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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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재] 3월 29일 49재 법문
가섭스님 2024-03-29
마하반야바라밀 반갑습니다. 오늘 영가님의 49재를 맞이해서 하늘에서도 그간의 어머니가 주셨던 사랑만큼의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49재인 만큼 우선 어머니를 위해서 다 함께 마음을 모으는 시간을 좀 갖고자 합니다. 합장을 하시고요. 지금 게송은 어머니에게 전해주는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제행은 무상이요 생자는 필멸이라태어났다 죽는 것은 모든 생명 이치이니 임금으로 태어나서 온 천하를 호령해도결국에는 죽는 것을 영가님은 모르는가영가시여 어디에서 이 세상에 오셨다가 가신다니 가시는 곳 어디인 줄 아시는가 태어났다 죽는 것은 중생계의 흐름이라 이곳에서 가시면은 저세상에 태어나니 오는 듯이 가시옵고 가는 듯이 오신다면 이 육신의 마지막을 걱정할 것 없잖는가 일가친척 많이 있고 부귀영화 높았어도죽는 길엔 누구 하나 힘이 되지 못한다네 맺고 쌓은 모든 감정 가시는 길 짐 되오니 염불하는 인연으로 남김없이 놓으소서 49재를 맞이해서 우리 어머님이 극락왕생하셨으면 하는 그런 우리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어머니에게 그 마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어디 갈 때 짐이 많으면 옮기기가 힘들 듯이, 돌아가신 분이 좋은 곳에 안락하게 가는 데 있어서 제일 힘든 건 아마도 내가 이생에 와서 인연 맺어서 또 같이 살았던 아들, 딸, 또 며느리, 손자, 또 손녀, 아마 가장 마음에 밟히는 것이 그런 친족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들을 좀 내려놓고 좀 가벼운 마음으로 더 좋은 세상에 인연 맺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49재를 봉행을 해서 그 마음을 기립니다. 어떻게 보면 49재는 돌아가신 어머니보다는 살아있는 우리들의 마음들을 좀 더 편안하고, 또 그리움들을 좀 더 아프고 또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어머니하고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서 모십니다. <기억은 역사다>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이 어머니와 우리 가족들의 가정사의 한 부분일 겁니다. 오늘 이제 비가 자분자분 내리는데 이 빗물이 아마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만큼의 의미가 있을 것이고, 저는 이 그리움의 빗물이 또 어떻게 보면 그동안에 어머니하고 조금이라도 서운한 게 있다면, 조금 나쁜 게 있다면 그것을 씻어내는 그러한 빗물의 의미도 또 있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고, 또 봄의 빗물은 다른 때와 다르게 새로운 생명을 움트게 하고 성장하고 자라게 하는 그런 힘이 있거든요. 그래서 오늘 49재를 통해서 좀 더 성숙한 인연으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 같고, 또 어머니는 좀 더 좋은 세계로 갈 수 있는 그런 그립지만, 축복의 비가 세 번째 의미로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옛날에 부처님께서 아난존자하고 길을 가는데 갑자기 부처님께서 뼈 무덤을 보고 절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20년 넘게 부처님을 시봉했던 아난존자 입장에서는 깜짝 놀랐죠. 왜냐하면 부처님은 위대한 스승이고 또 사생의 자부(四生慈父)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근데 그런 분이 아주 남루한 그 초라한 뼈 무덤에 절을 하니까 아난이 웃습니다. “어떠한 연고로, 어떠한 인연으로 그 뼈 무덤에 그렇게 간절하게 절을 하십니까?”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묻습니다. “이 뼈가 남자 뼈이겠느냐, 여자 뼈이겠느냐?” 이렇게 물어봐요. 그러니까 이제 아난존자가 “어찌 뼈만 보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이 뼈 무덤은 여자의 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잖아요. “어떻게 아느냐?” 그러니까 “남자의 뼈는 희고 무거울 것이며, 여자의 뼈는 검고도 가벼울 거다. 왜 그런고 하면은 아기를 한 번 낳을 때마다 여덟 섬 너 말의 피를 흘리고, 또 아기를 어느 정도 양육할 때까지 모든 본인의 영양분을 전달해 주기 때문에, 또 열 달 동안 품어서도 본인의 모든 걸 주기 때문에 그 뼈가 검고도 가볍다.” 그렇게 부처님께서 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지중한지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업고, 무릎을 꿇고 그 수미산이 닳도록 오르락 내리락 해도 그 부모의 은혜는 다 갚을 수가 없다”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부모의 은혜 특히 어머니의 은혜는 우리가 이생에 올 수 있는 그런 인연을 주신 거기 때문에, 부모의 은혜는 참 지중하죠. 근데 살아있을 때는 알면서도, 모르는 건 아닌데, 알면서도 잘 되뇔 수 없는 그런 망각의 시간들을 우리가 보냅니다. 근데 그게 절실해지는 게 돌아가시고 한 달이 지고, 두 달이 지고, 49재가 지나고 나서, 100일째가 되면 그 그리움이라는 게 또 잘해줬던 것보다는 못 해줬던 게 생각이 나서 마음이 너무 아려오죠. 우리가 이제 옛날 어른들이 이렇게 3년 탈상한 것도, 이렇게 49재를 지내고 7번을 지냈잖아요, 그리고 100일째 한 번 더 지내고, 그리고 1년째 한 번 더 지내고, 그 3년째 한 번 더 지낸 게 이게 10번이에요. 시황에 해당되는 건데 그러면서 우리가 적어도 3년은 지나야 우리의 마음도 수순해지고 또 그때 우리 마음도 좀 더 정리된다. 아마 그런 의미에서 옛날에 어른들은 3년간 그렇게 모셨던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뭐 워낙 세월이 빠르다 보니까. 부처님께서 이제 80세에 입멸하셨잖아요. 저번 주 일요일이 이제 열반재일이었는데, 부처님께서 이제 입적하신, 적멸에 드신, 불교 용어로 말하면 반열반에 드신 그런 날이기도 합니다. 열반재일 그러죠. 부처님도 열반하실 때가 돼서 그 숲속에 머리를 북측에 두고 오른쪽으로 누워가지고 마지막 입멸의 순간을 맞이하십니다. 부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었냐면, 부처님 칭찬 한마디를 하고 가면, 아난다가 “왜 이렇게 허름한 숲속에 누워서, -그게 이제 구시나라의 사라쌍수 밑이죠.- 많은 대중이 모여 있는 데도 있고, 왕궁도 있고, 좋은 환경이 많은데, 왜 이 초라한 나무 두 그루 사이에서 입멸을 하십니까?” 이러니까, 부처님께서 “그런 말 하지 말아라. 나중에 이곳이 큰 성지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세요. 그게 현재 열반당에 있는 장소입니다. 구시나라의. 그러면서 말씀을 더 하시기를, “내가 왕궁에 들어가서 입멸을 하게 되면, 이생의 인연을 다하게 되면, 지위가 높은 사람은 나를 보러 올 수 있겠지만, 지위가 높지 않은 사람은 나를 보러 올 수가 없다.” 그러면서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지금 모든 사람에게 알려서 마지막 나에게 궁금한 것을 물으라 해라. 나를 마지막 보고 싶은 사람은 오도록 하라.”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게 소문이 나가지고,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그 구시나국의 사라쌍수 근처에 모이게 되는 거죠. 그 제자들도 이제 많이 모여 있고, 그러니까 제자들은 얼마나 그 마음이, 본인이 그렇게 마음으로 영적으로, 이렇게 마음을 다해서 의지했던 귀했던 분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아프겠어요. 그러고 있는데 이제 아난다가 여러 가지 질문을 합니다. “이제 부처님께서 돌아가시면 우리는 누구에게 공양을 해야 됩니까? 그동안에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서 공덕을 짓기도 하고, 흔연한 마음도 생기고, 또 법의 그런 환희심이라 법열이라 그러는데 그런 것도 느끼고 했는데, 이제는 부처님이 안 계시니 누구한테 해야 됩니까?” 우리도 그렇죠. 어머니 살아계실 때는 어머니하고 같이 외식을 해서 맛있는 걸 먹는다든가, 어머니하고 외출을 해가지고 고운 옷을 사드려서 아주 곱디 고운 그런 자태를 볼 때 마음이 기쁘죠. 근데 어머님이 이제 사대가 모두 흩어져서 안 계신단 말이에요. 그런 그때 부처님의 제자들도 그런 마음이었을 겁니다. “누구한테, 이제는 부처님 안 계시는데, 어떻게 공양을 짓고 어떻게 공덕을 지어야 됩니까?”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걱정하지 말아라. 나한테 공양을 하는 것과 똑같은 공덕이 있는 4가지가 있는데, 이 4가지를 잘 공양하면 마치 여래를 공양하는 것처럼 그 공덕이 수승하고 그 마음의 복이 충만할 거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아마도 지금 드릴 말씀, 이렇게 네 가지 공양을 그중에서 한 가지만이라도 잘 선택을 해서 내가 실천한다면, 그거야말로 어머니에게 공양 올리는, 그래서 그 공덕으로 어머니도 좋은 세상에 가고, 또 내가 이생의 인연이 되는 그 순간까지 장애 없이 막힘없이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가 뭐냐 그러면은,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겁니다. 우리는 이제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배를 굶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 도반이 있는데, -도반이 친구예요. 같이 스님 생활하는 친군데, 도반인데,- 이 친구는 매일 아침마다 새벽 4시면은 빵, 우유, 사과 이렇게 해가지고 종로 일대를 돌아요. 종로 일대를. 길거리에서 집을 잃어버리고, 끼니를 잘 못 채우는 분들을 새벽마다 찾아다녀요. 그 스님에게는 그 아침에 종로를 도는 게 새벽 예불이에요. 그리고 만나는 사람은 다 부처님처럼 대하는 거. 다 자고 있으니까 먹을 걸 놓고 합장을 탁 하고 물러나고. 그러는 도반이지만, 내가 아주 존경하는 도반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또 인연을 맺어서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더하고 하는 것. 그것이 이제 첫 번째로 끼니를 굶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공양하는 것, 그것은 어머니를 공양하는 것 같은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두 번째로는 아픈 사람에게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계에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의학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해도 병원은 항상 만원이잖아요. 그리고 작은 병, 큰 병으로 시름 하는 사람이 많아요. 인간이 이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병이 404가지나 된다고 그래요. 사대에서 한 대마다 101가지의 병이 있으니까 404가지, 404가지의 병이 있다, 그렇게 이제 얘기를 하는데, 얼마나 많은 아픈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가끔씩 가서 봉사도 하고 위로도 해주고 하는 것. 그것이 공양이고, 그것이 어머니에게 공양하는 것이고, 그리고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 공양이라고 하는 거는 평소에 그런 마음들을 지어야 되는 거예요. <마음을 짓다> 이렇게 표현하잖아요. 세상에는 이 짓다라고 하는 용어가 있는데 여기에는 집을 짓다, 여러 가지 옷을 짓다 그러죠. 여기는 마음이라고 하는 게 포함돼 있는 거예요. 마음 없이는 불가능한 겁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평소에 잘 짓는 것, 밥을 짓다 그러죠. 밥을 짓는 것도 마음이 빠져버리면 설어버려요. 그래서 마음을 잘 짓는 거, 평소에, 그게 공양입니다. 내가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마음을 더 해야지, 아픈 사람에게 가서 내가 한번 아픈 거를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행동을 실천을 해야지. 그리고 세 번째는 가난하고 외로운 자들을 도와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내가 공덕을 짓는 일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 우리가 이제 평소에 그런 마음을 잘 지어야 되겠죠. 외로운 사람을 돕기 위해서, 잘 위로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됩니다. 그게 보통 사찰에서, 우리 마음의 정원 진관사도 보면은 이 세 가지 일을 다 하죠. 세 가지 일을 다 합니다. 지역사회에 활동을 통해서 다 하죠.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가 뭐냐 그러면, 바르게 수행하는, 바르게 수행하는 수행자들을 잘 공양해야 된다,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그것이 최상의 공덕이다. 이 네 가지를 잘 실천하는 것이, 네 가지 전부 다 수승하지만 이 중에 한 가지라도, 어머니가 가시고 49재가 됐으니, 100일 안에, 내지는 1년 안에, 3년 안에 이 중에 한 가지라도 실천하면 그 마음이 오롯하게 어머니에게 전달되고, 그 어머니는 흔연한 마음으로 또 가벼운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좋은 세계에 인연 맺고, 또 다시 우리 곁에 모습은 다를지언정 좋은 마음의 씨앗을 가지고 우리 곁에 올 거다. 저는 그거를 확신합니다. 우리가 오늘 이 49재를 거룩하게 이렇게 봉행하는 그 공덕으로, 어머니가 우리 곁에 분명히 오시는데, 더 좋은 마음, 더 좋은 복락을 가지고, 우리를 도와주는 인연으로 오실 거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중요한데, 마지막으로 이거는 꼭 해야 됩니다. 뭘 해야 되냐 그러면, 어머니의 후손들이 본인의 마음을 관찰하는 연습을 오늘부터 해야 돼요. 본인의 마음에 거울을 만들어서, 그 거울에 남편도, 자식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니고, 본인의 얼굴을 비춰보는 연습을 해야 돼요. 근데 우리는 일생동안 마음의 거울에 맨날 남의 얼굴만 비쳤어요. 잘한다, 못한다. 그러니까 마음이 점점점 걸어지고 거칠어지고 울퉁불퉁해지고, 때로는 마음에 뾰루지도 나고 곪기도 하고 그러다 어떻게 돼요? 터져요. 그러니 그거를 방지하려면, 오늘부터는 내 마음의 거울을 만들어서, 그 거울에 자신을 잘 비추는 거예요. 그래서 나를 자꾸 보는 연습을 하면, 그리고 그 보이는 내 모습에 내가 스스로가 자꾸 칭찬하고 잘하고 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던 네 가지 중에 한 가지라도 실천하는 것이 어머니를 도와주는 거다, 그런 생각을 지어야 되고, 마음을 지어야 되고, 또 하나는 그 비춰진 그 본인의 모습으로 형제 간에 특히 직계 형제 간에 다툼을 하면 절대로 안 돼요. 다툼을 하면. 혹여라도 서운한 게 있고 또 마음에 맺힌 게 있다 하더라도, 이걸 통해서 다 풀어야 됩니다.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얘기하는데, 반대로 조상님이 좋은 데를, 우리 선망 부모들이 좋은 데를 못 가는 이유는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자꾸 다투기 때문에 그래요. 이거는 철없을 때는 몰랐는데, 자식을 키우고 나도 이제 제 아들, 딸도 있고 손자, 손녀가 있는 나이쯤 되면 그걸 알아요. 근데 그걸 아는데 이미 그때 되면 마음의 연습을 안 해가지고 마음이 이렇게 좁아져가지고, 마음의 문이, 아는데 이해가 안 돼요,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요. 알긴 아는데. 그래서 지금 말씀드렸던 연습은, 마지막에 마음의 거울을 만들어서 그 마음의 거울에 나를 자꾸 비춰보라고 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우리가 나이가 먹을수록 마음이 넉넉해지고 여유 있어지고 커져야 되는데, 그걸 안 하니까 마음이 밴댕이 소갈딱지가 돼가지고, 밴댕이 속이 밴댕이도 작은데 밴댕이 속은 얼마나 작아요, 거기다 딱지예요. 얼마나 작겠어요?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같은 형제들끼리도 요만한 게 실수하거나 요만한 게 마음에 안 들어도 용서가 안 돼, 용납이 안 돼,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자, 이제는 어머니를 보내드릴 시간입니다. 이제 눈물이 아니고, 슬픔이 아니고, 이제는 우리 기존보다 더 좋은 인연으로 좋은 마음에 그런 복덕의 종자를 안고 우리를 도와주러 올 어머니를 위해서 극락왕생을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고 발원하고 그것이 진정한 어머니에 대한 천도입니다. 이제 슬픔의 눈물을 닦고, 그리움의 눈물도 닦고, 이제 축원의 눈물, 그리고 우리 발심의 그런 눈물로, 발원의 눈물로, 어머니가 좀 더 좋은 세상에 편안하게 계시다가 정말 큰 복덕, 공양을 가지고 우리 곁에 다시 오시라는 믿음을 갖고 천도하시기를 발원하면서, 오늘 말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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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기도] 3월10일 음력 2월 신중기도 입재 법문
도혜스님 2024-03-10
예. 오늘은 천수경의 구성 내지 관세음보살님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천수경은 대승불교를 수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우리 불자님들의 신앙을 이끌고 가고 있는 중요한 경전이다>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우리가 매일 식탁에서 대하는 국과 밥과 같이, <우리의 마음과 신앙과 그리고 정신에 천수경은 스며들어 있다>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천수경은 <우리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대하는 경전>이기도 하지만, <대승불교의 전면적인 실천인 보현행해를 신앙의례화한 그러한 경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즉 <불교의 실체, 불교의 근본적인 사상과 정신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함축하고 있는 그러한 경전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이 천수경을 독송으로 수행하는 우리 불자님들은 입으로만 다라니를 하고 불보살님들의 명호를 부를 뿐만 아니라, <경전에 나타나 있는 불보살님들의 크나큰 원력의 삶과 존재의 실상을 관찰하면서, 온몸으로 대승불교의 이러한 정신을 실천해 나가야 된다> 이렇게 봐야만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경의 구성을 보면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예배문, 그러니까 예배문은 이제 공경문이라고 볼 수 있죠. 그다음에 공양문, 그다음에 참회문, 발원문, 송지문 이렇게 다섯 가지로 편찬되어 있어서, 여러분들의 수행과 신앙에 그지없이 도움을 주는 그러한 경전이다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앞부분에서 대승불교의 실천적인 면이다 이런 말씀을 드렸는데, 그것은 대자대비의 사상이 주된 흐름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천수경은 관세음보살님의 밀의인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소개하고, 또 관세음보살님을 예찬한 그러한 경전이다라고 흔히들 말하고 있지만, 자세히 그 천수경 내용을 살펴보면 이 천수경 속에는 초심자가 알아야 되는 불교의 기본적인 용어와 또는 올바른 신행생활 이런 것들이 잘 꾸려져 있다라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덕이 높은 큰스님들께서 불교의 모든 의식을 할 때 천수경을 독송하도록 한 것은 이 천수경이 신앙적인 기본 틀을 다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들이 불교 교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알려고 한다면은 그동안에 여러분들이 갖고 있던 상식이라든가 지식이라든가 이런 것을 다 내려놓아야 됩니다. 자기가 여태까지 자기 생각대로, 자기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사상이라든가 인생관이라든가 또는 자기 주의, 주장을 가지고 불교를 비교한다든가 또는 합리화를 시켜버리면은, 그러한 것 때문에 불교의 진정한 내용을 파악하고 알아가는 데 장애가 돼서 잘 알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를 알려고 한다면은 자기 자신이 어린애가 되어서 아주 호기심 많은 눈으로 바라보고 또 귀중한 보물을 구경할 때처럼 집중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불교를 대해야 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불교는 모든 상식, 일반 상식을 뛰어넘은 그러한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불교를 접해서 배운 그러한 것을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삶에 적용을 해본다면 여러분들이 아름답고 훌륭한 삶의 길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게 될 겁니다. 그래서 불교를 믿는다 신행한다, 이러한 모든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서 근본적으로 있어야 할 것이 뭐냐 하면은 중생의 이익입니다. 이 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물질적이거나 조건적인 것을 떠나서 근원적으로 이익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근원적으로 이익이 된다’라는 이 말은 무슨 소리냐. 여러분이 기도를 해서 가피를 체험하거나 못하거나를 떠나서, 여러분들 자신이 여러분들의 영성이 맑아지고 또 향상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은 대자의 상징이시고 또는 큰 서원을 갖고 계세요. 이 서원은 어떤 서원이냐 하면<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없애주고, 중생들에게 모든 즐거움을 주시겠다>라는 서원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서원을 통해서 지금 현재 여러분들이 많은 이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이익은 어떤 이익들이냐.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을 없애주고, 두 번째는 여러분들이 죄를 짓는 데 가장 핵심적인 욕심을 여의게 해주고, 세 번째는 여러분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또는 바라는 모든 것을 얻도록 해주신다 이 말이죠. 그런데 참 오묘한 일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을 한 번 부를 때마다 여러분들의 세포 하나까지 다 회복이 돼요. 왜 그러냐 하면은 우주 만물 전체가 전부 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현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중생의 고통이라고 하는 것을 이제 좀 한번 짚어본다면은, 그중에서 이제 우비고뇌(憂悲苦惱)가 있는데, 그것을 이제 7가지로 통틀어 볼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화난(火難), 화재가 난다든가 이런 것이고, 그다음에 두 번째는 수난(水難), 세 번째는 풍난(風難), 네 번째는 악귀난, 귀신으로 통해서 고통받는 거, 그다음에 다섯 번째는 도장난입니다. 이 도장난은 폭력이에요. 그다음에는 이제 가쇄난(枷鎖難)인데 가쇄난은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갇힌다거나, 수갑을 찬다든가 하는 이런 종류가 가쇄난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일곱 번째는 원적란인데 도적의 난을 입는 거, 이게 이제 7가지로 중생의 고통을 총괄을 한다면 이렇게 7가지로 총괄을 할 수가 있는데, 이 모든 고통들이 무엇 때문에 생겨났느냐.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있는 탐진치 삼독이라는 마음 때문에 이러한 고통이 생겨나고 여러분들은 많이 힘들어하고 어려워하고 있죠. 그리고 이제 중생들이 또 바라는 게 있죠. 바라는 것은 돈을 많이 벌어서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싶고, 또 이제 뭐 좋은 자식, 좋은 아들, 좋은 친구, 좋은 스승, 수도 없이 많은 그러한 소원과 바램들이 아마 여러분 가슴속을 들여다보면 수천만 개나 아마 넘을 겁니다. 그러한 이제 소원들이 다 있는 것을 관세음보살님은 다 얻게 해주신다 그 말이죠. 그렇다면 이 관세음보살님은 어떻게 무슨 신통이 있어서 또 우리를 그렇게 구출할 수 있냐 이 말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성품, 그것은 나에게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성품이 다 잠재되어 있어요. 그래서 내가 관세음보살을 부른다는 것은 내 몸속에 잠재되어 있는 관세음보살의 성품, 즉 부처의 성품을 드러낸다는 그러한 뜻입니다. 그래서 부처의 성품을 드러낸다라고 하는 것은 뭘 말하느냐. 내 몸속에 있는, 즉 내 몸속에 잠자고 있는 부처님을 깨어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을 함으로 인해서 내 몸속에 있던 지혜가 발동이 돼서 어떤 위난에 처해서도 그 위난을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난다는 거예요. 그 능력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의 능력이다 이 말이죠. 그 능력은 여러분이 다라니를 염불하는 공덕으로 내 몸속에 잠재되어 있는 관세음을 깨어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내 자신에게 있는 내 스스로의 관음을 깨어나게 해서, 일깨워내어서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을 성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첫 번째로 인식하고 여러분들 마음에 새겨야 됩니다. 그러면은 다라니를 어떠한 마음으로 해야 할 것인가. 첫 번째는 다라니 하는 것을 내가 의식을 하고, 두 번째는 나의 소리를 내 귀로 듣는 것을 의식을 하고, 이 두 가지를 전체적으로 의식하는 그 존재를 다시 한번 의식을 한다면은 지극한 염불이 되고 여러분의 의식이 초의식이 됩니다. 다시 한번 하겠습니다. 첫 번째 다라니를 하는 내가 의식을 하고, 두 번째 나의 소리를 내 귀로 듣는 것을 의식을 하고, 이 두 가지를 전체적으로 의식하는 그 존재를 다시 한번 의식을 한다면은 지극한 염불이 된다. 그리고 내자신이 초의식이 된다. 이것은 문훈문수(聞薰聞修)라는 것입니다. 문훈문수가 무엇이냐. 능엄경에서 나오는 말씀인데, 부처님 당시의 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처님 어떤 방법으로 수행을 하면 가장 쉽고 가장 빠르게 힘을 얻고, 생사를 벗어나서 아라한이 되고, 부처님이 될 수가 있습니까?” 이렇게 여쭈었어요. 그랬더니 부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 중에 우수한 수제자들 스물 다섯 명에게 “각자가 어떤 방법으로 공부를 했는지 발표를 해봐라” 그랬어요. 그래서 스물 다섯 명이 발표를 했는데, 이것을 이근원통(耳根圓通)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이근원통은 부처님께서 스물 다섯 분의 수행 방법을 듣고, 부처님의 지혜로 사바세계에 있는 중생들이 수행을 하는데 가장 빠르고, 가장 쉽고, 가장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 주신 겁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제가 말씀드린 이 세 가지예요. 다라니 하는 거를 내가 의식을 하고, 나의 소리를 내가 듣고, 또 이 두 가지를 전체적으로 의식하는 존재를 다시 한번 의식한다. 여러분이 이제 이것을 한번 실천해 보시면 다른 생각이 중간에 끼어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끼어들지 못하고 한 생각이 꾸준히 이어가게 되면 바로 힘을 얻고 우리가 능력이 생기게 되죠. 그래서 지극정성으로 우리가 기도를 한다라고 하는 것은 뭘 말하느냐. 관세음보살이라는 분은 초의식의 경지입니다. 그래서 우주의 관세음보살이라는 뜻인데, 이 우주의 관세음보살님과 내가 통하려면 의식이 통해야만 우리가 성취를 할 수가 있겠죠. 그렇게 되려면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은, 제일 첫 번째가 입으로 칭명하라 이 말이죠. 입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든가, 아니면 다라니를 해라 입니다. 그래서 염념상속(念念相續), 염념상속,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생각 생각이 절대로 끊어지지 않고 하나로 모아지는 것, 이렇게 다라니를 하게 되면은 내 몸에 있는 모든 세포가 힘을 내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다라니를 물질적인 것으로만 하면은 기도의 효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해야 되는데, 이 영적으로 한다라는 이 말은 무엇이냐. 나의 마음을 어떻게 하고 해야 하며, 또는 이 우주적인 힘과 영적인 힘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내가 알게 되면은 나 자신이 관세음보살이 된다는 겁니다. 내가 관세음이 되었을 때, 내가 관세음보살님의 힘을 다 쓸 수 있는 거예요. 이런 원리가 있는데 여러분이 만약에 내가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타력적으로 관세음보살님이 나에게 와서 나를 도와주실 것이다. 이 타력적이라 소리는 내 바깥에 있는 관세음보살, 그러니까 나는 따로 있고 관세음보살님은 내 밖에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런 마음으로 만약에 기도를 한다면 그 기도는 성취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진정으로 관음 행자가 된다면, 진정으로 여러분들은 우비고뇌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불이 났다, 근데 관음행자가 그곳에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혜가 생겨서 그 어려움 속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자신이 관세음보살님을 지극히 믿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동요되지가 않아요. 사람이 위급한 상황을 당하면 막 마음이 동요가 돼서 ‘어떡하면 좋나, 어떡하면 좋나’ 하다가 당하거든요. 그런데 마음이 차분해지고 동요되지 않아서 그 어려움 속에서도 지혜가 생겨난다면 피할 수 있는 이러한 것이 바로 관음의 가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제 이러한 관세음보살님인 것이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인데, 자기가 지혜를 내어서 그 어려운 과정을 피하는 도중에 자기를 도와주는 소방관이나 또는 자기를 도와주는 다른 여러분들이 있다면은 그 사람은 관세음보살님이 여러분에게 보내준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관세음보살을 여러분들이 이렇게 알고 접근해 간다면은 여러분이 하고 싶은 모든 일들이 다 성취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예문을 하나 들겠습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정말 부처님을 지극하게 신봉하고 오직 부처님만 의존하고 사는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근데 어느 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물난리가 났습니다. 나서 이제 동네에 물이 차서 들어온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이제 동네 동장이나 이런 분들이 방송을 하면서 물이 동네에 자꾸 차 들어오니까 집 안에서 어서 피해라 그렇게 방송을 하고, 또 옆집 사람들이 얼른 피하라고 와서 문을 두드리고 하고 그런데도 이 사람은 피하지 않는 거예요. ‘나는 부처님이 도와주실 거야. 나는 부처님이 도와주시니까 안 피해도 된다’는 거죠. 그리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가 이제 동네 사람들은 다 피해서 도망가고 다 그랬는데, 고집 부리고 있다가 이제 물이 점점 차니까 결국은 이제 할 수 없어서 지붕 위에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이제 둥둥 떠내려가니까 구조원들이 보트를 타고 다가와서 얼른 이 보트로 옮겨 타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다른 사람 구하라고 나는 부처님이 도와주실 거니까 괜찮다”고 그러면서 안 옮겨 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물이 점점점 해서 이제 지붕이 점점 가라앉는 거죠. 그래 안 되니까, 이제 물살이 너무 세니까 보트가 구조를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헬리콥터가 떠서 또 이제 줄을 내려가지고 이 사람 보고 줄을 잡으라고 줄을 잡으라고 아무리 해도 나는 부처님이 도와주실 거니까 안 잡는다는 거예요.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됐을까요? 그것은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시면 아실 겁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피하는 데 도움을 주는 그 사람들이 전부 다 관세음보살님이 보내신 분들입니다. 그 부처님의 도움으로 우리가 살아나는 거죠. 먼저 언젠가 제가 법문을 할 때 그랬죠. 그 봉은사에 나청호 스님이라는 분이 새벽 예불을 하는데, 어떤 여자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서 쫓아나가서 그 여자를 구해줬던 이야기를 제가 드렸을 겁니다. 생각나실 거예요. 그런 것처럼 그 주변에 그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사람에게 관세음보살님께서 듣게 하시는 거예요.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데 새벽 예불를 하는데 그 스님 귀에 그 소리가 들리겠습니까? 그건 관세음보살님이 듣게 한 겁니다. 그래서 가서 그 사람을 구제한 거예요. 이래서 여러분들이 신앙을 가지고 기도를 하고, 우리가 다라니 기도를 한다거나 또는 우리가 관세음보살님을 부르고 또는 천수경으로 통해서 기도를 한다거나 할 때, 이러한 부처님의 가피가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나고, 내가 또 어떤 것이 내가 가피를 입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만 됩니다. 그래야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또 부처님의 가피에 대한 것을 내가 직접 체험할 수 있고, 체험하게 되면 환희심이 나고 기쁘고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지금까지는 천수경의 구성이라든가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에 대한 것을 대충 말씀을 드렸고, 지금부터는 이제 본론으로 <정구업진언>으로 들어가 보겠는데요. 이 정구업진언은 <구업을 맑히는 진언이다> 그런 뜻이에요. 그래서 이 진언이라는 부분은 학술적으로나 논술적으로나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욜로(한쪽 귀) 들어갔다가 욜로 빠질 수가 있으니까, 그것은 이제 다음 언제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 구업에 대한 인과라든가 과보에 대한 것만 간단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구업이라는 게 참 무서워요. 어떻게 무섭냐 하면 우리가 이제 여러분, 그 천수경의 그 내용을 보면 십악업(十惡業)의 중간 부분에 다라니 끝에 나옵니다. 그렇죠. 그 십악업 가운데 보면은 죄를 짓는 것이 이제 신구의 삼업으로 짓는데, 신구의 신은 내 몸이에요. 몸으로 짓는 것이 세 가지고, 입으로 짓는 것은 네 가지나 됩니다. 그리고 뜻으로 짓는 것이 세 가지고. 그러면 이 입으로 짓는 게 더 많아, 많고 아주 무섭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기에 대한 예를 하나 들어보면, 부처님 당시 때에 미묘 비구니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정말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는 힘들고 어려운 고통을 겪다가, ‘정말 이제 내가 더 이상 살 수 없겠다, 죽어야 되겠다.’ 이러한 생각을 했을 때 문득 ‘부처님이라는 분이 계신다는데 한번 가서 뵙고 죽어도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부처님께 귀의를 해서 아라한이 되신 분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미묘 비구니가 아라한이 된 뒤에, 자기 후배들에게 자기의 일을 이야기했던 그런 것들이 이제 지금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인데, 앞부분에 이 비구니 스님이 겪은 일을 다 이야기하려면 너무 길고 많아요. 그러니까 무엇 때문에 이 비구니 스님이 그런 험난한 일을 당했는지, 그 과거 전생의 이야기만 이제 해드리겠습니다. 과거에 그 어느 곳에 부자가 있었어요. 그랬는데 그 부자가 자식이 없어요. 여러분도 아마 연세 많으신 분들은 젊었을 때, 남자를 우선으로 하는 그러한 사상이 우리나라에도 참 팽배해 있었죠. 지금은 좀 많이 좋아졌습니다마는, 그런 것처럼 인도 같은 곳은, 자식이 없으면 그 사람이 죽고 나면 재산이 전부 다 나라에 환속이 됩니다. 그러니까 딸이든 아들이든 관계없이 자식이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이 자식에 대한 그런 생각이 대단히 큰 부분이었죠. 자식이 없으니까 이제 첩을 들여서 자식을 보겠다. 그래서 이제 첩을 들였습니다. 그랬더니 이 첩이 들어와서 아들을 낳았어요. 그러니까 이제 첩이 인물도 이쁘기도 하지만은 젊기도 하고 아들까지 낳았으니까 얼마나 이쁘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남편이 오직 첩밖에 몰라. 그뿐만이 아니에요. 온 집안 식구들이 시어머니로부터 시작해서 첩만 알지, 이 사람은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이 됐죠. 그러니까 이제 이 부인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지금 이렇게 소외된 것은 뭐 그렇다 하더라도, 나중에 이 아이가 크고 자기가 늙고 남편이 만약에 죽게 되면 그 재산이 전부 다 그 아들에게 갈 거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게 생각해 보니까 암담하거든요. 그러면 이러한 것을 피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생각을 해보니까 그 아이를 없애는 것이 딱 좋겠어. 그래서 그 사람이 긴 바늘을 구해가지고 아이의 이 숨골에다가 깊이 꽂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가 시들시들해지더니 한 달 만에 죽어버렸어요. 여기다(숨골) 꽂았으니까 겉으로 표는 안 나는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이 엄마 되는 사람이 누가 어떻게 애를 죽였는지 모르는 거야. 이 엄마가 생각해 보니까 그 본부인이 그랬을 확률이 100%다 이 말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본부인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본부인한테 와서 “당신이 내 자식을 죽였지 않냐” 이렇게 따졌습니다. 그러니까 이 본부인이 뭐라고 했냐면은, “내가 만약 그 아이를 그렇게 죽였다고 한다면은 나는 어떤 재앙을 받느냐 하면, 내 남편은 뱀에 물려 죽고, 또 내 자식은 물에 빠져 죽거나 늑대에 물려 죽고, 또 나는 생매장이 되고, 나의 부모는 불에 타 죽을 것이다.” 이렇게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래도 당신이 나를 의심하겠느냐”이랬어요. 그렇게 무서운 맹세를 하니까 이 작은 부인이 “저렇게 맹세를 하는데 정말 죽였겠나”, 그리고 죽였다는 증거나 뭐 이런 게 하나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못 찾은 거야. 그때 그 부인은 자기가 이러한 선악의 과보에 대한 것이 정확하게 인과가 있다라는 것을 생각도 못하고,, 그렇게 맹세를 한 거죠. 근데 사실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이 누구냐, 이 미묘 비구니의 전생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미묘 비구니가 “그 사람이 누군 줄 아느냐 바로 나다.” 그래서 출가하기 전에 지금 말한 그것을 고스란히 다 겪었어요. 말도 못하는, 지금 제가 말씀드린 이것보다 더한 고통을 겪었어요. 그리고 이 미묘 비구니가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나는 지금 다행히 부처님을 만나서 아라한이 되었지만, 지금도 나는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느냐. 뜨거운 바늘이 정수리에 들어왔다가 발끝으로 빠지는 고통을 24시간 365일 계속 받고 있다. 그래서 재앙과 복이라는 것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것을 분명히 알고 수행해야 된다.” 이렇게 미묘 비구니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구업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이라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에요. 방망이나 이런 걸로 상대방을 때리면 물질적인 건데, 이 말이라는 것은 그냥 소리야. 소리인데 이 소리로 상대방에게 심한 욕을 한다든가, 상대방에게 충격을 주면 그 상대방이 쇼크사 할 수도 있고, 또 독한 말을 듣게 되면 그것이 가슴에 막혀서 평생을 고통받는 그런 경우가 허다합니다. 여러분도 상대방이 여러분에게 막 악독한 말을 한다든가 이러면 어때요? 아무렇지도 않나요? 그렇지 않죠. 속이 상하고 심지어는 화가 나서 막 생각지도 않은 행동을 하고, 이게 말의 힘이고 소리의 힘입니다. 그래서 이 구업이라는 게 참 무서운 거예요. 예를 들면, 상대방에게 “빌어먹을 놈” 이러면, 상대방이 빌어먹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빌어먹어. 상대방에게 “저 미친 놈” 이러면, 상대방이 미치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미쳐요. 그러니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야말로 몽둥이로 이렇게 하나 때리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게 이 말의 구업입니다. 그뿐만 아니죠. 누가 상대방에게 살살 말로 꼬시고 잘한다 이 말이야. 그러면 어떻게 홀딱 넘어가서 전 재산을 다 사기당하잖아요. 이 말이라는 게 이렇게 힘이 있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는 음성 교체예요. 음성 교체라는 것은 음성으로 전부 다 감정을 서로 주고받고 여러분이 지금 법문 듣고 있는 것도 소리로 듣잖아요. 이게 음성이잖아요. 이게 음성 교체입니다. 그래서 음성 교체로 이 사바 세계가 근본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소리로서, 잘못 소리를 내면 그것이 전부 다 나에게 되돌아옵니다. 근데 나갔던 말이 다시 되돌아올 때는 반드시 이자를 붙이고 와요. 그냥 오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은행에 뭡니까? 뭐 100원이라도 넣어놓으면, -100원 넣으면 이자가 안 붙겠지만,- 하여튼 쪼금이라도 붙잖아요. 그죠? 그런 것처럼 이 악한 것도 이자가 붙고, 착한 일을 해도 이자가 붙어서 돌아와요. 그러니까 이 구업이라는 거 정말 무서운 겁니다. 그래서 십악업 가운데에 망어(妄語)·기어(綺語)·양설(兩活)·악구(惡口)거든요. 기어는 비단결 같은 말이라. 상대방을 살살 비단결같이 해서 중매 서는 이런 분들은 그런 기어를 많이 하죠. 그래서 상대방을 잘못 결혼을 하게 만들면 그 사람이 평생을 망치는 거예요. 그죠. 이렇게 말이 무서운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구업에 대해서 굉장히 무섭다는 것을 인지를 하시고, 그래서 이 천수경 제일 첫머리가 구업을 맑히는 진언으로 시작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구업만이라도 먼저 맑히게 되면,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업 가운데 거의 3분의 1은 맑히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뭐냐. <구업을 맑혀야 된다.> 아시겠습니까? 이것으로 오늘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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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회] 3.1절 특별기념법회 및 (사)백초월스님 선양회 발족식 법문
문광스님 2024-02-25
안녕하세요. 문광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뜻깊은 자리에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백초월 스님 선양회가 이렇게 발족을 했습니다, 3.1절을 앞두고. 작년에도 3.1절에 왔었습니다. 와서 백초월스님 태극기에 대한 말씀을 드렸었는데, 올해 백초월 스님이 이제 80주기에 이릅니다. 그래서 6월 29일 날이 추모재 날, 기일인데요. 그때 학술대회를 할 때 태극기에 대해서 연구를 더 해서 발표를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태극기가 이 진관사에서 나오기 전에는 백초월 스님을 아시는 분이 우리 여기 계신 김광식 교수님 정도 있었고, 스님들 몇 분 아셨지 전 국민이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렇죠? 예전에 제가 탄허 스님 연구를 했는데 스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나는 문곡성이 발달해 있다. 그래서 살아서보다 나중에 세상 떠나고 나서 더 유명해질 거다.” 이러셨는데, 그래도 탄허 스님은 생시에도 많이 유명하셨더랬죠. 근데 이 백초월 스님이야말로 정말 진정한 문곡성의 기운을 받고 새롭게 한국 땅에 현신하신 분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이 진관사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해서 너무나 드라마틱한 일이 2009년에 벌어졌고요. 그리고 그 일장기 위에 그려서 태극기를 만드는 그런 문화가 있었고, 그리고 그 뒤에, 40년대 이후에 그러한 태극기가 있다는 말씀은 들어봤으나, 3.1절 당시에, 3.1운동 당시에 그렇게 실제로 했다는 유물을 그대로 보여주신 게 우리 이 진관사의 칠성각에서 그대로 드러났지요. 희유한 일입니다. 우리 국민이 지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될지에 대해서 한 번 더 경각심을 주고 있는 그런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이 들고요. 제가 오늘 우리 회주 큰스님께 그런 말씀 드렸어요. 이제 우리 진관사는요, 단순한 조계종 사찰, 서울에 있는 사찰, 그냥 불교의 절, 이런 게 아닙니다.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을 찾고 있고요. 한국에 오게 되면 서울을 오게 되는데, 이 서울을 바로 보여줄 수 있는, 삼각산을 보여주고, 그다음에 여기에서 이 고려시대부터 시작해서 쭉 흘러왔던 역사들이 다 그대로 간직되어 있고, 조선시대 무학대사가 동서남북으로 이 수도를 수호하는 그런 절들 중 서쪽을 수호하는 진관사, 그렇게 벌써 임명을 받고 있었던 그런 엄청난 사찰이고요. 거기에다가 왕조 실록을 보면, 태조실록에 딱 보면 그냥 바로 처음부터 나옵니다. 수륙재 얘기가 나와요. 진관사 수륙재 얘기가 나오고요. 그리고 그런 부분들을 보면 이 진관사야말로 한국의 모든 우리 국민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사찰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게 어르신이었던 진관 스님께서 여기를 불사를 너무 잘해 주셔서 너무나 맑고 깨끗하고, 그다음에 지금 우리 회주 스님, 그다음에 주지 스님을 비롯해서, 여기 진관사에 계신 스님들이 너무나 도량을 맑고 깨끗하게 정리를 해주셔가지고 여기에 그냥 오기만 와도 그 자체로 마음이 쉬어지고 힐링이 되는 도량이 됐어요. 거기에 템플스테이 뿐만 아니라, 이제는 사찰 음식까지 명장이 계시고, 아주 엄청난 문화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회주 스님께 그랬습니다. 문화총림이라는 말을 좀 쓰면 어떻겠느냐고. 우리 불교에서는 선원, 강원, 율원, 염불원 이렇게 있으면 총림이라고 그러거든요. 근데 이제는 그야말로 진관사야말로 서울에 누군가 외국인이 온다면 이 진관사를 보면 한국의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한국 문화의 아주 결집체다. 그래서 문화 총림이 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런 도량에서 백초월 스님의 이런 태극기가 나오고 신문이 나오면서 우리 국민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김광식 교수님께서 이제는 건국 훈장을 받으실 수 있도록 우리가 일을 해야 된다고 말씀하셨고, 그다음에 태극기 기념관도 이제 마련을 해야 된다는 게 너무나 당연하신 말씀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 백초월 스님을 저도 이제 진관사에 오게 되면서 뉴스는 봤지만 자세히 몰랐잖아요. 그래서 김광식 교수님 책도 보고, 여러 사료들도 이렇게 찾아보고 하면서, 그냥 한마디로 딱 느낌이 어떠냐 하면요. 그냥 투신하신 분이에요. 그러니까 이 <사>라고 하는 거 일체 없고, 그냥 우리 민족과 우리 국가를 위해서 그냥 투신하신 분이다, 그렇게 보여집니다. 너무 행장이 잘 보이지 않고 그러셨는데, 일심교라고 하는 거를 만드셔서 일심회를 하셨다 그래요.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스님이 지리산 영원사에서 계셨었는데 그때에 스님이 강백이셨어요. 말하자면 저도 강사지만, 저처럼 그냥 공부하셨던 스님이었던 거예요. 근데 일제시대 때 스님께서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셨어요. 그것이 우리 땅에 있는,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께서 “모든 스님들은 다 나와라. 생명을 구제하라. 살아있는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그것이 가장 중요하지. 우리나라의 모든 이 백성들을 이렇게 포악하게 살생을 하러 온 저 왜적을 그대로 둘 수 없으니, 생명을 구제해야 되니 나와라.”라고 하는 그런 방문을 날리셔서 사병 대사를 비롯해서 모든 분들이 한꺼번에 의승병이 돼서 나오셨단 말이죠. 그것처럼 그냥 정말 공부 잘하시고 훌륭하신 스님이, 선원장도 하시고 조실도 하시고 이러셨던 분이 갑자기 이렇게 나오셨던 거는 완전한 보살행이다. 보살행이라 생각해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스님께서 청주의 용화사에 계실 때 화엄경을 보시다가, 화엄경의 대의가 통만법명일심(通萬法明一心), -여러분 많이 아시죠?- 통만법명일심이라는 구절을 보시고, -만법을 통설해서 일심을 밝힌다. 화엄경의 종지가 그거다.- 이 구절을 딱 보시면서 생각하신 게 “그러네. 일심을 가지고 우리가 독립운동을 하면 우리가 해방이 될 수 있겠구나” 바로 그 생각을 하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일심 그러면, 불교는 모든 사상이 일심 사상인데, 대승기신론에도 일심이문(一心二門)이 있고, 일심 만법귀일(萬法歸一)도 있고, 모든 게 다 있잖아요. 근데 화엄경의 종지를 보시고 일심교 일심회를 만드셨다 그러니까, 스님에게는 화엄 사상이 일단 기본이 있으셨다. 그러면 스님이 그렇게 구국의 활동을 하신 건 전부 화엄의 보살행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그러니까 스님께서는 감옥에 계시다가 밖에 나오시게 되면 바로 그냥 독립운동 바로 하세요. 그러니까 여러분 저기 아시죠? 용산에서 출발하는 그 열차에 대한독립 만세를 써가지고 그냥 그걸로 의사를 하는 겁니다, 무조건 잡히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때 같이 동참했던 박수남이라는 분이 계세요. 이분이 그때 그쪽에서 일을 하고 계셨는데, 그냥 일반인이라고 봐야죠. 근데 그분이 그 일로 스님하고 잡혀서 같이 일본 감옥에 들어갔는데, 고문을 받고 10개월 만에 그 다음 해 돌아가셨어요. 얼마나 심한 고문을 받았으면. 그러니까 요즘이야 감옥이 인권이 있고 하지만, 그때 일제시대 때 상상을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스님이 2년 6개월 서대문 형무소에 계시다가 출소하시자마자 바로 또 독립운동을 하세요. 바로 만주에 독립 자금을 보내셔서 체포되셔가지고 결국은 청주교도소에서 1944년 광복을 한 해 앞두고 6월 29일 날 순국하셨어요. 입적하셨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까 1944년에 입적하신 독립투사들이 많이 계세요. 만해 한용운 스님이, 참 이게 우연인가요? 한 살 차이가 나시는데, 만해 한용운 스님이 한 살 적어요, 초월 스님에 비해서. 똑같은 날 입적하셨어요. 1944년 6월 29일. 그래서 저기 백담산을 비롯해서 말이죠, 그때 추모재 합니다. 만해 한용운스님을. 이제 그 우리가 자료를 찾으면 좋겠는데 민족 독립 33인, 거기에 백초월 스님을 넣으려고 했다라고 하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요. 이제 우리가 이런 자료들을 찾아내서, 김광식 교수님 말씀하셨듯이, 용성 스님, 만해 스님이 민족대표 33인에 우리 불교계로 들어가 계신데, 백초월 스님은 정말 그 이상의 치열하게 정말 몸을 사리지 않으시고 투신하셨다. 몸을 그냥 던지신 분이신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정말 그야말로 스님의 이 정신이 이제 세상에 빛을 발하는 시절이 왔습니다. 문화총림 우리 진관사에 스님께서 많이 계셨대요. 마포 포교당에 있었는데 거기 왔다 갔다 하시면서 경전에 아주 잘 통하셨던 것 같아요. 지금 동국대 전신인 중앙학림에서, -명진학교 중앙 이렇게 불렀잖아요,- 그때 스님을 대표 강사로 초청을 하셨는데 영원사에서 불이 나서 못 가셨다 그래요. 그다음에 박한영 스님이 그 길을 가신 거예요. 그러니까 최고의 강백이셨던 거라고 보여집니다. 그런 분이셨는데 스님께서 이런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걸 보면 정말 거룩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여담을 하나 하자면요. 이순신 장군의 3부작 영화가 있죠. 명량 그다음에 한산, 노량이라고 이 영화 삼부작이 있는데, 우리나라 역대 최고 관객이 들어간 1700만 명이 넘은 영화가 명량이에요. 명량대첩. 그 감독님인 김한민 감독님이 불자라는 거예요. 저를 만나고 싶다고 그래서 한번 만났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순신 장군 3부작이 끝났으니까, 이제 새로운 영화를 만드시고 뭐 해야 되는데, 제 유튜브도 보시고 하셨대요. 그래서 저 만났는데 한 10년을 이순신 장군 영화를 찍으면서, 이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같은 걸 보면서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살고 계셨고 어떻게 했느냐 이 행간의 의미까지 정말 보게 되더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말이죠. 굉장히 중요한 얘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그분이 불자인데, 여러분, 명량에 보면 그 스님들 승병 나오셨던 게 보여요. 불자이시기 때문에 그러셨던 거에요. 근데 여러분 최근에 남해를요, 이순신해라고 병기하는 운동이 벌어졌어요. 그래서 여러분 서명하실 수 있어요. 그 사이트가 있습니다. 그래서 국회에서 법안을 내서 그렇게 하도록 하는 걸로 지금 진행 중이에요. 이 단편적인 예, 여러분 우리 오늘 출범한 백초월 선양회가 이제 이런 일을 해야 됩니다. 모든 분에게 알려야 돼요. 모든 전 국민에게 알 수 있도록 알려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서해라고 부르는데 그게 공식 명칭이 될 수가 없대요. 중국에서 봤을 때는 동해니까 그래서 황해라고 한답니다. 그다음에 이제 우리 지금 동해라고 하는데, 일본 사람은 일본해라 그래요. 그렇죠? 독도가 자기 것이라 그러고. 여러분, 남해는 이순신 장군이 안 간 데가 없는 거죠. 그죠? 그래서 <전체를 그냥 이순신 해라고 이름을 붙이자> 이런 운동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굉장히 좋은 거 아니겠어요? 이제 앞으로 우리도 백초월 스님에 대한 이런 부분들을 연구를 좀 많이 해야 될 거라고 봅니다. 여러분 제가 김한민 감독님한테, 너무 연구를 많이 하셔가지고, 들은 얘기가 있어요. 뭐라 그랬냐면, 여러분 그 영화 보셨습니까? 노량이라는 영화 보시면 그 뒤에, 저도 감독님을 만나게 돼서 영화를 못 보다가 봤어요. 노량에 보면 이순신 장군과 마지막으로 싸워서 전사하실 때 그 나오는 인물이 백윤식 배우가 연기를 했는데 말이죠, 시마즈 요시히로라고 나와요. 여러분 우리가 가토 기요마사 그다음에 고니시 유키나가는 많이 아는데, 시마즈 요시히로는 잘 모르는데, 이 사람하고 마지막으로 이제 전쟁을 한 거예요. 이 사람이 뭐냐 하면, 우리가 이순신 장군이 종군을 하고 전쟁에 못 나가는 동안 우리 해군이 완전히 초토화가 돼요, -칠천량에서 그랬죠.- 초토화가 될 때 이긴 장군이라는 거예요. 근데 이 장군이 이순신 장군과 노량해전에서 너무 많은 피해를 입고 돌아가는 바람에 일본 역사가 바뀌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도요토미 히데요시 밑에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 이런 자기 군사들이 있는데, 그중에 핵심 중에 하나가 시마즈였는데, 너무나 많은 피해를 입고 가다 보니까,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전쟁에서 지게 돼서 도쿠가와 막부 에도 시대가 열렸다는 거에요. 근데 시마즈가 가서 사쓰마 현에서 다시 살아나는 기운이 일제시대 메이지 유신을 하면서 일제를 만들어 낸 거예요. 정한론. 한국을 정벌하자. 우리가 그때 못하고 왔으니까 다시 가자, 이렇게 해서 그게 만들어졌고, 시마즈가 있었던 그 지역이 아베 수상의 지역구였대요. 그러니까 혐한이라든지, 한국을 정벌하자라든지 그런 것들이 거기서 이어지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이 그렇게 혼을 내줬으면, 국가가 가서 큐슈 정도는 우리 걸로 한다 하든지, 또는 이제 다시는 침입을 못하게 한다는 걸 받는다든지, 이런 부분들을 정확하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걸 못하고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면서 우리가 다시 침입을 받는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 백초월 스님의 태극기는 굉장히 강렬한 자각을 지금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예전에 조선통신사 기록을 봤는데, 일본에서 유교가, 성리학이 발전을 하다가 중간에 막혀요. 막혀서 이해를 잘 못 하고 있을 때 퇴계 선생의 글을 보고 이해가 됐다 그래가지고 굉장히 열심히 성리학을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조선에서 통신사가 가면 그 사람들이 이제 막 공부했던 사람들이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갔다 와서 임금에게 뭐라고 얘기하냐면, “저 야만적인 무력만 쓸 줄 아는 저 왜놈들이 이제 정신을 좀 차렸나 봅니다. 공부를 좀 하는 것 같아요. 이제 우리 쳐들어올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러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수준이 그래요. 너무 안일한 거죠. 아베의 할아버지가 조선 마지막 총독이었던 거 아시죠? 다시 이 땅에 우리에게 반드시 온다 그랬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땅을 왜 이렇게 노립니까? 우리는 일본에 쳐들어갈 마음이 없는데. 우리 땅이 너무 좋아요. 우리 땅이 너무 좋아요. 여러분 북한산 가보셨어요? 저런 바위산이 어디 있습니까? 전 세계에. 앉아만 있어도 기운을 받을 수 있는 저런 땅이 없어요. 일본은 그냥 묘를 쓰고 나면 도시혈이라고 해서 그래서 그냥 관이 떠내려가잖아요. 땅이 움직이는데. 그래서 다 화장하고. 우리 땅처럼 이렇게 좋은 땅이 없어요. 금수강산이에요. 그래서 늘 우리 땅을 다들 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걸 잘 지켜내야 되는데, 그러려면 정신이 살아있어야 되고, 그리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지금 우리가 말이죠. 제가 요즘 한국학 에세이를 많이 썼는데 그랬습니다. 전 세계는 말이죠, 무력과 폭력의 역사였어요. 지배하고, 전체주의 식민지 만들고 이걸로만 그냥 전 세계 패권을 유지하면서 살아왔는데요. 이제는 무력의 시대는 끝났다. 물력의 시대가 왔다. 조선시대 때는 무를 숭상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문이 약했어요. 문약이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해서 이만큼 국가가 발전했으면 그다음에 국방력이 있는 상황에서 문화로 가는 거죠. 문화. 문화의 힘으로 전 세계에 지금 우리가 한류라고 하는 엄청난 그런 상황을 보이고 있잖아요. 거기에 첨병 역할을 하는 곳이 여러분 진관사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우리 김광식 교수님이 건국훈장도 추서하고 그다음에 태극기 기념관도 만든다고 하시는데, 다음에 불자이신 영화 감독님을 보면, 백초월 스님 영화 좀 만들자고 하면 좋겠어요. 세상에서 책이나 이 정도 가지고는 이렇게 선양이 많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앞으로 여기에 진관사에 딱 보시다가 어느 감독님 오셨다 그러면, 빨리 어른 스님께 모시고 가서 영화 만들자고 해서 전 국민이 알아야 됩니다. 이런 분 전 국민이 알아야 돼요. 그리고 실제로 너무나 안 알려지셨던 어른이고 정신이 위대하다. 그러니까 그런 부분을 우리가 한번 생각을 해봐야 되겠습니다. 굉장히 상징적입니다.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이렇게 그렸다는 거는 마치 말이죠, 주역에서 무극이 태극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무극이라고 하는 건 원상 하나만 있는 거예요. 원상 하나만 있는데 이게 태극이 됐다는 건 음양이 갈라졌는데 이 태극이 반으로 그냥 잘라진 것이 아니라 서로 갈마들고 있죠. 그다음에 상극인 것 같지만 상생하고 있단 말이죠. 이 세상의 모든 건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 몸도 그렇고, 우리 마음도 그렇고, 항상 음양을 왔다 갔다 하고 있죠. 그래서 이 음양이라는 세계에 살고 있지만, 음양이라는 세계를 벗어나는 세계가 바로 이게 도의 세계라 그래요. 그러니까 여기 진관 스님 계실 때 국수 먹으러 많이 오셨던 우리 탄허 스님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유불(儒佛)을 회통해서 태극을 깨닫는 것을 각이라 한다” 그러셨어요. “태극을 깨닫는 걸 깨달음이라 그러고. 태극이 뭔지 아는 걸 깨달음이라” 그랬어요. “음양인 것 같은데 세상의 모든 게 다 갈라져 있어요. 세상의 모든 게 결국 이분법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는 사유를 하는데, 그것이 결국 둘이 아니라 궁극적인 하나라고 하는 걸 아는 것, 태극을 아는 것을 각이라 한다.” 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이 일본이라고 하는 일장기 안에 태극을 다시 그렸고 괘를 그렸다고 하는 거는 원리적으로만 있는 도의 세계를 현실적으로 등장시켰다, 이런 의미를 가지는 거죠. 여러분, 우리 한국의 태극기가 전 세계 국기 중에 제일 어려운 것 중에 하나예요. 이 태극기라는 걸 깨닫는 거예요. 이만큼 힘든 그런 진리가 있으나 이건 엄연한 완벽한 진리다. 그다음에 이 태극기라고 하는 걸 봤을 때 우리 국민들 모두 그렇고 우리 진관사의 신도분들도 그렇고 다 그러실 겁니다. 가슴이 뭉클하죠.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래서 초월 스님은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고 계신 것 같아요. 우리 한국이요, 위기에 강합니다. 위기에 강한데, 위기에만 강해서 되겠습니까? 위기 아닐 때 우리가 정말 제정신을 차리고 정말 방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이제 전 세계의 문화의 중심이 되고, 전 세계 사람들이 이제 한국을 알기 시작을 했는데요. 지금 10대, 20대, 30대까지 한류라고 하는 걸 통해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를 익히고, 한국에 찾아오기도 하고, 이렇게 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는데, 이것이 그냥 그냥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 사람들이 앞으로 40대, 50대, 60대가 되면 그 나라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지 않겠어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나라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다 한국을 잘 아는 사람, 한국어로 된 노래를 들어봤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제 전 세계 대통령도 하고, 장관도 하고 이러는 시대가 앞으로 올 거예요. 그런다고 했을 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모르고, 우리의 민족혼 그다음에 우리의 어떤 한국의 정신을 모른다고 하면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제 이 백초월 스님이라고 하는 분에 대해서는 우리의 궁극적인 어떤 한국 문화의 정점으로 발전시킬 생각을 해야 되고요. 스님의 사상이나 이런 것들을 발굴을 많이 해내고, 그다음에 선양도 많이 하고, 그리고 그와 아울러 이 진관사에 왔을 때 “정말 이런 곳이 한국이구나, 한국이 원래 이런 정신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하는 걸 알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제가 조선 유학을 연구하다가 그냥 출가했어요. 조선 유학 공부. 너무 성리학 공부하다가 그냥 출가했어요. 여러분, 좀 답답했어요. 동인, 서인 나눠져 있다고요. 동인이 남인과 북인이 되고, 서인이 노론, 소론이 됐어요. 그래서 서로 토론하는 거 너무 좋죠. 의견이 갈라질 수밖에 없죠. 마치 말이죠, 무극이 태극됐다가, 태극이 양의가 돼서 음양이 됐다가 음양이 사상이 됐는데, 지금 모든 세상의 세부 분열도 이와 같이 하잖아요. 그건 당연한 일인데 항상 근본을 생각해야죠. 근본은 일심이에요. 백초월 스님이 일심 사상이야. 나는 앞으로 이제 이걸 일심 사상이라고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독립을 일심으로 하면 독립이 되겠구나, 독립 운동을 하셨던 것은 우리가 이런 좋은 땅을 유지하려면 일심이 돼야 된다는 메시지를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말이죠, 서로 서로 싸우다가 조선 말이 되면 또 나눠져서 싸웠어요. 여러분, 아관파천 후는 친러파잖아요. 그죠. 임오군란이 일어나니까 그냥 청나라 데려와서 친청파잖아요. 서재필이나 이런 분들은 또 친미파잖아요. 김옥균이나 이런 분들은 갑신정변을 일본을 등에 업고 친일을 했잖아요. 근데 우리 자체가 더 중요한 거죠. 우리 한국인이 아무리 서로 토론을 하고 의견이 분분해도, 궁극적인 목적은 같은 한국이 하나 되기 위한 거에 궁극적인 방점이 달려야 되는데, 어느 나라를 등에 업고, 나는 저 사람 되는 거는 못 보겠다, 이런 거는 문제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지금 예를 들면 아까 여기 정치하셨던 국회의원분들 많이 오셨는데 그런 거잖아요. 여러분 친A, 반A 이런 거 있잖아요. 친박, 비박, 친문, 비문 하듯이 이런 것들은 여러분 조선조에 있었던 우리의 문제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증거예요. 그렇잖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결국은 태극기 하나에 다 어울러 있듯이, 그다음에 일심으로 화합이 돼 있듯이, 그러지 않으면 또 위기가 온다는 메시지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너무나 많이 봤는데, 임진왜란 때도 봤고, 병자호란 때도 봤고, 그다음에 일제도 봤고, 그래서 목숨을 바쳐서 나라를 구하고, 이렇게 해서 많은 국민들이, 백성들이 희생을 하고 해서, 지금 이렇게 꿋꿋하게 살아왔던 그 우리의 힘으로, 이제 한류라고 하는 걸 전 세계에 알리면서 한국이 이만큼까지 왔습니다. 근데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이러한 메시지를 역사에 우리 교훈들하고 새겨서 화합해야 됩니다. 저도 한국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가장 안타까운 게 이분으로 나눠진 분열을 화합으로 만들어주는 원효의 화쟁, 회통, 그다음에 초월 스님의 일심 사상 이런 것이 앞으로 필요하다고 보여집니다. 한국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제 이걸 잘 해서 보여줘야 됩니다. 탄허 스님이 그러셨어요. 진관사에 자주 오셨던 탄허 스님이 “한국인이 하면 전 세계가 앞으로 따라한다. 대학생이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일어나서 정권이 바뀐 건 전 세계에 없었다. 우리 한국에서 그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그걸 따라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됐어요. 그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 바로 한국의 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앞으로 화합해야 된다. 화쟁해야 된다. 일심으로 나아가야 되겠다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여집니다. 여러분 평상시에 늘 3.1절이 되고, 광복절이 되면 태극기를 달고 했는데, 저는 작년에 받아온 이 진관사 태극기를, -작년에는 조금 더 컸어요. 그렇죠. 종이가 더 컸습니다.- 저는 방에 부처님 옆에 딱 모셔놓고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하여튼 민족주의가 좋아요. 근데 한국은 이 민족주의라는 게 단순한 국뽕이 아닌 것 같아요. 우리는 다른 나라를 침입해서 거기를 빼앗고 하는 그런 욕망이 없어요. 일본한테 그 정도 당하고 나면 말이죠, 어린애가 딱 그 역사책을 보고 나면 “저는 일본에 가서 총독을 한번 하겠습니다.” 이런 애가 나와야 되는데, 그런 사람 한 명도 없어요. 제가 아무리 만나봐도. 우리 땅이 그만큼 좋고, 평화를 사랑하고, 우리 한국인의 어떤 심성이 그러한가 봅니다. 대신에 다시는 이와 같은, 우리가 외세도 막아야 되겠지만, 우리 안의 분열로 인해서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 되겠다. 그것이 우리의 한국 정신으로서 일심의 정신으로 한번 피어나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갑자기 김한민 감독이 저를 다시 한 번 부르면, 이 진관사에 한번 모시고 와가지고 ‘좀 발심을 하게 만들어야 되겠다. 천만 관객이 한번 이걸 관심을 가지게 좀 해봤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이렇게 위대한 정신을 많이 알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하여튼 우리 원력을 세워가지고 이제 진관사에서 이렇게 백초월 스님 선양회가 발족을 했으니까,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새롭게 초월 스님을 알리고, 스님의 독립 정신을 알리고, 진관사 태극기를 이제 다시 한 번 우리 국민들에게 아주 새롭게 선사하는 그런 시절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초청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저도 역시 앞으로 초월 스님의 연구를 잘하고, 한국이 위대한 정말 정신의 문명으로 우뚝 서는 날까지 더 열심히 연구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사진 : 은평구의회 박정묵주임님 / 진관사 청년법회 김명재법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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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도량참법기도] 2월 18일 자비도량참법기도 회향 법문
가섭스님 2024-02-18
마하반야바라밀.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반갑습니다. 설 잘 보내셨죠?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진관사를 대표하는 분들만 앉아 계신 거죠. 얼굴 뵈니까 다 진관사다운 면모를 갖춰서 눈빛이 반짝반짝한데요. 오늘은 이제 자비도량참법 기도를 회향하는 날이기도 하죠. 저도 유튜브로 좀 봤습니다. 저도 이제 소임을 볼 때 연초가 되면 자비도량참법을 하곤 했는데, 자비도량참법은 말 그대로 자비도량이 핵심이잖아요. 자비도량을 건립하는 게 목적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제 <자비도량을 건립하자>라고 하는 주제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주지 스님께서 들어서자마자 박사를 받았다고 그러셔서 낯부끄러워서. 근데 사실은 사실이에요. 학위는 아직 못 받았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 학위 수여식이 있어요. 그래서 이제 철학 박사를 받게 됐는데, 제가 원래는 우리 주지스님하고 같이 학교 다닐 때 박사학위를 제일 빨리 받을 거라고 소문이 났었는데, 제일 늦게 받게 돼버렸어요. 중간에 한눈을 많이 팔아가지고 늦게 받았는데, 우연치않게 정토 관련된 공부를 다시 하게 됐어요. 그래서 박사학위는 이제 <조선시대 정토신앙 연구>라고 하는 걸로 학위를 받게 됐는데, 조선시대 하면은 불교가 가장 어려울 때였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조선시대의 정토를 연구한 선행 자료들이 없어서 꽤 애를 먹었습니다. 자료를 찾는데. 그래서 제가 조선시대 정토를 살펴보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해볼까 하다가, 한 15년 전에 통도사로 성지순례를 갔는데, 그때 천일 기도하는 스님이 참법 기도를 하는데, 기존에 우리는 이제 자비도량참법만 알았는데, 그 스님이 하는 책이 미타도량량참법이라는 걸 가지고 참법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책을 하나 얻었어요. 절에 와서 쭉 읽어보니까, 내용이 너무 신심이 나고 또 너무 좋았어요. 특히 제가 살던 도량이 미타도량이었기 때문에, 그러면 이제 ‘내년부터는 이 미타도량참법을 가지고 정초마다 참법기도를 해야 되겠다.’ 그래서 이제 그 스님한테 책 복사본을 내는 걸 허락 맡고, 한 1천여 권을 찍어서 신도분들한테도 나눠드리고, 또 오는 인연들한테 하나씩 나눠드렸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그 미타도량참법을 보니까 이게 조선시대에까지 면면이 이 참법 기도가 내려오는데, 이 중국에서부터 쭉 내려온 게 미타도량참법인데, 그 참법이 자비도량참법도 마찬가지지만은 굉장히 중요한 신행 내지는 수행의 한 방법으로 해왔던 거였어요. 그런데 자비도량참법만 해도 10권으로 돼 있잖아요. 그러니까 옛날에 이게 너무 기니까 이걸 줄여가지고 소미타참법이라고 줄여서 한 기록도 있더라고요. 근데 이제 우리 진관사도 하지만, 예수재나 수륙재를 하지 않습니까? 근데 옛날에는 그 수륙재나 예수재의 핵심이 참법이에요. 근데 이게 너무 길고, 이제 오래 복원이 지금 되고 있지만, 하다 보니까 이 참법이 빠지고 공양만 남아 있는 거예요. 예수재나 수륙재가 원래의 원형을 찾으려면 공양 플러스 참법이 들어가야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 참법이라는 게 그만큼 중요한데, 또 이 참법을 하면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게 뭐냐 하면, 중생의 습성을 내려놓고,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본래 붓다의 성품을 드러내는 게 참법의 가장 큰 특징이란 말이죠. 그런데 이 정토가 바로 그런 거잖아요. 정토가 이제 깨끗한 세계, 예토의 반댓말이니까, 좀 편안한 세계, 고통이 없는 세계, 그다음에 바로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세계, 이게 이제 정토인데, 조선시대 정토는 우리나라 불교가 들어와서 전래가 되면서, 정토에는 세 가지가 있거든요. 저 멀리 서방정토 세계가 있고, 그다음에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정토로 만드는 게 있고, 또 하나는 마음이 정토인 세계가 있어요, 쉽게 말하면. 근데 우리나라에서 해방 이후에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온 스님들이 많이 들어와서 정토를 하다 보니까, 유심정토보다는 우리가 사후에 가는 극락정토 서방정토 세계를 많이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조선시대의 자료를 보다 보니까 우리나라는 정토의 특징이 화엄선의 영향을 받아가지고, 화엄선이 이제 나중에 극도로 아주 최고의 수행 과정으로 가는 게 간화선이란 말이죠. 이 화엄선의 출발점이란 말이에요. 우리나라는 화엄선이 핵심이에요. 근데 화엄의 영향을 받아가지고 정토도 유심정토 성향이 강합니다. 마음이 정토라는 거예요. 마음이 정토여야 된다. 그래서 조선시대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눠서 보니까, 그 당시에 선사 스님들도 전부 정토에 관련된 책을 쓰고, 정토에 의지했던 모습들이 있어요. 근데 그 정토는 우리가 기존에 생각했던 사후 세계의 정토가 아니라, 어떤 세계다? 마음이 정토인 세계인 거예요. 깨달음의 세계인 거죠, 일종의. 그래서 그런 것들로 조금, 이제 아주 조금 연구를 해놨어요. 그래서 다행인 것은 이후에 후학들이 조선시대 정토를 연구하는데 한국적인 시각에서 정토를 보는데 조금 이바지가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보게 돼서 스스로 칭찬을 하게 됩니다. 제 자랑은 여기까지 하고요. 자비도량참법을 좀 이야기할까 하는데, 아까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자비도량을 건립을 해야 된다> 그게 목적이다 그랬잖아요. 근데 우리가 1년을 새로 열면서, 첫 페이지를 읽으면서, 그 첫 페이지에 자비도량으로 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수행 중에 하나입니다. 자비라고 하는 것이 이제 늘 얘기하지만, 자비라는 게 뭐예요? 우리 이제 젊은 불자들도 있고, 또 절납이 오래되신 노보살님도 계시는데, 자비가 뭐냐 하면, 자비가 뭐예요? 자비. 부처님이 우리에게 주었던 선물 중에, 선물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제 지혜라는 선물이 있고, 자비라는 선물이 있는데 자비는 온화하고 따뜻한 거예요. 자비스럽다. 자비스러운 마음 그러면 다른 거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이렇게 지그시 눈을 감고, 내 마음이 온화하고 따뜻한지 이렇게 떡 보면 돼요. 근데 내 마음이 산란해, 마음이 차가워, 마음이 굳어 있어, 그러면 어떻게 해요? 그건 자비한 마음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자비한 마음을 돌리는 거죠. 돌리면 되는 거예요. 온화하고 따뜻한 것이 왜 중요하냐 그러면, 온화하고 따뜻한 것이야말로 새로운 생명을 움트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입춘이 지났으니까 제가 늘 가끔씩 엄청난 예언들을 하는데 들어본 적 있죠? 제가 엄청난 예언을 하잖아요. 봄이 오면 꽃이 필 거고, 겨울이 오면 눈이 내릴 거다. 중요한 건 뭐냐면 그때 다 우리가 건강한 모습으로 볼 거다. 이건 엄청난 신령스러운 일이에요. 우리가 때가 지나도 건강하게 늘 볼 수 있다는 거는 그것만큼 신령스러운 일이 없는데, 어쨌든 봄이 오니까 봄이 오면 따뜻해지죠. 따뜻해지고 온화해지면 어떻게 돼요? 생명이 움트게 됩니다. 이제 법문하려고 쭉 내려오는데, 아주 우리 진관사 도량이 고즈넉해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습니다. 근데 이제 도량에 서 있는 나무들이 전부 지금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죠. 근데 이게 이제 온화하고 따뜻해지면 싹이 나기 시작해서, 녹음이 지고, 또 가을에는 낙엽이 지잖아요. 그런 것처럼 온화하고 따뜻한 거는 생명이 움트게 한다는 거는 변화하는 힘이 있다는 겁니다. 내 마음이 온화하고 따뜻해져야지만이 내가 뭔가 성취도 되고 뭔가 승리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마음이 굳어 있고 차가워 있고 얼어 있는 사람은 어떤 것도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절에 와서 기도 성취를 위해서 기도하는 분들, 또 무량 공덕을 짓기 위해서, 또 신행하는 분들에게 늘 강조하는 게 뭐냐 하면, 부처님 앞에 서서 발원할 때는 그 마음이 녹아야 돼요. 근데 이제 마음이 얼어 있어가지고 굳어 있어서, 아니면은 더 쉽게 말하면 뭔가 원망하는 마음, 뭔가 누구한테 미워하는 마음, 내지는 마음에 갈등하는 그런 것을 가지고 기도하면 안 된다는 거죠. 예를 들면 똑같은 원리잖아요. 언 땅에 씨를 뿌리면 안 되잖아요. 그죠. 뭔가 녹고, 좀 뭔가 포근한 데다가 씨를 뿌려야 싹이 나듯이, 그래서 자비라고 하는 건 그만큼 온화하고 따뜻한 마음을 이루는 거에요. 그다음에 도량이라는 게 있어요. 그 도량(道場)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우리가 절을, 사찰을 도량이라고 얘기하는데, 그 도량은 한자로 쓰면 도장이라고 읽어요. 도장, 태권도장 할 때 도장이거든요. 근데 왜 도장이라 안 읽고 도량이라 읽느냐 그러면, 도장은 몸에 힘을 키우는 거를 도장이라고 그래요. 몸에 힘을 키우는 거. 마음에 힘을 키우는 걸 도량이라고 읽습니다. 그러니까 도량이라고 자비도량 그러면 온화하고 따뜻한 마음의 힘을 키우는 곳이에요. 자비도량을 한다는 거는 내 마음이 온화하고 따뜻한 그런 마음의 힘을 키워는 기도인 거죠, 자비도량참법이라는. 근데 자비도량참법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미움이 남아 있다면 이게 뭔가 잘못된 거라서 이건 점검을 해봐야 됩니다. 자비도량참법을 했는데, 기도를 하고 났는데, 나가다가 보니까 신발을 누가 밟고 갔어. 근데 그거 보는 순간 욱하는 게 올라와. 이게 이제 말짱 (헛수고)이에요. 이게. 이럴 때는 이제 점검해 봐야 돼요. 근데 왜 그러느냐 그러면, 기도를 했지만 습성 때문에, 화내는 습성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자비도량참법은 한 번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해야 됩니다. 꾸준하게. 우리가 이제 진관사에서 자비도량참법을 이렇게 하는 것은 인연이 맺어진 거예요.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이 인연 맺음을 힘으로 일상에서도 자비도량참법을 꾸준하게 해야 돼요. 스님이 시키든 시키지 않든, 누가 보든 안 보든, 자기 스스로가 자비도량참법을 쭉 읽으면서 또 독서해가면서 해야 된다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자비도량참법이 힘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자비도량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자비도량참법이 지금으로부터 한 1500년 전에 만들어진 말씀이잖아요. 경전은 아니에요. 이게 자비도량참법이. 양나라때 만들어진 거잖아요. 자기 부인 치씨를 위해서 만들어진 건데, 부처님의 말씀 중에 좋은 걸 다 모아가지고 만들어 놓은 건데, 이게 중국, 한국, 대만에서 유행을 해요.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이게 1500년 동안에 내려온 거니까 얼마나 많은 다양한 것들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중간에 이제 중심 내용들은 같은 건데,- 그 중심 내용들을 몇 가지 점검해가면서 이건 꼭 해야지만이 자비도량참법을 건립할 수 있다라는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비도량참법을 해도 이게 좌로 가는 건지, 우로 가는 건지, 위로 가는 건지, 밑으로 가는 건지, 모르고 하긴 하는데 이게 방향감이 없단 말이죠. 그래서 이 자비도량참법을 하면서 이 네 가지는 꼭 명심을 해야 된다라는 차원에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우리 어린 학생들도 와가지고, 가장 쉬운 언어로 이제 말씀을 드릴게요,아이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자비도량은 온화하고 따뜻한 마음에 힘을 키우는 기도다. 이거는 이해하셨죠? 그래서 그 첫 번째가 뭐냐 하면 <의심하지 마라>입니다. 의심하지 마라. 우리가 왜 의심하지 마라 하냐 그러면, 의심은 뭐예요? 번뇌예요. 번뇌. 근데 우리는 살아오면서 법에 대한 의심을 하면 그게 자기한테 큰 도움이 되는데, 저 법은 왜 저렇게 됐을까, 저 법은 내가 왜 얻지 못할까 이렇게 의심하면 좋은데 뭘 의심하냐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의심을 해요. 내가 갖지 못한 것에 의심. 그래서 그 의심이라고 한 용어로 돼 있지만 이건 다른 말로 번역하면 번뇌라는 뜻이에요. 번뇌. 다른 말로 하면 번뇌는 뭐예요? 괴로움이라는 말이잖아요. 괴로워한다는 거예요. 여기 자비도량참법에 첫 번째 나오는 게 의심하지 마라거든요. 의심하지 마라. 이걸 아주 편한 말로 풀이하면 괴로워하지 마라라는 겁니다. 근데 우리는 괴로워하는 게 습성화돼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생각이 올라오면 의식이라는 게 있거든요. 의식. 의식이라는 게 있는데 의식은 구사론이나 이런 데서 보면, 논서에 보면, 의식의 의자는 <전 생각> 이렇게 번역돼요. 식은 <후 생각>. 그 전 생각과 후 생각이 찰나 동안에 생멸하면서 우리 생각이 바뀌는 거예요. 의식이라고 하는 게. 의식이 있죠. 의식 없는 분 손들어보세요. 난 의식이 없다. 의식이 없으면 살아있는 게 아니란 말이죠. 근데 의식도 전의식이 있고, 무의식이 있어요. 조금 어려운 걸 한번 터치해보면 전의식은 뭐예요? 안이비설신 다섯 가지 느끼는 거, 이를 전의식이라고 하고, 그다음에 생각으로 하는 거를 무의식이라고 표현하죠. 무의식. 무의식이 하도 또 다양해 이게. 이거는 우리가 조금 알아둬야 될 게, 우리의 의식의 흐름이 원래 그렇게 고정돼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 한번 분석의 틀을 통해서 나를 분석할 필요는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보는 거, 듣는 거, 맛 보는 거, 냄새 맡는 거, 몸으로 느끼는 거가 있는데 그거를 통괄하는 게 의식인데, 첫 번째 의식이 뭐냐 하면 육식이잖아요. 의식. 그게 의식이 전 생각과 후 생각이 자꾸 교차하면서 나를 만들어가는데, 그 교차하는 핵심이 뭐냐 그러면, 나라고 하는 생각이에요. 그거를 말라식(末那識)이라고 하고 염오식(染汚識)이라고 얘기해요. 염오식. 물들인다. 염오식. 이거는 이제 다른 말로는, 제가 만들어낸 말로 표현하면, 이거를 저는 정체식이라고 그래요.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낸 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여러 색깔, 세상에 여러 색이 있는데 사람마다 좋아하는 색이 다 다르고, 세상에는 너무 많은 노래가 있는데 노래하는 게 다 달라요. 어떤 사람들은 트로트 좋아하고요. 저희 은사 선생님은 트로트를 너무 좋아하세요. 제가 어디 모시고 갈 때 트로트를 틀어드리면 너무 좋아하세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또 발라드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런 것처럼 그거를 구분하는 게 일곱 번째 식인 거예요.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식이 있는데 여덟 번째 식은 이런 경험들을 다 모아놓는 의식이 또 있는 거예요. 그 모아놓는 것에 자기의 취향대로 꺼내다 쓰는 거, 저거 좋은 거, 저거 내가 싫어하는 거, 저거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 거. 이런 식으로 해서 이제 쓰는데 그러다 보니까 그 생각이 올라올 때 무시겁래로 우리가 했던 마음 중에 뭐가 있냐면 걱정과 염려라는 게 있어요. 그래서 의심하게 됩니다. 의심이 왜 이게 괴로운 거고 이게 고통이냐면, 의심하게 되면은 생각이, 어떤 사물이 바르게 보이지 않고요. 이게 굴절돼 보여요. 의심하게 되면. 굴절된다는 게 뭐냐면 바르게 들어온 게 아니라 거꾸로 보여요. 진짜가 아닌데 진짜처럼 보이고, 가짜인데 그게 진짜처럼 느껴지고 그런 거란 말이죠. 그걸 전도라고 그러죠. 전도. 의심하게 되면 전도된 마음이 생기게 돼요. 전도된 마음이 생기게 되면 어떻게 돼요? 몽상을 하게 돼요. 몽상은 뭐예요? 엄한 생각을 하는 거예요. 거기 생각을 가지고 막 이제 여러 가지 자기의 경험과 그동안에 들은 이야기, 느낀 걸 통해가지고 많은 생각들을 이 번뇌들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의심이 전도된 생각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몽상까지 가는 것, 이게 총체적으로 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괴로움인 거예요. 괴로움. 그래서 이게 첫 번째 자비로운 참법을 할 때는 그런 의심을 내려놓는 거예요. 걱정을 내려놓는 연습부터 해야 됩니다. 그리고 자비도량참법을 통해서 그런 걸 내려놔야지, 자비도량참법을 통해서 또 그게 나중에 자비도량참법을 쭉 오래하다 보면 그 힘을 얻게 돼요. 걱정을 내려놓게 됩니다. 출가해서 부처님 법을 믿고 따르는 스님들이, 저는 출가해서 가장 큰 공덕이 뭐냐 하면 다른 것보다도 편안하게 자유롭게 사는 것도 있지만, 저는 출가에서 가장 큰 공덕은 뭐냐 하면, 스스로 걱정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힘을 얻게 돼요. 그게 저는 출가의 가장 큰 공덕이라고 봅니다. 근데 우리는 너무 걱정을 많이 해요. 그러니까 그게 번뇌가 되다 보니까 괴롭죠. 그래서 의심을 내려놔라. 의심을. 그다음에 의심을 내려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면은, 그다음 나오는 구절이 <신심을 가져라>라는 거잖아요, 믿음을 가져라. 믿는 마음을 가져라. 믿는다는 건 어떤 거예요? 의심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 믿는다는 그 네 가지는 첫 번째로는 뭘 믿어야 되느냐. <내 자신을 먼저 믿어야 돼요.> 이걸 근본신이라 그래 근본신. 나를 믿어야 돼요. 그래 나를 믿는데 내 생각과 내 고집을 믿는 게 아니고, <내가 원래 다 본래 붓다로서 이 안에 원래 맑고 밝고 온화하고 따뜻한 성품이 있다>라고 믿어야 되는 거예요. 그게 그것부터 출발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 걸 드러내고, 그걸 믿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고, 또 부처님 가르침을 열심히 수행하는 스님들을 봐야 그게 합일되는 거죠. 그 채널이 맞아지는 거죠. 그래서 ‘내가 나는 중생이야, 나는 괴로운 사람이야. 나는 늘 운이 없어,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나는 왜 이렇게 재수가 없지.’ 이렇게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일도 성취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이제 우리 청년들을 만났을 때 제일 먼저 하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자기 스스로가 자기한테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법을 배워야 된다는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근데 우리는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법을 잘 몰라요. 너무 인색해. 그게 무슨 세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자기한테 칭찬이 너무 인색해요. 자기한테 칭찬이 인색하다 보니까 마음도 좁아질뿐더러 자기를 칭찬하는 게 안 되다 보니까, 남도 칭찬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첫 번째는 자기 자신을 믿는데 자기 자신을 믿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거울을 보고, 거울을 보고 화장만 하지 말고, 내 마음에도 칭찬해줘야 돼요, 내 자신에게. 내 마음속에 맑고 밝고 온화하고 따뜻한 성품이 있다라는 걸 믿는 마음을 확인해야 돼요. 그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게 첫 번째 자기 자신을 믿는 거잖아요. 그런 믿음을 만들어내야 그다음에 부처님을 봐도 부처님의 광명이 내 안으로 내려앉을 수 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봐도 그 고구정령한 말씀이 내 안에 녹아내릴 수가 있는 거죠. 스님들을 봐도 스님들 말씀이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나를 믿자. 첫 번째는 이제 의심을 드러내고 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신심을 갖는 거잖아요. 두 번째로는 자비도량참법의 가장 핵심인데 이걸 하기 위한 거예요. 이제 의심 끊어내고 신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자비도량참법이 네 글자로 압축해서 말씀을 드리면 해원석결(解寃釋結)이에요. 해원은 뭐냐 하면,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풀어내는 거예요. 그리고는 또 하나는 석자도 푼다는 말인데, 그것도 미운 마음을 푸는 거예요. 원수진 마음을 푸는 건데, 미운 마음을 푸는 건데, 이 해원석결이 이 자비도량참법을 하는 원래의 목적이에요. 양무제의 치씨 부인이 살아생전에 좀 옹졸했었나 봐요. 그래서 좀 인색한 마음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그래서 뭐가 돼요? 죽어서 구렁이가 되잖아요. 그래서 꿈에 나타나가지고 본인의 그런 나쁜 갈래에 떨어졌는데, 그걸 구제해달라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결국은 나쁜 갈래에 떨어지는 게 왜 떨어진다?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떨어진다는 거예요. 원망하는 마음 때문에 떨어진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알게 모르게 누구를 미워합니다. ‘저 원수 같은, 너만 아니었어도 내가’, 그런 얘기 많이 하죠. 근데 처음에는 사랑하는 마음이었는데 그게 원망하는 마음이 되고, 또 처음에는 좋은 인연을 만났는데 그게 서로 간에 미워하는 마음이 되는 건 왜 그럴까요? 가까이 있다 보면 그렇게 되는 거죠. 가까이 있다 보면. 멀리 있는 사람들은 해원석결, 풀 일이 없어요. 이 해원석결은 전생까지 다음 생까지 내일까지 나의 미래를 그렇게 점철시키는 것은 같이 살던 사람들로 인해서 그래요. 가장 큰 게 뭐예요? 가족입니다. 친족들이 그래요. 남과, 타인과 이렇게 같이 지내다가 원망이 되고 미워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이 다 전체가, 전체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친족 간에, 가족 간에 이 원망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서로 상처받고 서로 얼굴 안 보고 살고 그럴 경우가 많죠. 그러니까 이제 자비도량참법을 했는데 마음에 미운 마음이 안 풀린다. 이거는 또 진료를 또 해봐야 되죠. 전문적으로, 또 우리 주지스님 만나가지고 상담을 하셔야 돼요. 특단의 조치를 받으셔야 돼요. 자비도량참법을 하게 되면은 기도를 할 때 저도 그랬습니다마는, 자비도량참법을 처음에 시키면 많은 분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게 뭐냐 하면, “눈물이 나요.” 그런 얘기를 합니다. 그런 경험해보셨어요? 자비도량참법하다가 눈물 흘리신 분 계세요? 우는 분들 많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그게 뭐냐 하면, 알게 모르게 마음에 쌓였던 미움의 업식이 녹아내리는 거예요. 그 미운 마음이라는 게 사람 마음을 차갑게 굳게 하잖아요. 그게 녹아내리는 거거든요. 이게 자비의 힘인 거예요. 그게 그러니까 이제 이 자비도량참법을 하면서는 제일 중요한 게 가족들하고 잘 지내야 돼요. 가족들하고 잘 못 지내면 자비도량참법은 무릎이 깨지도록 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예를 들자면 자비도량참법을 여러분이 오늘 마치고 회향을 했잖아요. 그러면 오늘 가서 제일 할 게 뭐냐? 남편과 아내의 손을 다 잡고 “나 때문에 참 고생 많았어. 내가 앞으로 잘할게.” 이렇게까지는 안 되더라도, 미워하는 눈빛을 보내면 안 돼요. 자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들도 내가 인연을 맺어서 왔잖아요. 애가 오고 싶어 온 게 아니잖아요. 내가 만들어 놓은 인연이란 말이죠. 근데 그 인연들한테 너무 상처되는 말을 많이 했어요. 그동안, 알게 모르게. 근데 요즘에 이제 프로그램 중에, 우리 아까 주지스님께서 tv 많이 보지 말라고 했는데 이건 드라마는 아니에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고 하는 그런 프로그램 있잖아요.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시하는 그런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 있잖아요. 그 아이들을 분석해 보면 문제는 그 아이였어요? 환경이었어요? 90%가 환경이었어요. 물론 타고난 기질이 그런 아이들도 있어요. 없는 건 아닙니다마는 대부분이 뭐예요? 그 아이가 그렇게 문제 행동하는 것은 그 가정이 가졌던 환경 문제였던 거예요. 환경 탓이었던 거죠. 환경이 문제였던 거죠. 여기 우리 꼬마들이, 우리 어린 법우들이 와 있지만, 이 법우들이 이렇게 선량한 복을 지을 수 있는, 부처님 전에 앉을 수 있는 건 뭐예요? 가정환경이 좋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여기 앉아 있는 아이들이 문제아가 될 수가 없어요. 여기 앉아 있는 우리 진관사 도량에 같이 와서 함께한 아이들이 우리 대한민국을 이끌 인재들로 성장할 겁니다. 여기서 장관도 나오고, 정치인도 나오고, 또 재벌 총수도 나오고 그러겠죠. 축원의 박수 한번 보내주세요. 그런 것처럼 그 문제, 우리가 가정이라고 하는 것에서 그런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자비도량참법은 해원석결이다. 미운 마음을 덜어내는 거다 라는 거예요. 그 미운 마음을 덜어내려면은 하나의 그 좋은 기재가 있는데 그 기재가 뭐냐 그러면 발보리심이에요. 발보리심. 그래서 이 해원석결을 하는 거, 참회를 통해서 해원석결하는 건데, 그 해원석결을 참회를 제대로 하려면 마음에 보리심이 올라와야 돼요. 보리심. 보리심을 발하는 거죠. 보리는 뭐예요? 지혜죠, 지혜. 반야, 지혜, 보리 같은 말인데, 지혜심이에요. 지혜심, 반야심. 반야심을 발하는 거예요. 발한다는 거는 없는 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펼쳐내는 걸 발이라고 그래요. 출발 이렇게 하죠. 출발. 출발은 뭐예요? 여기서 출발하는 거잖아요. 어디 한 곳에서, 있는 곳에서. 그러니까 이 발보리심, 발은 원래 내가 없던 거를 받아서 만들어서 하는 게 아니고, 내 마음에 있는 보리심, 보리라는 건 반야라는 거, 맑고 밝은 마음, 맑고 밝은 마음을 드러내는 거예요. 발보리심은. 드러내면 어떻게 돼요? 맑고 밝아지니까 해원석결이 되는 거예요. 내가 미운 마음이 든다는 거는 어두운 마음이란 말이죠. 거기에 발보리심을 하는 거예요. 발보리심. 발보리심을 어떻게 해요? 알려드릴까요? 아주 쉬운데. 이렇게 앉으셔가지고 마음이 밝은지 맑은지 돌이켜보면 돼요. 얼마나 쉬워요? 이거 0.1초도 안 걸리죠. 돌이켜보는 거. 이거를 이제 요즘 말로는 메타인지라 그래요. 메타인지 들어보셨어요? 메타인지. 나의 어떤 마음에 또 다른 나를 만들어서 이렇게 살펴보는 걸 메타인지라 그래요. 전문용어로. 조금 똑똑해 보이죠. 이런 용어 쓰니까. 그래서 그렇게 돌이켜봐야지 말이 된다. 그게 발보리심이다라는 겁니다. 발보리심. 발보리심이 어려운 게 아니에요. 맑고 밝은 마음을 발현해내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발보리심까지 이루어진 다음에, 마지막으로 회향심인 거예요. 회향심. 요게 자비도량참법의 큰 줄기입니다. 회향심은 뭐예요? 내가 기도를 통해서 느꼈던 것, 고마워. 내가 이게 중 되고 이런 경험 처음 하네요. 내가 출가하고 나가지고 법문하다가 이렇게 현금을 받아보기로는. 아이고 야, 합장도 잘하네. 아이고 이런. 새로 오신 부주지스님이세요? 회향심 얘기하니까 바로 이렇게 회향을 그냥 몸으로 보여주는 애기 보살님이 계시네요. 이런 게 회향심인데, 오늘 법문 소용없어. 우리 아이가 그냥 몸으로 보여줬어요. 아기 보살님이. 근데 회향심이라고 하는 거는 뭐냐 하면, 내가 기도를 통해서 느꼈던 바의 느낌들을 내 홀로 마음으로 간직하는 게 아니라, 나의 아이들에게, 나의 가족들에게, 나의 이웃들에게, 나의 인연들에게 같이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근데 우리가 이 회향심을 잘 몰라요. 우리 불자들이 좀 약한 부분이 요 회향심이 좀 약해요. 내가 느낀 것들이 있거든요. 아주 작은 것이라도 기도하는 속에서 느꼈던 느낌이 있는데, 그리고 변화들이 있는데, 그 느낌과 변화들을 자기만 간직하고 있어요. 이제는 이야기할 때가 됐습니다. 그 이야기해서 같이 공유하면, 같이 향유하면, 뭐가 되냐면 그거를 다른 말로 전법포교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전법포교는 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 느낀 바, 내가 깨친 바, 내가 얻은 바만큼의 이야기를 나의 가족과 나의 인연들과 함께하는 거, 이게 전법포교인 거죠. 그래서 이 자비도량참법이 회향을 하게 되면, 회향심을 갖고 하게 되면 전법포교를 하는 거잖아요. 보세요. 이것만큼 전법포교에 좋은 게 뭐가 있어요? 마음에서 신심이 우러나잖아요. 지금. 그래서 우리가 자비도량참법기도를 회향한 만큼, 지금 말씀드렸던 의심을 내려놓고, 신심을 갖고, 그다음에 해원석결하고, 해원석결을 하려면 발보리심을 해야 되고, 발보리심을 이룬 다음에는 회향심까지 마음에 갖는다면 우리는 참다운 자비도량참법을 성취할 거다. 그래서 여러분 올 1년 내내 진관사와 함께, 또 우리 최고의 수행자이시고 또 진관사의 탑이신 우리 법해 스님하고 함께 자비도량참법을 건립하시기를 축원 올리면서 법담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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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하례법회] 2월 18일 신년하례법회 법문
회주 계호스님 2024-02-18
안녕하세요. 여러분들 뵈니까 제가 또 힘이 솟는 것 같아요. 지난 번에 입춘날 맞이해서 세 번째 설날 맞이했고, 이제 구정이 완전히 됐죠. 네 번째 새해입니다. 올해는 무슨 띠라고 그랬죠? 갑진년에 아주 값진 해가 될 수 있는 용이에요. 그래서 신화엄경에 보면은 용은 동쪽에 있으면서 부모님과 같고, 처음 같고, 시초와 같다 그랬죠. 일의 근본이 되고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실천행이 될 수 있다 그랬습니다. 진관사 신도님들이 4박 5일, 닷새간 자비도량참법 기도를 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여러 가지 참회업장을 다 하셨죠? 업장소멸하셨죠? 아까 가섭 스님 법문 저도 유튜브로 보고 있었는데, 스님께서 철학박사 수료해서 처음 와서 이렇게 법문하시는 것 같은데, 우리는 자주자주 큰스님의 법문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내셔야 돼요. 어렵다 생각 내지도 마시고, 자주 들어서 지나가는 인연이라도 맺어야 되거든요. 기도라는 게 성취라 그랬잖아요. 근수(勤修), 부지런히 닦는 게 바로 기도라고 그랬거든요. 올해는 청룡, 완전히 용의 해가 되는데, 이 용이라는 거는 12지 가운데 상상의 동물이라 그래요. 실제로 자축인묘사오미신유술해는 다 있죠. 쥐띠도 있고, 소띠도 있고, 토끼띠도 있고, 호랑이 띠도 있고, 여러 가지 띠가 있는데 용은 상상의 동물이라서 좀 이 변화가 무쌍합니다. 하늘 위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물속에 들어갈 수도 있고, 땅 위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데, 이 모양은 어떻게 생겼냐면요. 우리가 보통 용은 머리는 낙타와 닮았다 그래요. 그리고 뿔은 보통 사슴뿔이라 그러죠. 사슴뿔과 닮았고, 눈은 토끼와 닮았다 그러고요. 또 귀는 소귀처럼 생겼다 그래요. 목은 뱀 같고, 또 비늘은 잉어 같고, 발바닥은 호랑이 발바닥 닮았다 그래요. 그러니까 이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가늠할 수 없는 그런 모습이에요. 용꿈을 꾸면 굉장히 좋다고 하죠. 그런데 서양 문화권에서는 용이 굉장히 좋지 않은 현상으로, 마귀의 모습이다라고 하는데, 이 동양권에서는 상서로운 동물로 봐요. 그래서 왕실에서는 왕이 입는 옷은 곤룡포라 그러고, 왕이 앉는 자리는 용상이라 그래요. 그래서 왕권을 상징한다 고 합니다. 근데 절집에서는 이 용을 수호신으로 보고, 호법신장, 우리를 도와주는 그런 신장님의 역할을 해요. 약찬게에도 나오죠. 그래서 용을 상징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올해는 여러분들이 정말 용과 같은 변화무쌍한 마음이지만, 항상 일념으로, 한마음으로 생각하시면 돼요. 생각이 너무 바뀌면 이게 뚜렷하지 않아 삼매에 들지 못하죠. 그래서 보통 내가 일념에 들려면은 한 생각이 되어야해요. 우리가 독서를 할 때 독서 삼매에 들어가면, 옆에 누가 봐도 모르죠. 내가 공부의 정진에 들어가면요, 가만히 있으면 누가 옆에 와도 모를 정도로 그래야 되는데, 기도하다 말고 뒤 돌아보고, 기도하다 옆에 들어오고, 기도하다 말고 뭐 하고, 기도하다 말고 전화받고 나가고. 좀 그런 경향이 있는데, 올해는 마음을 좀 안정시켜가지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도록 합시다. 편안한 마음이 부처님이거든요. 풍요로운 마음이 불성이고, 건강한 마음이 불성이고, 자비로운 마음이 바로 불성이에요. 불성이라는 거는 좋은 마음 나쁜 마음 다 합해서 불성일 수도 있어요. 좋은 마음만 생각한 게 불성이 아니고. 우리가 파도가 그대로 물이잖아요. 그렇듯이 번뇌 즉 보리거든요. 그래서 중생과 마음과 부처님은 세 가지가 차별이 없다고 화엄경에서 얘기했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중생이라 하지만은,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 해서, 이 마음이 그대로 뭐예요? 부처님이다 이렇게 생각하셔야 돼요. 우리가 법구경에 보면 돌아갈 때 행이 두 가지가 남아요. <선행과 수행>이에요. 선행이라는 건 복을 짓는 걸 선행이라 그러고, 수행이라는 건 열반에 들어가는 걸 수행이라 그래요. 왜냐하면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 부지런히 열심히 수행한다 그러잖아요.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할 때 부처님이라는 말은 수행해서 얻어지는 결과물이에요. <선행공덕 적선지가(積善之家)>라고 그러잖아요. 선을 닦는 건 복을 닦는 거하고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복 짓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행복할 때 남도 행복한 거예요. 그런데 내가 했다는 마음 생각조차 없으면서 꾸준히 열심히 가면은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한 거예요. 내가 불편하면요, 어떤 사람이 옆에서 해도 내가 불편한 거예요. 그러니까 본인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해야 되고, 누구 탓하지 말라 그랬죠. 다 자업자득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새해를 맞이해서 새 마음으로 새로운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정진 열심히 하시면서 가피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지요. 그래서 열심히 기도 정진하면은 그게 다른 데로 가는 게 아니에요. 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나한테로 돌아오는 거예요. 하늘에다 침 뱉으면 침이 어디로 떨어져요? 내 얼굴에 떨어지잖아요. 똑같아요. 그러니까 원망하는 마음, 나빠하는 마음, 싫어하는 마음도 내지 말고 오로지 선행스러운, 착한 마음만 내면 그게 바로 부처님이에요. 오늘 아까도 주지스님 말씀하는데, 부처님학교 연다 그랬죠. 부처님이 될 수 있는 학교가 만들어져야 되는데, 학교가 여러 가지 있어요. 지혜의 학교도 있고, 공덕의 학교도 있고, 나눔의 학교도 있고, 마음의 정원의 학교도 있고, 여러 가지 학교가 있는데, 초파일, 부처님이 태어나셨잖아요. 그렇죠. 탄생일을 맞이해서 부처님학교에 다 들어오면은 무량한 공덕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만 학교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스님들도 다 학교에 들어간 거예요. 이 문에 들어오면은 벌써 일은 마친 거예요. 시작이 반이라는 말씀 들어보셨죠? 오늘 여러분들이 기도를 열심히 하는 소리가 제가 있는 저 밑에서도 다 들려요. 왜냐하면 마이크로 들리니까. 옛날에는 나가원 좁은 방에서 했을 때는 답답했는데, 함월당을 이렇게 불사를 하고 나니까, 모든 사람들이 함께, 비구니 스님, 우리 대중 스님뿐만 아니라, 청년, 청소년 법회, 어린이 법회까지 여기 다 왔잖아요. 함께 한마음으로 이루면 안 될 일이 없는 거예요. 백지장도 맞들면 낫듯이 다 이루어져요. 열심히 하면서 부처님이 될 수 있어요. 우리가 다 갖추고 있지만 안 해서 그렇게 안 되는 거예요. 할 수 있다라는 거를 여러분들이 굳게 믿고, 신심과 자비심과 지혜의 힘으로써 살아간다면 어려운 건 하나도 없다 생각해요. 과거는 없고 미래도 이제 앞으로 닥치지 않았으니까, 중요한 게 언제예요? 지금이 제일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현재를 중요시해가지고 현재를 직시하면서 살아가면은 세상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없고, 못할 것이 없는 거예요. 또 20대, 30대는 아직까지 나이가 있잖아요. 80대 ,90대 되는 사람 그런 보살님들은 연세가 있지만은 그래도 살아가면서 항상 좋은 생각 내시고, 밝은 마음, 맑은 마음 내시면 불사는 성취됩니다. 부처님 일은요, 뭐든지 이루어지지 않는 게 없다 그랬어요. 저도 가만히 생각하니까 절집에 들어온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내 나이가 벌써 이렇게 됐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온 생각밖에 안 나요. 68년도 졸업하고 절에 왔는데, 마음은 그대로 소녀 같은 마음인데, 몸만 늙은 거예요. 그래서 몸은, 보이는 세계는 물질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는 정신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내외가 명철돼요(內外明徹). 보이는 세계나 보이지 않는 세계나 똑같이 수행해야 돼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너무 잘하는데, 안 보이는 데서는 이상한 행동하고, 이중적인 생각한다는 말 들어보셨죠? 항상 여러분들이 생각을 가질 때 안과 밖이 철두철미한 사람들이 정말 성공하는 사람이지, 안에서는 잘못하다가 밖에 나가면 너무 잘하는 분들도 계시고, 안도 잘 못하고 바깥도 잘못하는 사람은 더 못하는 거죠. 그건 하근기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안과 밖이 달라지지 않도록 열심히 살 수 있는 불자가 돼야 되겠죠. 자비심을 발하고 실천행을 할 수 있는 그게 선행공덕이에요. 선근공덕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적선공덕, 선근공덕, 선행공덕.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에 돌아갈 때 행이 두 가지 남는데 선행공덕과 수행공덕만 남는다. 열심히 살면서 “내가 살아가는데 조금 남한테 좀 잘못한 게 없는가” 이걸 돌이키면서 잘할 수 있는 불자가 돼야 되고, 자비로운 마음이 몸에 배야 돼요. 아까 자비란 말 들어보셨잖아요. 고통을 주지 않는 거는 락이라 그러고, 자자는 자비로 사랑만 주는 게 자자예요. 발고여락(拔苦與樂)이에요. 그래서 고를 빼주는 거는 비고, 비증보살의 제일 으뜸인 보살이 지장보살이에요. 자에 으뜸가는 보살은 관세음보살이고, 그럼 지혜는 문수보살, 실천은 보현보살이에요. 아는 건 너무 잘 알잖아요. 안 돼서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는 아는 것보다, 지식보다도 지혜로운 사람이 돼야 돼요. 그래서 열심히 살면서 항상 올해는 작년보다는 좀 잘해야 되겠다 이런 마음 가져야 되겠죠. 그래서 갑진 한 해가 되면서 정말 용 꿈꾸는 그런 용이 되어서 상상 못하는 그런 생각은 갖지 마시고, 할 수 있는 생각, 도와줄 수 있는 생각, 이타행, 자리이타행을 할 수 있는 불자가 되도록 꼭 그렇게 명심하세요. 그럼 저도 부응해서 같이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오늘 여러분들에게 108 원력문 나눠주셨죠? 이거를 그냥 갖다 놓으면 도서관밖에 안 됩니다. 가지고 꼭 절을 한 번씩 하세요. 노보살님들은 힘이 드시면 반 배만 하셔도 돼요. 저 같은 경우도 같이 반 배하고. 또 이게 되는 여력 있는 보살님들이나 스님네들은 따라서 하면 돼요. 청정한 마음으로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청정한 마음으로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청정한 마음으로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마지막에 또 있죠. 부처님 법 전하는데 온 삶을 바치겠습니다 가 마지막 구절이에요. 그래서 108배 하면은 이게 다 공덕의 문이 되는 거예요. 아까 그랬죠. 선행은 자비의 문에 들어가는 씨앗이고, 이 수행이라는 것은 열반에 들어가는 문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우리 보살님들이라든지, 신도님이라든지, 청년 법회라든지 청소년 법회들 학생들, 어린이법회 학생들 말 너무 잘 듣네요. 아까 스님한테 보시한 학생도 있었죠? 꼭 이거 읽고 같이 따라하도록 하세요. 그래야지만이 이게 공덕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여러분들한테 나눠주는 거는 함께 같이 실천하자는 의미예요. 그러니까 꼭 실천하도록 합시다. 그래야지 진관사의 자비의 문이 활짝 열려요. 다 같이 부처님 됩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