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6



지심발원 대자대비이신 불보살이 이 진관사에 내려오셔서 오늘 청해 모이신 모든 수륙재 운집 영가와 광복 80주년을 맞아 이 나라 광복을 위해 생명을 초개처럼 버린 모든 독립군 영령들과 이 나라를 위하여 목숨 바친 호국영령들을 위하여 증명하여 주옵소서. 진관사에서 해마다 수륙재를 지내는 이 공덕으로 금년에는 독립군 영령들과 호국영령들 부디부디 모든 의변(依邊)은 소멸하고 보리심은 분발하여 왕생극락하여지다. 나무아미타불.
해마다 수륙재를 위해 가지고 특히나 해마다, 올해는 우리나라 광복을 위해 가지고 온 가정과 자기 생명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독립을 위해서 평생 살다가 돌아가신 우리 독립군, 이름 없이 돌아가신 모든 호국영령들을 이렇게 모셔놓고 수륙재를 지내드린다는 거는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돌아가시는 영령들에게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러한 모든 영령들을 위해서 해마다 이러한 수륙재 법회를 봉행하는 회주 스님의 큰 원력과 주지 스님의 원력, 그리고 대중 스님들이 그러한 마음에 정말 마음으로부터 고마움을 드립니다. 신도님들도 사실은 이것은 나라에서 해야 할 일이고 온 국민이 해야 할 일인데 그 어른들이 없었다면 이 나라 광복을 위해서 이 나라 해방을 위해서 그러한 독립 투사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나라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 세계 어디 내놔도 부끄러움 없는 나라가 된 것은, 그리고 우리가 지금만큼 잘 살 수 있고 이런 나라를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은 그 독립군 한 분 한 분 그분들 발자국 때문이었고 그분들 그 피나는 고생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분들이 고마움을 모르고 그분들의 삶을 돌아보지 못하고 사는 삶이 저 자신부터 어쩌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인데 그러한 모든 분들을 대신해서 이 나라와 백성들을 대신해서 해마다 이러한 수륙재를 모시고 이런 정성을 다해 주시는 진관사 대중들께 정말 다시 한 번 고마움을 드리면서 그러면 오늘 수륙재에 오신 모든 영령들이요 이러한 정성이 한낱 헛되지 않도록 여기 모인 모든 신도들이 정성을 다하여 호국영령들을 청해 모시고 이렇게 수륙재를 모시는 이 정성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 오늘은 나하고 같이 회주 스님, 주지 스님, 모든 스님들을 다 같이 원력을 모아서 호국 영령 독립군 영령들께 큰 스승께 한번 모시고 가고 싶은 생각입니다.
그 스승은 벽을 허물어버렸기 때문에 한 허공이 된 분입니다. 한 허공이 된 분. 여러분들은 그분이 바로 이 자리에 있다고만 하면은 믿지를 않습니다. 안 믿어요? 하나 물어봅시다. 지금 진관사 앞에 맑은 공기 맑은 바람이 이렇게 지나가는데 바람이 보입니까? 안 보이죠. 산소 공기, 수소 공기 진관사는 워낙 산세도 좋지만 스님들이 워낙 잘 사시는 그 공기가 더해서 공기가 워낙 좋은데 그 공기가 보입니까? 그러면 공기도 볼 줄 모르고 바람이 지나가는 것도 볼 줄 모르는 눈을 너무 믿지 말자는 얘기야. 그러면 그 스승이 벽을 허물어버린 분은 공성(空性) 연기(緣起)라 그러한 깨달은 분에게는 허공이 없습니다. 허공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예요. 즉 온통 청정이기 때문에 너와 내가 없는 불성(佛性)으로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어서 그분을 떠억 찾아뵙고 가서 그런데 우리가 떠억 호국 영령들이랑 여러분들을 모시고 가봤더니 다른 스님께서 먼저 가서 우리를 대신해서 질문을 한다 이 말입니다.
대주(혜해)스님께 호국영령들이여 오늘 호국영령들 영전에 대주혜해 스님이라는 큰 스님을 당신들 스승으로 모셔드리오니 정말 기뻐하십시오. 가서 뭐라고 물었느냐 하면은 어떻게 하면 이 나라를 위해서 싸우다가 때로는 마음에 상처를 받고 때로는 속상한 일이 있고 마음에 응어리진 게 많고 많은데 그거를 다 버려두고 대열반(大涅槃). 어떻게 하면 왕생극락하여 모든 공덕이 나라와 둘이 아닌 걸 알 수 있습니까? 즉 어떻게 하면 대열반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렇게 물었다 이 말이에요.
물으니깐 호국 영령들이여 내가 출가(出家)를 해가지고 살아보면 어릴 때는 어릴 때는 13살 때 내가 절에 들어왔으니까 66년 전이니까 뭘 알겠어. 그때 장난치다가 노상 노스님들한테 두드려 맞기만 하니까 노스님 미운 마음 저 날 때린 스님 두고 보자. 이제 몇십 년 후에 내가 가만히 안 둘 거라는데. 지금 계셨으면 정말 잘해드리고 싶어. 얼마나 큰 마음을 가지고 때려줬는지 그 인제야 뒤늦게 철이 든단 말이야. 뒤늦게. 사람들이 불행한 거는 여러분들 자식들도 뒤늦게 철이 들어. 지금은 그냥 베풀기만 해 놔두면 뒤늦게 철이 들어서 부모의 고마움을 알게 되는데 마찬가지로 스님을, 스승을 찾아가 가지고 “어떻게 하면 왕생극락(往生極樂)을 할 수 있습니까? 즉 대열반(大涅槃)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스승이 하는 말이 “호국영령들이여, 생사업(生死業)을 짓지 않으면 되느니라” 이랬다 이 말이오. 생사업을 짓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오늘 진관사에서 수륙재에 동참한 모든 영가들과 선망 부모와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생사업을 짓고 있는가, 열반(涅槃)의 길을 가고 있는가? 열반은 업이 아니기 때문에 열반의 도를 걷고 있는가, 생사업을 짓고 있는가 한 번 돌아보십시다. 생사업이라는 게 뭐예요? 생사업이라는 게.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는 그 길로 가는 걸 생사업이라고 하는데 여러분들은 모르지만은 해마다 요 스님들이 이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저는 하안거, 동안거만 해봐도 끝나면 또 바로 준비해서 또 해야 되는데, 이 수륙재(水陸齋)라는 게 참 참으로 소중하고 소중하고 모든 조상 모셔놓고 요만이라도 모자람이 없어야 잘못됨이 없어야 되기 때문에 정성 정성 다해서 법문만이 아니고 염불부터, 대령부터, 목욕부터 아주 신도들 대하는 것까지 하는 게 쉬운 일 아니에요. 진관사 신도님들은 참 진관사 스님들 고마운 줄 아셔야 돼. 저분들 없으면 이런 수륙재 이게 이렇게 정성들여 못 해봐요.
법사 스님 하나 청하는 것만 보더라도 참으로 모시기 어려운 분들을 모셔오니까 그분들 덕에 여러분들은 가만히 앉아서 이놈 법문도 듣고 저놈 법문도 듣고 참 좋은 세상이요. 옛날에는 우리가 찾아갔었거든. 그러면 생사업이라고 하는 게 무엇인가를 알면 오늘 호국 영령들이, 독립군들이 아, 나도 자칫 그 길로 가고 있었었구나. 생사업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경계를 생사업이라고 합니다. 생사업이다.
그럼 아까 말씀드렸듯이 여러분들 눈으로는 바람도 안 보이죠. 그렇죠?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나 혼자 아주 잘 죽거려. 내가 본래 잘 죽거리는 사람. 혼자 잘 죽거려. 토굴에 오래 살면 자기 혼자 얘기를 잘하거든. 저 태백산 도솔암 같은 데 있어 보면 사방 몇 십 년에 아무도 없는 데서 생식하고 그냥 있으면 혼자 그냥 중얼중얼 혼자 잘 죽거려. 매미가 울어가면 너는 왜 우니? 산에 산짐승이 울면 왜 뭐가 불만이야? 혼자 잘 죽거려서 습관이 돼서 지금도 대답을 하거나 말거나 잘 죽거리니까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마라.
그러면 바람도 안 보이고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성스러운 진관사가 태양 둘레를 도느라고 우리가 앉아 있는 법당이 전체적으로 돌고 돌고 돌고 있죠? 그러면 돌고 있다는 말은 뭐예요? 변하고 있다는 말이고 그러면 빛의 속도로 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우리는 단 한 번도 태양을 본 일이 없습니다. 저 태양에서 햇빛이 출발해서 우리 지구에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려요? 8분 걸리죠? 확실히 진관사 신도들 똑똑하네. 팔 분 걸려 팔 분.
그럼 우리가 보는. 지그들 좋다니까 박수 칠라고 하는 거 봐봐 또. 8분 걸린단 말이야. 그러면 우리가 보는 태양은 몇 분 전에 태양을 보는 거예요? 8분 전에 것만 보지 지금 당장 살아 있는 태양은 평생 못 봅니다. 우리가 밤에 보는 참 많고 많은 별자리들이 1억 년 전에 폭파돼서 없어져버린 별인데, 1억 년 동안 빛이 우리한테 오고 있으니 없는 별을 1억 년 동안은 있는 걸로 보고 있고, 새로 생긴 별이 수천 수만인데 그 빛이 우리한테 오는 데 천 년 걸리면 천 년 동안은 우리는 그 별이 안 보여요. 아, 내 눈을 믿으면 안 되겠구나. 낮에도 별이 수없이 많은 별이 있지만은 태양에 가려서 하나도 안 보이니 내 눈을 너무 믿지 말자. 그럼 이 집 자체가 전체가 태양 둘레를 돌아가는 그 엄청난 벼락 치는 소리가 들립니까? 안 들립니까? 안 들려요. 안 들려요.
그리고 오늘 저녁 옛날 나는 어릴 때 노스님들한테, 노스님들 모시고 살면 어린 것들을 두고 늘 그게 교육이었어. “혜국아”, “예, 스님”, “오늘이 처서다” 처서가 뭔지 아나 꼬맹이가. 14살짜리가 뭘 알아? “예” 하면은 “처서란 말이다, 귀뚜라미가 가을을 업고 오는 날이다” 이번 처서는 그래서 귀뚜라미한테 물어봤어. “왜 이리 처서가, 귀뚜라미 너희들이 가을 안 업고 왔냐?” 하니까 “요즘 가을 말 안 들어요.” “왜 그리 말을 안 듣는데?” 하니까 “요즘 사람들 똑 닮았어요.” 사람들이 말 안 들으니 가을도 안 업혀요. 그러나 어떤 더위도 가을을 이겨내는 더위는 없습니다. 벌써 아침저녁 서늘하거든요. 가을을 이겨낸 더위는 없다, 이 말이에요. 어떤 고난과 어떤 억울함과 어떤 속상한 것도 내 마음 불성(佛性)에는 이겨낼 수가 없다는 얘기야.
그러면 여러분들이 금방 대답하듯이, 눈으로 보는 것도 정확하질 못하고 귀로 듣는 것도 정확하지 못하면은 아, 내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걸 가지고 평생 판단해 왔는데 이거는 아니다, 이걸 오늘 놓아버리자. 그 생각을 놓아버리면, 여러분들이 그 생각을 방하착하면, 호국영령들과 선망부모와 모든 조상들도 와, 우리 자손들이 마음에 콱 맺혔던 마음의 상처를 놓아버리니 정말 보기 좋다, 우리도 놓아버리자. 내가 천도 되면 조상이 천도 되고, 조상이 천도가 되면 내가 천도가 되니 나와 조상은 DNA가 하나이기 까닭이다.
그러면 그 보고 듣고 하는 생사업(生死業)을 짓지 않고 열반(涅槃)의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늘 드리는 말이지만은, 꼭 같은 지옥에 있다 하더라도 만약 오늘 저 많고 많은 영가들 중에 너무 한이 맺혀서 지옥에 있는 영가라면은, 그 영가가 만약 다른 종교를 믿는 영가라면 그 지옥에서 얼마 동안 있어야 돼? 얼마나? 얼마나 있어야 되냐고. 조금 덜 똑똑하네, 아주 똑똑한 줄 알았더니. 영원히, 영원히. 다른 종교에서는 영원히 떨어져 있어야 돼, 다시는 나올 생각 말아야 돼. 그런데 불교를 가까이했던 그런 영가들은, 불교의 지옥은 지옥에 가도 내 불성(佛性)은 적어지지 않는다. 조금도 나빠지지 않는다. 내 생각만 바꾸면 그날 나올 수 있다. 불교의 지옥은 똑같은 지옥인데 교육장이었다, 교육장. 교육만 받으면 바로 그냥 나온다, 이 말이야. 저 지금 염불 잘하는 스님들이 그 정성으로 염불을 할 때, 그 전부 교육시키는 말이거든. 영원 담적, 영원히 적어지지도 않고 많아지지도 않고, 지옥을 갔던 사람이 됐든 어디를 갔든 니 마음은 그대로다. 니 마음, 생각만 놓아버리면 바로 그 자리다. 그럼 교육장이란 말이에요.
그러면 열반(涅槃)의 도를 가려고 그러면은, 다른 종교에서는 죄를 다 없애두고 그 길을 새로 저만큼 걸어야 거기가 되는 줄 아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涅槃)의 도, 왕생(往生) 가는 길은 ‘미운 마음, 원망하는 마음, 보고 듣는 그것만 놔버려라. 그거 믿지 말라. 그거 놔버리면 한 발자국 움직이지 않았고 그 자리가 바로 그 자리다.’ 그건 뭐와 같으냐면은, 서울에서 흘러가는 강물이 무슨 강물이야? 한강이죠. 낙동강, 경상도에서는 낙동강, 저 전라도에서는 섬진강, 느려터진 충청도에서는 백마강, 금강. 그러면 바다에 가서 낙동강이 섬진강 보고 “야, 나 너하고 안 놀아.” 섬진강이 낙동강 보고 “야, 나도 너하고 안 놀아.” 그렇게 서로 티격태격합니까? 그냥 한 바다가 돼가지고 파도가 철썩철썩할 때는, 청마 유치환 선생의 ‘파도’라는 시를 보면, “파도야 난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난 어쩌란 말이냐, 님은 뭍같이 꿈쩍 않는데 파도야 난 어쩌란 말이냐.” 아무 싸움도 없이 한 바닷물이 됩니까, 서로 싸웁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이 불성(佛性)이라는 바다에서 볼 때는, 싸우는 것이 보고 듣는 생사의 업에서만 있는 것이지, 열반(涅槃)의 도, 극락(極樂)의 도에는 없다는 거예요. 없어.
그걸 새로 만들어서 가는 길이라면은 엄청 힘든 일인데, 부처님을 믿는 여러분들의 행복은, 내가 지금도 아까 와서 딱 절을 하면서 “다음 생, 다음 생, 몇 백 생 태어나더라도 스님의 길이 아니면 결코 가지 않겠습니다. 부처님 꼭 지켜봐 주십시오.” 66년 동안 스님 생활하다 보면요, 다른 길 같으면 “아이고, 짜증 나, 아이고, 타성에 젖어” 하면 할수록 부처님의 고마움이 뭐냐 하면은, 부처님은 “눈 온 들길을 걷는 나그네요.” 눈이 하얗게 온 들길을 걸어보면 걷는 대로 발자국이 찍히죠, 그죠?
삐딱삐딱 찍힌 사람은 삐딱삐딱하고 반듯한 사람은 반듯반듯하는데, 그러면 빼딱빼딱 지킨 사람이 이렇게 돌아보면 자기 발자국이 형편없으면 뒤로 돌아가서 발자국을 새로 바꿀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어제로 돌아갈 수가 없어요. 우리는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갈 수 없어요. 딱 한 번 1초 지나면 1초 전으로 못 돌아가요. 그래서 바로 현존(現存) 일념(一念)이다. 그걸 법정 스님은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을 많이 썼죠. 물론 경(經)에 있는 말이지만. 한 번 보고 한 번 볼 때 이미 끝난 일이다. 다시는 못 돌아간다. 그러면 다른 모든 철학에서는 그 삐딱삐딱한 발자국 때문에 너는, 너는 인생 조진 놈이다, 버린 사람 취급을 한다, 이 말이야. 부처님은 오늘 그걸 돌아볼 게 아니라 오늘 반듯반듯 걸어서 저만큼 가서 돌아보면 반듯반듯한 발자국이 보여요 빼딱빼딱한 게 보여요? 빼딱빼딱한 건 없어져 버렸어. 반듯반듯, 아, 현존 일념이 바로 내 인생이구나.
내 지금 마음에 깨어 있으면 영원히 깨어 있는 것이고, 내가 지금 마음을 놓치면 그건 영원히 다음다음도 그 마음이 그 마음이다. 그래서 『금강경(金剛經)』에는 “과거심(過去心) 불가득이요 현재심(現在心) 불가득이요 미래심(未來心) 불가득이다” 이랬는데, 그러면 생사업(生死業)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그런 것을 놔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걸 어떻게 하면, 어떻게 놓으면 좋겠습니까? 놓아버리는 법. 그것을 부처님께서는, 내 성질 같으면 이렇게 말해도 안 듣고 저렇게 말해도 안 들으면 때려 치워버릴 텐데, 『아함경(阿含經)』을 12년 동안이나 설해 주고 『방등경(方等經)』을 8년이나 설해 주고, 그게 다 공(空)이라는 거를 600부 반야 중에서 21년 살아나는 동안 577번째 『금강 바야바라밀(金剛般若波羅蜜)』을 떡 설하면서 거기서 뭐라고 그랬어요? 육조스님이 무슨 말 끝에 홀연히 열반(涅槃)의 도를 앓았습니까?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응무소주. 그래서 이제 이 스승에게, 호국 영령들이여. 당신들 오늘 대박 나는 날이오. 진관사라는 데가 있어서 수륙재의 모든 그런 나라를 위해서 돌아가신 그런 영혼들과 원래는 독립군 그런 호국 영령들까지 모셔놓고 해마다 이렇게 해드리는 건 사람 노릇 우리를 시켜주는 거예요, 여러분들. 사람 노릇 시켜주는 거라고. 그러면 “영령들이여. 어떻게 하면 보고 듣고 느끼는 경계를 한 생각에 탁 놓아버리고 열반의 도를 갈 수 있습니까?” 하니까, “야야 『금강경(金剛經)』에서 벌써 말 안 했나? 응무소주 이생기심하라.”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쓰라. 그 마음을 내라. 그러면 여러분들은 머무는 바가 주로 어디에서 많이 나옵니까? 머무는 게. 가족들끼리 가장 머무는 게 많아요.
저 남편이 내 결혼기념일을 아는가 모르는가 자기만 알도록 달력에 딱 표시해 놨다가 알아주면 다행인데, 모르면 꼭 저녁 굶은 고양이 새끼 모양으로 꽁 해가지고 가슴에다가 “나는 너를 위해서 얼마나 했는데 그것도 하나 모르냐” 머물러 탁 가슴에 머물러. 딱 머물러가지고 머무르면 뭐가 돼요? 업(業)이 돼. 죄가 돼. 그게 생사라. 바로 보고 듣는 데 넘어갔으니까. 아들 딸들이 “나는 너에게 얼마나 인생을 다 바쳤는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어머니 말을 안 듣느냐. 아버지 말을 안 듣느냐” 왜 안 들을까 아들 딸들이. 아들 딸들 말 잘 들어요 안 들어요? 안 듣죠. 그 원인 분석해 봤어? 원인을. 여러분들이 아버지 어머니 말 지독히 안 들었거든요. 여러분들이 바로 안 들은 사람이요. 나 봐요. 나, 나는 아버지가 이 길 가는 걸 엄청 반대했어요. 그런데 이 길 갔어요, 안 갔어요? 내가 대표적으로 아버지 어머니 말 안 듣는 사람이야. 다음 생도 안 들을 거야. 어쩔 수 없어.
여러분들은 아버지 어머니 말 지 딴에 잘 들었다고 해도 부모가 볼 때는 반의 반도 안 들은 사람들이거든. 그러니 아들 딸들도 안 들을 수밖에 없어. 그리고 부모한테 뭔가 받을 게 있고 갚을 게 있기 때문에 아들로 태어나지. 당신들 말하는 대로 당신 말만 잘 들으면 오늘 딱 멈춰가지고 더 큰 데는 못 내려가요. 댐에 막혀서 못 내려간다 이 말이야. 아들딸들이란 내 마음대로 들어야 된다. 이런 데 멈춰 있구나. 내가 여기에 딱 머물러 있구나. 응무. 응무소주(應無所住)라야 할 텐데 머무름이 없어야 할 텐데 내가 여기에 탁 머물러 있으니 와, 진관사 수륙재(水陸齋) 하는 동안 내 가슴을 가만히 돌아봐서 이런 마음 이런 마음 이런 마음이 내 상처로 있구나. 요거 내려놔버리는 것이 응무소주 이생기심(而生其心)이다.
과거에 지나온 일은 지나가 버렸잖아. 오늘 내가 한강을 건너왔는데 오늘 조금 있다가 내려가다 보면 그 한강이 없단 말이여. 다 있다고 하는데 그거는 착각이여. 내가 본 강물은 벌써 바다로 흘러가 버려서 흔적도 없어. 다음 생애도 못 봐. 그러면 강물만 그러나요. 보고 듣는 게 보는 찰나다. 강물보다 몇십 배 빨리 흘러가 버리니. 아, 내가 보고 듣는다는 건 흘러가 버리는 게 없는 거를 내 마음에만 붙들고 있는 거를 머문다고 하는구나. 가장 머물기가 쉬운 곳이 내 가족이다. 남편, 부인, 아들, 딸. 근데 내가 볼 때는 좀 웃기는 게 있어 부부 간에. 남편들이 지 덕 보려고 장가간 거지 마누라한테만 잘하려고 장가간 건 아닐 거거든요. 근데 자기한테만 잘해주는 거예요. 그러면 보살들도 지 덕 보려고 시집을 갔지 남편한테 무슨 헌신적으로 가려고 간 게 아니거든요. 서로 그걸 인정해서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다름을 인정하면 마음에 머물지 않습니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좋고, 참나무는 참나무대로 좋고, 황새 다리는 길어요 작아요, 짧아요? 참새 다리는 어떤 스님 닮아서 좀 짧단 말이야. 가만 보니 날 닮아서 짧다는 걸 알고 웃는데 겉으로 볼 때만 그렇지 속에는 내가 이제는 하심(下心)을 많이 해서 엄청 큰 사람이 나왔는데 당신들이 볼 줄 몰라 웃거든. 그러면 참새 다리는 짧고 황새 다리는 기니까 황새 다리 긴 걸 딱 끊어다가 참새 다리 끊어서 서로 꽃같이 맞추면 뭐가 돼? 둘 다 죽어버려. 둘 다 죽어버려. 아 큰 건 큰 것대로 작은 건 작은 것대로 이 자체가 불성(佛性)에서 볼 때 성(性)에서 볼 때는 평등이구나. 눈에 보이는 게 크고 작다는 여기에 넘어가지 말자. 잘해준다 못했는데 넘어가지 말자.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는 말은 눈에 보이는 모양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고 귓구멍으로 듣는 소리에 머물러서 내지 말고. 우리 귀로 듣는 소리에 정말 많이 머물러요. 누가 욕 한 번 하면 그게 꽉 남는 거예요.
전생에 내가 욕을 했던 사람이 욕이라도 해주지 전혀 인연 없는 사람은 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치치코프 새끼 미친 새끼라는 놈이 우리 욕해 줍디다. 욕 안 해요. 욕 안 해. 뭔가 욕을 들은 거는 인연이 있었구나. 내가 한 욕이 돌아왔으니 내 인생 오늘 해결됐네. 부처님 법이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하나만 하더라도 아, 저런 큰 스승이 이 세상에 오셔가지고 불법문 중에 불사일법(不捨一法)이라. 모든 것은 하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을 어떻게 응무소주 이생기심하고 있느냐. 그러면 여러분들은 진관사에 와서 해마다 수륙재만 동참하더라도 영가들에게 왕생극락(往生極樂)할 때는 아, 나부터 누구에게 서운한 마음, 마음의 상처 이거는 이 소중한 내 몸뚱이에다 이런 지저분한 오물을 내가 생각 그릇에 넣고 다니는 건 이건 냄새가 나도 너무 많이 난다. 여러분들 한번 들어보자 이 말이야. 눈으로 보면 여러분들이 나를 볼 때 저 스님은 세수를 잘 안 한다고 그러더니 오늘은 뭐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세수를 하고 왔는가 보네.
나는 여러분들을 볼 때 집에서는 머리를 부시시하니 펄렁 도깨비 모양으로 남편이나 아들딸 앞에서 잠옷 차림으로 꼭 어디 무슨 뭐 각설이처럼 돌아다니더니 나올 때는 뭘 바르고 뭘 주어 입고 그냥 예쁘게 차리고 왔네. 그건 눈으로 본 소리요. 눈으로. 내가 그렇게 봤다면 눈으로 본 소리야. 마음으로 보면 차려 입을 줄 알고 여기 올 줄 알고 이 말을 들어서 생각을 바꿀 줄 아는 마음 마음 마음. 마음으로 보면 내 마음이나 여러분들 마음이나 한 마음이란 말이에요. 다시 한 번 반복하겠습니다. 시간이 다 돼서. 금일 영가들이나 호국영령들이나 우리나 새나 노루나 우리 생명을 우리가 만들어 본 일이 없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만든 공기. 공기를 코로 호흡을 통해서 빌려다 쓰는 게 내 생명이요. 공기 10분만 못 빌리면 우리는 다 죽어. 떠다니던 구름이 비가 되면 물이 돼서 물에서 물을 얻어 마시고 있으니까 물에서 빌려온 생명이요.
태양열 에너지에서 열량, 대지에서 나오는 모든 음식. 그러면 그 우주 생명을 우리는 빌려다 쓰는 걸 이 몸뚱이라고 한단 말이야. 빌려온 거란 말이야. 내가 빌려온 데하고 여러분들 빌려온 데가 같아 안 같아. 한 생명이란 말이야. 한 생명. 그러면 호국영령과 모든 사람들도 그 생명에 의해서 살고 있어. 그러면 오늘 호국 영령이 마지막 들어야 할 건 응무소주 이생기심이 되려면 그때는 일본인들이 우리나라를 식민지 만들어 가지고 한국말을 못 쓰게 만들고 별별 고생을 다 하고 참 독립군들 고마운 건 그건 정말 어떻게 보면 말로 다 할 수가 없거든. 그런 환경에서 당신들을 독립을 했으면 지금도 그런 걸 미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서는 결코 왕생극락을 못한다. 아, 그때 우리나라 국력을 키워놓지를 못했구나. 사색 당파로 니가 옳다 내가 옳다 싸우면서 일본인들에게 우리가 식민지를 당했구나.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일본을 능가해서 이번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 몇 나라를 뽑는데 일본은 8위가 됐고 우리가 7위로 올라갔더라고. 일본이 그러면 그게 바로 이분들 덕이요. 박수 칠 수 있는 게 독립 호국영령들 우리 수륙재에 모시고 하는 그분들 덕이란 말이에요. 그러면 여러분들 덕인 줄 아는 후손들이 있으면 호국 영령들은 한국 땅에 진관사가 있어서 저런 신도들과 저런 분들이 해마다 이런 일을 해줬으니 나도 마음을 넓혀보자. 바다가 돼 보자. 섬진강, 낙동강이 하나라는 걸 한번 알아보자. 글로벌 시대 일본까지도 우리가 앞으로는 가르치자, 제도하자. 백제 불교가 전해져서 일본을 가르치듯이 내가 마음을 좀 더 넓게 쓰자.
그러려면 허공 영령들이여 이런 염불하고 이런 법문 듣고 이런 정성 들릴 때,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은 돌아가신 호국 영령들, 독립군들을 청에 모시고 죄를 지내는 줄 알지만 스님들은 영원히 죽음이 없는 진관사 단어, “당신은 부처님입니다.” 영원한 생명 부처님을 모셔놓고 법문을 하니 응무소주 이생기심이 길을 가면 부처이고 미운 마음, 원망하는 마음,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데를 따라가면 중생이니 내가 어떤 길을 가느냐는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래가지고 결국은 앙산스님께서 위산스님 스승에게 묻기를 “어떻게 하면 내가 내 안에 있는 부처님이 참 부처님이 있는 걸 알 수가 있습니까?” 하니까 “니가 이 세상에서 보고 듣고 있던 모든 거는 빌려온 남의 지식을 기억한 거니까 기억된 것을 생각이라고 그런다.” 그 생각을 딱 놔두고 생각 끊어진 나, 생각 끊어지니까 죽을 줄 알았더니 고요하고 고요하여 적적본고향(寂寂本故鄕)이라. 고요하고 고요하니 이게 내 고향이었구나.
그 고요한 걸 아는 호국영령들 죽음이 없는 나. “이 뭣고?” 이 뭣고 이 하는 놈이 안 죽고 있다는 걸 딱 믿음이 가면 이 하면 희망이 솟는 거예요. 아, 영원히 죽음이 없는 내가 있었구나. 그것이 모든 생각을 놔버려 두고 이 뭣고, 모르는 놈만 남는 거예요. 모르는 놈만. 모르니깐. 모른다는 건 뭐예요? 백지잖아 백지. 백지는 비교가 없어. 고요요, 고요. 모르는 것이 세상 사람이 볼 때는 답답인데, 호국영령과 수륙재에 모인 모든 영가들이 볼 때는 청정이요, 고요요, 고요. 고요하니.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지치코프 새끼 미친 새끼인가 어떤 사람. 미운 마음 나, 안 나? 그리운 마음 안 나? 평화요, 평화! 모르는 건 평화구나. 금일 영가요. 다만 모르는 이 뭣고? 이것을 참고하고 참고하면 고요하고 고요하게 되니 진관사 스님들과 신도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내가 고향이 멀리 있는 줄 알았더니 내 마음 한 번 바꾸니 거기가 내 고향이었네요.
그게 성성시아가(惺惺是我家)라. 거기에서 희망이 솟아서 살과 활이라. 하나는 죽이며 하나는 살리니. 생과 사가 둘이 아니니 현전고불로(現前古佛路)인데 부처님 걸어 가신 길이 바로 이 길이니 부처님 고마움이여. 누구나 부처라고, 당신도 부처 나도 부처 호국영령도 부처, 소속 제한된 모든 사람이 부처라고 해주신 분은 부처님밖에 안 계셔.
불교 신도들이 부처님 불교 믿는 그런 고마움을 모르면 그건 ‘리가대돌’이요. 뭐 리가대돌이라면 스님이 뭐 외국어를 좀 한다던데, 돌대가리를 거꾸로 하면 리가대돌이요. 돌대가리라 하면 기분 나빠하니까 이왕이면 “저놈들 리가대돌”하면 지는 못 알아들어 좋고 난 욕해서 좋고. 정말 부처님 고마운 줄 알아야 돼. 부처님 고마움으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거야. 고로 호국영령들이 부처님이 어디 계시냐 하니까 이 그 자리니라. 무엇고. 모를 뿐인 청정이여 모를 뿐인 고요요. 불매시하물(不昧是何物)이냐?
원컨대는 진관사에서 해마다 모든 백성 대신하여 지극정성 수륙재를 봉행하는 이 공덕으로 호국영령과 독립군으로 눈을 감을 때에 피눈물을 흘리신 독립군 영령들이여. 이러한 공덕으로 마음에 묻은 한을 한 생각에 놓아버리고, 이 뭣고 부처 성품이 당신 본고향이라. 부디부디 왕생극락 나라리라라리라라 태평가를 불러 봅시다. 나무아미타불.
다시 한 번 회주 스님과 주지 스님, 진관사 스님들 정말 마음으로부터 내가 못한 일을 해줘서 고맙습니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