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다라니기도천독] 6월11일 신묘장구대다라니 42수 회향 다라니기도 천독기도 법문 2023-06-11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반갑습니다.

 

         오랜만이죠. 제가 진관사 올 때마다 예언을 하나씩 하는데 예언이 딱딱 들어맞아요. 제가 동지 때, 겨울에 와가지고 예언한 게 있는데, <3월달에 꽃이 필 거다.> 이런 예언했는데 이미 꽃 폈죠. 오늘 예언 하나하고 할까요? 10월달에 아마 단풍이 질 겁니다.

         스님이 오자마자 이렇게 싱거운 소리를 하나’,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데 이게 영험이에요. 이것이 신통이고 이것이 가피입니다. 그 계절에, 그 절기에, 그 절기다움이 없으면 큰일이죠. 요즘에는, 이제 하도 바쁘게 여러 일들이 일어나는 시절이다 보니까, 만나면 인사가 별일 없어요?” 이렇게 인사들을 하죠. 별일이 있으면 안 되는데. 우리가 천독 다라니를 독송하고 또 42수 진언을 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의 가정생활에서 별일 없도록 하기 위한 거예요. 별일이 뭐냐 그러면 장애잖아요. 장애. 근심과 걱정이잖아요. 근심과 걱정과 장애만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없어도 살 만하거든요. 숨이 잘 쉬어지면 살 만한데, 숨이 잘 안 쉬어지면 사는 맛이 안 난단 말이죠. 숨이 멈춰진 경험들이 있으면 알겠지만, 우리가 이제 등산할 때도 경사로가 높은 데를 막 가면 숨이 턱턱 막힌다고 그러잖아요. 정말로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경험들을 삶에서 한 번씩 하게 되는데, 그럴 때에 그거를 잘 넘길 수 있는 힘을 우리가 쌓아놓는 것, 그게 기도의 원래 취지입니다. 삶의 여정이 그런 깔딱고개가 없으면 그런 기도가 굳이 필요 없는데, 사는 것 자체가 그런 여정 속에 놓여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가 필요하다 그러죠.

 

        이제 이런 것들을 우리 옛날 어른들 말로는 영험이라고 얘기를 해요. 영험 또 불교식 표현으로는 가피라고 하죠. 근데 그 가피와 영험이라고 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데서도 우리가 경험할 수가 있는 거란 말이죠. 근데 그 가피를 기도를 통해서 영험을 경험을 해야지만이 또 신심이 더 깊어지기도 합니다.

        근데 그 영험과 가피를 입으려면 가피라고 하는 게 더함을 입는 거기 때문에 더 좋은 일이 많이 생기는 걸 의미하잖아요. 우리 삶 속에서 좋은 일이 많이 생기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물론 다라니 천독을 열심히 외우고, 42수를, 진언을 의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 이야기하는 이 네 가지를 꼭 마음속으로 잘 기억해야만이 그 가피가 더 빨라질 수 있다,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요즘에는 그 영험과 가피가 잘 없는 것 같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는 영험과 가피가 있어요. 그게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죠. 옛날 어른들은 기도를 통해서, 그런 영험과 가피를 경험을 했고, 그런 영험과 가피를 써서 기록에 남긴 걸 영험록이라고 얘기를 해요. 그 영험록에는 바로 관세음보살을 기도로 해서 얻은 영험들이 가장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 일반 대중들은 관세음보살님을 많이 의지하고 있는 거죠. 저도 관세음보살님을 의지하고 있어요. 언제 아느냐. 문득문득 어떤 경계가 나타났을 때 나도 모르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게 돼요.

       제가 있는, 속해 있는 사찰은 반야바라밀 수행을 해요. 정근도 반야바라밀로 하거든요. 이제 여기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정근하잖아요. 우리는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이렇게 정근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 속에서는 반야바라밀도 하지만, 관세음보살이 우선 나와요. 제일 먼저. 그거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의지해 왔기 때문에 그런 건데요. 그 가피와 영험이란 큰 게 아니고 제가 옛날에 한 번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저는 어렸을 때 막 놀다 보면 예불 시간이 지나버려요. 그러면 스님한테 혼나잖아요. 아이들과 놀다가 고개를 넘어가야 절이 있으니까 예불시간을 놓쳐버리는 거예요.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딱지치기, 자치기, 그다음에 술래잡기 이런 거 하다가 놓쳐버리는 거예요. 시간을. 그래서 절에 올라갈 때, 그 혼날 생각에 정신없이 가면 여지 없이 혼나요. 그런데 고개를 넘어가면서 관세음보살님 한번 도와주세요. 안 혼나게 해주세요. 관세음보살님.”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걸을 때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이렇게 하고 가면 희한하게 스님이 빨리 가서 씻어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거 안 하고 혼날 생각에 가면 여지 없이 가서 108배 해야 돼요. 그때 내가 , 관세음보살님은 존재한다.” 어린 마음에. 지금도 그때의 그런 습성 때문에 삶의 경계에서 어려운 일이 딱 생기면, 마음에서 관세음보살님이 딱 화두처럼 들려요. 그럼 걱정했던 일들이 대부분이 다 사라지거나 좀 덜해지거나 그런 경험들을 하게 되거든요.

        그게 사실은 본인이 그러한 믿음이 있기때문에 가능한 건데요. 더 큰 이야기로는 저도 이제 들은 이야기인데, 어머님이 절에 열심히 다니는 가족이 있었어요. 물론 그 자녀들은 절을 열심히 라기보다는, 안 다닌 건 아닌데 초파일에 한 번 정도 오는 초파일 신도, 초파일에 와서 비빔밥 먹고 가는 그런 신도였는데, 이분들이 부산에 살았는데 포항고속도로 가다가 교통사고가 난 거예요. 부부가 타고 가다가. 근데 차가 전복을 해가지고 몇 바퀴를 굴렀어요. 그 사위는 코가 깨지고 자기 딸은 어깨가 탈골된 거예요. 차는 이제 거의 폐차 수준인데도. 그래서 어머니가 놀라서 간 거죠. 갔는데 놀라운 거는 그 딸이 병실에서 이제 수술을 하려고 누워있는데 엄마가 가니까 엄마한테 그러더라는 거예요. 사고가 딱 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나 살자고 하는 생각이 아니라, 아기가 있으니까 아기 걱정이 되더라는 거예요.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관세음보살님 우리 아기 살려주세요.” 이런 생각이 딱 들더라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그 아기를 딱 이렇게 안은 거죠. 아기는 안 다쳤어요. 근데 그 순간에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하얀 천을 입은 사람이 아기를 이렇게 안고 있는 영상이 이렇게 스크린에서 싹 지나가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얘기를 이제 어머니한테 한 거죠. 그러니까 그 어머님이 이제 관세음보살님이 우리 아이를 구해줬다.’ 이렇게 큰 영험도 있는 거죠. 얼마나 어머님이 열심히 기도했으면 그런 가피를 받았겠습니까? 그런 큰 가피부터 일상 속에 작은 가피까지. 작은 가피 같은 경우에는 배가 막 아픈데, 저도 그런 경우 있거든요. 배가 엄청 아파요. 지금 당장 터질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그때 관세음보살님을 막 부르는 거예요. 그러면은 몸이 약간 제어되는, 조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제어되는 경험을 하거든요, 호흡을 다스리면서 하다 보면. 그런 일상에서 아주 작은 것까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 어떻게 보면 영험이고 가피다.

 

        그런 경험들을 한 번씩 하셔야 되는데, 하시고 계시죠? 그걸 한번 써가지고 제출해 보실까요? <진관사 숙제>. <마음의 정원의 글>, <난 이렇게 부처님께 가피를 입었다.>해가지고, 아마 그렇게 한 장씩 그동안의 신행생활을 10년 하든, 20, 30년 하든, 그런 것들을 한 장씩 써내면, 그 이야기들이 나에게도 감동이지만, 쓰면서 감동이지만, 아마 그걸 읽는 사람들은 엄청난 감동일 겁니다. 또 그 이야기들이 많은 이들을 부처님 법과 인연을 맺게 하는 씨앗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는 이런 부분들이 이웃 종교에 비해서 좀 약한 게 있어요. 자기는 잘 경험을 했는데 그걸 잘 토해내지 못해요, 잘 표현해내지 못해요, 잘 적어내지 못해요. 엄청난 많은 경험들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앞으로 이런 거 다시금 부흥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일상에서 작은 것부터 아주 큰 것까지 부처님의 가피 아래,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었던 것들을 같이 나누고 공유하고 함께 하는, 그런 흐름들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42수 끝나게 되면, 다라니 천독 끝나게 되면, 천독 끝날 때 몇 분들이 나오셔서, “저는 천독 때 이런 경험들을 했어요, 이런 어려움들이 해소가 됐어요, 이런 장애들이 사라졌어요.” 라고 같이 나누는 그런 이야기들을 한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진관사 사찰 음식이 맛있다는 얘기만 하지 말고, -그건 당연한 거니까,- 그런 부분들이 우리가 공유가 돼야 많은 불자들이 이제 그러한 인연 따라서 불자가 되지 않을까, 일반인들이,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그러면 그런 가피나 내지는 영험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 번째로 갖춰야 되는 게, -마음에 잘 기록을 하세요.- 한 생각이 있어야 돼요. 한 생각, 일념(一念)이라고 하죠, 일념. 이 염자는 생각 염자인데, 파자를 하면 지금의 마음이잖아요. 지금 마음. 지금 마음인데, 생각 염자 다른 말로 리멤버(remember)에요, 기억하는 거예요. 기억하는 거. 그 한 생각에 뭘 기억하느냐. 부처님과 부처님 가르침과 그 스님들과 내가 부처님께 약속한 계, 살도음망주(殺盜淫妄酒), 그리고 어떻게 베풀 건가, 내가 어떻게 베풀고 살건가, 또 내가 그 결과 내가 어느 좋은 세상에 인연을 맺을 건가. 여섯 가지가 원래 있어요. 근데 여기서 말한 일념은 하나로 생각을 통일하는 거예요. 통일하는 거. 42주를 하든 다라니를 하든 한 생각으로. 경전에는 뭐라고 비유가 나오냐면, 머리에다가 화로를 지고 있는 것처럼, 이고 있는 것처럼 염불하라, 정진하라, 그러거든요. 이마에 여기 화로가 얹혀 있으면 얼마나 다급하겠어요. 그게 바로 일념이거든요. 이번에 진관사에 오니까 초파일 때 굉장히 귀여운 부처님을 하나 만들어서 나눴대요. 보니까 밑에는 <당신의 부처입니다.> 이렇게 써있고. 덕원스님이 그걸 하나 저한테 보여주길래, 제가 이렇게 머리에다가 올려가지고 내가 이렇게 해서 법당에 들어가면 어떨까?” 그때 덕원스님이 뭐라고 한 줄 알아요? “드릴까요?” 그래. 하라는 소리잖아요. 머리에 부처님을 이고 있는 것은 당연한 거고, 정말로 내가 큰 뜨거운 화로를 얹어놓은 것처럼 일념으로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일념으로 해야 된다. 그런데 이제 하다 보면 자꾸 망상이 올라오는데, 망상이 올라온다고 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스님, 저는 기도만 하면 자꾸 마음에서 망상이 올라온다.”. 이것도 생각나고 저것도 생각나고. 근데 그건 당연한 거예요. 마치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리듯이 당연한 거예요.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 흔들리는데, 나무가 흔들린다고 걱정하는 사람, 똑같은 거예요. 그만큼 바보스러움이 없죠.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건 그 흐름대로 그냥 놔둬야 돼요. 나도 다시 다라니 독송에 집중하고 42수 진언을 외우는 데 집중해야 된다. 일념. 첫 번째 일념이 돼야 되고.

 

        두 번째로는 신심이에요. 믿어야 됩니다. 믿어야 돼요. 여기서 믿는다는 걸 뭘 믿느냐 그러면, 자기 자신을 믿어야 돼요. 이 기도를 통해서 내가 변화하고 내가 가피를 입고 내가 영험을 경험할 거라고 하는 믿음이 있어야 돼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다라니를 읽고 진언을 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마음에서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 이거 뭐 밑져야 본전인데 뭐 해보지 뭐.” 이렇게 해가지고는 안 된다 이 말이에요. 정말 절실한 믿음을 가지고 해야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믿음은 좀 더 불교적으로 말하면, 내가 원래 본래 붓다인데, 본래 부처인데, 지금 중생의 먼지가 껴 있다. 그 먼지를 덜어내는 과정으로써 이 다라니를 하는 것이고 이 사십이수를 하는 것이에요. 그래야 부처님이 드러나죠. 그래서 첫 번째로 믿는 건 <내가 부처님이다>라는 걸 믿어야 돼요. 맨날 말로는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그렇게 해놓고, 마음으로 의심해 버리면 난 중생이에요. 당신은 부처님이야 라고 하면서 나는 중생인가? 나도 부처란 얘기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경전을 읽는다든가, 뭐 우리가 불교 수행하면서, 제일 착각하는 게 뭐냐면 내 얘기를 해야 되는데, 자꾸 상대방을 얘기를 해요. 우리가 자비를 말하고 지혜를 말할 때도 내가 자비로운가, 내가 지혜로운가봐야 되거든요. 자비와 지혜는 맑고 밝은 거, 따뜻하고 온화한 거예요, 그냥. 자비 지혜라고 하는 거는. 자비 지혜가 별거 있어요? 지금 내가 이 시점에서 맑고 밝은지, 따뜻하고 온화한지만 살피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자꾸 상대방에게 너 자비롭냐, 너 지혜롭냐얘기하는 것처럼 오해해요. ‘당신은 부처님이다라는 말은 우리는 상대방을 존중하라는 뜻도 있지만, 그것을 내 안에서, 내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입니다. 결국은 당신은 부처입니다라고 얘기하는 거는 나도 부처님이에요 나도 부처예요.’ 쉽게 말하면 나도 지혜로운 존재고 나도 자비로운 존재예요. 나도 맑고 밝은 사람이고, 온화하고 따뜻한 사람이에요.’ 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걸 믿으라는 거예요. 그 믿음 없이 중생의 습성을 위해서 하면 안 된다 이 말이에요. 

        더 나아가서는 그거 아주 기본적인 큰 법문이고, 이거 알아들으면 아주 큰 법문이에요. 더 이상 법문할 필요가 없어요. 근데 지금 눈빛을 보니까 아리송해. 말은 맞는 말인데 눈빛을 보니까, 이거 스님이 맞는 말을 했는데, 이게 잘 와닿지 않아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믿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다라니 기도를 통해서, 이 진언을 통해서 내가 변할 거라고 하는 믿음이 있어요. 의심하지 말아야 됩니다. <반드시 성취할거다>라고 하는 것, 그것이 믿음이에요, 두 번째 갖춰야 될 것이. 그 옛날에 어른 스님들은, 의상대에서 의상 스님은 그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까치발을 하고 관세음보살을 정근한 거 아니에요. 그러다가 안 되니까 어떻게 돼요? 홍련암 밑으로 몸을 던진 거잖아요. 그런 절실함, 그런 믿음, 내가 몸을 던지면 이 생에서 이 몸은 사라지겠지만, 그 정진력으로 내가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그 일념으로 한 거거든요.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의심하지 말아야 됩니다. 두 번째가 의심하지 말자. 

 

        세 번째로는 긍정적인 마음이 있어야 돼요. 긍정적인 마음. 긍정적인 마음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면, 긍정적인 말을 해야 됩니다. . 일단은 말은 습관이기 때문에 바꿀 수 있어요. 가족 간에 얘기할 때 굉장히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네 가지의 말이 뭐가 있어요? 하나는 거짓말 있죠. 거짓말. 하나는 꾸민 말이 있죠. 요만한 얘기를 이만하게 얘기하는 거. 저도 그걸 잘해요. 저도 요만한 얘기를 이만하게 잘 포장해서 얘기하는 기술이 있어요. 그다음에 또 하나가 뭐예요? 양설이죠, 이간질하는 거예요. 첫째한테, 둘째한테 다른 얘기하고, 친구들 만나서 A라는 친구한테 얘기했던 거를 B라는 친구한테 “A라는 애가 이렇게 얘기하더라. 너에 대해서.” A를 만나가지고는 “B라는 친구가, 그 보살님이 이런 얘기 하더라.” 또 이 스님 만나가지고는 스님에 대해서 저 스님이 그렇게 얘기하더라.” 이렇게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이건 화합을 깨는, 이거는 막을 수가 없죠, 화합이 깨지는 거는. 마지막으로는 뭐예요? 욕설이죠. 억센 말하는 사람들이죠. 상대방에게 그냥 비수를 꽂는 말을 하는 사람들, 습관적으로.

        그래서 긍정적인 마음인데, 그 긍정적인 마음을 갖추려면 언어를 따뜻한 언어로 바꿔라. 긍정적인 언어로 바꾸라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말할 때 살펴보면 됩니다. 말할 때 우리는 살피지 않고 툭툭 내뱉는 습관이 있어요. 감정에 의거해서, 감정에 의지해가지고, 말을 툭툭 내뱉는 습관들이 있거든요. 말을 할 때는 말을 입으로 뱉지만, 생각을 안으로 끌어들여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지 부정적인 말들이 안 나옵니다. 

 

         네 번째로는 이 세 가지를 하면 얻어지는 결과이기도 한데, 얼굴에 웃음을 띠어야 됩니다. 웃음을 띠어야 돼요. 제가 진관사 마음의 정원에 오면, 우리 스님들 만나면 제일 높이 평가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이거 내가 처음 얘기하는 건데, 우리 저 스님한테도 처음 얘기하는 건데, 진관사는 큰 장점이 웃음이에요. 웃지 않는 스님이 없어요. 물론 이제 당신들끼리 있을 때는 뭐 그렇게 안 할 수도 있겠지만, 다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어요. 그렇죠? 스님들께 박수 한번 주세요. 어느 집안도 마찬가지예요. 그 집안이 잘 되느냐. 딱 부부 만나보면 알아요. 잘 웃는 부부는 잘 풀리는 집안입니다. 그런데 서로 간에 얼굴이 굳어 있어, 근육이. 얼굴에 근육이 제일 많다 하잖아요. 그래서 얼굴이 굳어 있는 사람들이, 그거는 평소에 습성이, 업이 그렇게 굳어진 거예요. 그래서 혹시라도 얼굴이 굳어 있는 분들은 오늘부터 집에 가셔가지고 거울 보고 이거(웃는 모습) 한번 하세요. 이 웃음은 얼굴 연습을 해야지 나옵니다. 물론 우리가 이제 자연스럽게 우스운 이야기나 재미난 광경을 보면 웃게 되는데, 평소에 잘 안 웃는 사람들이 웃잖아요. 저게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잘 모르겠어. 어정쩡한, 왜냐면 근육이 굳어 있기 때문에. 근데 웃어야지 됩니다.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말이 있잖아요. 웃으면 복이 와요.

        제 경험담을 하나 얘기하면 이것도 영험을 받은 이야기인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삶이 너무 괴로운 거예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내가 중학교 2학년 때는 청춘이란 노래 아세요? <언젠간 가겠지.~> 중학교 때 그 노래를 듣고 3일을 울었어요. 인생이 너무 무상한 거야. 보세요. 제가 얼마나 잘 꾸미는지. 요만한 걸 이만하게 잘 꾸며서 얘기하죠. 실제로 그 노래 듣고 너무 마음이 슬펐어요. ‘,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는 거구나.’ 중학교 2학년짜리가. 아마 그때 이 출가의 씨앗이 뿌려진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고등학교 때 인생이 너무 힘든 거예요. 학교 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 친구들하고 만나가지고 얘기하다 보면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그때 생각했어요. ‘내가 힘든 삶을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며칠을 고민했어요. 그래서 제가 고민 끝에 흰 종이에다가 딱 한 자를 썼어요. 뭐라고 썼게요? <웃자.> 고등학교 때, 웃자. 그래 웃어. 이렇게 썼어요. 흰 종이에다가. 그리고 그걸 벽에다가 딱 붙여놓고 맨날 웃는 연습을 했어요. 그때는 제가 혼자 자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잘 먹지도 못하고 잘 입지도 못하고 잘 자지도 못했어요. 근데 그때 그 <웃자, 그래 웃어.>를 해놓고, 내가 그렇게 생각해 보니까 그때 진짜 부처님하고 인연이 됐어요. 절에 살다가 좀 나와 있던 시절이었는데, 다시 부처님하고 인연이 되고, 불교 학생회 활동을 하게 되고, 회장도 하게 됐어요. 불교 학생 회장도. 왜냐. 제가 천수경을 외웠거든요. 지도법사 스님이 목탁을 가르쳐주는데 애가 목탁을 잘 치는 거예요. 저는 어렸을 때 목탁 치고 살았잖아요. 천수경도 외우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천수경을 외우냐고. 그때 스님이 나보고 회장 하래요. 절에 나간 지 3개월 만에 학생회장을 했어요. 그러면서 부처님하고 진짜 인연이 됐거든요. 그때 지도법사 스님이 지금도 계세요. 대구에 주지하고 계시는데 그분도 주지, 저도 주진데.(웃음) , 그렇게 웃어야 됩니다. 어떻게 웃느냐.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아이고 제 나이 이제 뭐 육십, 칠십인데..” 그래야 웃으면서 갈 수 있어요. 살아온 세월을 어쩔 수 없지만, 명증한 건 뭐예요? 이제 갈 시간만 남았다는 거. 그렇죠. 갈 시간이 남았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갈 시간을 웃으면서 가야 될 거 아니에요. 우리가 지금 다라니를 열심히 독송하고, 42수를 지극하게 하는 이유는 웃으면서 살고, 웃으면서 살다가 웃으면서 가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부처님처럼 다음 생에 웃으면서 올려고 하는 거잖아요. 부처님이, -지금 우리 관세음보살님이신가요?- 모셔져 있는데, 웃어요? 울어요? 슬플 때 보면 우는 거 같고, 기쁠 때 보면은 웃는 거 같아요? 항상 웃고 계시죠, 미소를 짓고 계시죠. 그 미소는 아무 바람이 없는 그런 웃음인데, 저기까지 가려면 오래 걸리겠지만, 적어도 오늘 가셔가지고 이제 화장 지우잖아요. 화장 지울 거죠? 선크림 지워야 할 거 아닙니까? 저도 아침에 선크림 바르고 왔거든요. 어제 그제 제주도 연수를 갔다 왔는데 햇빛에 너무 많이 그을러 가지고 얼굴이 시커멓게 탔어요. 지금 선크림 발라서 이 정도예요. 그러면 선크림을 싹 지우면서 어떻게? 거울 보면서 이렇게 웃어야죠. 그리고 파운데이션을, -별 걸 다 알죠, 스님이,- 파운데이션 하면서 웃으면서 하세요. 근데 파운데이션 하면서도 인상을 쓰고 해. 그러니 이게 팔자가 바뀌겠냐고요, 운명이 바뀌겠냐고요. 웃어야지 운명이 바뀌거든요. 웃을 수 있죠? 연습하실 거죠?

 

        42, 첫 번째부터 42번째까지 다 우리에게 도움 되는 가르침, 진언이에요. 첫 번째는 뭐예요? 잘 살게 해달라는 거예요. 부자로 살게 해달라는 얘기예요. 첫 번째 진언은. 가난하게 살면 아무것도 안 돼. 이 사바세계는. 첫 번째가 부자로 살게 해달라. 거기부터 모든 장애가 사라지게 해달라, 눈을 맑게 해 달라, 장수하게 해달라, 모든 장애를 없애달라, 마귀 마구니를 없애 달라. 그 진언 하나하나가 다 우리에게 소중한 겁니다. 그거를 의지해서 우리는 있으니까, 너무 근심 걱정하지 마시고.

  

        지금 네 가지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는 일념으로 하고 또 하나는 뭐예요? 진심으로 하고, 또 하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고, 마지막으로 웃으면서 하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애프터 서비스를 해야죠. 그거는 뭐냐면 진관사 오셔가지고 주지스님을 만나시면 됩니다. 만나셔가지고 스님, 그때 그 키 큰 스님, 눈썹 진한 스님 있잖아요. 그 스님이 얘기했는데, 했는데 잘 안 돼요. 어떻게 해야 되죠?” 그러면 거기에 맞춤형 처방을 주지 스님께서 딱 주실 거예요.

 

        그러니까 뭐가 걱정이에요? 근심 걱정하지 마시고, 늘 즐겁게 행복하게 맑고 밝게 온화하고 따뜻하게, 그렇게 불자로서 생활하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