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백중기도] 7월 13일 백중 입재 2023-07-13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네. 반갑습니다. 조금 전에 주지스님께서 소개한 키만 큰, 키만 큰 스님입니다. 원래 이게 등치 큰 사람들이 되게 쪼잔해요. 밴댕이라고 그러잖아요. 밴댕이. 그래서 법문을 하는데 잘 안 들어주면 잘 삐져요. 잘 들어주길 바랍니다.

       올해도 이제 백중을 입재하게 되는데 백중을 우란분재라고 합니다. 우란분. 우란분이라고 하는 거는 이제 거꾸로 매달려 있다 라는 고통을 받는 걸 우란분이라고 그래요. 우란분재를 지내서 선망 부모, 7세의 선망 부모와 현세의 어버이를 편안하게 하는 기도가 바로 우란분재의 백중 기도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오늘은, 올해의 백중은 <법장을 여는 우란분재>라는 주제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백중은 불교의 5대 명절인데, 우란분은 옛날에는 이제 백중이라고 그랬죠. 우리는 일반적으로 백중으로 다 알고 있는데, 백중에는 이제 우란분경이라고 하는 경전이 있어요. 그 경전이 기본이 되고, 그리고 목련경이라든지 부모은중경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이 다 부모의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는지를 잘 설하고 있는 경전입니다.

 

       오늘은 우란분경을 말씀을 드릴까 하는데 우란분경은 이제 축법호라고 하는 번역승이 번역을 했어요. 거기에 보면은 목련존자가 나와요. 목건련이라고도 말하는데, 보통은 이제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에 신통제일이라고 하잖아요. 신통 제일 목건련 이렇게 하는데, 목건련은 신통이라기보다는 효행 제일인 것 같아요.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지극했던 것 같아요. 누구나 다 이제 어머니에 대한 그런 아련함들이 있잖아요.

        목련도 아마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본인이 선정을 들어서 아라한과를 증득한 다음에,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이 어머니였어요. 어머니를 떠올려 보니까 어머니 좋은 갈래에 가서, 좋은 곳에 가서 편안하게 계신 줄 알았는데, 저기 아귀도에 떨어져서 거꾸로 매달려 있는 고통을 받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잘 먹지 못해가지고 피골이 상접해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 아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안타깝고 안쓰럽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본인이 신통을 제일 잘하니까, 본인이 받은 발우의 공양을, 발우에 담은 공양을 신통으로 어머니한테 보내줬어요. 어머니가 그 발우를 딱 받고, 오랜만에 음식을 보니까 얼마나 반가워요. 그래서 음식을 손에다 딱 집고 입에다 넣으려고 하는 순간, 그 음식이 불로 딱 변해서 타버리는 거예요. 도저히 먹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목련존자 입장에서는 더더욱 안타까운 거죠. 본인이 신통을 부려서 어머니에게 음식을 베풀었는데 그 어머니는 그 음식을 드는 순간마다 불로 변해 다 타버리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이 목련이 그 광경을 보고 눈물을 흘립니다. 어머니가 너무 안쓰러워서. 울부짖어요. 그리고나서 그 당시에 사위성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던 부처님을 찾아갑니다. 그런 광경들을 다 이야기를 해요.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에 부처님께서 어머니가 인생에 지은 여러 가지 업이 지중해서, 악업이 지중해서 그런 과보를 갖는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러니까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하안거가 끝나는 자자날에,” 스님들은 이제 오늘 입재하면은 지금 하안거 기간인데 715일날 해제를 해요. 여름 수행을 마무리하는 자자를 하게 됩니다. “자자하는 그 날에 많은 스님들에게 공양을 베풀면 그 공덕으로 어머니가 좋은 데 날 거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그 우란분경에 보면 그때 많은 스님들에게 정성을 다해 공양을 베풀면 현세의 부모까지도 또 과거로는 7세의 어버이까지도 다 좋은 공덕을 받는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 말씀을 듣고 이제 목련존자가 그런 재를 마련해서 유래된 것이 이 백중이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백중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조상천도를 하는 것인데, 조상천도를 왜 하냐 그러면, 조상이 편안해야 되거든요. 왜 그렇게 얘기했어요? 내가 편하려고 하는 거예요. 내가 편안하려고, 조상을 편안하게 하는 거고 또 조상이 편안해야 내 마음도 편안하죠. 백중 때 여러 가지 일들 많지만, 또 무더운 여름이긴 하지만, 7번의 재를 마련해가지고 정성스럽게 진관사에서 선망부모를 모시고 재를 지내는 이유란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이제 선망 부모가 그렇게 편하려면 우선적으로 이루어야 될 것이 뭐냐 그러면, 내 마음이 편안해야 돼요. 내 마음이. 내 마음이 편안해야지만이 선망부모도 편안하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선 백중을 기도하면서 내 마음 정리부터 먼저 해야 돼요. 근데 백중을 하는데 아주 고구정령하게 내가 이번 백중만큼은 우리 조상님들을 위해서 공양을 베풀고 또 스님들에게 공양을 내겠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데, 혹자들은 백중을 입재하고 내지는 천도재를 할 때 응당 과보를 바라면서 하는 때가 있죠. 천도재을 하거나 또 백중기도를 하면 나한테 좋은 과보가 올 거다.

         물론 그것도 틀린 건 아닙니다마는, 요번 백중만큼은 그런 마음을 좀 내려놓고 내 마음에 집중하는 백중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마음에 집중한다는 얘기가 뭐냐면 내 마음을 좀 여는, 열어서 좀 스스로가 바라보는 그런 백중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기도하기 전에 천수경을 다 읽었죠. 그 천수경 중에 개법장진언이 있어요. 그렇죠? 개법장진언. 개법장진언이 뭐냐 하면 법장을 여는 진언이라는 참말이란 말이죠. 그게 법장이 뭐냐, 그러면 법의 창고예요. . 법은 다른 말로는 연기라고도 표현합니다. 연기 또는 법을 다른 말로는 여래라고도 표현하기도 해요. 이 법에 여래를 넣으면은 여래장이 되죠. 여래장. 여래장은 어디 있냐 그러면, 어디에 있는 게 여래장이에요? 내 마음에 있는 게 여래장이에요. 여래라는 부처님인데, 장자는 숨어 있다, 숨겨져 있다. 또 창고할 때 그 장이에요. 창고 장자. 곳집이라는 뜻인데, 그러니까 내 안에 여래가 이렇게 있는데, 그게 지금 숨겨져 있는 거예요. 드러나지 않아 있어요. 그 여래를 여는 것, 그게 개법장진언이에요. 그러니까 개법장진언을 하면서는 그냥 입으로만 하면 안 되고 마음속으로 내 마음에 부처님의 문이 활짝 열린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개법장진언을 해야 돼요. 나만 그러냐. 그런 게 아니라 백중기도 기간에는 개법장진언을 외우면서 내 마음도 활짝 열리지만 선망 부모의 마음도 활짝 열린다. 그러면 거기에 여래의 지혜광명이 드러난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해야 되는 거예요.

 

        근데 이 법장이, 여래장이 열려야 되는데 이게 꽉 닫혀 있어요. 열쇠가 이렇게 꽉, 자물쇠가 딱 채워져가지고 이게 도대체 잘 열리지가 않아요. 근데 그게 꽉 잠겨져 있는 게 두 가지가 있는데, 개법장진언의 진언은 뭐예요? <옴 아라남 아라다>. 다 아시죠? “개법장진언 옴 아라남 아라다이렇게 하잖아요. 그렇죠? ‘이라는 얘기는 길상이라는 뜻도 있지만 모든 게 처음에 시작할 때, 시작할 때 하는 말이고, ‘아라남은 뭐냐면 무쟁이라는 뜻이에요. 무쟁. 다툼이 없는 거예요. 무쟁삼매라는 뜻입니다. 아라남. 그리고 또 하나 아라다는 만족이라고 하는 뜻이 있어요. 그러니까 개법장진언은 하나는 다툼이 없는 마음과 또 하나는 만족하는 마음이 있는 거예요. 그게 법장을 여는 키예요.

        우리가 이제 내 안에 부처님이 있는데 본래 붓다가 있잖아요.“ 당신은 부처님입니다.” 그게 부처님이 있단 말이에요. 그게 여래장이라는 뜻이에요. “당신은 부처님입니다라는 말이 여래장이라는 뜻이에요. 당신은 여래장이다. 당신 안에는 여래가 있습니다. 원래 붓다, 본래 붓다다 이런 뜻이란 말이에요.

        근데 당신은 부처님입니다.” 그러는데, 그 부처님이라는 얘기를 입으로는 하는데 내 안에 부처님을 열어야 되거든요. 근데 여기에 지금 다 잠겨져 있는데 하나가 뭐냐면, 무쟁이 돼야 되는데, 다툼이 없어야 되는데 이 안에는 맨날 끊임없는 갈등과 대립이 있어요. 가만히 돌이켜보면은 내 마음은 늘 싸우고 있어요. 내 마음은 늘 전쟁 중이야. 요럴까 저럴까, 이럴까 저럴까, 요게 맞나 저게 맞나, 오만 생각을 하죠. 오만 생각을 하면서 오만 한 가지 생각을 하죠. 그러니까 맨날 마음 서로 갈등을 하는 거예요. 갈등. 이게 중생업의 발로입니다. 그런 갈등을 하게 되면 마음에 지혜가 싹틀 수가 없어요. 이 갈등이 내려앉는 거예요. 갈등을 하지 않는 거거든요. 갈등이 안 일어나려면 어떻게 해요? 멈춰야 되죠. 그게 아라남이에요. 무쟁, 다툼이 없는 거예요, 내 마음속에.

        그런 다툼이 끊어져야 그다음에 아라다가 되는 거예요.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거예요. 만족. 그러니까 하나는 불만족인 거죠. 불만족. 하나는 다툼이고 하나는 불만족인데, 이 불만족도 나 자신에 대한 불만족보다는 상대에 대한 불만족이 많아요. 현상에 대한 불만족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이 무쟁 다툼이라고 하는 거는 나하고의 다툼인 거고, 그게 일차적이고, 불만족은 환경에 대한 불만족이 더 많아요. 그래서 불행해지는 거죠. 행복 아니면 불행이거든요, 반대말이. 불만족이 불행이란 말이에요. 뭐가 완벽하지 못하면 계속 본인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나라가 잘 아시다시피 행복 지수가 세계에서 꼴찌 했다가, 꼴찌에서 2등 했다가 막 그러잖아요. 왜 행복지수가 낮냐 물어보면, 대부분이 다 본인의 삶에 대해서 만족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뭔가 불만이야. 불만이라는 말은 뭔가 부족하다는 거예요. 부족하다는 말은 뭐예요? 기대를 많이 한다는 거예요. 기대. 뭔가 기대를 많이 해. 근데 그 기대가 안 채워지면 불만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안으로는 자기하고 끊임없이 싸우고 밖으로는 늘 불만족이니까 행복할 순간이 없어요. 맨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제는 관점을 바꿔야 됩니다. 우리가 개법장진언을 외우는 이유는 하나는 그러한 내 안에 다툼을 내려놓고, 밖으로는 어떠한 환경이 오더라도 그것에 만족하리라고 하는 큰 가르침이 있는 거예요. 또 하나는, 하나는 그런 다툼이 가라앉고 만족하게 되면 내 마음에 여래장이 열린다는 거. 여래장이 열려야 내가 성취할 수 있어요. 내 삶이 장엄될 수가 있습니다. 근데 그것은 어디서 누가 주거나, 내지는 땅에서 솟거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발현되는 거예요. 이거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다만 그 내 안에서 발현을 아직까지 시키지 못한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백중을 입재하면서 오롯하게 조상님의 극락왕생과 편안함을 원한다면, 내 마음의 다툼을 첫째로 정리해야 됩니다. 내 마음의 갈등을 내려놔야 됩니다. 어떤 글에 보니까 우리의 삶을 100%로 했을 때, 늘 자기 내적 갈등으로 쓰는 게 30%래요. 그리고 감정 소비로 쓰는 게 30%래요. 우리가 행복으로 쓰는 거 있잖아요, 내 삶의 행복으로 내 마음을 쓰는 것은 많이 돼야 20%라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2%도 안 되는 사람도 있다는 거예요. 내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늘 갈등하고 사는지, 아니면 늘 내려놓고 사는지 스스로 들여다보면 돼요. 그냥 바로 하면 됩니다. 그냥. ‘아 내가 조금 내적 갈등이 심한 사람이다.’ 그러면 내 마음을 자꾸 비춰보면서 전환시켜야 돼요. 전환시켜가면서. 내가 불만족이 많다.’ 입만 열면 불만족이에요. 이것도 습관이거든요. 그럴 때마다 자기 자신을 한번 돌이켜봐야 되는데, 이게 굉장히 큰 공통점이 있어요. 내적 갈등이 심한 사람이나 아니면 불만족인 사람이 공통점이 뭐냐 그러면, 관점이 늘 밖에 가 있어. 상대가 있어요. 내 안에 들어가 있는 적이 별로 없습니다. 내 안으로 끌어들여야 돼요. 그래야지 해결되는 문제에요. 행복은 결국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거다. 그래서 당신은 부처님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부처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 법장을 열어야 된다. 법장을 열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 내적 갈등과 불만족을 내려놔야 된다. 그래야 진정으로 그 바탕 위에서 조상 천도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욕심이 가득가득한 마음 내지는 안으로 갈등이 가득한 그런 마음 가지고 천도를 하면, 조상님들도 우리가 이제 그런 말 있잖아요.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 하잖아요. 조상이 불편하면 후손 탓이에요, 역으로 얘기하면. 그러니까 우리가 우란분경이라든지 목련경이라든지 이런 데서 얘기하는 거 자체가, 결국은 후손들이 공덕을 지어서 후손들이 마음이 편안해야 조상도 편안하다 이런 말이에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부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간절하게 바라는 게 두 가지가 있는데 뭘 것 같아요? 부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거. 행복~ 그렇죠. 비슷비슷한 대답이 나오는데. 다 알면서 지금 용기가 없어서 말을 못하는 것뿐이지, 다 알고 있죠. 그렇죠?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가는 거예요. 팔만대장경을 우리 말로 풀어가지고 풀이해보면 다른 말이 없어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라.> 이게 부처님이 정리한 뜻입니다. 근데 우리가 이제 자식을 바라볼 때 자식한테 바라는 게 뭐가 있어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라. 그렇죠. 그 외에는 없어요. 자식에게 큰 명예를 얻어라. 또 큰 돈을 벌어라. 한참 성장할 때는 그런 얘기를 하죠. 근데 이제 여기 앉아 계신 연식이 되면, 이렇게 연식이 되면 그런 것도 사라져요. 자식한테 큰 명예를 원치 않고 큰돈도 버는 것도 원치 않고. 그렇죠. 자식한테 오로지 원하는 거는 건강한 거예요. 건강한 거. 그리고 행복한 거잖아요. 그게 부처님하고 부모님 마음하고 똑같은 거예요. 아마 선망 부모님들도, 우리하고 인연됐던 역대 모든 선망 부모님들이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모든 분들에게 바라는 게 건강하고 행복한 거예요. 그 마음 그대로 잘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거잖아요. 부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았기 때문에, 여러분도 그것을 실천해야 돼요.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또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자기하고 싸움을 그쳐야 돼요. 자기 목줄을 맨날 졸라. 그리고 맨날 답답하다 그래요. 속 탄다 그래. 숨이 잘 안 쉬어진다고 얘기를 해요. 근데 그 목을 누가 조르고 있느냐. 본인이 목을 조르고 있는 거거든요. 진짜 목 조르지 마시고요. 그리고 본인이 부처님께서 이렇게 행복하라 행복하게 살아야 된다는 말씀을 늘 하시지만 행복한 방법보다는 계속 서로 불만족해가지고 밖에서 뭔가를 계속 구하다 보니까 헐떡임이 심해지고, 그러다 보니까 늘 쫓기는 삶을 살게 되는 거잖아요.

 

       요 백중 49일 동안에는 하루에 딱 49일이니까 49초만, 49분도 아니고 4시간 9분도 아니고 딱 49초만 자기 자신을 바라보자. 내 마음을 바라보자. 49초만 하자. 50초도 원하지 않아요. 49초만. 내 마음에 내 내적 갈등을 쉬는 시간을 갖고 내 스스로가 만족하는 삶을 살고, 그렇게 해서 현상에 쫓겨가지는, 현상에 휘달리지 않는 그런 시간을 49초만 가지면, 아마도 49일 뒤에는 뭔가 변화된 자신을 바라보게 되고 이게 우리 선망 부모의 진정한 바람이구나. 또 부처님께서 그 긴 시간 동안 그 오랜 시간 동안 오랜 말씀으로 우리에게 바랐던 점들이 이러이러한 거구나. 내가 법장을 열어야 되겠구나.’라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겁니다.

       아무쪼록 장마가 시작됐지만, 또 바람도 불고, 여러 가지 기후가 안 좋지만, 이럴 때일수록 건강하게 잘하시고 여름 잘 보내시고 백중 끝나고 건강한 모습으로. 제가 예언을 또 하나 하겠는데 딱 딱 들어맞는 예언만 해요. 10월에 국화가 핍니다. 아셨죠!

       10월 국화 필 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