 그러니까 아까 탐심, 욕심, 진심이 어리석음이 때듯이 우리 마음에는 번뇌 망상이 없어야지만이 바로 깨달음에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의 전개에 가장 으뜸인 제자 주리반특가처럼 바보는 되지 말고, 깨달음에 이르러서 바로바로 깨닫는 그런 수행력이 돼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오늘 법문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바보 주리반특가가 뭔 게송을 가지고 절 문을 세 번 두드리나 할 거예요. 내용이 뭐예요, 오늘 법문 한 내용이?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지 말고 행동에 있어서도 신중히 하라 얘기예요. 그릇되게 하지 말고. 이와 같이 수행하는 사람 말이 신구의 삼업, 왜냐하면은 법이라는 아사리라고 그러죠, 아사리는 교수사를 아사리라 그래요. 그래서 요새는 조계종에 무슨 아사리, 무슨 아사리 그러더라고요. 문화 아사리, 염불 아사리 아사리. 그러니까 신도님들도 그렇고, 스님네들도 그렇고, 다 같이 맑은 마음으로 수행하면은 다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거 아시죠? 아까 불심무구라고 그랬잖아요. 부처님 마음은 때가 없듯이 우리도 때가 없이 열심히 수행 정진합시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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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행수륙재] 9월 24일 국행수륙재 4재 법문
혜국스님 2023-09-24
지심발원 대자대비 불보살님 이 진관사 국행수륙재에 모인 모든 운집 대중과 운집 영가 고혼들을 위하여 증명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이 과거 전생으로 오늘날에 이르도록 먹은 마음 연기 공성을 깨닫지 못하고, 잠깐동안 빌려 쓰는 이 몸을 나라고 잘못 생각하여 번뇌 망상 감정에 끌려다니느라, 나고 죽는 생사윤회를 하옵는바, 이차인연 수륙재 참회발심공덕으로 필경성불하여지이다. 나무아미타불 오늘 이 진관사 수륙재에 동참한 모든 고혼들이여. 당신들이 있어서 오늘 대한민국 땅이 있고, 이러한 우리 눈에 보이는 찬란한 이런 문화들이 내려오고 있는데, 금일 영가들이 삶이 아름다웠다면 죽음도 아름다워야 합니다. 삶을 그렇게 이 나라를 위해서 목숨 바치고 온 중생이 내 몸같이 생각했던 그런 마음으로 장엄을 했다면, 죽음 또한 그렇게 아름답게 장엄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저에게 주어진 주제가 <미래 세대의 불교를 위한 화두>다. 그럼 미래 세대라고 하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부처님께서는 과연 뭐라고 하셨는가. 부처님께서는 금일 영가들, 우리 몸속에 나라고 하는 영혼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삶이 곧 마음이다. 즉 <과거니 현재니 미래를 부처님께서는 재행무상이다> 이렇게 하셨는데, 오늘 이 진관사를 제가 오면서 청주에서 올라오느라고 한강을 지나왔는데, 오늘 오후에 가다 보면 그 한강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 ‘한강이 있다.’ 그러거든요. 아침에 올라오면서 내가 본 한강물은 분명히 바다로 흘러가 버려서 다시는 볼 수도 없고, 손을 씻을 수도 없건마는, 엉뚱한 다른 강물을 나는 아침에 본 한강물이라 이렇게 생각을 하고 사니, 그것을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착각이라, 번뇌 망상이라고 한다. 번뇌 망상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연기 중도에는 과거도 바로 지금이 이 시간이오, 현재도 이 시간이오, 미래도 이 시간이니, 미래의 세대를 위한 불교는 바로 오늘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오늘 내 마음 밭에 어떠한 씨앗을 심고 있는가, 오늘 나는 어떤 말투를 쓰고 있고, 어떤 행을 하고 있는가, 내 가족들이 볼 때, 내 이웃들이 볼 때, 내 모습이 어떤 씨앗으로 보여지고 있는가, 그것을 바로 보는 것을 우리는 미래의 씨앗을 바로 심는 사람이라 미래가 아름다워진다. 그러면 우리가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미래의 가장 큰 걱정은 환경입니다. 환경. 즉 우주 대자연인데, 올여름만 하더라도 얼마나 그렇게 무덥던지, 한국은 그래도 땅의 기운이 좋고 이만큼 이상기후의 폐해를 좀 더 적게 받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볼 때 환경이 이상기후가 될 때 우리 자손들에게 우리가 그냥 있어도 될 것인가, 그냥 이대로 살아가도 될 것인가. 만약 이대로 이상기후가 오고 환경을 파괴하면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어떤 철학에서도, 어떤 종교에서도 나온 일이 없는, 즉 연기 중도법을 설하셨는데, 그 말씀은 뭐냐 하면, <환경과 나와의 관계가 과연 어떠한가> 그것부터 먼저 가르쳤습니다. 그럼 우리 눈에는 이 진관사 와보면 ‘정말 인생을 바치면서 살고 있구나. 열과 혼을 바치는 그런 정성을 느껴서 참 고맙다. 수륙재 하나를 지내는 것만 보더라도 정말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구나.’ 수륙재란 바로 우리들의 삶입니다.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바로 현재의 우리 자신의 마음이 깨어 있는가, 깨어 있지 않는가를 바로 보는 것이 수륙재입니다. 그럼 수륙재를 지내는 진관사에 오면 법당이나 이 건물 하나하나 산이나 소나무나 돌 하나하나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오늘 영가들에게 저 앞에 산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영가들에게는 산이 없습니다. 진관사 함월당이든 법당이든 문을 꽁꽁 걸어 잠가놔도, 스님들이 “이 나라를 위해서 죽어간 영가들이여, 그리고 심지어 그 외국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우리나라에서 목숨 바친 영가들이여, 당신들을 위한 수륙재를 올립니다.” 하면 문을 꽁꽁 잠가놨는데 들어옵니까, 안 들어옵니까? 마음대로 들어온다. 이 말이 그럼 문이 있다는 얘기예요, 없다는 얘기예요? 우리에게는 문이 있지마는 영가들에게는 문이 없다는 얘기예요. 그러면 저 모든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내 마음 상태에 따라서 달리 보이는 것이다. 물을 예로 들자면, 물은 인간이 볼 땐 물로 보이고, 물고기가 볼 땐 허공으로 보이기 때문에 자유롭듯이, 내가 본다고 하는 모든 것은 내 마음 상태, 내가 익힌 아는 만큼 비친 그림자였다는 사실을 바로 보면, 환경은 곧 나다, 내가 곧 우주다, 우주가 곧 나다, 하나로 봤습니다. 심지어 이런 법을 듣고 아인슈타인 박사는 부처님이라는 분은 과학의 아버지라고까지 표현을 했거든요. 저는 그래서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뜻을 따르는 불자가 된다는 복이, 특히 저 같은 경우는 스님으로서 살아간다는 게 아마 내가 과거생부터 금생까지 살아온 몇백 년, 몇 천년 중에 가장 큰 복이었구나. 그럼 왜 그런가를 한번 들어가 보자는 얘기예요. 왜 그런가. 이 앞에, -지금 저 밖에 계시는 분들은 이게 안 보이는데,- 제가 물컵을 하나 들고 있거든요. 물컵을. 그런데 이 물컵이 동그래요. 물컵이 동그라면 물 모양이 동그랗습니까? 네모납니까? 동그랗죠. 그래서 내가 동그란 게 좀 싫다고, 주지 스님이 -저 주지 스님은 원력으로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꽉 차신 분인데, 참 내가 그것을 정말 아주 어쩌면 부러워하는 일이기까지도 한데,- 주지스님 보고 “나 이 동그란 컵 싫으니까 네모반듯한 컵 좀 갖다 주십시오.” 하면, 네모반듯한 컵에 이 물을 부으면 이 물은 동그랗습니까? 네모반듯합니까? 그러면 동그란 물을 네모반듯하게 만든 놈이 따로 있습니까? 그릇에 따라서 물이 변하는 겁니까? 그릇에 따라서 네모난 물이 되기도 하고, 세모난 물이 되기도 하고, 동그란 물이 되기도 하고. 조건, 네모난 그릇이냐, 동그란 그릇이냐, 조건, 그걸 인연이라 그럽니다. 인연에 따라서 네모 물이 되고 세모 물이 되고, 영하라고 하는 인연이 오면 얼음이 돼버리고, 영상이라고 하는 인연이 오면 물이 되고, 100도 이상이라고 하는 인연이 오면 수증기가 돼버린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 세계를 오온개공(五蘊皆空)이다. 저는 이 세상에 오온개공이라는 말보다 더 아름다운 마음을 울리는 글이 없다고까지 생각을 하는데요, 뭐 다 안 찾아봐서 모르긴 하겠습니다마는. 그러면 여러분들이 반야 심경을 외울 때마다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이래 나가는데, 그 오온개공이 저는 미래 세대의 불교를 위한 화두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럼 왜 오온개공이냐. 그럼 부처님께서 오온이다, 오온이다 하면 이 몸뚱이를 오온이라고 다 생각을 해. 맞긴 맞죠. 오온이라는 게 색수상행식. 요 다섯 가지를 오온이라 그런다 이 말이야.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니 몸뚱이가 오온이란 말은 이 세상이 오온이란 말이다. 온 우주가 오온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한번 봅시다. 온 우주가 오온이라면 내 몸뚱이와 우주를 하나로 본 건데, 그러면 내 몸뚱이가, 혜국 스님이라고 하는 이 몸뚱이가 이 안에서 나라고 하는 놈이 따로 있어가지고 살을 찌게도 만들고 빠지게도 만들고, 크게도 만들고 적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간혹 있거든요. 내 안에 내가 따로 있다. 그러나 내 몸뚱이나 여러분들 몸뚱이를 가만히 보면, 음식이 들어가고 물이 들어가고 공기를 마시고, 즉 태양 열량을 이제 빌려오고, 온 우주 기운이 나를 살을 찌게도 만들고 크게도 만들고 병들게도 만들고 빠지게도 만들고 있지. 그럼 이 몸뚱이란 지수화풍, 우주 자연이 키운 음식이 모인 것이지, 나라는 게 따로 있어서 늙지 못하게 하고 아프지 못하게 하는 놈이 따로 없다. 이게 참 믿음이 안 가요. 부처님께서는 그래서 부처님 당시에 제일의 공경에서 <업보는 있으나 작자는 없다.> 이게 오온개공으로 이어지게 되거든요. 그러면 이 몸뚱이라는 게 여러분들이 전부 다 내가 따로 있다는 거예요. 내가 따로 있다고. 내가 따로 있다는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면 스님은 뭐 아무것도 없는데, 뭘 가지고 그렇게 지껄이고 있고, 우리는 뭘 가지고 이래 듣습니까? 이게 바로 미래 세대를 위한 불자들의 화두입니다. 그래서 함허득통선사 같은 분들은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참으로 뭐라고 표현해도 표현할 수가 없다. 너무나 오묘하고 미묘하여 있다고 하니 없는 것 같고, 없다고 하니 있는 것 같고, 이거는 측량하기 어렵고 말하기 어렵다. 오늘 진관사 수륙재에 오신 모든 고혼들이여, 영가들이여, 이 어떠한 물건인가. 당신들이 오늘 수륙재 지내기를 얼마나 기다리셨고, 기다리고 오늘 와서 염불 듣고 법문 들을 줄 아는 그놈이 과연 누구인가. 스님, 내가 따로 없다면 누가 와서 듣는 겁니까? 이거야말로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어. 이거야말로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우리가 조금 이제 내려가 봅시다. 뭐 요즘은 제가 죽도록 법문해봐야 ‘그 양반 뭐라고 지껄였는지 너무 어려워.’ 하는 말을 많이 들어서 약간 지금 주눅이 들어 있어. 내가 어떻게 하면 좀 알아듣기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그걸 좀 배워야 되겠는데, 그게 이제 물론 내 허물도 많지만은, 옛날 내가 배울 때는 성철 큰스님이든 뭐 경봉 큰스님이든 전부 다 그 어른들은 “내가 보이나?” “예, 스님 보입니다.” “뭐라고 하노.” “모르겠습니다.” “나가.” 이게 전부 다였단 말이야. 이게 전부 다였어. 그런데 그게 엄청난 가르침이었거든요. 그래 배워놓으니까 내가 이제 좀 서툴러. 이제 좀 쉽게 하는데. 근데 최대한 이제 쉽게 좀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 여러분들 이 세상 살면서 미운 사람 있죠. 가족도 마음에 안 든대요. 대부분 보살들 와서 말 들어보면, 남편 흉 엄청 보거든.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도대체가 마음에 안 들어. 저런 줄 알았으면 결혼을 안 했을 거라는 거예요. 내가 그래서 그 보살 보고 웃고 그래요. “당신 위해서 태어난 분 아니거든요. 남편은 당신이 잘해줄까 봐 결혼했지, 당신한테 잘해주려고 결혼한 게 아닙니다. 그러면 그 남편이나 아들, 딸, 말 안 듣는 아들, 딸 말 잘 듣게 할 자신 있습니까?” “자신이 없으니까 스님 찾아왔죠.” 그럼 나도 모르니까 부처님께 물어보자. 부처님은 뭐라고 하셨는가. 부처님은 100% 해결을 합니다. 그러면 부처님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연기법에서 인연법에서 그 사람 되게 밉지? 니가 미워하는 사람이 내가 되게 미워하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좋아서 죽을 지경인 사람이 많거든요. 그 사람 나는 그렇게 미운데, 그 사람 보고 2분의 1 했다는 거예요. 2분의 1이 뭐예요? 반이니까 반했다 이 말이야. 반했어. 딱 반했다 이 말이야. 그러면 그 사람은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닌데 문제는 어디 있어요? 미워하는 내 마음, 나한테 있다는 거예요. 부처님께서는 대상은 네가 비친 그림자라, 실상이 아니다. 그 역경과 미운 마음, 원망하는 그 사람을 없애려면 만약에 그 사람을 어디로, 외국으로 이민 보내면 네 마음에 있는 기운만큼 그보다 꼭 그런 사람이, 뺑덕엄마 같은 게 하나 와가지고 너를 똑같이 힘들게 할 것이다. 영원히 이어지는 것을 윤회라 그러는데, 윤회를 안 하고 싶거들랑 네 마음만 내려놔버려라. 미운 마음 하나 내려놔 버리면, 이건 내가 미워해서 그렇지 상대방의 문제가 있는 게 아니구나. 내 남편이 문제도 아니오, 내 부인이 문제도 아니오, 아들, 딸이 문제도 아니오. 이거는 오직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 그러면 내 마음을 한번 좋게 쓰면 좋은 식으로 나가고, 좋은 기운이 나오고, 나쁘게 쓰면 나쁜 기운으로 되니까, 내 마음이 고정으로 딱 정해진 겁니까? 생각 일으키는 대로 달라집니까? 그걸 공이라 그래요. 그걸 물이 없는 게 아니고 물이 있고, 얼음이 없는 게 아니고 얼음이 있고, 수증기가 없는 게 아니고 있고, 다 있는데, 고정된 실체가 없기 때문에 주위 여건에 의해서 얼음이 물도 될 수 있고 물이 수증기도 될 수 있으니, 오늘날까지 도둑질을 하고, 죄업을 지어도, 한 생각 딱 수륙재, 수륙재가 그 뜻이니까, 딱 바꿔 먹으면 그래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이번 비 피해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가지고, 사람 살리는 게 이렇게 아름다운 일이구나, 나는 이 길을 가야겠다면 그 사람 도덕놈이요? 의로운 좋은 사람이요? 그러면 그 사람이 도둑질했던 업에 끌려가면 윤회요. 그걸 딱 끊어두고 나는 이 길 가겠다면 죄하고는 상관이 없어. 그것이 공이라 이 말이요. 그것이 공이여. 그 공이란 나는 제일 지금 어떨 때 보면 요즘 말로 뚜껑이 열리는 이유가 있는데, -요즘 말로 화가 나는 걸 뚜껑이 열린다 그러더라고. 맞긴 맞아요.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머리에 뚜껑이 있어.- 중국의 대단히 유명한 임어당이라고 하는 그런 대학자도 불교는 공을 주장하기 때문에 좀 허무적이다. 공이기 때문에 희망이요, 공이기 때문에 무한이요, 공이기 때문에 무한 가능성 부처인데, 와, 공을 그런 대학자도 허무로 봤구나. 공이야말로, 이 공이야말로 삶이요, 희망이라. 이게 바로 미래 세대를 위한 불자들의 화두가 돼야 된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 생각만 딱 내려놔버리면, 내려놓고 봐봐요. 남편이나 아들, 딸들은 나를 위해서 온 게 아니다. 각자 자기 길을 가니까, 내가 옳다는 거를 인정받고 싶으면 상대방 옳은 것부터 먼저 인정을 하자. 그러면 올 수밖에 없어. 나와 남은 둘이 하나니까. 내 옳다는 고집을 딱 내버리는 순간 내가 편안해지지. 이게 공이 현현이요, 공의 현현, 공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부처님께서 오온개공이다. 여기는 이제 워낙 이제 훌륭한 스님들이 와서 이제 법문을 많이 하기 때문에, 법문은 이제 많이 길게 안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몇 분이요. 몇 분 해요? 그거는 잘못 말씀하는 거요.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니까. 내가 그것 때문에 한 번 되게 혼난 사람이거든. 청담 큰스님께서 해인사 주지할 때 내 어릴 때 모시고 진주를 갔는데, 진주 호국사에서 법문하는데 주지 스님 보고 언제까지 하면 되냐니까 스님 마음대로 하라고 해서 8시간을 했거든요. 그럼 몇 사람 남아 있게요? 나하고 주지 스님하고 둘이 남았다고요. 둘이. 다 가버렸는데 그냥 법문을 하고 있더란 말이요. 나 그때 되게 혼나가지고, 절대로 나는 50분 이상 하는 법이 없어. 그때 배운 법이여 그게.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수륙재에 대해서 한번 보자 이 말이야. 영가들이이 세상 원망하는 마음 모든 거는 그건 내가 놔버릴 데 없는 것이다. 그럼 왜 놓아버려야 되냐는 그것만 바로 배우면 되요. 여러분들이 이 수륙재의 고마움을 다 몰라요, 몰라. 과거를 청정해야 한다는 건 현재로 이어지고 현재의 청정이 미래로 이어지는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 고마움은 나라에서 하는 일이었거든요, 나라에서. 그러면 스승들은 어떻게 했는가를 한번 보자 이 말이오. 오늘 수륙재에 동참한 모든 영가들이여, 스승을 찾아가 봅시다. 어떤 스승을 찾아가느냐 하면, 육조 스님이라고 하는 큰 스승을 찾아가는데, 우리를 대신해서 누가 가셨느냐면 청원 행사 스님이, -뒤에는 아주 거룩한 스승이었지만 그때는 이제 공부를 많이 해가지고, 그때도 이제 공부를 거의 다 이루고 거의 도를 통한 분인데,- 찾아가서 질문을 하기를, -금일 영가등이여, 그 스승들이 하는 질문을 들어보면 와, 저런 질문이 질문이구나. 화장실을 어디로 옮기면 좋겠습니까? 하는 그런 거 물어보는 이 질문이 아니고, 내 딸 어느 사위 보는데 사주가 맞습니까? 난 그런 질문을 모르니까 제발 나한테 그런 거 물어보지 말라고. 그건 정해진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계급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렇게 물었다 이 말이야. 수륙재에 동참한 모든 영가들이여. 이승이라는 계급, 저승이라는 계급, 나는 못났다는 계급, 나는 잘났다는 계급, 쌍놈이라는 계급, 양반이라는 계급, 우리나라 조선시대 양반과 상놈 계급은 대단했습니다. 인도 가면 사성 계급이 대단하다지만, 우리나라 조선시대는요, 양반은 아무리 뭘 잘못해도 쌍놈이 말 한마디 못했어요. 심지어 쌍놈은 노비로 만들어 가지고 요즘 강아지 망아지 송아지 팔고 사고 하듯이 사고 팔고 했다 이 말이야. 그러면 부처님께서 오온개공이라 하신 말씀은 양반이라는 계급도 명색이오, 쌍놈이라는 것도 명색이요. 인간들이 붙여놓은 이름이지만은, 모든 공의 세계에서는 그 사람이 오늘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느냐, 즉 삶이 마음이요 현재 생명이다. 이거 기가 막힌 말이구먼. -모르니까 박수도 안 치거든. 모르니까.- 삶이 바로 우리 공의 현현이라 이 말이야. 그러면 삶을 도둑질을 하면 계급에 상관없이 부처님은 그건 도둑놈이다. 아무리 쌍놈이라도 잘 살면 저 사람은 이로운 사람이다. 그러면 부처님께서 말씀한 오온개공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상놈, 양반, 그런 계급 없이 어떤 삶이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고 미래가 달라지는구나. 그러면 여기서 청원스님께서 질문한 질문은 잘 났다 못났다, 너다 나다, 자연이다 나다, 그러한 모든 분별상에서 벗어나려면, 나 옳다고 하기 때문에 남과 싸우고 남하고 비교하기 때문에 싸우지. 여러분들이 불행을 가만히 돌아보면 남하고 비교하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들 할머니 할아버지 시대에는 라디오 조그마한 거 하나 있으면 부잣집이었고, 만약 그 집에 텔레비전 하나 있었다면 그 집 애하고 싸움도 못했어요. 텔레비전 보러 못 갔으니까. 그러면 엄청난 부자라고 했는데, 지금 텔레비전 없는 분이 없고 손에 손에다 텔레비전을 들고 다닙니다. 저 휴대폰인가 하는. 할머니보다 100배의 재산을 가지고 있고, 천배의 학문을 익혔는데, 왜 저런 묻지마 폭력이 생기고, 진보니 보수니 저렇게 갈등을 해서 싸움 싸움하느라고, 그러한 노력을 우리 국민들에게 정말 정성을 다하면,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됐지만, 세계적인 데서 또 정말 세계적으로 될 수 있는 그런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대단한 나라거든요. 세상에 그냥 남의 거 얻어먹다가,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에서 알랑미 얻어다 먹던 나라에서 지금 비교가 됩니까? 그러면 이게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인가.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 놨다. 이 수륙재에 모시는 그러한 모든 그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낄 줄 아는 것은 이게 미래로 이어지기만 하면 묻지마 폭력을 없애는 길이오, 막가파식으로 가는 그러한 법을 해결하는 법이오. 너니 나니 민주니 진보니 보수니 편을 갈라가지고 싸움 싸움 하느라고, 만일 그 노력만, 야 우리 이번엔 이걸 어떻게 할까 이번엔 어떻게 할까, 참 보기도 좋고 아름다울 텐데.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아까 청원 행사를 대신해서 그런 계급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물었으니 그 질문이 대단한 질문이지 않느냐, 이 말 대단한 질문이거든. 그 말은 다른 말을 말하면 뭐라고 할까요?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 금강경에 나오는,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는 모든 것은 흘러가는 강물과 같이 멈춰 있지 않다. 무상하다. 나도 나도 흘러가는 강물이라. 내가 13살에 처음 절에 들어와가지고 이 가사장삼 입고 법당 앞 지나가면, 주지 스님 나이쯤 되는 비구니 스님들이 내 볼때기를 요리 만지면서, “아이고 동자스님 귀엽다” 그러는데 지금 귀여워? 내일 모레 80이야. 다 늙었잖아. 완전히 그냥 다 늙어 간단 말이야. 그러면 늙을 줄 아는 사람은 나도 흘러가는 강물이라. 늙어가는 아름다움, 늙어가는 것이 내 자신이 아름답지 않으면 늙어갈수록 인간은 초라해지지만, 늙어가는 게 소나무 늙어가면 낙락장송, 진관사 주위 소나무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나도 그렇게 낙락장송이 되고 있구나. 얼굴은 쪼글쪼글해진다만 내 안의 기운은 젊은이들이 가지지 못하는 그 아픔을 이겨내는 지혜, 넓은 마음, 이 마음이란 좁게 쓰기로 말하면 바늘 구멍보다도 더 좁아져버리고 넓게 쓰기로 말하면 태평양 바다보다도 넓어지는 게 마음이니, 이게 공이 아니고 뭐예요. 그러면 그 약견제상비상, 눈에 보이는 모든 건 허망한데 그 눈에 보이는 그게 허망한 것이 내 분별상, 내가 분별하기 때문에 상이지, 내가 분별하지 않으면 상이 없다는 걸, 내 분별상인 줄 알면, 즉 내 분별상은 내가 만든 거라, 한 생각 일어난 망상 번뇌인 줄 알면 그 자리가 부처요, 즉견여래라 그랬단 말이야. 그러면 이걸 조금만 더 설명할게요. 이 지금 함월당에 드럼통으로 그냥 보리, 콩, 뭐 오징어젓, 그런 것들로 꽉 채우면 우리가 이걸 쓸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쓸 수 없어요. 쓸 수 없어요. 비었기 때문에 써요. 비었기 때문에. 그러면 여러분들이 죄를 퍼지어도, 금일 영가 잘 들어요. 이 진관사에서 해마다 지내주는 이 수륙재가 당신들에게는 얼마나 고마운 걸 내가 알기 때문에 잘 들어라 이 말이야. 당신들 본질, 본 마음 연기공성에는 죄가 묻지를 않습니다. 죄가 안 묻어요. 죄가 없다 이 말이요. 그럼 아예 없습니까? 왜 없어, 죄를 지으면 받아야지. 그럼 어쩌란 말입니까? 그러니 법문을 잘 들어요. 그러면 금일 영가 등이여. 이 법당을 온통 비워버리면 마음대로 쓸 수 있는데, 본래 이 법당은 비어 있었습니까? 우리들이 잘못해가지고 가득 채웠습니까? 본래 비어 있는 법당인데 우리 욕심으로 채웠다 이 말이야. 그러면 채워 있을 때도 이 허공은 그대로고, 비워도 그대로고, 변함이 없어. 다만 눈에 볼 때 꽉 찰 때는 다른 걸로 쓸 수만 없다 뿐이야. 그러면 여러분들 마음도 완벽하기 때문에 새로 닦아서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 법당 안에 있는 그 가득 찬 미운 마음, 원망하는 마음 이것만 비워버리잔 말이야. 이것만 놔버리면 완벽하다 이 말이야. 금일 수륙재에 참석한 영가들, 해봐, 해봐서 안 되면 내 생명 대신 가져가란 말이야. 해보란 말이야. 한 생각만 딱 놔버려. 그럼 바로 비울 수 있단 말이야. 마음은 한 생각에 의해서 비울 수 있어. 이거를 유심인과(唯心因果)라 그래. 그러면 스승은 뭐라고 했느냐면 “너는 어떠한 길을 걸어왔느냐?” 이렇게 물었어. 육조 스님은 그거 참 대단한 세계들이거든. 벌써 딱 보니까 ‘저놈이 계급을 벗어났기 때문에 저런 질문을 하지, 만약 분별상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저런 질문 자체가 안 나올 텐데. 이놈의 자식, 참 쓸만한 놈 왔구나.’ 너는 어떠한 길을 걸어왔느냐 하니까, 청원 스님이 대답하기를, 수륙재에 동참한 영가 등이여, “성스러운 진리라도 행하지 않습니다.” 금일영가여 여기에 답이 있어요. 여기에.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건 한 생각 일으킨 내 마음 일어난 공이 현현입니다. 그러니 스승이 얼마나 좋았던지 “너는 어느 산을 찾아가 가지고 수천 명 대중을 깨어있도록 노력하라.” 청원산으로 보냈다 이 말이야. 청원산이라는 건 그래서 청원 행사인데, 금일 영가들 나하고 청원산을 한번 같이 가보자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 그 세계를 선적인 언어로 말하면은 바로 불이중도(不二中道)요 무진연기(無盡緣起)다. 그렇게 공의 현현이라는 건 무진하여 다함이 없구나. 바로 영원이구나. 이것이 생사윤회에서 벗어난 자리야. 그러면 유심인과라는 게 뭐냐 하면은, 여러분들 인과라는 게 네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동시인과, 두 번째는 이시인과, 세 번째는 뭐요? 강약인과, 네 번째 마지막에 유심인과요. 여러분들은 불교를 믿으면서도 “아 저 사람은 되게 악하게 사는데도 왜 저렇게 잘 돼요?” 그건 이시인과를 몰라서 그래. 동시인과는 내가 어떤 사람 귀싸대기를 한 번 때리면 그놈도 화가 나서 날 동시에 때리는 거, 동시에 일어나는 걸 동시 인과라 그러고, 내가 오늘 사과나무를 -나도 사과 농사를 석종사에서 한 13년을 지었는데- 심으면 그날 열려요? 물, 비가 와야 되고, 태양이 비춰져야 되고, 흙의 기운을 받아야 되고, 때가 돼가지고 나무가 커서 때가 돼야 열매가 열립니까? 바로 열립니까, 때가 돼야 됩니까? 그걸 알긴 아네. 그러니 악한 일을 해도, 열매 맺듯이, 때가 돼서 다른 시간에 오는 걸 이시인과라 그래요. 이시인과까지도 수륙재에 이분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다음에 강약인과요. 내가 나무를 10년 동안 했는데도 강한 불길이 오면 1시간에 타버려. 여러분들 마음 씀에 따라서. 마지막 금일 오늘 수륙재 영가 등이여, 유심인과라, 유심인과라. 내가 오늘날까지는 도둑질을 하고 못된 짓 하다가 삭발을 다 하고 승복을 입고, “부처님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길이 왜 이리 엉망이었습니까, 눈 온 들길을 걷는 나그네여, 갈팡질팡 걷지 말아라. 오늘 그대의 발자취는 뒷날 후인의 이정표니라. 정말 내 발자국을 돌아보면 여러분들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봐요. 하얀 눈이 왔을 때 어떤 발자국이 찍혀졌는가. 나 미워하는 발자국, 자식들이 내 마음대로 되길 바라는 욕망의 발자국, 그거는 돌아가서 지울 수가 없어, 어제로 돌아갈 수가 없단 말이오. 여고 시절로, 남자 고등학교 시절로 못 돌아가요. 어제로 못 돌아가니까, 만약에 그 발자국 깨끗하게 지워서 언제 돌아가도 아름다우려면 그날부터 반듯반듯한 발자국을 찍어나가면 한참 지나고 돌아보면 삐딱삐딱한 건 안 보이고 반듯반듯한 게 보이니, 이것이 바로 공의 희망이요, 언제든지 내 마음에 따라서 새로운 발자국을 찍을 수 있으니 이것을 유심인과라 그런다. 어제까지 죄를 퍼지어서 나는 죄인이었지만, 오늘 딱 정신 차리고 바로 살면 그럼 죄가 무엇이냐. 본질에는 죄가 안 묻지만, 내 감정에 쌓이고 쌓여서 내가 익힌 습관, 내 감정을 내가 붙들어 놓은 화, 이것을 부처님은 죄라 그랬다. 그것은 내가 착각에 의해서 만들어서 이미 화를 낸 날, 화는 지나가버렸는데 마음에 꽉 붙들고 화병이 되니까 그걸 번뇌 망상이라 그러고 그것을 죄라 그랬다. 그러면 금일 국행수륙재에 동참한 모든 영가 등이여, 나와 당신은 한 몸이오. 이 함월당 법당이 따로 있다는 건 벽을 쌓기 때문에, 이게 땅이지 벽만 허물어버리면 한 허공이요, 한 허공 한 생명이요, 내가 따로 없다 이 말이요. 내 안에 움직이는 내 생명이나 여러분들 안에 있는 생명이나 우주 법신이라 이 말이요, 한 허공이란 말이야. 우리는 허공의 고마움을 너무 몰라요. 허공 덕에 앉아 있고, 허공 덕에 집을 짓고, 허공 덕에 누워 있고, 허공을 1초도 떠나보지 않고, 허공 없으면 다 죽는대. 허공을 향해서 이 허공 덕에 내가 살고 있구나. 허공님 정말 고맙습니다. 그것을 나태주 시인은 이렇게 표현했더구먼. <어디선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이 세상은 찬란한 아침이 오고 어디선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이 세상은 고요한 저녁이 온다. 아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이게 이제 나태주씨 시인데. -(박수)그러면 내 그럴 줄 알았다고, 이럴 땐 박수 치고 정말 칠 때는 안 치고 벌써 처음부터 알았어.- 수륙재에 동참한 모든 영가여, 결론입니다. 이제 한번 돌아보자. 이 자연이 있어서 나고 내가 있어서 자연이라고 하니, 우주 자연과 나는 하나이니, 당신들이 생명을 바친 거는 당신들을 생명에 바친 것이지, 내가 따로 있어서 남에게 내 생명을 바치지 않는 걸 알면, 당신으로 인해가지고 이 나라가 이렇게 아름다워지고 후손들이 이런 수륙재를 지낼 수 있다는 건, 와 정말 한 허공 맞네. 한국 허공이나 미국 허공이나 인도 허공이나 온 허공이 하나인 게 맞구나. 내 생명 네 생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는 한 생명 한 법신에 의해서 살고 있으니 그거를 부처님께서는 부처라 그랬고 법신이라 그랬으니 그것을 공이라 그런다. 금일 영가여, 공이란 저 허공을 만들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허공은 못 만들어.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허공 송을 하는 그 조용필이 허공 말고 조용필 씨가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한 노래 있죠, 그게 왜 나왔어요? 조용필 씨가 경봉 큰스님을 찾아가니까, 경봉 큰스님이 “자네는 뭐 하는 사람인가” “저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꾀꼬리구먼.” 꾀꼬리처럼 노래를 한다 이 말이야. “그 꾀꼬리가 어디 있어” 이렇게 물었다. 이 말이오. 즉 니가 누구냐. 금일 수륙재를 지내는 모든 영가들이여. 누가 이거 묻겠습니까? 당신 누구요? 당신 누구냐 이 말이야. 저 영국 미국에서 온 사람, 혹시 한국 말 못 들으니까 Who are you? 누구냐 이 말이야. 누구야. 말이 그렇지 영혼들은 그냥 마음이 통하는 거지, 영어 한국어 불어가 따로 없어. 누구냐 이 말이야. 그러니까 조용필 씨가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꽉 막혀가지고 자기를 꾀꼬리라고 해놓고는 못 찾으니까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한 거란 말이야. 그러면 수륙재의 오늘 온 영가들도 아 내가 목숨 바친 그 생명이 나는 누구인가? 이 뭤고. 진관사에서 가는 곳마다 붙여놓은 <여러분은 부처님입니다.> 금일 수륙재에 온 영가 등이여, 당신들을 부처님으로 모시는 이 희망, 얼마나 좋겠습니까. 요즘 말로 말하면 오늘 영가들은 기분이 째지게 좋은 거예요. 째지게 아주. 오늘 수륙재를 이렇게 해마다 지내가지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고, 내 안에 내 생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온 공기와 물과 태양열 에너지와 대지 음식이 나를 왕자 왕비처럼 떠받들고 있기 때문에 내 감정대로 해서는 안 되겠구나. 정말 깨어 있어 보자. 그러면 나는 누구인가를 한번 이제 찾아보고. 금일 수륙재 영가들은 그렇네, 죽음이란 없네. 몇백 년이,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역력하게 이거 들을 줄 아는 거는 독립된 내가 아니라 제법무아로서 연기 공성으로서의 나는 이걸 영혼 생명이요 바로 부처라고 하는구나. 이것이 오늘 수륙재를 지내는 영가들에게 올리는 최상의 선물이었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영가들이 이렇게 아주 기분이 찢어지게 좋았으면, 여러분들도 오늘 집에 가서 내 마음에 미운 마음, 원망하는 마음, 이거 내려놓지 않는 이상, 내 마음에 아름다운 평화, <꽃잎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 하는 시구절처럼 세월이 정신없이 나를 늙도록 만드는데 이런 감정 이런 번뇌 망상 요거 가득 채워서 다닌다는 게 이건 정말 아니거든. 사람 한 번 되기 어려우니 부디 마음 농사들 열심히 지내주시기를 바라면서, 원컨데는 수륙재를 이렇게 지내는 공덕, 살아생전 모든 죄업은 번뇌 망상임을 깨달아서, 바로 이 소리와 둘이 아닌 참생명을 깨달아서, 나라리 라라 나라리 라라 태평가를 불러 봅시다.나무아미타불바깥에서 듣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