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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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행수륙재] 9월 1일 국행수륙재 입재 법문
혜국 큰스님 2024-09-01
이 몸이 나기 전에 그 누가 이 몸이며,이 몸이 태어난 후그 누가 참나더냐.태어나 잠깐동안 나라고 이름터니눈 감고 죽고 나서 나라는 자 어딜 갔나나무아미타불 진관사 국행수륙재 입재날입니다. 국행이라고 하는 것은 옛날에는 이 나라의 주인을 임금으로 봤기 때문에, 임금님이 직접 나와 가지고 이 나라를 위해서 수륙재를 지극정성 다했는데, 왜 그렇게 수륙재를 중요시하고 옛날 큰스님들이 수륙재를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을 했느냐면, 오늘 우리가 천도를 해드리는 모든 이 나라를 위해서 목숨 바친 그러한 전몰장병 군인들이나, 이 나라를 위해서 살다가 돌아가신 공무원들, 특히 소방공무원들이나 경찰들이나 또는 순국선열들, 그러한 모든 분들만이 아니고, 여러분들 DNA 속에는 우리 선망 조상들의 모든 기운의 그 결과가 여러분들이고 바로 나이기 때문에, 그러한 영가들을 위해서 수륙재를 지낸다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 재례의 입장에서 볼 때만 그런 게 아니고, 여러분들이나 나나 오늘 우리는 생명이 있어서 법문을 하고 법문을 듣는데, 그 생명이라는 게 뭡니까? 나무 1그루, 풀 1포기가 만들어 놓은 산소, 그 공기를 코를 통해서 빌려다가 쓰는 생명이고, 여러분들 공기 10분만 못 빌려오면 다 죽으니까, 떠다니던 구름이 비가 되면 그 물을 얻어 마시고 물에서 빌려온 생명이고, 떠오르는 태양에서 열량, 대지에서 나오는 음식, 우리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우주생명을 빌려다 쓰고 있기 때문에, 그 우주생명이라고 하는 법신에서 볼 때는, 오늘 돌아가신 모든 영가들이나 우리들이나 새들이나 나무들이나 한 생명이라고 하는 그러한 가르침을 펴고, 그러한 영가들에게 그러한 길로 인도하는 것을 우리는 수륙재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수륙재라는 거는 조금만 도량이 더러워도 안 되고, 계행을 잘 못 지켜도 안 되고, 이 진관사에서 지금 벌써 오랫동안 수륙재를 지내주는 것은 이건 나라에서 해야 할 일이고 온 백성이 해야 할 일인데, 회주 스님이나 주지 스님이나 이 수륙재를 마련하는 데 모든 동원된 모든 분들이 정말 고마움을 아셔야 됩니다. 그런 까닭으로 여러분들이 오늘 있다고 하는 것은 오늘 우리가 수륙재를 지내는데 청해 모신 모든 영가들, 그러한 분들을 위해서 축원을 먼저 한번 해드리고 오늘 수륙재 법문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지심 발원대자대비하신 불보살님이 진관사에서 수륙재를 봉행함에이 나라를 위하여 귀한 생명 바치신 모든 전몰장병과 우리나라 백성들을 위하여 몸과 생명을 바친 모든 공직자들, 그리고 우리를 낳아주신 선망부모님과 모든 조상들, 비명에 돌아가신 모든 유주무주 애혼영가 등을 증명하여 주옵소서. 진관사 수륙재를 모시는 이러한 모든 공덕 금일 영가 영전에 회향되어마음에 모든 맺으신 원결이나 마음에 남아있는 모든 상처는 한생각에 봄눈 녹듯 녹아지고참나는 누구런가 내 마음이 본래 부처인 줄 깨달아서왕생극락하여주옵소서나무아미타불 그러면 오늘 수륙재에 오신 모든 분들이, 오늘 우리가 있는 것이 “아, 이러한 먼저 가신 영가들 덕택에 오늘 내가 있는 거구나.” 팔만대장경을 다 이렇게 똘똘똘똘 줄이면 반야심경이 되고, 반야심경을 온통 한마디로 말하면 마하반야바라밀이 되는데, 오늘 수륙재에 모인 모든 영가들을 위해서 우리 마하반야바라밀을 5번만 외워드리고 오늘 법문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오늘 진관사에 모인 모든 전몰장병과 모든 공무원들과 이 나라를 지키다가 목숨 바친 모든 고마운 영가 등이여, 그리고 우리 후손들을 위하여 인생을 바치고 우리를 낳아주신 선망부모, 모든 조상들이여, 마하반야바라밀이니라. 그러면은 수륙재라고 하는 것은 이 지구상에 여러분들이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내가 내 생명을 만들어 쓰는 게 아니라, 모든 육지와 모든 물 즉 수륙, 물과 육지, 우주 자연이 우리를 살려주고 있지, 우주 자연이 만약에 우리를 살려 주지 않는다면, 공기도 안 보내 주고 햇볕도 안 보내 주고 물도 안 내린다면, 우린 죽은 목숨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눈에서 볼 때 나무 1그루, 풀 1포기가 내 생명을 만들어 주는 생명의 원천이오, 떠다니던 구름이 비를 만드는 게 생명의 원천이오, 대지를 밟고 다니는 이 모든 것이 생명의 원천이다. 그러면 수륙재에 동참했던 분들은 “아, 내 생명이란 곧 우주생명이요. 우주생명을 빌려 쓰고 있다면 수와 육이라, 육과 수라, 수륙재라고 하는 것은 온 우주법계가 고맙지 않는 존재가 단 하나도 없구나.”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고마움을 모르는 중생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다. 모든 것에서 고마움을 알 줄 아는 사람은 마음이 넓어지고, 마음이 넓어지면 모든 행복이 그 안에서 자라난다.”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세계를 마하반야바라밀이라 해놓고는, 뭐라고 하셨느냐면 마하반야바라밀이 되려면은 오온이 공해야 된다. 오온이 공해야 된다. 이게 참 어렵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마는, 팔만대장경을 줄이면 반야심경이 되고, 반야심경을 줄이면 마하반야바라밀이 되는데, 마하반야바라밀의 세계를 알려면 오온개공(五蘊皆空)임을 깨달아야 된다. 그러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와 가지고 이런 수륙재를 통해 가지고 고마움을 느낀다는 것은, 제 개인 경험을 가지고 한번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교회를 다녔습니다. 주기도문을 지금도 줄줄 외우는데, 그 당시에 가니까 날 보고 죄인이라는 거예요. 죄인. 여러분들 다른 종교에서 우리를 다 죄인이라 그러죠. 그죠. 아 죄인이라고 안 합니까? 아담 할배하고 이브할매하고 따먹지 말라는 과일을 따 먹어가지고 죄를 지은 그 DNA로 우리를 낳았기 때문에, 아무리 잘 살아봐야 다 죄인이라 그런다 이 말이오. 그런데 해인사 출가를 해서 성철 큰스님을 모시고 사는데, 성철 큰스님이 법상에서, 해인사 큰법당에서 법문하기를 <죄란 없다. 여러분들의 근본 마음은 죄에 물들지 않는다.> 진관사에 내려오신 모든 영가 등이요. 당신들 오늘 이 법문 들을 줄 아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그 마음. 창을 잘하고 정성을 다해서 수륙재는 그 수륙재 지내는 분들이 염불 소리를 잘 듣다 보면, -여러분들이 그런 귀에 귀가 안 열려서 그렇지. 요즘 여러분들 귀는 엉뚱한 데 열려 있거든요. 뭐 그 무슨 랩 음악인가요? 샬라샬라 슈라, 뭐 언니에게 물어봐, 살랴 바라바라하는 그런 데는 나는 아무리 들어봐야 무슨 소린지를 모르는데- 아까도 금방 <아유일권경 불인지묵성(我有一券經 不因紙墨成)>하는데, 마음이 확 편안해진다 이 말이에요. 그럼 그런 영가들이 그 염불 들으면서 “고맙습니다.” 할 줄 아는 그 마음 바탕에는, 진관사 수륙재에 내려오신 모든 군인들과 공무원들과 이 나라를 위해서 목숨 바쳐주신 고귀한 영령들과 선망 부모, 모든 조상들이여, 당신들 이 법문 들을 줄 알고 염불 들을 줄 아는 그 마음 본바탕은 태양광명과 같아서, 태양광명은 어두워지는 일이 없습니다. 오늘 밤 깜깜한 것 같지만 우리나라 반대쪽에서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에서 환한 광명이 비치듯이, 구름이 아무리 껴도 태양광명은 적어지거나 많아지는 게 아니고, 구름 위에서 맑은 광명을 비추고 있어서 구름만 걷어버리면 광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금일영가들 마음마음마음마음광명이여, 그 마음광명이 태양광명보다도 오히려 더 밝아서 더러워지는 일이 없다. 뭐와 같으냐 하면은, 성철큰스님 법문을 의지하면, 저 허공에다 대고, -여러분들 허공 아세요. 허공. 허공 알아? 몰라? 그게 잘못된 거예요. 아인슈타인 박사가 “이 세상에 허공을 아는 분은 자기가 볼 때는 부처님 한 분뿐이다.” 이렇게 써놨습니다. 한번 찾아보십시오. 우리가 알고 있는 건 공간을 허공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허공은 기둥 속에도, 우리 속에도 꽉 차 있는 게 허공입니다. 그게 우리 참생명입니다. 그러면 구름만 걷어버리면 광명은 언제나 비치듯이, 여러분들 금일 영가들 마음광명도 그와 같다는 것은, 허공처럼 마음의 모든 걸 비워버려야만 그게 가능하다. 허공에는 똥물을 끼얹져도 더러워지지 않고, 뭐 먹물을 끼얹져도 허공은 더러워지질 않습니다. 왜 텅 비어 있기 때문에. 금일영가 등이여 당신들 마음만 비워버리면 마음의 미운 마음, 원망하는 마음, 나는 이래서 죽어갔구나, 이러한 모든 마음을 오늘 풀어버리소서. 왜냐. 당신들을 아직도 이렇게 그리워서 해마다 해마다 당신들을 위해서 염불하고 법문하고 재를 올리는 이런 도량이 있다는 것 자체만 생각하더라도, ‘아, 마음을 놔버려야겠구나’ 딱 놓아버리면 빈 공간이 되고 공간이 되면 공성이라, 아무리 허공은 칼로 난도질을 쳐도 허공은 상처가 나지를 않는다. 고로 그 허공은 미국 허공도, 인도 허공도, 중국 허공도 한 허공이다. 고로 당신들은 태어나도 태어난 바가 없고, 죽어도 죽은 바가 없는 자리가 오늘 이 법문 듣는 자리더라. 이거 기가 막힌 소리거든요. 모르니깐 박수도 칠 줄 모르는 거여. 아니 무슨 뭐 박수를 치라고 해서 치는 게 무슨 박수요, 그게. 그러면 말이여. 저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세상 와서 “니가 아무리 죄를 많이 지어도 그건 내가 익힌 습관일 뿐이지, 내 마음바탕 내 참생명은 더럽힐 수 없다. 지옥엘 가도 그대로요. 인간의 태어날 때도 그대로요. 어디를 가도 그대로다. 고로 너는 근본이 부처이니라.” 금일영가여, 당신들은 부처이십니다. 여기 진관사에 보면 이쪽저쪽에 족자를 해 가지고 <당신은 부처님입니다.> 대단한 법문이거든. 금일 영가 등이여, 당신은 부처이십니다. 그럼 부처인 줄 알면 부처의 길을 가야 됩니다. 부처인 줄 알고도 중생의 길을 가면 그건 중생이고, 부처인 줄 알았으면 부처의 길을 가는 것을, 우리는 그 길로 인도하는 것을 수륙대재라 그럽니다. 수륙재다. 그렇다면은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에게는 육체의 나가 있고, 금일영가 등이여, 당신들 육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졌습니다. 없어졌다 이 말이에요. 육체인 내가 있고, 두 번째는 교육의 나가 있습니다. 교육의 나. 교육받은 나. 어릴 때부터 ‘저거는 응 소나무다, 저거는 참나무다, 어 이건 혜국 스님 대갈통이다.’ 뭐 전부 다 들어 가지고 교육받은 교육의 나가 있는데, 그 육체의 나는 어떤 것에 끌려다니는가 하면 주로 우리 욕망에 의해서 끌려다닙니다. 교육의 나는 무엇에 의해서 끌려다니냐 하면 생각의 나가 끌고 다닙니다. 이것은 크다, 이것은 작다, 이건 잘났다, 이건 못났다.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나는 불행하다, 나는 좀 행복하지 않다, 가난하다, 그거는 다른 상대하고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햇볕은, 저 태양광명은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똑같이 비춰줍니다. 공기는 어떻습니까? 공기. 공기도 똑같이 주죠. 그죠. 대답 한번 잘못했다고 하니, 대답을 아예 안 하는구먼, 공기도 똑같이 주면은 공기 입장에서 볼 때, 태양에서 볼 때, 우주 허공에서 볼 때, 대지에서 볼 때, 우리는 완전히 평등입니다. 똑같이 권리를 누리고 있어요. 불평등이 어디서 생겼습니까? 인간들끼리 비교하고 경쟁하고 투쟁하는 데서 불행이 생겼습니다. 그걸 교육의 나라 그럽니다. 그거는 언제 벗어나도 벗어나야만 내가 내 마음을 깨달아서 라라리라 라라리라 태평가를 부를 때가 오지, 남하고 비교하고 투쟁하는 동안은 비교 대상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끊임없이. 왜냐. 우리 마음은, 금일 진관사에 내려오신 모든 영령들이여. 그러면 교육의 나는 생각에 의해서 끌려다니는데, 그 생각은 대상이 있을 때만 일어나는 것을 생각이라고 합니다. 대상이 있을 때만 생각은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서 오늘 내가 저 충주 석종사에서 올라왔는데, 올라오다 보면 강물이 지나갑니다. 강물이. 강물. 여러분들은 수륙재를 지내면서 우리나라 강물 지날 때, 이 주위에 서울 주위에 있는 산하 모든 산들에게 “하. 산이여 고맙습니다. 강물이여 고맙소.” 저 미얀마나 저 태국이나 이런데 있는 강물들은 티벳에서 나와서 중국을 거쳐오기 때문에 중국에서 막아버리면 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물 없어요. 죽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강물은 한강도, 낙동강도, 섬진강도, 백마강도, 전부 다 우리나라 안에서 강물이 생깁니다. 그거는 아마 인류의 그런 큰 복이 없어요. 다른 나라가 다 죽어가도 우리나라가 희망적인 건, 산과 강물이 우리나라 안에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은 내가 강물을 지나왔는데, 한강을 지나왔는데, 오늘 오후에 법문 끝나고 가다 보면 한강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어? 그러니 잘못된 거예요. 내가 본 강물은 벌써 바다로 흘러가 버렸어요. 이젠 내 평생 못 봐요. 내 평생 못 봐. 여러분들 금방 오전에 본 강물은 바다로 흘러가 버려서 손도 씻을 수 없고 평생 볼 수가 없어요. 없어져 버렸어요. 인정하지요? 여러분들. 아 이제 박수 치지 마라. 시간 없어. 박수 칠 시간이 없어. 그러면 여러분들이 본 강물만 지나가 버리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 남편, 가족들, 산들, 전부 다 보는 찰나에 태양 둘레를 돌고 있기 때문에 지나가 버립니다. 가슴 아팠던 일, 속상했던 일, 억울한 일, 다 지나가 버린 강물인데, 어디만 남아 있습니까? 내 기억에만 남아있습니다. 내 기억에만. 기억이 곧 대상이오, 생각을 일으키게 만듭니다. 그러면 그 대상에서 그 대상이 오온이 개공이다. 공하다는 것만 여러분들이 알아버리면 내 마음 안에 있는 미운 마음, 원망하는 마음, 이게 다 공인데, 지나가 버린 강물인데 나만 괜히 붙들고 있구나, 지나가 버려서 없는 것을 마음에만, 기억력에만 붙들고 있는 걸 뭐라고 한다고요? 번뇌망상이라고 한다. 우리들 생각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중생들은 그 번뇌망상 생각을 나라고 하기 때문에, 생각에 따라다니는 것을 생사윤회라고 한다. 오늘 진관사에 동참하신 모든 영령들이여.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 생각의 감옥을 벗어나서 공성으로 돌아가는 길로 갈려면 오온이 개공이다 하는 걸 알아야 되는데, 금일 영가여. 여기 지금 여기 물이 있습니다. 물. 물이 있어. -법문이 시원찮다고 시원한 물 준 게 아니라, 따뜻한 물을 줬어. 따뜻한 물이 있는데,- 우리가 볼 때는 이걸 물이라 그러죠. 영가들은 물이 뭐로 보입니까? 불로 보입니다. 불로. 물고기는 뭐로 보입니까? 허공으로 보입니다. 물고기가 물이 눈에 보이면 헤엄을 못 칩니다. 여러분들도 허공이니깐 하지, 산소 분자, 수소 분자가 다 눈에 보이면 우린 못 다닙니다. 고로 ‘생각이 우리를 움직이고 있구나.’ 그 생각에 끌려다니는 것을 생사윤회라고 하나니, 금일 영가여 인간들은 이걸 물이라고 합니다. 물. 그러나 부처님은 물은 없다. 죄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 물이 왜 없다 그러냐면은 여기 영하 10도나 영하 15도, 영하 5도쯤 되면 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뭐가 돼요? 물은 죽어버리고 얼음이 태어났죠. 그러면 또 오늘처럼 따뜻한 기운이 오면 얼음은 죽어버리고 물로 태어났죠. 100도 이상이라고 하는 인연이 오면, 이건 뭐가 됩니까? 수증기가 됩니다.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금일 영가여, 물이 없어서 공이 아니고, 물은 있지마는 인연의 주위의 온도가 영상이냐, 영하냐, 100도냐, 주위 인연에 의해서 얼음이 되기도 하고, 물이 되기도 하고, 수증기도 되니까, 물과 얼음과 수증기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주위 인연이 이렇게 태어나고 멸하는 것이다. 금일 영가여. 그렇다면은, 아 박수치지 말라고 하니까. 박수 칠 시간이 없어. 지금 시간이 빡빡하거든. 그러면 인연이 생하고 인연이 멸하는 것을 옛날에는 존재라 그랬는데 존재, 있다, 이거다, 저거다 물체라 그랬는데, 아인슈타인 박사의 상대성 원리만 가더라도, 괴테의 하나에만 가더라도 존재는 없다. 원자의 배열이 있을 뿐이다. 즉 관계만이 있다. 관계. 요 물 하면 H분자 2, O분자 1, 서로 관계를 맺어있을 뿐이지, 관계가 뭡니까? 인연이란 말이야. 인연. 여러분들 부처님께서 인연법을 설해 준 부처님 법이 그렇기 때문에, 인연에 의해서 생각하고 인연에 의해서 멸하기 때문에, 인연법에는 죄니 죄 아니니 둘이 아니다. 부처님의 이러한 가르침은요, 금일 영가 등이여, 당신이 어디 있어도 부처라고 하는 말이니, 그런 까닭으로 수륙재에서 오늘 염불하는 염불의 가장 중요한 염불이 주로, 여 수륙재 진관사에서 하는 스님들 보면은 염불 소리가 보통 맑은 게 아니에요. 계호 스님이나 법해 스님이 어디 가서 그런 분들을 모셔왔는지 몰라도, 그리고 저 양반들은요, 우리나라의 법사도 일류법사만 모셔와요. 일류법사만. 응 그러는데, 그런데, 그러면, 그분들이 오온개공 인연법을 해주는데, 영가들에게 뭐라 하는 줄 압니까. 영원담적((靈源湛寂)하야 무고무금(無古無今)이다. 그건 바로 함허득통선사께서 하신 말씀인데,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천년이 지났어도, 즉 우리나라 단군조선 이래로 이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쳐서 천년이 지났다 하더라도, 금일 영가여, 바로 지금이며 앞으로 만년이 지나간다 하더라도 바로 이 허공이다. 진관사를 감싸고 있는 허공은 신라 때 허공이나, 고려 때 허공이나, 지금 허공이나, 말년 허공이나, 내내 이 허공 이 자리다. 지금 이 자리를 영원담적 무고무금 묘체원명(妙體圓明)하야 하생하사(何生何死)냐. 아까도 금방 화냈던 감정이 어떠한 물건이냐. 그러면 그 물건을 우리는 오늘 어떻게 모시고 갈 거냐 하면은, 내 몸뚱이가 나라고 생각할 때는 태어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지만, 제가 사진 찍는 걸 몹시 싫어하거든요. 신도들이 와서 사진 1장 찍자면 “아. 나 사진 찍는 거 싫어한다고.” “왜 스님 사진발도 잘 받던데 왜 그래 안 찍습니까?” 그러면 내가 방긋이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몹시 기분 나쁜 날 인상 쓰며 봐도 혼자 웃고 있어, 저 자식이. 사진은 말이야. 그러죠. 몹시 인상을 꽉 쥐고 사진 찍어놨는데 기분 좋아서 봤는데, 지 혼자 인상 쓰고 있어. 내가 아니라는 얘기야. 어제까지 나는 이미 죽어서 없는 겁니다. 지금 이 자리만 납니다. 눈 온 들길을 걷는 나그네요. 눈이 하얗게 온 길을 우리는 걸어가고 있거든요. 반듯반듯 걸은 사람 발자국이 어떻게 찍힙니까? 반듯반듯하겠지. 빼딱빼딱 걸어간 사람은 그러면 돌아가서 그 발자국을 고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제로 못 돌아가요. 여러분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루하루 삶이 천금 같은 삶이에요. 하루하루 삶이 부처의 삶이 돼야 된다는 얘기요. 그러면 <눈 온 들길을 걷는 나그네여, 갈팡질팡 걷지 말아라. 오늘 그대의 발자취는 영원히 내 이정표이니라.> 그러면 빼딱빼딱한 발자국을 어떻게 할 거예요. 그 죄업을 어떻게 할 거냐 이 말이에요. 그건 고칠 수가 없는데 돌아가서 오늘부터 반듯반듯 걸어버려라. 걸어온 것을 생각할 게 아니라 내가 걸어갈, 가는 것만 반듯반듯 걸어가서 한참 가서 돌아보면 반듯반듯한 발자국만 보인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 법의 희망이오. 바로 우리가 부처의 길인데, 그럴려면 내 마음을, 안에 있는 번뇌망상 지나가버린 강물이라는 걸 알고, 내 안에 있는 모든 생각이 내가 아닌 줄을 알고, 그 생각 일어나기 이전에 참생명인 참나는 누구인가. 금일영가 등이여. 여 모든 신도들은 돌아가신 전몰장병과 우리 선망부모를 위해서 이 수륙재를 지내는데, 이 앞에 계시는 회주 스님이나 주지 스님이나 나는 영원한 생명, 당신들이 있어서 이 나라가 있었고, 당신들이 있어 우리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와 당신은 한 몸입니다. 인간과 자연은 한 몸입니다. 그럼 그 한 몸으로 알고 그 길을, 가는 길을 태어나도 태어난 바가 없고, 죽어도 죽은 바가 없다. 태어남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은 인간들 감정에만 있는 일이니, 그 감정을 벗어나 가지고 텅 빈 본래 참생명을 볼려면, 다만 다만 헛된 망상 번뇌만 놓아버리라. 부처를 새로 만들어서 보는 것도 아니고, 없는 걸 구하는 것도 아니고, 구름만 걷어버리면 영원한 광명이다. 자 금일 영가등이여. 구름이 뭡니까? 미운 마음, 원망하는 마음, 이건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여러분들 생각해봐요. 나는 생긴 거는 거울을 보면 그렇게 안생겼는데, 초등학교 다닐 때 왜 그렇게 여학생들 고무줄 놀이 하는 거를, 면도칼을 숨겨 다니려면 그거 보통 일이 아니거든, 그놈을 숨겨 가지고 와서 그놈을 자꾸 끊었어, 자꾸 끊었단 말이야. 그러니 그러면 고무줄 끊긴 그 여학생들이 날 보고 속으로는 저 똥물에 튀긴 튀김 같은 새끼, 저거 별별 욕을 다 했을 거 아니여. 그리고 남자들끼리 구슬치기 해서 잃으면 울고 그랬는데, 그게 아픈 상처로 있습니까? 아름다운 추억입니까? 아름다운 추억이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지금 그렇게 힘들고 그렇게 역경이라고 하는 것도 지옥중생이 보거나 고통받는 중생이 볼 때는 너무나 아름다운 세계고, 너무나 좋은 세계고. 그러나 부처님의 새겨볼 때는 지옥중생의 생각이나 인간의 생각이나 영가들의 생각이나 공에서 나온 파장이다. 공을 깨달아라. 공을 깨달으려면 공이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거기에 구름만 걷어버리면 되는데, 그 구름이 우리 생각이다. 우리 생각을 걷어 버리는 것을 염불이라 그러고, 절이라 그러고, 참선이라 그럽니다. 나는 참선을 전공한 사람이니까. 여러분들 하나 물어봅시다. 10년 후에 우리나라에 무슨 일이 생겨요? 10년 후에. 아 모르잖아. 얼른 모른다고 해야지, 모르잖아. 몰라. 전생 어디서 왔어요. 알아? 몰라? 그럼 모르는 게 나라는 거예요. 모르는 게. 모르잖아. 모르는 게 나에요. 우리 알고 있는 건 전부 다 금생에 와서 교육의 나요. 그건 내가 아닙니다. 비교와 투쟁과 싸움의 나요. 그러면 모르는 대로 돌아간다는 말은, 안다 모른다는 상대성이 아니고, 청정으로 돌아가는 내 참생명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Oh, we don’t know. 모를 뿐인 그놈을 딱 잡고 있을 때 그게 바로 청정이요. 그게 바로 내 생명이라 이 말이여. 그러면 그것을 할려면은 여러분들이 인제 직접 오늘 가서 수륙재를 지내야 됩니다. 이 진관사에서 해마다 수륙재 한번 지내는 거요, 우리는 잠깐 와서 법문하고 가면 그만이에요. 회주 스님이나 주지 스님이나 주위 스님들은 요거 끝나면 뒷날부터 다시 시작해요. 뒷날. 1년을 준비한다고, 1년을. 이거 아무나 못 하는 거예요. 정말 고맙게 생각해야 돼, 이건 나라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요. 옛날에는 국행이니까 나라에서 임금이 하지만, 지금은 민주주의니까 전 민주가 국민이 주인이니까, 전국민이 해야할 걸 진관사에서 해마다 해 주는 거예요. 그러면 진관사에서 하는 그것이 인간들끼리도 평등이 아니라 새들도, 모든 노루도, 새들이 없어지면 열매를 먹어서 똥을 안 싸주기 때문에 나무들이 자라나질 않고, 짐승들이 없으면 하나만이라도 없어도 우리는 다 죽습니다. 벌이 다 죽어버리면 아인슈타인 박사는 4년인가 8년 만에 인간은 전멸을 할 것이다. 다 죽어가고 있잖아요. 아, 수륙재라는 건 벌도, 토끼도, 노루도, 새도, 온 생명이 다 부처생명 하나구나. 이건 유네스코가 아니라 무네스코까지 올라가야 돼. 그러면 그러한 수륙재가 여러분들이 집에 가서 직접 오늘부터 삶이 될 때, 그 수륙재는 살아있는 수륙재가 되고, 내년에 또 수륙재 안 하나 기다리는 수륙재가 된다 이 말이야. 그럼 어떻게 할 것이냐. 여러분들 가족들이 마음대로 됩니까? 안됩니까? 절대로 안됩니다. 왜 안될까요? 내 몸뚱이도 내 마음대로 안 돼요. 내가 13살에 해인사에 출가했어. 지금 65년째예요. 내일모레 80인데. 해인사에 곧 들어와서 가사장삼 있고 왔다 갔다 하면 이 앞에 계시는 저 주지 스님만한 스님들이 내 볼때기를 이렇게 만지면서 “아이고 동자스님 귀엽다”고. 지금 귀여워? 다 늙었잖아. 늙지말라면 늙어? 안 늙어? 아프지 말라면 아파? 안 아파? 죽지 말라면 뒤져? 안 뒤져? 죽죠. 그럼 내 몸뚱이가 내 마음대로 돼? 안돼? 내 몸뚱이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왜 남편은 내 마음대로 되기를 바랍니까. 내 몸뚱이도 내 마음대로 안 돼, 왜 부인이 가족이 내 마음대로 되겠냐 이 말이에요. 그래서 부처님은 이 세상이, 가족이 내 마음대로 되려면은 바다가 되어라. 한 방울 물이 영원히 마르지 않는 길은 바다에 떨어지는 길이다. 그런 까닭에 이제 오늘 오신 영가들 중에 시를 좋아하는 영가들을 위해서 제가 좋아하는 시를 하나 읽어드리고 결론을 내겠습니다. 괴테라고 하는 시의 성인이 지금 지구상에 살아있는 사람은 80억 정도가 된다 그래요. 80억 이 지구에 와서 죽어간 사람은 몇 명이나 된답니까. 탤런트 이름은 잘도 아는데 그런 건 몰라, 몰라. 천억 하고도 60억이 넘어간대요. 돌아가신 분이. 그럼 그분들 인적사항을 전부 다 슈퍼컴퓨터에다가 집어넣으니까, 제일 천재가 괴테가 나왔답니다. 괴테. 두 번째가 아인슈타인. 그럼 그 괴테가 법화사상, 수륙재 사상이라는 걸 뒤늦게 경전을 보고 나서,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하는 이 어른이 온 우주를 한 방으로 만들어 버렸고, 한 생명으로 바꾸나 하고 너무 감동을 받아서 시 성인이니까 <하나>라는 시를 지었어요. 진관사에 오늘 오신 모든 영령들 영전에 당신들 가족들을 대신해서 내가 <하나>라는 시를 올립니다. <하나>. 모든 것이 제멋대로 구르는 듯해도 사실은 하나로 얽혀 있다네.우주의 힘이 황금종을 만들어 이들을 떠안고 있구나. 하늘 향기 은은히 퍼져 나가니 지구가 그 품에 떠 안기도다. 모든 것이 조화로이 시간과 공간을 채우누나. 휘몰아치는 생명의 회오리 속에서 나도 파도도 다 함께 춤춘다. 삶과 죽음이 있건만 영원의 바다는 쉼 없이 출렁이누나. 변화하고 진동하는 저 힘이 내 생명의 원천. 오늘도 먼동이 트는 아침에 나는 거룩한 생명의 옷을 짜노라. 저는 이 시를 아주 좋아하는데, (박수)그러면 아 거 참 말 안 듣네. 그러믄 우리가 생명을 우선 짜러 가자 이 말이오. 어떻게 짜요. 오늘 집에 가서 내 몸뚱이도 내 마음대로 못하면서 내 가족을 내 마음대로 되기 바라는 욕망을 오늘 진관사에 놔두고 가자. 수륙재 지내주시는 스님 고맙습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불만과 불평과 모든 것이 지나간 강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이미 없어져 버린 걸 나만 붙들고 있는 이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겠습니다. 그걸 무명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그러면 두 번째는 그러한 마음이 빈 공간이 생기려면은 내 안에 불평불만 번뇌망상과 부처가 둘이 아닌 불이법을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이 알고 가셔야 됩니다. 여러분들 바다 알죠, 바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가 있다는 게 이게 굉장한 복입니다. 삼면이 바다라는 게. 앞으로 두고 보면 알아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가 이상기후가 돼서 아주 힘들어져도, 우리나라는 희망적이에요. 그리고 희망적으로 보면 희망적으로 변하는데, 휴거인가 거휴인가, 무슨 맨날 종말이나 이런 거 말하는 그 큰일 나는 소리여. 우리나라는 희망적이거든. 그러면 바다에 가보면 파도가 일렁일렁해요? 안 해요? 그 파도를 우리 번뇌망상, 번뇌라 그래요. 번뇌. 바닷물을 우리 참생명 마음이라고 그래요. 그러면 번뇌망상이 싫다고 파도를 다 걷어내 버리면 바닷물이 남아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져요. 부처도 없어져 버려요. 그래서 부처님이 거룩하신 것은 수륙재가 거룩한 것은 파도를 없애고, 당신들 마음의 한을 없애버리려고 하지 말고, 한 생각 돌려서 바람만 잠자면 파도는 뭐가 된다고? 바닷물이 된다고. 바람만 잠자면 번뇌망상은 부처가 된다고. 당신들 한 맺힌 마음이 한 생각 수륙재가 되면 부처라는 것을 확인하니, 여러분들이 집에 가 가지고 “아휴 나는 안 돼. 나는 이렇게 모든 게 부정적으로만 생각돼, 우울증은 왜 이렇게 와”, 싫어할 게 아니라 “아 이것이 나를 오늘날까지 이끌고 왔구나. 나도 수륙재를 지내자. 어이 내 안에 있는 못된 성깔머리, 어이 번뇌망상, 우리 부처 한번 안 돼 볼래? 나무아미타불 부르는 이놈이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뭣고.” 모르는데 쏙 들어가면 그것이 안 되는 사람은 진관사 법당에 와서 떡하니 마음 안에 있는 번뇌망상 땅바닥에 내려놓고 큰 생명을 떡 떠받들고 절을 하면 108배가 얼마나 아름답지 않느냐며, 수륙재가 얼마나 우리가 공덕을 짓는 일인 걸 알게 된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오늘 수륙재를 지낸 분들은 집에 가서 내 마음 농사를 내가 어떻게 짓고 있는가. 밭에다가 콩을 심으면 뭐가 나요? 보리를 심으면? 알기는 아는구만. 그래도 알기는. 그러면 우리 마음밭에 한번 남을 미워하면 그 씨앗은 심어집니까? 안 심어집니까? 짜증나고 죽어버리겠다면 그 씨앗은 심어져요? 안 심어져요? 마음밭에는 그보다, 밭에 심는 것보다 70배가 더 정확하게 심어집니다. 아, 내가 한 생각 한 생각 하는 게 내 마음밭에 그대로 씨앗이 심어지고 있으니, 모든 불보살님은 씨앗을 두려워하고 모든 중생은 열매만 찾는데, 씨앗 없는 열매는 있을 수가 없다. 오늘 나는 무슨 씨앗을 심고 있는가. 수륙재의 씨앗을 심어서 살생하지 말아라. 내가 곧 부처임을 알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을 참으로 수륙재를 봉행하는 길이더라. 모두 다시 한번 합장을 하십시오. 자 여러분들 지금 이번 합장하는 것은 여러분들 낳아준, 여러분들 웃대 조상 조상 조상 조상 조상 올라가서 수천 대 100대 중에 할머니나 할아버지 한 분만 없으면 여러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기 모여든 모든 영가가 다 우리 부모입니다. 다 조상입니다. 정말 그렇거든요. 그것은 과학이 증명을 하고 있어. 그리고 지금 이 청해 모신 모든 전몰장병, 공무원들 아까 주지스님이 소방관들 경찰관들 그분들을 위해서 축원해 주십시오. 참 고마운 말이다. 여기서만 하지 말고 내가 집에 가서도 해야겠구나. 그러면 그분들 그러한 선망부모 그분들 위해서 나하고 같이 이제 축원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합장을 하십시오. 원컨데는 진관사 수륙재를 지낸 공덕파도가 바람만 잠자고 나면 바닷물이 부처가 된다는 이러한 인연법의 수승함이여 금일 모든 영가들이 제법은 종연생이요(諸法從緣生) 제법은 종연멸이라(諸法從煙滅)인연법을 깨달아서 수륙재의 공덕으로 왕생극락하시고 라라리라라 라라리라라 태평가를 부르시어 이 나라가 평안하고 남북통일이 오고 세계의 모든 분쟁이 멈춰서서 세계평화 이뤄지이다.나무아미타불 수륙재 지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마음으로 고마움을 드리며, 오늘 법문을 모두 끝내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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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8월 18일 백중회향 법문
회주 계호스님 2024-08-18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하는 얘기는 <편안하십니까> 하는 의미도 되고요. 우리가 보통 인도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나마스테>라는 말 들어보셨죠? 이 나마스테라는 말은 <당신 안에 있는 영성을 영원히 존중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여러분들을 존중하겠다는 의미예요. 그동안 편안하셨죠? 네. 오늘은 정말 좋은 날입니다. 무슨 날인지 아시죠? 그동안 지장기도를 하면서 49일간 조상영가 천도를 지내는 회향날이기도 하고요. 사실은 전국 각지의 선방에서 스님네들이 3개월 동안 수행, -마스크 좀 벗겠습니다. 이상 기온이 들어가서 요새 가끔 또 저희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왔는데, 저는 여러분들을 믿고 마스크를 벗겠습니다.- 그래서 3개월 동안 회향하는 날이기도 하고, 수행정진하면서 오늘은 스님네들이 발로참회(發露懺悔)하는 자자일(自恣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전국 각지에서 49일 지장기도하면서 회향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이렇게 지장기도를 한다든지, 기도를 한다는 것은, 기도라는 건 사실은 치유예요. 성취 기도하고 내 몸 안에 있는 업장 소멸하는 그 바이러스를 막아주는 백신이기도 합니다. 꼭 백신만이 백신이 아니라, 이 기도도 하나의 백신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오늘 진관사는 정례된, 갖추어진 우리나라에서도 정말 몇째 안 가는 사찰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죠? 몸으로 느낄 거예요.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같이 느끼면서, 마음으로, 몸으로 느끼면서 기도를 하면 그 기도가 바로 가피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정말 이렇게 좋은 날, 옛날에는 지장기도 백중날은 지옥문이 열리는 날이라고도 했습니다. 보통 일백 백자에다가 가운데 중자 써서 백중(百中), 그다음에 가지 종자를 써서, 100가지 여러 가지 이제 과일이나 채소를 올린 데서 백종(百種)이라기도 하고, 또 무리 중자를 써서 자자일을 한다는 데서 백중(百衆)이라기도 하고, 또 중원(中元)절이라기도 하고요. 우란분절이라기도 해요. 그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는 말은 구도현(救倒懸)이라 해가지고, 거꾸로있는, 모든 지옥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들을 구제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란분절이라기도 해요. 그래서 우리가 보통 백중, 우란분절 하는 얘기는 보통 불설 우란분경에도 있고요, 목련경에도 있는데요. 부처님께 10대 제자가 있는데, 신통제일이 누군지 아세요, 혹시? 목련존자예요. 이 목련존자가 사실은 출가하기 전에는 큰 부잣집 아들이었었어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 이름은 청제부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이제 죽 여러 나라를 무역하러 다니면서 어머니에게 부탁했어요. 세 가지를 부탁했는데, “3분의 1은 사업하는 데 쓰시고, 3분의 1은 대중공양하시고, 3분의 1은 놔뒀다가 좋은 일을 하는 데 쓰십시오.”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청제부인은요, 좀 탐심이 많고 간탐이 많은 아주 좀 포악한 보살이였던가 봅니다. 그러니까 스님네들이 혹시 시주하러 오면은 스님네들에게 구업을 짓고, 거기다가 악업도 짓고, 욕도 하고, 뭐 못할 행동을 다 하는 거예요. 그리고 주위에 있는 가축이나 뭐 여러 가지 짐승들에게도 못된 짓만 했어요. 그래서 딱 와서 보니까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나중에 이제 자기가 그 사실을 알고서는 “난 이렇게 허망하게 살면 안 되겠다. 출가를 해가지고 스님이 되야겠다.” 해가지고 부처님 제자가 돼서 신통제일 목련존자가 됐습니다. 자기 어머니가 어떤 상황에서 돌아가셨나 하고 가늠해 보니까, 어머니는 말도 못하게 욕심쟁이인데다가 아귀보까지 받았어요. 그래서 어머님을 구하기 위해서 발우에다가 밥을 들고 쭉 이렇게 갔는데, 밥이 막 활활 불타가지고 먹을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신통제일 목련존자이지만, 자기도 어찌할 수 없어서 부처님께 가서 다시 여쭈어봤습니다. “저희 어머님이 이렇게 악업을 짓고 악한 짓을 많이 하다가 죽어가지고 아귀보를 받아 이런 상황인데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여쭤보니까, 부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무리 좋은 공양이고, 좋은 거라고 해도 혼자 힘으로 하기에는 불감당이다. 그러니까 시방에 있는 모든 스님네들을 모셔가지고 대중공양을 해가지고 어머니에게 좋은 일을 좀 하게끔 보살펴서 공양을 하라.”고 이제 부탁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 목련존자가 모든 스님에게 대중공양을 했어요. 그러다 나중에 어머님이 그 나쁜 그런 악업덩어리는 다 없어지고, 부처님의 말씀대로 공양을 하고 나니까 어머님이 좋은 몸을 받아가지고 천상보를 받았다는 그런 불설 우란분경에 나오는 내용들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매번 법문을 다 들으셨을 거예요. 매주. 또 좋은 스님, 또 모든 사람들한테 법문도 너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듣는 것 가지고는 이게 족하지 않으니까,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은, 뭐 하는 게 제일 중요한 거예요? 실천을 해야 되겠죠. 이걸 가지고서 우리도 실천하고, 오늘 이렇게 대중공양도 받았는데, 우리가 해야 할 네 가지 의무가 있어요. 첫째는 예경해야 되고, 예배해야 되고, 참회해야 되고, 공양해야 됩니다. 예배라는 것은 모든 부처님에게 나의 모든 업장 소멸을 향해서 나의 높은 것을 절하면서 업장 소멸의 예배를 하고. 또 모든 사람을 함부로 하지 않는 공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돼요. 공경의 마음은 뭐가 깃들어져 있냐면 하심(下心)이 깃들어져 있어야 돼요. 하심 아시죠? 자존심을 세우는 게 아니에요. 내 마음을 낮춰가지고, 모든 사람이 법화경의 상불경 보살 아시죠? 상불경보살님이 ‘모든 분이 다 부처님 되실 분이니까 나는 그분들을 함부로 하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하듯이, 부처님을 공양, 공경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부처님에게는 삼배는 아니래도, 이렇게 멀리서 보면 스님을 피할 게 아니라, 어떤 때는 고개도 까딱거리기 싫어가지고 저리로 피해가는 분들도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진관사 신도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외부에서 온 분들은 스님네를 살짝 피해가지고 고개 돌리고 가는 분도 있지만은, 저는 그래요, 누구를 만나든지 저두(低頭), 저두라는 건 몸까지, -이렇게 오체투지하라는 건 아니에요.- 몸을 낮춰서, 자기의 몸을 좀 낮춰서 하심하는 자세를 보이면, 상대방도 ‘스님네들이 우리한테 이렇게 저두를 하시는구나’ 하는 걸 느낄 거예요. 그러니까 같이 이렇게 저두하면서 보살들끼리 만나도 저두 해야지, 원수 만나듯이 막 하면 절대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청소년이고, 학생회고, 청년회고, 신도님이고, 거사님이고 할 것 없이 다 이렇게 예배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갖추고 있어야 돼요. 그리고 공양이에요, 또. 기도하는 것도 공양이고, 예배하는 것도 공양이고, 아까 이렇게 물질적으로 공양도 공양이지만, 내 마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존경하는 마음 가지는 것도 공양으로 보셔야 돼요. 아시겠죠? 그래서 공양의 의미는 꼭 법공양만이 공양이 아니다. 물질적인 공양, 또 모든 사람에게 내 마음속으로 공양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도 공양이에요. 여기서 오늘 보니까 우유공양, 과일공양, 법공양, 생수공양 다 공양이 많죠. 그것도 다 공양에 들어가지만, 내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는 공양도 정말 진공양이다. 그런 공양을 하고, 그다음에 찬탄도 들어가요. 아까 예배, 공양, 찬탄, 공경이라 그랬죠. 참회도 들어가지만, 찬탄 속에는 다 참회가 다 들어가는 거예요. 남을 존중하면서 항상 그 사람을 보면 좋은 마음 내고, 좋은 말을 하는 거. 깎으려고 하지 말고, 그 사람의 좋은 점만 보시면 돼요. 장점만. 단점은 보지도 마세요. 자기한테 보이는 마음은 참 이렇게 풍부하게 하는데, 남한테 말하는 건 인색하게 하는 게 우리 보통 일반 사회 사람들의 상식적인 마음인데, 기도를 하고, 이렇게 49일 기도하고, 천일기도, -63년도부터 저희 은사스님이 오셔서 천일기도가 안 끊어졌다 했잖아요.- 그 기도하는 분들은 항상 마음이 예배, 공양, 공경, 찬탄, 네 가지를 의무적으로 하셔야 돼요. 네 가지. 예배, 공경, 찬탄, 마지막 뭐예요? 공양. 예경, 예배, 찬탄,공양이에요. 이건 기본적으로 행하셔야 됩니다. 불자들은 그러니까 마음속으로 남한테, ‘나는 누구한테 찬탄해야 되겠다.’ 찬탄을 말로 하는 건 아니에요. 그 사람을 덕스럽게 해주면 그게 다 공덕이 되고. 박복한 사람은요, 무조건 깎아내리려고 헤요. 싸움할라 그러고, 시비할라 그러고, 그러니까 제가 그랬잖아요. 좋다, 맞다, 옳다, 마지막 뭐까지? 맛있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뭐 상을 하나 줘야 되는데 무주상 보시인데, 상은 없습니다. 그래도 칭찬하는 공양이에요, 저도.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항상 누구를 보든지 마음속으로 환희심을 내면서 자비로운 마음이 몸에 배어 있어야 돼요.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자비심만 있어야지, 노인네들이 막 이러면 손자들도 안 따라요. 자식들도 안 따라요. 이 나이 많은 사람은요. 항상 뭐를 가지고 있어야 되냐. 돈을 좀 가지고 있어야 돼요. 제가요. 우리는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했는데, 저는 <돈 보기를 공양금으로 봐라.> 왜냐하면은 이걸 가지고 있어야지, 누구든지 보면, 손주들이 오면, “너 공부 잘했다” 하면서 조금씩 주고, 또 자식들이 오든지, 옆집 이웃에 누가 오더라도, 봉투를 조금. 공양 중에 봉투 공양도 좋아요. 아까 심적인 공양도 좋고, 마음 공양도 다 좋지만, 봉투 공양도 보통이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항상 지니고 다니면서. 어떤 사람은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현금 필요 없어 카드만 가지고 있으면 돼.’ 카드를 쪼개서 줄 수는 없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요새 너무 삭막해 가지고 카드 들고 다니는데, 저는 옛날에 카드는 진짜 보기도 싫었는데, 요새는 왜 그렇게 카드가 편한지 모르겠어요. 그런데도 현금도 가지고 있을 때는 가지고 있어야 돼요. 카드로 불전 못 넣잖아요. 그죠. 현금도 좀 가지고 있으면서 공양도 좀 하시면 그것도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기도회향 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예배, 공경, 찬탄, 공양, 이걸 우리는 의무적으로 한다는 생각을 꼭 가지고 있도록 하세요. 그러면 그게 바로 기도 성취예요. 기도는 다 끝난 거예요. 더 할 거 없어요. 옛날에 부처님께서도 죽림정사에서 지낼 때, 대나무 하나 꽂아놓고 불사 마쳤다라고 하듯이 그렇게 하면 다 그게 공양, 공경, 찬탄이 되는 거예요.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들은 항상 찬탄해야 되고, 공양해야 되고, 공경해야 되고, 예배해야 되는 거. 그 모든 사람에게 존중하는 것도 예배예요. 부처님한테 예배하는 것만이 예배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네 가지를 한다고 그랬어요. 뭔지 아세요? 다시 한번. 다 같이 크게. 예배, 예경, 찬탄, 공양. 그러면 다 끝난 거예요. 오늘 기도도 여러분들이 너무 기도를 신심껏 하니, 저는 앉아 있으면서 제가 괜히 환희심이 나는 거예요. 같이 수희찬탄하는 거예요. 보현보살, 저희 스님께서 보현행원품을 한다 했잖아요. 거기 수희찬탄품이 나와요. 그렇듯이 항상 모든 사람에게 찬탄하고, 공양하고, 공경하고, 예배하면은 그 사람은 정말 진정한 불자예요. 보살이 따로 없어요. 여기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만이 보살이 아니에요. 집안에 계시는 부처님도 남편도 보살이고, 자식도 보살이고, 다 보살이에요. 그런 말 들으셨죠? 큰스님네들이 옛날에 그러셨죠. “집에 부처님을 잘 모셔라.” 집에 부처님은 뭐예요? 보살한테는 거사님이고, 거사님한테는 보살이고. 다 그분들이 다 부처님이에요. 모든 사람을 부처님처럼 보지 않기 때문에 시시비비가 일어나는 거예요. 너는 너다 나는 나다. 너는 학생이다. 너는 청소년이다. 너는 누구다 하니까, 딱딱 분별을 지으면 이게 분별이 생겨가지고 집착이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걸 다 떠나서 제가 육비탕 얘기했죠. 6가지. 처음에 뭐냐 하면 신심, 묵언, 무집착, 여유, 부동심, 마지막 인내. 인내란 말은 인욕이에요. 오늘 여러분들이 저희들한테 보시했잖아요. 대중공양하셨잖아요. 승보 공양했잖아요. 승복 공양도 되고, 가사 공양도 되고, 여러 가지 공양이 되는데 저희들한테 공양해 주셔서 저희들은 그걸로 삼아서 열심히 수행 정진하고. 앞으로 진관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불교뿐만 아니라 세계 불교가, 요새는요. 그냥 세계일화라는 말 들어봤죠. 너와 내가 하나예요. 그러니까 우리나라만 최고다하는 그 생각도 버리시고, 다 똑같이 행복하고 편안하고. 아까 그랬잖아요. 안녕하십니까 할 때 나마스테가 돼야 돼요. 내 안의 영성을 존중합니다. 존중해 줘야 돼요. 존중 안 하니까 무시하고 시비하고 싸움하고. 그런 것조차 없어야 돼요. 그러니까 저는 항상 모든 생각이 긍정적인 맞다, 좋다, 옳다, 맛있다까지 하면은 시시비비 할 게 없는 거예요. 이렇게 더운 날 기도하느라고 너무 애썼고, 지장기도 하느라고 애썼고, 또 여러분들도 기도하느라 애썼으니, 우리 다 같이 크게 박수 한번 쳐보세요. 저는요. 책을 보다가 원철스님 책을 보면 왜 그렇게 즐거운지 모르겠어요. 거기에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얼음의 끝자락이 계속 자라면 그게 뭐예요? 겨울이잖아요. 얼음의 끝자리에 계속 자라면 얼음이 자라면 겨울이잖아요. 물이 조금씩 평수를 넓혀가면 그건 뭐예요? 봄이잖아요. 그 말이 저는 너무 와닿더라고요. 봐요. 얼음 끝자락이 계속 자라면 겨울이다. 얼음, 다 같이 한번. <얼음 끝자락이 계속 자라면 겨울이고, 물이 조금씩 평수를 넓혀가면 봄이다.> 봄과 겨울의 의미를 이제 아시겠죠? 저는 거기다가요. <비는 여름을 쓸어내고, 바람은 가을을 실어 온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됐죠. 좋죠. 다 같이 우리는 부처님 되시고, 너도 나도 부처님, 마음길, 몸길 다 마음의 정원에 와서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마음의 정원이 혼자 있는 게 아니에요. 단수가 아니고 복수예요. 대중이에요. 대중 화합되는 거예요. 공부도 대중이 공부시켜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혼자서 공부하면, 집에서 혼자 공부한다, 기도한다 생각해 보세요. 졸음밖에 안 와요. 그렇지만은 이런 넓은 도량에 오셔서 천년 도량, 천일기도가 끊이지 않는 이 도량, 정말 예배, 공경, 찬탄, 공양이 항상 넘쳐나는 진관사 오면 너무 좋은 에너지만 생기는 거예요. 이런 에너지가 좋은 곳에서 기도하고 공부하면 100점 만점에 천 점이에요. 그렇죠! 다 같이 기도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정진합시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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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8월 11일 백중 6재 특강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 2024-08-11
<역사에서 길을 찾다>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좀 키높이라서 제가 앉아서 할게요. 이렇게 오늘 진관사에서, 또 이렇게 많은 신도님들 함께, 제가 갖고 있는 지식, 지혜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돼서 매우 영광이고요. 저는 물론 아까 말씀대로 기독교 신자, 이대는 기독교 신자만이 총장이 됩니다. 또 제가 이화여중, 이화여고, 이화여대 나오면서 그때부터, 중학교 때부터 신앙을 가졌는데, 우리 할머니는 엄청 불교 신자셨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 이제 경국사 많이 갔었고, 진관사도 또 따라왔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공부하는 게, 제가 유불선을 다 넘나든다 하는 게, 불교 천년의 역사, 유교 600년의 역사에서, 제가 세계유산 유네스코 유산을 사찰 7개를 만들었고, 서원 9개를 세계유산으로 만들고, 지금은 한지, 우리 종이, 불교에서 제일 많이 보존해온 전통 한지 또 유네스코 유산 만드는 작업을 하고, 그리고 이제 진관사 수륙재를, 아마 수륙재 때마다 제가 축사를 했는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만드는, -다 무형유산이죠,- 지금 작업을 하면서, 진관사를 자주 오면 일단 우리가 마음의 평온을 찾아요. 마음의 정원이라고 하시잖아요. 그리고 또 하나는 여기 보물이 여러 보물이 있는 중에 여기가 음식, 사찰 음식이 세계적이잖아요. 문화 도량이고 또 수륙재나 천년의 역사의 도량이고, 그리고 또 계율의 도량이에요. 회주 스님이 지난 6월달에 삼귀오계를 받으시고 계율의 도량이 되셔서, 저는 보물이 지금 우리 계호 회주 스님하고, 또 우리 법해 주지 스님이 엄청 똑똑하세요. 그러니까 스님으로도 훌륭하시지만, 아주 모든 지식이 해박하셔서, 제가 아주 함께, 지금까지 모든 일을 함께 하는데, 저도 응원하고 서로 응원하면서, 세상이 좀 지금 각박해지잖아요, 또 너무 도덕적인 게 없어지잖아요, 또 너무 마음이 편안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이제 앞으로 우리가 정말 그 슬픔, 상처받지 않는 그런 세상을 좀 만드는 일을 지금 같이 하고 있습니다. 오늘 그런데 이제 또 11시 반부터는 또 다른 행사가 있다 그래서 실제로 시간이 많지 않아요. 우리 교수들은 조금 시간을 많이 줘야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데, 시간을 딱 40분, 50분 하니까 제한이 되지만, 오늘 시간 되는 대로 이제 여러분들하고 좀 우리가 생각해야 될 역사 그리고 미래, 이거를 좀 나눠볼까 합니다. 우리가 흔히 <역사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이런 얘기하잖아요. 다 여러분들도 역사가 있고, 고향이 있고, 부모가 있고, 또 진관사도 역사가 있고, 또 흘러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구원하고 용서하고 배려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하면 다 제 이름이라 그래요. 제가 이배용인데, 이해하고 배려하고 용서하자. 그래서 제가 아마 진관사하고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그런 마음들을 우리가 함께 하기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맨날 미래를 걱정해요. AI 디지털, 또 요즘에 제가 국가교육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너무 학교가 황폐화돼 가요. 폭력이 난무하고, 아이들이 안전하지 않고, 또 선생님들은 존경받지 못하는 그런 풍토에서, 저는 학교는 정말 선생님이 존경받고, 학생은 사랑받고, 그러면서 학부모들이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그런 터전을 만들어줘야 돼요. 교육이 중심이기 때문에. 그럴 때 우리가 아무리 디지털 AI 시대라도 제일 찾아야 되는 게 인성이거든요. 인성이고 다 아이들이 하나같이 성장하는 걸 바라지, 불행하기를 바라는 학부모나 지도자는 없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우리가 걱정만 하지 말고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서, 마음을 모아서 해야 될 일이 무엇인가. 이제 불교의 영역에서도 하지만, 또 종교를 넘어서 우리가 함께 포용하고 감싸주면서, 우리의 내일의 길을, 우리의 선한 마음으로 영향력을 좀 미쳤으면 좋겠다. 착한 사람은 그래도 나중에 뭔가 보람을 얻게 됩니다. 착한 일. 제가 전통 유산을 사랑하는 거는 악하게 만든 건 다 없어져요, 어느 순간에. 사람들이 감동을 못하니까. 그러나 선한 마음으로 창조한 거는 지금까지 남아 있어요. 그래서 제가 그 뜻을 기려서 계속 지금도 전국을 다니면서 우리 문화유산을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길을 지금 놓고 있습니다. 바로 그 중심에 또 진관사도 함께 하시는 거죠. 우선 우리가 오래된 미래라고, 이제 리더들이 앞장서서 우선은 잘해야 돼요. 그러니까 진관사가 이렇게 지금 많은 분들이 찾아오고, 또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거는 우선 리더들이 잘하신 거죠. 백초월 스님이나 진관 스님이나 또 계호 회주 스님이나 우리 법해 주지 스님의 이 리더십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터전이 있어도 앞으로 이끌어 갈 수도 없고 그 뜻을 새길 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옛날부터 저는 많은 강연을 하면서, 크고 작은 곳에 리더는 있어요, 동아리조차도 회장이 있잖아요, 그럴 때 저는 제일 먼저는 시대적인 통찰력이 있어야 된다. 그렇잖아요. 우리가 어느 현상이 있어도 다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는 그런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이 있어요. 지금도 진관사, 오늘만 보면 안 되고, 얼마나 많은 그런 우리의 영혼들을 위로하는 국행 수륙재를 하신 곳이잖아요. 국가가 여기를 선양하신 곳이라. 그리고 역사를 알면 오늘날 우리가 세계화 시대에, 저는 이게 유엔 정신에 딱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면 우리가 미래는 어떻게 함께 풀어가야하나. 그런 시대적 통찰력이 있어야한다. 제가 역사에서 제일 높게 평가하는 분이 선덕여왕하고, 신라의 27대 선덕여왕하고, 조선왕조 4대 세종대왕을 보면 정말 이분들은 특출한 리더들이에요. 그런데 이 리더들이 제일 잘하는 건 사람 볼 줄 아는 거예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 혜안이 있고, 많은 후계자들을, 후배들 또 차세대들을 육성하신 분들이에요. 좀 이따가 이제 선덕여왕, 세종대왕 얘기를 집중적으로 하겠지만. 그런 시대적 통찰력은 우리가 오늘만을 사는 게 아니다, 내일에 우리가 디딤돌을 놔야 돼요. 아무리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씨를 뿌리고 가꾸는 마음을 우리가 잊으면 안 돼요. 그래서 역사는 긍정의 힘으로. 저는 삐딱한 사람 제일 싫어해요. 긍정하는 사람, 비가 와도 좋고, 해가 나도 좋고, 항상 감사할 줄 아는. 이런 것이 과거를 보면 감사하고 긍정하는 사람이 결과적으로는 승리를 했더라고요. 두 번째는 균형과 조화와 화합의 지혜예요. 리더는 강한 것도 약한 것도 큰 것도 작은 것도 헤아리고 아우를 줄 알아야 돼요. 다 다르잖아요. 지금 여러분들도 함께 오셨지만, 사정은 다 다르잖아요. 이런 데서 다 아우를 수 있는. 그래서 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하모니를 이룰 수 있는, 바이올린도 첼로도 플룻도 다 함께 그 아름다운 선율로 하모니를 이룰 수 있는 그게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거죠. 그래서 균형과 조화와 화합의 지혜. 그다음에 세 번째로는 도덕심입니다. 정직해야 되고. 요즘에 너무 내로남불. 도덕심이 땅에 떨어졌다는 그런 건 종교가 가르쳐줘야 돼요. 기독교든 불교든 종교는 도덕성을 가장 중요하게. 이따가 삼귀오계도 얘기하겠지만, 거짓말하지 말고 이거 제일 중요한 것이잖아요. 정직하고. 그래서 리더는 도덕심이 있어야 존경받을 수 있는 거예요. 나는 개차반같이 하고, 남 보고 존경을 해라 그건 아닌 거죠. 그런 데서 도덕심. 그리고 이제 네 번째는 애국심이, 요즘에 너무 우리가 나라에 감사, 나라를 지켜야 된다는 이런 것들이 너무 지금 약해지고 있는 거죠. 그런 데서 안 가르치니까. 애국가 4절, 아마 여기 진관사에 오신 신도님들은 애국가 4절은 외우리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행사 때마다 애국가 4절을 많이 함께 하자 그러면 다 당황해요. 다 못 외운다는 거예요. 일 절만 외지. 근데 우리가 어렸을 때 많이 불러서 그걸 부르는 거 하고, 그냥 애국가가 뭔지도 모르는 거 하고 다르잖아요. 이번에 올림픽 보세요. 금메달 따니까 막 태극기 올라가고, 애국가 하니까 얼마나 가슴이 울컥하고 정말 내 나라에 대한 자긍심이 있잖아요. 애국심이 바로 애민 의식, 우리 지금 국민이라고, 만백성을 사랑할 줄 아는 그런 마음이 더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을. 다섯 번째는 관용의 리더. 리더는 냉정하면 안 돼요. 냉정함은 아무것도 안 봐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지. 그러나 따뜻하고 포용하고 관용하면 다 사정이 보이게 돼 있어요. 그래서 관용,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 된다. 연민, 사랑, 이게 제일 중요해요. 그래야 우는 아이도 보이지. 세종대왕께서 실록에, 제일 먼저 제가 감동을 한 게, “길 잃은 아이 부모 찾아줘라.” 그러니까 바쁘신 분한테도 길 잃은 아이가 보이고 우는 아이가 보여요. 우리가 그걸 찾아야 돼요. 우는 아이들을 우리가 잘 보듬고 키워줘야 돼요. 이게 저출생을 극복할 수 있는, 낳은 아이더라도 우리가 잘 키워서 감싸줘야 되는 리더의 다섯 가지 덕목입니다. 1939년에 인도의 영혼이라는 간디가 그 시절에도 사회가 굉장히 무질서하고 나라가 망할 징조가 보이니까 7가지 해소해야 될 폐단을 얘기했어요. 첫 번째는 원칙 없는 정치. 그러니까 작년에 다르고, 또 올해 한 말 다르면, 누가 믿고 따를 수 있겠어요? 원칙 없는 정치. 이게 사회를 망하게 한다 이거예요. 두 번째는 노력 없는 부. 우리가 땀 흘려서 일해서 결실한 거와 공짜로 얻은 거는 쓰임새가 달라지는 거예요. 공짜로 얻은 건 귀한 줄을 몰라요. 그래서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거는 귀해서 거기서 나눔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노력 없는 부. 그다음에 세 번째는 양심 없는 쾌락. 노는 것도 적당히 놀아야죠. 어저께 놀고, 또 내일 쉬고, 모레 쉬고, 이러면 누가 생산을 해요. 그런 징조가 보이니까 이게 나라 망하게 생겼다, 그래서 이걸 선포하신 거죠. 그래서 양심 없는 쾌락. 그러니까 오늘도 이렇게 일요일 날, 정말 여러 가지 행사에도 참여하시고, 또 강의도 들으시는데 여기 조는 분 하나도 없잖아요. 그런 데서 제가 ‘여기는 정말 내 이야기 보따리를 마음껏 풀어놔야 되겠다.’는 그런 또 신뢰가 생기는 거란 말이죠. 그다음에 네 번째는, -요즘에 제가 국가교육위원장으로 이제 여러 국무회의에도 참여하면서, 또 여러 가지 사회에 이루어지는 현상에서 우리가 진짜 제일 갖춰야 될 건 인성이다,- 인성 없는 지성. 그런 데서 지식도 중요하죠. 당연히 배워야 힘이죠. 아는 것이. 그러나 그 속에는 그 마음속에 바른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 인성. 그래서 간디도 그 얘기했어요. 인성 없는 지성이다. 그다음에 다섯 번째는 인간성 없는 과학이다. 과학은 발달해야 돼요. 저도 비행기 탈 때마다 저는 인문학자라 ‘이 비행기 만든 사람 참 위대하다,’ 막 뜨니까. 그런데 그러나 절제가 있어야 된다. 지금 유전자 복제, 게놈 프로젝트에서 하는데, 인간이 뭐 몇백 년 살고, 또 돼지 복제를 지나서 이제는 사람도 복제. 저는 우주 가고 이런 건 좋아해요. 편리하게 하는 건 좋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우리가 너무 절제 없이 사람 복제하면 안 돼요. 사람을 복제하면 이배용이 못하면 복제한 인간이 오면 그건 가짜잖아요. 이런 데서 우리가 절제 있는 과학의 발달이 필요하다. AI도 필요해요. 그러나 윤리 있는 AI를 만들어야 돼요. 이런 것들이 우리가 과학의 시대에 꼭 우리가 기본 가치는 지켜야 될 것, 우리가 생각해야 된다. 그다음에 이제 여섯 번째는 윤리 없는 상업. 우리가 뭐 이렇게 신용이 제일, 저도 브랜드 위원장을 할 때 제일 브랜드의 최고는 신용이에요. 신용. 그래야 그 국가가 평가를 높이 받아요. 아무리 잘 살아도 평가 안 합니다, 신용이 없으면. 그러니까 우리가 옷 잘 입는다고 존경받는 거 아니잖아요. 돈 많다고 존경받는 거 아니잖아요. 그런 데서 제일 중요한 건 언행일치의 신용, 모든 것에. 그래서 상업도 우리가 ‘이거 뭐 이상한 거 넣은 거 아니야’ 뭐 이러면서 불신을 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런 데서 윤리 없는 상업, 이거는 해소해야 된다. 일곱 번째는 희생 없는 신앙. 이 종교라는 건 이타행이고, 정말 인간의 세속적인 걸 승화시켜야 돼요. 너무 탐욕스러운 걸 승화시키면 청정하게 만들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희생도 필요하고, 이타행도 필요하고 한데, 우리 요즘에 너무 기복 신앙으로 가지 않는가. 요즘에 그래도 백중 기도하시면서 부모님한테 감사, 나라의 조상들한테 감사, 이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간디는 7가지 했는데, 내가 또 하나 덧붙일 거는, 하나는 역사 잊은 민족. 역사를 보면 시작과 결말이 다 끝난 거. 제가 그래서 사극도 많이 자문해주고 그랬어요. 그런데 우리는 다 역사를 보면 해답이 있는데. 그래서 류성룡선생이 징비록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난 걸 반성하는 거 쓰셨잖아요. 근데 마지막에 “앞에 가는 수레바퀴가 넘어지는 걸 보고 내 수레바퀴를 못 고치면 또 넘어질 수밖에 없다.” 역사에 다 해답이 있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아무리 시작이 거창해도 무너지는 거. 그러나 작은 시작도 잘 진정있게 갖고 오면 성공하는 거. 역사에 다 해답이 있는데 그냥 찰라적인 욕망과 욕심 때문에 무너지는 거. 우리 너무너무 많이 봤잖아요. 절제관. 그게 이제 종교가 필요한 거죠. 인간은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뭔가 의지하면서 당당한 힘을 가질 수 있는 거다 하는 거예요. 그다음에 또 하나 제가 9번째로 하는 거, 준비 없는 미래. 맨날 미래가 중요하다고 촐싹대면서, 준비를 해가야죠. 우리가. 우리가 무슨 국가적 난제가 있거나 사회적 난제가 있다면 진정성을 가지고 그 실마리를 풀어가야 돼요. 그래야지 미래가, 좋은 미래가, 밝은 미래가 다가오지, 그냥 가만히 놀다가 미래가 오면 달라지겠지, 절대로 안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 열 번째는 애국심 없는 정치예요. 정말 이 나라 어떻게 지켜왔어요? 정말 마지막 끝에 있는 이 반도를 우리 조상들이 그 우여곡절로 해서 어떻게 지켜왔어요? 임진왜란의 이순신 장군. 일제에 다 망한 줄 알았는데 35년 만에 찾았잖아요. 내년이 광복 80주년입니다. 바로 그런 데서 우리가 다 애국심으로 찾은 나라예요. “아 그냥 뭐 이제 어쩔 수 없지, 그냥 노예같이 살지” 이러면 이 나라 찾았겠어요? 그래서 내년 80주년 광복을 기해서 저는 진관사가 중심에, 수륙재 자체도 애국심의 도량인 거죠. 그런 것을 우리가 더 힘을 모아서 지켜드리자 하는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이제 당태종 때 정관정요(貞觀政要)라는 아주 그게 가장 당태종이 금과 옥조, -이세민이죠.- 옥조로 삼았는데, 제일 많이 쓰는 게 <군주는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엎을 수도 있다(君舟人水 水能載舟 亦能覆舟).> 그렇잖아요. 민심의 바다가 따를 때도 있고, 잘못하면 뒤집어 엎을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군주는 배이고, 우리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집어, 그러니까 겸허하자 이거죠. 역사 앞에 겸허하고 하늘을 볼 때 경건하게 봐요. 두려워할 줄 알아야 돼. 사람은 다 못 봐도 하늘은 다 보잖아요. 앞과 뒤와 속을 다 볼 수 있잖아요. 이런 마음을 가지고 리더가 더 겸손하면서 포용적으로 갈 수 있어야 돼요. 그러면서 또 뭐라 하냐면 군주가 넘어지려 할 때 부축하는 신하가 있느냐. 그 얘기는 진정으로 직언해서 지켜줄 수 있는 신하가 있느냐. 그러니까 여하튼 우리가 혼자는 못 합니다. 여기 법해 주지스님 계시죠. 선우 총무스님, 다 이렇게 또 신도님들이 다 받쳐드려서 진관사가 세계적인 으뜸 도량, 모범 도량으로 갈 수 있는 것이지, 혼자는 못하는 거잖아요. 그런 데서 좋은 사람이 많이 있어야 돼요. 이걸 알아볼 줄 아는 리더가 성공하는 거. 그래서 이거 빨리 이제 넘어가는데 시간이. 그러니까 이런 신하들을 둬야 되는 거죠. 충성하는 신하, 허물을 잡아주는 신하, 지혜로운 신하, 잘 법을 지키는 올곧은 신하, 직언하는 신하. 그러니까 내 얼굴에 때가 있는 거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가르쳐줄 수 있는 그런 신하가 필요하다 하는 거죠. 좋은 소리만 하면 안 되는 거죠. 그렇다고 또 나쁜 소리만 하면 그 힘이 없어요, 되게. 잘한 거는 잘했다고 받쳐드리고, 뭔가 조금 삐뚤어 갈 때는 그래도 조심스럽게 직언을 할 수 있는. 그래서 선덕여왕하고 세종대왕이 성공한 리더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거기에 정관에 보면 머릿수만 채운 신하, 아첨하는 신하, 마음속은 간사하고 참언, 이간을 일삼는, 전횡하는 사악한 요런 것들은 두지 말라는 거지. 이런 데서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잖아요. 사람이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떻게 힘을 합하느냐가 성공의 가늠길이 된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거죠. 그래서 저는 역사를 전공했고, 한국사를 전공했고, 정말 많은, -우리 시대는 대학원생 몇 명 안 돌아올 시대니까,- 아주 최고의 역사학자 선생님들한테 그냥 진짜 몇 명이 과외하듯이 굉장히 천착하면서 해서, 제가 삼국유사 이런 거 그때 다 외어요. 그래서 제가 공부로 불교를 많이 보고, 또 그때 제가 1969년에 대학원에, 이대인데, 이제 선생님이 이대에는 안 계셔가지고, 서강대학에 아주 제일 고매한 역사학자, -그러니까 서강대학이 경제학파고, 역사학파가 가장 훌륭한 곳인데,- 이기백 선생님이라고 불교의(께 배웠어요), 그러니까 그 시대는 고전은 다 불교가 중심이었잖아요. 그래서 많이 지방에, 그 시대는 여행 관광 이런 거 없을 때 많이 다녔어요. 그런 마음이 지금 우리 역사를 사랑하고, 자긍심을 갖고, 아니까, 나는 이거를 세계로 선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제가 지금도 끊임없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만들어서 세계인들이 우리에게 오는 길을 놓아주는 거예요. 그다음에 우리가 이제 주로 법고창신(法古創新). 너무 우리가 우리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배우질 못해서, 다 그냥 옆에 있으니까 아는데, 실제로 하나, 지하철 2호선에 선릉역이 있어요. 그렇죠, 그리고 봉은사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럼 선릉에 누가 잠들어계시죠? 이 능이잖아요. 우리 2009년에 조선왕릉 40개가 세계유산으로 됐어요. 서울에 8개 있고, 경기도에 31개, 저 영월의 장릉 한 개. 거긴 단종이 쫓겨가서 죽은 곳이라, 돌아간 곳이라. 그러면 지하철 2호선 선릉역은 다 알아. 그럼 누가 계시죠? 근데 선릉역도 또 아니야. 사실 선정릉이에요. 선정릉. 선릉은 조선왕조 제9대 성종 임금하고 부인인 정현왕후가 이렇게 동원이강으로 묻히신 곳이고, 바로 등성이 넘으면 정릉이라고, 지금 정릉에 있는 신덕왕후릉이 아니고, 선릉이라는 그 테두리 울타리 속에 중종릉이 있는 거예요. 조선왕조 11대 그래서 선정릉에. 그러니까 다 리더들이 지금 묻혀 계시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거 옆에 있는 학교도 별로 관심 없으니까 이렇게 되면 아까 얘기했듯이 역사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이렇게 돼요. 그러니까 동네라도 좀 한번 우리 역사 유적을 한번 살펴보시면, 창의성, 상상력, 자긍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저는 항상 법고창신, 새로운 시대로 창의적으로 열어가기는 꼭 그렇게 해야 되지만, 옛날을 모범으로 잘된 걸 모범으로 삼아야지, 그것도 모르고 그냥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그럼 얼마나 소모가 되고, 거기에 많은 지혜를 잊어버리게 되잖아요. 그래서 사실 옛날에는 전인교육을 했어요. 전인교육이라는 건, 우리가 과학을 하면 과학만 가리키는 게 아니라, 지덕체 해가지고 많은 걸 함께 가리키니까, 굉장히 지금 이제 와서 융합하는데, 이미 우리 선조들은 융합 교육을 시킨 거예요. 도덕 교육, 지식 교육, 그러면서 실천 교육, 다 시킨 거란 말이야. 이를테면 요즘에는 이게 시험이, 제가 이제 제일 이걸 고쳐야 되는데 채점 때문에 지금 어려움이 있는데, 그 수능을 봐요. 오지 선다형이잖아요. 그렇잖아요? 5개에서 하나만 찍으면 돼. 애들은 찍는 거에 능하지, 논술하고 이렇게 쓰는 거에는, 글씨도 잘 못 써요. 요즘 애들이 저는 사학과 교수니까 한 번도 ox 오지선다 내본 적이 없어, 다 논술로 써서 채점하기가 매우 어렵죠. 거기다가 수능하면 또 공정성의 문제가 있으니까 지금 실행을 선뜻 못하고. 그렇게 가야 돼요. 옛날에 선비들은 학지지서(學之之序)라 그래서 첫 번째는 박학이에요. 요즘에는 애들이 책을 안 읽어요. 아마 여기는 좀 다르실 거라고 보지만, 독서를 많이 해서 지식을 넓혀야 돼요. 그게 박학(博學)이에요. 첫 번째 단계가. 그다음에 두 번째는 옛날에는 뭐 질문도 안 하고 외우기만, 그거 아니에요. 심문(審問)이라고 그래서 깊이 질문을 해야 돼. 알아야 질문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박학 다음엔 심문, 깊이 질문해야 되는 거예요. 질문할 수 있게 되는 거. 이게 이건 어떻게? 이런 질문이 알아야 나오는 거지, 모르는 애는 질문도 없는 거죠. 모르니까. 그다음에 세 번째는 신사(愼思), 신사라는 건 신중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이제 질문을 통해서 얻은 해답을 가지고 신중하게. 그러니까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거야. 요즘 교육이 그게 없어요. 그저 그냥 주입식으로 찍는 거를. 생각을 해주는 거야. 그다음에 네 번째가 명변(明辯). 명변이라는 건 그런 과정을 통하면 명석한 논리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 글을 쓸래도 논리가 있어야 되는 거죠. 명석한 논리가 생기는 거. 그다음에 이제 다섯 번째는 독행(篤行), 알면 실행하라. 아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되고, 좋은 것은 실천해야 되는 거죠. 이런 과정을 거치고 옛날엔 염치없는 인간을 제일, 그야말로 배워 먹지 못하고 사람같이 안 보는 거죠. 그래서 사단칠정(四端七情)하면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이게 인의 마음이에요. 인. 자비롭고 그야말로 사랑할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그다음에 수호지심(羞惡之心). 이거는 이제 부끄러워, 이게 염치야, 부끄러워 지는 이게 의, 옳을 의, 정의, 의리. 저는 의리 없는 인간을 제일 싫어하는데, 우리가 인연을 맺었으면 의리를 지켜야 되요. 한결같은. 그게 의, 정의로움, 의리. 그다음에 세 번째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양보. 아마 여기 자리를 잡으실 때도 다 여기 계신 분들은 다 양보하시고, 이렇게 우리가 무재칠시(無財七施)도 있잖아요. 좌석 양보하는 게 돈보다도 좀 좋은 보시다 이런 얘기하잖아요. 그다음에 이제 우리가 또 하나 꼭 가야 될 게, 그건 이제 예고, 사양지심은 예고, 인의예. 그다음에 시비지심(是非之心). 거기서 이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아야 돼요. 그러니까 옳은 건 하고 그른 건 버려야지. 시비지심, 이게 지혜. 그러면서 그걸 포괄하는 게 믿을 신인 거예요. 이 땅같이 굳건하게 버텨주는 믿을 신(仁義禮智信)이에요. 오늘도 아마 진관사에 대한 믿음으로, 저도 또 진관사에 대한 믿음으로 오늘 함께 모여서 제가 말씀드리고 듣고 이런 하나의 시간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이 진관사가 또 하나는 계율의 도량이잖아요. 삼귀오계(三歸五戒), 이 거룩한 부처에 귀의하고, 또 거룩한 부처님의 말씀에 귀의하고, 거룩한 승려의 말씀에 귀의하면서, 오계, 일종의 십계명 같은 거죠. 이걸 계율을 지켜라 하는 거. 지지난달에 수계를 받으셨잖아요. 첫 번째는 살인하지 말라. 살생하지 말라. 살인하지말라. 두 번째는 도둑질하지 마라. 세 번째는 음란한 짓 하지 마라, 음란한 짓. 그리고 네 번째는 악담하지 마라, 험담마라. 우리가 덕담을 해야지, 요즘에 너무 말이 세잖아요. 이거 안 해야 돼요. 그거 다 기본이 있는 거죠. 그리고 다섯 번째가 술 먹지 말라. 왜냐하면 좀 풀어지니까. 이런 것들이 그야말로 바로 기본적인 도덕 행위의 실천이다 이거죠. 이제 이런 것들을 우리가 잘 지켜가면서, 이제 선덕여왕 얘기로 들어가는데 최고의 리더입니다. 제가 사찰 유산, 또 지금 종정예하로 계신 통도사의 성파 종정예하하고 제가 한 15년 이상 인연을 맺어서, 제가 사찰 유산할 때도 제일 먼저 의논드린 분이 종정예하로, “아니 어떻게 이화대학, 기독교 대학의 총장이 어떻게 이렇게 불교를, 우리 스님들도 생각하지 못한 불교를 세계유산하실 그런 뜻을 세우냐”고 너무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하셨어요. 그러면서 이제 많이 협력해 주시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이 성파 스님이 그러셨어요. “아니 영국의 여왕은 지금 여왕인데, 우리나라는 그보다 1200년 전에 여왕을 낸 나라다. 그렇게 앞서가는 나라다.” 바로 통도사가 선덕여왕이 자장율사를 통해서 세운 사찰이에요. 우리 사람들이 너무 외국 거에만 그냥 가서 귀를 기울인다는 얘기예요. -근데 이제 제가 불교 얘기하려면 그것도 한두 시간 더 걸려야 되지만, 오늘은, 이제 많아요, 많은데, 이제 시간을 나한테 조금 주셔가지고, 그냥 세종 얘기까지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신라가 통일을 했잖아요. 그쵸. 근데 고구려, 백제 신라의 신라는 제일 동남단에 있어서 후진이었어요. 문물이라는 건 그때는 대륙을 통해서 들어오니까, 이제 인도로 중국으로 불교가 들어올 때 고구려가 제일 먼저 받아들였잖아요. 372년에. 소수림왕 때. 그러고 이제 백제가 384년에 마라난타가 전해서 받았잖아요. 근데 신라는, 언제 받아요? 법흥왕 때 528년에 이차돈의 순교를 통해서야 받아서, 제일 늦게 받아요. 그 시절의 불교는 선진 문화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후진이라고, 그것이 가장 항상 후진이냐.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고구려는 받았는데 중국에 변화하는 게 금방 들아와. 그러니까 문화라는 건 전래되면 좀 씹고 영양으로 해서 그게 수용이 돼서 토착화돼야 돼. 영양분이 돼야 되는데. 고구려는 계속 뭐가 들어오면 또 나가고, 또 계속 지금 고구려-중국이 국경지라 계속 전쟁을 해야 되니까, 이거를 삭힐 새가 없었던 거예요. 처음에 숭신하면 복을 받는다 해서 불교는 받아들였는데, 이거를 잘 삭일 시간이 없었던 거예요. 또 백제는 실제로 그 주몽의 부인인 소선호가 비류, 온조를 데려와서 이제 남쪽 나라 와서 세웠는데, 그래도 선진문화가 돌아와서 마한 토착민을 다스리려니까 별로 그렇게 힘이 안 들었어요. 그러니까 보통은 우리가 왕즉불 사상으로 불교를 통해서 어떤 지휘 체계가 확고해지고, 많은 것을 감화시킬 수 있었는데도, 백제는 그렇게 불교가 그렇게 아주 같이 깊숙이 들어가질 않았어요. 25대 무령왕릉이 1970년에 장마 때 발견이 됐는데, 불교의 흔적이 없을 만큼 불교는 공인 선포했으면서도 별로 왕실에서도 하질 않아. 그래서 백제는 475년에는 공주로 밀려갔죠. 공주시대, 웅진시대, 그다음에 538년에는 부여로 밀려가 사비시대. 그래서 밀려갈 때 그때야 성왕, 26대 성왕 때 반성을 하는 거예요. 왜 우리가 자꾸 밀려가고 나라가 쇠퇴하느냐. 두 가지 진단을 했는데 하나는 불교를 두고 우리가 너무 소홀히 했다. 불교가 하나의 일즉불 사상이 되는 거잖아요. 이런 거를 우리가 소홀히 했다. 두 번째는 마한 토착민을 우리가 너무 하대했다. 그래서 불교를 다시 흥행시키고, 마한 토착민을 다시 이제 관직에도 줬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었다는 거에요. 이런 분석을 할 수 있다는 거죠. 근데 신라는 늦게 돌아왔는데, 그것도 엄청 귀족들의 반대로 이차돈의 순교를 거쳐서야 이제 불교가 공인이 되니까, 그야말로 비 온 뒤에 땅이 굳고, 한참을 굳으면서 이게 소화가 되고 자기 영양분이 된 거죠. 그래서 불교의 힘이 통일의 기본을 쌓게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 또 하나는 여기 세속오계가 있는데, 신라가 통일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거는 화랑도라는 차세대를 키웠어요. 화랑도가 불교 단체고, 애국단체고, 교육단체고, 전사 단체잖아요. 차세대를 키웠다는 미륵 신앙의 전사들이에요. 이런 데서 엘리트 정말 전사들이죠. 그래서 여기에 보면 사군이충(事君以忠), 임금을 섬기고, 충성, 효도(사친이효事親以孝), 어버이를 효도하고, 믿음으로 벗을 사귀고(교우이신交友以信), 싸움, 임전무퇴(臨戰無退), 싸움에 물러남이 없다. 그리고 마지막이 살생유택(殺生有擇), 그러니까 전쟁에 나갔을 때 어떻게 살생을 안 할 수가 있어요? 전쟁인데. 그러나 여기서 원광법사께서 주신 가르침은, 그러나 아무리 어쩔 수 없어 살생을 하더라도 가려서 해라. 어쩔 수 없는 살생을 가려서 하라는 그런 마음가짐을 심어준 것이 세속오계입니다. 삼국유사 보면 참 재밌어요. 근데 그중에 <노힐부득 달달박박>이라는 얘기가 있어요. 이 노힐부득 달달박박이 친구인데, 지금 창원에 백월산 밑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그때는 다 불교 나라니까 뭔가 이렇게 그냥 평화롭기는 하는데 뭔가 허전해. 그래서 둘이서, “우리 저 산에 들어가서 부처가 되고자 우리 불도를 닦아보자.” 그래서 이제 둘이서 백월산으로 들어가서 달달박박은 북쪽에다가 암자를 하고, 이제 노힐부득은 이름도 이상하잖아요, 근데 재밌는 이름에, 남쪽에다 암자를 했는데, 어느 날 비가 축축이 내리는 저녁에 웬 여성이, 아리따운 여성이 우선은 달달박박의 암자에 찾아왔어요. 날은 저물고 비는 촉촉이 내리고 갈 곳 없는 여인을 좀 하룻밤만 재워달라 하니까 이 달달박박은 나는 불도를 닦는 수도승인데 어떻게 여인을 방에 들이느냐 해서 거절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다시 노힐부득의 암자로 가. 그랬더니 노힐부득은 고민을 하는 거예요. 물론 불도를 닦는 데서 여인을 받을 수는 없지만, 저 불쌍한 여인을 구원 안 해주는 것도 이게 불교의 도리에 어긋난다 해서 그냥 방 한 칸에 저 구석에 가서 자리를 만들어줘요. 그러면서 이제 계속 불공을 하다 왔는데, 새벽에 이 여인이 “내가 산기가 있다. 지금 애를 낳아야 된다”는 거야. 그러니까 목욕물을 좀 받아 달라 그래요. 그것도 좀 이상하지만 하라는 대로 했어요. 그랬더니 자기가 그 목욕물에 들어갔는데, 당신도 들어오라 그래요. 이상하지만 시키는 대로 했어요. 여하튼 무언가가 좀 특이하고 기이한. 그랬더니 그게 금빛물로 변하면서 여인은 떠났는데 관음보살인 거야. 부처로 인도하는 그런 관음보살이야. 그래가지고 어느 순간에 금빛 물에서 대좌에 올라갔는데 이 노힐부득은 미륵불이 된 거예요. 금빛 찬란한 미륵불의 대좌에 앉아 있는 거야. 그러니까 이제 이 달달박박이 새벽에 일어나가지고 ‘얘는 어떻게 됐나. 나는 그걸 단호히 거절했는데 친구는 어떤가’ 갔더니, 그 대좌에 금빛 빛을 발하는 미륵불이 딱 앉아 있어. “아니 어떻게 이렇게 성불을 했냐” 했더니 “어저께 그 찾아온 여인이 부처로 인도하는 관음보살이었더라.” “근데 나는 그럼 어떡하면 되겠냐.” 그랬더니, “아까 그 목욕물이 좀 남았으니 너도 그 물에 좀 들어가 보라.” 그랬어요. 그래서 시키는 대로 했어요. 그랬더니 진짜 또 자기가 원하는 미타불이 된 거예요. 근데 금빛물이 조금 반만 남아서 반쪽만 빛나는 그런 미타불이 된 거예요. 이런 가정들, 정말 이 삼국유사는 이렇게 감성으로 자극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를테면 신라의 26대 진평왕이 굉장히 체구가 커요. 선덕여왕의 아버지가. 삼국사기는 진평왕은 골격이 웅장하였다, 웅대하였다 이랬어요. 근데 삼국유사는 진평왕은 계단을 내려갈 때 계단이 뻐그러졌다. 그러니까 얼마나 육중하면 뻐그러져. 이렇게 감성으로, 상상력으로, 이게 그래서 삼국유사가 재미있는 거예요. 또 하나는 이제 오늘 좀 효행에 대해서 얘기하라고 하면, 효선쌍미(孝善雙美)라고, 삼국유사 마지막 편이 효선쌍미라고, 효와 선이 함께 아름다운 결실을 맺은 것이다라는 이야기들이 다섯 편이 있는데, 거기에 <진정법사 이야기>가 있어요. 의상대사가 이제 문도를 구하러 다니는데, 이 진정 법사 집은 너무나 가난해. 그래도 가난해도 홀어머니를 봉양하는데, 어느 스님이 와서 좀 시주를 하라 그래요. 그럴 때 솥단지 하나밖에 없는 것도 다 보시를 하고, 그런 미덕을 했는데, 그러면 진정 법사는 ‘아 솥단지 없으면 그냥 질그릇에 하면 된다.’ 이런 마음인데, 의상대사가 지나가면서 문도를 구할 때, 그때 따라가야 되잖아요. 근데 망설이니까 어머니가 “니가 아마 나를 봉양하는 것 때문에 니가 마음을 꺼리는 것 같은데, 진정한 효는 나한테 따뜻한 밥 먹이는 것보다, 니가 의상대사를 따라가서, 나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것이, 네가 부처 되려고 하는 극락으로 인도하는 것이 진정한 효다.” 이게 이제 효선이라고 효와 신앙이 함께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던 사례들이 있어요. 그래서 이제 본격적으로 이런 마음과 마음이 전하는 전도를 한 거예요,신라는. 그러니까 그게 아예 토착화될 수 있는 가장, -그야말로 진관사가 마음의 정원이지만,- 불교로 마음의 정원과 희망을 얻게 된 거예요. 그런 속에서 제27대 신라의 여왕이 세 분인데, 선덕여왕, 28대 진덕여왕, 51대 진성여왕, 이렇게 세 분의 여왕이 탄생을 하세요. 선덕여왕, 제가 여성사, 제가 조선시대사, 개화사도 하면서도, 지금 여성사를, -남자들이 안 하니까,- 할 때, 제가 이화대학에 교수로 있을 때 좀 여성사를 정리해라 해서 할 때, 맨 삼국통일이 김춘추, 김유신만을 얘기해서 제가 그랬어요. “아니 김춘추, 김유신이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다 한들, 그 최고 지도자가 안 뽑아주면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있었겠어요?” 그러니까 선덕여왕의 지도력의 혜안이 김춘추, 김유신의 훌륭한 점을 보고 발탁해서 밀어주고, 신라의 통일의 역군으로 쓴 거잖아요. 그런 데 김춘추, 김유신은 선덕여왕이 안 계셨으면 뽑힐 수가 없는 거예요. 왜냐. 김유신은 가야 사람이에요. 또 김춘추는 라이벌 집안이에요. 근데 선덕여왕이 그들의 애국심, 책임감, 또 투지력을 읽고 화랑도를 통솔하는 역군으로 키워준 거죠. 그다음에 또 선덕여왕이 잘한 거는, 모든 게 무력으로만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데서 정신적인 지주로, 자장율사를 통해서 통도사를 세우고, 또 황룡사 구층 목탑을 세우고, 또 원효대사 이런 좋은 승려들이 정신적 지주가 된 거예요. 그러면서 선덕여왕은 전쟁기에는 적의 정보를 알아야 되죠.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해서, 많은 유학생도 당나라에 보내고, 고구려에는 김춘추를 스파이로도 보내면서, 그러면서 적의 정보를 아니까 이길 수 있는데, 제일 선덕여왕이 강조한 거는 무기보다 무서운 건 분열이다. 단합만이 우리가 통일의 기본이다 해서, 그것도 뭐 단합하자 하고 집집이 댕겨서 될 일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내가 선덕여왕을 훌륭한 리더라고 하는 거는 단합의 힘을 강조할 뿐 아니라 문화로 넘어갔어요. 문화로 단합의 힘을 설득을 한 거죠. 마음을 얻은 거예요. 첨성대, 민생의 탑이에요. 황룡사 구층 목탑, 안보의 탑이에요. 저 첨성대는 신라 시내에 있잖아요. 경주의 시내에. 그래서 9.1m예요. 남쪽으로 창이 났어요. 이게 뭐냐? 동양 최초의 천문 관측 기구예요. 농민들이니까 농사의 때를 가르쳐줘야 수확량이 오르잖아요. 그러니까 씨 뿌릴 때 씨 뿌리고, 잡초 걷을 때 거두고, 수확할 때 가르쳐주니까, 이게 천문. 그러니까 남쪽으로 이렇게 해가 들어오고 지금은 속까지 돌아 이제 춘분 지나고 동지로 추분 지나면 이제 나가는 거죠. 그래서 밑에 12단 위가 12단 그래서 1년 12달 24절기. 그래서 이걸 다 세보면 361.5개. 음력으로 1년의 날짜를 전돌로 다 쌓은 거예요. 그래서 올라가서 보면 육안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해와 달, 구름, 별자리가 다 파악되는 거야. 농사의 때를 가르쳐줘요. 민생의 탑. 그러니까 지도자가 민생을 챙겨주니까. 굶어 죽이는 지도자를 누가 따르겠어요? 선덕여왕때 수확량이 많이 늘어나고, 구휼 빈민 구제를 많이 합니다. 여왕이. 그래서 믿고 따르는 거고. 그다음에 황룡사 9층 목탑은 80m입니다. 지금은 몽고가 고려시대 쳐들어와서 불태워버려서, 목탑이라, 지금은 터만 남았어요. 지난 7월달에 제가 법해 주지 스님하고 선우 총무스님이 같이 갔어요. 그 중심에 거기에 이 심주가 있어. 엄청 커요. 몇 사람이 달라붙어야 끌어요. 바로 선덕여왕의 체취가 나요. 경주에 가시면 분황사 앞에 황룡사 9층 목탑터를 가보시고, 그 바위를 끌어안아보세요. 선덕여왕의 체취가 날 거에요. 그래서 저도 얼굴이 지금 빛나지 않아요? 또 우리 스님들도 반짝반짝 빛나지 않아요. 한번 가보세요. 선덕여왕의 애국심, 애민의식, 그리고 어떻게해서든지 이 나라를 평화로 만드는 그래서 이걸 올려요. 그래가지고 높으니까, 백성들이 이 선덕여왕이 올린 꿈을 보는 거야. 우리가 뭉치면 신라를 쳐들어오는 구족을 물리칠 수 있다. 그래서 이거를 층층이 쌓은 거예요. 그래서 그들에게 복속을 받자. 이기면, 승리하면 평화를 이루고 불국토를 이룰 수 있다. 이 땅에 이제 미륵 부처가 이제 부처가 되실 것이다. 그래서 불국토 사상을 전하는 거예요. 그래서 1층은 일본, 2층은 중화, 오월, 응유, 탁라, 여진, 예맥, 말갈, 거란, 9층을 쌓아 그래가지고 탑돌이 하는 거예요. 이렇게 탑돌이, 그래서 마음을 모아. 그러면서 신라가 통일의 주도권을 잡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것이 기술, 무기 이런 것도 있겠지만, 이 마음에 이런 평화를 염원하는 진정한 염원, 이것이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원동력이 됐어요. 그래서 경주에 가면 이 얼굴무늬 수막새가 천년의 미소라고 있어요. 천년의 미소. 근데 우리는 이렇게 은근하고 따뜻하고 이 어머니 같은 아주 부드러운 미소잖아요. 이런 우리의 진짜 천년의 미소가 있는데, 우리는 맨날 모나리자의 미소, 이게 암상스럽게 생겼잖아요. 좀 암상스럽잖아요. 우리 미소가 가장 이렇게 온화하고 평화로운 미소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내 안에 보석이 있는지 모르고, 우리 것은 그냥 그래서 생각해요. 퇴계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이거 갖고 얘기한 건 아닌데. <가까이 있는 단 배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신 돌배 찾으러 온 산천을 헤맸다.> 우리 걸 알아야 보석같이 가꿀 수 있죠. 알아야 돼요. 우리 문화를 우리 정신을 알아야 되잖아요. 이런 것이 저는 이 선덕여왕이 세운 영묘사에 나오는 이 수막새, 이게 얼굴이 다 수막새가 미소의 수막새인 거야. 그러니까 그 집은 웃는 집이 된 거예요. 이런 것을 만들 수 있는 지혜, 마음, 누구냐? 바로 우리 선덕여왕의 어떤 자비심이 그걸 만들 수 있었다는 거예요. 그다음에 또 최고의 우리나라의 리더, 진관사도 이 한글 창제의 비밀 연구소였잖아요. 무관하지 않아요. 한글창제. 조선왕조 제4대 임금인 세종 임금. 정말 천년 만년의 미래를 열어주신 임금이에요. 이분이 22살에 조선왕조 제4대 임금이 되셨어요. 이분이 1450년에 세상을 떠나서 32년을 재위하셨는데, 재위기간도 오래지만 엄청난 일을 많이 하셔서 실록이 엄청 두꺼워요. 그걸 제가 5명의 학자하고, 10년을 아주 찬찬히 읽었어요. 감동의, 감동의 연속. 근데 이게 많은 업적을 낸 감동이 아니고 ‘이분에게는 인간을 사랑하는 따뜻한 가슴이 있구나.’ 이게 저한테 큰 감동으로 이거를 끊을 수가 없었던 거야. 바빠도. 1426년에 이분이 무슨 말씀을 직접 신하들한테 하세요. “내가 보니까, 노비가 아무리 노비래도 그렇지, 애 낳자마자 일 시키는 거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냐. 노비도 하늘이 낸 사람인데, 어찌 애 낳자마자 일을 시키냐.” 그래서 100일의 휴가를 주라 그래요. 그랬더니 신하들이 반대해요. 애만 낳으면 1년 12달 다 노냐고. 그래가지고 반대하지만 간곡하게 설득을 해서 출산 휴가 100일을 줘요. 요즘에 저출생하고 아주 가장 근사한 역사적인 사례인데. 그래서 그래도 세종이 그 착한 마음이 실행을 보게 된 거예요. 근데 또 1430년에, 4년 후에 또 무슨 말씀을 하냐 하면, “내가 능행을 하기 위해서, 조상 능 참배하기 위해서 바깥으로 나갔는데 밭에서 만삭이 된 여성을 봤다. 내 걱정이 갑자기 밭에서 산기가 일어나서 밭에서 애를 낳으면 태어난 산모의 생명이 위태롭지 않겠니. 그러니 자기 날 달은 알 테니 산전 휴가 한 달을 주자.” 해서 산전 산후 130일의 휴가가 1430년에 내려져요. 그때도 반대를 해도 그래도 사람이 있지 않냐 이렇게 호소하는 거예요. 근데 이것도 또 모자라서, 또 4년에, 바쁘시니까 이 문제는 4년마다 생각이 나셨는지, 1434년에 또 무슨 말씀하셨느냐 하면, “노비의 남편은 구경만 하니, 좀 애 낳은 여정을 좀 도와줘야 되지 않겠니”, 산후 조력, 애보육 그래서 남편에게도 한 달의 휴가를 줘라 해서 부부 합산 160일에, 그 산전 산후 부부 합산 160일의 휴가가 내려져요, 동서고금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따뜻한 복지의 실행입니다. 그러니까 노비들이 임금이 이렇게 직접 챙겨주니 얼마나 신바람이 났겠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리더는 신바람 나게 자기가 맡은 일을 해주게 해야 돼요. 정말 기뻐하면서 춤추면서 자기 일을 보람 있게 해줘야 되는. 그 세종의 마음이에요. 이분은 인간 사랑이 지극해요. 이 사업만 아니에요. 또 두 번째는 이분은 우리 것 사랑이 진정하신 분이에요. 그래서 농사직설, 우리 농기구, 지금도 호미가 유명하잖아요. 옛날에 우리나라 용어가 중국 것만 번역한 게 호미, 쇠스랑, 낫, 다 지금 나오잖아요. 그다음에 향약집성방, 동의보감의 전신이죠. 우리 약재로 우리의 풍토에서 난 병은. 그래서 우리 것 찾기 운동을 하신 분이에요. 그거에 대표적인 게 한글 창제잖아요. 귀족들이 반대할 때 세종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옥에 갇힌 죄수가 자기 판결문이 자기한테 유리한지 불리한지도 모르고 그냥 넘어가는 이 억울함을 나는 없애주기 위해서 그들에게 문자의 힘을 쥐여주는 거다. 그걸 알아야 유리한, 그다음에 아무리 방을 붙여도 혜택을 못 받는 글을 몰라서 지나치는 이 가여운 백성을, 나는 그들에게 자기 몫을 찾게 하기 위한 문자의 힘을 쥐여주는 거다.” 그래서 한글은 배려의 문자고, 그리고 화합의 문자고 사랑의 문자입니다. 제가 이게 큰일 났네. 이거는 좀 얘기를 해야 되는데. 제가 한국학중앙연구원장 할 때, 우리 법해 주지스님도 함께 요즘에 다시 가셨는데, 장서각이라는 왕실 도서관이 17만 권의 왕실 도서가 있어요. 제가 2016년 원장할 때, 한글이 17만 권 중에서 한글이 많아요. 왕실에도 쓰고, 그래서 그걸 끌어서 그때가 한글 반포 570돌이 되는 해야. 그래서 그때 이제 끌어내서 할 때 엄청 감동의 도가니였어요. 이 한글은 임금도 쓰고, 양반도 쓰고, 여성은 말할 것도 없이, 노비도 써요. 이게 계속 전시가 될 때 많은 분들이 감동의 도가니. 이건 임금이 쓴 거야. 효종 임금이 딸이, 숙명공주가 아들이 죽었어. 밥을 안 먹어. 노심초사. ‘기운이 나냐, 무사하냐, 밥 먹고 기운 차려라. 애가 그렇게 된 거는 우리 어른들이 복이 없어서 그러니 어쩌겠니? 그래도 기운 차려.’ 이 부정의 편지, 아버지의 직접 쓰신 거예요. 효종이. 이런 거 많아요. 또 학봉 김성일 선생은 임진왜란 때 진주의 전쟁터에 나갔어요. 근데 세모가 다가오니까 그래도 집이 그리웠어요. 그래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도 한글로 써요. 당모 올려요, 어른이라. ‘장모님 잘 모시고 과세 잘 지내라 하는데, 그리지 말라. 언제 만날 기약이 없다. 전쟁이니.’ 그러고 두 달 만에 전사하셨어요. 그래서 이 편지 봉투인데 이게 아내의 눈물의 봉투예요. 저도 이 봉투를 만지니까 진짜 울컥. 근데 한글이 있으니까 마음이 소통이 된 거잖아요. 그다음에 이제 이 부분은 신천강씨 친정 어머니가 시집 간 딸인 순천 김씨에게 보낸 편지인데, 청주 비행장 공사하다가 이 무덤 이장을 하는데, 이 순천 김씨의 무덤을 팠는데, 거기에서 관에 128통의 한글 편지가 나왔어요. 그게 누구 편지냐 하면 친정 어머니 편지. 이 친정 어머니가 속상할 때마다 어디다 하소연할지는 모르고, 딸이 그래도 제일 만만하잖아요. 자기의 심정을 알아주니까 계속 붙인 거야. 또 글은 쓸 줄 알게 됐잖아. 한글이 그 마음의 억울함 하소연을 다 딸에게 했는데 여기 이런 것도 있어요. ‘니네 아버지가 늙고 돈도 없는데 친구들이 첩을 둔다고 자기도 좀 보게 해달라고 애걸복걸을 해서 마지못하게 뒀더니 고게 들어와가지고 나를 매일매일 못 살게 구는데 내가 살아갈 힘이 없다.’ 이런 애절한 편지 이런 것도 다 한글이 있기 때문에 소통과 표현이, 진짜 스트레스 해소가 한글로 다 되는 거예요. 또 이거는 광산김씨 할머니, 끝낼까요? 어떡 할머니의 상언인데, 상언, 임금에게 올린 거야. 이게 영조 임금 때 손자가 억울한 음모로 사형 직전으로 간 거야. 이 할머니가 이 손자까지 죽으면 대가 끊기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임금에게 반듯반듯하게 논리적으로 써가지고 억울함을 잘 전했어요. 그래서 이 편지 한 장으로 손자의 목숨을 구한 거예요. 제가 아무리 박사를 해도, 뭐 해도, 이 할머니를 못 따라갑니다. 이 글씨체나 논리나. 이렇게 한글이 많은 사람을 살리고 희망을 주는 거예요. 그다음에 이건 한산이씨인데, 17세기에 나온 건데, 회갑이 됐어. 지나온 세월을 회고해 보니까 고생고생, 그래서 고행록이라고 썼어요. 자기 회고록. 근데 6m를 썼어요. 이거 되겠어요. 6m를. 이게 한글이 있으니까 가능했던 거야. 마음의 토로야. 노비들도 상조계, 누가 뭉치 아버지가 돌아갈 때 그 막둥이가 얼마를 내고 이거 다 한글이 있기 때문에 상부성례가 된 거예요. 이런 여러 가지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우리 역사 스토리에 우리의 감성을 그야말로 함께 따뜻하게 만들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하는 데서, 제가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 보여드릴게요. 요 다음 얘기는 또 다음 시간을 기다리면서. 지금 요즘에 올림픽으로 아마 오늘 이제 내일 막을 내리는 것 같고, 금메달을 예상외로 우리한테 많이 안겨줘서, 덥고 짜증 나도 금메달 때문에 그래도 청량제가 됐잖아요. 나라 있으니까 가능했던 거예요. 나라 있으니까. 애국가 울려 퍼지고 태극기 올라가잖아요. 1936년에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은 손기정, 동메달은 남승룡, 두 사람이 1936년에 금메달 동메달을 땄어요. 근데 어느 독일인이 이 사진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을 한 게, “아니 이러한 환희의 동메달 금메달을 딴 선수의 모습이 왜 이렇게 환희롭지 못하고 풀죽은 고개 숙인 모습을 하는지, 너무 의아해서 자료를 찾아봤더니 식민지의 청년이었더라.” 식민지의 울분, 답답함, 억울함을 달림으로써 해소하려 했는데, 막상 메달을 따니까 달려야 될 태극기 대신에 일장기가 달리고, 올라가야 될 태극기 대신에 일장기가 올라가는 데서 슬픈, 고개 숙인 이 비극의 마라토너를 보고 역사의 절망을 느꼈다는. 근데 1992년에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을 따서 이제는 노인이 된 손기정 옹에게 갖다 바치는 모습을 보고 다시 역사의 희망을 찾았다는 거. 이제 가슴에 당당히 태극기가 달리고,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가슴에 손을 얹고 태극기에 경의를 표하는 황영조 선수의 모습은 어느 세계인도 연출하지 못한 한국인들의 책임감, 애국심 그리고 자긍심, 이런 책임감과 애국심으로 얽혀준 가장 역사의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우리가 나라 있음에 우리가 있고, 또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 목숨 바쳐 찾아준 이 나라 어떻게 찾은 이 나라인데, 우리가 지키고 더 크게 만들어야 돼요. 그래서 더 크고 아름다운 바톤을 만들어서 우리가 우리의 후손들에게 넘겨줘야 될 사명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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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7월 21일 백중 3재 법문
도혜스님 2024-07-21
예, 안녕하십니까. 이 우중에 오시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오늘은 이제 백중 3재인데, 우리가 이제 여러분들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 복이죠. 그래서 복의 씨앗을 뿌리는 곳, 그러한 그 복의 씨앗을 뿌리는 복전을 불교에서는 여러 방면으로 제시를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뭐냐 하면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부분에 복을 짓는 게 뭐냐 하면은,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과 부모에게 효도하는 이 두 가지가 복을 짓는 그 분량 중에 가장 많은 복을 얻을 수 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해마다 이렇게 백중에 기도에 동참을 하시고, 또 사찰에서 기도를 한다라고 하면, 기도에 또 참석을 하시고, 그러한 여러분들의 그 마음의 저변에는, ‘내가 이렇게 기도에 참석하고, 백중 기도에 동참을 하고 그러면 복도 받을 수 있고, 앞으로 좋은 일이 많아지겠지.’ 이런 생각이 아마 여러분들 마음 저변에 깔려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러한 기도를 하고 동참을 하고 하면 복을 받는다 또는 좋은 일이 생긴다, 이러한 것들은 전부 어디에 근거를 해서 이런 것들이 성립이 되고 또 이루어지느냐 할 것 같으면은, 모두 인과의 도리에 의해서 성립이 되고 이루어지는 겁니다. 이 인과라고 하는 것은 쉽게 말하면, 배나무에 배가 열리고,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고, 여러분들이 배추씨를 심으면 배추 싹이 나오고, 무씨를 심으면 무 싹이 나옵니다. 그것이 인과예요. 그런데 이제 더 깊이 들어가면 인과라고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인과가 성립이 되고, 또 사람의 정신과 육체 사이에도 인과가 성립이 될 뿐만 아니라, 일체 모든 사람의 내면이든 외면이든 전부 다 인과가 성립이 되고, 또 일체의 모든 존재들에게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다 이 인과율이 적용이 되고 성립이 되기 때문에, 보편적인 원칙이다, 보편적인 원리다라고 인식을 합니다. 그래서 이 인과율을 우리는 진리다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과에 대한 인식이라든가 생각이 요즘 세대의 사람들은 너무 이 인과에 대한 것을 생각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굉장히 건망증이 심해서 위험한 지수에 이르지 않았나 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보아집니다. 그래서 산업사회 이전까지는 그래도 좀 덜했는데, 이 과학문명에 의존하는 세대에 와서는 더 심해져서, 그야말로 인과는 전혀 무시를 하고, 심지어는 미신이다라고까지 치부해버리는 이러한 결과가 발생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과를 무시하게 되면 어떤 행동을 해도 관계가 없다 이러한 논리가 성립이 되기 때문에, 자기한테 이롭다고 생각이 되는 것은 어떤 짓도 할 수 있는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이 됩니다. 그래서 이 인과라는 것은 반드시 우리가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그런 부분인데, 이 인과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정확하냐 하면은, 숫자라든가 기호라든가 이런 것을 사용하지 않아도 아주 분명한 그러한 수학이고, 실험을 필요로 하지 않는 명백한 과학입니다. 그래서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고, 봉숭아 나무에 봉숭아 꽃이 피고, 복숭아 나무에 복숭아가 열리는 거 이것은 미신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눈으로 보고 느끼는 실제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인과는 없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거꾸로 된 그러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제 옛날에 어느 어머니가 자기 자식이 인과를 굉장히 믿어요.그러니까 어머니가 자식에게 말하기를 뭐라고 그랬냐 하면은 “아가야, 인과는 믿을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믿지 마라. 만약에 인과로 인해서 니가 어떤 행동을 했는데 그로 인해서 너한테 어떤 나쁜 일이 벌어진다면 내가 그걸 대신 다 받아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살아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애가 잘못하다가 칼에 손을 베었어요. 그러니까 애가 “아이고, 엄마 아파, 아파” 그러면서 손가락에 피를 흘리면서 “엄마 아픈데, 이 아픈 거를 엄마가 대신 아파주면 안 되느냐”고 조금만 아파주면 지가 덜 아플 텐데, 이거 너무 아프다는 거죠. 그럼 대신 아파줄 수 없겠느냐 하니까, 이 엄마가 대신 아파줄 수가 없잖아요.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해도 별 볼 일이 없어. 그래서 그 조그마한 칼에 베인 그 아픔도 대신해 줄 수가 없는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길흉화복이라든가 생사윤회에서 일어나는 인과응보를 어떻게 대신해 줄 수 있겠느냐 이 말이야. 그래서 우리가 한 행동은, 자기가 한 행동은 자기가 반드시 책임을 질 수밖에 없고, 인과응보 역시 그와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여러분이 살고 있는 자기 인생, 자기 인생은 내가 과거 전생에 일으켰던 생각의 그림자입니다. 그 그림자를 통해서 그 그림자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면 그 행동으로 옮겨서 생긴 업을 통해서 지금 현재 나의 지금 생활이 펼쳐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나의 생활은 나의 인생은 누가 나에게 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준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살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구를 원망한다? ‘나는 부모가 나한테 재산을 안 줘서 이렇게 힘들다, 나는 누구 때문에 힘들다’ 이런 말을 한다면은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천금 만금을 물려줘도 그것을 지킬 지혜와 복이 없으면 1년도 안 돼서, 3년도 안 돼서 다 까먹고 거지가 됩니다. 부모가 한 푼도 안 물려줘도 본인이 지혜가 있고, 부지런하고 하다면 없는 재산을 일으켜서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얼마만큼 지혜를 개발하고 얼마만큼 열심히 잘 사는가에 따라서, 자기의 삶은 자기가 만들어 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 생명의 본질은 하나예요. 그런데 우리가 그러한 것을 이해를 잘못하고 남의 생명을 함부로 하는 그러한 경우가 더러 있죠. 그래서 그 예를 하나 들어보면 청나라 때에 어떤 사람이 성은 후씨고 이름은 사육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근데 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굉장히 특별한 재주가 있었어요. 전생에 좀 선업을 지어서 그런지 몰라도. 근데 이제 그 특별한 재능이 어떤 쪽으로 재능이 있었느냐 하면, 원예, 이제 꽃이나 이런 채소나 또는 나무나 이런 것을 가꾸는 특별한 기술이 있어서, 그쪽으로는 아주 재주가 대단했거든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이제 그 재주를 인정해줘서 아주 돈도 많이 벌고 이제 잘 살아서 나이 30이 되었을 때 장씨 가문의 아주 예쁜 처녀, 인물도 예쁘고 단정하고 아주 이름이 높은 그 처녀에게 청혼을 해서 청혼이 성사돼서 이제 결혼을 얼마 앞두고 있는 거예요. 이제 한 한두 달 앞에 결혼을 하도록 아마 다 정해져 있는데, 그러기 전에, 이 사람이 원예 작업을 하다가 개미집을 발견했어요. 했는데 그 개미집을 보니까 굉장히 개미집이 크고, 그 굴도 넓고, 굉장히 큰 개미집을 봤는데, 이 사람이 뜨거운 물을 펄펄 끓여가지고 그 개미집에다 부었습니다. 붓고는 그 개미들이 뜨거워서 몸부림을 치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쾌락을 느꼈다 이 말이야. 그런 일이 있었는데 결혼을 한두 달 앞둔 어느 날 꽃밭을 가꾸는데 뭐가 따끔해요. 그래서 보니까 뭐가 부르키고, 그러더니 옆에 또 부르키고, 부르키고, 삽시간에 온몸이 다 그렇게 부르켜서 물집이 잡히면서, 물집이 터지면서, 터지는데 그 물집이 터지면서 개미가 한 마리씩 나오더라는 거지. 그래 갖고 따갑고 쏟는 느낌, 쏟는다 그러죠. 따갑기만 한 게 아니라 막 피부가 이렇게 찌르고 솟구치는 것 같은 느낌. 여러분이 벌에 쏘여 보면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탁탁탁 쏘는 것 같이 막 열이 나고 하는 거, 그런 느낌이 들면서 온몸이 계속 그렇게 돼서 결국 결혼을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것이 이제 그 개미를 죽인 그 업으로 이런 일을 당한 겁니다. 그래서 이제 개미를 죽인 것이 인이고, 이렇게 참 좋은 결혼을 앞두고 죽게 된 것이 바로 결과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살생을 하되 어쩌다가 실수로나, 아니면 뭐 한두 마리나 이렇게 생명을 해친 것은 금생에 바로 오지를 않아요. 다음 생에 받든, 그다음 그다음 생에 받든 하지만은,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생명을 해쳤을 때는 다음 생까지 갈 것도 없이 금생에 옵니다. 그리고 이제 또 한 가지는 <아버지를 만 달러에 팝니다>라는 광고가 미국 어느 신문에 실렸어요. 자기 아버지를 만 달러에 판답니다. 왜 파느냐고 하니까, 그 판다고 광고를 낸 그 글에 뭐라고 돼 있냐면은, 10년 전부터 아버지가 중풍과 치매에 걸려서 음식도 제대로 못 드시고, 치매가 걸렸으니까 정신도 오락가락하고 하니까, 대소변도 받아내야 되고, 그렇게 모시는데 10년 동안 모시다 보니까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도저히 못 모시게 생겨서 아버지를 만 달러에 판다는 거예요. 그런 광고가 났는데 어느 날 어느 젊은이가 전화가 왔어요. 그 아버지를 사겠다는 거지. 그래서 그 판다는 사람이 전화를 받으면서 “아니 환자를 사가지고 가면 굉장히 힘들 텐데, 소대변도 받아내야 되고, 음식도 제대로 못 드시기 때문에 먹여드려야 되고, 그런데도 사가지고 가겠느냐” 그랬더니 사가지고 가겠대요. “왜 사 가지고 가려 그러느냐, 그게 힘들 텐데.” 그러니까, 그 전화를 한 사람이 말하는 게, “자기네는 지금 이제 결혼을 해서 두 부부가 아이도 둘이 있고 같이 사는데, 두 사람이 다 고아원에서 자라서 부모라는 명자도 모르고, 형제라는 이름도 모르고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네 생각은 항상 아버지라고 불러보고, 어머니라고 불러보는 대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 늘 마음에 그게 소원이었다는 거죠. 그런데 이제 결혼해서 그렇게 부자로 살지는 않지만 먹고 살 만은 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아버지를 사다가 모시고 시봉을 하면, ‘아이들한테도 할아버지, 할머니 이렇게 부를 대상이 있어서 참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아버지를 사 가지고 가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판다는 사람이 다시 한번 확인을 하고, “한 일주일 더 생각해 보고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만 달러를 가지고 와서 사가지고 가라”, 그러고는 주소를 일러줬어요. 그래서 이제 일주일 후에 그 사겠다는 젊은이가 주소로 찾아서 그 판다는 집을 찾아갔습니다. 가니까 미국에서도 그야말로 잘 사는 부자 동네, 아주 큰 부자 동네에, 집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그런 주소를 가지고 찾아가 보니까 그런 집이라. 이 젊은 부부가 너무 가난하고 부모를 모시기가 힘들어서 판다, 그런 줄 알았는데, 너무 잘 사는 동네에 집도 너무 크고 좋고 그래 잘못 찾아왔나 싶어서 확인을 해보니까, 명패하고 주소하고 틀림이 없어. 그래서 이제 벨을 누르니까 일하는 분이 나와서 이제 문을 열어주고 이제 같이 들어갔는데, 들어가 보니까 집도 으리으리하고, 마당에 수영장이 있고, 집 안에 들어가 보니까 호텔처럼 잘 꾸며놨고, 그렇게 잘 사는 집이라. 근데 그 이제 집에 아주 점잖은 노신사분이 한 분 앉아 계신 거예요. 그래서 그 노신사분이 이 젊은이한테 “진짜로 아직 생각이 안 바뀌었냐” 그러니까, 이 젊은이들이 자기네들이 생각할 때는 아주 가난해서 아버지를 못 모셔서 그런 줄 알았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싶어서 어리둥절해서 서 있으니까, 그 이제 노신사가 “아직도 생각이 안 바뀌고 그 아버지를 사갈 마음이 있느냐” 그러니까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다시 한 번 확인을 하고, 노신사가 하는 말이 “사실은 내가 광고를 낸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재산은 많은데, 자식이 없어. 그래서 착하고 선한 자식을 만나고 싶어서, 이런 거짓 광고를 냈으니까 자기를 사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이제 젊은이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그 노인이 하는 말이, “너는 나의 하나밖에 없는 이제 아들이야, 지금부터. 그러니까 내가 가진 이 집과 재산 모두를 너희에게 주겠노라.” 그러면서 그 자리에서 변호사를 불러서 “어서 가서 너희 집에 있는 손자 손녀 다 데리고 여기 와서 나하고 같이 살자.” 그래서 이 사람은 그야말로 한순간에 일확 부자가 된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가 마음을 어떻게 잘 쓰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그냥 그야말로 횡재를, 로또 당첨처럼 된 것보다 더 더 큰 횡재죠. 이런 것을 얻을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러한 마음은 정말 사랑,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고 희생하는 정신, 모든 사람을 거두고 사랑하는 넉넉한 마음, 그 치매에 걸리고 그 중풍에 걸린 그런 환자라도 아버지로 모시고 봉양하고 싶어 하는 그 간절한 마음, 이러한 넉넉한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정말 하늘이 복을 내려주는 겁니다. 그래서 이 효도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우리가 내가 나 자신을 이 세상에 있게 해주신 분, 또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많은 은혜를 입은 분에게 그 감사한 것을 다시 그분들에게 되돌려드리려고 하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효도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은 이 우주의 섭리하고 부합을 해요.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가난한 효자가, 효자가 가난하다면은 부자가 되고 뭔가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지절로 됩니다. 되어서 모든 것이 척척척척 이루어진다 이 말이죠. 그런데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내 편안함만 생각하고 ,모든 그 의리나 이런 것은 전부 다 무시하고 정말 그 이기주의적인 그러한 사람은 되는 게 없습니다, 사실. 그래서 이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된다는 이런 원리를 다시 한 번 예를 들어보면, 옛날에 어떤 참 효도의 마음을 가진 며느리가 있었어요. 근데 시아버지가 홀시아버지라,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고 혼자 계신 시아버지를 모시는데, 참 지극정성 잘 모셨습니다. 근데 이제 어느 날 시아버지가 장날에 장에 이제 바람 쐬러 간다고 가셨어요. 갔는데 해가 저물었는데도 안 돌아오셔. 그래서 이제 남편은 아버지 찾으러 간다고 먼저 나가고, 이 부인이 아기를 업고 문앞에 서서 남편이 시아버지를 모시고 오나 안 오나 하고 왔다 갔다 서성거리다가, 한참을 그래도 아무도 안 나타나. 그래서 자기 집에서 그 장을 가려면 언덕 고개를 하나 넘어가야 돼. 그래서 천천히 그 고개를 이제 오르면서 두 분이 오시면 이제 마중하는 겸, 그 문 앞에 서서 서성거리는 것보다 올라가서 마중을 해 와야 되겠다 하고 천천히 올라가다 보니까, 날이 점점 어두워지는데 시퍼런 불 두 개가 보여요. 저게 뭔가 싶어서 천천히 다가가 보니까 큰 호랑이가 앉아 있는데, 바로 그 앞에 자기 시아버지가 술에 취해가지고 오다가 아마 그 돌에 의지하고 잠이 들었어. 근데 마침 이 호랑이가 그 시아버지를 덮치려고 하는 순간 이 며느리가 “안 돼” 소리를 지르면서 호랑이 앞을 딱 막아섰습니다. 막아서고는 자기도 모르게, 자기도 모르게 등에 업은 아이를 내려서 호랑이 앞에 내려놓으면서 “호랑이님 제가 이 아이를 드릴 테니까 우리 아버지는 살려주십시오” 하고는 그 시아버지를 등에 업고 정신없이 뛰어서 자기 집에 왔어요. 와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아이는 벌써 호랑이한테 줬고, 시아버지는 모시고 왔어요. 자기도 자기 정신이 아니라. 그러니까 여러분이 생각할 때, ‘아니 여자가 어떻게 시아버지를 업고 내려왔을까,’ 무겁다 안 무겁다 이런 분별할 시간이 없어. 그러니까 무조건 업고 그냥 집에까지 달려오는데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는 거예요. 집에 와서 보니까 신발은 벗겨졌고 온몸은 상처가 났고 막 엉망진창이지만, 아이는 또 이제 호랑이한테 주고 왔고. 그래서 이제 시아버지를 이렇게 다시 이제 주무시도록 해드리고 밤새 마음이 아팠겠죠. 그래서 날이 샜는데 날이 새니까 이제 시아버지가 정신을 차리고 ‘내가 어젯밤에 어떻게 왔지 온 기억이 없는데’ 그러시더니 좀 있으니까 “우리 손자 어디 갔냐?”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며느리가 어저께 있었던 일을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니까 이 시아버지가 막 깜짝 놀라면서, 이 늙은이가 정신없이 그냥 술을 너무 마셔가지고, 친구를 만나서 뭐 한 잔 두 잔 먹다 보니까 그래 됐다고 막 놀래갖고, 도대체 애를 어디다 두고 왔냐고, 두고 온 데 가보자고 막 언덕을 뛰어 올라가니까, 이 며느리가 따라 올라갔어요. 따라 올라가서 그 자리에 가보니까 호랑이도 없고, 애도 없고, 아무도 없어. 그래갖고 두 사람이 이제 기운이 빠져서 내려오면서, 며느리도 울고 이제 시아버지도 울고 내려오다 보니까, 동네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웅성웅성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왜 저렇게 사람들이 모여 있나 싶어서 그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보니까, 그 동네에서 제일 잘 사는 집이 있는데 그 잘 사는 집 노적가리 위에 아이가 하나 있다는 거야. 그 아이가 어째서 저 노적가리 위에 올라갔는지 모른다고 동네 사람들이 지금 모여서 다 그러고 모였다는 거야. 그 소리를 듣고 막 정신없이 쫓아가서 보니까, 그 노적가리 위에 있는 아이가 자기네 아이야. 그래서 우리 아이라고 막 가서 아기를 안고 그러니까, 그 노적가리 그 부잣집 주인이 “어떻게 애가 여기 와 있냐” 물은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 노적가리 주인이 너무 감동을 해서 뭐라고 말했냐면은, “이 노적가리는 저 아이의 몫이다. 그러니까 노적가리를 아이한테 주겠다.” 그래서 하인을 시켜서 노적가리를 전부 다 옮겼는데 그것이 100섬이나 돼, 100섬. 그래서 이 사람들이 그거를 팔아서 논도 사고 밭도 사서 잘 살았다고 합니다. 근데 이런 이야기를 요즘 사람들은 들으면,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지, 지금 무슨 그런 일이 있어? 이거 현실하고 전혀 동떨어져서, 있을 수도 없어.’ 아예 이쪽 귀로 듣고 이쪽 귀로 흘려버리지, 자기 자신이 그러한 마음의 100분의 1이라도 내가 한번 부모에게 잘해봐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그분은 진정으로 공덕을 받을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백중을 기해서 여러분도 그동안에 부모에게 좀 무심했다면은, 이 기회를 통해서 부모에게 효도를 해서 복을 지을 수 있는, 복을 짓는 그러한 계기를 만들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의 세계라는 것은 장벽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 마음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세계가 우리 마음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한 생각에, 무량한 삼천대천세계를 한 생각에 품을 수 있는 것이 우리 마음이 할 수 있는 능력이고, 그러한 것을 생각해 본다면은 신비하기가 이를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부처님의 경전을 보면, 우리 한마음이 우주의 삼천대천세계를 우리 한마음에 다 품을 수 있다라는 거예요. 그만큼 우리 마음은 정말 대단한 능력도 가지고 있지만은, 신비하기가 이를 데가 없는 그러한 존재가 우리 마음입니다. 그래서 칼 구스타프 융이라는 사람은 심리학자예요. 이 칼 구스타프는 초등학교 학생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융은 인류의 복합적 연구를, 복합적인 심리 상태 무의식 상태를 연구를 하면서, 인류의 공통적인 꿈을 조사를 했어요. 그렇게 조사를 해서 이제 사람이 살아가는데 꿈이 인간에게 어떤 관계와 어떤 영향을 미친다라는 것을 이야기를 했다 이 말이죠. 그런데 이 꿈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역할을 하느냐 하면은, 우리의 현실과 정신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또 이 꿈이라는 것은 저승과 이성을 이어주는 통로 역할을 한다라고 본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이제 그 꿈에,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또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이런 분들을 여러분들이 보면, 나타나면 그날 재수가 있는 그런 분도 계시고, 또 부모님을 보면 그날은 뭐 되는 일이 없는 이런 분도 계시고, 또 가끔 가끔 부모님이 나타나셔서 뭐를 일러주기도 하고, 그런 걸 지금 아마 이 자리에 계신 분도 더러더러 경험할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죽음 너머에 저승에 계신 이런 영가님들과 우리와의 소통의 통로가 바로 이 꿈이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육신을 지닌 모두 영체들입니다. 그래서 저승의 영가들과 우리 살아있는 사람들이 마음과 마음으로 항상 이어져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꿈을 통해서 이러한 영가들과의 소통을 할 수가 있는데, 만약에 꿈에 나타난 그 부모님이나 조상님들의 모습이 괴로워 보이거나 힘들어 보이거나 그런 모습이라면, 저승에 계시면서 고통을 받는 그러한 모습이고, 편안해 보인다면 저승에서도 편안하게 잘 계신다라고 보면 된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지장보살본원경에 보면 어떤 내용이 나오느냐 하면은, “인간 세상의 중생들이 만약에 꿈에 조상이라든가 또는 조상이 아니라도 자기도 알지 못하는 그런 어떤 영가들이 나타나서 괴로운 모습, 힘들어하는 모습, 또는 운다든가 이런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것은 전생 내지 10생 전, 백생 전, 천생 전에 부모거나 형제거나 이런 나하고 인연 깊은 영가들이 고통 속에서 헤매면서 살아있는 육친, 골육들에게 그 고통에서 구원해 주기를 원하는 그런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정성을 다해서 지장경을 읽는다든가 지장 기도를 정성스럽게 해준다면, 그 영가들이 다 천도를 받고 절대로 꿈에 나타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근데 이 지장보살님은 그 원력이 대단하십니다. “일체중생, 지옥 중생을 다 성불시키지 않으면 당신은 성불하지 않겠다”라는 큰 원력을 세우신 분이고, 그분의 그 가피력과 원력과 공덕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영가와 죽은 영가를 동시에 다 천도하고 제도할 수 있는 가피력과 능력을 가지신 분이고, 그분이 가지신 그러한 특별한 힘은 어두움을 없애주는, 어둠을 없애고 광명을 주는 그러한 능력을 갖고 계세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백중을 맞아서 기도를 할 때에 여러분이 마음을 다해서 기도를 한다면, 정말 이제 여러분의 다생 부모뿐만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향상을 꿈꿀 수 있다. 그래서 지장보살님의 신통력과 가피력으로 영가와 여러분들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백중을 기해서 천도를 올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느냐. 돌아가신 그분들의 마음을 깨우쳐서 정말 그분들의 삶이 달라지도록 하는 데 우리가 이 기도하는 근본 목적이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영가님들이 생각을 만약 바꾸게 되면 얼마든지 좋은 곳으로 환생할 수 있는 그러한 길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여러분이 기도한 공덕을 영가에게 회향을 해주게 되면, 그 회향 공덕을 입어서 올바른 곳으로 갈 수 있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그러한 문제는 뭐가 있느냐 하면은, 우리의 그 한 생각이, 한 생각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여러분들이 잘 파악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이 선업으로 바뀌게 되면, 그 선업으로 바뀐 우리 마음의 파장이 돌아가신 영가에게도 미친다는 겁니다. 미쳐서 돌아가신 영가가 천도가 된다는 거죠. 그래서 살아있는 우리의 마음 자세가, 마음 자세에 따라서, 그 영향이 돌아가신 저 죽음 너머에까지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기도하는 마음, 정말 착한 마음, 이런 마음을 가진다면, 그 공덕이 여러분의 조상들도 저들에게도 영향이 되고, 조상뿐만 아니라 수없이 우리가 오며 가며 스친 모든 인연들, 이런 인연들까지 다 함께 도움을 주고, 공덕을 주는 이제 이러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이제 이게 실제 이야기인데, 이제 어느 분이 이웃의 노인 한 분이 계셨는데 혼자 계시다가 고독사 비슷하게 돌아가셨어요. 그랬는데 어느 날 꿈에 그분이 나타나서, 자기를 재를 지내달라고 부탁을 하더랍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꿈을 깨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아무 연관도 없는 노인인데 재를 지내줘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을 하다가, 그 꿈에 와서 부탁까지 했는데 또 그냥 지나기가 마음이 찜찜한 거예요. 그래서 정성을 다해서 재를 지내드렸답니다. 그랬더니 재가 끝나고 나서 다음에 이제 꿈에 와서 “너무 감사하다고. 자기가 이제 좋은 곳으로 간다고. 자기 자식들은 전부 다 기독교나 다른 종교를 믿어서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서 부탁을 했노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이제 가셨는데, 그러고 나서 이 집이 사업이 너무 잘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이 ‘그 재를 지내드려서 그렇게 잘 되는구나, 이렇게 참 감사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불자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자세를, 마음 자세를 가져야 되느냐 하면은, 여러분이 기도하는 목표가,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데 목표를 둬야 돼요. 백중 기도를 하든, 4월 8일 기도를 하든, 아니면 정월 기도를 하든, 그 어떤 기도나 동참을 하더라도 여러분의 근본 목표는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데 근본 목표를 두어야 됩니다. 그래야만 영원히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있기 때문이에요. 이런 말씀드리면 “아이고 스님들이야 뭐 완전히 모든 걸 다 놓고 수행을 하시니까 생사윤회를 벗어난다는 생각을 하시겠지만, 우리들이야 마을에서 살림하고 뭐 하고 하는데, 언제 생사윤회를 벗어납니까? 그냥 복이나 받고, 명이나 길고 막 그러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그런가요? 생사윤회 벗어나겠다는 생각 좀 안 해보셨죠? 그런데 생사윤회를 벗어난다라는 큰 목표를 가지면, 그 목표 속에 명 받고 복 받는 거는 그 속에 다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큰 목표를 딱 세워서 기도하고 영가를 위해서 기도하고 하는 모든 공덕과 모든 것을 생사윤회에서 벗어나는 보리의 자리로 회향을 한다면은 여러분들은 평소에 그냥 복 주시오, 명주시오 하던 그 공덕보다 배나 큰 공덕과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제 이렇게 점점점점 기도하고 수행하고 닦아나가다가 보면, 무구무원의 경지에 이르면, 무구무원의 경지라는 것은 아무것도 구함도 없고 원하는 것도 없는 경지, 그 경지에 들어가면 여러분이 생각만 일으키면 그 자리에서 다 현실화가 돼요. 그러니까 그것이 더 여러분이 이익을 얻는 겁니다. 그래서 물론 무구무원의 자리에 들어가기가 쉽지는 않지만, 목표를 그렇게 크게 세우고, 정말 내가 사찰에 다니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이 목표는 <내가 진정으로 생사해탈을 해서 무한한 자유의 세계에 내가 1인자가 되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기도도 하고, 염불도 하고, 그런 마음으로 하면, 나 아닌 조상 영가라든가 나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자기도 모르게 축원이 나오고 기도가 나오고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공덕이 “부처님, 우리 손자 서울대학에 합격하게 해주세요. 우리 남편 사업 잘 되게 해주세요.” 요런 사소한 공덕에 비하면, 여러분이 큰 마음을 먹고 생각을 바꿔서 목표를 세우게 되면, 그 공덕이 더 3배, 4배, 10배 큰 공덕을 얻게 되고, 여러분의 정신과 육체가 그렇게 향상이 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여러분이 진관사에 와서 봉사활동을 할 때도 힘이 나고, 정말 활기가 차고, 이러한 자기 마음에 에너지를 충족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님들이 그러한 마음으로 여러분들의 마음의 근본을 삼고 기도에 임하시고, 또 열심히 기도 정진하셔서 조상님들도 천도하시고 여러분 자신도 제도하는 그러한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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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7월 14일 백중기도 2재 법문
자현스님 2024-07-14
자, 안녕하세요. 이게 훅 간 시즌에 찾아오는 자현스님입니다. 보통 때 이렇게 좀 활기 있을 때는 사람을 안 부르다가, 이렇게 무슨 가신 분들 뭐라 할 때, 이렇게 어떻게 보면 돌아가신 분 전문 같기도 하고. 근데 저는 사실 여러분들 이렇게 뵈면서, 제가 그 생각 전에도, 이게 독립운동가인가, 진짜 모나미인가 이런 생각을 했는데, 절마다 특색들이 좀 있어요. 이렇게 제가 여러 절을 다녀보면, 우리 보살님들은 화이트, 블랙이잖아. 이렇게 층으로 딱 만들어서 딱 계시고. 그리고 각 잡는 거 진짜 잘하는 데는, 회색 막 입고 이렇게 딱 각 잡는 거, 통도사 강주스님 인해스님 절, 바라밀선원, 거기 가도 그렇게, 거기는 막 줄을 맞춰가지고, 막, 막, 뭐 하는 것처럼 사람 몇 명 되도 않더만, 이렇게 줄만 맞추니까 사람 겁나 많은 것처럼 또 보이고. 제일 어떻게 보면 엄격해 보이고 막 이러한 데는 어디 있냐면, 저 수불 큰스님 하시는 안국선원. 거기는 진짜 노보살님들이 표정도 안 바뀌어, 그냥 그대로 있어. 그래서 내가 처음 갔을 때 뭘 느꼈냐면, 안도 다다오의 그 시멘트 건물 같은 느낌, 이렇게 블록으로 이렇게 사람들이 있는데, 섬뜩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실은 자유로운 걸 좋아해요. 자유롭고 혼란스럽고 정신산만한 거. 방금 우리 회주 스님한테 가서 “또 손목에 주렁주렁 달고 댕기냐.” 이렇게 큰 스님들의 여러 번 말씀을 들었습니다. 문자도 들어오고. “그만해라.” 이렇게 쉽게 그만하지 않습니다. 혼란스러운 거. 그래서 변화라고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해요, 변화는 원래 정형화된 게 아니고, 불규칙성이 작동할 수밖에 없는 거고, 그게 어떻게 보면 변화의 철학의 기본적인 거예요.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데서 어떤 자기 원칙이 생기는 걸 그걸 질서라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질서는 소수고 그다음에 혼란이라고 하는 거는 훨씬 더 많은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질서를 선택하기 때문에 혼란이 힘들어지는 겁니다. 근데 질서인 상태로 계속 갈 수가 없어. 우주도 마찬가지예요. 질서는 일부분이고, 아주 극히 일부분일 겁니다. 그 나머지는 전부 혼란스러운 거예요. 치고 받고 패고 막 이런 거예요. 그래서 그 혼란에 대해서 사실 관점을 환기하면 그거야말로 생생한 철학이라고 하는 게 있어요. 제가 그런 얘기하는데 혼란스럽지만, 여러분 모두는, 여러분 모두는 사실 우주의 하나밖에 없는 존재들이에요. 전 우주를 다 통틀어도 같은 대상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유일물은 비교 대상이 아니고, 독립된 완결성을 가지고 있어요. 독립된 완결성을. 유일물이기 때문에 그걸 자각하면 모두가 다 행복한 세상이 돼요. 그게 사실 선에서 말하려고 하는 어떻게 보면 쩌리의 행복이라고 하는 건데, 부처님이 돼서 행복한 게 아니고, 내가 그 자체로 모순 속에 있는 그 자체의 완결성을 이해하게 되면 그것이 곧 행복이다. 유일물은, 유일물은 고통스러울 것도 없고, 그다음에 비교 대상 자체가 아니기 때문에, 뭔가 이렇게 떨어진다라고 하는 생각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거를 모르고 자꾸 피라미드 같은 구조에서 위로 올라가려고 하죠. 그러다 보면 힘들어요. 사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잖아. 여러분 지금 덥죠. 근데 이 절의 특징이 약간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있는데, 약간 매가리가 없어요. 그게 뭐. 약간 외국인들이, 외국 음식하시는 분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굉장히 놀라운 것 중에 하나가, 독 있는 걸 삶아가지고 제독해서 먹는다 이런 거 있거든요. 고사리 같은 거 원래 독 있어서 못 먹잖아. 근데 우리 다 삶아가지고 이렇게 먹잖아. 삶아놓은 고사리 같아요. 그래서 이게 서울 사람인가 싶거든. 이게 어디 쪽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냐면, 충청도 쪽 가면, 그쪽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이 점잖고 이렇게 약간 풀 죽은 듯한, 새로 벤 배추가 아니고, 소금에 약간 한탕 뛰고 온 배추의 느낌인데, 조금 예전에 그러니까 왕이 나와서 왕기가 쇠해서 그런가. 이게 그래서 나는 박수 소리도 짜증나게 박수를 치는 거야. 칠 거면 치고, 말 거면 말지.(박수) 아우. 나 내가 유도한 거 아니다.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하신 거예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자유롭게 움직였으면 좋겠어요. 절이 정형화된 바둑판 같은 게 절인가에 대한 생각을 개인적으로 합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그때그때마다 변화하는 생생한 거, 활발한 거, 그리고 변화는 잠시도 멈추지 않는 게 변화예요. 그래서 하늘의 움직임은, 하늘의 움직임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그리고 제가 그 구절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 주역에 나오는 구절인데, 천행건 군자이자강불식(天行健 君子而自强不息)이라고, 하늘의 움직임은 잠시도 쉬지 않기 때문에, 군자는 그것을 본받아서 언제나 쉼 없이 노력한다. 노력이라는 게 때론 옳을 수도 있고, 때로는 그를 수도 있어요.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모든 노력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게 객관적인 쪽으로 가면, 화엄철학이 되고, 주관성으로 가면 나의 행복과 관련된 미학적 판단, 그게 선이 돼요. 기회 되면 이런 얘기를 좀 해주면 좋은데, 언제나 시간이, 이게 추모 기간에만 부르고, 시간은 언제나 짧아. 이게 나중에 기회가. 저는 몰랐었어요. 제가 어저께 일본에서 왔는데, 제가 김응철 선생님이라고 한방을 썼거든요. 김응철 선생님 아세요? 근데 여기에 불교대학도 있대. 그런 건 한 번도 안 부르더라고, 나. 그래서 불교대학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그런 걸 부르면 사람이 좀 길게 얘기할 건데. 이게 법문 시간은 짧을 수밖에 없는 게, 이게 큰스님들한테 맞춰져 있어요. 큰스님들 오래 하시면 힘드셔요. 누가? 여러분들이. 이런 게 잘못하다가 또 욕 바가지로 먹을 수도 있는데, 인생이 다 그런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시는 이러한 모든 가치들을 평등으로 놓고, 그다음에 내가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 그리고 그것은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언제나 하세요. 그리고 위를 보고 달리기 시작하면 너무너무 힘들어져요. 그래서 나를 보고 달릴 수 있는. 달리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달리는 것은 정당하지만 그것의 목적이 내가 돼야지, 대상이 되면 그것은 언제나. 그런 걸 보고 불교에서는 갈애(渴愛)라고 합니다. 갈애. 그러니까는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 무엇을 채웠을 때 만족하는 게 아니고, 채웠을 때 허전함을 느끼게 되는 현상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목적을 했어. 그래서 힘들게 거기까지 올라갔어. 딱 들어가 보면 가장 대표적인 게 결혼이죠. 채워지고 나서, ‘아 이런 거구나. 그럼 엄마 말씀 잘 들을걸.’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래서 그런 거 있는 거고. 그리고 오늘 지금 말씀드릴 주제는, 여기가 이제 수륙재 도량이기도 하고, 상원사도 수륙사였는데. 그래서 어저께 그런 얘기를 상원사 얘기를 했었는데 수륙사였었고, 수륙재 도량이었고. 여기도 그래서 수륙재 학교가 얼마 전에 통화할 때까지는 오늘 입학식 한다더니, 다음 주로 늦춰졌다고. 그 얘기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이렇게. 근데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국가적으로 왜 수륙재를 지내려고 하는지. 그러니까 수륙재와 관련해서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꼭 물 있는 데서 하는 거 아니다. 사람들이 자꾸 수륙재라 하니까 어디 바닷가나 큰 하천에서 하는 줄 알아. 수륙사가 그런 데인 줄 알아. 근데 그런 게 아니고, 원한을 푸는 거예요. 모든 원한을 풀어주는, 그리고 원한이 풀려야 국가가 잘 되고, 그다음에 개인도 화평해진대. 행복해진대. 그런 얘기를 조금 해드릴 거예요. 그런데 그에 앞서서, 지금 이제 이번에 백중 이재잖아. 저도 그거 알아요. 월정사도 오늘 이재하는데 제가 빼먹고 왔거든. 그래서 백중 기간인데, 이제 되게 재미있는 걸 말씀드리면 사람은 연결돼 있을까. 예전에 그런 아바타 영화 보면 그 나비족들은 서로 즈그들끼리 약간의 이렇게 연결성이 있잖아. 그렇지 않아요? 사람은 독립되어 있을까? 연결되어 있을까? 어떻게 생각하셔. 연결돼 있다라고 생각하는 게 사실은 동아시아 관점이거든요. 그래서 동기는 상응(同氣相應)을 하는 거고, 동기간에는 서로 통하는 거고, 그래서 가장 대표적인 게 부모님이, 부모님이 꿈자리가 안 좋으면 자식들한테 전화해가지고 “내가 이러이러한 꿈을 꿨는데, 네가 좀 조심해줬으면 좋겠어.” 이렇게 얘기하면 아무리 젊은 자식이라도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그걸 약간 귀담아듣는 척을 하죠. 막 귀담아듣지 않는데, 아예 어렸을 때는 “뭐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어.” 이렇게 되는 거고, 조금 지나고 나면 그거를 꼭 믿어서가 아니고, 그 부모님의 간절함이 전달되는 거죠. 그렇게라도 해서 나를 조금이라도 안 좋은 거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그런 거 있지 않아요. 그리고 또 다른 게 뭐가 있냐면 태몽입니다. 태몽. 태몽을. 사실 새로운 생명이 내 몸 안으로 딱 들어오면, 내 생각이나 몸이 좀 바뀔 것 같아. 몸만 바뀌는 게 아니고 생각도 좀 바뀔 것 같아. 그렇지 않을까? 그게 일신이령의 상태거든요. 한 몸에 영혼이 2개가 들어와 있는 상태야. 그러면 그 간섭 효과가 좀 이루어지지, 일어나지 않을까? 그 간섭 효과 중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불교에 기록된 경우는 사리불하고, 그다음에 구마라즙입니다. 그때는 이 양반들이 너무 세 갖고, 엄마가 오히려 자식한테 말려 들어갔어요. 그래서 애를 임신을 하니까, 엄마가 천재가 됐대. 어, 뭔가 포스가 강렬하지. 그래서 결국은 나중에 애 낳고 나서 평범한 사람으로 되돌아왔다 이렇게 되거든. 그래서 내가 뭐라 그랬냐면, 낳지 말고 참았어야지, 참았어야지. 제가 예전에 그 얘기했었는데, 제가 28일생인데, 이게 1월 28일인데, 팔자가 안 좋아요. 추울 때 태어나면 힘들어. 제가 허우대가 멀쩡해서 사람들이 참 고생 안 하고 편하게 큰 줄 아는 분들이 있는데, 진짜 고생고생 상고생은 다 한 것 같아요. 안 믿기죠. 나도, 나도 불만이야. 고생한 것처럼 생겨야 되는데, 너무 편하게 생겨가지고, 그지. 그래서 이게 2월만 태어났어도 조금 팔자가 피거든. 사람이 이게 팔자라는 게 참 묘해서, 인생을 살다 보면 그런 게 있어요. 내가 <노력하는 만큼 이루어진다>라는 것도 있는데, 아니야. 노력하는 것만큼 노력 플러스 알파가 붙는 경우가 있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어요. 참 그게 묘한 거라고. 그래서 제가 얘기하잖아. 인생은 고스톱과 마찬가지다. 손에 쥔 패가 50프로, 뒷장이 50프로다. 뒷장이 가피다. 뒷장이 가피야.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금두꺼비를 하나 잡고 있어. 그러면 인생이 바뀌는 거예요. 깠는데 두꺼비가 나와. 거의 필패입니다. 아니 뭐야, 패할 수가 없는 상황이 돼요. 되게 재미있잖아. 실컷 이렇게 내가 든 패를 가지고 맞춰가지고 이게 청단이 3개 들었네. 그래서 청단을 하려고 했는데, 꼭 앞에서 하나 잘라먹고 끝까지 안 내놓는, 그래서 그것 때문에 다 내놓다가 인생 끝나는 경우도 있고. 인생이 묘한 거예요. 그리고 손에 든 거는 내가 조절하는데, 타짜가 아닌 이상은 뒷장은 우리가 조절할 수 없다. 참 저급한 비유를 들고 있죠. 그거를 조절하는 거는 뭘까 도대체. 이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어렸을 때, 제가 오만 쓸데없는 짓은 진짜 거의 다 하면서 살았거든요. 제가 고등학생 때 금 만든다고, 연단술이라는 게 있어요. 그게 원래는 그때 뭐가 유행했냐면, 단학 이런 게 유행을 했어요. 단전호흡. 그런 거 유행했는데, 그게 원래 오리지널을 쫙 이렇게 문헌들을 올라가면, 금을 외부적인 진료를 통해서 만들어서, 그 금을 먹고 그게 몸으로 녹여서 금의 몸이 되는 거야. 그걸 금선이라 그래요. 도교에서 최고 신선이 금선이거든요. 대라금선이거든요. 그 못된 풍속이 우리나라 불교에 들어와 가지고 지금도 하고 있죠. 지금도 스님들이 행선축원(行禪祝願)에서 <귀의삼보예금선(歸依三寶禮金仙)>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 하고 있잖아. 그렇죠. 귀의삼보, 모르는 척하지 마. 그래서 그게 금선이라고 하는 게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금 만든다고 또 열심히 어렸을 때 노력도 하고, 그것만 한 게 아니고, 점이나 이런 것도 진짜 여러 가지 많이 했었어요. 고등학교 때 점 보는 걸 한 16가지는 배워본 것 같아요. 안 맞아요. 답만 얘기하면 안 맞아요. 그리고 더이상 이건 이쪽에는 길이 없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거든. 깊게 파면 우물 물은 나오는 거 아니냐. 덜 파서 안 나오는 거 아니냐. 때론 마그마가 나옵니다. 판다고 계속 물 나오는 거 아니다. 언제 이거는 답이 없다라고 생각을 했냐면, 이게 점하고 이런 분들이 그래서 저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황제가 며느리를 들이는 대목이 나와요. 며느리를 맞이하는데 점을 봤거든. 그 당시에는 점이 과학이에요. 침대는 가구가 아니고, 점은 과학이에요. 그래서 진시왕 때 점서는 불타지 않았어. 과학서로 분류됐기 때문에. 진짜야, 진짜. 이런 얼굴 표정들은 뭘까? 그때 진시왕 때 분서갱유할 때 이렇게 책을 다 태우는데, 그 철학적인 거나 그게 사상 통제 정책이거든요. 그렇지만 과학하고 의료 그러니까 의술, 농업, 생산과 관련된 것들, 기술과 관련된 것들은 태우지 않았어요. 그걸 마지막 어떻게 보면 끝장을 냈었던 건, 항우가 함양궁을 함락시킬 때 그때 사건들이 벌어져요. 그리고 진시왕 같은 경우는 그것도 다 없애긴 없앴지만, 기본 자료들은 전부 다 저장을 해놨어요. 우리 종자은행 만들듯이. 그러니까 아주 생각이 없었던 사람은 아니에요. 근데 그거를 항우가 끝냈습니다. 항우가. 그래서 한나라 때도 점은 과학이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를 맞이할 때 이제 이게 재미있는 거거든. 새로운 기운이 들어오는 거야. 마치 임신했을 때 애가 뱃속에 들어와서 두 몸이 되는 것처럼, 가족이라고 하는 어떤 기운의 흐름 속에 외부인이 들어오는 거예요. 기운이 다른 사람이. 그게 조화될 거냐, 안 될 거냐. 그거 조화 안 되면 진짜 피곤하지, 누군가는 맞춰야지. 그리고 동아시아 결혼 같은 경우는, 지금 우리나라가 결혼이 힘든 이유 중에 하나도 그건데, 그 사람한테만 맞추면 되는 게 아니고, 집안끼리 맞춰야 돼요. 이게, 이게 더럽게 피곤해요. 잘 모르는 분까지 애경사를 가야 돼, 갑자기. 힘들죠. 아니 그게 결혼을 안 하는 이유 중의 하나예요. 스트레스받기 싫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이제 며느리를 맞을 때 점을 치라고 그랬는데, 각 점쟁이마다 점괘가 달라. 음양으로 치는 사람이 있고, 그다음에 주역으로 보는 사람이 있고, 오행으로 보는 사람이 있고, 다 룰이 다르니까 다 다른 거예요. 그랬는데 되게 재밌는 얘기를 해. 이런 거는, 이런 며느리 볼 때는 오행으로 보는 사람 거 취하는 게 맞으니까, 오행 쪽으로 봐서 문제가 없으니까 통과 이런 식으로 하거든요. 그 얘기는 뭐냐. 즈그들끼리도 룰이 안 맞는다는 뜻이에요. 하나의 단일 룰이 아니구나. 그리고 지금 점쟁이는, 제가 그런 얘기하는데, 예전 글씨 잘 쓰시는 분이나 예전 점 잘 보시는 분을 지금 사람들은 따라갈 수가 없어요. 이유가 뭐냐. 글씨만 가지고 한번 봐봐. 글씨를 서예, 서예 인구가 예전에는 굉장히 많았었잖아요. 지금은 붓글씨 쓰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근데 그렇게 서예를 잘하는 사람이 황제의 명을 받으면 그 정성이 미친 듯이 들어가요. 아버님한테 오다 받았다고 그런 정성이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왕조 국가에서 아마 유일하게 가능한 나라는 북한이지 싶어. 북한의 주석께서 명령을 하시면, 그런 정성이 들어가. 그러니까 최고로 가장 서예 인구가 많을 때 최고로 글씨 잘 쓰는 사람이 황제에게 부탁을 받아서 글을 쓴다. 그 글을 능가하기가 어려워요. 현대에도 그런 기술을 능가, 그런 장인 정신이 나오겠어요? 점도 마찬가지예요. 수요가 많을 때, 지금보다 예전에 수요가 훨씬 많지 않았을까. 그렇게. 그때도 그렇게 뒤죽박죽이었는데, 그리고 주자가 쓴 서법, 주역 전의대전, 서법, 주자하고 정이천이 쓴 거기에도 뭐라고 나오냐면, <같은 점은 두 번 치지 않는다.> 우리 또 주역, 제가 주역학회 회장님한테 주역을 배웠잖아. 또 같은 점은 두 번 치지 않는다. 점신이도 하기 때문에. 근데 사실은 우리 선생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두 번 치면 같은 괘 안 나온다, 같은 괘 안 나온다. 이 이거 랜덤이 작동하는 거기 때문에 같은 괘가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써놓은 거다. 정직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지역학회 회장이라도 학회 쪽에 계셨던 어른이라서, 대학 교수여서 그래요. 근데 일반 점 보시는 분들은 거기에 맹신해. 뭐나 되는 것처럼. 왜 그게 밥그릇이잖아. 교수는 그건 알바죠. 월급은 이쪽에서 나오고, 이건 알바죠. 이렇게 해서, 이게 굉장히 재미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만약에 이렇게 독립돼 있다라고 하면 서로 영향을 안 받아야 돼. 그러니까 며느리가 들어오든 사위가 들어오든 큰 문제는 없어야 돼. 그게 어떻게 보면 서구식 관점이에요. 서구식 관점. 그래서 개인주의적인 생각.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도 그런 식으로 많이 갔죠. 그래서 재산도 결혼할 때 재산도 대충 정리를 해서, 나중에 헤어질 때는 니 재산, 내 재산이 어느 정도 나뉘게. 아니면 결혼해서도 자기 월급을 자기가 관리하는 경우들도 있어요. 되게 재미있습니다. 그래 서로 선물해줘, 서로 선물해줘. 아니 그런 경우들도 있어. 근데 그게 동아시아 전통문화에서는 굉장히 이질적인 겁니다. 동아시아에서는 그냥 결혼하면 다 섞이는 거고, 가족은 다 섞이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 어렸을 때 되게 재미있는 현상이, 우리나라가 다 거지같이 살았었잖아. 저는 여러분들보다 훨씬 편 세대인데, 여러분들 굉장히 힘들 때 사셨었잖아요. 그러면 그때는 방 한 칸에 진짜 막 오글오글 이렇게 살던 시절들이 있었잖아. 그럼 니 거, 내 거는 당연히 없어요. 니 거, 내 건 당연히 없어. 그리고 나중에 이제 한 70년대 말, 80년대가 되면서 형편이 피고, 각각 개인의 방들이 생기기 시작했어. 그때 부모가 자식 방문을 벌컥 여는 사건들이 벌어져요. 그 벌컥 열었을 때 자식은 “노크를 하라”라고 요구를 했고, 부모는 “부모, 자식 간에 뭔 노크냐”라는 게 있었어요. 그 논점이 한 번 있었어. 그러다가 이제 자식이 문을 잠그기 시작하면 노크 해야지. 들어갈 수가 없는데 뭐. 이거 굉장히 재미있는 겁니다. 지금도 아마 부부 간에도 그게 가능할 거야. 뭐가 있냐면 “부부니까 핸드폰 비밀번호를 네가 나한테 가르쳐줘야 되는 거 아니야? 부부래도 야 그거는 그거 아니냐.” 아니 이게 성립될 수 있는 얘기라니까. 성립될 수 있는 얘기라니까. 근데 동아시아는 그냥 뭉뚱그려서 하나예요.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 부모님이 어느 정도 이상 연세가 많이 드시면, 자식에게 상속을 하고, 부모님은 그 자식에게 어떻게 보면 의지해서 사는 거죠. 그래서 그런 거 있잖아. 여자는 이런 얘기를 해도 되는가 모르겠다. 이거 지금 여자분 많은데. <어렸을 때는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커서는 남편에게 의지하고, 나이 들어서는 아들에게 의지해라>, 이런 쓸데없는 소리, 전 근대적 그런 얘기들 있잖아. 그지 한 번씩 들어보셨잖아. 그런 식으로.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전체를 어떻게 보면 하나의 연결됐다라는 생각으로 판단을 하고 있어서 그래요. 그런데 기독교 문화는 기독교나 이슬람은 신이 인간의 영혼을 하나씩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네는 같은 팀으로 뭉쳐 있지만, 마치 직장의 어떤 부서와 비슷한 거야. 그러니까 그것은 단독 유닛이에요. 하나하나가 분리돼 있는 거야. 그게 개인주의입니다. 우리는 집단이 뭉쳐 있다라고 생각을 하는 거고 그래서 태몽도 꿔줄 수 있는 거야. 내 꿈을, 내 손자의 꿈을 내가 꿔주는 거죠. 그게 어디까지 가능한지는. 사실 저도 되게 재미있어요. 왜냐하면 피가 통하는 사람끼리 그게 이제 존존친친이라고, 친친존존이라고, 혈연 혈통 피가 얼마나 같이 섞였느냐가 촌수 개념이거든요. 촌수. 그래서 부부는 무촌이잖아. 피가 없으니까. 그래서 부부는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갈아낄 수 있다. 아니 유교적 생각, 유교적 생각이야. 내 생각 아니야. 내 생각 아니야. 오해하지 마. 갈아낄 수 있다. 그건 부품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고. 그다음에 1촌은 이게 피의 농도예요. 1촌, 2촌, 3촌, 계산해 봐. 그냥 피의 농도예요. 몇 프로를 우리가 같으냐로 묶이는 거예요. 이게 지금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서로 그 피가 같듯이, 서로 통하는 에너지가 있대. 그러니까 내 딸 태몽을 엄마가 꿔줄 수도 있어. 근데 간혹 가다가는 ‘며느리 걸 꿔줬어요’도 나와. 그게 가능한가. 난 그 생각은 사실 들거든요. 그런데 동아시아에서는 기본적으로는 태몽이 내가 안 꿔도, 그러니까 자기도 뭔가 변화는 있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구마라즙이나 안 그러면 사리불처럼 애가 딱 임신이 됐을 때, 이게 워낙 에너지가 강하니까 엄마가 바뀌어.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바뀌지 않을까. 다른 생명이 내 몸 안으로 들어오면. 회충이 있어도 구역질이 나잖아. 그런데 뭔가 좀 바뀌지 않을까. 근데 자기가 그걸 느낄 것 같아. 몰라. 내가 안 해봐서 잘은 모르겠는데, 뭔가 좀 느껴지지 않아요? 안 느껴지면 뭐 무딘 거고. 그리고 그거를, 가족도 그 영향을 받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과 가장 어떻게 보면 합이 맞거나, 그러니까 잘 이해관계가 이렇게 잘 맞거나, 안 그러면 충돌하는 사람에게 그 꿈이 보이는 거거든요. 약간 너무 밋밋한 사람은 별 볼 일이 없고, 그렇게 해서 보통은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이렇게 영역이 그 정도까지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집단 구조를 이루는 게 돌아가신 뒤에도 작동을 한다라고 봐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불교는. 이거 지금 이렇게 집단으로 연결된다라고 하는 게 유교 문화입니다. 유교 문화입니다. 불교는 개인주의랑 비슷해요. 끊어진다라고 봐요. 끊어진다라고 봐요. 불교는 그러니까 기독교나 이슬람은 신이 하나하나를 꽂아준 거고, 꽂아준 거고, 불교는 업이라고 하는 것이 상속되면서 그렇게 해서 한 팀이 만들어진 것뿐이야. 그러니까 어벤저스가 만들어진 거야. 그리고 그것은 각각의 어떠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언젠가는 떠나고 싶으면 떠날 수 있는 게, 가족을 등지고 출가할 수 있다는 문화는 사실은 거기서 나오는 거예요. 지금 예전하고는 생각이 좀 달라졌는데, 지금은 저도 주변에서 그런 말씀들을 하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결혼을 안 해서 걱정인 부분들도 요즘은 되게 많이 있는데, 결혼을 하더라도 부모가 탐탁지 않은 거야. 왠지 나는 탐탁지 않아. 그런데 예전 같으면 탐탁지 않다라고 대놓고 얘기를 할 건데 , 한두 번 이렇게 언질을 줬는데 얘가 밀어붙이는 거야. 그때 이제 어떻게 해야 될 거냐를 저한테 물어보는 경우도 있어요. 내가 모르지. 내가 알겠어. 왜 나한테 그런 걸 물어보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런데 예전에는 부모님이 하지 마라고 하면 그 하지 마라고 하는 어떻게 보면 가장 극렬한 멘트가 두 가지입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된다.” 그건 뭐냐 하면 관뚜껑을 덮고 흙을 뿌리는 걸 상정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죽기 전에는 안 된다. 하나는 그러면 “내 자식이 아니다. 호적을 파라.” 진짜 한두 번씩은 들어보신 옛날 멘트. 요즘은 그런 경우가 별로 없죠. 그리고 지금은 시절이 바뀌어서 예전에는 그렇게 말씀을 어른이 하시면 실제로 멈추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여러분 세대 같으면 택도 없죠. 그냥 그냥 스톱이죠. 그러고 보면 인간 세상이라는 게 진짜 재미있어. 그렇게 간을 보고 맞춰보고 살아도 깨지는 거는 지금 더 깨지고, 예전에는 그냥 그냥 한 두어 번 보고 결혼하신 분도 여기 있을걸. 그래도 안 깨지고 잘 살아요. 그러니까 맞춘다고 뭘 꼭 해결되는 것 같지 않아, 이게 진짜 랜덤 박스 같아요. 그리고 요즘은 너무 맞춰서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데 지금은 부모님이 왜 저한테 그걸 물어보시냐면 당신도 아마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는 걸 인지하고 있을 거예요. 근데 답답해서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 이유는 지금은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그거를 대놓고 자식에게 말할 수 없어. 대놓고 자식에게 말했다가 자식이 끝까지 밀어붙이면 그걸 어떻게 처리할 거야? 분위기만 쎄 해지면서 이제 문제가 터지거든요. 근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습니다. 뭐가 있냐면, 부모님이 내가 데려갔는데 아니라고 했을 때, 내가 수용하는 거는 집단 의식이 더 강한 거예요. 집단 의식이 강한 거예요. 그리고 지금 같은 경우는, 개인 의식이 더 강한 거예요. 어차피 내가 살 건데 부모님이 살아주실 것도 아니잖아요. 그것도 말이 돼. 그런 상황에서 “내가 올바르다고 선택하고, 내가 책임을 질 건데, 내가 한두 살도 아니고, 그리고 예전같이 무슨 철없이 결혼하는 상황도 아니고, 30이 넘었는데 이게 내가 책임지면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얘기했을 때 할 말도 없어. 그 얘기는 뭐냐. 집단주의적인 구조에서 개인주의적인 구조로 바뀌었다라는 걸 알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은 부모님도 눈치를 봐. 그러니까 해주기는 싫은데 저한테 와서 그 얘기를 했을 때는, 대부분 99%는 해주기 싫은 거야. 그러면 저는 뭐라고 대답하는지 아세요? 함부로 나서지 마세요. 가족 간에도 너무 골이 깊으면 회복되지 못합니다. 천륜이라는 게 쉽게 안 끊어지는데, 거기서 너무 브레이크를 잡아놓으면 나중에 돌파당했을 때, 그리고 또 돌파를 안 하고 양보했을 때도, 나중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때 ‘내가 그걸 밀어붙였어야 되는데’ 또 이 생각을 해요. 이게 참 피곤하다고, 해법이 있느냐. 없어요. 그리고 사람은 잃은 것에 대한 어떻게 보면 아쉬움이 더 커. 그때 내가 그랬으면. 안 산 땅하고 비슷하지. 그때 내가 딴 거 다 필요 없고 서울 사시는 분들은 그 생각 많잖아. ‘다 필요 없고 뭐 한다고 저런 걸 샀는가 몰라.’ 이러면서 ‘그냥 강남 개발하기 전에 땅이나 좀 사놓을 걸.’ 저희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강남이 강남이 아니었었어요. 서울이 커지고 있을 때였거든. 제가 그걸 현장에서 목격하고 있었잖아. 서초동은 화훼단지였었어요. 그런 데 사는 애들 학교 오면 코찔찔이 좀 같이 놀면 안 됐었어. 좀 떨어지는 애들이었어. 그리고 서울은 어떻게 돼 있었냐면, 사대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부심이 있었어. ‘내가 우리 집이 사대문 안에 있는데 뭔.’ 이런 게 있었어. 그러니까 서울이라고 하는 개념이, 토박이 개념이 사대문 안에 있었어요. 그래서 사대문 밖에 있으면 약간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지. 그러면서 여러분도 무슨 생각을 하냐면 ‘그때 조금 조금 내가 복잡하더라도 그때 땅을 샀으면, 다 필요 없는데 이게 지금.’ 이게 진짜 제가 그 얘기하잖아. 칠성사이다, 칠성사이다를 그렇게 많이 팔아먹었는데 칠성사이다 팔아먹은 이익보다 테헤란에 있는 공장 파니까 그 돈이 더 많더라. 어. 야 그거 참 진귀하지. 그래서 그런 식으로, 그런 식으로 참 안타깝다라는 생각들을 할 수도 있는 게 인간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큰 선택에서 일이 잘못되면, ‘그때 저 어른이 나를 안 막았으면’이라고 하는 원망으로 돌아와. 그래서 참 이게 처리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그런데 유교 룰에서는 이거는 제가 늘상 얘기하는 게 있어. 정답이냐가 아니고,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한 게 이들이 생각한 거랑은 달라요. 그러니까 유교에서 생각하는 문화, 그다음에 불교에서 생각하는 문화, 그다음에 기독교나 이슬람에서 생각하는 게 다 달라요. 그래서 그냥 단적으로만 얘기하면, 저는 사실 요즘 자살 문제 이런 데 관심이 되게 많거든요.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어요. 자살, 자살을 어떻게 처리할 거냐. 예를 들어서 기독교나 이슬람은 자살하면 지옥 갑니다. 영구 지옥입니다. 한 번 지옥 가면 영원히 가는 거예요. 이유는 뭐냐. 신이 부여해 준 건데, 생명을 부여했는데, 니가 스스로 끊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뭐하고 똑같은 거냐면, 은행원에게 돈을 맡겼더니 자기가 알아서 쓴 거야. 지 용도로. 횡령이죠. 그렇게 하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불교는 사실 자살이 별 문제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거는 내 업에 의해서 내가 만든 내 거예요. 그래서 자살에 대한 관점이 서로 약간 달라. 서로 약간 달라. 그게 종교 문화들이 각각 생각하는 것들이거든요. 유교에서는 자살하면 그거는 대역죄입니다. 부모를 계승하고 있는데. 그래서 그래서 예전에 그런 자살을 하면, 자살을 하면 진짜 그거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당연히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기도 하지만, 굉장한 불효로 동시에 문화권마다 다른 거예요. 근데 왜 요즘 자살에 대해 생각이 있냐면, 너무 오래 사는 세상이 돼서 이게 존엄사 문제예요. 사실은 젊은 사람의 자살의 문제가 아니고. 저번에 이제 뉴스에 그것 때문에 대서특필을 한 번 했죠. 네덜란드 총리 지내신 분이 연세가 너무 많다 보니까 이제 좀 오락가락하시게 된 거예요. 그래서 부부가 다 존엄사를 선택을 해서 갔죠. 한국 사람들도 지금 스위스에 가서 존엄사를 선택해놓고 돈 내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100명이 넘어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처리할 거냐. 쌩쌩할 때 자기 의지대로 판단할 수 있느냐, 이게 종교마다 판단들이 달라요. 종교마다 판단이 달라. 그래서 이런 식으로 각 종교들이 어떤 식의 생각들을 했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들이 있어요. 근데 유교는 <다 연결돼 있다>라고 판단을 해요. 그리고 그 유교가 연결되어 있는 것은 죽은 뒤에도 연결이 된다. 그 얘기를 하려고 지금까지 왔어. 아 힘들다.(박수)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거 옛날 방식이야. 하지 마. 그래서 지금 돌아가신 뒤에도 불교나 기독교는, 기독교는 어떻게 돼 있는 거냐면 사람이 죽고 나면, 걔네 자꾸 뭐 천국 지옥 간다는데 가는 거 아닙니다. 그냥 시체 상태로 묻혀 있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가 재림할 때까지 계속 대기타고 있다가, 그때 판단이 결정이 돼서 끝나는 거예요. 그래서 유럽에 가면 그 카타콤도 많고 그다음에 성당 옆에 무덤들이 그렇게 다 대기 타고 있는 거예요. 그게. 그래서 기독교나 이슬람에서는 화장을 하면 사실은 영원히 소멸되는 쪽으로 가요. 그래서 걔네는 무조건 매장 문화를 해야 되고, 유교 같은 경우는, 죽고 난 뒤에도 그 영혼이 사라지지 않아요. 언제까지? 여러분들이 기억할 때까지. 여러분이 기억할 때까지. 기억에서 잊혀지면 거의 사라집니다. 사후 세계가 없습니다. 유교의 문화권에는 사후 세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눈에 안 보이게 이 세상에 같이 존재한다>라고 생각을 해요. 단지 형질이 약간 성글어서 마치 구름 같은 거야. 그래서 우리 주변으로 통과가 되는 거죠. 그리고 우리가 잘 인식을 못한대. 아니 그들은 그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들은 그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에너지는 언제까지 존재하냐면, 마치 관성의 법칙처럼 기차가, 달리던 기차가 멈춰 섰을 때 한 1kg 정도 이상 이렇게 진행을 하거든요. 그 힘을 브레이크를 걸어도 더 이상 안 되는 거예요. 그것처럼 살아있는 세월에 준해서 그 에너지가 넘어갑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어디까지 간다라고 생각을 하냐면, 그 후손들이 기억해 주는 것까지 가요. 그래서 그게 4대 봉사까지 대부분 얘기를 하거든요. 그러니까는 증조부, 고조부까지. 5대 이렇게 얘기는 안 합니다. 불교는 되게 재미있게 칠대를 얘기합니다. 불교는 칠대조를 얘기합니다. 그거는 인도 문화에서는 니 혈통이, 인도 귀족 문화에서 네 혈통이 얼마나 청정한가를 증명할 때 나를 포함한 7대를 변증해야 되기 때문에 그래요. 내 위로 그러니까 내 위로 6대가 순혈이어야, 그러니까 거기에 잡피가 안 섞여야 그래야 내 정당성이 강조된다. 유지된다라는 생각이 있어서 인도 문화에서는 칠대를 강조하는 거고. 그래서 부처님도 조상이 7대까지 나오는 거고, 그다음에 불교 안에서도 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 석가모니불 해서 7대가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그런데 동아시아는 기억해 주는 사람, 고조 정도까지 볼 수 있어요. 진짜 열심히 일찍 결혼하시면 장손은 고조 정도까지 볼 수 있어요. 그래서 기억해야 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뭐냐면, 유교에서는 사진을 안 쓰고 그러니까 초상화를 안 쓰고 위패를 쓰죠. 그러니까 글씨만 있기 때문에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야 감응할 수 있어요. 그리고 같은 피만 감응이 돼요. 그러니까 피가 통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 혼을 부를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 주변에 있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있기 때문에, 이 양반이 배고플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밥을 줘. 되게 재미있는 거예요. 돌아가신 분에게 밥을 준다는 게 우리가 익숙해서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거지. ‘야 죽은 사람이 밥 먹냐.’ 서양 사람들이 보면 되게 재미있을 거예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재미있는 거, 어느 시점이 되면, 자기가 이렇게 절하던 후손이 밥 먹는 역할을 대신합니다. 그래서 숟가락을 자기가 떠 놓습니다. 자기가, 자기가 떠 놓고 자기가 또 절을 해. 1인 2역을 해. 1인 2역을. 옆에 사람이 할 수 있느냐? 하면 안 됩니다. 제주가 해야 되는 거예요. 왜 피가 통하는 사람이. 피가 통하는 사람이. 예전에는 제가 그런 얘기도 해드렸는데, 예전에는 후손 중에서 가장 닮은 애를 그 제상에 앉혔다니까. 그걸 시동이라 그래요. 그러면 진짜 리얼하게 “지금 먹어.” 그럼 걔가 먹어. 먹어. 그렇게 했었어요. 원래 제사가 예전에. 공자 때도 그랬어요. 그래서 공자 죽고 났을 때도 뭐라고 얘기가 있냐면, 제자들이 공자하고 닮은 제자 중의 한 명을 세워서 우리가 제를 모시면 어떠냐 이 논점이 벌어져요. 그랬더니 “야 우리 선생님을 대신할 분은 없다.” 이런 반론이 제기되면서 결국 무너졌다고. 공자 때도 그런 문화가 있구나라는 걸. 그래서 혈통과 연결해서 여기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돌아가신 분의 집을 지어드리는 게 사실은 저 위폐입니다. 그래서 위에는, 원래 제가 눈이 나빠서 정확하게 지금 잘 안 보이는데, 저 밑에 조금 큰 거 큰 거 이렇게 보시면 저게 집 모양이에요. 기와집 모양. 기와집 모양. 그렇게 해서 저게 원룸이죠. 원룸, 원룸. 이렇게 쭉 조금 많이 내면 투룸으로. 원룸으로 이렇게 딱 해가지고. 아니야 되게 재미있어요. 살아있는 사람에게 똑같이 해준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래서 처음 돌아가시면 3년 동안은 밥을 떠 놓고 곡을 합니다. 근데 난 그거 곡하는 건 내가 별론데. 내가 죽은 입장이면 밥 떠 주는 거는 그렇다 치고, 그건 습관 때문에 먹는 거예요. 그거는 내가 먹어야 돼서 먹는 게 아니고, 습관 때문에 먹는 거예요. 그거 있잖아요. 여러분들 ‘팔 잘리면 잘린 팔이 가렵다’ 이런 거 들어보셨어요? 그것도 어떻게 보면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사실은 팔이 이렇게 급격하게 잘리면, 그게 이제 의학적으로는 다르게 생각해요. 근데 저는 어떻게 생각하냐면, 영혼은 이 팔 상태로 있는 거야. 그래서 여기서 감각이 남아 있는 거야, 아직. 그리고 이게 좀 오래돼서 내가 팔이 잘렸다라는 걸 계속 인지를 하면 이게 이렇게 작아져, 작아져. 그리고 죽고 나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팔 없는 귀신으로 나와. 자기가 팔이 없다고 생각해. 이게 고정관념인데 되게 재밌어요. 그래서 그런 귀신들의 팔을 회복시켜주는 방법, ‘너 죽었어’를 반복적으로 가르쳐주면 팔이 회복돼. 되게 재밌어. 늙어서 돌아가시면 늙은 모습으로 나와요. 되게 재밌어. 그냥 젊게 해도 될 건데, 굳이 리즈 시절로 돌아가세요. 그래서 저렇게 집에 모셔놓고 저건 영혼의 집이에요. 그래서 잘 나가는 분들은 사당이 따로 있는 거고, 그러니까 생활하는 공간 안에 그 옆에 사당을 모셔놓고 있는 거고. 그리고 이제 형편이 좀 어려우신 분들은 집을 놨다가, 만들었다가, 가설했다가 없앴다가를 반복하는 거예요. 아니 그렇게, 산 사람도 살 집이 없는데, ‘야 돌아가신 분 집이 어디 있냐’ 이렇게 되는 경우도 있는 거고. 그래서 처음에 3년 동안은 음식을 공급한다라고 하는 게, 그분이 습관이 남아 있기 때문에 거기에 준해서 맞춰주는 겁니다. 맞춰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그 얘기 있는데 여러분들 이런 얘기 들어보셨어? 저도 그런 거를 옆에서 보면서 참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제가 꼰대라서 그럴 수도 있어요. 제가 놀랍게도 거의 맨 마지막 서당 출신일 거예요. 저희 조부님이 서당 훈장이었었기 때문에. 그래서 보통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보통 뭐라고 얘기하냐면, 그 일이 내 뜻에 안 맞더라도 3년은 한다. 그 3년은 언제나 만 3년 아닙니다. 햇수 3년입니다. 3년상, 이러면 햇수 3년입니다. 3일장 하면 날로 3일인 거야. 만 아니에요. 절대. 이 문화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태어날 때 한 살을 먹고 나오는 거야. 이게 다 동일 룰이거든. 그런데 지금은 이제 좀 헷갈리게 됐지. 그 동일 룰로 다 안쳐주니까. 이게 룰들이 있어요. 그렇게 해서 3년 동안은 그 부모가 하시던 일을 내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그냥 유지시키고 바꾼다. 이게 유교 룰이에요. 우리 부모님이 약간 이상한 행동을 해놨어. 그냥 내가 볼 때는 그분은 그게 맞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3년 동안은 고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게 기본 룰이에요. 왜 그때까지는 이분의 에너지가 강하게 남아 있다라고 보기 때문에. 근데 요즘은 그냥 휙휙 바꾸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거는 조금 어른을 생각하면 저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근데 말하면 꼰대가 돼. 말하면 꼰대가. 아 그래서 “제사 같은 경우도 어떻게 합쳐야 돼요?” 이런 거 물어보시는 분 되게 많거든요. 근데 “저는 특별하지 않으면 3년까지는 해드리고, 해드리고 움직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보통 그렇게 말씀을 드려요. 왜? 크게 힘들지만 않으면, 크게 힘들지만 않으면, 그래서 3년 동안은 음식을 드리고 그다음부터는 이제 그쪽 세계에 적응하는 거야. 내가 팔이 잘리면 처음에는 팔이 있어서 팔에 대한 감각이라든지 이런 게 눈 뜨고 있을 때는 그 감각이 잘 안 느껴질 수 있는데, 꿈속에서는 팔이 그대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요게 영혼이 이렇게 수축돼 들어가면 언제 완료가 된다라고 보시면 되냐면, 꿈속에서도 내가 외팔이로 나오면 내 고정관념이 다 바뀌었구나, 형태가 바뀌었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이런 귀신에 대한 얘기를 자꾸 하면 솔깃하기는 한데, 사람이 너무 좀 미신적으로 보여. 그래서 많이는 안 해줄 거야. 이런 얘기 저한테밖에 못 듣는 그런 얘기들이 있는데. 근데 여러분들은 사실은 들어두는 것도 도움이 돼요. 왜 얼마 안 남았어. 미리 선행학습을 태교라고 생각하고 잘 들어주시면. 그렇게 해서 저 집 안에 이렇게 들어가 있는 거고, 들어가 있는 거고. 제가 그 얘기하는데 진짜 FM으로 만들어진 위폐에는 위아래에 구멍이 뚫려 있다. 그게 영혼이 출입하는 통로예요. 그리고 저기에만 구멍이 뚫린 게 아니고, 원래는 스님들 가사도 FM으로 만든 가사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요. 통문불(通門佛)이라고 해서, 한쪽 끝에서 한쪽 끝으로 콩이나 팥이 이렇게 지나가도록 되어 있어요. 미로같이. 그리고 예전에 신라 범종을 보면 위아래가 뚫려 있어요. 그것도 <부처님이 내려온다>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게 유교적인 관점에서 열반에 든 부처님이 온다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시할 때도 우리가 어떻게 보면 부처님을 모시는 의식을 하는 거거든요. 룰이 섞여 있어서 약간 헷갈릴 수도 있는데 유교 룰이 생각보다 단순해요. 그렇게 해서 존재한다라고 보고, 그 존재하는 기간이 4대 봉사 정도까지 가는 거고, 빡시게 존재하는 기간 적응 기간 그러니까 내가 유학을 갔어. 그럼 적응 기간이 3년이야. 이해가 되세요? 그 적응 이제 어학 연수도 해야 되고, 이렇게 한 3년 잡히는 거야, 만 3년 아니고요. 햇수 3년. 그렇게. 그래서 그 기간 동안은 예전에는 공양을 계속 음식을 놔드렸고, 그리고 부모님 일은 바꾸는 게 아니고, 왜냐하면 그 어른이 보고 있다가 서운해할까 봐. 저는 그게 타당하냐를 떠나서 그런 마음은 굉장히 귀하다고 생각해요. 그건 자식의 어떻게 보면 도리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합리적이래도, 불편을 감수하면서라도 어른의 말을 따라주려고 하는 게 어떻게 보면 자식 된 자의 기본 도리고, 효의 근본이다라는 생각을 해요. 편의적이고 합리적이고 그다음에 타당한 가치만 따지면 인간의 관계성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느냐라는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래서 한 3년 동안은 저렇게 모셔드리고 그다음부터는 이제 적응을 하기 때문에, 당신도 적응을 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냥 제사한 날만 이렇게 드리는 그렇게, 그렇게 드리는 그런 방식으로 하고, 더 오래되면 기리기는 기려야 되지만 이미 흩어졌어요. 이게 유교의 귀신은 영구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신멸론(神滅論)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죽고 나서 내가 그 잠재적으로 약간 관성의 법칙처럼 에너지가 존재하지만, 동인은 사라졌기 때문에 결국 흐트러져요. 그래서 주자가 뭐라고 얘기하냐면, “만약에 흐트러지지 않고 귀신이 계속 누적만 된다면 유사이래 귀신들이 꽉 차서 귀신들은 못 돌아다닐 거다.” 되게 재미있는 얘기예요. 주자는 그렇게 생각했다니까. 이게 뭔 헛소리인가 싶은데, 그래서 결국 흐트러진다, 흐트러진다라고 생각해. 마치 구름이 흐트러지고 뭉치고 비가 되고 다시 만들어지고 흐트러지고 하듯이, 그렇게 순환하듯이. 그리고 인간의 영혼은 부모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라고 생각해요. 유교에서는, 유교적 생각은 그래요. 그리고 죽은 뒤에도 마치 살았을 때 부모가 자식의 아니면 손자의 태몽을 대신 꿔주듯이 그런 식의 연결고리가 존재한다라고 생각해요. 죽은 뒤에도 불교처럼 다른 세계로 넘어갔어요. 다르게 환생을 했어요. 이러면 작동하지 않습니다. 서로 간의 연결 관계는. 하지만 죽은 뒤에도 계속 존재하고 있으면서 나와 연결 관계가 존재한다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부모님이 아무래도 나쁜 데 있으면 안 좋은 영향을 받고. 제가 그런 거 생각을 하는데, 지금은 100% 그렇지 않은데, 여러분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어떤 문화가 있었냐면 출가외인이라 그래서 결혼하면 완전히 단절이에요. 그때 시집 갈 때, 진짜 잔인한 얘기인데, 딸한테 하는 얘기가 있었죠.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라>, 그거 진짜 잔인한. 근데 요즘은 이제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이러면서, 돌아오죠. 죽어도 그 집 귀신 들어봤잖아. 여기에는 아마 시집 갈 때 들어보신 분도 있을 거야. 그리고 그쪽에 완전히 너는 편입이 돼야 되기 때문에 흐름 자체가, 기의 흐름 자체가 바뀐다 그래요. 그래서 시집 가면 팔자가 바뀐다 그래. 팔자가 바뀐다. 그쪽 소속의 에너지로 니가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쪽 성씨의 사람들이 새로 들어온 사람을 이제 조금 이렇게, 조금 이렇게 왕따를 시키고 이렇게 하죠. 그게 이제 시집살이가 되는 거고, 룰은 그렇게 돼. 룰은. 그렇게 해서 굉장히 좀 약간 힘든 상황들이 됐어. 힘든 상황들이 됐어. 하지만 친정이 번창하면 내가 친정에서 돈을 갖다 쓰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더라도, 사람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가 당당해. 근데 아버님이 사업하시다가 잘못해서 내 친정이 무너졌어. 그러니까 내가 뭘 후원을 받고 있었던 것도 아니야.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무너져버리면, 사람이 위축되고 힘들어져요. 왠지 우울해지지, 계속. 그게 인간 아니겠어요. 그래서 돌아가시고 난 상황 속에서도 돌아가신 분이 평온하고 행복하면, 그 에너지가 공유되기 때문에 연결돼 있다라는 생각인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 일들이 조금씩 잘 되고, 그러니까 조상을 잘 모시면 후손이 발복한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거고. 조상이 안 좋은 데 가 있으면 나를 자꾸 끌어내리는 거지. 누군가 보이지 않는 발목을 잡는 거지. 결초보은이라는 얘기 들어보셨어요? 결초보은. 되게 재밌는 얘기인데 은혜를 갚을 때 죽어서, 전쟁터에 나갔는데, 전쟁터에 나갔는데 상대 장군이 너무너무 대단한 사람이 나왔어. 그래서 내가 분명히 질 수밖에 없는데 걔가 발을 잘 못 움직이면서 결국 스텝이 꼬여서 나한테 죽었어요. 그런데 그 옆에서 누군가 무당 같은 사람이 보고 있으니까 귀신이 자꾸 풀을 묶는대. 풀 묶는 거 아세요? 우리 어렸을 때 그런 거 했었는데. 쓸데없는 짓이에요. 그냥 산에 가면 잡풀 같은 거 이렇게 있으면 그 풀을 묶어. 풀을 묶으면 이렇게 터널같이 되거든요. 그러면 그냥 재미삼아 묶고 발로 차서 끊고 이런 거 하고 있었어. 그게 놀이야. 놀이. 별것도 아니야. 안 해보신 분들은 행복하신 분입니다. 그렇게. 근데 그 무당 같은 사람이 보니까, 어떤 귀신이 계속 풀을 묶어서 그 사람의 발을 방해하고 있더래. 그런데 그 전쟁터에 나갔던 그 사람이 그 집 자식을 살펴줬어. 그래서 그 부모가 너무 감동해서 ‘죽은 뒤에라도 내가 은혜를 갚겠습니다’라고 죽어서, 그 고사가 결초보은이에요. 풀을 묶어서 은혜를 갚는다. 결초보은은 들어봤어도 처음 들어봤지. 결초보은는 지금은 어디서 들어봅니까? 보은에 대추 사러 가면 결초보은. 보은 대추. 이렇게 그렇게 해서, 어 조상을 잘 모시면 후손이 발복하고. 그리고 인생이라는 게 제가, 제가 살아보면 제가 참 제가 늘상 얘기하는 거 있어요. 나는 150을 노력해야, 한 100 정도의 점수가 나온다. 사람들이, 우리 어른 스님들이 저한테 “너 너무 나대는 거 아니냐.” 나대지 않으면 존재감이, 이게 누가 어떤 놈이 봐주는 사람이 없어. 진짜 슬프다. 끊임없이 내가 살려고, “너는 공부가 취미냐?” 취미가 아니고 살라고, 살려고 했다. 누구는 논문 쓰는 게 쉬운 줄 알아? 나도 힘들어. 나도 잠 못 자고 쓰는 거야. 근데 왜 그러면 그렇게 해야 되느냐. 쉬운 얘기를 하고 싶으면 논문 양을 줄이면 안 돼요. 논문 양을 줄이고 쉬운 얘기를 하면 그다음부터는 실력 없다라고 그래요. 이게 참 인생 치사하다. 박사 논문 하나에 있을 때는 “뭐?” 이러길래, 여러 개를 만들었더니 “넌 전공이 뭐냐? 전공이 불분명하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얘기했냐면 “각각 전공으로도 너네보다 내가 실적이 더 많다.” 내가 이렇게 얘기했거든. 그랬더니 “다전공자를 원하지 않는다.” 이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리지. 이거 되게 재밌어. 그런 거 진짜 아픔을 당한 얘기를 하면, 여러분들 진짜 정상적으로 못 가요. 그러니까 여기 폭풍에 어떻게 보면, 저 앞에 진관사 개울물을 다 채우고도 남을 거다. 그런 슬픔이 있어. 그래서 인생이라고 하는 거는 그거는 노력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저는 노력이라고 하는 부분을 높이 평가해요. 그리고 노력, 끝까지 노력한 사람에게 후회는 없어. 할 만큼 한 사람에게는 후회가 남지 않아. 그게 떳떳함, 노력한 사람의 떳떳함이야. 그런데 그렇다고 팔자가 피느냐? 그건 아니야. 그건 아니야. 그래서 팔자가 피는 거는 마치 뒷장과 같아. 고스톱판의 뒷장과 같아. 그 뒷장을 누가 책임져주느냐. 그게 이제 세 가지가 있는 거예요. 세 가지. 제가 늘상 말씀드리는 세 가지, 불교에서는 그거를 부처님께 기도를 하면 그게 명훈가피(冥薰加被), 보이지 않는 가피가 있는 거예요. 우리는 이게 없어. 그래서 될 듯 될 듯 이렇게 미끄러져. 우리 선생님이 그랬다니까. 지금 동대 총장 하시는 윤재웅 선생님이 저한테 뭐라고 그랬냐면, <얼음에 박 밀듯이>, 그 양반 국문학 하시는 어른이라서, 참 비유를 진짜 들으면서도 웃겼어. 얼음에 박 밀듯이 나아가래. 살살 진짜 조심해서. 조금만 삐끗하면 이렇게 밀린다는 거예요. 살살 밀고 가래. 불교식으로는 그걸 유발봉지라고 하는데, <발우에다가 기름을 찰랑찰랑하게 딱 받아가지고 안 흘리고 가게> 이렇게, 이렇게 얘기하는데, 얼음에 박 밀듯이 가래. 근데 저는 결과적으로 다 안 좋았고요. 당신은 총장이 되더라고. 그래서 영험한데, 영험한데. 내가 이랬거든 난 총장 나왔을 때 ‘이 어른이 왜 나오지.’ 이랬는데, 보고 있을까 봐 내가 차마 말을 못하겠는데, 제 지도 교수님이라 제가 이렇게 아는데 ‘왜 나오셨지.’ 이게 야 이게 인생인가, 이게 인생인가, 이게 뒷장이구나. 이게 뒷장이구나. 우리는 앞장만 신경 썼는데. 뒷장, 그게 불교식으로는 명훈가피, 그게 있으면 인생이 편해요. 분기점에서 이걸 선택하거나 이걸 선택하나 진짜 차이 없을 때, 이게 선택되는. 왜 그거 있잖아. 통밥 딱 이렇게 시험 문제 하다가, 이거 아리까리 둘 중에 하나, 이때 지금 이제 신기 만랩을 딱 올려갖고 했는데 신기는 개뿔, 이렇게 되는 경우가 있고, 그게 기가 막히게 들어가. 내가 이 신기를 진짜 엄청나게 느꼈을 때는, 이런 얘기 해봐야 분위기 안 좋을 것 같은데, 예전에 그 지뢰찾기 게임할 때 언제 한 번은, 언제 한 번은 반드시 이게 애매한 상황에 봉착해 큰 판을 하면. 죄송합니다. 여러분 지뢰 찾기 안 해보셨을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 게 있고. 조상과 관련해서 유교에서는 뭐라고 얘기하냐면 조상의 음덕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음덕. 그래서 음덕이 있으면 그게 이제 양보가 생긴다. 그래서 이게 집단적인 의식이에요. 집단적인 의식. 그래서 주역에 보면 그것도 굉장히 재미있는 말이에요.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고, 그 주역 계사전에 나오는 말인데, 적악지가 필유여앙(積惡之家 必有餘殃)이라고, 선을 쌓은 집에는 분명히 남은 경사가 있고, 악을 쌓은 집에는 남은 재앙이 있다. 되게 재미있는 게, 개인인데 이건 개인주의가 아니고, 집단주의를 표현하는 문화예요. 그 반원입니다. 그래서 조상을 잘 모시면 그 은덕이 후손에게 잘 풀리는 걸로 그러니까, 음덕이 양보의 결과를 가지고 오고, 그리고 그렇게 못했을 경우에는 이제 문제가 좀 생길 수도 있다. 그게 꼭 그렇게까지 중요하냐.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지만 사지선다형에서 2개는 아닌 거 분명하고, 둘 중에 하나 이거 꽂아야 될까? 저거 꽂아야 될까? 막 머리 쓰고 있을 때, 그때 통밥을 찍었는데 맞느냐 틀리느냐로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이 돼요. 그러니까 생각보다 큰 겁니다. 적지만 초격차라고 하는 거예요. 그거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서 크게 힘들지 않으면 조상을 모시는 것도 문화권적 관습상으로는 굉장히 괜찮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여기는 뿐만 아니라 수륙사잖아. 그러니까 수륙재 천도, 국가에서 지정하는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국가적인 행사를 주관할 때 찌리한 데 쓰지 않습니다. 나름 다 검토를 하고, 이 절에서 하면 그건 국가 차원에서 굉장히 유리하겠다라는 생각에 판단이 섰을 때 그렇게 하는 거예요. 진짜예요. 진짜. 그거는 당연한 거지. 지금도 국책 사업을 하는데 아무나 선정해서 주지는 않잖아. 나름 다 여러 역량들을 보고, 그리고 그때는 뭘 보냐 하면, 이제 터가 어떠냐라는 걸 보죠. 영험한 터냐. 그래서 여기 같은 경우는 어떻게 보면 백중을 하면 가장 좋은 터에 조상들을 천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그런 상황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그 얘기 되게 좋아해요. 부처님 말씀에 아나율이 부처님 제자 중에 아나율이 장님이거든요. 장님이거든요. 장님이 되는 사연이 되게 재밌죠. 부처님 법문 때, 법문하실 때, 졸다가, 졸다가 욕 태바가지로 먹고 장님이 됐어. 장님이 돼. 저는 이해합니다. 인도가 45도, 55도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그때 아열대 습해요. 졸리지. 그렇게 해서 장님이 되고, 나중에 가사 옷을 기워야 되는데, 꿰매야 되는데 이걸 못 꿰매죠. 그러니까 “누가 나를 위해서 옷을 기워주고 복을 짓겠는가”라고 얘기를 해요. 나중에는 이제 수행을 열심히 해서 깨달음을 얻었잖아. 그래도 눈이 좋아지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우니까, 기워달라 이러니까, 부처님께서 그걸 기워줘요. 그래서 “부처님이 제 옷을 기워주시는 거는 맞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랬더니 부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복은 많을수록 좋은 거고, 복은 많을수록 좋은 거고, 나는 복 짓는 게 버릇이 돼 있다.” 부처님을 복해왕양(福海汪洋)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복이 앞서고 그다음에 지혜입니다. 저는 그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복이 있어야 돼. 지혜만 있으면 허덕여요. 힘들어. 머리 좋고 힘든 인생이 펼쳐져요. 그런데 복이 있으면 제가 얘기하잖아. 돈 벌 필요가 뭐 있냐. 공부 열심히 해서 무슨 시험 볼 필요가 뭐 있냐. 태어나니까 만수룬데. 사람 부리면 되지. 그거 필요 없어. 필요 없어. 그래서 복이라고 하는 것은 어른을 잘 모셔서 지금 후손이 발복하는 것도 있지만, 죽을 때 나를 따라갈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복밖에 없대. 저는 그 얘기는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죽을 때 니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가족이나 재산은 언젠가는 놓고 갈 수밖에 없는 거고, 내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 그것은 내가 쌓아온 고정관념 습관, 그걸 불교에서는 업이라 그래요. 제가 그 얘기하잖아. 꿈속에서 자식이 바뀌어도 못 알아보고, 남편이 바뀌어도 못 알아보지만, 그런 상황들도 연출되지만, 꿈속이라고 해서 영어 쓰지 않는다. 한국말만 하더라라고 하는 거예요. 굉장히 재밌는 거야. 그래서 내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투자해라. 그러면 현세적 가치는 다 무가치하냐? 안 그래요. 현세적 가치도 중요하고 내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거에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다. 왜? 사람은 여기서만 계속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저쪽에 지금 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런 걸 보고 뭐라고 얘기하냐면 분산 투자라고 하죠. 포트폴리오를 맞춰서 적절하게 재산을 잘 배분한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거는 언제 해야 되는 거냐 하면, 젊었을 때는 현세적 가치에 더 집중을 하고, 연세가 드시면 후손과 그다음에 내 자신에 대한 투자를 해야 돼요. 그 복만이 나를 따르면서,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안 좋은 일에서 갑옷 같은 역할을 해줍니다. 다른 것들은 언젠가는 다 쓸려갈 것들이고, 내가 마지막 떠날 때 내 가족이 배웅을 해줘요. 하지만 그 뒤부터 걸어가는 길에서는 내 복밖에는 내가 의지할 것이 없어.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상 투자를 해야 되고. 그래서 오늘 백중 2재를 맞아서 여러분들께서 조상을 잘 섬겨서 발복하시기를 기원드리고. 그다음에 불교에서는 그렇게 얘기해. 유교에서는 내 후손이 발복한다, 나와 내 후손이 발복한다 그렇게 얘기하고, 불교에서는 그렇게 얘기해요. <조상을 잘 모시면 7분의 1은 조상에게 가고, 7분의 6은 내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그 두 가지를 좋은 거는 아울러서 이렇게 계산을 하고, 안 좋은 거는 대충 무시하고, 이러면서 인생을 행복하고 보람되게. 그리고 여러분들은 이런 좋은 도량에서 우리 스님들 모시고 이렇게 재를 올릴 수 있다는 것도 참 복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여기 같이 떡상하는 기운이 있는 절도 없는 것 같아요. 전국에서. 제가 진짜 그런 생각이 들어. 여기 우리 스님들 사시듯이만 봉은사가 해줬으면 조선이 바뀌었다. 근데 참 안타깝게도 우리 비구 스님들이 못하는 거를 우리 비구니 스님들이 이렇게 훌륭하게. 물론 우리 스님들은 얼마나 노동력을 갈아넣고 있겠나 싶은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그게 한국불교의 초석이 되고, 그다음에 신도들의 기쁨이 된다라고 하는 높은 사명감으로 임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말씀드리면서, 오늘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자, 들어줘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