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49재] 1월 12일 49재 법문 2022-01-12

 

 

今日 靈駕 至心諦廳 至心諦受

금일 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生老病死 憂悲苦惱 無明緣起 業識所現

생로병사 우비고뇌 무명연기 업식소현

佛身充滿 諸佛刹境 十方佛刹 莊嚴圓滿

불신충만 제불찰경 시방불찰 장엄원만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오늘 김동욱 영가님을 극락세계로 보내는 49재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극락세계가 어떤 곳인가. 사바세계와 다른 곳이다. 사바세계는, 사바라는 말은 범어인데, 한문으로면 감내해야 된다는 감자하고 인내해야 된다는 인자하고, 감인세계(堪忍世界)라고 그래요, 감인. 감내하고 인내해야 살아갈 수 있는 세계가 사바세계다. 그럼 극락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극락은 무유중고(無有衆苦)하고, 무유는 없단 말이죠. 있음이 없다. 중고, 온갖 고통이, 많을 중자, 고통 고자, 온갖 고통이 하나도 없고 단수제락()이라, 다만 모든 즐거움만 있다. 그래서 극락이라는 것은 즐거움의 궁극이다. 그래가지고 극락세계에는 즐거움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요. 그거밖에 없으면 다른 게 없기 때문에 있는 줄 모르거든요. 그래서 불교에서 제사를 천도(薦度)라 그러는데, 천도는 그쪽으로 인도한다, 이런 뜻이거든요. 사바세계에서 극락세계로 인도해드리는 일이다. 그런 뜻이고요.

        이 사바세계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는데, 그 생로병사는 우비고뇌(憂悲苦惱)가 있다.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걱정하고 이걸 사바세계 생로병사 우비고뇌 이렇게 가르쳐요. 사바세계는 생로병사가 있고 우비고뇌가 있다. 그러면 이 생로병사 우비고뇌가 어디서 왔는가. 무명에서 왔다(無明緣起). 무명은 없을 무자, 밝을 명자, 밝음이 없는 데서 왔다, 이렇게 가르쳐요. 그럼 밝음이라는 건 뭔가. 이 세상은 나와 우주를 포함해서 하나뿐인데, 일법계(一法界), 한 일자, 법 법자, 세계 계자, 일법계, 일 진실 뿐인데, 그 일법계 일 진실을 알지 못하는 걸 무명이라고 한다 이거에요. 그래서 일법계를 아는 밝은 지혜가 없다. 밝은 지혜가 없는 걸 무명이라고 하고. 그래서 생로병사 우비고뇌는 한 법계, 한 진실을 알지 못하는 밝음이 없는 데서부터 시작이 됐다. 이렇게 가르치는 게 불교에요. 그래가지고 그 한 법계를 알지 못하는 걸 무명이라고 하는 하는데, 그 무명에는 업이 따른다. 업은 행동인데요. 모르면 모르는 행동이 나온다, 이거죠. 알면 아는 행동이 나오고. 그래서 그 업으로 나타난 바다(業識所現). 어려워지네요.

       이 세상 하나밖에 없어요. 죽고 사는 게 없어요. 내가 태어날 때 그게 처음이 아니고요. 내가 세상을 떠날 때 그게 마지막이 아니에요. 그런데 나만 알고 법계를 모르니까, 내가 나는 순간은 처음이라고 알고 있고, 내가 가는 순간을 마지막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거 아니에요. 내가 세상에 나오나 안 나오나 똑같아요. 그걸 모르고 내 몸만 아니까, 몸만 알고 하나를 모르니까, 그걸 무명이라고 하고, 그 몸만 아는 생각이 나오고, 몸만 하는 행위가 나와서, 그 생각과 행위로 여러 가지 생로병사하고 우비고뇌의 고통이 따른다.

       그럼 불교는 깨달음인데 석가모니가 뭘 깨달았나. 하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일법계. 하나를 깨닫고 보니까, 그 깨닫는 순간에 생각이 지혜로 변하고, 그 생각은 무명이 아니라 광명이다. 그리고 생각이 지혜로 변할 때, 이 하늘과 땅이 완전히 광명으로 변하는 웅장함이 있어요. 그래서 절에 가면 대웅(大雄)이라는 간판이 붙었고, 대광명(大光明)이라고 하는 간판이 붙어 있거든요. 대광명은 무명이 광명으로 변했다는 소리고, 대웅이라는 것은 하나를 깨달은 웅장함, 그걸 대웅이라고 해요. 그래서 이 사바세계는 무명이고 극락세계는 광명이다.

       그러면 이 사바세계는 무명에서 뭐가 나오냐. 속박(束縛)이 나와요, 무명에서부터는. 얽힐 속, 얽힐 박. 얽혀 있어요. 매여 있어요. 어디에 매여 있냐. 내 몸에 매인 거예요. 한 법계를 알면 몸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예요. 한 법계를 모르니까 몸이 전부인 거예요. 그러니까 산에 가서 풀 한 포기 보면 그걸 알아요. 저 풀 한 포기가 있어도 산이고, 없어도 산이라는 거 알아요. 그러면 이 우주 법계에서 내 한 몸이 있어도 한 법계예요. 없어도 한 법계인데, 그건 안 되는 거예요. 이게 전부예요. 그래서 몸의 속박도 있고, 그다음에 사람의 속박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 반드시 붙들려고 애를 쓰지요. 물질의 속박도 있고. 이런 속박이 있는 거예요. 이게 무명의 고통이죠.

       그다음에는 공포가 있어요. 두려움. ‘내가 구하는 게 구해지지 않으면 어떡하나’, 이런 두려움이 있단 말이에요.

       또 불안이 있어요. 편안하지 않아요.

       그다음에 고뇌가 있다. 괴롭고 걱정이 돼요.

       그런데 깨달음을 통해서, 깨달을 각자, 이 불안하고 근심하는 생각이 지혜로 확 바뀌는 순간에 무명이 광명이 되고, 그 속박이 해탈이 돼요. 그 일법계를 깨닫는 순간에 속박은 전혀 없어요. 그걸 해탈이라고 해요. 다 벗어났다, 풀렸다. 풀릴 해자, 벗어날 탈자, 해탈(解脫). 그리고 그 깨달음을 얻어서 지혜가 이루어지는 순간에 공포가 환희가 돼요. 그래서 불교 경전에는 즐거울 환자, 기쁠 희자, 환희(歡喜)라는 말이 많이 나와요. 그게 깨달음의 공덕이에요. 깨달음을 통해서 얻은 내용이다, 그거지요. 그리고 불안이 안락이 돼요. 불안한데 좋은 음식을 먹어도 그때뿐이고, 바로 불안한 마음이 어딘가 스며들어 있어요. 좋은 걸 봐도 그렇고. 그런데 불안한데 이 깨달음으로 얻어서 광명을 찾으면 안락(安樂), 편안하고 즐거워요. 그리고 이 고뇌가 괴로움, 걱정 없는 즐거움을 얻어서 그걸 극락이라고 그런다. 고뇌가 극락이 됐다. 그 세계로 보내드리려고 지금 오신 거예요.

       그러면 이 재를 올리는 건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보은, 돌아가신 분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하는 거고요. 둘째는 본인의 공덕이 있어요. 이 재를 하는 동안에, 재에 참여를 하면서, 내 생각과 몸에 지혜와 광명의 종자가 스며들어서, 그게 나중에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돼요. 그래서 공덕을 착할 선자, 뿌리 근 자, 선근(善根)이라고 그러는데 선근, 착한 종자가 된다, 이 말이죠. 뿌리라는 거. 그러니까 재 지내는 건 참 좋은 거예요. 부모에 대한 보은도 되고, 나 자신에 대한 선근이 된다. 착한 뿌리가 된다, 이 말이죠.

       근데 이 극락세계는 깨달음을 통해서 얻어진 거예요. 그래서 깨달음을 통해서 얻어진 순간에 그 지혜의 몸이 법계에 가득하다. 그걸 불신이 충만법계(佛身充滿)라고 그래요. 부처님 몸은 깨달은 몸이거든요.  태어난 몸은 바로 사라지는데, 깨달은 몸은 법계에 가득해요. 그래서 충만법계해서 시방불찰(十方佛刹), 시방에, 찰이라는 게 사찰인데, 이 사는 중국의 행정 관청 이름이고요, 중국 발음은 시라고 하는데, 그런데 인도에서 어떤 스님이 말을 타고 경전을 싣고 오셨는데, 그 말을 보호하던 행정 관청이 그게 시거든요. 그래서 그 시는 이 사라고 발음을 하는데, 그게 중국 발음이고요. 찰은 차트라라고 하는 언어인데 국토라는 뜻이에요. 국토, 나라 땅. 그래서 중국 발음 사하고 인도 발음 차트라하고 합쳐서 사찰이라고 하는데요. 그 사찰은 부처님이 본 세상이라는 뜻이에요. 부처님이 본 세상이다. 그래서 중국 행정관청은 그 당시 무슨 시, 무슨 시, 무슨 시가 있거든요. 그것 중에 하나에요. 그래서 사찰, 사원, 이러는데, 꾸며진 모든 게 깨달은 극락세계에 대한 표현이에요. 대웅전도 그렇고 대광명도 그렇고, 저 연꽃도 그렇고, 다 깨달음에서 얻어진 극락세계를 표현하는데, 그걸 불교 용어로는 장엄(莊嚴)이라고 그럽니다. 장엄. 장엄은 다 꾸민다는 말이잖아요. 그래서 극락세계가 눈에 안 보이니까 이 장엄을 통해서 극락세계를 느끼라고 그렇게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 시방불찰에는, 시방에 온 우주에 있는 이 불찰에는, 장엄이 원만하거든요. 근심 걱정 없다. 근심 걱정은 우주 법계가 하나라는 걸 모르는 데서 오는 어리석음이다, 이렇게 말해요.

        그다음에 이제 극락세계에 대한 얘기인데요.

 

常住法界 眞言宫中 般若海會 寂滅道場

상주법계 진언궁중 반야해회 적멸도량

大智光明 安養淨土 華藏莊嚴 極樂世界

대지광명 안양정토 화장장엄 극락세계로다

나무아미타불

 

      나무라는 말은 돌아간다는 말이고, 아미타라는 건 무량수라는 뜻이고, 한량없는 수명, 또 무량광이라는 뜻이 한량없는 광명, 그게 극락세계에요. 깨달은 세계의 이 몸은 그걸 지신이라고도 하고 불신이라고 하는데, 지혜몸, 깨달은 몸, 수명이 무량하고 광명이 무량하다. 그런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나무라고 하는 건 범어인데, 귀의한다, 귀원(歸元)한다, 돌아갈 귀자, 근원이라는 원자, 귀원, 근원으로 돌아간다, 그런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사바세계에서 극락세계로 가는 걸 나무아미타불이라고 그래요. 나 어릴 때 나무아미타불은 스님들만 하는 건 줄 알고, 스님 지나가시면 인사로 나무아미타불 이랬어요. 나무아미타불 그것도 공덕이 됐는가 봐요. 그런 걸로 절에 온 것 같아요. 나무아미타불, 그러니까 수명이 무량하면 죽음이 없다는 뜻이잖아요. 광명이 무량하면 어두움이 없다는 뜻이잖아요. 그게 극락세계거든요. 죽음도 없고 어둠도 없는 세계로 돌아간다. 나무아미타불. 이런다고요.

       이 극락세계는 상주법계(常住法界)에요. 항상 머무는 법계다. 진언궁중(眞言宫中)이에요. 참을 드러내는 궁전 가운데다. 말이라는 건 드러내는 거잖아요. 이게 진언이라고 하는 건 참된 걸 드러내는 궁중이다. 진언궁중. 반야해회(般若海會), 반야라는 것은 이 형상에서 형상이 없는 공격보는 게 반야예요. 이게 이제 물질인데, 이걸 떡 보면 이 형상은 유생유멸인데, 이렇게 나타난 것도 있고 사라지는 것도 유생유멸인데, 이건 생각으로 본 거고 반야로 보면 이게 불생불멸이에요. 그래서 유생유멸에서 불생불멸을 보는 걸 반야라고 해요. 생각으로 보면 이건(물컵을 가르치시며) 생겨난 거죠. 근데 이걸 근원으로 보면 생겨도 생긴 게 없어요. 왜냐면 흙으로 뭉쳐진 것일 뿐이지 이게 자체가 없어요. 이게 너무 오묘해서 말만 들어도 설레는데요. 이 몸도 여러 가지 요소가 뭉쳐졌을 뿐이지 자체가 없어서 생겨도 생긴 게 아니고 사라져도 사라진 게 아니라, 반야로 우리 몸을 다 관찰하면, -그 관찰해서 보는 걸 조견(照見)이라고 그러는데요. 조명이라는 조자, 볼 견자,- 이 몸이 불생불멸이에요. 난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마하반야바라밀 그러는데요, 큰 그런 반야로 생로병사가 없는 저 극락세계로 건너간다. 이걸 바라밀이라고 하거든요. 이 반야 세상이 극락세계에요. 그걸 바다 해자, 모일 회자, 전체 바다는 전체잖아요. 전체 그것만이 모여 있는 해회, 반야해회. 적멸도량(寂滅道場), 도량은 장소라는 뜻인데요. 생멸이 없는 그 장소, 그 말이에요. 그게 극락세계에요.

       대지광명(大智光明)이라. 대지는 큰 대자, 지혜 지자인데, 이 대지는 정각 공덕으로 대지출(正覺功德大智出)이라. 그 깨달은 공덕으로 지혜가 나왔다. 깨닫기 전에는 대지가 안 나와요. 그래서 이 대지로 밝히는 세계가 극락세계다. 대지.

       안양정토(安養淨土), 마을 이름도 안양이라는 데가 있는데요. 그게 불교 용어인데, 편안할 안자, 기를 양자인데, 거기서는 즐거울 락자와 같은 뜻이에요. 안락(安樂)이라는 뜻입니다. 옛날 한자 용례에 보면 양은 락야라, 기를 양자는 즐겁다는 뜻이다. 그런 용례가 있어요. 그래서 극락암이라는 절도 있고 안양암이라는 절도 있는데, 똑같은 말을 쓰기 싫어하는 거예요. 같은 말이에요. 안양정토라, 편안하고 즐거운 깨끗한 토, 정자는 죽고 사는 게 없다는 뜻이에요. 무덤도 없고. 없다는 거죠. 왜냐하면 색이 공하니까 이 세상에 더러운 건 하나도 없어요. 더러운 건 이 형상을 보고 판단하는 게 더러운 거죠. 이 반야로 보면 색이 공하니까 이걸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고 그러거든요. 색즉시공이라는 옛날에 영화도 나와 있었어요, 색즉시공. 근데 딴 걸로 번역해서 말하더라고요. 색이라는 건 형태라는 뜻이에요. 근데 영화에서는 남녀가 만나는 걸 색이라고 번역을 했더라고요, 그거야 뭐 어찌 번역하든 내가 알 바 아닌데. 평생이 공한 걸 보면 이 세상에 더러운 건 없어요. 대변을 봐도 그것이 공한 걸 반야로 보면 더러움 자체가 없어요. 죽음을 봐도 반야로 보면 죽음 자체가 없어요. 색이 공이에요. 공은 불생불멸이고 색은 성주괴공(成住壞空)이라고, 이루어졌다 머물다가 파괴되다가 사라지는 거. 반야로 떡 보면 이 생멸 현상에서 생멸이 없는 적멸도량으로 들어가는데 그 적멸도량은 피안이라고 하거든요. 피안 저쪽, 저쪽 세계. 그래서 안양정토다. 화장장엄(華藏莊嚴)이다. 화장이라는 꽃 화자, 감출 장자인데, 여러 가지 공덕으로 저장돼 있다. 이게 화장이고요. 공덕으로 저장돼서 꾸며져 있다. 이걸 장엄이라고 하거든요. 그게 극락세계에요. 극락세계는 모두가 즐거워서 즐거운 줄도 모르게 즐겁다, 이게 극락이에요. 즐거운 거 아는 건 그건 안락인데 안락은 즐거운 걸 알아요. ‘아 편안하다’, ‘아 좋다이게 안락이거든요. 근데 극락은 편안하지 않은 게 하나도 없으니까 즐거운 것을 모르는 거예요. 요새 행복이라는 말 많이 쓰는데 행복이라는 건 행복을 전혀 못 느끼고 사는 게 그게 행복이에요. ‘아 나는 행복하다그러면 그 순간뿐이에요. 진짜 행복하면요, 행복이 뭔지도 몰라요. 그냥 고통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극락세계가 그런 거거든요. 궁극적인 편안함이라. 궁극안락.

 

覺心初起 心無初相 無終無始 常放光明

각심초기 심무초상 무종무시 상방광명

壽光無量 極樂世界 常壽無窮 常光無邊

수광무량 극락세계 상수무궁 상광무변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스님들만 나무아미타불 할 게 아니라 나무아미타불을 한 번도 안 해본 분들도 연습으로 한번 해보실래요. 연습으로 극락 가면 되거든요. 그 형식 갖추지 말고요, 자기 하고 싶은 대로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형식 하나도 없어요. 그냥 하면 돼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그만하실까요. 아미타불을 연습해 보면 좋아요. 나쁜 건 하나도 아니거든요. 죽음이 없고 두려움이 없는 세상으로 돌아간다. 그거 얼마나 좋아요. 나무아미타불.

       그런데 이 사바세계의 속박과 또는 공포와 불안과 고뇌가 어디서 왔느냐. 한마음이 미혹(迷惑)한 데서 왔다. 한마음이 이 우주법계가 일법계라는 걸 모르는 미혹에서 왔다, 이거예요. 일법계의 미혹상, 한 법계를 미혹한 그 지점에서 와서 모든 고뇌는 일법계 미혹상이다. 그 미혹이 뭐냐. 이렇게 하나를 보고 하나인 줄 모르고 둘로 봤다는 거죠. 하나를 둘로 봤다 이거예요. 그 둘로 보는 순간에 그 모든 에너지가 발동을 해서 그게 속박이 되고 그게 공포가 되고 그게 고통이 돼버렸어요. 그러면 그 처음에 하나에서 하나를 모르는 것이 뭐냐. 잠든 거와 같다고 가르쳐요. 잠이 들면 보이는 게 없거든요. 일법계를 못 보고 잠드는 거와 같다. 그럼 잠들면 어찌 되냐. 꿈을 꿔요. 그걸 몽상이라고 그러는데. 꿈에는 보는 게 있거든요. 그런데 꿈꾸는 동안에는 자기가 보고 있는 게 꿈이라는 걸 몰라요. 예를 들면 꿈에서는 꿈을 모른다. 그럼 꿈을 언제 아나. 꿈을 깨고 나면 알거든요. 꿈을 딱 깼을 때 내가 꿈 꿨구나를 알지, 꿈꾸는 도중에는 꿈인 줄은 모른단 말이죠. 그럼 꿈 깨고 나면 꿈은 없었다, 이걸 알게 돼요. 그런데 꿈꾸는 동안에는 꿈이 있어요. 그래서 깨닫고 보면 생로병사가 없는 거예요. 생로병사는 꿈속에 일이다. 깨달은 사람들은 부처라고 보면 돼요. 여러 부처를 제불이라고 하거든요. 제불에는 대광명뿐이지 생로병사가 없어요. 잠들어서 꿈꾼 마음을 깨달으면 이걸 각심초기(覺心初起)라고 하는데, 심초기라는 건 그 꿈꾸는 마음이 처음 일어나는 생각 그걸 깨달아 버리면, 꿈꾸는 처음 생각을 깨달으면, 그 꿈꾼 마음은 없었다 이거예요. 이래서 문제인 거예요. 억울해요. 깨닫고 보면 없는 걸 가지고, 깨닫기 전에는 이렇게 고생을 하니 얼마나 억울해요. 얼마나 분통이 터져요. 그래서 각심초기하면, 그 꿈꾸는 처음 일어난 마음을 깨달으면, 심무초상(心無初相)이라,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던 본래 마음은 처음 꿈꾸는 마음이 없었다. 초상, 처음 생각이 없었다는 거지요. 그래가지고 그 꿈꾸는 마음이 없는 그 깨달은 마음으로 보면 무종무시(無終無始), 마지막도 없고 처음도 없고 상방광명(常放光明)이라 항상 밝다, 광명을 일으킨다. 그래서 깨달은 분들에게는 생로병사가 없고요.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생로병사가 있는데, 깬 사람은 꿈이 없고, 꿈꾸는 사람에게는 꿈에서 보는 것이 있다, 이런 겁니다. 극락 가기가 너무 쉬워요. 한 생각으로만 돌아가면 바로 극락 가는 거예요. 두 생각으로 생사가 있었기 때문에, 한 생각으로 돌아가면 극락 가는 거예요. 그냥 가만히 앉아서 한 생각이 이루어지면 극락 가요.

       근데 이 생각도 생각하다 보면 그게 생로병사인 거예요. 무종무시 상방 광명 수광무량 극락세계(壽光無量 極樂世界), 수명과 광명이 한량없는 극락세계, 상수무궁(常壽無窮)이라, 항상 한 수명이 다함이 없어요. 끝이 없다, 이거지요. 상광무변(常光無邊)이라, 항상 밝은 그 광명이 변방이 없다. 중심부가 없고 주변부가 없다 이거죠.

       그러하니 극락세계는 이러하고, 오늘 영가께서 이 법회를 통해서 어떻게 가시냐.

 

佛身周遍等法界 普應衆生悉現前

불신주편등법계 보응중생실현전

種種教門常化誘 於法自在能開悟

종종교문상화유 어법자재능개오

(華嚴經2, 世主妙嚴品)(화엄경 제2, 세주묘엄경)

 

今日 靈駕 至心諦廳 至心諦受

금일 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一念成一念 淨土即現前

일념성일념 정토즉현전

面見阿彌陀 往生安樂利

면견아미타하고 왕생안락찰하소서

나무아미타불

 

       본래는 한 생각뿐이었는데, 모든 걸 봐도 하나로 본다는 거지요. 모든 걸 들어도 하나로 듣고, 모든 움직임을 움직여도 하나로 움직이고 그랬는데, 잠드는 것처럼 슬며시 모든 순간에서부터 하나를 보지 못하고 둘을 봤어요. 그래서 둘을 보면 좋고 나쁜 게 있고 취하고 버릴 게 있어서 거기서 속박 집착이 생기고 고통이 왔는데, 다시 한 생각이 한 생각으로 돌아오면, 한 생각으로 보고, 한 생각으로 움직이고 한 생각으로 행동하면 속박이 전혀 없어요. 고통은 두 생각에서 온단 말이에요. 두 생각을 두 생각이라고 안 하고 여러 가지가 섞였다. 여러 가지 잡자가 있는데 그걸 잡념(雜念)이라고 그래요. 잡이라는 건 이것저것 함께 있다 이 말이거든요. 그래서 일념 잡념. 그래서 모든 고통은 잡념에서 오고 극락세계는 일념에서 온다. 그 원인은 아주 간단해요. 그러니까 알고 보면 잡념이 더 어렵고 일념이 더 쉽거든요. 그래서 오늘 영가가 극락 가는 일은 너무 간단하다. 일념이 성일념하면(一念成一念), 한 생각이 한 생각을 이루면, 정토가 즉현전이라(淨土即現前), 더러움이 없는 극락세계의 국토가 곧 눈앞에 나타난다. 면전아미타하고(面見阿彌陀), 바로 대면해서 아미타불을 보고, 왕생안락찰(往生安樂利)하소서, 왕생이라는 게 가서 난다 이거죠. 안락찰, 극락세계인데, 안락한 세계, 안락한 국토에 왕생하소서, 이 말이에요. 일념은 본래 두 생각이 생기기 전에 그 생각을 일념이라고 하고요. 또 일념이 일념을 이루었을 때 그 마지막 일념은 여러 가지 잡념이 있다가, 그 잡념이 다시 한 생각으로 된 생각을 일념을 이루었다, 이렇게 하거든요. 우리가 지금 일념이 아니고 잡념으로 사는데, 극락 가려면 잡념이 다시 일념으로 형성되면 극락세계가 바로 보이는 거예요. 어떤 분들은 극락세계가 정말 있습니까’, 묻는 분들도 있거든요. ‘있다.’ ‘어딨냐.’ ‘눈앞에 있다.’ ‘왜 나한테는 안 보입니까.’ ‘그건 한 생각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안 보인다.’ 그러는데. ‘글쎄요이러고 왔다 갔다 하더라고요, 고개를. 안 믿는 게 당연한 거죠. 워낙 잡념에 빠져서 사니까. 어려워요, 믿는 게.

       그래서 일념으로 일념을 이룬다라고 할 때, 그 첫 번째 일념은 비율로 설명할 때 360도 중에서 0도라는 거예요. 첫 번째 일념은. 그러면 그 0도에서 어떻게 해야 되냐. 180도로 해서 다시 이제 360로 돌아오면, 0도에서 출발해서 360도로 돌아오면 똑같아요. 그 첫 번째 일념은 0도고 나중에 일념은 360도다. 똑같은데 전혀 틀려요. 그러니까 우리가 본래 일념이었어요. 본래 한 생각이었는데 세상에 온갖 집착과 속박에 사는 잡념이 끼어들어가지고, 공포 불안 고뇌를 겪다가 다시 또 일념으로 들어가면 그게 일념이 일념을 이루는 건데 그거는 0도에서 360도로 돌아온 거다. 그러니까 극락 가기가 얼마나 쉬운가. 택시 부를 것도 없어요. 걸어갈 것도 없고 무슨 뭐 여행 수속 밟을 거 전혀 없어요. 한 생각이 한 생각으로 돌아가면 극락왕생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염불도 듣고, 보고, 공양도 올리고 하니 얼마나 극락 가기가 쉬울 것인가. 그래서 어렵게 가지 마시고 바로 눈앞에서 가십시오. 그런 법문을 해드린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