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신중기도] 6월 15일 신중기도 입재 법문 2026-06-15

260615 신중기도 법문 - 종범큰스님

1. 일 시 : 2026년 615(병오년 51) (진관사)

2. 주 제 : 義相祖師 法性偈 이야기 22 - 우보익생만허공

안녕하세요. 오늘이 병오년(丙午年) 5월 초하루, 진관사 법회에 법성게(法性偈) 중에 스물한 번째 게송, 법성게30구 중에서 스물한 번째,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그 게송입니다. 10번을 독송하겠습니다. 시작.

 

우보익생만허공 우보익생만허공 우보익생만허공 우보익생만허공

우보익생만허공 우보익생만허공 우보익생만허공 우보익생만허공

우보익생만허공 우보익생만허공

 

법성게는 화엄경 내용도 되지만 선지식이 깨달은 내용이에요. 선지식이 깨달은 내용. 그러면 선지식이 뭘 깨달았는가? 일체 중생에게 있는 법성본신(法性本身)이 있다. 그걸 깨달은 거예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인연 생신인데, 인연으로 생신, 날 생() , 태어난 몸이다. 인연 생신이 뭐냐, 첫째 부모가 계셨어야 태어났잖아요. 지금까지 먹고 입고 자고 그런 거가 있기 때문에 산 거거든요. 부모와 여러 인연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거예요. 그걸 태어나는 것도 인연이고, 살아온 것도 인연이다. 그래서 그걸 어려운 말로 연생신(緣生身)이라고 그래. 인연에 의해서 태어난 몸이다. 인연에 의해서 살아가는 몸이다. 연생신.

 

그런데 천하 선지식들이 뭘 깨달았는가. 인연이 있기 전도 있었고, 인연이 있은 지금도 있고, 지금 인연이 사라진 뒤에까지 있는 법성의 몸이 있다. 만법의 본성의 몸이 있다. 이걸 깨달은 거예요. 연생신에서 법성신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연생신에서 어떻게 하면 빨리 법성신이 될 수가 있는가. 그래가지고 천수경에서 원아조동법성신(願我同法性身), 그거 기억나세요? 원아조동법성신. 이 말은 뭔 말이냐면, 나는 빨리 법성신과 하나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게 원아조동법성신이에요. 법성신, 이게 법성신은 이 몸이 있기 전에도 있고, 이 몸이 있는 중에도 있고, 이 몸이 사라진 뒤에도 있는데, 그 법성신을 깨닫고, 이제 그다음에 법성신과 연생신이 둘이 아닌 것을 가르쳐요. 그게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이에요.

 

그래서 이제 법성게는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무명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을 그 법성신을 깨달은 내용이다. 그래가지고 그걸 증분사구(證分四句)라고 그래요. ()이라는 건 깨달았단 말이거든요. 증명할 증() , 증명한 내용의 사구다. 증분사구. 그다음에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에서부터 능인해인삼매중(能仁海印三昧中), 그 앞에 게송이 뭐죠? 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 그 십불보현대인경까지가 14구예요. 14. 14구를 교분(敎分) 14구라고 그래가지고, 가르칠 교() , 나눌 분() , 가르치는 내용의 14구가 있어서, 이걸 합치면 18구예요. 증분 사구, 조금 전에 뭐라고 그랬죠? 교분14. 그러면 18구죠. 여기까지가 이제 선지식이 깨닫고 가르친 내용이에요.

 

그런데 깨닫고 뭘 가르치느냐,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는 건데, 그 중생들에게 이익 주는 부분을 이타분사구(利他分四句)라고 그래. 이타분, 이로울 이() , 다를 타() , 나눌 분() , 다른 이에게 이익을 주는 내용 사구다. 그게 이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능인해인삼매중(能仁海印三昧中), 번출여의부사의(繁出如意不思議),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이 사구가 이타분이다. 다른 이를 이롭게 하는 내용이다, 그렇게 가르치고 있어요.

 

증분사구, 교분14, 이타분사구. 그렇게 가르치는데, 오늘은 이타분사구 중에서 제3, 1구가 능인해인삼매중, 2구가 번출여의부사의, 3구가 우보익생만허공, 4구가 중생수기득이익. 이렇게 가르치고 있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우보익생만허공, 여기에 대한 설명이에요.

 

근데 깨닫고 나서 중생들에게 이 법성신을 가르치는데, 법성신을 가르치는 그 가르치는 마음이 해인삼매인 거예요. 해인삼매. 해인삼매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일부러 하는 게 없어요. 그 깊은 골짜기에 가서 소리를 내면, 일부러 노력을 안 해도 메아리가 저절로 울려요. 또 거울 앞에 딱 서면, 내가 일부러 거울 속에 그림자를 집어넣으려고 안 해도 자기 모습이 거울에 그냥 비춰요. 그걸 해인삼매라고 그래요. 내가 물가에 가서 물을 쳐다보면, 내가 물속에 안 들어가도 물속에 내가 있어요.

 

그걸 이제 비유로 해서, 억지로 하는 걸 강위(强爲)라고 그러는데, 강할 강() , 할 위() , 억지로 하지 않아도 본유자성(本有自性)이라, 본래 있는 것이 스스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강위, 본유, 이런 따위의 말을 불교 공부할 때 배워요. 그냥 거울에 딱 가면 그대로 자기 모습이 보이고, 물가에 딱 서면 그대로 자기 모습이 보이는 걸 본유라고 그래요. 본래 있는 거다. 그리고 이제 억지로 하는 거를 강위라 그래요. 억지로 한다. 강할 강() , 할 위() . 강위가 뭐냐, 허공은 본래 있는데, 땅을 파서 허공을 만들어요. 이걸 강위라 그래. 땅 한 삽 뜨면 허공 한 삽만큼 나오잖아요. 굴을 파면 막 허공이 나오잖아요. 그런 거예요. 그게 강위가 아니고 본래 있는 거다. 그러니까 해인삼매인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이 중생 제도 하려고 하는 것이, 우리처럼 막 365일 계획을 짜고, 순서를 정하고, 막 사람 인력을 배치하고,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거울 앞에서 자기 몸 보듯이, 물가에서 자기 그림자 보듯이, 또 달이 뜨면 저절로 물속에 달이 비치듯이, 이제 이런 거를 해인삼매라고 그러거든요. 근데 그 해인삼매가 번출여의가 부사의라, 중생에게 딱 필요한 것이 저절로 드러나요.

 

그래서 이게 참 문제인데, 억지로 하는 건 감흥이 없어요. 억지로 하면, 그냥 본래대로 하면 그게 감흥이 있어요. 이게 뭔 소리인지, 억지로 잘하려고 하면 그거는 감흥이 없어요. 꽃으로 말하면 시든 꽃과 같아요. 거기가 뭐가 하나 섞였거든. 그냥 본래대로 하면 그게 그렇게 감흥이 크단 말이야. 번출여의가 계속 나오는데, 생각할 수 없어요. 그게 부사의예요. 생각으로 되는 게 아니다. 그래가지고 거기서 나오는 무진장한 중생의 이익이 허공에 가득하다. 이게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이라, 비 우() 자인데, 비는 하늘에서 내려오잖아요. 그래서 보물을 내려보내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허공에 가득하다. 이게 우보익생만허공이에요.

 

法記云雨寶益生滿虛空者虛空無邊故世界無邊世界無邊故

법기운우보익생만허공자허공무변고세계무변세계무변고

衆生無邊於此無邊衆生如是之敎無所不被故也

중생무변어차무변중생여시지교무소불피고야

 

그러면 우보익생만허공을 의상 스님 제자 법기(法記)라고 하는 기록에서는, 허공이 무변고(無邊故), 허공은 끝이 없다. 허공은 끝이 없다. 그러므로 세계가 무변하고, 또 세계가 끝이 없고, 허공 안에 세계가 가득하니까, 세계가 무변고로, 세계가 또 끝이 없는 고로, 중생이 무변하다. 그러니까 허공이 끝이 없으니까 세계가 끝이 없고, 세계가 끝이 없기 때문에 중생이 끝이 없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차무변중생(於此無邊衆生), 이 끝없는 중생에, 여시지교(如是之敎), 여시지교라고 하는 거는 화엄의 가르침을, 이 말인데, 화엄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게 뭐냐,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인데, 법성원융무이상이 뭐냐, 범부들이 아는 몸은 연생신, 인연으로 나서 인연으로 살아가는 그 몸만 아는데, 선지식이 깨달은 몸은 법성신, 법의 본성의 몸이다. 그런데 이 선지식이 깨달은 분상에서 보면, 중생의 인연으로 나서 인연으로 살아가는 몸하고, 법성의 몸하고 둘이 없다. 이걸 원융무이(圓融無二)라고 그래요. 둘이 없다. 이게 화엄의 가르침이에요.

 

이게 원융무이, 이게 뭔 말이냐. 못 깨달았을 때는 법성신을 모르니까 이 몸은 죽고 사는 것밖에 없는데, 깨달았을 때는 법성신이 죽고 사는 것이 없다. 그래서 이 몸에, 못 깨달았을 때는 죽는 몸밖에 없는데, 깨달았을 때는 죽음이 없는 몸이 있다. 이게 깨달음이에요. 깨닫지 못한 거는 몸이 죽는 것만 아는데, 깨달았을 때는 죽음이 없는 걸 알아요. 이거 사람 미쳐요. 왜 그걸 또 안 가르쳐 주냐, 알면 가르쳐 주지. 죽음이 없는 몸을. 그 누가 가르쳐 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죽음만 아는 그 생각에게 죽음이 없는 몸이 들어가질 않아. 이게 아주 문제거든.

 

아이고, 부처님이 자비롭다는데 왜 그걸 안 가르쳐줘, 자비가 어디 갔어? 근데 그거는 꿈꾸는 사람에게 꿈 깬 내용을 못 가르쳐줘요. 그럼 꿈 깬 내용을 어떻게 해야 하나, 꿈에서 깨어나야 알아요.

 

꿈에서 깨어나야 알아. 그래가지고 이 법성신하고 연생신하고는, 법성신은 꿈에서 깼을 때 몸과 같고, 연생신은 꿈속에서 꿈꿀 때 몸과 같은데, 꿈을 꿀 때는 완전히 다른데, 꿈을 깨고 나면 같아요. 그래서 꿈 깨고 나면, 지금 저 꿈꾸고 있는 사람이나 꿈 깬 나나 다름이 없어요. 뭔 소리를 제가 뭔 소리를 지금 하고 있는지, 참 이게 헛소리하는 것도 같고, 알쏭달쏭한 소리 하는 것도 같고. 꿈 깰 때는 꿈 꾼 거와 다름이 없어요. 근데 꿈을 꿀 때는 꿈 깬 거하고 달라요. 그래서 못 깨달았을 때는 죽음만 있는데, 깨달았을 때는 죽음이 없는 것이 몸에 있어. 그래서 그 죽는 몸하고 죽지 않는 몸하고 둘이 없다. 둘이 없는 걸 가르치는 게 화엄이에요. 무이(無二).

 

그래서 그걸 법성은 원융하야, 원융이라는 건 통하지 않는 데가 없어서, 무이상(無二相)이라, 두 가지 내용이 없다. 이게 깨달음이에요. 근데 그거를 자세히 또 가르치려고 하니까, 진성은 심심하야 극미묘하다. 불수자성하야 수연성이다. 이래가지고 14구가 펼쳐지거든요. 그래가지고 14구 마지막이 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이다. 그러고 나서 뭐 하자는 거냐, 이제 중생에게 가르침을 펼치는 것이 이렇게 번출여의부사의(繁出如意不思議),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이다, 이거죠.

 

그래가지고 중생이 이렇게 무변한데, 이 둘이 없는 가르침을, 무소불피(無所不被), 어떤 중생에게든지 전해지지 아니함이 없다. 이래가지고 만허공이라고 한다고, 의상 선생님 제자는 여기서 기록에 써놨어요. 둘이 없는 가르침, 둘이 없는 가르침이라는 건 법성원융무이상인데, 죽음만 아는 이 몸하고 죽음이 없는 이 몸하고, 깨닫기 전에는 죽음만 아는데, 깨달은 후에는 죽음이 없는 몸을 안다. 죽음이 없는 몸을 알고 나면, 죽음만 아는 이 인연으로 태어난 그 몸이 법성신하고 둘이 없다는 거예요.

 

참 묘하지 이게. 내가 뭐 잘 할 때는요, 잘 못하는 사람이나 잘하는 나나 똑같아요. 근데 내가 잘하지 못할 때는 잘하는 사람하고 잘못하는 나하고 달라요. 뭐든지 자기가 해보고 나면 안 한 거와 다름이 없어요. 그래서 깨달은 범부나 깨달은 부처님이나 똑같다고 그러거든요. 똑같다는 건 뭐냐, 부처님이 됐을 때 똑같은 거예요. 부처님 되기 전에, 깨닫기 전에는 달라요. 그거를 이제 의상 선생님이 항상 강조했거든요. 꿈을 꿀 때는 꿈 깬 거하고 다르다. 근데 꿈을 깨고 나면 꿈을 꾸는 사람이나 꿈을 깬 사람이나 둘이 없다.

 

이상하긴 이상하네. 좀 이상해요. 이거를 지금 바로 알으라고 막 주먹다짐을 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모를 거 내가 뻔히 아니까. 그런데 이 얘기를 들으면 알게 돼요. 그래서 이것이 우보익생만허공이야. 누구든지 이 화엄에 둘이 없는 가르침을, 중생이 무소불피하고, 그걸 혜택을 입지 않은 사람이 없다. 가르침을 받지 않는 사람이 없다.

 

眞記云 雨寶者約敎云寶也又是衆生受用種種寶物也滿虛空者 진기운 우보자약교운보야우시중생수용종종보물야만허공자 衆生蒙不思議敎則知其不動凡心與法性虛空只是一物本自圓滿故也 중생몽부사의교즉지기부동범심여법성허공지시일물본자원만고야

 

또 의상 선생님 제자 중에 진기(眞記)라고 하는, 참 진() , 기록할 기() , 진기는, 우보(雨寶)라고 하는 것은, 보배를 내려준다고 하는 것은, 약교운보(約敎云寶),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배라고 한다. ()라고 하는 것은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이 왜 보배냐, 그 보배를 통해서 죽음이 없는 법성신을 깨닫게 돼요. 그래서 이익 중에 죽음이 없는 자기 본래 몸을 깨닫는 것이 최고의 이익이다. 그래서 그걸 보배라고 한다, 이렇게 말했거든요. 가르침을. 또 중생이 수용하는 종종 보물이다. 중생이 수용하고 있는, 받아 쓰고 있는, 가지가지 보물도, 이게 다 법성에서 출현한 것이다. 법성에서 나온 것이다, 이거죠.

 

만허공자(滿虛空者), 허공에 가득하다고 하는 것은, 중생이 몽부사의교(蒙不思議敎), 이 죽음이 없는 놈이나 죽음을 느끼고 있는 놈이 둘이 없다고 하는 이 불가사의한 가르침을 입게 되면, 불가사의한 가르침을 내가 받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부동범심(不動凡心), 중생에게는 한량없는 생각이 있는데, 그걸 찰진신념(刹塵信念)이라고 그래요. 중생에게 있는 무한한 생각들, 팔진, () 자가 그게 국토 찰 자거든요. 온 국토의 티끌과 같이 많은 생각이다. 그걸 찰진신념이라고 합니다. 중생은 생각이에요. 생각이 엄청나게 많거든요.

 

그런 찰진신념을 범부심이라고 그러는데, 깨닫고 나면, 그 많은 중생의 생각이,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한 거와 똑같은 거예요. 이건 또 뭔 소린가. 꿈에서 깨고 나면, 꿈에 있는 생각이, 있었던 생각이, 이 꿈을 깼을 때 생각하고 다름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중생에게는 한량없는 생각이 있지만은, 깨달은 다음에는 그 한량없는 생각이 없었던 거다. 이게 참, 이런 거는 이걸 법성게를 연구할 때도 조금 힘들어요.

 

이걸 부동범심이라고 그러는데,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이 말이 있잖아요. 부동이라는 건, () 자는 생겼다 사라지고, 생겼다 사라지고, 이걸 동이라 그래요. 생멸. 생멸을 움직인다고 동이라고 그러는데, 그 마음을 깨닫고 나면, 아무리 많은 생각이 일어나고 아무리 많은 생각이 사라져도, 하나도 안 일어나는 거고 하나도 안 사라진다는 거예요. 그걸 부동심이라고 그래요. 부동심, 일어나는 마음도 없고 사라지는 마음도 없다. 이게 참 무슨 소리인지, 오묘한 것 같기는 같은데, 생각으로 알기는 어려워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루에도 수많은 생각들을 했잖아요. 근데 지금 이렇게 돌아보면 그 생각이 다 어디 갔어요? 하나도 안 일어나고 하나도 안 사라진 거예요. 그걸 부동심이라고 하거든요. 수많은 꿈을 꿨는데 꿈 깨고 나면 없어요. 꿈에 일어났던 마음이 일어나지 않은 거와 똑같다. 이걸 부동심이라고 그래요. 부동. 그 부동의 범심이, 계속 일어나도 한 생각도 일어남이 없는, 그 범부의 마음이, 어제도 많은 생각을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생각들이 간 곳이 없어요. 안 일어나는 거와 똑같아요.

 

그래서 생각이 일어나는 걸 가지고 움직이면 큰일 나요. 생각대로 움직이면 큰코다쳐요. 그 생각을 조용히 맑혀야 돼요. 누가 밉다고 해서 쫓아가서 복수를 하면, 그게 생각이거든요. 그것이 큰 화를 불러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냐, 미운 생각을 조용히 맑혀야 돼요. 그러면 복수 안 해도 내가 편안히 행복해져요. 복수하면 괴로워지고요. 맑히면 행복해요. 오케이? 박수.

 

그러면 생각이 일어났을 때, 그 미운 생각이 일어났을 때, 맑히는 방법은 뭐냐, 돌아보는 거예요. 요놈의 요 미워하는 생각이 어디에 있는고, 이 미운 생각이 어디에 있는고, 이걸 가만히 돌아보면 자취가 없어요. 그냥 깨끗해져요. 이 미워요, 그냥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이거 꼭 내가 가만히 안 두겠다, 이래가지고 계획을 세워서 막 일을 벌이면, 그것이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와요. 그래서 미운 생각이 일어났을 때 계획을 세워서 복수하지 말고, 그 생각을 가만히 맑히되, 어떻게 맑히냐, 이 미워하는 생각이 지금 어디에 있는고, 하면 없어요. 그럼 그게 한 번으로 없어지냐, 또 일어나요. 그러면 또 돌아봐요. 이 미워한 생각이 어디 있는고. 하여튼 10번만 해보면, 그다음에는 미워하는 생각이 자꾸 줄어들어서, 나중에는 씨앗도 없고 뿌리도 없이 사라지면, 그걸 깨끗한 마음이라고 그래요. 그렇게 해결하는 거예요. 이 복수를 하면 반드시 이게 괴로워져요. 복수를 하지 않고 스스로 마음을 맑히면 반드시 행복해져요.

 

이런 거 그냥 가르쳐 주면 안 되는데. 근데 우리가 이걸 잘 못해서 늘 괴롭거든요. 늘 괴로워. 이게 참 문제야. 문제.

 

그래서 그 일어났다 사라지고, 일어났다 사라지고 하는, 그 범부의 마음이, 이 법성과 허공으로 더불어 지시일물(只是一物)이라, 중생의 마음과 법성과 허공이 오직 하나다. 하나를 한 일() , 물건 물() , 일물이라고 그래요. 이게 화엄이에요. 중생신과 법성과 허공이 하나예요. 일물, 하나다.

 

근데 그 하나인 마음이, 하나인 법성이, 본자원만(本自圓滿)이라, 본래 스스로 원만하다. 본자원만이 또 화엄경인데요. 이 법성은 본래 원만하다. 원만이라는 건 뭐냐, 모자라는 게 하나도 없고 남는 게 하나도 없고, 이걸 다른 말로 구족(具足)이라고도 쓰거든요. 갖출 구() , 만족할 족() . 그래서 원만 구족이요, 구족은 원만이다. 복덕구족, 이런 말을 쓰잖아요. 갖추어졌다. 이걸 합쳐서 원만구족이라. 뭐가 원만구족이냐, 우리 법성본신이 원만구족하다.

 

법성본신이 원만구족하다. 그리고 이 법성본신이 누구에게 있느냐, 중생에게 다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불행하지 않고 늘 행복하려면 그 원만구족한 법성본신을 깨닫는 건데, 그걸 왜 가르쳐 주면 됐지, 왜 스스로 깨달으라고 그러냐. 이게 이제 생각으로는 이걸 알지를 못하기 때문에 가르칠 수가 없고, 그 원만구족한 법성본신으로 들어가게 인도할 수밖에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되냐, 역시 마찬가지야. 많은 생각이 일어날 때, 그 생각을 다 거두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이것이 무엇인고,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이것이 지금 어디에 있는고, 이렇게 하다 보면요.

 

무엇인고, 무엇이라고 생각으로 규정할 수가 없어요. 밝은 거라고 규정할 수도 없고, 좋은 거라고 규정할 수도 없고, 나쁜 거라고 규정할 수도 없고, 그냥 원만일물이라, 원만한 한 물건이다. 그럼 어디에 있는 거, 있는 데가 없는데 우주에 꽉 찼어요. 답답하다. 있는 데가 없어요. 그래서 이거 있는 데가 없다고 그래가지고 무주(無住)라고 그래요. 머무는 데가 없다고, 없을 무(), 머물 주() , 무주. 그런데 또 없는 데가 없어. 그래서 원만이라고 그래요. 무주원만이라.

그래서 이거는 삼매에 들어야 이걸 알아요. 밖으로 구하면 몰라요. 삼매에 드는 게 뭐냐, 이거 이제 스스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이래서 나중에는 이것이 하는 그 생각을 넘어서서 무엇인가로 들어가는데, 나중에는 무엇인가라고 하는 생각도 넘어서서, 오로지 그것과 완전하게 만나게 돼요. 이것에서 무엇인가에서, 그다음에 무주원만, 머무는 데 없이 온 우주에 가득한 그 세계로 내가 들어가게 돼요.

 

안 믿는 것 같아요. 별로 안 믿는 것 같아. 이거는 꿈꾸는 사람에게 꿈 깬 얘기를 하는 거라 그렇게 실감이 날 수는 없거든요.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들으면 자기 그 죽음이 없는 법성신을 깨닫는 데 큰 도움이 되거든. 그래서 하는 거예요.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알려고 한 거 아니고요. 이 자리에서는 몰라도 이런 얘기 들어놓으면 반드시 그걸 알게 돼요. 이걸 인연법이라고 하거든요. 인연법.

 

그래가지고 본자원만이라, 부모가 낳기 전서부터 본래 스스로 원만한 나의 법성본신이 있다. 법성본신.

 

그렇게 되는데, 이것도 대기(大記)라고 하는 또 가르침에서는, 화엄경에서 오중해인(五重海印)이라고, 신라 불교에서만 전해지는 내용이 있는데, 해인은 5가지로, 그래서 중복할 중() 자가 있어요. 거듭 중복한다고, 5가지를 거듭해서 가르치는 해인이다. 이게 오중해인인데, 이거는 이제 의상 스님이 중국에 가셨을 때 지엄조사한테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 지엄조사가 오중해인을 가르쳤다고 하는데, 중국에는 안 전해져요. 그게 이제 신라에만 전해져요. 그래서 의상 스님이 일찍이 지엄조사를 만나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의상 스님에게만 말씀하고, 의상 선생님보다 나이가 젊은 그 법장 스님에게는 전하지 못한 게 아닌가, 이렇게 되는데.

 

大記云約此第四重四句更以五重海印分配 대기운약차제사중사구갱이오중해인분배

能仁海印三昧中句 第一 忘像海印

능인해인삼매중구 제일 망상해인

繁出如意不思議句 第二 現像海印

번출여의부사의구 제이 현상해인

雨寶益生滿虛空句 第三 佛外餉海印

우보익생만허공구 제삼 불외향해인

衆生隨器得利益句 第四 普賢入定 觀照海印

중생수기득이익구 제사 보현입정 관조해인

第五 普賢出定 語言海印

제오 보현출정 어언해인

海印者淨藏定也雨寶益生滿虛空者雨十普法於正爲中

해인자정장정야우보익생만허공자우십보법어정위중

全全而應謂一道朱印 圓滿現現也(叢髓錄 卷一)

전전이응위일도주인 원만현현야 (총수록 권일)

 

이게 화엄경 오중해인, 화엄경에서 말하는 다섯 번 가르치는 해인이다. 첫째가 이제 제1, 1 망상해인(亡相海印)인데, 잃을 망() , 형상 상() , 해인은 바다에 비치는 물건이잖아요. 근데 그 바다가 어느 때는 아무 그림자가 없는 때가 있어요. 그걸 망상해인이라 그래요. 늘 그림자가 비춰지는 그 바닥만 있는 게 아니라, 그림자가 하나도 안 비춰지는 게 있어요. 그걸 망상해인이라, 형상이 없는 바다의 그림자다. 이게 첫 번째 해인이고.

 

두 번째 제2는 현상해인(現相海印)이라, 나타날 현() , 모양 상() , 모양이 훤히 나타나는 그런 바다 그림자가 있어요. 현상해인.

 

이제 세 번째는 제3 불외향해인(佛外向海印)이라, 부처님이 번출여의부사의(繁出如意不思議) 하시듯이, 때로는 환히 밖으로 향해서 중생을 살피고, 법계 차별상을 다 살피는 걸 불외향해인이라고 그래요. 밖으로 향하는 해인이다. 이게 이제 세 번째고.

 

그다음에 네 번째는 보현입정관조해인(普賢入定觀照海印)이다. 보현보살이 정에 들어서 우주만상, 중생 심리를 환히 봐요. 이걸 관조라고 그러는데, 볼 관() , 볼 조() , 이건 정에 들어야 돼요. 보살은. 부처님은 해인삼매인데, 보살은 입정삼매예요. 삼매는 다르게 본다는 건데, 정관. 부처님은 해인삼매이기 때문에, 바다가 정에 들고 안 들고 그런 게 없잖아요. 항상 비치잖아요. 그런데 이제 보살은 중생의 관습이 남아 있어서, 정이 안 되면 이렇게 보이질 않아요. 그래서 입정삼매, 보현입정관조삼매, 이게 보현입정관조해인이다.

 

이렇게 하고 이제 다섯 번째는, 정에 들었다가 정에서 나오면, 그걸 출정이라고 그래요. 보현 출정. 출정을 해서 뭐 하느냐, 중생을 위해서 말을 해요. 그걸 출정어언삼매라고, 어언해인(語言海印)이라고, 말씀 어() , 말씀 언() , 이렇게 오중해인을 지엄조사가 가르쳤다. 그것을 의상 스님이 신라에 전하셨단 말이야.

 

그래서 지엄조사 오중해인, 이거는 이런 데서 말하면 안 되는 건데, 이 화엄학이에요. 이거는 화엄학, 지엄조사 오중해인에 대해서 써라, 이러면 이거는 이제 논문이 돼야 될 판이에요. 이런 게. 그러니까 해인을 부처님의 아주 근본 깨달음이라고, 깨달음을 비유한 거라고 보고. 그럼 부처님의 근본 깨달음을 오중해인으로 지엄조사는 설명했다. 첫 번째는 망상해인, 두 번째는 현상해인, 세 번째는 불외향해인, 네 번째는 보현입정관조해인, 다섯 번째는 보현출정어언해인. 이렇게 가르친단 말이에요.

 

그런데 대개에서는, 능인해인삼매중(能仁海印三昧中) 한 구절을 망상해인으로 본 거예요. 능인해인삼매중 하는 거는 망상해인이다. 해인 중에 아무 모양이 비추어지지 아니하는 그런 해인이다. 법이라는 거는 전부 모양이 나타나는 것만 법이 아니거든요. 모양이 안 나타나는 것도 법이에요. 그다음에 번출여의부사의(繁出如意不思議), 이 구절은 두 번째 현상해인이다. 이렇게 가르치고.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은 세 번째 불외향해인이다, 이렇게 가르치고요. 다음에 나올 거,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은 보현입정, 보현출정, 네 번째 다섯 번째 해인이다. 이래요.

 

이게 도대체 뭔 소리냐, 이거 알면 알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더 모르니. 그러니까 내가 마음으로 들어가서 마음이 점점 밝아지면 의심이 없어져요. 또 보이는 게 분명해져요. 첫째 이 마음 공부의 특징은, 첫째는 의심이 없어지고, 보이는 게 점점 더 밝아져요. 이게 마음 공부예요. 의심이 자꾸 생기면 이게 가도 가도 끝이 없어요. 그런데 그건 의심이 왜 생기느냐 그러면, 마음이 뭐가 자꾸 끼어 있어서 그래요. 마음이 가려서.

 

이래가지고 해인이라고 하는 것은 정장정(淨藏定)이다. 정장(淨藏), 깨끗할 정() , 쌓일 장() , 창고라고 하는 창고가 있거든요. 저장소. 마음이 청정해서 모든 것이 다 저장된 그런 삼매다. 그래서 이걸 해인삼매는 정장정이라. 우리가 마음을 조용하고 깨끗하게 쓰면, 의심은 하나도 없고, 그 깨끗한 마음속에 모든 것이 다 가득해요. 이걸 정장이라 그래요. 근데 마음이 불안하고 마음이 혼탁하면, 한두 가지만 보이고 전체를 안 보여. 마음이 밝아지면 전체가 보여요. 그래서 어쩌라는 건데, 그게 좋다는 거지. 전체가 다 보일 때 좋다는 거야. 한두 가지만 보일 때, 그때 이제 괴로움이 생긴다는 거예요.

 

마음이 전체를 다 볼 때 그때가 건강한 정신이에요. 근데 한두 가지만 보이는 것은, 그거는 지금 괴로운 정신이다, 이거예요. 그래가지고 이 해인정이 나타날 때는 특징이 전전이응(全全而應)이라. 온전히, 온전히 다 응한다. 이 말은 뭐, 하나를 하면 전체가 다 이루어져요. 그래서 하나하나를 할 때마다 다 이루어진다.

 

우리가 말할 때가 있어요. 이것을 위해서 평생을 바쳤다, 이래서 이런 말을 하거든요. 이날만을 기다렸다. 그게 이제 건강치 못한 거예요. 원래 법은 이거 하나 할 때도 전체가 다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것이 없으면 전체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하나하나가 모든 것이지, 모든 것은 그 하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건 없다. 이게 화엄이에요. 완전 쉽잖아요. 좋잖아요. 그러니까 이거 하나 하는 것도, 평생 자기의 성과가 이거 간단한 거 하나 하는 데 다 들어 있다. 이게 화엄인 거예요. 일중일체(一中一切)라는 게 이거예요. 하나 속에 모든 게 다 들어 있다. 이게 화엄이에요.

 

근데 중생들은 그 이루어야 할 하나의 목표밖에 없고, 나머지는 오직 그것을 위해서만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건 화엄이 아니에요. 일중일체가 아니거든. 하나 속에 모든 것이 아니란 말이야. 그래서 이거 전전이응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 속에 모든 것이 다 있어요. 그러니까 오늘 뭐 하는 것도 평생 이룰 목표를 이루는 거고, 내일 뭐 하는 것도 평생 이룰 목표를 이루는 거고. 예를 들면100일 기도를 한다 그러면, 하나하나가 그게 100일인 거예요. 하루가 없으면100일 없잖아요. 근데 오직 최종 100일만을 위해서 한다, 그건 아니에요. 오늘 하루 하면 100일이 되는 거고, 내일 하면 그것도 100일이 되는 거고, 모레 하면 그것도 100일이 돼. 그래서 하나가 100일이지, 하나 없는 100일은 없다. 이게 화엄인 거예요. 아이고 이게 무슨 소리야 이게. 그래서 어쩌자는 거여.

많은 시간을 더 쓸 수는 없고. 우선 물을 좀 마시고.

 

이 화엄하고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언어하고 한번 생각을 해 볼게요. 보통 어떤 사람들이 왜 사느냐, 이런 질문해요. 왜 사느냐. 그러면 반대로 왜 죽느냐, 이런 질문해 봐. 왜 죽어. 그럼 뭐라고 하겠어요? 왜 살아, 이런 말을 해도, 왜 죽어, 이런 말은 안 하더라고. 또 그러니까 희한하대. 왜 사느냐, 이런 말은 예사로 많이 해요. 근데 왜 죽어, 이런 말은 안 해. 근데요, 죽느냐 사느냐, 이게 왜 죽느냐, 왜 사느냐, 왜 자 빼고 그러면, 사는 게 뭐고 죽는 게 뭐냐, 그게 중요해요. 사는 게 뭐고 죽는 게 뭐냐. 왜는 그다음 일이고.

 

사는 거는요, 아주 간단해요. 코로 숨 쉬는 게 사는 거예요. 처음에 세상에 나와서 숨이 열릴 때, 그게 삶이 시작되는 거거든요. 그럼 죽는 건 뭐냐, 죽는 게 뭘까요? 코에서 숨이 꺼지는 게, 그게 죽는 거예요. 살고 죽는 거 이렇게 말하지 말고, 숨이 열린다, 숨이 꺼진다. 숨 열리면 숨 쉬는 건 사는 거고, 숨 꺼져서 숨 못 쉬는 건 죽는 거예요. 그렇게 간단하게 봐야 돼요. 그러면은 숨을 왜 쉬나, 그건 왜 사나, 이 말이죠. 숨을 왜 쉬어요?

 

살려고 하는 거는 굉장히, 그건 철학적이고 목적이 있는 거고, 숨 안 쉬면 괴로워요. 힘들고. 그러니까 이거는 숨이 열린 뒤에는 안 쉬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쉴 수가 없어요. 그러면 숨을 왜 안 쉬나, 숨을 쉴 수가 없어요. 힘이 없어서. 이런 거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면 못 견뎌서 하는 거고, 내가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할 수가 없어서 안 하는 거다. 이런 걸 인연법이라고 그래요. 인연법. 그럼 파도가 왜 생기냐, 왜 생겨요? 파도가 바람이 일어나서 파도가 생기는 거지, 바람 없는 파도가 어디 있어요. 그래서 바람에 의해서 파도가 생긴다. 이게 인연법이거든요. 그런 것을 이제 연생이라고 그래요. 인연에 의해서 태어난 거다. 그래서 이게 살고 죽는 건, 인연에 의해서 숨을 쉬고, 인연에 의해서 숨을 못 쉰다. 그걸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을 하고 왜 사나 한다.

 

그런데 법성신이라고 하는 것은, 인연과 상관없이, 인연으로 몸이 태어날 때도 법성신이고, 또 인연으로 숨이 졌을 때도 법성신이고, 항상 법성신이에요. 연생연멸(緣生緣滅), 인연으로 태어나고 인연으로 죽는 것은, 본무자성(本無自性)이다. 원래 자기 체성이 없어요. 자성이라는 건 자기 체성인데, 이 몸이라는 게 전부 인연에 의해서 된 거거든요. 자기 체성이 없어요. 그런데 법성본신이, 법성의 그 본래 몸이, 본자원만(本自圓滿)이라, 이 몸 낳기 전부터 본래 원만히 이루어졌고, 이 몸이 죽은 뒤에도 원만하다.

 

그러니까 이 몸에서 죽음이 없는 몸을 딱 알고 나면 두려움이 없어요. 이 몸에 죽음이 없는 몸이 있다. 그게 법성신이고, 죽고 사는 것이, 그게 아까 뭐라고 그랬죠? 연생신이다. 이름 참 까다롭다는. 인연 연() , 날 생() , 연생신. 연생신, 법성신. 그렇게 돼요.

 

그래가지고 법성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으로 알 수가 없어. 그럼 법성을 깨달은 분들이 뭐라고 말하냐면, 법성은 무타(無他), 없을 무() , 다를 타() , 다른 것이 없어요. 그것뿐이야. 무타일물(無他一物)이라, 다른 것이 없는 한 물건이다. 이 무타일물은 생각으로는 안 보이고,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혀서 밝은 마음으로 보면, 그게 삼매인데, 그 삼매에 들어서야 보여요.

 

그러니까 마음이 괴로울 때 다른 걸로 해결하면 해결이 안 되고, 이 괴로운 마음이 뭔고, 그걸 해결해야 돼요. 근데 이게 다 되는 게 아니에요. 내가 크게 실패한 게 하나 있는데, 80년대 초에 저기 팔공산 어느 암자에 내가 잠시 있었거든요. 근데 어떤 젊은, 대학생인 것 같아요. 청년이 찾아왔어요. 그래서 왜 왔냐 그랬더니, 애인하고 며칠 전에 헤어졌는데, 너무 괴로워서 왔다는 거예요. 그거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그래서 내가 지금과 같은 걸 말했어요. 이 괴로운 마음이 무엇인고, 그걸 들여다봐라. 그러니까 화를 벌컥 내요. 괴로워 죽겠는데 그것만 들여다보면 어쩌자는 거냐고. 그래서 그냥 헤어지고 말았어요. 안녕히 가시오 하고. 누구나 다 되는 건 아니에요.

 

괴로운 마음이 무엇인고, 이걸 할 정도면 굉장히 생각이 건강한 사람이에요. 워낙 이게 깊어지면요, 그걸 할 수가 없어요. 막 화를 내더라니까요. 괴로워 죽겠는데, 거기다가 그것까지 보라고 그러면 어쩌란 말이냐고. 아 그렇겠다고 하고 빠이빠이 하고 말았거든요.

 

근데 이 법성일물은 무타일물이야. 다른 것이 없는 한 물건이에요. 그래서 무이(無二). 둘이 없어. 다른 것이 없는 한 물건이고 둘이 없다. 그 둘이 없는 걸 알면 괴로움이 없어요. 둘이 없으니까. 모든 것은 이 둘이라고 하는, 다른 것이 있다고 하는 데서 괴로움이 나와요.

 

그래서 이 법성은 본자원만이고, 본래 스스로 원만하고, 본자원성(本自圓成)이라. 본래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졌다. 이런데 내가 눈이 열리면서부터 둘을 보기 시작한 거예요. 나와 다른 사람이 있네. 그래서 내가 높은가, 다른 사람이 높은가, 내가 잘 났나, 다른 사람이 잘 났나, 이렇게 비교하는 순간에 괴로움이 생겨요.

 

근데 본자원만이라, 본래 스스로 다 원만하다. 풀은 풀대로 우주 법계의 진실상이요, 나무는 나무대로 우주 법계의 진실상이에요. 허공은 허공대로 우주 법계의 진실상이고, 바다는 바다대로 우주 법계의 진실상이라. 무타일물이라, 다른 것이 없는 한 물건이다. 본자원상이라, 본래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졌다. 이걸 알면은 사나 죽으나 전혀 둘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