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이 진관사는 또 어떠한 곳이냐. 조선이 건국을 해서 4대문을 짓고 도성을 축조를 해서 조선이 시작이 됐을 때, 우리 수도 한양을 수호하는 동서남북의 사찰을 일단 설정을 했죠. 그래서 이 서쪽을 맡은 곳이 바로 진관사입니다. 그 전에 고려 때도, 그다음에, 그 이전에 역사는 굉장히 오래됐으나, 조선시대에도 그러한 임무을 가지는 아주 중요한 사찰입니다. 그리고 동쪽에는 불암사가 있고요, 북쪽에는 승가사가 있습니다. 거기도 비구니 스님 선원이 있고, 마애불이 있고 다 아시죠. 남쪽에 삼막사가 있어요. 그래서 이 수도 한양을 수호하는 동서남북의 네 사찰 가운데 서쪽을 수호하는 곳이 바로 이 진관사입니다. 그러면 그 정도의 중요한 임무가 있으니, 이 불교 역사에서 고려시대까지의 역사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시대에도 이 진관사는 굉장히 의미가 깊은 그런 역사가 담겨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저도 왕조 실록을 예전에 보다 보면 진관사가 등장을 해요. 그래서 처음에 보니까 수륙재 이야기가 나와요. 왕조 실록에 수륙재 얘기가 나오면서, 이 수륙재가 진관사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나눈 말씀들이 나옵니다. 진관사에서 계속 그렇게 수륙재를 할 수 있는 그런 지원을 해 주시고, 그다음에 세종대왕의 왕후였던 소헌왕후의 재를 여기서 지내고요. 뿐만 아니라 여기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런 역사가 이 진관사에 담겨 있지요.
진관사는 비구니 스님 사찰이니까 비구 스님이 비구니 스님 절에 잘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이 못 와보고 있었는데, 제가 탄허 스님을 연구하면서 이제 이 진관사에 조용하게 와서 현판 사진도 찍고, 주련도 보고, 그렇게 하는 기회가 있어서 왔다가, 그다음에 이제 동국대 불교한문아카데미에서 제가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수업 듣는 비구니 스님들, 스님들, 대중들이 같이 와서 참배를 정식으로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주지 스님이 그때 총무로 계실 때, 그때 와서, 지금 회주로 계신 계호 스님, 주지로 계신 법해 스님을 그때 뵙고 인사를 드리고, 이제 인연을 맺어서 박사 논문을 쓰고 했었는데요.
오늘 제가 간단하게 출력을 한다고 해왔는데, 카트리지가 다 돼서 이렇게 빨간 게 나온 데도 있을 겁니다.
거기 보시면 제가 탄허스님의 자료를 막 찾다가, 탄허스님 마지막 입정하시는 날 사진을 구했어요. 그게 지금 마지막 1983년 6월 5일 탄허스님 입적하실 때에 오대산 방산굴의 상황입니다. 스님이 편찮으셔서 서울대병원에 입원을 하셨는데, 그때 위암이셨다고 하는데, 의사 선생님이 “스님, 3개월 뒤에 입적하신다”고 그랬더니 스님이 그러셨대요. “내가 그때 만약에 세상을 뜨면 아주 명의인데, 사람은 그렇게 죽지 않소. 복진즉사(福盡卽死)라, 복이 다 해야 죽지.” 날짜를 딱 얘기하셨대요. “83년 6월 5일,” 이렇게 딱 얘기하시면서 “유시에 나는 세상을 뜨기로 돼 있다.” 그게 6년 전이셨답니다. 그러고 나서 노자 도덕경과 주역까지 다 번역을 하시고, 불교 경전을 다 하시고 난 다음에, 모든 교재, 화엄까지 다 하시고, 사교 사지까지, 치문까지 다 하시고 나서, 노자, 장자, 주역 선해까지 다 번역을 다 하신 다음에, 마지막 노자 번역을 교정을 다 보시고 딱 놓으신 게 입적하시기 바로 일주일 전이었다고 그래요. 그래서 미질이 생기기 시작해서 건강이 갑자기 문제가 생기는 듯이 보이니, 문도의 모든 분들이 ‘진짜 이때 입적을 하시려나 보다’ 이렇게 해서 이때 다 모이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이게 그 마지막 장면을 찍은 사진이에요. 6년 전에 내가 입적을 하겠다고 말씀을 하시고, 여기에 이 마지막 장면에 모든 대중들이 와서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 대화 장면들이 그대로 다 지금 나와 있죠. 그래서 이 사진을 왜 저기 앞에 했냐면, 그 앞에 옷매무새를 만져주고 계신 분이 우리 여기 진관 큰스님이셨어요. 진관 스님께서 이 진관사에 계실 때, 탄허스님이 서울에 개운사의 대원암에 번역도 하시고 계실 때, 춘성 스님이나 이런 어른 스님들하고 같이 서울에 볼 일이 있으셔서 오시고 하면 ‘진관사 가서 국수 좀 먹고 갈까’ 그래서 오셨다고 해요. 여기 진관사의 사찰 음식이 유명하죠. 이렇게 아름답고 깔끔한 도량이 어디 잘 있습니까. 우리 비구니계의 아주 큰 스님이신 진관 스님은 오대산 지장암 출신이시잖아요. 그래서 한암스님, 탄허스님께 다 가르침을 받고, 탄허스님 여기서 번역도 하실 때 도와주시기도 하시고, 공양을 많이 하시고 그랬던 그런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날, 진관 스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했던 마지막 장면의 사진을 제가 탄허학연구라는 책에 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 당시에 누구누구 계신가 하는 얘기까지 다 했고, 맨 오른쪽에 계신 스님이 마지막 여쭌 내용이, “스님, 마지막에 어떻습니까? 성성합니까?” 하니까, “성성하지, 성성하지 매하냐, 이 멍충아.” 그러셨대요, 마지막에. 그러시고 나서 마지막에 “유시됐나? 유시됐나?” 오후 5시부터 7시까지가 유시죠. “유시됐나?” “유시됐습니다.”하니까 딱 오른쪽으로 누우셔 가지고 입적하셨다. 그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남겨주십시오” 하니까, “일체 말이 없어.” 하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팔만대장경이 일자불설(一字不說)입니다, 그죠. 팔만대장경 한 번도 설한 바가 없다.
그래서 그때 많이 오셨던 그 유적들이 지금 남아있는 게 이 <나가원> 현판이 있죠. 원래 나가원, 나가르주나 할 때 나가가 용입니다. 용. 나가대정이다, 이제 부처님의 선정을 나가대정이라 그래요. 여러분 인도의 부다가야에 가면, 부처님 성불하셨던 부다가야 보리수 나무 옆에 보면 부처님 앉아 계신데 위에 이렇게 용이, 뱀이 수호하고 있는 모습을 만들어 놨잖아요. 부처님의 선정에 드신 모습을 말씀하시는 게 이게 나가원입니다. 그래서 선원으로 사용하시는 곳이고, 여기서 정진하셨던 그런 곳이라고 하죠.
지금 진관사는 누구나 불자라면 다 아는 서울의 중요한 아주 유서 깊은 전통이 있는 아름다운 사찰인데요. 갑자기 2009년에 칠성각에서 태극기가 발견이 됐죠. 다 아시죠? 그래서 그 태극기가 발견이 되고, 그 안에 그때 당시에 독립신문, 3.1 독립운동에 대해서 다뤘던 모든 기사와 관련된 문헌들이 방대하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게 2009년이었죠. 그 내용들이 나오면서, 이제 백초월 스님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재조명이 되게 된 것입니다.
그중에서 제가 이제 굉장히 관심을 갖고 본 게, 여러분 사진에 보시면, 태극기입니다. 그때 당시의 독립신문, 우리가 지금 독립운동을 했다는 걸 알린 상해의 신문도 있고 각가지 여러 형태의 신문이 있는데, 그 신문들이 1919년 6월부터 한 12월 사이에 나온 내용들이 다 이 태극기에 싸여 담겨져 있고, 왼쪽 위에 보시면 건괘 위에 살짝 불탄 모습이 있어요. 그래서 이 태극기는 사용을 했던 태극기라고 지금 추정이 되죠. 3.1운동 때 이 태극기를 사용했다고 봐야 되지 않겠느냐. 그리고 그냥 태양만 하나 이렇게 돼 있는 기존의 일장기인데, 거기에다가 태극을 그리고, 태극기를 그려서 사용을 했었다라고 하는 그런 얘기들이 많았고, 그 이후에, 우리가 해방 이후에, 그렇게 만들어서 사용한 내용은 있었으나, 실제로 3.1운동 당시에 이렇게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려서 사용한 태극기로는 유일하죠. 우리 진관사 태극기가 나와서 이걸 우리가 처음으로 실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일본의 제국주의의 어떤 침탈, 그리고 식민지 일제 강점이라고 하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그것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 의미로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이렇게 그리셨죠. 그리고 괘를 그려놨는데 괘가 이렇게 번진 것을 보면 일장기에 그린 것이 확실하다 이렇게 보여집니다. 그리고 이 얼룩이 져 있고 이렇게 된 것을 보면 분명하게 사용을 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태극기를 이렇게 보면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 남북통일이 되면 어떤 국기를 써야 됩니까. 이 태극기를 써야 돼요. 그렇죠. 이 태극기가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기 전에 외국에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형태의 국기가 필요해서 1882년이죠, 박영효로 하여금 태극기를 쓰게 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이 태극기를 국기로 썼고요. 그다음에 1919년에 독립운동 때 이 태극기를 다 사용을 했습니다. 그리고 상해 임시정부에서도 이 태극기를 썼죠. 그러니까 이제 남북이 분단되기 이전부터 우리의 태극기는 전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됩니다.
근데 여러분 태극기라고 하면, 태극이 어디서 나온 겁니까. 전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국기가 태극기에요. 그렇죠. 전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난해한 국기가 뭐냐 그러면, 우리 국기가 있고, 또 사우디아라비아 국기도 되게 어렵던데, 하여튼 사상적으로 가장 힘들고 어려운 태극기를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 태극이라 그러면, 첫 번째 떠오르는 게 조선조의 성리학의 주렴계의 태극도설이 떠오를 거예요. 그렇죠. 주렴계의 태극도설이 있어요. 그래서 유교의 모든 학문의 시작은 주역에 나오는 태극도설,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이다. 무극이라고 하는 것에서 태극이 나왔고, 그 무극이면서도 태극인 이 상황에서 이제음양이 나오고, 오행이 나오고, 사상 8괘 64괘까지 쭉 펼쳐지니까, 이거는 유교 사상에 입각한 거니까 조선시대의 사상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근데 제가 2010년에 화계사에서 법화경을 같이 공부를 하다가, 법화경에는 견보탑품이 나오니까 다보탑을 실제로 한번 보러 갑시다 이래서, 성지 순례를 경주로 1박 2일을 갔는데, 그때 감은사지를 갔어요. 감포에는 문무왕 해중 수중릉이 있죠. 거기에 문무왕에게 감사한다는,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이 감은사고, 거기에 국보로 된 3층 석탑이 멋있게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바다에 있는 해중 용이 돼서 국가를 수호하겠다라고 하는 문무왕의 뜻이 담겨 있잖아요. 석굴암에서 이렇게 딱 봤을 때 바로 보입니다. 감포의 물길이 대종천이라고 하는데, 물이 왜 대종천이냐 하면은 몽고가 침입해서 종을 실어서 가다가 바다에 빠뜨렸다고 해서 그게 대종천이잖아요. 그러니까 요즘으로 말하자면 거기가 최고 빠른 고속도로 같은 거예요. 물길로 나르면 가장 빠르니까. 그 물로 들어오면 바로 경주로 들어오게 돼 있는 거죠. 근데 거기를 왜구가 침입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 입구에 문무왕이 수중릉에서 ‘이제 내가 지키겠다. 해중 용이 돼서 지키겠다.’ 그래서 용이 한번씩 이렇게 들어와서 쉴 수 있는 곳이 감은사라는 거예요. 근데 그 감은사에 주춧돌하고 이 상석이 다 남아있잖아요, 돌들이. 여러분 거기에 한 번 감은사 가시면 꼭 한번 보십시오. 태극이 그려져 있어요. 태극이 그려져 있습니다, 감은사에 가면. 그러니까 그런 태극이라고 하는 게 단순히 조선시대에 시작된 사상만은 아니라고 보여질 수 있어요. 이게 말하자면은 주역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조선시대 때만 흥행했다는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동양의 고유한 사상으로 이어져 왔던 것이고, 그것을 우리가 태극기로 사용을 했고, 이 어마어마한 사상들, 탄허스님이 그렇게 얘기하죠. “태극을 깨달은 것을 각이라 한다.” 깨달을 각자의 의미가 뭐냐면 태극을 깨달은 것을 각이라고 하는데요. 그럼 태극이 뭐냐. 태극이라고 하는 건 불일이 불이죠(不一不二).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거예요. 음양이 나누어져 있지만, 음양이 이렇게 반으로 딱 구분돼서 나눠져 있지 않고, 이렇게 서로 갈마들게 돼 있어요. 그러면 음인 듯하면서도 양이고, 양인 듯하면서도 음이고, 나눠졌는가 하면 하나고. 우리가 용수의 팔불중도(八不中道)에서 나오는 중도의 세계가 그대로 드러난 게 이게 태극 아니겠어요. 불생불멸이요, 그다음에 불일불이요, 불래 불거(不來不去)요, 이게 다 정신으로 다 그대로 태극이 함양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이번에 진관사 3.1운동에 관련해서 강연을 하려고 해서 제가 논문도 찾고 봤는데 제일 궁금한 것은 이거였습니다. 맨 밑에 여러분 사진 보시면 태극기를 한번 보실까요. 태극기에 보시면 왼쪽 위에 건괘가 있죠. 양이 3개가 있는 게 순양이 건입니다. 그렇죠. 그다음에 그 반대편에 대가 돼 있는 것이 곤이죠. 음이 3개가 돼 있죠. 그리고 어렸을 때 우리가 태극기 그리기 많이 했잖아요. 여러분 태극기 어떻게 그립니까. 저는 이렇게 외웠었거든요. 3.1절 이렇게 외웠어요. 3.1절 이게, 3에다가 중간에 1이 있잖아요. 그다음에 밑에는 끊어졌잖아요. 그니까 3.1절 이렇게 외웠어요. 그러면 3 1이니까 여기에 오른쪽에 1 그리고, 음 2개 치면은 되니까, 외우기 쉽게 그렇게 외웠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러면 어떻게 돼요. 건이고 곤이죠. 그다음에 감과 리가 있어요. 리가 뭐냐 하면 불입니다. 불. 그렇죠. 리중허(離中虛)라 그래요. 리중허, 안쪽이 비어 있는 게 리괘입니다. 그러면 건괘 밑에 있는 왼쪽 아래에 있는 게 리에요. 불이에요. 그러면 오른쪽 위에 오른쪽 곤 위에 있는 것이 감이 되겠습니다. 물입니다. 여러분 물 수자가 원래 전서체 보면, 물이 이렇게 흘러가는 거, 이게 괘 모양으로 돼 있죠. 전서체 보면 물 수자가 중간에 물이 쭉 길게 있고, 물이 이렇게 흘러가는 모양으로 해놓은 게 물 수자에요. 여러분 이게 물과 불이라고 하는 거는 64괘 가운데 건괘 곤괘라고 하는 건 순양과 순음인데요. 이거는 상징이에요. 세상에는 이런 게 없대요. 심볼릭한 사태예요. 순양과 순음은 없대요. 세상의 모든 건 음양이 섞여 있대요. 그건 상징일 뿐이에요. 이 세상은 모두 음양으로 구성돼 있다라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 건,곤이 존재하는 거예요. 근데 세상의 모든 것에 음양의 대표하는 것은 물과 불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원래 8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옛날에는 8괘를 그린 국기도 있었어요. 태극에다가 8괘를 다 그려놓은 게 옛날에 태극도에도 나오죠. 근데 우리가 태극기를 그릴 때는 건곤감리만 그렸잖아요. 그래서 이게 지금 감리라고 하는 게 하늘과 땅, 물과 불이에요. 근데 물과 불이라고 하는 걸 자세히 한번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불 속에는 반드시 음이 있어요. 여기 지금 밑에 보시면 리 속에 음이 있죠. 물속에는 반드시 양이 있어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 스님들은 잘 아십니다. 촛불을 켜놓으면 여러분 초 끝이 뜨거워요. 그렇죠. 초 안에 심지가 있는데, 불 끌 때 그냥 손으로도 끌 수 있어요. 심지 안은 뜨겁지 않습니다. 양이라고 하는 불을 유지하려면, 속에 음이라고 하는 에너지가 있어야 유지가 됩니다. 그래서 불이라고 하는 것 속에는 항상 음이라고 하는 형태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글거리는 동적인 불 속에는 움직이지 않는 정적인 에너지가 있어야 불이 활활 타오를 수 있어요. 그래서 불 속은 오히려 차갑습니다. 태풍의 눈이 오히려 조용하듯이. 그러면 물이라고 하는 건 뭐냐. 물이라고 하는 건 겉에는 차갑지만 물의 안, 속에 들어가면 불기운이 있는 겁니다. 양기가 있어야 계속 흘러갈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는 겁니다. 그게 이제 감입니다.
이제 이렇게 돼 있는 상황인데, 우리 진관사에서 2009년에 출연한 태극기를 보면 감리가 바뀌어 있어요. 맞죠? 감리가 바뀌어 있어요. 이게 도대체 뭐냐. 그러면 이거 우리가 태극기 그릴 때, 우리 초등학교 태극기 그릴 때 잘못 그려가지고 이렇게 바뀌기도 하고, 심지어 외교부에서 잘못 걸기도 하고 어렵잖아요, 태극기가. 그래서 실수하신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데, 가만히 조사를 해보니 그렇지 않은 것이, 1942년에 상해 임시정부에서 썼던 태극기도 지금 우리 진관사에서 나온 초월 스님의 태극기와 같았어요. 박영효 시대 때부터 시작해서 고종 임금의 대한제국까지 썼던 태극기는 지금 우리가 쓰는 태극기와 같아요. 그러다가 삼일 독립운동할 때 태극기의 모양은 괘가 이렇게 됐다가, 1919년부터요, 그리고 상해 임시정부의 1940년대까지도 이 태극기를 쓰다가, 해방이 되고 난 다음에 다시금 지금의 태극기 형식으로 쓰고 있다, 이렇게 돼 있어요. 그러면 전체적인 흐름이 이렇게 돼 있다면, 물론 중간에 조금 같이 혼용해서 썼을 때도 있겠지만, 3.1운동 때 분명히 이 태극기를 썼다는 거예요. 그럼 이거에 대해서 제가 논문을 많이 찾아봤지만 설하고 있는 바가 없어요.
여러분 주역이라고 하는 거는, 무극이라고 하는 건 원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동양의 시간관은 직선이 아니죠. 이렇게 직선으로 가고 있어도 나선형 쪽으로 이렇게 돌면서 가는 겁니다. 돌면서 가기 때문에 직선을 함유하고 있지만, 이것이 결국 가다 보면 이제 곡선으로 오게 돼 있어요. 그래서 원운동을 하게 돼 있습니다. 법성게가 중간에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에서 시작이 돼서, 이쪽 위에 오른쪽 위에 갖다가 내려와서 구래부동명의불(舊來不動名爲佛)해서 법 밑에 바로 딱 붙죠. 그러면 이게 한 번 하고 맙니까? 법성게를 삼회 탑돌이 할 때 항상 부처님 우요삼장(右繞三匠)하잖아요. 부처님 주변을 세 번을 오른쪽으로 돌았다. 그래서 여기에서 법성원융무이상부터 해서 이렇게 우요삼장을 하게 돼 있는 거예요. 그러면 구래부동명이불 했을 때 불에서 다시 법으로 가는 거예요. 이어지게 돼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직선적 사관이 아니에요. 우리는 원운동을 하고 있어요. 원이라고 하는 거를. 주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괘, 곤괘부터 시작해서 64괘가 이어지는데, 64괘에서 끝나버리면 시간이 그냥 직선이 되잖아요. 근데 64개의 마지막 괘에서 다시 건괘로 돌아가게 돼 있어요. 근데 여기에 지금 보이는 불과 물, 감과 리라고 하는 것이 바로 63번째 괘와 64번째 괘를 구성하고 있어요. 그걸 제가 밑에 그랬잖아요. 수화기제(水火旣濟) 괘가 있고, 화수미제(火水未濟) 괘가 있는 겁니다. 수화기제괘라고 하는 거는, 이게 지금 여러분 보시면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괘는 뭡니까? 위에 물이 있고 밑에 불이 있죠. 그러면 수화기제 괘예요. 수화기제 괘 ,63번째 괘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됐냐면, 보세요. 여러분 한번 상상을 해보세요. 밑에 불이 있고 위에 물이 있어요. 그러면 물이라고 하는 건 항상 아래로 내려오려고 하죠. 불이라고 하는 건 항상 위로 올라가려고 하죠. 그러면 수화기제 괘라고 하는 건 뭡니까. 아래에 있는 불은 자꾸 위로 올라가고, 위에 있는 물은 자꾸 밑으로 내려오려고 하겠죠. 그래서 수화기제 괘는 소통이 되는 괘입니다. 그래서 기제괘입니다. 다 됐다. 음양이 완벽하게 소통이 됐다. 그리고 첫 번째 효(爻)가 1이라고 하는 건 양수잖아요. 2는 음수고요 근데 1이라고 하는 양수의 양이 있죠. 이라고 하는 음수의 음이 있죠. 그래서 중정(中正)이 구성됐다. 중국의 장계석이라고 하는 분의 호가 중정이에요. 이게 주역에서 나온 말입니다. 1이라는 숫자의 양이 있고, 2라는 숫자의 음이 있고, 딱 맞는 제 위치에 자기 자리를 잡고 있는 걸 중정이라 그래요. 이 수화기제 괘는 중정이 완벽하게 갖춰진 완전한 세계입니다. 완전한 세계가 됐다. 이거예요. 주역의 사상은 뭐냐 하면, 63번째 괘에서 이제 완전한 게 됐다. 이거예요. 완전한 게 됐다. 근데 64번째 괘는 이걸 거꾸로 했대요. 화수미제 괘가 됐어요. 완전한 그 형태가 거꾸로 뒤집히면서 불이 위에 있고, 물이 밑에 있으니까 불은 위로 올라가려고 하니까 올라가 버리고, 물이 밑으로 내려와 버리니까 이게 바뀌어서 소통이 안 되는 상황이 되죠. 그래서 미제괘가 된 거예요. 완성됐던 세계가 다시 미완성으로 끝났다는 거예요. 미완성으로 끝났기 때문에 64번째 괘가 다시 건괘로 돌 수가 있는 거예요. 완성이 돼 버리면 더이상 돌 리가 없겠죠. 그래서 64번째 괘는 미제괘입니다. 화엄에서 선재 동자가 미륵을 만나서 묘각을 이루어서 끝났어요. 근데 다시 처음에 문수보살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법성게가 이렇게 돌아가는 거예요. 주역하고 화엄하고가 똑같습니다.
그러면 이 괘가, 조선의 대한제국을 설립했을 때, 그다음에 지금 현재 우리 정부를 구성하고 있을 때는 수화기제 괘를 쓰고 있어요. 완전한 세상이라고 하는 걸 보여주고 있어요. 근데 3.1운동 때 하고, 상해 임시정부에서는 화수미제 괘를 쓰고 있어요. 이거를 우리가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지금의 세상은 완전한 세상이 아니라는 거죠.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겠냐. 이거 만약에 내가 괘를 그린다고 했을 때, 이게 지금 완전한 세상이라고 볼 수 없다. 뒤집은 거죠. 고종 황제가 선언했던 대한제국은 우리의 완전한 어떤 독립국이라고 하는 걸 선언한 거지만, 지금은 이 세상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일제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에요. 그래서 일장기 위에다가 그려서 이 세상을 극복해야 되는 세상이에요. 그래서 64번째 궤를 그려가지고 다시 처음으로 건괘로 돌아가게 만들어준 거 아니겠느냐. 이렇게 추정이 가능하지 않겠느냐 이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이러한 사유를 가지고 이 괘를 그리셔서 독립운동에 쓰시고 상해 임시정부에서 썼는지 안 썼는지는 알 수는 없으나, 주역의 형태로 우리가 후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는 이런 상황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괘의 구성이. 그러니까 그러고 난 후 우리가 해방이 되고 난 다음에 이제 우리가 다시 완전한 세상이 왔어요. 그래서 옛날에 괘의 구도의 형태를 다시 재배치했지 않겠느냐. 지금 일제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불은 하늘로, 위로 올라가 버리고 물을 땅으로 내려와 버리는 음양이 잘못된 세계다. 이건 다시 바꿔야 될 세계고, 다시 돌려서 법의 바퀴를 굴려가지고 곤괘로 돌려야 되는 세계가 된 것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래서 이제는 이런 부분을, 이런 자료가 왜 이렇게 썼는지라고 하는 자료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고요. 역사적인 고증을 할 수 있는, 왜 이렇게 괘를 획괘했는지, 태극기를 왜 이렇게 그렸는지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 우선이지만, 역학적인 방식으로는 이것을 이렇게 풀이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