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륙재
동참
진관사는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수륙재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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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5일 수륙재 회향 종정예하 성파 대종사 법문
이곳 진관사에서 국행수륙대재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사십구일 동안 매주마다 큰 행사를 하고 오늘 마지막 회향일인데 이때까지 여기 여러 스님들이 이 의식에 참여 해가지고 지극 정성으로 이 의식을 행하였고 또 매주마다 대선사님들이 오셔가지고 법문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이미 법문을 들어서 잘 아시겠지만은 이 우주에라는 것은 삼라만상이 다 여기에 살고 있습니다. 이 살고 있는 것이 무에서 유가 되고 유가 돼서 존재하고 존재하다가 무너지고 무너져서 또 공이 됩니다. 그래서 성주괴공이라 합니다. 이 성주괴공의 이 큰 수레바퀴에 모든 삼라만상이 거기에 다 타고 있습니다.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습니다. 다 가게 되는데 이번에 이 수륙대재라는 것은 그러한 사생육도, 생로병사에 다 왔다가 간 그런 무주 유주 고혼들을 갖다가 전부 다, 다 초청해서 부처님의 법문을 잘 설득을 시켜서 이고득락케 하는 그런 행사인 줄을 여러분들도 다 알고 계실 겁니다. 새삼 그런 것을 다시 오늘 이 법회에서 말하고자 합니다. 이 법회는 그야말로 인류가 제일 갈망하는 평화와 자유와 행복 그것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전에는 평화와 자유와 안락을 누리고 사후에는 그야말로 이고득락하는 그런 생전과 사후의 이 우주에 나타났다가 자취를 감춘 이 모든 생명들의 영을 위로하고 이고득락케 하고 하는 그런 행사이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나라 진관사에서 행하고 있지만은 세계 인류를 대표하는 그런 특별한 무형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 회주스님 주지 스님, 또 여러 대중스님들이 비단 이 행사뿐만 아니고 이 진관사를 관리 운영하고 꾸려 나가는 데 있어가지고 얼마나 수고가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과 같은 일은 국행수륙대재는 이 시대의 대표하는 호국불교입니다. 이것이 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해서 승병이 일어나고, 이때까지 우리나라의 불교는 호국불교라고 했지만은, 이 시대에 와서는 이런 문화를, 우리 민족 문화를 계승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이 시대에 호국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 진관사 당국에 수고하시는 분들에게 크게 박수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이 행사를 위해서 음으로 양으로 협조 해주신 여러분들, 또 정부 관청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후원하신 여러분들께도 박수를. 그래서 이런 행사야말로 세계 인류의 대표하는 이런 문화 행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쪽에 관심을 가지고 여기 주지스님이나 회주스님이나 여러분들께서 더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 주시기 바라고, 또 우리 주위의 모든분들도 더 박수와 성원을 많이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그래서 이 행사야말로 한마디로 말하면은 정말로 인류가 갈망하는 평화 모든 삼라만상이 다 나와 둘이 아니다는 거 그래서 그런 대자대비의 사상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彩筆로 描空空不染 하고 (채필묘공공불염)利刀로 割水水無痕을 (이도할수수무흔)人心安靜如空水하야 (인심안정여공수)與物自然無怨恩(여물자연무원은)나무아미타불 채색의 물감으로 허공을 그림을 그린다. 이거라 그 허공이 그림이 그려지겠습니까? 彩筆(채필)로 描空空不染(묘공공불염)이요. 채필로 하늘에 그림을 그려도 그 그림이 염색이 안 된다, 이 말이야. 利刀(이도)로 割水水無痕(할수수무흔)이라. 잘 드는 칼을 가지고 물을 잘랐다, 이거라. 칼은 지나갔지만은 지나가고 나면 그 상처가 남습니까? 표도 없이 된다, 이거는. 人心安靜如空水(인심안정여공수)하야, 인심이 안정이 되면은 허공과 같고 물과 같아서 與物自然無怨恩(여물자연무원은)이라. 모든 사물을 대할 때마다 원수와 원망이 없다 이거라. 그럼 뭐냐, 그대로 평화다 이거라. 여러분들 그대로 평화가 어떻습니까? 좋습니까? 안 좋습니까? 그대로 평화를 누리십시다!
2025-12-19 -
10월 19일 수륙재 6재 성우큰스님 법문
(인례사: 대중들은 모두 인례의 목탁에 따라서 범음성으로 함께하시겠습니다.)나무 대자대비 관세음보살(3번)신묘장구대다라니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야바로기제 새바라야모지사다바야 마하사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 옴살바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나막가리다바 이맘알야 바로기제새바라 다바 니라간타 나막하리나야마발다 이사미 살발타사다남 수반 아예염살바 보다남 바바말아미수다감 다냐타 옴아로계 아로가 마지로가지가란제 혜혜하례마하모지 사다바 사마라사마라 하리나야구로구로 갈마 사다야 사다야도로도로 미연제마하미연제 다라다라다린나례 새바라 자라자라마라 미마라 아마라몰제예 혜혜로계새바라 라아미사미나사야 나베 사미사미나사야 모하자라 미사미 나사야호로호로 마라호로 하례바나마 나바 사라사라 시리시리소로소로 못자못자 모다야 모다야매다리야 니라간타 가마사날사남 바라 하리나야 마낙 사바하싯다야 사바하 마하싯다야사바하 싯다유예 새바라야 사바하니라간타야 사바하 바라하목카싱하 목카야 사바하 바나마하따야 사바하 자가라 욕다야사바하 상카섭나녜 모다나야사바하 마하라 구타다라야사바하 바마사간타 니사 시체다가릿나이나야 사바하먀가라 잘마 이바사나야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일쇄동방결도량 이쇄남방득청량 삼쇄서방구정토 사쇄북방영안간도량청정무하예 삼보천룡강차지 아금지송묘진언 원사자비밀가호 (인례사)대중들은 모두 합장하히고, 인례목탁에 맞춰서 범음성으로 하겠습니다. 본래 갖춘 성품바다범부 성인 체가 같고어둔 업장 녹지 않아영원토록 윤회하네.법을 듣고 깨달으려면계를 받아 일체실상깨달을 수 있느니라. 나무 향운개보살 마하살 (3번) 여러 영가분들이여, 자세히 들으십시오. 시작하기 전에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먼저 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시원치 않아 가지고 감기가 왔어요. 그래서 기침도 하고 목소리도 이래 안 나와요.그런데 여기 오늘 진관사 안 올라오니까 주지 스님이 호통을 쳤어요. 그래서 주지 스님 그 호통에 못 이겨서 왔습니다. 여러분들 이해해 주면 좋겠습니다. 여러 영가분들이여, 자세히 들으십시오.부처님께서 범망경에 말씀하시되, 만일 부처님 계를 받으면 국왕과 왕자와 백관(百官), 재상과 비구와 비구니와 십팔범천(十八梵天)과 육욕천자(肉慾天子)와 서민(庶民)과 황문(黃問)과 음남, 음녀와 노비와 팔부귀신과 금강신과 축생과 내지 변화한 사람으로서 다만 법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이는 계를 얻을 수 있으며, 모두 이름하여 제일 청정자(第一淸淨者)라 하셨으며, 이것은 곧 부처님의 자비 평등으로 널리 삼계 중생을 제도하여 계법을 널리 펴서 육도 중생을 두루 거두어 개도하여 깨달음을 얻지 아니함이 없으며, 반드시 깊은 신심을 갖추어 불법에 거두어 제도하는 것이니, 만일 깊은 신심이 아니면 또한 구제하기 어렵느니라. 신심이란 일체 중생의 본래 갖춘 심성의 근본이며, 진상이 고요하여 원명하여 두루 불생불멸을 얻되 범부와 성인이 없으며, 예로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더하거나 덜하지 않느니라. 이제 육도가 쉼없이 삼도에 오가는 것은 모두 한 생각 망령되게 움직여 참된 밝음을 덮은 탓이니라. 청정한 몸 가운데 업 따라 나타나니, 사랑과 탐욕과 훔치고 버리는 일이 생겨남이 이른바 눈 안에 티끌이 있어서 허공에 꽃이 떨어지는 것과 같으니, 이런 까닭으로 천생만겁의 생사를 오가는 것을 어찌 쉬리오. 진실로 어두움을 깨달아 잘 비추면 모든 인연이 일어남이 본래 자성에 없는 것이며, 이른바 광심(狂心)이니, 만약 광심을 쉬면은 쉬는 것이 곧 보리이니라. 여러 영가분들이여, 갖춘 진실로 밝고 둥글고 맑은 마음을 믿어 의심하지 않으면 이 마음이 곧 금강광명보계의 근본이며, 이 근본이 곧 모든 보살의 본원이며 불성 종자이니, 일체 중생이 모두 있는 불성이며, 일체 의식과 색심이며, 이 정이며 이 마음이니 모두 불성계 가운데 들어가 있느니라. 여러 영가분들이여, 이미 본래 갖춘 이와 같은 불성 종자가 이와 같은 까닭으로 내가 이제 그대에게 이 불성 묘계를 주노니 마땅히 알라.이 계는 받았으되 받은 것이 없으며, 자성을 일으켜 닦는 까닭으로 받은 것이 없어도 받은 것이며, 오로지 닦은 것은 곧 자성인 까닭으로 이미 법성이 더러움에 물듦이 없음을 알아 계바라밀을 수순수행해야 하는 까닭으로 대신하여 계를 받는 것이며, 영가를 대신하여 법명을 말하노라. 내가 이제 향을 사루어 삼보께 수계를 증명하여 주시기를 우러러 청할 것입니다. (인례사)향 사루고 꽃을 올려 여러 영가는 일심으로 청합니다.사바교주 본사 석가모니불 과거각화정 자재왕불서방접인 아미타불 당래하생 미륵존불허공계가 다하도록 법계에 두루 하신 부처님들원하건대 본래 서원 어긋나지 않도록 자비광명 두루두루 비추시어계 받는 일, 증명하여 주옵소서.계 받는 일, 증명하여 주옵소서. 계 받는 일, 증명하여 주옵소서. 향 사루고 꽃을 올려 여러 영가는 일심으로 청합니다.대소이승 비니율장 오편삼취 해탈목차 십이분경 권실교전탐욕여읜 청정진리 깊고 깊은 가르침에일심으로 귀명정례하옵니다.일심으로 귀명정례하옵니다.일심으로 귀명정례하옵니다. 향 사루고 꽃을 올려 여러 영가는 일심으로 청합니다.유명교주 지장보살 관음보살 세지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청정해중 보살님과 율장회상 우바리존자 전남산종 여러 율사중흥율조 혜운형공 대화상 유명정계 화상님은원하건대, 본래 서원 어긋나지 않도록 자비광명 두루두루 비추시어계 받는 일, 증명하여 주옵소서.계 받는 일, 증명하여 주옵소서.계 받는 일, 증명하여 주옵소서. 향 사루고 꽃을 올려 여러 영가는 일심으로 청합니다.광명회상 여러 천신 대범천왕 제석천왕 천룡팔부 신장님들호계하는 선신들과 금강역사 염라대왕 여러 지옥 대왕들과가람토지 보호하는 모든 여러 신장들은 원하건대본래 서원 어긋나지 않도록 이 계단을 보호하여 주옵소서.이 계단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이 계단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우러러 삼보께 수계를 증명해 달라 청하여, 이제 삼보의 자비광명이 영가에게 비추느니라.영가는 마땅히 지옥 고통이 깊고 두려우니, 위없는 부르심을 발하여 삼보 앞에 간절하게 참회를 구하는 참회의 말을 해야 하느니라. 영가가 스스로 진술해야 할 것이나, 영가는 이미 할 수 없으니, 내가 이제 영가의 수계를 대신하는 일을 가르쳐 합당하게 영가가 하는 듯이 참회하게 할 것이니라. (인례사)여러 영가는 비롯없는 옛적부터오늘에 이르도록 몸으로 지은 죄가 한량없이 많았으며, 여러 영가는 비롯 없는 옛적부터오늘에 이르도록입으로 지은 죄가 한량없이 많았으며, 여러 영가는 비롯 없는 옛적부터 오늘에 이르도록뜻으로 지은 죄가 한량없이 많았으니, 그러므로 오늘에야간절 참회 바라오니,원하건대 삼보님은 자비로서 거두소서. 청정광명 놓으시어 유명세계 사루시고여러 고통 지옥들이 극락으로 변화하며. 확탕지옥 노탕지옥 청량제로 변화하고지은 죄업 소멸되어 해탈얻게 하옵소서. 맹세코 두번 다시 악을 짓지 아니하고착한 일들 닦고 닦아 중생들을 제도하여 윤회 고를 함께 벗어 모두성불 하여지다. 나무 보현왕보살 마하살 여러 영가분들이여, 이제 삼보 앞에 비롯함이 없는 죄업을 참회하였으니, 신심은 깨끗하여 더욱 늘어나서 고통의 과보는 멀리 여읠 것이니라. 먼저 마땅히 네 가지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하리니, 네 가지 무너지지 않는 믿음이란 모든 중생이 숨기거나 나타내며 가지고 있는 체성이니, 체성은 하나요 다르지 아니하며, 하나의 체 가운데 갖추고 있는 불법승계를 말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불은 깨달음이란 뜻이니, 이르되 성체를 깨달아 모든 법을 비추며 없는 것도 아니오, 있는 것도 아니니, 이것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불보인 것이요.법은 가져야 할 규범이라는 뜻이니, 이르되 법성이 적멸하여 항사성덕을 모두 가지면 이것이 본래 갖추고 있는 법보라는 것이요.승은 화합이라는 뜻이니, 이르되 항사묘덕이 성상이 둘이 아니고 이사가 화합하면 이것이 본래 갖추고 있는 승보인 것이요.계라는 것은 해탈이라는 뜻으로, 금강광명보계이니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본원이요, 모든 중생의 불성 종자라, 이것이 본래 갖추고 있는 성계라는 것이니라. 영가는 이제 믿음을 얻었으니, 자기 마음속의 불법승계를 미래의 몸이 다하도록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기에 불계라 하는 것이니라.비록 체에 진상을 갖추었으나 닦아 증득하지 아니하면 없는 것이니, 이른바 이 몸으로 부처가 부처이고 이 마음이 부처인 것이니라. 마땅히 주지 삼보에 귀의하여 청정묘계를 받아 의지하여 수행해야 바야흐로 위 없는 불과를 원만 성취하게 되는 것이니라. 여러 영가분들이여, 이제 불보살님 앞에 대신 계를 받는 이가 낱낱이 대신 받는 것이니라. (인례사: 대중들은 모두 장궤합장하시고 다함께 같이 하게습니다. )저 여러 영가는이제부터미래의 몸이 다하도록부처님께 귀의하겠습니다. 저 여러 영가는이제부터미래의 몸이 다하도록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겠습니다. 저 여러 영가는이제부터미래의 몸이 다하도록스님네께 귀의하겠습니다. 저 여러 영가는이제부터미래의 몸이 다하도록부처님의 계율에 귀의하겠습니다. 여러 영가분들이여, 자세히 들으십시오.이제 영가를 위하여 대승보살의 열 가지 다함이 없는 계를 대신 계를 받는 사람에게 낱낱이 대신 받게 하리라. 첫째. 짐짓 살생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둘째. 짐짓 훔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셋째. 짐짓 사음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넷째. 짐짓 거짓말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다섯째. 짐짓 술을 마시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 -잘 지키겠습니다.여섯째. 짐짓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일곱째. 짐짓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헐뜯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여덟째. 짐짓 간탐부리지 말고 욕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아홉째. 짐짓 성을 내어 참회를 아니 받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열째. 짐짓 삼보를 비방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 여러 영가분들은 이제 보살묘선계를 이미 받았으니, 삼도의 업이 쉬고 육도의 정이 사라져 미도를 초월하여 바로 깨달음에 들어가 뜨거운 번뇌의 고통은 여의고 청량제를 얻으리라. 또 모름지기 신심과 뜻이 견고하여 행원이 물러나지 아니하고 보리가 원만해지리라. 그러므로 경에 이르되, ‘중생이 불계를 받으면 곧 제불의 지위에 들고, 지위가 같은 큰 깨달음을 이룬다’ 하셨으니, 진실로 이것이 모든 불자이니라. 이제 수계를 마쳤으니, 대중이 다 같이 염불회향할지니라. (인례사 :모두 일어나주시기 바랍니다. 대중은 모두 영가를 대신하여 세 번 절 하겠습니다) 나무 서방 극락세계 대자대비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대중은 다같이 영단을 향하여 주시기바랍니다.왕생주 : 나무 아미타바야 다타아다야 다지야타아미리 도 바비 아미리다 싣담바비 아미리다비가란제 아미리다 비가란다 가미니 가가나 깃다가래 사바하(세 번) 연지해회 미타여래관음세지좌연대접인상금계 대서홍개보원리진애 원생서방정토중 구품연화위부모화개견불오무생 불퇴보살위반려 수계공덕수승행무변승복게회향보원침익제유정속왕무량광불찰시방삼세일체불제존보살마하살 마하반야바라밀 이상으로 국행수륙재 유명계 수계의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법문) 진관사에서 해마다 하는 수륙재, 오늘이 아마 여섯 번째인 것 같습니다. 다음 회향할 때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스님이 오신다는 점에 대해서, 저로서는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정말 복을 많이 지으신 분들이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스님은 함부로 어디 가서 나들이 하고 그럴 수 없는 지위에 계시는 분인데, 아마 진관사니까 오시는 것 같아서 저로서는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동시에 오늘 육재 때 왜 이 유명계를 설하느냐, 아마 대한민국에서 이 유명계를 이야기하시는 분은 우리 불교TV 무상사에서 저가 하고 그다음에 여기서만 합니다.제가 이것을 율장전서라는 방대한 책이 있습니다. 책의 규모가 71권인데, 그 속에 이 유명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번역을 해서 여러 스님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제발 이건 꼭 해야 된다고. 왜 유명계를 꼭 해야 하느냐, 아마 여러분들은 오늘 일반 법문이 아니고 유명계서라는 의식을 보았는데 ‘저거 뭐 하려고 하는가?’ 의심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국행수륙재의 제일 핵심은 바로 이 영가분들을 위함입니다. 영가분들을 위하는 데 대해서 이 유명계보다 더 무게 있는 것은 없다 저는 그렇게 확신을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침도 콜록콜록 하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리고 동시에 진관사 우리 계호 스님, 주지 스님 그리고 대중 스님들, 정말 고맙고 고맙다. 왜냐하면 이 수륙재를 여법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희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에 많은 행사가 있지만은, 그 가운데도 이 수륙재야말로 정말 불교가 이 땅에 존재하는 그 목적 가운데 하나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900 몇 차례의 왜침이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 다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 남을 침략하지는 않았습니다.그런데 정말 다행하게도 단 한 번도 900 몇 차례의 침략을 받고도, 그 침략 가운데 얼마나 많은 어질고 착한 사람들이 비명에 목숨을 잃었겠습니까. 그 잃었던 목숨, 또 어디 가겠어요. 바로 이 땅에 태어나는 겁니다. 그렇다 그러면 그 영가들을 위해 줄 수 있는 일은 이 수륙재밖에 없어요. 불교가 하는 몫 가운데 제일 큰 몫이 바로 이 수륙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진관사에서 해마다 저였으면 귀찮아서 안 해요. 정말이지 귀찮아서 안 할 텐데 여법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마 계호 스님 그리고 주지 스님 그리고 대중 스님들의 뜻이 한결같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과연 영가가 있나,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제가 간단하게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아마 여러분들 박정희 전 대통령이죠. 다 기억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그때 당시에 경호처장을 맡았던 분이 꿈에 나타났어요.“나를 좀 구해달라, 나를 좀 구해달라.”그것도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사흘 연속 그런 꿈을 꿨답니다.그런데 그분은 종교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분이 가만히 생각하니까 이런 것은 스님들과 의논해야 되겠다 그런데 친한 스님도 없어 그때 동국대학교 이사장으로 있었던 녹원 스님이 계셨어요. 물론 돌아가셨습니다 지금은. 그 스님을 만나가지고 이 이야기를 하니까 바로 황악산 직지사에서 그분을 위해서 49재를 다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입재하는 날 이분이 내려갔고, 그리고 회향은 어느 날 하니까 내려오라 그러더랍니다. 물론 이 녹원 스님은 그야말로 말씀 하나 행동 하나 허투루 하는 분이 아니에요. 오늘날의 직지사 정말 황폐했던 직지사를 저렇게 중흥시킨 분이 바로 그분이에요. 그리고 동국대학 이사장을 하시면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하셨던 분인데 그분이 49일간 직접 기도를 하셨답니다. 그리고 회향을 하는 날, 그 경호처장도 내려왔답니다.그리고 회향을 잘 하고 돌아왔을 때, 그날 밤 꿈에 박정희 씨가 나타나가지고 씩 돌아보면서 웃으면서 “나 잘 간다” 그러더래요. 영가가 있는지 없는지 혹시 의심하시는 분들, 그거는 정말 털끝만큼도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그분이 이 경호처장이 뭘 했느냐 다시 어디로 갔느냐 예 아마 그분이 군 장성이었던가 봐요. 다시 사단으로 돌아가서 사단장을 하는데, 어느 날 가만히 생각하니까 ‘여기에 6.25 동란 때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그때 대한불교조계종 전국신도회 사무총장으로 있었던 이건호 지금도 살아계세요. 그 처사를 만나가지고 “이곳에서 재를 한번 지내야 되겠다, 6.25 동란 때 희생한 젊은이들을 위해서 재를 지내야 되겠다” 하니까 이건호씨가 이건호 처사죠. 처사가 정말 기쁜 마음으로 여러 신도들에게 재물을 준비하고 다 준비해서 그 재를 지냈답니다. 재를 다 지내고 난 뒤 오후에 큰 행사를 지내고 나니까 피곤해서 의자에 앉아 있는데 잠깐 졸았던가 봐요. 그러니까 무수히 많은 젊은이들이 ‘나 잘 간다’하면서 손을 흔들고 가더랍니다. 그때 희생되었던 무주고혼 주인 없는 영혼이죠. 무주고혼들이 다 천도되어서 갔다. 그 뒤로 이분은 불자가 되었고, 국회의원도 하고, 이제는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혼은 분명히 있습니다. 얼마나 진실하게 내가 그 영가를 생각하고 그 영혼을 기리는가에 따라서 영가는 응답을 하고 하지 않기도 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영가의 그 응답, 그것은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음덕이라 그러지요. 영가는 분명히 있기 때문에, 우리 불자라면 영가를 위해서, 특히 내 조상들을 위해서 하는 일은 그야말로 신심으로 신심으로 신심으로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영가는 틀림없이 음덕을 베풀 겁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한다 했는데 너무 길었어요, 미안합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2025-12-19 -
10월 12일 수륙재 5재 용학스님 법문
네 반갑습니다. 오늘은 을사년 진관사 국행수륙대재 5재 법문. 오늘 저에게 이제 주어진 법문 주제는 <복이 따르는 사람들의 좋은 습관> 그래서 오늘은 이제 복이 따른다. 이 세상에서 복이 가장 많으신 분인 우리는 인류 역사상에 가장 복이 많으신 분을 석가모니 부처님이라.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흔히 화엄경 제일 마지막 게송 중에 찰진신념가수지 대해중수가음진刹塵心念可數知 大海中水可飮盡 허공가량풍가계 무능진설불공덕虛空可量風可繫 無能盡說佛功德 이라.온 세상에 어떤 신통묘용 재주를 가지고 허공을 헤아리고 저 바닷물을 다 말리고 어떻고 저떻고 지나가는 바람까지 매는 재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의 공덕을 다 설할 수는 없다. 이래서 오늘 복이 따르는 사람들, 부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 흔히 이제 부처님을 귀의불 양족존이라 부처님의 복과 지혜가 원만하신 대도사라 삼계 대도사라 그러시는데, 그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우리 대승의 일승 가르침, 최고의 화엄경과 법화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행적을 석가모니 부처님의 행적을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짚어보고 복이 따르는 사람들의 좋은 습관을 한번 이렇게 법문의 주제로 드릴까 합니다. 그래서 화엄경 중에서는 「입법게」품에 ‘대원정진력구호일체중생주야신’ 이라고 하는 분이 계시죠. 그분이 이제 전생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다시 태어나셨다. 전생에 석가모니 부처님이셨다. ‘대원정진력구호’ 그때 그분이 선복 태자로 계셨는데 그분을 괴롭히고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데바닷다였다. 이렇게 하면서 그 데바닷다까지도 포용하는 것이 복 있는 사람의 제일 미운 사람까지도 포용해야 복 있는 사람들이 수행자로서의 갈 길이다. 그래서 여러분들 마음속에도 밉고 싫고 짜증 나고 다시는 저 인간 안 봤으면 싶다. 그런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러나 이런 법문을 통해서 부처님의 경전을 통해서 오늘 이제 그 문제를 해결이 안 되면은 이번 달에 해결이 안 되면은 내년에 해결을 해야 될 것이고 내 죽기 전에는 내 마음속에 미운 사람들을 다 용서하고 다 포용하고 다 믿어주고 하는 것이 해결되지 않으면은 이런 수륙대재의 근본 목적이 잘 성취 못하고 수박 겉 핥기 식이 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 ‘성불’이라고 하는 시성정각(始成正覺)을 이루셨는데 그 시성정각했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당신께서 열반에 드시지 않고 미혹한 중생들을 위해서 설법을 하면서 진리의 법을 나누셨다고 하는 거 알아듣지도 못하는 새까만 중생들을 위해서 당신이 일생을 바쳐가면서 탁발하시면서 중생을 위해서 한 세상 사셨잖아요. 전생은 말할 것도 없고 금생도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보다 더 위대한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그 가르침보다도 더 위대한 것은 그 가르침 속에서 나타나는데 데바닷다라고 하는 부처님한테 엄청 되받아가지고 이름이 데바닷다 아니에요 데바닷다. 그래 데바닷다가 지옥 가서 이름을 바꿔서 죄받았다. 그런데 그 데바닷다를 큰 독극물을 먹고 소화를 하셨다. 자시고 마치 관세음 보살님께서 독극물을 입으로 삼키셔가지고 뱉으면은 저 중생의 바다에 뱉어버리면은 그 바닷물을 먹고 사는 중생들이 다 죽을까 싶어서 관세음보살이 그 독을 삼키면서 이 사바세계에서 사시는 그러니까 관세음보살을 청경 관세음보살이라 하잖아요. 목이 독에 중독이 돼서 새파랗게 그 독을 내가 삼키고 만다. 이것이 이제 복이 따르는 사람들의 습관 중에서 그 수행 중에서 인생살이 중에서 포함이 되는데 우리는 내 마음에 안들면은 전화번호부터 차단해 버리고 가족이고 동료고 함께 살아가는 천생연분이 아니라 평생 웬수비슷해 이런데 이런 기회를 통해서 수륙대재를 통해서 오늘도 수많은 생명들이 태어나기도 하지만은 많이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이 오늘 병원에서 또 저 바다에서 저 산에서 이 세상의 인연 따라서 왔다가 가고 돌아가시기도 하는데 그 많은 생명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이런 기회에서 좀 편안하게 마음을 다져야 안 되겠나 싶습니다. 그래서 화엄경, 입법게품의 선복 태자 얘기 다 할 수는 없겠지만은 여러분들 이렇게 유인물로 이제 한 6장 서너 장 이렇게 나눠드리는데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데바닷다가 도저히 해결이 안 되니까 불교의 공공의 적이잖아요. 그 공공의 적을 데바닷다는 나의 스승이었다. 데바닷다가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성불를 하고 중생 교화를 할 수 있겠느냐 이렇게 이제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리고 상불경 보살님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시는 항상 불경 남을 가엾이 여기지 않았다. 정법화경에는 상피경만(常被輕慢)이라고 나오죠. 상피경만 항상 남한테 업신여김과 멸시를 당했던 보살 상불경 보살 상불경 보살이 항상 남한테 당신은 부처님입니다. 훌륭한 분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정작 당신은 남에게 핍박을 당하는데 그 마지막 대목에 뭐라고 나옵니까? 그때 모든 중생들을 항상 존중하고 하심하면서 그렇게 살았던 상불경 보살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it’s me 바로 나 석가모니이다. 그 대목에서 법화경이 참 가슴을 울리잖아요. 바로 내가 그 사람이다. 석가모니 당신이 상불경 보살이였다 이렇게 이제 말씀하실 때 우리가 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느낌이 납니다. 범유하심자(凡有下心者)는 만복자귀의(萬福自歸依)라 하심하는 사람은 아만심이 없는 사람은 아집이 없는 사람은 복이 저절로 굴러 들어온다 이런 말씀을 이제 하시게 되는 거죠. 그래서 그 아집없이 사는 사람들 중에 가장 대표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우리 수행자 중에서는 절에서는 ‘한산 스님’, ‘습득 스님’ 그분들이 존중하는 분을 미륵보살 게송을 통해서 여러분들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 건지 하는 걸 마지막에 이제 세 번째로 정리를 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시간은 아마 짧아서 다 정리는 못하겠지만은 삼지경 석 장 종이로 된 경전 그걸 잘 참고하셔가지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륵보살 게송에 보면은 누가 내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복 있는 사람은 침이 마를 때까지 닦지 않고 침 묻었는지 안 묻었는지도 모른다. 남이 나를 두드려 패면 어떻게 되냐 널브러지고 웅크러져가지고 가만히 두드려 맞고 있어라. 상불경 보살은 두드려 맞고 있지 않잖아요. 상불경 보살은 남이 두드려 패고 돌팔매질하면 어떻습니까? 멀리 도망을 가잖아요. 왜 죽으면 안 되거든 우리는 불법을 전해야 되기 때문에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이제 상불경 보살 이러한 내용들이 쭉 되어가 있는 게 오늘의 법문의 주제입니다. 하여튼 복이 많은 부처님의 석가모니의 수행법은 어땠느냐 배고픈 사람이 밥 찾듯이 목마른 사람이 물 찾듯이 병든 사람이 약 찾듯이 꿀벌이 꿀 찾듯이 그렇게 꽃을 찾아서 부지런히 수행하듯이 그것이 이제 석가모니의 수행이라고 화엄경에는 이제 얘기가 돼가 있죠. 특히 이제 올해 같은 때는 이제 광복 80주년이다. 그래서 한 115년 전에 경술년 국치를 당하고 백한 20년 전에 을사늑약을 당해 가지고 일본한테 온 강토가 주권을 뺏기고 우리 백성이 그냥 일본 일제 치하에서 그래 살았는데 그래서 이런 수륙대재를 통해서 올해는 특히 그 독립투사나 위국절사나 이름 없는 충의장졸들 이름 없이 이 땅에 큰 복을 심어가지고 이 조국이라는 큰 나무를 우리에게 선사를 해 주셨고, 이 조국이란 대한민국 땅이라는 이 땅에서 우리는 그분들이 심어놓은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으면서 하루하루 이렇게 사는 건데, 오늘 법문 주제는 <복이 따르는 사람들의 습관>, 좋은 습관인데 복이 따르는 사람들의 좋은 습관을 오늘 제가 이게 오늘 법문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어제 좀 정리하는 게 이렇게 정리해 놨어요. ‘아나식 법문’ 아나식 법문 처음 들어보죠? 전에 ‘보빼시’는 들어보셨죠? 보리심 빼면 시체다. 아나식 법문 아나바다라고 혹시 아시나요?아나바다도 알지만 이 아나심은 복을 짓는 사람들의 습관은 아 아껴라 이걸 우리 절에서는 석복(惜福)이라 합니다. 복을 잇는 복을 아껴라. 있는 복은 이제 이미 가지고 있는 복에 대해서 아껴라. 나 나는 뭐겠습니까? 분복(分福)이라 나누어 줘라.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재산과 능력을 나눌 수 있는 만큼 한껏 사회복지를 위해서 인류의 그런 인간 정토를 위해서 나누어 써야 된다. 그렇게 복을 지어야 된다. 그걸 분복이라고 합니다. 분복 흔히 이제 작복이라고 그러기도 하죠. 그래서 석복하고 복을 아끼고 복을 나누고, 그리고 식복(植福) 복을 심어라.복을 심는 것은 마치 저 소나무 씨앗을 심듯이 이런 대들보를 만들듯이 우리 자신이 하나하나 금성에 내가 수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미래 중생들을 위해서 환경 보호라든지 자식들을 위한 또 후세들을 위한 그런 복을 심어야 된다. 식복 식복 심을 식자 식복 그래서 아끼고 나누고 심어라. 한번 우리가 한번 큰소리로 여기 진관사가 쩌렁쩌렁 울릴 때까지 해볼까요? 아껴라!나누어라! 심어라! 언제? 그럼 이제 오늘 법문 끝난 거야. 이제 조용히 더 이상 이제부터는 참 군소리고 잔소리밖에 안 되는 거야. 좋게 보면 전부 꽃이고 나쁘게 보면은 전부 잡초인데, 복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들의 이런 전쟁터에 나갈 때 갑옷 이렇게 그런 구명조끼 같은 게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자비심이라고 그럽니다. 자비심 자비심으로써 우리를 다 감싸서 갑옷으로 삼고 그리고 복이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복이 있는 사람들이 무기를 가지고 있어요. 복이 있는 사람들을 항마의 무기라 항마진언 하듯이 마구니를 쳐부수는 무기가 있는데 그런 악마 악독한 사람들을 쳐 부술 수 있는 복 있는 사람들의 무기가 있는데 그 무기가 뭡니까? 여러분들 우리에게는 바라밀이 있다. 이거 한없이 자비로운 이런 미소가 있다. 그래서 내 눈에 눈물 나게 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 눈에는 누가 그런 악독하게 피눈물을 내 눈에 눈물 나게 하는 사람은 그 사람 눈에는 웃음꽃이 피게 한다. 이게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무기입니다. 복 있는 사람들이.그리고 내 가슴에 못을 박는 사람에게는? 아니 뻔하잖아요. 그 사람 가슴에는 나는 꽃다발을 안겨줄 것이다. 예? 마치 저기 오늘 날이 꾸무리하잖아요. 그렇죠. 오늘 해가 안 떴죠 해가 안 뜨는 날 아무것도 없어요. 매일 해 뜹니다. 그래서 이제 복을 아끼고 복을 나누고 이럴 때 특히 이제 말 조심을 우리가 해야 되는데 말도 항상 이제 재미있게 웃으려고 해야 돼요. 그러니까 이런 수륙대재를 하는 목적이 아주 불리하고 서로 이렇게 당파 짓고 이런 것이 아니라 원만 융합형 인간을 만드는 거라. 원융화합이에요. 원융화합. 그래서 한산 스님은 항상 손에 꽃을 들고 계시고 습득 스님은 항상 이런 찬합 반합 이렇게 합을 들고 계세요. 그러니까 꽃을 화라 하고 합을 합이라 하면 두 개 합치면 뭡니까? 화합이잖아요. 그 한산, 습득스님은 그렇게 늘 들고 계시는 것이라. 그래서 한산 스님은 늘 저 하늘에 만고광명(萬古光明) 저 달을 봐라. 만고광명(萬古光明)의 장불멸(長不滅)이리라. 저 하늘의 달이 언제 진 적이 있느냐? 니 마음속에 달을 한번 잘 부처님의 그런 환한 마음과 같은 마음속에 지혜의 달빛 그것을 한번 묘광(妙光)을 살펴봐라. 그러니까 습득 스님은 손가락을 발바닥을 가리키면서 뭐라 합니까? 조고각하(照顧脚下)라. 당장 니가 지금 현실을 사는 모습이 그 모습이다. 이건 해인사 이제 법보단에 가면은 주련이 있습니다. 원각도량(圓覺度量)이 하처(何處)냐 극락 세계가 어디 있느냐 복 있는 사람들의 극락 세계가 도대체 어디 있느냐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是)니라 오늘 당장 정직하게 정직하게 아름다운 미소로 사는 것이 그대의 극락이다. 습득 스님이 어디로 발바닥을 이렇게 가르치면 조고각하라 그래요. 미소의 반대말은 뭡니까?당기소.. 미소 그래서 우리가 무슨 말을 할 때도 특히 이제 음식을 이렇게 먹어보고 이렇게 차 같은 게 맛이 없으면 맛없다 이러면 안 되고 어떻게 해요? 참 신기하네요. 도저히 뭐 요거트 같은 거 먹는데 먹기 싫으면 한번 먹어보고 맛이 특이하네요. 이렇게 이제 얘기해야지 맛 없는데요. 이렇게 하면은 복 있는 사람들의 행동이 아니고 말씨도 아니다. 영어로는 어떻게 합니까? 오 interesting! 정말로 영어로는 맛없다 할 때 교양 있는 사람들은 맛없다 소리 안 하고 인터레스팅이라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우리는 어쨌든지 누가 먹든지 간에 상관없이 오늘 이제 스피노자처럼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이렇게 수륙대재를 통해서 내 가슴에 심어서 온 데 말로도 심고 행동으로도 심고 생각으로도 심고 그래서 이제 우리의 미래 삶이 널리널리 확장되는 그런 모습을 기약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 같은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은 보배길이 열리고 히틀러 같이 못된 악인들의 길을 따라가면은 그 뒤에는 이제 가시밭길이 형성된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첫 구절부터 우리가 부처님의 화엄경, 입법게품 남겨놓으신 유음을 부처님이 남겨놓으신 그늘을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는 법음으로 읽어야 되는데 좀 빨리 읽겠습니다. 특히 그러나 경전은 어떤 시간이 됐든 빨리 읽어서도 안 되고 땡감 지르고 읽어서도 안 되고 경전은 부처님이 계시고 차경출이라 부처님께서 거기서 나오시기 때문에 항상 염불할 때도 그렇고, 정말 부처님을 면전에서 부처님하고 아주 고운 음성으로 아름답게 그렇게 이제 해야 되는 게 염불을 할 때는 절대 몇 자 빼먹더라도 급하게 읽어서는 안 되고 또 소리를 꽥꽥 질러서도 안 되고, 신심 없이 그때에~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아름다운 그 목소리처럼 그렇게 해야 된다고 그래요. 아주 존경하는 마음으로 화엄경, 입법게품 한 구절 읽어보겠습니다. 먼저 “선남자여 그때에 태자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습니까. 저의 몸이 그 사람이니, ①저는 옛적에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몸과 목숨과 재물을 버리어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였고,” 저는 옛날부터 복 있게 사는 모습이 어땠느냐 몸과 목숨 불석신명(不惜身命)이라 내 모든 것을 완전 연소해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했다. 수륙대재의 목적이 어디 있느냐 중생 구제다. 중생 구제는 부처님의 화두는 오직 중생이 잘 됐으면 싶고, 부모님의 화두는 자식이 부모님의 화두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기서 자비심이라고 하는 것은 삼매의 근본이 자비심이 됩니다. 자비심이 없는 사람들은 탐진치가 많은 사람들은 골 잘 내고 욕심 많은 사람은 삼매 들고 싶어도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삼매를 육조단경에서는 외도삼매라 그러죠. 기신론에서도 외도삼매에 든 사람들은 명리를 추구합니다.그건 우리가 주장하는 일행삼매 기신론에서 얘기하는 진여삼매라고 하는 것은 그런 삼매가 아니라 대자대비심이라. “②크게 보시하는 문을 열고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므로 이 해탈을 얻었습니다.” 크게 보시하는 문을 열고. 바라밀행의 1번이 보시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베풀지 않는 사람은 지키지 않습니다. 잘 계율을. 계율를 잘 지키지 못한 사람은 새치기 잘하고 준법 정신이 없는 사람은 인욕성이 없어요. 그래서 남을 해코지하고 또 이익이 있는 데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는 그런 또 고락에 아주 예민하고 괴롭고 즐거운데 예민하고 칭찬과 헐뜯는데 너무 예민한 사람들이 많거든요. 제법의 무아라든지 제행무상의 이치가 도대체 뚫고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베풀어야 일단은 아까는 아끼고 나누고 심어라 했잖아요. 그렇죠 우리 바라밀행은 딱 세 가지뿐입니다. 원래는 첫째 베풀고 해보세요. 지키고 참고 베풀고지키고 참고베풀고 지키고 잘 참고 그래 잘 베푸고 잘 지키고 잘 참고 요 세 가지를 보시 지계 인욕이라 하지 않습니까? 금강경에도 어떻게 해야 됩니까? 부주색보시(不住色布施)하고 부주성향미촉법보시(不住聲香味觸法布施)하라. 어디든지 보시가 제일 먼저 나오는 이유는 베풀지 않는 사람은 잘 지키지 않습니다.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은 잘 참을성이 없고 참을성이 없는 사람 이 세 가지가 근본 방편이고 이 세 가지가 계속 반복되는 것을 정진바라밀이라 합니다. over and over again 정진바라밀이 돼야 이제 업장이 녹아지기 시작합니다.그래서 정진 바라밀을 계속하는 것을 우리는 보현행원이라 해서 화엄경에서는 10가지로 기신론에서는 5가지로 정진하는 사람들은 첫째 예경을 잘한다. 아만심이 없이.둘째 참회를 한다. 셋째 수희동참을 한다. 넷째 권청을 한다. 다섯째 회향을 한다. 이 다섯 가지를 우리는 정진바라밀의 한 묶음이라죠. 그러면 어느 날 선정이 찾아오고 정혜쌍수가 되면서 지혜가 열리게 돼서 사리 분별이 또렷해지고 사람이 항상 중심, 추 저울추처럼 중심이 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여기서 그냥 크게 보시하는 문을 열고 그냥 쓰는 게 아닙니다. 일단 그것이 일번이야 그게 그래서 원효스님께서 일찍이 자비보시는 시법왕자요(慈悲布施 是法王子) 자비롭게 보시하는 사람 부처님의 왕자, 부처님의 자식들이고 불가의 왕자들이고 간탐어물은 시마권속이라(慳貪於物 是魔眷屬) 내거나 남의거나 놀부 심보로 탐내는 사람들은 아주 마구니의 권속이다 이랬어요. 진관사는 제가 여러분들한테 오늘 드린 것 중에 요 앞에 QR 코드가 하나 있죠. 거기 보면 진관사 태극기도 이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휴대폰으로 살짝 나중에 갖다 대보시면 돼요. 그리고 진관사 수륙대재하는 것도 여기 사진이 왕창 실어놨어요. 표지 대신에 그걸 실어놓고 뒤에는 여기 QR 코드 하나 더 있지요. 거기는 아주 잘생긴 스님 사진이 쫙 나올 거예요. 근데 이 진관사는 여러 군데 우리 회주 스님이나 주지 스님이나 이렇게 특히 이렇게 옛날 선대 스님들께서도 열심히 노력해오신 공덕으로 또 신심 있는 불자님들의 인연 공덕 그래서 오늘날까지 정말 우리 대한민국의 모범 사찰이 돼서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는데 저기 말 못하는 태극기가 제가 진관사를 먹여 살리는 것 같아 가지고 이 QR 코드 안에는 여기 로고 안에 있죠. 그거 나중에 사진 찍으면 태극기 열어놨습니다. 보입니까? 그 안에 중심에 있죠. 그 진관사 태극기 그거 우리 심장에 박듯이 꽉 박아놨어요. 그래서 말 못하는 진관사 태극기도 우리를 먹여 살리고 범어사는 계곡에 가면 돌이 많은데 말 못하는 돌이 범어사 중들을 다 먹여 살려요. 그런데 요즘 가을 산에 가보면은 범어산은 참나무가 유독히 많습니다.그 계곡에 왜 저 나무가 왜 참나무인가 보니까 도토리 상수리를 열었다가 앙상한 겨울에 그 많은 다람쥐나 새를 먹여 살리니까 그 나무가 참나무라 중생을 먹여 살리는 나무가 참나무라 사람들 어떤 사람이 참 사람인가 모든 사람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사람이 참나무고 참선지식이라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크게 보시하는 문을 열고 부처님께 공격하였으면 이 해탈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중생을 먹여 살려야 되겠다. 근데 먹여 살리지는 못하고 동냥은 안 주고 쪽박은 깬다고 남은 거 뺏기는 왜 뺐냐 이거야. “불자여 마땅히 아십시오. ③저는 그때 다만 일체의 중생을 이익되게 하려 하였을 뿐이고, ④삼계에 애착하지도 않고, ⑤과보를 구하지도 않고, ⑥명예를 탐하지도 않고, ⑦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훼방하지도 않았으며, ⑧모든 경계에 대하여 탐내어 물들지도 않고 두려워함도 없었으며, ⑨다만 대승으로 벗어나는 길을 장엄하고, ⑩항상 일체 지혜의 문을 관찰하기를 좋아하면서 고행을 닦아 이 해탈을 얻었습니다.” 불자여 마땅히 아십시오. 경상도 말로는 단디 아소. 나는 그때에 누구를 위해서 한두 중생도 아니고 일체 중생을 위해서 중생은 어떻게 되느냐 한 두 부처님이 아니고 일불이불삼사오불(一佛二佛三四五佛)이종선근이어무량천만불소(而種善根已於無量千萬佛所) 저는 이제 누가 이 떡이라도 이렇게 해 오시면 떡 되게 맛있습니다. 이러면 그럼 그다음에 하는 말이 있습니다. 계속 해 오이소. 예 누가 용돈이라도 이렇게 보시를 좀 하시면 어쩝니까 계속 주이소. 일불 이불 삼 사 오불이 아니라 한두분이 아니건데 이어무량천만불소 내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얻어먹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였을 뿐이고, 삼계에 애착하지도 않고 집착이 많은 사람들은 자꾸 드러내기를 좋아합니다. 한문으로도 붙을 착자가 드러낼 저명할 때 저 자하고 똑같이 쓰는데 어때 한문도 그렇게 잘 써놨어요? 착하는 사람은 드러내기를 좋아해요. 그리고 자기 잘난 척하고 고개 빳빳이 들고 있으면 저 사람 집착 많다. 저거는 인간이 안 되겠다 조심하자. 이러 그러니까 집착이 많은 사람들은 뭐냐 사치하고 교만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여기는 이제 옷을 저렇게 차분하게 이렇게 잘 입고 오셨는데 알록달록하게 머리에 브릿지 보라색 넣고 이런 사람들은 날 좀 보라고 저렇게 또 머리도 여기 어떤 분인데 또 제초제를 노리끼리하이 저리 뿌려오고 이러면 이제 난감한 기라 저렇게 사치 교만하면 스님들은 브릿지를 이게 뭐 이 물들이고 싶어도 못 들이잖아요. 이게 싹 깎아버렸는데 뭐 어디 있나 뭐 그게 스님들은 올백도 안 돼 한 올이라도 있어야 올백 될 거 아니야 가르마 좌우로도 안 되고 싹 깎으면 아무것도 없어 그냥 본래무일물이요 우리는 사치 교만하고 이런 분들은 어떠냐 갑질을 합니다. 갑질을 사치스러운 사람 딱 만나게 되면 가방이나 신발이나 좀 얄궂다 싶으면 조심해야 돼요. 그런 사람들이 일체 중생을 기만하고 갑질한다고 이렇게 해놨어요. 속인다 이 경전 그냥 써놓은 게 아닙니다. 삼계에 애착하지도 않았다 이런 거는 나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다 이런 말씀이에요. 그리고 어떻게 지어야 우리가 복 있게 사는 그런 선근을 짓는가 하는 게 명확하잖아요. 경전에는 과보를 구하지도 않고 이런 사람들을 귀하게 산다고 그럽니다. 우리는 부하다 귀하다 하는데 귀한 사람들은 설사 내가 쫄쫄 굶어 죽더라도 밥 한 그릇 이렇게 맛있는 거 먹자고 해서 내 정의나 양심을 팔지 않습니다. 일생을 걸고 하거든요. 일생을 걸고 하거든요. 제가 흔히 이런 얘기합니다. 법문하면서 오늘 제가 여기 왔는데 제 일생이 여기 앉아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한 사람이 오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에요. 부하게 사는 사람이 재물이 많고 뭐 어떤 부유하다 싶으면은 열심히 나눠주면 돼요. 부유한 사람이 또 귀한 자리를 탐하다 보면 다쳐요. 또 귀한 사람이 독립운동하고 또 수행하고 이런 사람들이 부유하게 살면 그건 또 똥이 묻은 것처럼 지저분해 그래서 귀한 거 하고 부유한 것을 부귀공명을 다 누리면 좋겠지만 부처님처럼 안 되면 우리는 차라리 귀한 쪽으로 사는 것이 복이 따르는 사람들이 그런 선근이라고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과보를 구하고 명예를 구하고 이런 사람 분수를 또 지나치게 넘게 바라면 안 돼요. 분수 넘게 바라면은 우리 삶 자체가 요동을 쳐 삶 자체가 요동을 치면은 지저분한 재산으로 가지고 자기를 막 채운다고 내 건지 아닌지. 그래서 절에서는 아예 남의 거 훔치지 마라. 계율을 정할 때 영취단수(寧就斷手)언정 불취비재(不取非財)라. 절에 들어오면 처음에 일년 때 배우는 게 있고 사미율의라 영취단수라 차라리 내 손을 자를지언정 불취비재라 내 것 아닌 것은 취하지 않는다. 이거 이것만 명심해도 오늘 수륙재 법문이 다 될 것 같은데 그런데 우리는 돌에 똥이 묻었든지 독이 묻었든지 이거 지저분하든지 아닌지 씻으면 그만이지 뭐 이러잖아요. 그런 사람들 뒤에 이름을 법명을 딱 지어죠. 폭망. 인생이 망한다고 인생이 다른 거 망해도 괜찮지만 사지가 떨어지고 눈이 나빠지고 이런 거는 괜찮지만 인생 자체가 그래 폭망해버리면 난감하잖아요. 그렇죠 인신난득이요 불법난봉이라(人身難得 佛法難捧) 참 만나기 힘든 불법 이 진관사 같은 데 저 소나무도 봐라. 흔들리지도 않고 법문 듣는다. 저거 보세요. 뒤에 저렇게 바람 부는데도 흔들리지도 않잖아 조용 하잖아. 자기를 칭찬하고 아까 자기 칭찬하는 사람들은 아집이 많은 사람이요. 드러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또 남을 훼방하는 사람들 이거 아주 악질들이죠. 훼방 잘하는 사람들이 골 잘 내거든 화 내는 사람들은 수준 이하에 최고 수준 낮은 사람이 화내는 사람이에요.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그렇죠 예를 들어서 제가 이제 가을만 되면 좀 분한 생각이 나는데 참지 뭐 어떻게. 제가 잘 가는 절에 밤이 많은 밤이 열리는 게 있었어요. 그 밤나무가 있었는데 그 밑에다가 어떤 처사가 잘한다고 소각장을 만들어 놔 가지고 밤을 지금도 못 먹게 돼 있잖아요. 밤나무가 다 죽어가지고 그리고 “여기 밤나무 이게 그거 소각장 만들어 놓으면 이 연기 올라가면 나무 죽을 텐데” “스님 연기 올라가도 괜찮습니다.” 이러더라고 뭐라 하지는 못하고 화는 내면 안 되니까 저도 골 잘 내는 편인데 화 내면 안 된다고 써놨으니까 화는 내면 안 되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아이고 내년에 군밤 먹겠다 내년에 군밤 열리겠다” 이러고 돌아서는 거지 뭐 군밤은커녕 나무가 다 말라 죽어버렸다. 지금 예 그런 멍청한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 인생을 군밤 잘 밤 잘리는 나무에다가 밑에 소각장 만들어 가지고 지금도 생각해 화가 날라 하는데 안 내야지 그러니까. 모든 경계에 대해 탐내어 물들지 않고 두려워함이 없다.탐진치가 사라지면 사람이 정신이고 몸이고 욕심이 사라지고 화가 사라지고 나면 여러분들 어떻습니까? 좀 홀가분해지잖아요. 그렇죠 그걸 경안(輕安)이라고 그럽니다. 경안 절에서는. 마음이 홀가분한 사람한테 찾아오는 것이 수리수리 마수리 수수리 사바 수리수리 몸수리 마음수리 말수리 사바하 예. 말도 수리하고 말도 좀 교양 있게 하고 행동도 좀 교양 있게 하고 생각도 사고 방식도 좀 수리하고 그게 수리 수리 마하수리 다 고쳐라. 잘 고쳐라 이 말 아닙니까? 그 수리 수리하는 걸 불방일이라고 그래요. 불방일 게으르지 않는다. 불방일 선근을 우리는 여기 선근인데 불방일 선근을 흔히 다른 말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선근이라고 최고의 선근으로 보거든요. 그렇게 마음과 몸이 좀 홀가분해가지고 병이 안 들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조금 이렇게 튼튼한 사람들이 이 불방일 정신이 있어요. 불방일 선근을 다른 말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선근이라 하고 보리심의 선근이라 보리심선근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어떠냐? 큰 백년 되고 천년 된 나무 뿌리가 깊듯이 불방일 선근이 그래 뿌리 깊은 선근이다. 그것이 이제 종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부처를 기약한다. 그래 게으르지 마라. 게으른 사람들은 악독합니다. 악독해. 그래서 게으르지 않고 불방일 하는 사람들한테 찾아오는 정신이 어떠냐 무사공평이라 아집이 사라지고 대원경상에는 절친소라(大圓鏡上 絶親疎) 큰 개울은 친한 사람, 안 친한 사람 없잖아요. 그래서 마음이 넓은 사람은 저 바다는 낙동강이든 두만강이든 압록강이든 영산강이든 동서남북 어디서 오더라도 저 바다가 태평양이 다 받아주는 것처럼 그렇게 마음이 확 넓어져서 그걸 무사공평 공명정대 그다음에 오는 현상이 우리가 흔히 잘 아는 불생불멸의 무생법인이 오고 우리 마음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고, 그때부터는 순풍에 돛단 듯이 에서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입에서 거짓말을 안 하고 눈에서 늘 미소가 이렇게 번지고 육문상방이 자금광(六門常放紫金光)이라 염도념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의 육문상방이 자금광(六門常放紫金光)이라 아미타불이 어디에 계시더냐 재하방이냐 아미타불재하방(阿彌陀佛在荷方) 착득심두절막망(着得心頭切莫忘) 간절하게 염불하고 염불 해 보니까 나중에 잡념이 다 끊어진 무념의 자리 제법무아 제행무상의 자리에 가니까 열반적정이더라. 내 눈에서도 자비가 넘쳐나고 들리는 소리에 귀에 거슬리는 게 없고 안이비설신의 모두 통째로 내가 아미타불처럼 됐다. 육문상방자금광이라 부처님의 눈빛으로 살 수 있겠다. 그게 이제 원리 전도몽상하니까 구경열반이라 그래서 대승으로 벗어나는 길을 장엄한다. 그다음에 또 한 꼭지를 항상 일체의 지혜의 문을 관찰하기를 좋아하면서 고행을 닦아서 이 해탈을 얻었다. 고행을 닦는데 어제난처무제난(於諸難處無諸難)이라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조건에서도 어려움이 없고 그 어제난처 어려움 속에서도 어렵지가 않다 이 말이죠. 부처님의 전생에 직업이 항상 자주 등장하는 게 약초꾼입니다. 약초꾼. 그래서 화엄경에 이르기를 약초가 가득 한 설산에 여러 사람이 같이 살지만 사냥꾼 눈에는 사냥감만 보이고 목동 눈에는 잡초 소꼴 풀만 보이고 약초꾼의 눈에는 약초만 보인다. 왜 약초는 중생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그래서 화엄경, 보현행원품의 항순중생편에 보면 우리가 오늘 또 여기서 법문할 때 사실 공양 올릴 때 했지만 <어제병고(於諸病苦) 위작양의(爲作良醫) 어실도자(於失道者) 시기정로(示其正路)> ‘어제병고 모든 중생들에게 병고에 든 사람들에게 좋은 의사가 되겠다.’ 이게 이제 석가모니가 전생에 했던 그 약초꾼의 얘기죠. 그 약초꾼 어떤 약초꾼의 얘기가 아주 아름다운 게송이 있습니다. 그 약초꾼이 불사불 시대의 약초꾼이 그 게송을 가지고 일주일 동안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는 그 어느 약초꾼의 게송이죠. 혹시 아십니까? 天上天下無如佛천상천하무여불 十方世界亦無比시방세계역무비 世間所有我盡見세간소유아진견 一切無有如佛者일체무유여불자 이 게송을 그 약초꾼은 일주일 동안 불사불 부처님의 성불을 찬탄하면서 머리가 좋아가지고 천 게송 만 게송도 할 수 있는데 일주일 동안 오직 이 한 게송만 가지고 일주일 동안 불사불 부처님을 찬탄합니다. 그 약초꾼의 이름이 석가모니 예 여러분 확실히 진관사는 수준이 달라요. 이렇게 이래서 제가 올 때마다 기분이 좋다니까 좀 그러니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약초꾼으로 사실 때 전생에 성불하기 직전에 당신이 다른 부처님을 찬탄하면서 했던 게송이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다. 천상천하에 부처님 같은 분이 없다.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라 온 세상 씻고 닦고 봐도 부처님 같은 분은 이 세상에 있을 수가 없다. 찬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비록 게송의 한 가지지만 뜻이 정성스럽고 지극하기 때문에 그 하나의 게송이 일주일 동안 한다 해도 뭐가 부족하겠습니까? 그렇죠 평생토록 한다 해도 나무아미타불하는데 뭐가 부족하겠습니까? 관세음보살이니 우리가 이게 진관사에 와서 단 하나의 진실한 게 있다면은 비록 작다 하더라도 다이아몬드 하나를 가지고 평생 살아가는데 뭐가 우리가 부족한 게 있겠습니까?그렇죠 인인(人人)이 전부 무연선교착여의(無緣善巧捉如意)라 여의주 같은 보배가 사람들마다 있는데 내한테 여의주가 있는데 무엇이 부족하냐 이 말이야. 그래서 사람이 이렇게 집착없이 뚝 부처님처럼 그렇게 살면 마지막에 종착역은 어디냐 불해(不害)라 남을 해코지하지 않는다. 남을 해코지하지 않는 자비심이 자라니까 항순중생의 마지막 편에 입법게품 보면 뭐라 합니까? 자비심이 자비심이 삼매를 얻은 사람은 자비심으로 가지고 살거든요. 그 자비심이 나중에 자라서 보리심이 되고 이 보리심이 자라서 발보리심이 자라고 자라서 정각심이 된다. 그래서 자비심이라고 하는 것은 복을 상징하는 것이고 보리심이라고 하는 것은 지혜를 상징하는 것이라. 그래서 보리심과 지혜가 보리심과 자비심이 합쳐져서 정각심은 복과 지혜를 구족하게 된다. 이렇게 이제 이미 화엄경 같은 데는 그렇게 써놨잖아요. 깨달은 사람은 자기가 저절로 중생을 위하게 돼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거울 앞에 서면은 거울에 비친 겉거죽 말고 거울에 비치지 않는 모습까지도 알 수가 있습니다. 자 그다음 구절 한번 봅시다. “불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때 나를 해하려던 오백 대신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습니까, 지금 제바달다의 오백무리이니, 이 모든 사람들도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다 같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야 될 것입니다.” 데바닷다가 성불해야 불교의 완성이라. 그리고 이제 쭉 넘어갑니다. 한 장 넘 가 보세요. 넘기니 뭐 나옵니까? 그 법화경, 상불경 보살품 바로 위에 거 예 그 한 장 최초의 부처님 이름은 대비(大悲)고 그 500명의 악독한 사람들이 승부를 하는데 이름이 뭐냐 선근이 뭐냐 대비 그다음에 둘째 이름은 요익세간(饒益世間) 요익 셋째 부처님은 대비사자(大悲師子) 넷째 부처님은 구호중생(救護衆生) 최후의 부처님 이름까지도 뭐가 된다 의왕(醫王) 의사가 된다. 오직 이타행뿐이에요. 불교는 그러니까. 말 한마디 천년 빚 갚는다고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진(百劫積集罪 一念頓蕩盡) 여화분고초 멸진무유여 (如火焚枯草 滅盡無有餘)>라.그래서 이런 수륙재 통해서 우리가 숨도 조절하고 호흡도 조절하고 잠도 조절하고 몸도 조절하고 말도 조절하고 그래서 절에서는 특히 이제 말을 적게 해야 성불을 할 가능성이 좀 많아요. 그 다음에는 한 구절 더 해보고 넘어갑시다. 어디요? 상불경 보살시간이 조금 짜치지요. 짜친데 좀 모자라지요. 제가 전에도 항상 이렇게 말씀드린 저는 그래도 요즘은 경상도 사투리를 안 쓰니까 천만 다행이잖아요. 제가 전에 올라와서 서울에서 임플란트를 서울에서 했거든요. 그 뒤로부터는 아주 정확한 표준말을 쓴다고 그래요. 지금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나간 옛적 위음왕여래가 계시다가 열반에 들고 불법이 바르게 유지되던 정법 시대가 끝나고 상법(像法) 시대에 깨달은체하며 교만을 부리는 비구들이 큰 세력을 이루었다.” 아이고 똥을 깎아서 향기를 기대하지.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 교만하고 깨달은체하는 사람은 그거 성불하기 힘들어요. 사촌지식 해보세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이 귀로 듣고 한 치 두치 세치 네치 요까지 네 치라고 그럽니다. 귀로 듣고요. 눈으로 봤다 해가지고 입으로 나불나불 떠드는 사람들은 그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라 그래서 군자의 학문이라고 하는 거는 눈으로 보고 아금문견득수지(我今聞見得修持) 이 가슴에 수지를 해야 돼요. 내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던 것은 내 양심에 가슴에서 되새김질하고 되새김질하고 계속 반출해서 사지로 뻗어나가야 돼요. 손으로 따뜻한 손길이 되고 남을 찾아가는 자비의 발길이 되고 눈길 발길로 안이비설신으로 이 내 지식이 전체로 회향돼서 승화되어야 그리고 사지로 뻗어가서 이렇게 회향하는 것을 우리는 보살의 수행이라 하고 보살의 다문이라 하고 학문이라고 하잖아요. 그죠 그래서 여기서 깨달은 척하고 이렇게 교만한 척하는 사람은 성불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상불경 보살 이제 그때 상불경(常不輕)이란 보살비구가 계셨는데, 득대세야 대세지보살아 무슨 이유로 상불경이라고 부르게 되느냐, 항상 남을 가엾이 여기지 않았다 이 말이죠. 이 비구는 만나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마다 절을 하고 찬탄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그대들을 몹시 공경합니다. 감히 교만하게 가벼이 여기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모두 당신들이 모두가 보살의 도를 닦아 부처님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퀴즈를 하면은 촐랑촐랑 촐삭대는 그 앞에 쭉쟁이처럼 앞에 날아가면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 조리질을 이렇게 해가지고 뒤에 남을 때 쌀이 건져지고 뒤에 남는 게 돌이 남잖아요. 그렇게 너무 느슨하게 뒤에 남아서도 안 되고 앞에 촐랑거리고 가서도 안 되고 그래 우리가 너무 팽팽하게 하든지 너무 느슨하게 하든지 이거는 수행자가 갈 길이 아니다 이 말이죠. 그래서 늘 있는 듯이 없는 듯이 해가 휴가 안 가잖아요. 사람이나 가지. 그런 거듯이 그러나 이 비구는 경을 읽거나 외우지도 않고 보세요. 경을 읽거나 외우지도 않고 그런 지식적으로 하지 않았다 이 말입니다. 단지 이렇게 사람들에게 예배만 하였느니라 하심이 최고다. 예배를 절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심이 안 되고 아만심이 높아서 절을 못해요. 심지어 멀리서 사부대중을 봐도 멀리서 멀리서 쫓아간다는 것은 정말 존경해야 되거든. 원근 불구하고 청탁 불구하고 맑고 탁한 사람 불구하고 내가 죽든지 살든지 생사 불구하고 모든 사부대중들을 돌봐야 된다. 어떻게 찾아가느냐 일부러 찾아가 마음을 내서 찾아가야 돼. 그러니까 내가 시간 나면 갈게. 그건 빵점이야. 시간 나면 갈 게 아니고 시간 내서 말이 달라요. 뜻이 완전히 내가 시간 내서 어쨌든지 가겠습니다. 이래야지 실컷 놀다가 시간 나면 어째 짜투리 시간 한번 찾아가 볼게. 내가 다 먹고 남으면 니 줄게 소리 아이가 그게 그렇지 않고 일부러 경전에 이렇게 자세하게 써놨습니다.우리가 해야 될 일을 갖다가. 절을 하고 찬탄하면서 말하기를 ‘감히 나는 그대들을 가벼이 보지 않습니다. 그대들은 부처님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부대중들 가운데서 성을 잘 내고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자가 추악한 말로 욕을 퍼붓기를 ‘이 무지한 비구야 어디서 왔느냐’ 여기서 추악한 말로 욕 잘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천친보살(天親菩薩)이 불신종자(不信種子)라고 그랬어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욕을 잘하고 마음이 지저분한 것으로써 성품을 삼는다 그랬거든요. 그럼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어떠냐? 신심이 있는 사람들은 공덕을 귀하게 여긴다 해놨거든. 그래서 신심에 대해서는 화엄경 같은 데는 현수품에서 십사권, 십오권 한 권 반을 통째로 그냥 게송으로 써가지고 시를 써놨거든.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게 아니니까.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공덕을 귀하게 여긴다. 진관사 금방 와봤는데도 믿음이 있는 사람 없는 사람 금방 알 수 있잖아요. 우리가 그리고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도 없고, 저거는 불신종자 추악하구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구나 말만 보면 그 사람 마음까지 다 짐작하죠. 골 잘 내구나. 화를 잘 내는 거는 진에(嗔恚)를 하는 거는 남에게 손해를 끼칩니다. 그 탐심이 많은 사람들은 욕착이라 지저분한데, 똥파리가 구더기가 똥물에 있듯이 그렇게 지저분한 게 양심에 살면서도 그걸 틀어낼 줄 씻어낼 줄 모르거든. 그 추악한 말 많이 하고 이런 사람들은 제가 엊그제 어디 백화점 갔다가 엘리베이터 탔는데 헤드폰을 쓴 예쁜 저기 아가씨던데 헤드폰을 딱 끼고 음악을 듣더라고. 그게 그 백화점에. 근데 자기는 안 들리는지 방구를 뽕 끼더라고. 본인이 방구 꼈는데 모른 척하고 있더라고. 그런 사람들이 골 잘 내는 사람들이라. 아이고 냄새 아직까지 나는 것 같아얼굴은 그럴싸하게 생각했는데 이 헤드폰 하나 딱 끼고 엘리베이터 안에 방구 끼놓으면 냄새가 어떨 것 같아요. 골 잘 내는 사람 이 무지한 그러니까 화를 내는 사람은 그렇다 이 말입니다. 자기는 딱 틀어막고 그래 골 잘 내는 사람 옆에 가만히 한번 얘기 한번 들어보십시오. 이제 이런 걸 자꾸 가르치고 관찰해야 돼. 남의 얘기 안 들어요. 화가 나면 날수록 있는 대로 데시벨이 올라가거든 안 들려서 그래요. 우리가 염불할 때 안 들려서 그래 염불할 때 이래 하거든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딱 당겨야 돼 당겨 뭔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래야 되는데 이 듣는 습관이 안 돼 놓으니까 계속 내질러 그래 옆에서 누가 골 잘 내고 목소리 막 목청 올리면 어떻게 돼요? 목소리 큽니다. 목소리 낮추세요. 목소리 낮추세요. 이래야 돼요. 숨 쉬고 목소리 낮춰야 목소리 낮춰 그것도 안 되는데 무슨 여기 와서 도 닦는다고 우리가 앉아 있겠노. 헤드폰 끼고 방구 끼지 말고 화내지 마라 이 말입니다. 그건 수준 이하의 수준이야. ‘이 무지한 비구야 어디서 왔느냐 너는 우리를 가벼이 보지 보지 않는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부처가 될 것이라고 수기를 하는데, 우리들은 이와 같은 허망한 수기는 필요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제 범은 참 생쥐를 잡지 않거든. 왕벌은 한 번 떠난 집에 미련이 없어요. 이렇게 여러 해를 지나면서 항상 욕을 먹었지만 성을 내지 않고 항상 말하기를 ‘당신은 부처님이 될 것입니다.’라고 해서 우리는 이제 이 부처님처럼 이런 세계에 살아야 돼요. 범이 산에 안 살고 마실에 어슬렁거리면 똥개한테 물려요. 범이 또 개하고 싸워가지고 이겨도 창피시렵고 져도 창피시려워요 개판이다. 개판 용이 돼가지고 참 깊은 물에서 살고 이렇게 깨끗한 데 이렇게 살아야지. 쪼매난 또랑의 연못에 우물 같은 이런 데 가서 용이 살면은 새우한테 촛대뼈 까인다니까 그게 우리가 아니 그렇잖아요. 그렇죠 진관사 정도 우리가 이래 수륙대재 하는 사람이 됐으면 가슴이 꿈과 이상이 커야돼요 그래서 이런 말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몽둥이를 때리거나 기와로 던지면 먼 곳으로 피해서 왜 먼 곳으로 똥을 피해야지 그러면서 먼 곳을 가늘고 길게 살아야 되니까. 그렇죠 우리는 죽으면 안 돼 법을 전해야 돼요. 그리고 큰 소리로 부르짖기를 여기서 큰 소리를 부르짖는 이런 구절이 가슴에 와닿아야 돼요. 왜 큰 소리를 합니까? 확신이 있는 사람은 큰 소리를 하거든 사자후를 하거든. 그러니까 부처님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사자후는 온 세상의 중생들의 음성을 다 모아도 부처님의 가슴에서 울리는 진심에서 울리는 소리를 이길 수 없다 하거든. 그게 이게 소리가 바깥으로 나오는 게 아니거든. 진음(眞音)은 진짜 음성은 그러니까 이게 천년 만 년 이렇게 가면서 우리가 부처님을 매일 우리가 예경하고 그래 하지 않습니까? 그 부처님의 진짜의 음성을 우리가 들어버렸거든 우리가 들었는지도 모르고 들으면서 이렇게 살고 있잖아요. 부처님에게 백호상(白毫相)일분공덕이라고 하는 거는 모든 중생들의 부처님의 흰 백호 광명의 공덕을 다 모은다 하더라도 모든 세상 사람들의 공덕을 곱하기 10번 해가지고 천년 만년 지었던 공덕을 부처님의 공덕에 미칠 수 없다. 그러지 않습니까? 그래서 찰진신념가수지(刹塵心念可數知)대해중수가음진(大海衆水可飮盡)허공가량풍가계(虛空可量風可繫)무능진설불공덕(無能盡說佛功德)이라 ‘나는 그대들을 가벼이 보지 않습니다. 그대들은 모두 부처님이 될 것입니다.’ 그가 항상 이런 말을 했기 때문에 깨달은 체 하면서 교만 부리던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들이 중도 그렇고 신도도 그렇고 교만을 얼마나 부리는지 몰라 깨달은 체 하면서 저도 깨달은 지가 얼마 안 돼갑니다. 제가 깨달은 지는 다 알잖아요. 새벽 시장 가가지고 참깨를 사가지고 달아버렸다니까요. 깨를 달아버렸대. 깨를 달아버렸어요. 그래서 하도 전화 와서 스님 깨달았습니까? 깨 안 달았다 그러고 그다음에는 깨를 달아놓고 깨쳤다. 깨를 계속 친다 깨쳤다.또 전화가 와서 스님 진짜 깨쳤습니까? 아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들깨 사가지고 내가 들깨달았다 이러고 이제 넘어가는 거죠. 이제 비구 비구니 우바세 우바이들이 상불경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득대세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때 상불경이 어찌 다른 사람이냐 바로 나(였느니라) it’s me 부처님 이게 드라마틱하잖아요.그렇죠 데바닷다품 여러분들 한번 읽어보시고 또 왜 그러십니까? 데바닷다품에도 읽어보면 우리가 이제 염불하는 장엄염불 중에 이런 게성이 있어요. 가사정대경진겁(假使頂戴經塵劫)신위상좌변삼천(信爲床座偏三千)약불전법도중생(若不傳法度衆生)필경무능보은자(畢竟無能報恩者) 이런 게송이 있어요. 가사 가령 우리의 머리에 부처님을 이고 지고 평생 그리 예경하며 모시고 신위상좌변삼천이나 법문 있는 데 가서 모든 법문을 다 가슴에 새기고 듣고 한다 하더라도 그거 가지고는 우리 복 짓는 것이 아니다. 진짜 복은 어떤 거냐 약불전법도중생이라 오직 저 헤매는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고귀한 가르침을 전해야만이 필경무능보은자라. 이보제불막대은(以報諸佛莫大恩)이라. 그것이 이제 끝끝내 부처님의 은혜를 다 갚는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법문 듣고도 혼자서 얍삽하게 떼먹지 말고 어때요? 남들에게 전해야 되잖아요. 그렇죠. 오늘 그 종이 쪼가리 가져가셔가지고 몇 번 몇 번 복사해 가지고 옆에 좀 나눠 드리세요. 그리고 이제 한산, 습득 스님 얘기가 쭉 나와요. 쭉 바로 읽고 오늘 마치겠습니다. 시간이 많이 됐죠. 이런 시간을 통해서 점점 성장했는 거에서 우리가 성숙되어 가서 익어야 돼. 감도 익으면 부드러워지고 달콤해지고 밥도 쌀도 익으면은 부드럽고 달콤해지고 그게 사람도 보살도 자꾸 성숙시켜야 돼요. 우리가 보살도를 자꾸 성숙시켜야 돼요. 익은 사람은 부드럽고 달콤하고 그래요. 한산 스님 얘기 한번 보겠습니다. 옛날에 한산 스님과 한산 스님께서 습득 스님에게 물으셨는데 세상 사람들이 나를 비방하고, 속이고, 욕하고, 비웃고, 깔보고, 천대하고, 미워하고, 업신여기면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되겠습니까? 부처님은 이렇습니다. 대지도론을 보면은 그 아이는 우는 것으로써 힘을 삼고 여자는 질투 자 죄송합니다. 연약한 사람들은 질투로써 힘을 삼고 수행자는 인욕으로 힘을 삼고 아라한은 삼매로 힘을 삼고, 왕이나 이렇게 고관 대작들은 아만으로써 국회의원이나 이런 사람들 아만으로써 힘을 삼는다.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부처님은 대자대비로써 힘을 삼는다. 그럼 못난 지지리도 못난 중생들은 뭘로 힘을 삼는가? 오만과 편견으로 힘을 삼는다. 그러니까 오만 편견이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되겠습니까? 습득스님이 말씀하시기를 그저 참고, 양보하고, 그 뜻에 따르고 자리를 피하고, 견뎌내고, 그를 공경하고, 그 사람하고 불요(不要) 리타(理他)라 그 사람 바로잡으려고 하면 안 돼요. 따지지 않으면은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불요(不要) 리타(理他) 해보세요. 남 바로잡으려 하지 마세요. 유타(由他) 그 세 번째 있잖아요. 그렇죠 유타는 뭐냐 자유 유타라 그 사람을 말미암는다 이 말입니다. 그 사람 하고자 하는 대로 좀 따라가줘요. 따라가죠. 제가 모시고 있는 우리 어른 스님이 무자비자 무비 스님인데 스님께서 제가 하도 별나고 이러니까 어릴 때부터 저를 가르친다고 여러 가지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시는데 나중에는 하다 하다 안 되시니까 우리 어른 스님께서 무비스님께서 저한테 하신 말씀이 있어요. 네 발우에 누가 똥을 싸놔도 시비하지 마라. 니 밥그릇에 똥을 싸도 시비 안 해야 된다. 그러니까 한산, 습득 스님이 이걸 읽으면서 많이 느끼겠습니다. 한산 : 그러면은 그런 것을 비켜 갈 비결은 없습니까? 습득 : 언제 미륵보살의 게송을 본 일이 있습니다. 쭉 읽겠습니다. 빨리. 늙은 몸에 누더기 옷 걸치고 찬 없는 밥으로 배를 불리며해진 옷 기워 추위를 막고 모든 일에 그저 인연을 따를 뿐이네. 그 누가 나를 꾸짖으면나는 그저 좋습니다 하고 그 누가 나를 공격하면 나는 쓰러져 웅크리고 얼굴에 침을 뱉어도 마를 때까지 그냥 두네. 내편에선 힘쓸 일 없고 저편에선 번뇌가 없으리. 이러한 바라밀이야말로 미묘한 삶의 보물이라이 소식을 알기만 하면 도를 모른들 무슨 근심이리오. 사람은 약하나 마음은 약하지 않고 사람은 가난해도 도는 가난하지 않아 한결 같은 마음으로 행을 닦으면 언제나 진리 속에 살아가리. 세상 사람들 영화에 애착하지만 나는 도리어 보기를 원치 않고 명예와 재물 공한 줄 알기에 내 마음은 족히 싫어함이 없네. 황금이 산처럼 쌓였더라도 덧없는 목숨 살 수 없나니 동서고금에 그 잘난 사람들 지금은 몇 명이나 살아 있는가. 그래서 오늘 이제 우리가 수륙재를 마치면서 그렇습니다. 바다에 들어가면 천 년 전에 들어갔던 강물도 오늘 가는 강물도 다 바다가 되고 오늘 아침에 들어갔던 강물도 다 바다가 됐어요. 또 깊은 곳에 있거나 우리가 또 얕은 곳에 있거나 좀 많이 알거나 작게 알거나 다 상관없어. 그저 다 바닷물이요. 바닷가에 것도 바닷물이고 깊은 저기 심해도 바닷물이라. 그렇게 우리가 어떻게 하든지 간에 생각이 짧든지 생각이 깊든지 간에 전부 부처님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이라.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이제 제가 이번에 병원에 이렇게 가 보니까 중환자실에 여러 번 이렇게 병문안을 했는데 아시는 스님이 좀 입원해 계셔가지고 한 20일, 열흘 이렇게 의식불명으로 계신데 그 눈 한 번 떠봐라도 눈은 못 떠, 못 뜨는 사람은 그렇게 힘들게 못 뜨지만은 우리는 수시로 눈꺼풀 뜨기도 하고 자기도 하고 그래 하잖아요. 뜨는 사람 입장에서 그렇게 쉬워, 그래 보니까 문제를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 문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인생 사는 데 그런데 수학 문제를 답을 모르는 사람 하기는 문제 그 자체가 늘 어려움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까? 예 그래서 우리가 문제가 어렵든지 쉽든지 간에 원래부터 문제가 없다. 이 사실만 제대로 알아차리면은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악몽을 꾸던 선몽을 꾸든 다 꿈이라 눈을 뜨고 나면 단지 침대일 뿐이지 어떤 꿈도 없는 것이다. 이 수륙재를 통해서 문제가 없다는 걸 알아차리면 답은 남한테 묻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한테 있다는 게 이제 짐작이 가고 불교 공부를 하는 이 서원으로 온갖 세상의 파도 속에서 세파 속에서 파란만장한 세파 속에서도 힘들지만은 아름다운 인생을 모두 완주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건강 건강 건강 건강 조심하시고 성불하십시오. 마지막으로 건강진언 다 같이 하고 마치겠습니다. 건강진언 다 아시죠? 옴 난다 난다 나지 나지 펄펄 난다 사바하옴 난다 난다 나지 나지 펄펄 난다 사바하옴 난다 난다 나지 나지 펄펄 난다 사바하 모두 펄펄 나십시오. 오늘 마치겠습니다.
2025-12-19 -
10월 5일 수륙재 4재 회주스님 법문
초하루날 비가 오면은 한 달 내내 비가 온다는데 저번 주에도 비가 오고 이번 주에도 비가 오고. 저는 비를 좋은 뜻으로 생각합니다. 법우, 법의 비라고 생각하고 오늘 여러분들과 이렇게 만나게 돼서 사실은 법문 제목이 뭐예요? [다 맞다 다 좋다 다 옳다] 이 다란 말은 모두 다라는 뜻이에요. 좋다 맞다 옳다란 말은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생각이 달라지거든요. 저는 여기다 한 가지 더 보탰어요. 다 맛있다. 그럼 네 가지죠. 4재 법문에 네 가지로 한 번 이렇게 제가 이제 한번 이렇게 배대해 봤는데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몸의 주인은 마음이지만 마음의 스승은 몸이에요. 그러니까 몸과 마음이 불가분의 관계죠. 떨어질래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몸을 살피고 마음을 살피는 게 수행자의 삶이에요. 살아가면서 어떤 마음을 쓰느냐 어떤 생각을 하느냐 거기에 따라서 지옥도 되고 아귀도 되고 또 부처님도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자성 미타 유심정토라 그래요. 내 몸 자체가 아미타 부처님이에요. 내 주처가 그냥 그대로 정토예요. 그러니까 아미타 부처님 유심정토인데, 더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중생이다 보니까 업력에 살고 부처님은 원력으로 살지만 우리는 업력에 의해서 이렇게 됐거든요. 그렇지만은 여태까지 살아가면서 참 진관사 신도들은 ‘원력 중생이다 원력 부처님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면 여기서 불보살님은 항상 중생에 따라서 상황에 맞게 법을 설한다고 그랬죠. 이걸 수기설법이라 그래요. 근기에 따라서 1학년 법문, 2학년 법문, 3학년 법문 4학년 법문이 달라요. ‘아함’, ‘방등’ 이거는 1학년의 법문이고 보통 또 우리가 ‘법화경’, ‘화엄경’은 4학년의 법문이에요. 그렇지만 1학년 4학년이 나눠지지는 않아요. 8만 4천 법문이 그대로 8만 4천 번뇌를 대체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방편문이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이 우리가 항상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사는 게 가장 중요해요. 시시비비 하는 사람 그 사람이 시시비비하는 자예요. 우리는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 저기 송나라 때 최씨 할머니 삶을 좀 한번 얘기할게요. 서방일로호수행西方一路好修行 서방 한 길은 수행하기 좋은곳이다. 호수행이에요. 서방일로호수행. 그다음에. 상무조령하무갱上無條嶺下無坑 이에요. 위로는 험한 고개도 없고 아래로는 아무 구덩텅이도 없어요. 험한 길이 아니에요. 어디 세계가? 극락세계에 가는 길이 그렇다 얘기예요. 그래서 거시불용착혜말去時不用著鞋襪 갈 때, 극락세계에 갈 때는 꽃신도 필요 없고 버선도 착용하지 않는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각답연화보보생腳踏蓮花步步生 각답腳踏 발로 걸어가지고 연화, 연화로 이렇게 태어나는데 보보생이라 걸음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난다 그래요. 이 최 씨 할머니는요. 동평 양씨의 유모인데요. 동평의 양이 약간 그때 당시에 제후의 왕이었었는데 유모로 있으면서 생활을 어떻게 하냐 채식을 평생 했던 분이고 아파가지고 이렇게 침상에 누워야 되는데 눕지도 않고 염불로서 일관하다 보니까 주위의 사람들이 ‘언제 가겠습니까?’ 하니까 ‘신시(申時)에 간다.’ 그래. 신시는 저녁 무렵이에요. 서방 극락 세계가 저녁 무렵이잖아. 우리가 서쪽이 서방 금(金)이라 해가지고 저녁 시간대예요. 그래서 우리가 장 담글 때도 유시(酉時)에 장 담가요. 그럼 장 맛이 아주 좋거든요. 그렇듯이 신시에 간다라고 했는데 어떤 스님이 와서 이분을 이렇게 화장(火葬)하다 보니까 연꽃이 볼록하게 태어났어요. 그러니까 자기 삶이 죽는 거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제가 그랬잖아요. 잘 살면 잘 돌아가신다. 그래서 우리가 보면은요. 논어에 보면은 인자(仁者)는 불우(不憂)라 그랬어. 어진 사람은 근심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랬어요. 자기가 잘 살면. 저는 진관사 신도들은요, 다 부처님의 원력 소생이라 그래 부처님이라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은데 감히.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처님처럼 항상 그런 마음을 내야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음 잘 쓰는 내용이 선용기심(善用其心)이라는 말이 있어요. 화엄경 정행품에 나오는 얘기인데 참 마음 좋은 사람은 뭐라고 표현하면은 마음결이 곱다. 동네에서 그 사람 참 마음결이 곱다라는 말 들었죠. 그러면은 마음이 좀 못 되면은 소갈머리 없다 그러죠. 마음보가 나쁘면은요. ‘아 저 집에는 가고 싶지도 않다.’ 그렇지만 마음결이 고운 집에는 가고 싶어요. 그냥 우리나라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뭐가 아파요? 배가 아프죠 그럼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데 이건 의학적으로 방법이 없어요. 고칠 방법이 없어요. 의학적으로는. 그럼 이건 어떻게 해야 되겠죠?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마음을 잘 쓰면 되는 거예요. 마음 바꾸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만 이런 마음보 이렇게 하는 게 있는 게 아니라 러시아에도 있는 거예요. 러시아의 한 농부가 이렇게 논을 메고 밖을 가는데 보니까 요술 램프가 딱 이렇게 발견된 거예요. 그럼 이 사람이 농부가 요걸 툭 맞으니까 요새 말하면 정령. 마술사가 딱 나타나가지고 하는 말이 “당신이 지금 제가 소원을 한 가지 들어줄 테니까 제일 필요한 것만 말하라” 그랬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뭐라고 말했는 줄 아세요? “나는 농사짓는 사람인데 뒷집에 소가 너무 싫어서 소가 죽기를 원한다”고 그랬어요. 그럼 우리나라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건 똑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동양이나 서양이나 심보가 나쁜 거는 똑같은 거예요. 우리는 마음을 어떤 마음으로 쓰냐에 따라서 좋은 사람 되고 부처님이 되고 축생, 아귀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십법계가 내 손 안에 들은 거예요. 그래서 수륙재를 지낼 때 진관사 수륙재는 왜 유명한가? 세 가지 의미가 있어요. 첫째는 수륙 도량태조 이성계가요. 세 번이나 거둥하셨어. 일반 사람이 이렇게 방문하는 건 방문이라고 그러지만 임금님이 오시는 건 거둥이라고 표현합니다. 거둥 몇 번 했다 그랬죠? 세 번이나 거둥 하셨어요.그래서 여기는 수륙도량이다. 길지 중에 길지다. 그래서 수륙도량. 두 번째는요. 유교에서는 종로가면은 그게 유네스코에 등재됐는데 뭐라 그러죠? 종묘있죠 유교에서는 종묘가 있지만 불교에서는 水陸社 사자가 사당 사자예요. 요새 말하면 현충원의 역할이에요. 이 양촌집의 조선시대 때에 권근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셨어요. 그래서 태조 이성계가 권근 선생한테 수륙사의 조성기를 지어라 했는데 거기에 보면 다 나와요. 몇 층이냐 하면 3층 59칸으로 지었는데 사치스럽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했어요. 이 수륙 도량이 지금 수륙사의 사당이 있는 그 자리가 현충원 역활하는 자리가 지금은 뭐로 변모하는지 모르시죠? 극락 보전하고 관음전 짓잖아요. 아주 명당이에요. 명당 중에 명당이 거기예요.그래가지고 그래서 수륙사 첫째는 수륙 도량 두 번째죠. 세 번째는 뭐냐 하면은 이 재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수륙 전답이 필요하죠. 수륙전이라는 게 있어요. 그거를 태조 이성계가 진관사에 줬어요. 그래서 저희들은 선유원의 땅도 있고 지금 코끼리 유치원이 있잖아요. 그 땅도 다 나라에서 준 땅이에요. 그러다 보니 세 가지가 갖추어져 있는 사찰이 어디예요? 진관사 수륙 도량이에요. 국행수륙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장소예요. 그런데요. 더 유명한 거는 권근선생님이요. 뭐를 좋아했냐면 진관사의 고수 무침을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맛있다 그것도 다 맛있다. 거기다 넣어봤어요. 우리가 사자성어에 자비무적(慈悲無敵)이라는 게 있죠. 자비희사(慈悲喜捨)라는 말도 있어요. 네 가지 자비희사 사무량심도 있고 자비무적은 적이 없는 거예요. 자비 속에는. 자비와 지혜가 깃들어지면요. 세상 사람들이 다 그 사람들을 우러러보는 거예요. 우리는 항상 좋은 마음 내면서 좋은 생각을 내야 돼요. 수륙연기도 있죠. 수륙연기는 무대의 주인공이 누군지 아세요? 석가모니 부처님이에요. 그다음에 다문제일 25년간 부처님 시자를 살은 아난존자예요. 거기에서 제일 나쁜, 목구멍이 불타가지고 아귀들의 대왕이 면연귀왕이에요. 이 면연귀왕이 가만히 살다 보니까 무슨 생각이 났는지 자비심을 좀 일으킬 생각을 냈어요. 자비의 마음을 끝까지 못됐으면 면연아귀에서 끝났을 텐데 자비로운 마음을 내다보니까 ‘내가 아난 존자에게 밤에 몰래 (찾아가야겠다)’ 귀신들이 발동하는 게 저녁 시간이잖아요. 낮에 와도 되는데 깜짝 놀라게 이제 아난 존자를 찾아간 거예요. 그러니까 아난 존자가 밤에 시커먼 사람이 하나 오니까 깜짝 놀래가지고. 면연귀왕이 “당신은 3일 후에 이제 지옥 아귀에 태어나고 나는 천상에 날것이다.” 라고 이제 예언을 했어. 가만히 생각하니까 겁박을 주니까 누가 무섭겠어요? 아난 존자가 무서워하겠죠. 아난 존자가 무서워하면서 이걸 석가모니 부처님한테 말씀드려야 되겠다니까. 어떻게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하니까 너의 혼자 생각으로는 안 되고 많은 스님들 모임 가운데 십육항하사의 그런 사람들을 갖다가 제도하려면은 이렇게 이렇게 해가지고 제사를 지내야 된다. 설판 제자 무슨 그냥 동참 제자 무슨 제자들이 다 있어야 된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이 면연귀왕이요. 이런 마음을 낸 거는 아귀에 대한 비증보살(悲增菩薩)이야.자비로운 마음을 내서 비증보살이 됐고, 다문제일 아란존자에게 대해서는 지증보살(智增菩薩)이에요. 지증보살과 비증보살을 갖춘 아귀왕이 나중에는 다 이렇게 제도 돼가지고 이게 된 게 수륙연기설화예요. 실제로 이게 맞는 거예요. 제가 맨날 수륙연기 이튿날 “옛날 아란이~” 이렇게 밤에 이렇게 해가지고 또 그 얘기 하잖아요. 연기를 하잖아요. 그 내용이에요. 다른 거 없어요. 마음 잘 쓰고 좋은 생각 나면 비증보살과 지증보살의 마음, 자비와 지혜를 내면은 어떤 것도 다 적이 없는 거예요. 우리가 시시비비하는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지 다른 사람 없어요.그래서 우리가 보통 제가 그래요. 명나라 지욱 스님의 육바라밀 송이 있어요. 그거는 우리가 보시, 지계, 인욕, 정진할 때 어떤 거를 얘기하냐면은 진실하게 염불해가지고 다 같이 합장 한번 해보세요. 진실하게 염불해서 몸과 마음의 세계를 내려놓는 것이 보시에요. 몸과 마음 내려놔요. 집착하지 않는 거예요. 두 번째는 진실하게 염불해서 탐진치 삼독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뭐예요? 지계에요. 임만이 임이 아니라서 다 저기하는 건 임이라는 말 만해 스님 있죠. 우리는 학교 다닐 때요. 포교당 3년 다닐 때, 이광수의 「애인」이라는 시가 있어요. ‘임에게는 아까운 거 없이 보이고 싶은 이 마음 거기서 나는 보시를 배웠노라.’ 나중에 여러분들 인터넷 다 찾아보세요. 「육바라밀 애인」 해가지고 이광수 시가 있어요. 제일 먼저 임에게 아까운 것이 없이 보이고 싶은 그 마음이 보시에요. 쭉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 있는데 저는 뭐 다 이거 얘기할 필요 없고 그냥 보시라는 말 자체가 그 몸과 마음의 세계를 내려놓은 게 그대로 보시에요. 그다음에 세 번째 진실하게 염불해서 남의 시시비비를 보지 않는 것이 인욕이에요. 시시비비 보다보면 맨날 툴툴거리고 맨날 따지잖아요. 따지지 않는 것이 그대로 인욕이고. 그리고 번뇌 망상 일으키지 않는 것이 뭐겠어요? 정진. 번뇌 망상 일으키면 그거는 집착이잖아요. 다. 그런데 일으키지 않는 것이 정진이고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것이 선정이에요.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것. 그다음에 5가지 원만히 성취돼가지고 곁가지에 미혹되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오늘 제가 옆에 법인(法印) 하는 거 보셨죠? 오늘 여러분들한테 법인 하는 거 좀 가르쳐 드리려고 그래.자 다 같이 손 한번 올려보세요. 오른손은 우쪽이라 그러고 왼손은 좌라 그래요. 〈선,진,인,계,시, 지,력,원,방편,혜〉 그럼 무슨 바라밀? 십바라밀 되죠. 그러면 여기서부터 선,진, 인, 계, 시, 지, 력, 원, 방편, 혜. 제가 항상 이거 해요. 이게 뭔 뜻이냐면 여기서부터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이에요. 그래서 선진인계시 지력원방편혜 지와 혜가 끝에 한꺼번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방편, 원방편, 역방편, 아니 역바라밀, 방편바라밀, 혜바라밀, 그래서 십바라밀인데 자 같이 다시 한번 손을 갖다가 우리 금강권 합장 한번 해봅시다. 오른손을 왼손에다 딱 누르세요. 보통 합장할 때 이렇게 합장하죠. 인사 이렇게 하잖아요. 제가 아는 합장 방법이 금강권라 그래 이거 너무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이렇게 오른손을 왼손으로 딱 누르면 금강권이 돼요. 그럼 금강박을 한번 해봅시다. 금강박은 이렇게 하는 거 금강박이라고 그래요. 그다음에 연화합장은 연꽃처럼 이렇게 한번 피게 해보세요. 화의재진언을 할 때 연화합장을 하는데 저는 요 속에다 금강저를 가지고 딱 이렇게 이게 금강저 얘가 금강저가 되는 거예요. 그럼 이렇게 해가지고 딱 이렇게 해서 합장을 해보는 거예요. 이게 화의재진언할 때 하는 합장이에요. 오늘 세 가지 배웠어요. 금강권합장, 금강박 그다음에 연화심합장 내가 심은 연꽃이 피어나듯이 이렇게 하는 거.여러분들은 오늘 법인 다 했어요. 벌써 법인만 잘해도 저는 옛날에 자원율사 스님께서 78년도부터 옆에서 바라지를 했어요. 그 노스님은요. 참 비구 비구니한테 시봉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랬어요. 그런데 그분은 강원도 분이신데 ‘마자말입니다.’ 이렇게 말하셔. ‘말하자면 말입니다’를 ‘마잠은 마입니다.’ 이렇게 목소리가 좀 그러셔. 그래 가지고 저보고 우리 스님이 ‘얘가 강원도 스님인데 빤빤하게 생겨가지고 중 노릇을 잘할지 안 할지 모른다고’ 모르긴 뭘 몰라 제가 다 스님 되려고 왔는데 과거 생부터 부처님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스님이 됐는데 출가를 했는데 그러니까 노스님이 자운율사스님이 말씀하시기를 기도만 열심히 잘하면 장애가 없습니다.그때 저는 느끼기를 ‘열심히 해야 되겠다 뭐든지 열심히 하면 안 되는 게 없다’ 한 가지로 일념으로 하면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법인 일념하든지 아까 왜 다라니 기도를 할 때 열심히 따라 했잖아요. 뭐든지 열심히만 하면 다 끝나는 거예요. 열심히 안 해서 그게 문제지 그 열심히 하다 보니까 제가 바라지를 하게 됐는데 쭉 하다 보니 84년도에 저 운문사 강의하고 있는데 올라오라고 그래가지고 계속 올라왔어요. 율사 스님 때문에 다른 사람은 불편해서 못 한 대요. 계호가 해야 된대. 그래가지고 오니까 저녁 무렵에 스님이 조그마한 스님이 하나 왔는데 거기에 주지 스님이 출가하러 온 거예요. 84년도에 그래가지고 지금까지 이렇게 잘하고 있잖아요. 참 대단하잖아요. 그래서 우리 우리 주지 스님은 갑진 좌 청룡이고 저는 경인 우 백호예요. 갑진 좌청룡은 복을 불러와요. 재물 복 그래가지고 뭐든지 일을 하면 재복이 없으면요. 이게요 안 돼요. 재복이 있어야지 뭐든지 다 잘 되고. 저는 또 민속할 때 집에다가 왜 호랑이 그림 그려놓죠? 장애물을 막아주는 거예요. 그 민속도가. 그래서 우백호가 옆에서 (장애를 막아주고 있는거에요) 처음에요 본부장님이 지금 적묵당 주지스님 사는 곳에 저보고 (제가)그때 주지 살 때인데 이게 주지실이라고 그래서 저는 싫어요. 저 물가 옆 싫습니다. 바닷가가 싫어서 절에 왔는데 무슨... 그러니까 제가 호랑이 띠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고 왜 물가가 싫은지를 몰랐어요. 그럼 범은 뭐를 좋아해요? 산을 좋아하죠. 저는 그래서 진해 보배 진, 바다 해자 있는데 관응노스님이 ‘계호’하고 ‘진해’하고 두 글자를 가져왔어요. 법명을 짓는데 제가 뭐라고 했는 줄 아세요? 바다가 싫어서 저기 절에 왔는데 진해 더 싫다고 진해는 저 진해 바다 아시죠? 저기 저는 진해 싫습니다. 계호에서 영원한 계호 혼자밖에 없어요. 지금도 전무후무하게 제 이름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이게 전생사인가 싶어. 계율을 잘 지키고 학교 다닐 때 규율부 했으니까 하하 지금도 3사 7증하잖아요. 그래서 이제 쭉 하는데 왠지 거기가 싫더라고 그래서 저는 싫습니다. 그럼 어디서 사냐? 저는 여기 우리 스님이 살고 난 뒤에 거기서 살게 됐어요. 그래 잘 지켜주잖아요. 모든 마구니는 제가 다 막아요. 그러니까 좌청룡 우백호가 잘 돌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진관사가 승승장구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너무 행복한 거예요. 저는 부처님이라 생각하잖아요. 진관사 신도들 다 부처님이에요. 그래서 저는 아까 그랬잖아요. 수륙도량에다가 국행수륙재 수륙사가 있고 수륙전이 있고 그래서 이제 이게 이렇게 진관사밖에 없는 데다가 저는 또 세 가지 공덕을 또 말씀드릴게요. 무슨 공덕 첫째 보시 공덕 여러분들이 다 보시에서 이렇게 다 올리잖아요. 그다음에 계행 공덕 수륙재 지낼 때 집에서 다 깨끗하게 하고 오잖아요. 그게 계행 공덕이에요. 그다음에 세 번째가 수행 공덕이에요. 여러분들 다 수행하잖아요. 이게 십바라밀 아까 그 행동에 또 뭐까지 하냐면 무량 공덕이 다 들어가는 거예요. 이 속에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삼업이 청정하게 수륙 도량에 들어와도 뭐가 청정하다 그래요. 삼업이 청정하다 그러잖아요. 수륙 도량에만 들어와도 신구의 삼업이 맑아지고 모든 것이 다 청정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진관사에 왜 좋으냐 세 가지 다른 데서 할 수 없는 걸 여긴 다 갖추어져 있는 데다가 태조 이성계가 세 번이나 거둥하시니까 올해 임금 저기 대통령이 세 분 오셨어요. 이명박 대통령 오셨지 박근혜 대통령 오셨지 마지막에 이재명 대통령 오셔가지고 얼마나 환희롭게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했어요. 그래서 여기가 정말 청정 도량에다가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 있는 곳이구나. 누가 말 안 해도 다 올 수 있는 곳이에요. 여러분들 자긍심을 가지고 항상 좋은 생각 내셔야 돼요. 아까 선용기심이 있었죠. 사돈이 땅을 사면 좋아해야 돼요. 아까 그랬잖아요. 수희찬탄해야 되고 환희해야 되고 제가 그랬잖아요 네 가지 공경. 예배. 찬탄. 공양 거기다 뭐 붙이라 그랬어요 환희라는 말을 붙이면 너무 좋잖아요. 남보기에 아주 환희롭다. 얼마나 신심 나는 얘기예요. 신심이 충만하면 환희로워요. 내가 몸이 가벼워지면 환희로워지는 거예요. 내 몸 우중충충하면은 벌써 다운되잖아요. 우울증 많은 사람들은요. 진관사 와서 자꾸 환희스럽게 기도를 하면 끝나는 거예요. 우울증 낼 필요도 없는 거예요. 제가 아까 그랬잖아요. 어진 사람은 근심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마음속으로 다 진관사 자체가 벌써 도량이에요.옛날에 그랬어요. 도량이 뭐냐? 깨달음이 도량이에요.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是) 원각도량하처(圓覺道場何處)’ 원각 도량이 어디 있냐? 현금생사즉시, 이곳에서 번뇌 망상 일으키는 이 장소가 도량이에요. 깨달음의 장소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지금 여기 수륙 도량이라고 그랬잖아요. 여러분은 수륙도량에 들어와서 삼업이 청정하고 무량 공덕이 생기고 맑아지고 집안가족이 좋아지고 식구 식구라는 게 뭐예요? 한 솥에 같이 밥 먹는 사람이잖아. 우리는 같은 식구예요. 그러니까 출가, 재가 나눌 필요 없어요. 출가자 재가자 한꺼번에 똑같은 거예요. 여러분들도 부처님은 저도 부처님이고 제가 부처님이면 여러분도 부처님이에요. 그러니까 한 식구가 같은 밥 먹잖아요. 그렇죠 스님네라고 특별한 거 안 먹어요. 똑같아 먹어요. 스님네가 금 반찬 안 먹잖아요. 그냥 채식으로 삼소 운동 있죠? 채식, 많이 웃고, 조금 먹고. 그게 삼소 운동이에요. 발우에다가 이렇게 보면은. 장독간에 올라가 보세요. 발우 이렇게 3가지가 있죠? 채식, 조금 먹고, 많이 웃고, 많이 웃으면 소화도 잘 돼요. 맨날 삐죽삐죽한 사람들이 소화가 안 되지. 성질 나쁜 사람이 소화 안 됩니다. 저는 그래요. 마음 좋은 사람이 소화 잘 된다. 음식 먹어서 소화제 먹을 이유가 없는 거예요. 기도하면 소화제가 다 되는 거예요. 소화제 그대로예요. 약이 필요 없는 거예요. 음식 그대로가 약이어야 하고 약이 그대로 음식이어야 돼요. 장에 다섯 가지 공덕이 있는 거 모르시죠? 장에. 장이 무슨 장이냐 하면은 절집에 발효 장이 있잖아요. ①단심 일편 단심 오로지 된장 맛이에요.②항심 변하지 않는 맛③불심 비린내하고 기름기 제거하니까 불심이에요. 그다음에 ④선심 매운 거를 갖다가 부드럽게 해주는 게 선심이에요. 마지막에⑤하심 어떤 음식이라도 조화로워져요. 된장넣으면은. 그래서 몸이 좀 찝찝하고 뭐 하면은 된장국 먹으면 저는 소화가 잘 돼요. 제가 좀 저기 할 때 응선 스님보고 밑에 무슨 된장국 끓였냐니까 아욱 된장국 끓였다. 그래서 좀 가져와라. 또 언젠가는 무슨 된장국이냐 호박 된장국 끓였다. 그래서 아 그거 좀 가져와 보세요. 그래서 먹으니까 좋더라고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된장국 안 먹으면 스님네는 이상하다 그래요. 된장국 안 먹으면 정상이 아니라 그래 . 뭐 다른 거 이상한 거 잡수는 스님네들인가 이렇게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진관사는요. 청정도량이라서 다른 거 먹으면 장애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항상 맑은 곳이어야 돼요. 도량이 청정해야지 삼보천룡강차지(三寶天龍降此地)라고 그랬잖아요. 도량청정무하예(道場淸淨無瑕濊)라고 그랬잖아요. 청정하면 티끌 번뇌도 없는 거예요. 여러분들 그렇게 생각 안 하세요? 이상한 거 잡수고 오시고 싶어요? 그럼 잡수세요. 저는 먹지 말란 말은 안 해요. 적당히 드시고 적당히 하시라는 적당히라는 게 중도라는 얘기예요. 그래서 항상 좋은 생각 내고 좋은 마음 내고 부처님같이 생각하고 아까 그랬잖아요. 좋은 마음 내면은 선용기심 그 마음을 잘 쓰자. 마음결이 곱게 쓰자. 마음결이 안 곱게 쓰면은요. 선용기심이 안 되는 거예요. 악용 기심이지 그죠? 그 마음을 우리가 ‘금강경’의 이생기심이라고 했죠.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고 하듯이 ‘화엄경’에는 저기 아까 선용기심 그 마음을 잘 쓰자 그 마음을 선용 잘 쓰자예요. 선용 그러니까 착한 마음 쓰자 얘기예요. 마음결 곱게 그래서 우리가 생각을 바꾸면은요. 마음도 좋아지고 모든 게 다 좋아지는 거예요. 생각을 안 바꾸니까 그대로 가지고 있으니까 나쁜 마음만 자꾸 생기는 거예요. 시시비비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 시비자예요. 그 말 잘 듣지 말고 시시비비에 아까 지욱 선사의 육바라밀을 하듯이 그 법인을 할 때 십악업 바꾸면 십선업이 되잖아요. 그렇죠 불살생 불투도 하면은, 우리 맨날 ‘천수경’에 뭐 해요? ‘천수경’에 제일 많이 나오는 건 뭐예요? ‘살생중죄 금일참회, 투도중죄 금일참회’ 맨날 참회하잖아요 업장이 소멸되고 참여를 많이 하면 장애가 없는 거예요. 참회를 안 하고 버티고 있으면 장애가 자꾸 일어나요. 그러니까 업장이 두터운 사람은 참회부터 하면서. 이참 사참이 있어요. 이참 사참. 이치로 참여하는 거는 좌선하면서 생각하는 거고 사참은 108배 절하든지 3천배 절라든지 그다음에 천배 절라든지 그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참회도 잘하고 정진도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먹는 것도 청정하게 먹고 그러면은 다 끝난 거예요. 더 볼 것도 없어요. 여러분들이 면접 시험 치러 가잖아요. 제일 먼저 묻는 게 뭔지 아세요? 그 사람 얼굴부터 봐요. 왜냐하면 얼굴 상호가 좋나 안 좋나 벌써 거기서 나타나는 거예요. 좋은 마음 내면 스님들은 다 동글동글하게 잘생겼어. 못생긴 사람 하나도 없어요. 진관사에서 못생긴 사람 봤어요? 기도하면요. 업이 맑아져가지고 어쨌든 단아한 모습이에요. 자꾸 보시하지 않고 탐하는 사람은 얼굴이 탐욕스러워져요. 시커멓고. 그래서 옛날에 개심사 강주 노스님은 명성스님이 개심사 노스님한테 전강을 받았는데 방석을 딱 하나 줬다 그래요. 그게 전강 저기에요. 그런데 인홍스님은 얼굴 시커먼 중 봐라 욕심이 많아가지고 탐심이 많다. 그래서 얼굴 시커먼 걸 안 좋아하셨어. 그런데 요새는 일부러 태운다고 막 태우잖아요. 그건 안 좋은 현상이에요. 그러지 마세요. 생긴 대로 생긴 대로 하세요. 그러면 다 좋아지는 거예요. 억지로 하는 거는 위선이야. 그렇죠. 우리가 선도 그냥 선이 있고 위선이 있어요. 그렇지 아까 선용기심 할 때 좋은 마음 쓰는 거는 있는데 위선으로 하는 거는 거짓 위선이라 거짓으로 한다고 그러나 뭐라 그러나 나는 잘 모르는데. 그래서 우리 마음의 밝은 빛은 법이에요. 우리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것은 도예요. 거리낌이 없다. 그건 도고. 살아가는데 열심히 살고 즐겁게 생활하고 가치 있게 살자. 그냥 그냥 헛되게 살지 말고. 그래서 제가 오늘 여러분들한테 기도문으로 한번 다 같이 합장하면서 낭독하자고. 회장님 기도문 한번 같이 스님네들 몇 명 같이 따라 해보세요. 다 같이 한번 합장하고 다 같이 합장하면서 한번 봅시다. 오늘 제가 살아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제가 이 귀한 인생을 얻었으니 오늘은 화를 내지 않고 어려운 일도 인내하겠습니다. 좋은 말을 쓰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착한 일을 하겠습니다. 오늘도 마음 닦는 수행을 하면서 저의 모든 것을 이 세상에 베풀겠습니다. 이 귀한 오늘을 그렇게 살겠습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제가 여러분들한테 질문 하나 하고 싶은데 혹시 대답해 주실래요? 체코 격언이 있어요. 언젠가 한 번 여러분들한테 한 번 말한 적도 있어요. ‘가을이 우리에게 묻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여름에 무엇을 했냐고’우리 회장님 한번 해보실래요 그 네 다음에? 답을 말씀해 보세요. ‘가을이 우리에게 물을 날이 있으리라 여름에 무엇을 했냐고’ 아주 쉬운 거예요. 저 같으면 그럴 거예요. 여름뿐만 아니라 평생 수행하고 기도했다. 그럼 답이잖아요. 제일 쉬운 답이에요. 저 뒤쪽에 한번 해보실래요 답 한번 해보실래요 그럼 염주 하나 드리려고 했는데 하하하. 저기 어디 보살님 해볼까? 여기 여기는 육법공양 팀이에요. 한번 해보세요. 가을이 우리에게 물을 날이 있으리라 여름에 무엇을 했냐고 (수행하고 기도했습니다ㅎㅎ) 그런데요 똑같은 답은 의미가 없습니다. 좀 달라야지 뭐 하나 드리고 싶은 마음을 내지 자 한번 다시 창일스님 해 볼까요? 한번 해볼래요. 평생 뭘 했냐? 여름에 뭐 했어요? 어산하고 또 화청도 해보고 법고무도 해보고 여러 가지 했죠. 오늘 이리 나오세요. 선물 하나 다 주고 싶지만은 창일 스님이 열심히 기도하고 또 이렇게 해서 오늘 잠깐만요. 부처님에게 오늘 침향 108염주 하나 드릴게요. (짝짝짝) 네 고맙습니다. 항상 고맙다는 생각 내고 좋다는 생각 내고 다 같이 우리 다 같이 합송 한번 해봅시다. 아까 다 맞다 다 또 뭐예요? 다 좋다 다 옳다 다 맛있다. 자 자비경에 보면요. 자 합장 한 번 보세요. 모든 중생이 안락하기를모든 중생이 편안하기를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 기원드립니다. 올해 진관사 수륙재 주제가 광복 80년 온 세상을 비추는 감사의 기도죠. 저희들은요. 감사 기도 맨날 맨날 합니다. 여러분들도 매일 하잖아요. 그래서 항상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내면서 여러분들도 평생 행복하고 편안하고 안락하기를 제가 기원드리고 심축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5-12-19 -
9월 28일 수륙재 3재 영진스님 법문
반갑습니다. 오늘 옛날부터 국가에서 정식으로 행하던 또 왕실과 사대부까지 동원된 국행수륙대재 삼재의 날입니다.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 수륙이라는 것은 돌아가신 영가들을 총칭하는 이야기죠. 대개 무리나 육지에서 살다가 돌아가시니까 그런 분들을 위로하고 전도하고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장 우선돼야 될 건 전도도 자력으로 자력으로 간다면은 더 이상 할 일이 없겠죠. 자력으로 간다는 것은 내가 본래 부처임을 확인해서 부처로서 중생을 교화하는 삶이야말로 완벽한 삶이 되겠습니다. 그러지 못하면은 이제 부처님과 보살님과 큰 스님들의 힘을 빌려서 또 천도가 되는 것이고 또 우리는 그것을 힘을 모아서 함께 봉행해야 되는 것이죠. 제가 6년 전에 스님들 80명하고 티벳 수미산을 갔었는데 거기서 들은 이야기가 좀 인상 깊어서 그 말씀을 먼저 드리면 그 사람들은 모든 게 이제 종교적이에요. 모든 삶이 종교고 일어나면은 이렇게 수미산을 도는 방향으로 이렇게 늘 아침마다 이렇게 돌면서 기도합니다. 기도가 생활화돼 있습니다. 나는 좀 부끄러웠습니다. 그 이들은 염주를 돌리면서도 말을 하는데 나는 말을 하다 보면 염주가 끊어져요. 윤장대도 돌리고 정말 하나에서 열가지 부처님 제자로서 삶을 사는 걸 보았습니다. 힘들게 수미산을 한 바퀴 돌면서도 저 사람들은 나는 그냥 도는데도 호흡이 딸리는데 저 사람들은 바닥에서 엎드려 가지고 간단 말이야. 그래서 우리가 스승 아닌 게 없어요. 곳곳이 다 스승이에요. 눈 떠보면 전부 선지식이라고 그러잖아. 내 눈이 감겨 있으니까 선지식이 없고 부처님의 가피가 없고 그런 것이지 내 눈 뜨면 전부 가피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죽는 것도 스님들은 화장을 해요. 스님들은 화장합니다. 그런데 일반인은 화장을 안 해요. 죄가 없는 사람은 천장을 해 풍장 아시죠? 바위에다 올려놓는 거 그래가지고 다 먹기 좋게 발라가지고 먹도록 해. 그래서 남은 육신마저도 보시를 하는 겁니다. 하나도 안 남깁니다. 그리고 바람을 타고 그 영혼이 빨리 부처님의 세계에 도달하도록 그다음에 이제 다르쵸(경전을 적은 천)라고 다 써 있는 게 부처님 경전이거든요. 죄가 없는 죄가 없는 사람은 천장을 해요. 죄가 있는 사람은 천장 하지 않아요. 그러면 죄가 조금 있는 사람은 수장을 해요. 수장. 그래서 그 사람들은 먹을 게 없어도 물고기를 안 먹어요. 거기다가 물고기 한 마리나 야크 한 마리나 생명이 같은 거예요. 그래서 부득이해서 거기서 먹을 게 없어서 야크를 잡지만 그것은 살생을 위한 게 아니고 생존으로 하는 거죠. 그런데 물고기는 한 마리 먹어봐야 한 사람 배도 안 채우는데 거기에 알이 배어 있다면 몇 억 마리야 그래서 수장을 하기 때문에도 안 먹지만 생명 존중으로 안 먹어요. 죄가 많은 사람은 매장합니다. 우리는 매장이 옛날에는 이렇게 편히 쉬라고 했는데 그 사람 매장하는데 매장을 하되 구멍을 하나 내놓고 팔을 하나 끈으로 묶어서 밖으로 내놔요. 지나가는 사람마다 쉬려고 하면은 흔들어버리는 거예요. 이놈아 쉬지 마라 고통을 당하라. 이게 종교적으로 무장돼 있어요. 그러니까 죄 짓는 것을 아주 이 사람들 내생(來生)의 일로 연결되기 때문에 극도로 삼갑니다. 이런 방법도 있겠구나. 죄 안짓는 방법, 또 선행을 하는 방법이 그렇게 되면은 죽어서 갈 거 걱정 없잖아요. 내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어요. 그러면 그것을 누가 판단하느냐 화장은 당연히 들은 거기 스님들이 판단합니다. 그런데 스님들이 옛날에는 천장사(天葬師)라고 해서 천장을 쥐고 가는 걸 스님들이 했어요. 그런데 이제 스님들이 일이 많으니까 제자들 중에 재가자들 중에 아주 좀 좋은 분을 뽑아서 천장사를 만들어요. 그래서 그분이 사람이 죽으면 죄가 없으면 애기가 어머니 이 태속에서 있는 자세로 웅크린 자세로 시신을 묶어요. 그래가지고 자기 등으로 그 돌아가신 분 등을 대고 이고 가서 천장을 해요. 이 천장사가 직업이 괜찮아요. 돈이 많이 생겨요. 그러면 이 천장사는 무슨 장례를 치러야 되느냐 이 말이에요. 화장은 안 되죠. 스님 아니니까. 그 천장도 못 지내. 좋은 일 했지만 그래도 시신을 니가 발랐지 않느냐 해서 수장을 한 대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섬짓한 거야 이렇게 작은 죄도 이렇게 좋은 일 하면서도 우리는 실수하면서 본인이 합리화하잖아요. 그런데 거기는 그것마저도 용납을 안 해요. 오늘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자력의 힘으로 왕생극락 할 수 있으면 더없이 좋지만 안 되면 불보살님의 가피력, 또 위대하신 스님들의 법문과 이런 수륙재 의식을 통해서 천도할 수 있도록 발원하고 여러분들은 거기서 뒤로 밀어주고 하는 성스러운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제 기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여러분 만약에 사십구재 지낼 때 경을 뭘 읽어요? 금강경, 아미타경, 보현행원품이나 원각경 보안보살장 이런 거 읽잖아요. 전부 이 空사상이 집대성되어있는 그런 말씀들입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의 진리를 그대로 법문을 해 줌으로 해서 그 법문을 영가가 들으면 영가는 육신을 떠났기 때문에 훨씬 식이 맑아 있어요. 우리가 못 보는 부분까지 보고 있다고요. 그래서 어려운 법문도 바로 이해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스님들 모셔다가 경을 읽어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오늘 기도도 이제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금강경을 오늘 한 편 읽어드리는 걸로 또 그걸로 기도를 통해서 천도하는 걸로 할게요. 그런데 금강경은 다 못 읽잖아요. 그래서 제가 간추려서 한 권을 오늘 끝내겠습니다. 금강경에 보면은 부처님이 600부 반야경을 21년간 법문하십니다. 그중에 577권째 단권으로 돼 있는 것이 우리가 지금 주로 접하는 금강반야바라밀경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뭐라고 쓰여 있어요? 如是我聞.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여시아문. 일시불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구 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 乞食於其城中 次第乞已 還至本處이시 세존 식시 착의지발 입사위대성 걸식어기성중 차제걸이 환지본처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반사흘 수의발 세족이 부좌이좌. 이게 제1대목이에요.서론에 해당하는데 나는 이 서론을 놓치면 안 된다고 봐요. 부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인가? 부처님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여러분 생각해 보셨어요? 부처님은 어떤 모습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셨을까?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치셨을까? 그런데 여기에 다 들어 있어요. 여시아문(如是我聞). 이제 아난존자가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뜻으로 자기가 이렇게 시자를 제일 많이 했으니까 다 외우잖아요. 그래서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즉 이 말씀은 내 말씀이 아니고 부처님이 언제 어느 때 이렇게 했다. 다른 종교는 이렇게 육하원칙에 의해서 부처님 생활을 정리한 게 없어요. 부처님은 나이가 2600살이 넘어요. 2569 플러스 80. 부처님 80살까지 사셨어요. 돌아가신 해를 1년으로 친 거예요. 2569 플러스 80이니까 얼마나 많아요. 그때에도 부처님은 육하원칙에 의해서 생활이 정리된 거예요. 여시아문(如是我聞) 하사오니 일시에,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기원정사에 계셨다. 누구와? 1250인 제자와. 아라한 아라한과는 그냥 제자가 아니고 아주 공부가 깊은 아라한과를 증득한 훌륭한 제자가 1250명이었다. 이거예요. 즉 이 1250명은 늘 부처님을 모시고 다녔던 상주 대중입니다. 진관사에 상주대중 이십몇 명 되잖아요. 행사 때는 또 이렇게 저도 오고 다른 분들도 오시고 하잖아요. 상주 대중만 1250명이라는 대단한 겁니다. 이시 세존식시 착의지발(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부처님이 食時 공양 때가 돼요. 딱 사시에 한 번 드시잖아요. 착의지발 하셨다. 착의 가사를 수하고 이 남방에는 이 장삼이 없습니다. 이 가사가 옷입니다. 둘둘 말죠. 착의지발 가사를 수하시고 발우를 들고 입사위대성(入舍衛大城)하셨다. 사위 성에 들어가셨다. 그럼 어디 계시다가? 기원정사인데 기원 정사는 위치상 불교는 수행처를 아란야araṇya라고 그래요. 아란야는 적정처(寂靜處). 청정한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 고요한 곳이라는 이야기입니다. 1250명이 살지만 고요한 곳입니다. 수행하기 때문에. 그런데 1요자(요자나yojana, 유순由旬) 거리에 수행처가 있었다고 그래요. 1요자. 1요자는 옛날에는 숫자 개념이 없고 수리 개념이 없어. 그러니까 소가 음매하면은 이 들리는 마을에서의 거리. 왜 그래야 될까요? 제가 사는 백담사 같으면 굶어 죽습니다. 옛날 같으면 걸식을 해야 되지. 그러니까 마을에서 멀지 않아야 되고 마을 사람들 또 올 수 있는 곳이어야 돼요. 그래서 비산非山 비하非河 여기에 이제 수행처들이 있었던 곳이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진관사는 최적의 장소야. 옛날에는 좀 깊은 산중이었겠지만 지금은 뭐 오고 싶어서 그냥 유명한 분들마다 줄 서 있다고 그래요. 어 저는 진관사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사실은 여기만큼 큰 포교하는 도량도 없다. 우리 회주 스님이 돌아다니기 좋아하셨으면은 음식도 연구 못 하셨을 거야. 그런데 안 다니시잖아. 또 주지 스님은 회주 스님 잘 모시고 이렇게 잘 대중 거느리고 큰 행사하시니까 얼마나 멋져요 . 부처님이 공양 때가 돼서 착의지발(着衣持鉢)하시고 사유성에 가서 걸식을 차제걸이(次第乞已) 하셨다. 차제걸이 차제로. 걸식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부처님이 가섭 존자한테 물었어요. “가섭 자네는 어떻게 걸식을 하는가?”“예 저는 가난한 집만 일곱집을 합니다.” “아난은?”“저는 부잣집만 합니다.” 일곱 집. 일곱 집 이상 하면 안 돼요. “이유를 말해라”그러니까 가섭 존자는 두타 제일이잖아요. “가난한 자들에게 복을 짓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스님들은 복전이잖아요. 그래서 불전도 복전함 이러잖아요. 아난 존자는 가난한 자에게 부담을 안 주기 위해서. 다 뜻은 있는 거야. 그러니까 부처님이 “그러지 말고 빼놓지 말고 일곱 집을 해라. 안 주어도 한 집이다 평등하게 하라” 부처님 참 평등, 굉장한 거예요. 없는 자든 있는 자든 수분 수력으로 복을 짓게 하고.그런데 지금도 남방에서는 걸식하지만 다 받고 끝에 가면 음식을 더는 곳이 있잖아. 많으니까. 시주 하는 분들을 거절할 수 없으니까 제대로 하고 마지막에는 다 덜고 당신이 먹을 만큼만 가져가고 (남은)그 음식은 아주 좋은 곳에 쓰이는 곳이죠. 어려운 곳에 차제걸이하셨다. 그다음에 도량으로 걸식을 하고 거기서 자시는 게 아니고 돌아오셔서 공양을 하시고 발을 씻고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여기까지가 서문이에요. 맨발로 다니셨으니까. 부처님도 걸식을 하셨어요. 그런데 이게 뭐 특별한 일인가? 근데 여러분 특별한 일이 진리는 아니에요 가장 평범한 거 가장 일상적인 것 그러면서도 법답게 법에 하나도 어그러지지 않는 것. 이게 도인 내지는 수행자들이 해야 될 일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제자 마승비구가 위의가 엄정하게 탁발하는 모습을 보고 거기를 뒤따라가서 저분이 저렇게 훌륭한데 스승은 얼마나 훌륭할까 보니까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거든. 그래서 출가한 게 목걸련 제자와 사리불 존자 아닙니까? 이교도였잖아요. 그렇게 여법하게 하는 모습. 자리를 피고 앉았다는 건 뭐예요? 법문하시려고 하는 거예요. 그럼 법문하려고 자리 피고 앉아 있는데 가만히 있으면 되겠어요 청법을 해야 될 거 아니야 그러니까 수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가지고 그 대중의 뜻을 알고 또 부처님 뜻을 알고는 대표로 수보리가 어떻게 해요? 편단우견(偏袒右肩) 가사를 이렇게 했다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잖아요. 그리고 한쪽을 우슬착지(右膝着地) . 한쪽 무릎 우슬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왼쪽 무릎 세우고 합장공경(合掌恭敬) 이백불언而百佛言)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이게 정말 멋진 장면이에요. 이걸 그림으로 한번 생각해 봐요. 그런데 여기다 뭐라고 해 희유하십니다. 부처님이셔 뭐가 희유했어요? 나는 희유하다는 말이 가장 내가 아껴 쓰는 말입니다. 전에도 없고 후회도 없을 일이다. 정말로 희귀한 일이다. 귀한 일이다. 수보리의 존자 안목으로 보니까 부처님의 이런 모습이 성스럽고 성스럽다. 어디에도 없었다. 부처님을 찬탄하는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처럼 되려면 우리 모두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 질문이 금강경을 꿰뚫는 질문입니다. 딱 금강경의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한테 여쭙는 질문 하나입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마음을 발하면, 즉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부처님이 깨치신 그 위대한 법을 저희들도 깨치기 위해서는 어떻게 응운하주(應云何住) 어떻게 마음을 住 머물러야 하며 운하항복기심(云何降伏其心)입니까?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됩니까? 이 질문을 놓치면 안 돼요. 열심히 읽기만 하지 말고. 어떻게 마음을 머물러야 되고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즉 항복이라는 말은 왜 나올까? 우리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찌들어 살아요. 그죠? 아무리 상을 놓았다 해도 안 그래 또 상이 남아 있어요. 나도 이 상 끊는 게 제일 어려워요. 작은 상도 상이거든. 다고 끊을 만큼 끊었는데 참을 만큼 참았는데 더는 못 참아. 이건 끊은 것도 아니고 참은 것도 아니야. 그러잖아. 법에서는 국가의 법에서는 참을 만큼 참다가 하면 정상 참작이 되는데 종교적으로는 그것도 죄야. 이 질문하니까 부처님이 수보리를 찬탄하십니다. 참 선재 선재다. 참 옳고 옳토다. 그래 너 질문 잘했다. 이러면서 쭉 법문하시는데 이렇게 하면 끝이 없으니까 가닥을 치면은 이제 게송으로 말하겠습니다. 게송이 사구게가 몇 개 나와요? 제5분에 가면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존재하는 모든 모양은 범소유상 개시허망이다. 다 허망한 것이다. 영원한 거 있어요? 여러분들도 저보다 연세 더 드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다 젊었을 때 이뻤죠. 젊었죠. 날씬했죠. 그런데 세월이 가니까 안 그래. 나도 일찍 출가해가지고 나보다 후배 스님이 좀 들어왔으면 했어요. 그런데 내 나이 되면 조계종 출가를 못 해요. 늙었다고 안 받아줘요. 그렇게 지났어요. 근데 그것이 눈 깜짝할 사이야. 다 허망한 거예요. 허망하지 않은 건 아무것도 없어요. 모양 지어진 것은 다 허망한 겁니다. 어떤 것도 남아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이야. 만약 볼 것 같으면. 내 안목으로 제상이 비상임을. 모든 모양이 상이 아닌 줄을 제대로 볼 것 같으면 즉견여래다 곧 여래를 볼 것이다. 즉 부처님을 친견할 것이라는 말도 되지만 내가 부처임을 자각할 것이다. 상을 상으로 안 볼 것만 같으면은 그래. 즉 사상(四相)에 집착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런데 우리는 모양으로 따진다. 그러니까 고통이 오는 거예요. 고통은 따지니까 와요. 비교하니까 와요. 나는 늙었는데 너는 젊냐 너는 왜 안 늙냐 너는 왜 재산이 많냐 나는 적은데 이런 비교 때문에 고통이 오는 겁니다. 이것만 없어지면 고통은 사라져요. 죽는 건 안 억울할 걸 다 죽으니까 다만 먼저 죽느냐 뒤에 죽느냐의 문제지. 그 다음에 열 번째 대목에 가면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 나옵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이 아까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에요. 질문에 대한 대답. 그전에 뭐가 나와 색에 머무르지 말고 마음을 내야 마음을 어떻게 머물러야 됩니까 하니까 마음을 어떻게 항복받아야 됩니까 하니까. 색 즉 모양에 머무르지 말고 마음을 내어야 되고, 귀 소리에 머무르지 말고 마음을 내야 된다. 왜 그래? 거친 소리는 거슬리잖아요. 근데 거기에 머무르지 말라니까 거기에 집착하지 말라는 거야. 그 다음에 냄새, 색성향미촉법 여기에 머무르지 말고 마음을 내어야 된다. 그것을 회통치는 말이 응당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써라. 응무소주 이생기심하라. 여기는 이 대목은 우리 선종(禪宗)의 위대한 조사인 육조 혜능 스님이 깨달은 곳입니다. 여기에서 완전히 열려버려요. 마음이 요만큼 미진한 게 있었다면 방아찧다가 이 대목에서 완전히 깨달아요. 그래서 이 금강경은 이 조계 선종의 소의경전이기도 해요.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경전이기도 합니다. 이 대목을 길게 하면 시간이 없어요. 그래 또 넘어가면 상에 머무르지 말라. 점심(點心)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점심. 여기서 또 깨친 분이 한 분 있어요. 금강경 주석서를 이고 젊은 스님이 ‘저 남방의 호남성 강서성 중국의 이 선승들을 혼을 내주리라. 뭐? 삼아승지겁을 닦아도 성불하기 어려운데 마음이 부처라고 내가 이 자들을 혼을 내주리라’ 하고 남행하다가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어느 절 동구 밖에서 떡을 파는 노인네를 만났어. 노파를. 그래서 “노보살님 떡 좀 파세요.” “왜요?” ‘떡을 달라면 주지 왜요?’ “점심하게요.” 그러니까 “스님 그 걸망에 뒤에 맨 게 뭐예요?” “금강경 주석서입니다.” “스님 금강경 좀 아십니까?” “내가 성은 주씨에다가 호가 금강입니다. 금강경을 좌로 우로 거꾸로 다 외웁니다. 궁금한 게 있습니까?” “예 스님 그러면 제가 질문하는 거에 대해서 대답해 주시면 떡을 팔겠거니와 질문(에 대답을) 못하면 떡 안 팝니다.” 아니 무슨 배짱이야 하하. 그때 도망가야 되는데, “물으시오” 눈을 탁 감고 물어, 금강경에 과거심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이 있습니다. 이게 18번째 분에 나와요. “과거의 마음도 가히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는데 스님은 그 어디에다가 점심하려고 합니까? 지금 마음에 점을 찍으려고 합니까?” 이리 물었어요. 점심은요. 요즘은 잘 먹지만 아침 먹고 저녁 먹고 사이에 고구마나 뭐 하나로 이렇게 먹었다는 시늉하는 게 점만 찍는 게 점심이었어요. 그러니까 스님은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 가히 얻을 수 없다고 부처님이 분명히 금강경에 말씀하셨는데 어느 마음에 점심 할 겁니까? 딱 이러니까 꽉 막혀버린 거야. 이 점안법회도 점심의 또 다른 형식이에요.. 마음에 점찍는 게 최고죠. 이심전심 마음 깨치는 게. 그런데 이제 부처님 모시면은 눈에다가 생명력을 불어넣어서 우리의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게 점안 의식이잖아요. 여기에 꼼짝을 못해서 떡도 못 사 먹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다가 정신이 조금 들어가지고, “여기에 고승이 계십니까?” “여기에 고승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 어떤 용담이라는 노장이 계셔 한번 가보시오.” 가가지고 거기 가서 그 스님한테 낮에 들어가고 밤에 나올 때까지 금강경 법문을 들은 거예요. 그리고 “그만 가서 쉬게” 노장님이. 나가니까 너무 어둡거든 밤이 됐어요. “스님 너무 어두워서 신을 못 찾습니다.” 불을 딱 비춰주다가 딱 내려서는 순간 훅 불어 꺼버리잖아. 얄밉잖아요. 그런데요. 여러분 스님들한테 가서 무슨 질문할 때 그냥 대답해봐야 그것은 상식밖에 안 돼요. 여러분이 절실하게 기회가 닿을 때 간절하게 여쭈어야지 그게 깨침으로 오지 그냥 지나가다가 한 번 물어봤어요. 궁금하면 500원 그래봐야 아무 필요 없어요. 금강경을 늘 법문하시다가 ‘그만 가서 쉬게’ 여기까지는 용담 큰스님이 이 사람 담금질 한 거예요. ‘가서 쉬게’ 하는 순간 딱 불어 꺼버리니까 껌껌해져버렸잖아. 그 순간 혜안이 열려버린 거예요. 지혜의 눈이 열렸어요. 이걸 줄탁동시라고 그래. 선지식과 제자 간의 그 줄과 탁이. 줄은 알이 병아리가 알을 품었을 때 ‘엄마 나 나갈까요?’ 하는 어미 닭만 느낄 수 있는 신호가 있대요. 어미 닭만 느끼지 그걸. 그러니까 그때 정확하게 딱 ‘탁’ 쪼아주는 것이 어미 닭이 ‘탁’이고 ‘줄’은 엄마 나갈게요 하는 거예요. ‘줄, 탁’이 동시라는 말은 선지식과 제자 간에 또 기도하는 자와 감흥을 주는 분에 이게 딱 맞아떨어지는 거예요. 기도에 영험이 있다 하지 마시고 그렇게 간극을 맞출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지 영험 없다는 말은 감히 할 말이 아니야. 자기 정성이 부족한 거예요. 기도는 일념으로 하는 거지 무슨 계산이 들어가요? 거기에. 아니 어느 분이 ‘관세음보살’ 열심히 찾다가 오래 전이에요. “나보고 스님 관세음보살보다 영험 있는 분 없어요?” “그래 왜요?” 그러니까 아니 기도가 잘 안 돼요. 그래서 내가 선방 가기 직전이야. “그러면 ‘영진 대사’를 찾아 봐요” 그러고 난 선방에 갔다. 해제하고 가니까 막 웃는 거예요. 스님들이. 왜 그러냐 하니까 어느 보살님이 기도하다가 ‘영진 대사 영진 대사 영진 대사’ 찾다가 어느 날 “영진 대사가 진짜 관세음 보살보다 높아요?” 그러더래요. “그래서 어느 스님이 그래요?”그랬더니 누가 누가 하더라는 거야. 나는 그 보살님이 내 이름을 아는 줄 알았어. 내 법명 아는 줄 알았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어. 기도 제대로 했다. 마음이 부처라고 하는 즉심시불이나 짚신이 부처라고 하는 노파나 똑같단 말이야. 그 경계를 넘어서버리면 기도를.그 전이니까 문제가 되는 거지. 일념으로 하면은 그게 무슨 필요가 있어요? 그러죠. 그 다음에 뒤에 게송으로 가면은 26번째 게송에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가 있어요. 부처님께서 그러셨어. 만약에 모양으로 형상으로서 나를 보려고 하거나 이음성구아 소리로써 나를 구하려고 하는 자는 시인행사도다. 이 사람은 삿된 길을 행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불능 견여래, 능히 여래를 친견할 수 없다. 모양으로 따지면 안 되죠. 모양에 머무르지 말고 마음을 내야 되고, 소리에 머무르지 말고 마음을 내라고 했는데 부처님은 이런 모습이다. 고정된 모습으로 보이려고 하거나 소리만 빽빽 지르고 정성이 안 들어가고 하는데 무슨 영험이 있겠어. 부처님도 챙겨 놓을 수 없을 뿐더러 본래 부처인 자기 자신도 자각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에 맨 마지막에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하라. 일체의 모든 현상은 여몽, 꿈과 같고 환, 환과 같고 포, 물거품 같고 영, 그림자 같다. 이건 실제로 존재하는 거 아니죠? 없죠. 존재하는 거 아니고 그 다음에 잠깐 머무르다 사라지는 거예요. 그 다음에 여로역여전 이슬같고 이슬 햇볕 뜨면 없어지고, 여전, 번갯불 같다. 번쩍하는 순간 사라져요. 응당히 이와 같이 관하라, 그러면 진리를 볼 것이다. 이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모양의 소리에 맛의 촉각에 이런 것에 머물러서 마음을 쓰면은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것은 돌아가신 수륙재의 대상이 되는 분이거나 수륙재를 모시는 우리거나 똑같은, 똑같이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되도록이면 이런 행사를 참여하시면서 정성껏 동참하시면서 이 업을 덜 수 있도록 늘 노력하고 좋은 일도 좀 앞서서 하시고, 그 다음에 좋은 일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수용될 수 있게끔 여러분들이 폭을 좀 넓히셔서 불자다운 그런 모습을 살다 보면은 반드시 부처님의 위신력이 아니더라도 여러분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그런 모습까지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러기 전까지는 날개가 안 날랐으니까 정성껏 기도하시고 수행하시고 동참하시길 바랍니다. 마치겠습니다.
2025-12-19 -
9월 21일 수륙재 2재 종범큰스님 법문
진관사 을사년 수륙무차대회 신심동참의 선망혼령(先亡魂靈)과 생존생령(生存生靈)과 보살행자가 동증불성수명(同證佛性壽命)하고 동왕불찰정토(同往佛刹淨土)를 일심발원(一心發願)하고 일심발원하옵니다. 나무아미타불 안녕하세요. 오늘 법문 주제는 불성삼매 구족수명(佛性三昧 具足壽命) 이런 내용입니다. 제목을 달기를, “보살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한다. 맞죠? 다 맞아요. 맞는데 보살행을 하든 안 하든 진관사 을사년 수륙무차대회에 신심 동참 신심으로 동참한 선망혼령, 일찍이 생명을 다한 혼령들과 현존생령, 현존한 살아있는 영가들과 보살행자가 보살행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증불성수명(同證佛性壽命)하고 불성의 수명을 다 함께 깨닫고 동행 동왕불찰정토(同往佛刹淨土)를 부처님 나라 서방정토, 극락 세계에 함께 가기를 일심발원하고 한마음으로 발원하고 한마음으로 발원합니다. 이런 내용으로 시작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불성삼매에 들면 삼매라고 하는 것은 멈추고 본다. 멈춘다. 본다. 이게 삼매인데 생각을 멈추고 평소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본다. 이게 삼매거든요. 생각을 딱 멈추면 보이는데 그 보이는 것은 생각을 멈추지 않고 볼 때 보지 못하던 것을 본다. 불성을 보면 그게 불성삼매예요. 불성삼매. 불성삼매에 들어가게 되면 무엇이 보이느냐 수명이 목숨 수, 목숨 명 이 수명이 구족해요.이걸 구족 수명이라고 그래요. 구족하다라는 거는 하나도 모자라는 게 없다 그런 뜻이에요.구족 수명, 불성삼매 구족수명. 호흡수명의 인생 일생(一生)이 초엽조로(草葉朝露)요일장춘몽(一場春夢)이나 일체 중생의 불성수명(佛性壽命)은 상수상수(常壽常壽)라 구족수명(具足壽命)이로다나무아미타불 그럼 우리가 생로병사 속에서 느끼는 수명은 호흡 수명이라. 호흡. 수명이 목숨 수 목숨 명 하니까 굉장한 것 같지만 숨 쉬는 게 수명이에요. 이걸 호흡 수명이라고 그래요. 이 숨 못 쉬면 수명이 끝나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사람이 까불거든요. 언제 숨을 못 쉴지 모르는데 그거는 생각하지 않고 딴 생각들만 하는 게 범부의 삶이에요. 호흡 수명은 인생 일생이, 인생의 한 평생이 초엽조로(草葉朝露)요. 풀잎에 아침 이슬이오.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한바탕 노근하게 꾸는 봄꿈과 같은 것이 호흡 수명의 인생 인생이라. 그런데 일체 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는데 일체 중생의 불성 수명은 항상 상 목숨 수 항상 상 목숨 수. 항상 하는 수명이요. 항상 하는 수명이라. 구족수명이로다. 구족이라는 건 하나도 모자라는 게 없는 걸 구족이라고 하거든요. 구족한 수명이로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이 본무일물(本無一物)하나 상자성성(常自惺惺)하니 사사물물(事事物物)을 무시불성(無始佛性)하되 무수물멸(無數物滅)하고 무수물생(無數物生)이로다나무아미타불 그런데 이 수명은 불성수명인데 이 불성수명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이에요. 나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니고.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 참과 그대로 진실 여여 진실하고 여여한 그대로 불성인데 이거 본무일물(本無一物)이라 본래 한 물건도 없어요. 이 불성 안에는 본래 한 물건도 없으나 상자성성(常自惺惺)이라 항상 스스로 밝을 성자가 있는데 마음 심 옆에 별성한 건데 성성이라고 계속 쓰거든요. 이 성성이라는 게 뭐냐 하면 옛날에는 살살하다 이렇게 번역이 돼 살살하다 옛날 어록에 보면 그럼 살살하다라는 게 뭔가 하면 몸에 티끌 하나 없이 마음이 상쾌하다 이런 뜻이에요. 티끌 하나 없이 마음이 상쾌하다. 그런데 이거는 뭔 말이냐면은 신령스럽게 밝고 신령스럽게 밝다 이걸 성성하다 이래요. 아주 신령스럽게 밝아 신령스럽게 밝아 이걸 성성하다. 본무일물이나 본래 한 물건도 없으나 항상 스스로 신령스럽게 밝고 신령스럽게 밝다 이것이 불성이다 이렇게 가르치는 거예요. 유여허공(猶如虛空)에 운전뇌풍(雲電雷風)하고 시시강우(時時降雨)하나 공무시형(空無是形)이면 일락서산(日落西山)하고 일출동방(日出東方)에 상공동화(常空同華)하나 공무암명(空無暗明)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이걸 비유로 말하자면 유여 마치 뭐와 같냐? 허공에는 허공에는 운전뇌풍(雲電雷風)이 있고 구름이 있고 번개가 있고 우레가 있고 바람이 있고 이렇게 있으나, 허공에는 본래 구름도 번개도 우뢰도 바람도 없다. 허공에는 본래 구름이 없어요. 번개가 없어요. 우뢰가 없어 바람이 없어. 그리고 또 시시강우(時時降雨)하나. 때때로 비를 내려. 허공에는 다섯 가지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구름, 번개, 우뢰 또 바람, 비 이런 걸 허공에서 볼 수 있단 말이에요. 운전뇌풍하고 시시강우하나 때때로 비를 내리나 공무시형(空無是形)이라 허공에는 이런 형상이 없다. 허공에 비가 없잖아요. 근데 비가 내려요. 허공에 바람이 없는데 바람이 불어요. 없는데 나타난다. 또 그뿐 아니라 일락서산(日落西山)하고 해가 서산에 지고 일출동방(日出東方)에 또 해가 동방에서 솟아오름에 상공 동화 하나. 허공이 항상 해가 뜨면 온전히 밝아지고 해가 지면 온전히 어두워져요. 그래서 이 허공에는 낮에는 밝고 저녁에는 어두움이 항상 있어요. 그런데 허공은 본래 어떻게 되냐 공무암명(空無暗明)이라 허공에는 본래 어둡고 밝은 것이 없다. 허공은 해가 떴다고 그래서 밝아진 게 아니에요. 그냥 허공이에요. 해가 졌다고 해서 어두워진 게 아니에요. 그냥 허공이에요. 그런데 어두울 때는 온통 어두운 걸로 함께해요. 밝은 허공 따로 있고 어두운 허공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어두울 때는 온전히 어두워지고 밝을 때는 온전히 밝아지는데 밝아졌다고 그래서 허공은 밝은 게 아니고 어두워졌다고 그래서 허공은 어두운 것이 아니다. 이걸 불성에 비유한 거예요. 불성에는 본래 한 물건도 없기 때문에 생로병사가 아무리 왔다 갔다 해도 허공에 비바람이 없는 것처럼 불성에는 생로병사가 없어. 그래서 이 생로병사 없는 불성을 보려면 불성삼매에 들어서 본다. 생로병사를 보는 생각을 멈추고 조용히 오래오래 보고 있으면 구름 속에서 허공을 보듯이 생로병사에서 불성을 본다. 이게 불성삼매예요. 그러면 바람도 일어났다가 금방 사라지고 비도 왔다가 그치고 번개도 일어났다가 사라지지만 허공은 일어났다 사라짐이 없듯이 불성은 항상함을 본다. 구족 수명이 삼매 속에 그대로 나타난다 이거죠. 이게 불성법문이에요. 일체법(一切法)이 무생(無生)하고 역부무유멸(亦復無有滅)하니 약능여시해(若能如是解)하면 사인견여래(斯人見如來)니라 나무아미타불 화엄경, 야마궁중게찬품에 이런 법문이 있는데 일체법은 무생하고 일체법은 생긴 것이 없고 왜 생긴 것이 없느냐 허공에 구름이 일어난 거와 같이 허공에 구름이 일어났어도 일어난 것이 없고 일체 또 역부무유멸(亦復無有滅)이라 또한 다시 사라지는 것도 없다. 허공에 구름이 사라졌어도 허공에는 사라진 것이 없이 일체법은 무생하고 역부무유멸이라 일체법은 무유멸이라 없어지는 것이 없다. 이것이 본무일물하고 상자성성한 불성인데 본래 한 물건도 없고 항상 스스로 신령스럽게 밝고 신령스럽게 밝은 불성인데 이 불성삼매에 딱 들면 멀리 갈 거 없이 바로 이 불성을 보게 된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몽환포영(夢幻泡影)이요 진여불성(眞如佛性)은 적적성성(寂寂惺惺)이여 삼세여래(三世如來)는 상주불성(常住佛性)하야 원각대지(圓覺大智)가 상방광명(常方光明)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생로병사라고 하는 것이 뭐냐 있어도 없는 거와 똑같다. 이 말이에요. 생로병사라고 하는 것은 이 불성에 있어서 있어도 없는 거와 똑같다. 이 운전뇌풍 시시강우가 구름 번개 때때로 비 오는 것이 허공에 있어서 있어도 없는 거와 똑같듯이 생로병사라고 하는 것이 불성에 있어도 없는 거와 똑같다. 그럼 있어도 없는 거와 똑같은 것이 뭐냐 몽환포영이라는 거예요. 꿈 저녁마다 꿈이 있는데 그 꿈 그거 있어도 없는 거와 똑같아요. 어떤 사람은 꿈을 잘 꿨니 못 꿨니 심지어 꿈을 돈 주고 사고 돈 받고 판다는 말도 있는데 그거 다 헛거예요. 꿈은 있어도 없는 거나 똑같은 게 꿈이에요. 또 환 환이라는 건 허수아빈데 허수아비있어도 없는 거나 똑같아요. 물거품 물거품 그게 물이기 때문에 물거품이 있으나 없으나 똑같아요. 똑같이 물이야 또 그림자 그림자 보이나 안 보이나 있어도 없는 거나 똑같아요. 그래서 생로병사는 몽환포영이라 꿈과 같고 허수아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은데 이거를 몰라서 자기 꿈에 자기가 속고 자기 물거품에 자기가 속고 자기 허수아비에 자기가 속는다. 자기가 마음에 드는 허수아비를 하나 딱 만들어 놓고 내가 저거하고 똑같이 됐으면 좋겠다. 이래가지고 지가 만든 허수아비에 그 지가 똑같이 닮아가려고 무진 애를 쓴단 말이여. 이것이 이름에 속고 모양에 속고 고통에 빠진다. 이 이름 모양에 안 속으면 고통이 없어요. 전부 이게 허명 허상에 속아서 헛된 이름, 헛된 모양을 쫓아가다가 무진 고통이 생기는 게 본부의 생활이거든요. 그래서 이 생로병사 허수아비를 보지 말고 불생불멸 진여불성 그 불성을 보면 바로 해탈하고 바로 성불한다. 중생성불이 찰나중이라 이게 부처님 가르침이에요. 그러니까 이 불성삼매에 딱 들면 허수아비 보던 생각을 딱 멈추고 진여불성 보는 지혜 눈을 딱 바로 떠서 숨을 내쉬고 들여쉬는 걸로 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그런 호흡수명에서 불생불멸 진여불성의 부족한 수명으로 돌아가는 거. 그렇게 되면 선망혼령들이 다 극락세계 가고 해탈하고 또 현존생령 일체중생이 다 해탈하고 극락세계에 가고, 지금 도 닦고 있는 보살들이 다 해탈하고 극락세계에 가는데 그런 목적을 이루는 행사가 이게 수륙재예요. 그게 수륙재예요. 딴 게 아니에요. 삼세여래(三世如來)는 상주불성(常住佛性)하야 원각대지(圓覺大智)가 상방광명(常方光明)이로다. 나무아미타불 그러면 이제 보살 경지는 불성 삼매에 딱 들어야 불성이 보이는데, 삼세여래(三世如來)는 성불하신 삼세제불 일체의 여래는 상주불성(常住佛性)이요. 상주불성 항상 불성에 머물러 있어 허수아비를 보질 않아요. 자기 그림자를 보지를 않아 그건 있으나 마나 똑같으니까 참 이게 기가 막히네. 자기 그림자에 속아서 온갖 고생 다 하다가 또 죽어요. 그러다 내세에 또 그 그림자 쫓아서 또 태어나 또 그 그림자 그림자가 보이면 왜 더 잘생기지 그것밖에 안 생겼냐고 하고 그림자가 안 보이면 도대체 지금 어디 있느냐고 자꾸 이 모양을 한단 말이에요. 이거를 미혹범부(迷惑凡夫)라고 그래요. 자기 그림자에 속지 마라. 자기 꿈에 속지 마라. 자기 꿈은 평소 자기 경험으로 나타난 거거든요. 꿈이라는 게 이걸 불교에서 밝힌 거예요. 다른 데서는 못 밝혔는데. 꿈의 실체가 뭐냐 평소 자기 경험이다. 평소에 생각한 걸 보고 평소에 가본 데를 가고 평소에 듣던 거를 듣고 그래요. 그래서 꿈은 자기 경험이다. 이게 이제 여기에 속아가지고 속는 거를 불교에서는 미혹이라고 그래요. 미할 미 미혹할 혹 속는다. 이거는 우리 말이고 한자로 쓸 때는 미혹하다 미혹. 자기 그림자를 자기가 아닌 것으로 속아 그걸 미혹하다 그래요. 그래서 자기 그림자에 놀라고 자기 그림자에 기분 나쁘고 또 자기 그림자를 또 쫓아가고 자기 그림자를 찾고 이 모양을 한단 말이죠. 그런데 여래는 그런 걸 전혀 안 해요. 훤히 다 알아서 그 몽환포령 헛된 것을 아예 안 봐 볼 게 없어. 그림자 보나 마나 안 봐 그래가지고 상주불성이라 항상 한 물건도 없지만 항상 스스로 신령스럽게 밝은 거기에 머물러 있어요. 삼세여래는 상주불성하여 원각대지가 온전히 깨달은 온전한 지혜가 그림자에 속지 않는 걸 원각대지라고 그래요. 눈에 보이는 것도 그림자고 귀에 들리는 것도 그림자인데 거기에 미혹하고 속아서 듣는 대로 쫓아가고 보는 대로 구하다가 구하다 구하다 구할 수가 있나요? 구하는 마음을 채우지 못하고 죽어. 그래서 죽을 때는 평소 욕망을 다 못 채웠기 때문에 한탄과 슬픔뿐이여. 평생 살고 그거 한탄하다 죽는 게 말이 되나요? 그게 이제 불성을 못 봐서 그렇다 이거죠. 그 원각대지가 상방광명이라 항상 광명을 비춘다. 환해. 그래서 앉으면 앉은 대로 불성광명이요. 서면 선대로 불성광명이 누우면 눕는 대로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불성광명이기 때문에 이걸 상방광명이라 상방은 항상 비춘다 이거죠. 항상 불성광명을 비춘다. 이것이 삼세여래다 이 말씀이에요. 이 수륙재 일정표를 보니까 법문 시간이 45분에서 20분까지라고 딱 나와 있더라고. 그래서 그거 내가 꼭 지키지 안 지킬 리가 없지. 그래서 이제 불성 법문은 여기까지만 하고 이제 오늘 여기에 청해서 다 함께 동참한 모든 분들에게 회향법문을 이제 하게 되는데요. 회향일구廻向一句 여시우여시(如是又如是)하야 단일념회광(但一念廻光)하면 무생역무멸(無生亦無滅)하야 수광(壽光)이 상무량(常無量)이로다. 기혹미연(其或未然)이면 서방극락찰(西方極樂刹)에 장엄실구족(莊嚴悉具足)하니 십념즉왕생(十念卽往生)하야 성취대공덕(成就大功德) 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그러하고 그러하다. 불성의 법문이 그러하고 그러하다. 단일념회광(但一念廻光)하면 오직 한 생각이 안으로 돌이키면. 한 생각이 보고 듣는 티끌 경계에서 불성으로 딱 돌이키면 이렇게 생각 보고 듣는 티끌 경계로 나아가던 생각을 불성으로 돌이킨다. 이걸 생각의 빛이라고 그래서 빛 광자를 쓰고 돌이킨다고 그래서 돌이킬 회자를 써요. 회광. 생각을 범부로 있을 때는 계속 찾고 구하고 찾고 구한다고 밖으로만 나갔는데, 이 법문을 듣고 밖으로 구하던 생각을 밖으로 구하던 생각의 빛을 안으로 돌이킨다. 그래서 그 생각의 빛을 돌이킨다고 회광 돌이킬 회 빛 광. 한 생각 딱 돌이키면 삼세여래고 한 생각 흩어지면 육도범부다. 이 간단한 거여야죠. 한 생각 돌이키면 해탈 열반이고, 한 생각 밖으로 흩어지면 생로병사인 거예요. 이게 불교예요. 그래서 단 오직 일념이 회광하면 한 생각이 생각의 빛을 돌이키면 무생역무멸(無生亦無滅)하야. 이 불성에는 생기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어서. 수광(壽光)이 수명과 광명이 상무량(常無量)이로다. 항상 헤아릴 수가 없다. 저 허공의 수명을 저걸 천년이라고 계산할 수 있나 만년이라고 계산할 수 있나 허공 수명 10만 년이라고 계산할 수 있나 계산할 수 없어요. 허공의 수명도 무량수예요. 무량수 한 물건도 없이 항상 신령스러운 불성의 수명은 무량수다. 헤아릴 수 없는 수명이다. 그런데 자기 그림자에 속아서 온갖 고생하다가 눈물 흘리면서 죽고 또 고생하다 눈물 흘리면서 죽고 누가 열심히 살랬나. 참 죽을 때 울다가 죽어 그거 너무 허망하지 않아요. 이게 안으로 행복하지 못해서 그래요.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하고 살았는데 죽을 때 보니까 이거 헛거다. 선생님도 진실을 안 가르쳐주고, 부모도 진실을 안 가르쳐주고 내가 부모 따라서 선생님 따라서 열심히 살았는데 죽을 때 보니까 이상하다 허망하다. 그래서 울면서 죽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의 구족한 수명, 자기의 구족한 행복 이런 것이 충만하면 절대 울면서 안 죽어요. 수명이 충만하고 행복이 충만해서 죽는 사람은 죽음이 아주 좋은 거예요. 그게. 그런데 좋은 걸 좋은 줄 모르고 울면서 죽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렇게 하지 마라고 수륙재 하는 거예요. 오늘 법문은 박수 나올 법문이 아닌데 박수를 다 보내시네요. 서방극락찰(西方極樂刹)에 장엄실구족(莊嚴悉具足)하니 십념즉왕생(十念卽往生)하야 성취대공덕(成就大功德) 하십시오. 이게 하도 이게 절실해서 다시 한 번 읽었네요. 서방극락찰(西方極樂刹) 서방극락세계 찰이라는 건 세계를 말하는데 장엄실구족(莊嚴悉具足)이라 없는 게 없어요. 장엄은 여러 가지 꾸민 건데 없는 게 없이 구족하니 십념즉왕생(十念卽往生)하야. 아미타불 열번만 부르면 바로 간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불러보지도 않고 열번 불러서 정말 가느냐고 의심부터 해요. 한번 해보라고요. 안 가나. 십념으로 아미타불 열번 부르는 걸로 바로 왕생해서 성취대공덕(成就大功德) 하십시오. 대공덕을 이루십시오. 불성공덕 구족수명공덕을 이루십시오. 십념왕생으로 극락세계에 가니까 마지막에는 아미타불 생략하고 마치겠습니다.
2025-12-19 -
9월 14일 수륙재 초재 지형스님 법문
안녕하십니까? 올해도 변함없이 수륙재(水陸齋) 행사를 위해서 밤낮으로 노고를 아끼지 않으시고 또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하신 진관사 회주이신 계호 스님을 비롯해서 이 법해 주지스님과 또 사부대중들께서 다 애쓰신 공력이 너무너무 역력해서 감동이 아주 큽니다. 그리고 또 현장에 와서 직접 보니까 우리가 인터넷이나 이런 걸로 보는 것보다도 훨씬 감명이 크고 또 아까 저기 염불를 해 주신 여기 동희 스님께서는 옛날부터 제가 잘 알고는 있고 또 잘 아는데 그 어장 스님이시고 그런데 연세가 참 많으셔요. 저보다 약간 선배 스님이십니다. 그런데도 너무 정말 역력하시게 잘하시는 모습을 보고 제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너무 좋아서 저절로 신심이 나고 제가 한 10분 20분 전에 와서 저 방에서 있었는데 여기 주지 스님과 차 한잔 마시면서 있었는데 너무 좋아가지고 정말 여기 진관사 신도님들께서는 참 복이 많으시구나. 정말 복이 많으신 분이시구나. 또 해마다 이런 도량에 오시기도 어렵고 저 시골에 사는 분들은 일부러 버스를 대절해도 안 옵니다. 뭐 농사 짓는 데 바쁘고 뭐 하는 데 바쁘고 해서 못 갑니다 이럽니다. 그러는데 여러분들께서는 이렇게 다 오셔서 매년마다 또 매주마다 이렇게 오셔서 다 참석하셔가지고 공양을 올리시고 다 하시는데 그 모습을 보고 굉장히 마음이 환희스러웠습니다. 여러분들은 정말 복 받으십니다. 아까 말씀하신 대로 이제 이 수륙재 법문에 대해서 진리의 숲으로 이끌어주시는 부처님 또 모든 스승님께 감사드린 그런 말씀을 했으면 하고 연락이 왔어요. 근데 이 진관사 수륙재는 조선시대 태조 임금 때부터 시작되어서 600년이 넘지요. 그 전통을 유지하고 이어온 아주 국행 수륙재 도량으로써 정말 명실상부한 이런 도량입니다. 다른 데도 저는 수륙재 몇 번 이렇게 참석을 하면은 이렇게 봐도 이렇게 질서정연하면서 정말 엄숙하고 환희스럽고 이런 거는 감동이 좀 덜 올 때가 많아요. 그런데 여기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정말 좋은 엄숙하면서도 환희롭고 그런 마음이 일어나기 참 어렵거든요. 여러분들께서는 정말 좋은 도량이고 또 명실상부한 그런 진관사 도량입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회주 스님 주지 스님 대중 스님들 감사합니다. 이 수륙재는 천지명양 수륙무차평등대재(天地冥陽 水陸無遮平等大齋) 이렇게 해서 이 말의 줄임말로 그냥 수륙재라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데 정말 이승과 저승, 물과 육지에 있는 모든 삼라만상 중생들의 높고 낮음, 크고 작음 또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베푸는 그러한 법석을 수륙재라고 합니다. 양나라 무제(梁武帝) 시대에 요즘 우주의 모든 중생들을 업장 소멸을 위해서 정말 지공선사라든지 이런 여러 스님들을 모시고 또 그 스님들과 의논을 해서 다 대덕 큰 스님들을 모시고 부처님 법답게 또 어떻게 의식을 만들어서 한번 잘해볼까 이렇게 생각하셨는데서, 그러니까 결국은 무제 임금 때에 이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불교에서 49재, 수륙재 이런 등에 쓰이는 ‘재(齋)’라는 것은 그 산스크리트어로 우포사다(Upavasatha)라는 말에서 유래되었고 또 스님들께 공양 드리는 그런 의식을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불법(佛法)을 우리가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그러한 불교의 의례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을 비롯한 모든 스승님들께 귀의하고 찬탄하며 청하여 공양을 올리고 또 공덕과 무차평등한 그러한 자비를 일으키는 마음으로 아까 산 자 죽은 자 참석한 모든 이들이 복을 얻는 그러한 법식(法式)이라 그랬죠. 그래서 그렇게 해서 베푼 음식과 부처님 법으로 윤회(輪廻)에 시달린 그러한 갈증을 벌이고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그러한 것이죠. 그리고 이 우리가 천지 만물은 다 다 각자 각자 틀리는 그러한 개성을 다 가지고 있지만은 실제로는 천지만물은 결국은 같은 뿌리이기 때문에 동근(同根)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불성(佛性)은 결국은 하나이지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로 우리가 이 밖에 있는 모든 것도 지수화풍입니다. 그러니까 땅과 물과 불과 바람과 이렇지만 우리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몸에 있는 뼈는 지(地)에 해당이 되고 살이라든지, 또 화(火)는 우리 몸속에 흐르는 피, 또 풍(風)은 우리가 움직이는 풍이지. 그래서 우리 지수화풍(地水火風)이 우리 몸에도 다 사대(四大)가 있기 때문에 사대라 이렇게 말하거든요. 이들은 그 사대로 이루어진 몸뚱이의 기가 있다면은 살아있는 자라고 말하지요. 근데 육체만 육체가 없고 그 기가 있다면은 육체는 없는데 기운이 있다 그러면 영가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받은 몸의 형상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지만은 실체는 하나입니다. 불성(佛性)의 화장세계(華藏世界)를 말하는 거죠. 그래서 하나이다 이렇게 하는데 그러나 그 본래 불성 자체는 바로 장엄의 의식이지만은 업식(業識)과 윤회(輪廻)로 나누어서 중생들이 12종류로 자기의 그 업에 의해 가지고 그런 힘이 크기 때문에 불·보살님과 스승님들에게 또 찬탄을 하고 공양을 올리고 예경하고 이러한 공덕을 전부 다 다 지우면은 그들의 원력(願力)에 힘입어서 우리 모두가 고통에서 건져질 수가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공덕이 될 수 있을까요? 대지도론(大智度論)에 보면은 복이라는 것은 보시(布施)와 같은 행위 그 자체는 복은 아니지만 우리가 인색하다 또 탐욕이다 이런 모든 것들을 부수고 착한 그러한 법을 열 수 있는 선(善)의 뿌리이기 때문에 보시가 선의 뿌리이기 때문에 복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우리가 바느질할 때의 원리와 똑같습니다. 바늘질할 때 틀로 박고 바늘로 이렇게 꼬매잖아요. 그래가지고 이런 옷을 만들면은 그렇다고 해서 그 바늘이 이 옷에 붙어 있습니까? 붙어 있지 않습니까? 바늘 붙어 있으면 찔리거든요. 바늘은 빼죠. 바늘은 빼지만은 이렇게 옷은 훌륭하게 만들어져 이렇게 장삼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이렇게 복을 잘 짓는다면은 복은 결국은 훌륭하게 만들어져서 복을 짓는 행위도 그와 같게 이제 말하는 거죠. 그래서 보시의 대상인 그 불보(佛寶)와 승보(僧寶)를 가리켜서 복덕을 키우는 밭이다 이런 뜻으로 우리가 복전(福田)이라고 합니다.그러니까 돈을 주는 행위라든지 뭐를 하는 그 자체는 복이 아니지만은 그걸 뿌리로 해서 그 공덕을 다 받아 입는 거는 사람들이고 중생들이거든요. 그래서 복전이라고 말합니다. 복전이 되어 주십시오. 이렇게 우리가 얘기를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복은 몸과 입과 뜻, 신구의(身口意) 이렇게 말하죠. 세 가지 선한 업(業)으로 지은 그러한 선한 결과입니다. 또 몸으로는 착한 행동을 해서 상대를 향해서 바라지 않는 그러한 선한 마음을 일으키고 또 입으로는 선한 말과 또 입으로는 항상 찬탄을 하죠. 그렇게 하는 것이 결국은 복이 되는 것입니다. 신구의 삼업으로 결국은 복을 짓는 거죠. 우리가 남에게 보시한다 하니까 무슨 저기 많은 돈이나 있고 그런 것만 많이 주는 것이 보시가 아니에요. 마음으로 또 행동으로 남을 돕고 남을 도와주는 것. 제가 어떤 스님이 한 분 계시는데 얼마 전에 엊그저께 갑자기 상좌가 가버렸어요. 근데 그 상자가 연세가 많으신 스님인데 그 상자가 이렇게 아주 잘 시봉을 했는데 갑자기 몸이 약해서 갑자기 가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이 스님이 너무 힘드시는 거예요. 연세도 많으시고 놀래가지고 자꾸 전화를 하시는데 제가 도울 거는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어떡하냐고 그 말씀을 자꾸 들어드리고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그것밖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거든요. 그러니까 마음을 통한 사람은 스님밖에 없어서 내가 전화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셔요. 그러니까 여러분들께서도 남의 아픔을 같이 아프게 여기시고 남의 기쁨을 같이 기쁘게 여기시고 또 이렇게 도량이 환희스러울 때 여기 오셔가지고 마음이 환희롭다. 너무 환희롭다. 너무 좋구나 내가 이런 데 와서 이렇게 법문을 할 수 있구나. 저는 사실 종단에 제가 계단(戒壇)에 가서 여기 계호 스님과 함께 그 계단에 계(戒)를 줍니다. 요즘 수행 비구니로서 우리 이제 비구니 스님들에게 계를 주고 이런 건 하고 다니지만은 또 강의를 하고 스님들에게 이런 건 하지만 다른 절에 가서 법문을 잘 안 해요. 절대 오라고 해도 저는 안 갑니다. 그때 계호 스님께서 3월 달부터 계단에 오셔가지고 달력을 들이대면서 “오늘 날짜를 적어라 오늘밖에 없지 않느냐” 하면서 계속 강조를 하시니까 제가 뭐라고 계호 스님 뜻을 어기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대답을 했는데 저한테 또 남의 절에 와서 이렇게 진관사에 와서 법문한다니까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우리 절 같으면 그냥 제가 노상 하는 거니까 아무렇지도 않은데 제가 다른 데 가서 사실 법문하는 거는 옛날에 몇십 년 전에 저기 조계사입니다. 조계사 가서 한 번 법화경-인가 그때 무엇을 강의를 했고 불교회관에 비구니 회관에 가서 법화경(法華經)을 몇 품을 강의해 달라 그래서 제가 거기 가서 한 번 하고 또 계율(戒律) 강의를 해달라. 그래서 우리가 스님들께서 이렇게 계율 강의 뭐 해라 이런 거는 제 본분이니까 제가 계율 강의는 아주 많이 했습니다.주지 스님께서 저한테 옛날에 몇십 년 전이죠. 계를 받고 강의를 들으셨다 그래 저는 몰랐거든요. 그런데 80몇년도에 제가 범어사에서 들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셔서 그때는 내가 초짜였는데 그때 스님이 오셨었구나 제가 아까 그렇게 생각을 했거든요. 어쨌든 신구의(身口意)로, 그러니까 몸과 입과 뜻으로 선한 말과 찬탄을 하는 것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아쇼카 대왕(阿育王)이라고 인도의 부처님 불멸 후 100년 이후에 나타나신 그 대왕의 얘기가 있어요. 그분의 전생 설화입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이른 아침에 그 시자인 아난 존자와 함께 걸식을 하기 위해서… 그때는 인도에는 다 걸식을 해요. 우리나라는 걸식을 안 합니다. 왜냐하면 기온이라든지 온도라든지 삶의 방식이 인도하고는 완전히 틀리니까 걸식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안 하지만 지금도 라오스라든지 미얀마 또 인도 이런 데는 가면 다 스님들은 걸식을 해요. 하루에 한 끼밖에 또 안 드시고 그렇게 하는데, 부처님께서도 항상 아침에 일찍 일어나셔서 아난 존자와 함께 이렇게 걸식을 하기 위해서 성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길을 가는 도중에 그 어린아이들이 소꿉장난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아이들은 흙을 모아가지고 집도 짓고 창고도 짓고 또 이거는 곡식이다, 다 흙으로 돌려서 이거는 또 보물이다 하고 창고에다 흙을 모아놓고 이렇게 합니다. 그때 ‘사야’라는 이름의 어떤 조그마한 어린아이가 먼 데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발우를 드시고 걸식하러 오시는 모습을 보고 자기 마음에 저절로 어린아이가 무한한 공경심이 생겼고 또 무엇인가 보시하고 싶은 그러한 순수한 마음이 우러났습니다.그래서 그 아이는 창고에서 곡식이라고 불리는 흙을 한 줌 움켜쥐고 부처님께 올리려고 하니까 키가 너무 작아서 안 되니까 친구 어깨를 받쳐달라고 해서 어깨 위에 올라가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요.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발우를 낮추시고 머리를 숙여서 그것을 받아가지고 아난에게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내 방바닥을 발라라, 그 흙으로 발라라” 이렇게 하셨어요.그러니까 걸식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아난 존자는 시자입니다. 그 흙으로 부처님 처소의 방바닥 한 귀퉁이를 발랐어요.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좀 전에 그 아이가 기쁘게 흙을 보시하여 내 방 한 귀퉁이를 발랐다. 그 어린아이는 이 흙 한 줌을 올린 그 공덕으로 나중에 100년 후, 내가 돌아가고 난 뒤에 100년 후에는 아쇼카 왕이 될 것이다.” 하셨고, 실제로 아쇼카 왕이 되었습니다. 즉 역사에도 나오고 경전에도 나오고, 중국 말로는 아육왕(阿育王)이라고 부르거든요. 근데 아쇼카 왕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도에 가면 지금도 탑도 있고 기둥도 있고, 아쇼카 왕이 세운 이런 기둥도 있고 다 볼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인도 다녀오신 분은 보셨을 거예요.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가진 것이 정말 흙일지라도, 비록 흙이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올린 그 공덕이 무량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깨달은 자가 깨달은 자이고 또 이것을 받은 자도 굉장히 깨끗한 순수한 마음의 자이기 때문에 받은 자가 깨달은 자, 또 공양을 올린 자가 지극히 순수한 마음이었기에 바로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그 똑바로 순수한 마음으로 올렸기 때문에 그 공덕이 무량하지요.그래서 무차평등대재인 이 수륙대재(水陸大齋)는 모든 중생을 애민히 여기는 불보살님과 또 스승들과 원력과 지극한 자비, 또 그러한 공양 공덕으로 법계를 두드려서 모든 중생들의 업식(業識) 또 흐름을 멈추게 하고 건지는 것이 바로 수륙대재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곧 물과 육지에서 고통받는 영가의 업식은 물론 산 자들의 모든 대립과 또 반목과 갈등하는 그러한 전도된 흐름을 멈추게 하고 건지는 것입니다. 그 대자대비의 법력으로 이루어진 법식을 바로 수륙대재라고 합니다. 굉장하지요. 모두 한번 합장해 보십시오. 합장. 올해는 마침 광복 80주년이고 또 그것을 맞이해서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치신 호국 영령과 또 순국 선열들과 또 모든 천리명양 어둡고 밝은 그러한 수륙 중생들께 이고득락하시어 또 왕생극락하시기를 발원하옵니다. 제 말씀을 잘 들으소서. 불성(佛性)은 다 같으니라. 업과 고, 여자와 남자, 크고 작음, 높고 낮음으로 갈리었지만 불성은 다 같은 불성입니다. 어찌 이와 같은 형상에 매이리요. 단지 밝음과 어둠, 물과 육지에 있는 업식으로 고에 빠졌으니 불성에는 수륙고가 없는 까닭에 마음의 모든 산란함을 내려놓으시고, 고와 락, 선과 악의 경계를 벗어나시길 간절히 발원합니다. 불성 있는 모든 자들이여, 부처님과 스승의 힘으로 성불하소서. 또한 이 인연 공덕으로 여기에 참여하신 사부대중과 가족들, 그리고 그들의 조상님과 모든 영가들께서는 법을 청문한 공덕으로 두루 편안하고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는 공덕을 누리십시오. 이 자리를 마련한 진관사 도량에 늘 부처님과 성인들의 가피가 두루 함께 하여지이다. 합장 내리십시오. 인도에서 태어나신 고타마, 바로 싯다르타지요. 우리와 그분은 똑같은 인간이셨습니다. 결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그런 신이 아닙니다. 저희들도 이 강원에서 공부하고 할 때에는 부처님은 굉장히 거룩하신 뒤에 앉아 계시고, 계시는 부처님이시고 우리 인간 우리하고는 굉장히 틀린, 아주 훌륭하신, 우리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는 그러한 부처님이시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공부할 때는 그랬는데, 이제 계율(戒律)을 공부하면서 율장(律藏)을 딱 보는데 부처님이 너무 인간적이신 거예요. 너무 인간적이시고 너무 자비하시고 또 너무 고뇌하시고, 그런 인간적인 면을 제가 보게 됐습니다.저도 계율 그러면 아주 딱딱하고 율만 탁 지키면서 “뭐 그런 건 안 돼, 안 돼” 이런 것만 계율인가 저도 이렇게 생각했어요. 젊었을 때는 그랬는데, 율장을 딱 보면서 하루는 느꼈는데 뭐가 나오느냐면 여러 가지가 많지만, 스님들이 잘못하고 막 이러니까 고뇌도 많이 하시고 야단도 많이 치시고, 나중에 계속 보니까 부처님은 너무 잔소리쟁이가 아니신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부처님께서 이제 하루는 항상 걸어 다니면서 보행을 하시면서 하룻밤에 한 군데서 하룻밤만 자지, 두 밤을 자면 안 된다는 그런 것이 나왔어요. 근데 나중에 사리불 존자가 너무 많이 아팠기 때문에 하룻밤만 자고 가다가 그만 더 큰 병이 나서 굉장히 고생을 했거든요. 그걸 아시고는 “아프고 어려울 때는 하루 한 군데에서 두 밤을 자도 좋다” 이런 계율이 또 생겨납니다. 그러는데 부처님께서 이제 하룻밤, 이제 비가 막 오는데… 어제는 비 왔죠. 근데 오늘은 굉장히 날씨가 좋더라고요. 그래서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비가 막 오면서 축축하고 또 대중들 같이 다 옮기면서… 원래 1,250명은 상주 대중이에요. 상주 대중이 부처님을 따라다니는 대중이 1,250명이나 됩니다.그래서 공양을 받아도 한 군데에서만 받을 수가 없으니까 여기서는 누구누구, 여기에서는 어디 어디, 또 배당하는 소임자가 있어요. 그러는데 부처님께서도 이제 어느 곳에 가셔서 하룻밤을 쉬시게 되는데, 비는 막 내리고 또 눅눅하고 안 좋잖아요. 근데 부처님께서는 방에 들어가서 이렇게 이렇게 좋은 진관사 이런 방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정말로 안 돼요. 그래서 그런 눅눅한 데 계시지만은 생각하시면서 이렇게 저기 비는 오고 축축한데 아난 존자는, 아난 존자가 누구십니까? 아니 저기 라훌라 존자, 네 부처님의 아들이지. 라훌라 존자 나이도 아주 어립니다. 그래 라훌라 존자가 어린데 우리 라훌라 존자는 어디에 가서 지금 어느 구석에 가서 이 밤을 지내고 있는가 하고 이렇게 관을 해보시는 거예요.이제 라훌라 존자에게 생각을 두시고 관을 턱 하고 계시니까 라훌라 존자는 이렇게 사미 중에 나이가 조금 많고 큰 사미들은 한 17살 이렇게 먹었는데, 라훌라 존자는 11살 12살 이렇게밖에 안 먹었는데 “너는 이 방에 들어올 수 없고 비좁고 하니까 바깥에서 지내라.” 그러니까 라훌라 존자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화장실 이렇게 집으로 되는, 어름한 우리 옛날 6·25 이후에 시골 화장실 강원도 여러분 가보셨습니까? 그런 데 가면 잘못 밟으면 그 이렇게 통에 그 물통에 잘못 밟으면 나무가 부러져서 빠집니다. 그런 것도 있었어요.그런데 그런 화장실 근처에 비는 막 내리고, 그 집자락에서 물은 뚝뚝 떨어지고 하는데 그 화장실 속에 한쪽에 들어가서 이렇게 이제 밤을 지내고 하려고 있어요. 그런데 부처님께서 딱 관하니까, 라훌라 존자가 그 화장실 근처에 있는데 거기에 뱀이 또 사람 땀 냄새를 맡고 이렇게 기어가지고 라훌라 존자를 물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깜짝 놀래가지고 신통(神通)을 부려서… 신통 부리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제자 목련 존자에게 신통 부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는데 신통을 확 나투어서 순식간에 라훌라 존자에게 가셨어요.가셔가지고 “안에 누구 있느냐?” 하고 물으시니까“라훌라 존자, 네 라훌라입니다.”이러면서 벌벌 떨면서 있으니까 그 뱀이 그냥 다 혀를 날름거리고 그 안으로 들어오려고 해요. 화장실 이렇게 문 사이로… 이렇게 우리나라의 지금 화장실 생각하면 안 된다고 제가 말씀드렸죠. 인도 한번 가보셔요. 지금도 인도 기가 막힙니다.그러니까 화장실에 그냥 뱀이 들어오니까 라훌라를 얼른 들어서 안고 부처님 거처로 오셔가지고 부처님이 방에 데리고 하룻밤을 주무셨어요. 주무시고 그 이튿날 제자들에게 막 꾸짖습니다.“라훌라가 누구더냐? 바로 내 아들이 아니더냐? 그런데 어떻게 나이 어린 사미(沙彌)라고 이렇게 잠잘 곳도 없는데 내치고 그 밤에 비 오는 밤에 이렇게 밖에다 두느냐?”그래서 부득이할 때는 비구(比丘) 스님이지만 사미도 하룻밤 데리고 잘 수 있다 그러한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잘 곳이 없을 때는 사미도 하룻밤은 데리고 자거라 이런 법이 만들어졌다 이 말이죠. 제가 그걸 보면서 아주 정말 부처님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부처님이 이렇게 인간적이시구나.’ 그리고 우리가 대중들하고 살면서 속이 굉장히 상할 때가 있죠. 속상하고 굉장히 안 좋을 때, ‘부처님은 어떻게 이럴 때 무슨 생각을 하시고 어떤 생각을 하시고 이렇게 하셨을까’ 제가 이제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그래서 여러분들께서 부처님에게 지극 정성, 정말 내 마음을 다 오롯이 하고 공부하고 잘하면은 이 세상에 안 되는 게 한 가지도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도 금방 성취한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지극정성하면 저절로 다 천천히 이루어집니다. 그게 명현가피(冥顯加被)라 그러거든요. 그래서 무슨 금방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지길 바라는 거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진일한 마음으로 오롯한 마음으로 똑바르게 사시면은 다 이루어집니다. 어쨌든 제가 이거는 원래 하려고 안 했는데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들은 오늘 여기에 있으시면서 그 모습 그대로 제가 이제 부처님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근데 그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살고 계십니까? 삽니까?” 하고 물으면은 대부분 사람들은 “나는 돈 벌기 위해서 살지요.” 또 “명예를 위해서, 또 자녀를 위해서, 또 아내를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산다.”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도 많은데 각자가 다 자기 좋아하는 것을 골라서 “나는 누구를 무엇을 위해서 산다.”고 대답을 합니다.그렇지만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한 방편이지요. 방편(方便)이지 무슨 수단이나 그런 것이지 목적은 될 수 없거든요. 그러니까 하지만 결국 다 알고 본다면은 누구를 위해서 산다 하지만은 인생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결국 사는 겁니다. 그래서 자녀를 사랑하거나 무슨 명예를 존중한다거나 또 철학을 좋아하고 예술을 즐기고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자기 자신을 복되게 하고 또 지혜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그렇지만 그 자기의 근본인 본연의 자세를 깨닫지 못하고 돈이나 명예나 사랑이나 이런 어떤 것이든 거기에 노예가 되면 안 되지요. 그래서 결코 근원적인 나의 행복은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없기 때문에 왜냐, 가슴 한 구석이 어디엔가는 여전히 허전하고 또 외롭고 때때로 두려운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근본 진리에서 근원에서 또 본질에서 벗어나 있기에 그런 것입니다.그러면은 불교에서는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또 어떻게 살려고 하는가.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깨닫고 중생을 구하는 것이 불교의 근본 목적입니다. 아주 한마디로 쉽게, 상구보리(上求菩提)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하라 이런 말씀이죠. 그래서 상구보리 하화중생, 이 바퀴 두 바퀴를 굴려가면서 우리가 열반(涅槃), 곧 깨달음을 향해서 걸어갑니다. 그것이 바로 불교에서 바라보는 인생의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상구보리 하화중생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결국은 불교는 배우는 데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죠. 우리가 아무리 경전을 잘 본다 하더라도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 이익이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법회에서도 여러분들께서 법문을 듣고 집에 돌아가셔서 다 잊어버리고 막 화를 내시면서 부부 싸움을 한다든지 아이들한테 너무 지나치게 꾸짖는다든지 그러면 별로 공덕이 없어져 버려요.그래서 내 안에 잠자고 있는 부처의 싹이 바로 싹이 트고 어둠이 서서히 다 물러가면서 환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무량광(無量光)·무량수(無量壽) 아미타불(阿彌陀佛) 부처로 여기 이곳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주지 스님 방에 아까 들렸는데 “여러분이 바로 부처님이십니다.” 그 말귀가 딱 마음에 와닿거든요. 여러분의 순수한 본연의 마음은 특별한 게 없어요. 여러분이나 나나 누구나 본래의 마음은 아무런 특별한 감정도 없고 기쁨도 없고 나쁨도 없습니다. 그 순수한 마음이 바로 부처다 이 말이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렇게 본다면은 바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가 그대로 불국토(佛國土)가 되고 극락세계(極樂世界)가 되는 것입니다. 극락이라는 것은 꼭 저 멀리 있는 서방정토(西方淨土), 거기에만 있고 여기에서 없는 것이 아니죠. 내 마음이 편안하고 모든 그러한 고뇌를 여이면은 그것이 바로 극락이기 때문에 절에 가면 스님들이 항상 “웃어라, 꽃처럼 살아보라.” 이렇게 말을 하시지요. 그러면은 여러분들이 법문을 듣고 “나도 남편이 아무리 나에게 성질을 부리고 좀 안 좋게 하더라도 나도 웃자, 한번 꽃처럼 내가 웃어봐야지.” 하면서 선한 마음으로 자꾸 노력을 합니다. 그러면은 남편께서 “뭐 저 사람이 잘못 먹었나, 왜 저렇게 저렇게 웃을까.” 그래도 나는 꽃이야, 이렇게 생각하면서 절에 가니까 꽃이다, 부처다 하니까 그런 마음으로 환하게 웃고 또 물러서지 않는 마음으로 이렇게 노력하고 또 노력하셔야 되는데, 왜 원래 나는 부처니까 그게 바로 불자의 태도라 이 말이죠. 그래서 어느 날 이제 절에 오니까 우리가 진짜 빛이요 꽃이요 부처로서 본래 모습대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무엇이냐, 여러분들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니까 아무리 돈 많이 번다고 하고 아무리 좋은 넓은 아파트에 산다 해도 내 마음이 불편하면은 아무 이득이 없다 이 말이죠. 그래서 본래 내 모습대로 부처로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우리 장부의 모습이고 본연의 모습이라고 하는데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그 유명한 시인인 저기 백거이(白居易), 백낙천(白樂天)이라는 분이 계셨어요. 여러분도 백거이 백낙천 하면 다 아시잖아요. 너무너무 좋아서 달 건지다가 물에 빠져버리셨잖아요. 그 백낙천이라는 시인이 그 시가 참 좋은 시가 많습니다.그래서 이제 그분이 항주·소주에 아주 자사, 요즘 같으면 사또예요. 사또가 되셔가지고 갔는데 이 근처에 유명한 스님이 안 계시냐 하니까 “여기 복림사라는 곳이 있는데 유명한 스님이신 조과(鳥窠)라는 스님이 계십니다. 그 조과라는 스님은 작소도림선사(鵲巢道林禪師)예요. 그래서 얼마나 소나무 위에 올라가서 이렇게 공부를 하고 계시는데, 움직이지 않고 이 화두만 들고 딱 공부하시니까 새가 머리가 길어도 긴 줄 모르고 계시니까 그 새가 소나무인 줄 알고 거기에다 새 집을 지었대요. 그래서 작소도림선사라고 부르거든요. 근데 그분이 아주 유명하십니다.”그렇게 말을 하니까 “그럼 거기에 한번 가자, 가가지고 스님을 이제 뵙자.” 그래서 딱 가가지고 이제 여러 일화가 많지만은 다 말하면은 제가 법문하는 게 30분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많이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가셔서 딱 절을 하시면서 “어떤 것이 불법입니까? 불법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어요. 그러니까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라 이랬어요.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은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한 일만 하고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은 그것이 바로 불교다 이 말입니다. 제악막작, 악을 짓지 말고, 이 말이거든요. 착한 일만 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라. 그러니까 막 백낙천 자사가 막 하하거리고 웃었어요. 웃으면서 “스님, 그거는 세 살 먹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 아닙니까? 누구든지 착한 일하고 나쁜 마음 쓰지 말라고 하잖아요. 그건 다 아는 건데 뭐 그것이 불법이라고 합니까?” 그렇게 대답을 했어요.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작소도림선사께서 “무슨 소리냐. 3살 먹은 삼척동자도 다 알지만 80 먹은 노인도 실천하기는 어렵다, 행하기는 어렵다.” 이 말이죠. 그래서 지금 얼마나 시끄럽습니까? 우리 승가와 뭐 또 다 마음 잘못 쓴 사람 많은 데는 정치도 마찬가지고 시끌시끌하죠. 그래서 시끄러운 겁니다. 그래서 그 80 먹은 노인도 실천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조과 선사께서 답하셨습니다.그래서 이 불법(佛法)은 결국은 행하는 데에서, 실천하는 데에서 지혜가 생기고 힘이 생깁니다. 그러나 불교는 행하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진리를 알고 실천해야만 내 인생이 정립이 되고 또 우주관도 확립이 됩니다. 그래서 나는 왜 이렇게 여기 있고, 또 여기 있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무엇을 명확하게 내가 잘 해야 할 것인가, 그런 분들을 여러분들이 확실하게 알고 항상 어느 곳에 처해도 자기 마음에 준비가 필요합니다. 근데 그렇게 하려고 하면 그 준비가 무엇인가, 결국은 나를 버리는 일입니다. 내 자신을 나를 버리지 않으면은요, 정말 일들이 복잡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여러분 세속에 사시는 일들도 많이 복잡하지만은 저희들 절에서도 그래요. 이렇게 많은 스님들이 지금 여기 진관사 대중들이 다 사는데 마음을 잘 쓰면은 오늘같이 얼마나 환희스럽습니까? 아까 봉청 막 하시고 했잖아요. 염불, 그 환희스러운 마음에 막 제 마음이 이렇게 막 뜨면서 울렁울렁하더라고요. 그러는데 그런 거 하면서도 만약 밥을 먹고 지금 나가서 공양을 하고 하는데 누가 “스님 이것 좀 주세요” 이러면 괜찮은데, 막 바쁘고 힘들다고 “스님 이것 좀 갖고 와요” 이러면 금방 화가 푹 납니다. 납니까, 안 납니까? 아니 좋게 불러도 되는데 왜 나한테 빽 하는가, 그냥 화가 싹 올라오는 거, 그 아까 좋았던 환희로운 마음 싹 없어져버려요. 왜? 나를 버리지 않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 말 들어도 조금 기분이 나쁘죠. 내가 있으니까, 내라는 생각이 딱 있잖아요. 저도 그렇더라고요. 기분이 나쁜데 딱 참자, 조금만 참으면은 상대도 그렇게 해줘도 금방 또 화가 안 나고 누그러지니까 조금만 괜찮더라고요. 근데 참지 않고 빽쭉하면서 “왜 소리 질러” 이러려고 막 싸우게 되는 거예요.그래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 하면은 결국은 무아(無我) 무아죠. 우리가 나를 내세우고 있으면은 바람이 확 불어와서 나에게 탁 부딪힙니다. 그래서 나는 바람 맞은 사람이 돼요. 그러는데 내가 없다면은 그냥 허공 따라 흘러가고 바람소리 따라 흘러가고 하니까 흥겨운 노랫소리가 절로 나오게 되죠. 그래서 불교에서는 무아를 강조합니다. 무아, 무아. 나를 없애라, 내가 없다, 나라고 고집할 것이 없다 이 말이죠. “왜 내가 없어? 나는 김 아무개 분명히 내가 있는데 왜 없지?” 이렇게 묻는다면은 그건 당연하죠. 그런데 이 무아라는 것은 결국은 고정된 실체가 없어요. 내가 없다라는 뜻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연기(緣起)된 존재입니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그렇게 이름만 붙였을 뿐이지 그게 영원하지는 절대 않거든요.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보살님들도 “나는 누구이고, 나는 누구의 아내이고, 나는 누구의 딸이고, 누구의 제자이고” 뭐 하다 보면 자기 조건과 관계 속에서 계속 변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고정된 실체는 없는데, 이것은 바로 내가 아니라, 나라 하는 나의 것이 아니다. 나의 나는 결국은 자아가 없다. 이 모든 것들을 내가 아니면은 도대체 어떤 것을 나라고 할 수 있는가. 그래서 옛 스승들께서 이제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부처님 제자가 다 우리 스승이지요. 스승들께서 “나는 누구인가?” 이것을 찾기 위해서 결국은 요즘은 명상이라고 많이 합니다. 근데 우리는 화두(話頭)라 그래요. 저희들은 화두 시대에 살아서 “내가 누구인가” 그걸 이제 공부를 하는 거죠. 그래서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 本來面目)은 무엇이냐?” 이렇게 물어요. 부모님이 나를 낳기 전에 나의 본래 면목은 무엇인가, 부모에게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나의 본래 면목, 나의 진짜 모습은 나의 나라는 사람은 누구였던가, 무엇인가. 그거를 참 정말 고민되는 일입니다. 계속 이 무엇인가, 이것을 부여잡고 궁구하고 찾고 또 궁구합니다.그래서 불자라면 적어도 “오늘은 무엇을 입을까, 어떤 주식에 내가 투자를 해야 되나” 이런 것보다도 결국은 단 10분만, 단 5분만이라도 마음을 비우고 차분히 앉아서 “나는 누구인가, 이 누구인가” 이렇게 찾아야 됩니다. 이와 관련돼서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선가귀감(禪家龜鑑)의 첫 구절을 보면은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하니, 종본이래(從本以來)로 소소영령(昭昭靈靈)하야부증생부증멸(不曾生不曾滅) 명부득상부득(名不得狀不得)이라.” 이랬거든요. 그게 무슨 말씀이냐면은, 여기에 한 물건, 일물이라 그러죠. 한 물건이 있으니 본래부터 밝고 밝고 신령스러워서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이름도 붙일 수 없고 모양으로 나타낼 수도 없다. 이 글이요, 굉장히 쉬운 것 같은데 굉장히 아주 기막힌 글입니다. 나에게 한 물건이 있다. 이 물건, 그 물건이 바로 내 마음이거든요. 한 물건, 그 일물을 지금 얘기하는데, 그것은 우리 모두가, 여러분들께서 다 갖고 있는 아주 신령스럽고 신령스러운 존재입니다. 그거를 바로 일물(一物)이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그 근본 본원에서 딱 살펴보면은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또 생사(生死)는 그저 일시적인 나의 모양일 뿐이지 정말 하나로 이름 지어서 말할 수도 없고 어떤 모양으로 나타낼 수도 없다. 우리 모두는 근본 자리에서 그만큼 아주 소소영령(昭昭靈靈)한 그놈이다. 그게 한 물건(一物)이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이 한 물건이 아까 제가 꽥 부르면 아까 염불하고 이럴 때는 굉장히 좋은 마음이었는데 누가 빽 부르면 소리 빽 내고 화가 나잖아요. 그것도 일물(一物)입니다.그리고 이제 가만히 무심하게 앉아 있는데 갑자기 누가 탁 때리면 깜짝 놀라고 이렇게 하거든요. 그것도 일물(一物)입니다. 또 어떤 스님이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하셨어요. 공부를 열심히 탁 하셨는데, 갑자기 문 참 좋잖아요. 그문의 손을 이렇게 대고 바람이 살살 불어왔는데 “이놈은 무엇인가, 도대체 내가 누구인가” 딱 공부를 했는데 갑자기 문이 착 바람이 부니까 닫히면서 내 손가락을 탁 때린 거예요. 그러니까 손가락이 얼마나 아픕니까? 그냥 “아이고 아야” 이 정도만 했으면 좋았는데, 아야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화가 벌컥 났어요. 그 화를 내니까 그 자리에서 금방 뱀으로 변해가지고 탁 떨어졌다 그래요. 그러니까 얼마큼 우리가 한 번 성을 내고 한 번 마음을 잘못 쓰느냐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그 일물(一物)이 굉장히 아까 참 좋잖아요. 소소영령하고 내가 아는 놈이니까.나는 정말 어린애들 보면은 굉장히 좋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어린애가요, 기차를 딱 탔는데 엄마 이렇게 안겨가지고 뒤를 딱 보고 있는 거예요. 엄마는 못 보죠. 아기를 안고 있으니까. 근데 아기는 뒤로, 우리 스님네가 앉아 있으니까 너무 특이합니다. 그래가지고 들여다보고 우리를 쳐다봐요. 내가 손을 이렇게 이렇게 했더니 또 관심이 가는 거예요. 그래서 좋아가지고 또 이렇게 딱 숨었다가 다시 고개를 내면서 또 이렇게 쳐다봅니다. 그 아는 그 마음, 그래 좋아가지고 우리가 이렇게 하고 하니까 좋아가지고 생긋생긋 웃고. 그 마음이 굉장히 정말 순수하고 아는 그 마음이죠.그래서 근데 그 어린애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다 갖고 있죠. 그래서 그 마음을 제가 찾는 것이 우리의 불교의 본 목적이다 이거죠. 그래서 이 마음이라는 것은 언어로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누구인가” 하고 굉장히 궁구를 하셔야 되겠죠.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의 스승이신 고타마 싯타르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그러한 내용이 결국은 “나는 누구인가”를 마음으로 깨달으시면서, 다 그 중생의 마음이 결국은 이 마음을 내가 잘 쓰고 곧게 잘 쓰면은 정말 이 마음이 깨끗하고 내 본래의 마음이 이렇게 소소영령(昭昭靈靈)하고 정말 똑똑한 이러한 내 마음 자체구나, 이걸 깨달음을 얻으셨어요.그래서 그때부터 이제 조사(祖師) 스님들께서도 계속 그걸 받아가지고 이어오시면서 공부하고 공부하고 해서 깨달으신 내용이 결국은 “나는 환한 우리 자신이 바로 부처요 환한 광명이다”라는 사실을 확연히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 역대 조사님들께서도 열심히 공부하셔서 깨달으신 내용도 이런 거죠. 그래서 인생을 아주 당당하고 또 아주 거침없게, 여러분들이 밝게 살아라. 그래서 행복하고 행복하라. 이것이 바로 스승에서 우리에게 또 간곡하게 전해주신 말씀인데, 그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중국으로부터 전해오고 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오늘 여기까지 전해진 데에는 많은 스승들께서 그 의지적인 윤리를 지니고 또 대승적인 그러한 선행(善行)과 계율(戒律)로써 악을 그치고 선을 닦는 대로 지향하게 하셨습니다.그래서 피나는 노력이, 우리 선배 스님들 아주 훌륭한 스승님들께서 피나는 그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불교가 이렇게 꽃을 피우고 진관사에서 아주 장엄스럽게, 이렇게 화려하게 그러면서도 정중하고 엄하게 잘 꽃을 피우고, 여러분들이 많은 기쁜 마음으로 오늘 여기에 오셨습니다. 이런 것들이 하루 이틀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스승님들께 감사하다 이런 얘기죠. 이런 것에 대한 고마움을 우리 불자님들은 잊지 마시고, 그 고마움으로 오늘 하루하루를 아주 당당하게 사시고 매일매일 이 순간을 소중하게 보내셔야 됩니다. 결코 어둠의 무기력이라든지 또 우울이 우리를 점령해서 내 마음을 옭아매게 그렇게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이죠. 바로 여러분께서는 환한 광명, 소소히 영령한 햇살 같은 그러한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부처님이시다, 이 말이죠. 그동안 법문 들으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모두 다 행복하십시오.
2025-12-10 -
9월 7일 수륙재 입재 혜국큰스님 법문
지심발원 대자대비이신 불보살이 이 진관사에 내려오셔서 오늘 청해 모이신 모든 수륙재 운집 영가와 광복 80주년을 맞아 이 나라 광복을 위해 생명을 초개처럼 버린 모든 독립군 영령들과 이 나라를 위하여 목숨 바친 호국영령들을 위하여 증명하여 주옵소서. 진관사에서 해마다 수륙재를 지내는 이 공덕으로 금년에는 독립군 영령들과 호국영령들 부디부디 모든 의변(依邊)은 소멸하고 보리심은 분발하여 왕생극락하여지다. 나무아미타불. 해마다 수륙재를 위해 가지고 특히나 해마다, 올해는 우리나라 광복을 위해 가지고 온 가정과 자기 생명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독립을 위해서 평생 살다가 돌아가신 우리 독립군, 이름 없이 돌아가신 모든 호국영령들을 이렇게 모셔놓고 수륙재를 지내드린다는 거는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돌아가시는 영령들에게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러한 모든 영령들을 위해서 해마다 이러한 수륙재 법회를 봉행하는 회주 스님의 큰 원력과 주지 스님의 원력, 그리고 대중 스님들이 그러한 마음에 정말 마음으로부터 고마움을 드립니다. 신도님들도 사실은 이것은 나라에서 해야 할 일이고 온 국민이 해야 할 일인데 그 어른들이 없었다면 이 나라 광복을 위해서 이 나라 해방을 위해서 그러한 독립 투사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나라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 세계 어디 내놔도 부끄러움 없는 나라가 된 것은, 그리고 우리가 지금만큼 잘 살 수 있고 이런 나라를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은 그 독립군 한 분 한 분 그분들 발자국 때문이었고 그분들 그 피나는 고생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분들이 고마움을 모르고 그분들의 삶을 돌아보지 못하고 사는 삶이 저 자신부터 어쩌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인데 그러한 모든 분들을 대신해서 이 나라와 백성들을 대신해서 해마다 이러한 수륙재를 모시고 이런 정성을 다해 주시는 진관사 대중들께 정말 다시 한 번 고마움을 드리면서 그러면 오늘 수륙재에 오신 모든 영령들이요 이러한 정성이 한낱 헛되지 않도록 여기 모인 모든 신도들이 정성을 다하여 호국영령들을 청해 모시고 이렇게 수륙재를 모시는 이 정성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 오늘은 나하고 같이 회주 스님, 주지 스님, 모든 스님들을 다 같이 원력을 모아서 호국 영령 독립군 영령들께 큰 스승께 한번 모시고 가고 싶은 생각입니다. 그 스승은 벽을 허물어버렸기 때문에 한 허공이 된 분입니다. 한 허공이 된 분. 여러분들은 그분이 바로 이 자리에 있다고만 하면은 믿지를 않습니다. 안 믿어요? 하나 물어봅시다. 지금 진관사 앞에 맑은 공기 맑은 바람이 이렇게 지나가는데 바람이 보입니까? 안 보이죠. 산소 공기, 수소 공기 진관사는 워낙 산세도 좋지만 스님들이 워낙 잘 사시는 그 공기가 더해서 공기가 워낙 좋은데 그 공기가 보입니까? 그러면 공기도 볼 줄 모르고 바람이 지나가는 것도 볼 줄 모르는 눈을 너무 믿지 말자는 얘기야. 그러면 그 스승이 벽을 허물어버린 분은 공성(空性) 연기(緣起)라 그러한 깨달은 분에게는 허공이 없습니다. 허공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예요. 즉 온통 청정이기 때문에 너와 내가 없는 불성(佛性)으로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어서 그분을 떠억 찾아뵙고 가서 그런데 우리가 떠억 호국 영령들이랑 여러분들을 모시고 가봤더니 다른 스님께서 먼저 가서 우리를 대신해서 질문을 한다 이 말입니다. 대주(혜해)스님께 호국영령들이여 오늘 호국영령들 영전에 대주혜해 스님이라는 큰 스님을 당신들 스승으로 모셔드리오니 정말 기뻐하십시오. 가서 뭐라고 물었느냐 하면은 어떻게 하면 이 나라를 위해서 싸우다가 때로는 마음에 상처를 받고 때로는 속상한 일이 있고 마음에 응어리진 게 많고 많은데 그거를 다 버려두고 대열반(大涅槃). 어떻게 하면 왕생극락하여 모든 공덕이 나라와 둘이 아닌 걸 알 수 있습니까? 즉 어떻게 하면 대열반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렇게 물었다 이 말이에요. 물으니깐 호국 영령들이여 내가 출가(出家)를 해가지고 살아보면 어릴 때는 어릴 때는 13살 때 내가 절에 들어왔으니까 66년 전이니까 뭘 알겠어. 그때 장난치다가 노상 노스님들한테 두드려 맞기만 하니까 노스님 미운 마음 저 날 때린 스님 두고 보자. 이제 몇십 년 후에 내가 가만히 안 둘 거라는데. 지금 계셨으면 정말 잘해드리고 싶어. 얼마나 큰 마음을 가지고 때려줬는지 그 인제야 뒤늦게 철이 든단 말이야. 뒤늦게. 사람들이 불행한 거는 여러분들 자식들도 뒤늦게 철이 들어. 지금은 그냥 베풀기만 해 놔두면 뒤늦게 철이 들어서 부모의 고마움을 알게 되는데 마찬가지로 스님을, 스승을 찾아가 가지고 “어떻게 하면 왕생극락(往生極樂)을 할 수 있습니까? 즉 대열반(大涅槃)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스승이 하는 말이 “호국영령들이여, 생사업(生死業)을 짓지 않으면 되느니라” 이랬다 이 말이오. 생사업을 짓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오늘 진관사에서 수륙재에 동참한 모든 영가들과 선망 부모와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생사업을 짓고 있는가, 열반(涅槃)의 길을 가고 있는가? 열반은 업이 아니기 때문에 열반의 도를 걷고 있는가, 생사업을 짓고 있는가 한 번 돌아보십시다. 생사업이라는 게 뭐예요? 생사업이라는 게.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는 그 길로 가는 걸 생사업이라고 하는데 여러분들은 모르지만은 해마다 요 스님들이 이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저는 하안거, 동안거만 해봐도 끝나면 또 바로 준비해서 또 해야 되는데, 이 수륙재(水陸齋)라는 게 참 참으로 소중하고 소중하고 모든 조상 모셔놓고 요만이라도 모자람이 없어야 잘못됨이 없어야 되기 때문에 정성 정성 다해서 법문만이 아니고 염불부터, 대령부터, 목욕부터 아주 신도들 대하는 것까지 하는 게 쉬운 일 아니에요. 진관사 신도님들은 참 진관사 스님들 고마운 줄 아셔야 돼. 저분들 없으면 이런 수륙재 이게 이렇게 정성들여 못 해봐요. 법사 스님 하나 청하는 것만 보더라도 참으로 모시기 어려운 분들을 모셔오니까 그분들 덕에 여러분들은 가만히 앉아서 이놈 법문도 듣고 저놈 법문도 듣고 참 좋은 세상이요. 옛날에는 우리가 찾아갔었거든. 그러면 생사업이라고 하는 게 무엇인가를 알면 오늘 호국 영령들이, 독립군들이 아, 나도 자칫 그 길로 가고 있었었구나. 생사업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경계를 생사업이라고 합니다. 생사업이다. 그럼 아까 말씀드렸듯이 여러분들 눈으로는 바람도 안 보이죠. 그렇죠?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나 혼자 아주 잘 죽거려. 내가 본래 잘 죽거리는 사람. 혼자 잘 죽거려. 토굴에 오래 살면 자기 혼자 얘기를 잘하거든. 저 태백산 도솔암 같은 데 있어 보면 사방 몇 십 년에 아무도 없는 데서 생식하고 그냥 있으면 혼자 그냥 중얼중얼 혼자 잘 죽거려. 매미가 울어가면 너는 왜 우니? 산에 산짐승이 울면 왜 뭐가 불만이야? 혼자 잘 죽거려서 습관이 돼서 지금도 대답을 하거나 말거나 잘 죽거리니까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마라. 그러면 바람도 안 보이고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성스러운 진관사가 태양 둘레를 도느라고 우리가 앉아 있는 법당이 전체적으로 돌고 돌고 돌고 있죠? 그러면 돌고 있다는 말은 뭐예요? 변하고 있다는 말이고 그러면 빛의 속도로 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우리는 단 한 번도 태양을 본 일이 없습니다. 저 태양에서 햇빛이 출발해서 우리 지구에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려요? 8분 걸리죠? 확실히 진관사 신도들 똑똑하네. 팔 분 걸려 팔 분. 그럼 우리가 보는. 지그들 좋다니까 박수 칠라고 하는 거 봐봐 또. 8분 걸린단 말이야. 그러면 우리가 보는 태양은 몇 분 전에 태양을 보는 거예요? 8분 전에 것만 보지 지금 당장 살아 있는 태양은 평생 못 봅니다. 우리가 밤에 보는 참 많고 많은 별자리들이 1억 년 전에 폭파돼서 없어져버린 별인데, 1억 년 동안 빛이 우리한테 오고 있으니 없는 별을 1억 년 동안은 있는 걸로 보고 있고, 새로 생긴 별이 수천 수만인데 그 빛이 우리한테 오는 데 천 년 걸리면 천 년 동안은 우리는 그 별이 안 보여요. 아, 내 눈을 믿으면 안 되겠구나. 낮에도 별이 수없이 많은 별이 있지만은 태양에 가려서 하나도 안 보이니 내 눈을 너무 믿지 말자. 그럼 이 집 자체가 전체가 태양 둘레를 돌아가는 그 엄청난 벼락 치는 소리가 들립니까? 안 들립니까? 안 들려요. 안 들려요. 그리고 오늘 저녁 옛날 나는 어릴 때 노스님들한테, 노스님들 모시고 살면 어린 것들을 두고 늘 그게 교육이었어. “혜국아”, “예, 스님”, “오늘이 처서다” 처서가 뭔지 아나 꼬맹이가. 14살짜리가 뭘 알아? “예” 하면은 “처서란 말이다, 귀뚜라미가 가을을 업고 오는 날이다” 이번 처서는 그래서 귀뚜라미한테 물어봤어. “왜 이리 처서가, 귀뚜라미 너희들이 가을 안 업고 왔냐?” 하니까 “요즘 가을 말 안 들어요.” “왜 그리 말을 안 듣는데?” 하니까 “요즘 사람들 똑 닮았어요.” 사람들이 말 안 들으니 가을도 안 업혀요. 그러나 어떤 더위도 가을을 이겨내는 더위는 없습니다. 벌써 아침저녁 서늘하거든요. 가을을 이겨낸 더위는 없다, 이 말이에요. 어떤 고난과 어떤 억울함과 어떤 속상한 것도 내 마음 불성(佛性)에는 이겨낼 수가 없다는 얘기야. 그러면 여러분들이 금방 대답하듯이, 눈으로 보는 것도 정확하질 못하고 귀로 듣는 것도 정확하지 못하면은 아, 내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걸 가지고 평생 판단해 왔는데 이거는 아니다, 이걸 오늘 놓아버리자. 그 생각을 놓아버리면, 여러분들이 그 생각을 방하착하면, 호국영령들과 선망부모와 모든 조상들도 와, 우리 자손들이 마음에 콱 맺혔던 마음의 상처를 놓아버리니 정말 보기 좋다, 우리도 놓아버리자. 내가 천도 되면 조상이 천도 되고, 조상이 천도가 되면 내가 천도가 되니 나와 조상은 DNA가 하나이기 까닭이다. 그러면 그 보고 듣고 하는 생사업(生死業)을 짓지 않고 열반(涅槃)의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늘 드리는 말이지만은, 꼭 같은 지옥에 있다 하더라도 만약 오늘 저 많고 많은 영가들 중에 너무 한이 맺혀서 지옥에 있는 영가라면은, 그 영가가 만약 다른 종교를 믿는 영가라면 그 지옥에서 얼마 동안 있어야 돼? 얼마나? 얼마나 있어야 되냐고. 조금 덜 똑똑하네, 아주 똑똑한 줄 알았더니. 영원히, 영원히. 다른 종교에서는 영원히 떨어져 있어야 돼, 다시는 나올 생각 말아야 돼. 그런데 불교를 가까이했던 그런 영가들은, 불교의 지옥은 지옥에 가도 내 불성(佛性)은 적어지지 않는다. 조금도 나빠지지 않는다. 내 생각만 바꾸면 그날 나올 수 있다. 불교의 지옥은 똑같은 지옥인데 교육장이었다, 교육장. 교육만 받으면 바로 그냥 나온다, 이 말이야. 저 지금 염불 잘하는 스님들이 그 정성으로 염불을 할 때, 그 전부 교육시키는 말이거든. 영원 담적, 영원히 적어지지도 않고 많아지지도 않고, 지옥을 갔던 사람이 됐든 어디를 갔든 니 마음은 그대로다. 니 마음, 생각만 놓아버리면 바로 그 자리다. 그럼 교육장이란 말이에요. 그러면 열반(涅槃)의 도를 가려고 그러면은, 다른 종교에서는 죄를 다 없애두고 그 길을 새로 저만큼 걸어야 거기가 되는 줄 아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涅槃)의 도, 왕생(往生) 가는 길은 ‘미운 마음, 원망하는 마음, 보고 듣는 그것만 놔버려라. 그거 믿지 말라. 그거 놔버리면 한 발자국 움직이지 않았고 그 자리가 바로 그 자리다.’ 그건 뭐와 같으냐면은, 서울에서 흘러가는 강물이 무슨 강물이야? 한강이죠. 낙동강, 경상도에서는 낙동강, 저 전라도에서는 섬진강, 느려터진 충청도에서는 백마강, 금강. 그러면 바다에 가서 낙동강이 섬진강 보고 “야, 나 너하고 안 놀아.” 섬진강이 낙동강 보고 “야, 나도 너하고 안 놀아.” 그렇게 서로 티격태격합니까? 그냥 한 바다가 돼가지고 파도가 철썩철썩할 때는, 청마 유치환 선생의 ‘파도’라는 시를 보면, “파도야 난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난 어쩌란 말이냐, 님은 뭍같이 꿈쩍 않는데 파도야 난 어쩌란 말이냐.” 아무 싸움도 없이 한 바닷물이 됩니까, 서로 싸웁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이 불성(佛性)이라는 바다에서 볼 때는, 싸우는 것이 보고 듣는 생사의 업에서만 있는 것이지, 열반(涅槃)의 도, 극락(極樂)의 도에는 없다는 거예요. 없어. 그걸 새로 만들어서 가는 길이라면은 엄청 힘든 일인데, 부처님을 믿는 여러분들의 행복은, 내가 지금도 아까 와서 딱 절을 하면서 “다음 생, 다음 생, 몇 백 생 태어나더라도 스님의 길이 아니면 결코 가지 않겠습니다. 부처님 꼭 지켜봐 주십시오.” 66년 동안 스님 생활하다 보면요, 다른 길 같으면 “아이고, 짜증 나, 아이고, 타성에 젖어” 하면 할수록 부처님의 고마움이 뭐냐 하면은, 부처님은 “눈 온 들길을 걷는 나그네요.” 눈이 하얗게 온 들길을 걸어보면 걷는 대로 발자국이 찍히죠, 그죠? 삐딱삐딱 찍힌 사람은 삐딱삐딱하고 반듯한 사람은 반듯반듯하는데, 그러면 빼딱빼딱 지킨 사람이 이렇게 돌아보면 자기 발자국이 형편없으면 뒤로 돌아가서 발자국을 새로 바꿀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어제로 돌아갈 수가 없어요. 우리는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갈 수 없어요. 딱 한 번 1초 지나면 1초 전으로 못 돌아가요. 그래서 바로 현존(現存) 일념(一念)이다. 그걸 법정 스님은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을 많이 썼죠. 물론 경(經)에 있는 말이지만. 한 번 보고 한 번 볼 때 이미 끝난 일이다. 다시는 못 돌아간다. 그러면 다른 모든 철학에서는 그 삐딱삐딱한 발자국 때문에 너는, 너는 인생 조진 놈이다, 버린 사람 취급을 한다, 이 말이야. 부처님은 오늘 그걸 돌아볼 게 아니라 오늘 반듯반듯 걸어서 저만큼 가서 돌아보면 반듯반듯한 발자국이 보여요 빼딱빼딱한 게 보여요? 빼딱빼딱한 건 없어져 버렸어. 반듯반듯, 아, 현존 일념이 바로 내 인생이구나. 내 지금 마음에 깨어 있으면 영원히 깨어 있는 것이고, 내가 지금 마음을 놓치면 그건 영원히 다음다음도 그 마음이 그 마음이다. 그래서 『금강경(金剛經)』에는 “과거심(過去心) 불가득이요 현재심(現在心) 불가득이요 미래심(未來心) 불가득이다” 이랬는데, 그러면 생사업(生死業)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그런 것을 놔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걸 어떻게 하면, 어떻게 놓으면 좋겠습니까? 놓아버리는 법. 그것을 부처님께서는, 내 성질 같으면 이렇게 말해도 안 듣고 저렇게 말해도 안 들으면 때려 치워버릴 텐데, 『아함경(阿含經)』을 12년 동안이나 설해 주고 『방등경(方等經)』을 8년이나 설해 주고, 그게 다 공(空)이라는 거를 600부 반야 중에서 21년 살아나는 동안 577번째 『금강 바야바라밀(金剛般若波羅蜜)』을 떡 설하면서 거기서 뭐라고 그랬어요? 육조스님이 무슨 말 끝에 홀연히 열반(涅槃)의 도를 앓았습니까?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응무소주. 그래서 이제 이 스승에게, 호국 영령들이여. 당신들 오늘 대박 나는 날이오. 진관사라는 데가 있어서 수륙재의 모든 그런 나라를 위해서 돌아가신 그런 영혼들과 원래는 독립군 그런 호국 영령들까지 모셔놓고 해마다 이렇게 해드리는 건 사람 노릇 우리를 시켜주는 거예요, 여러분들. 사람 노릇 시켜주는 거라고. 그러면 “영령들이여. 어떻게 하면 보고 듣고 느끼는 경계를 한 생각에 탁 놓아버리고 열반의 도를 갈 수 있습니까?” 하니까, “야야 『금강경(金剛經)』에서 벌써 말 안 했나? 응무소주 이생기심하라.”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쓰라. 그 마음을 내라. 그러면 여러분들은 머무는 바가 주로 어디에서 많이 나옵니까? 머무는 게. 가족들끼리 가장 머무는 게 많아요. 저 남편이 내 결혼기념일을 아는가 모르는가 자기만 알도록 달력에 딱 표시해 놨다가 알아주면 다행인데, 모르면 꼭 저녁 굶은 고양이 새끼 모양으로 꽁 해가지고 가슴에다가 “나는 너를 위해서 얼마나 했는데 그것도 하나 모르냐” 머물러 탁 가슴에 머물러. 딱 머물러가지고 머무르면 뭐가 돼요? 업(業)이 돼. 죄가 돼. 그게 생사라. 바로 보고 듣는 데 넘어갔으니까. 아들 딸들이 “나는 너에게 얼마나 인생을 다 바쳤는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어머니 말을 안 듣느냐. 아버지 말을 안 듣느냐” 왜 안 들을까 아들 딸들이. 아들 딸들 말 잘 들어요 안 들어요? 안 듣죠. 그 원인 분석해 봤어? 원인을. 여러분들이 아버지 어머니 말 지독히 안 들었거든요. 여러분들이 바로 안 들은 사람이요. 나 봐요. 나, 나는 아버지가 이 길 가는 걸 엄청 반대했어요. 그런데 이 길 갔어요, 안 갔어요? 내가 대표적으로 아버지 어머니 말 안 듣는 사람이야. 다음 생도 안 들을 거야. 어쩔 수 없어. 여러분들은 아버지 어머니 말 지 딴에 잘 들었다고 해도 부모가 볼 때는 반의 반도 안 들은 사람들이거든. 그러니 아들 딸들도 안 들을 수밖에 없어. 그리고 부모한테 뭔가 받을 게 있고 갚을 게 있기 때문에 아들로 태어나지. 당신들 말하는 대로 당신 말만 잘 들으면 오늘 딱 멈춰가지고 더 큰 데는 못 내려가요. 댐에 막혀서 못 내려간다 이 말이야. 아들딸들이란 내 마음대로 들어야 된다. 이런 데 멈춰 있구나. 내가 여기에 딱 머물러 있구나. 응무. 응무소주(應無所住)라야 할 텐데 머무름이 없어야 할 텐데 내가 여기에 탁 머물러 있으니 와, 진관사 수륙재(水陸齋) 하는 동안 내 가슴을 가만히 돌아봐서 이런 마음 이런 마음 이런 마음이 내 상처로 있구나. 요거 내려놔버리는 것이 응무소주 이생기심(而生其心)이다. 과거에 지나온 일은 지나가 버렸잖아. 오늘 내가 한강을 건너왔는데 오늘 조금 있다가 내려가다 보면 그 한강이 없단 말이여. 다 있다고 하는데 그거는 착각이여. 내가 본 강물은 벌써 바다로 흘러가 버려서 흔적도 없어. 다음 생애도 못 봐. 그러면 강물만 그러나요. 보고 듣는 게 보는 찰나다. 강물보다 몇십 배 빨리 흘러가 버리니. 아, 내가 보고 듣는다는 건 흘러가 버리는 게 없는 거를 내 마음에만 붙들고 있는 거를 머문다고 하는구나. 가장 머물기가 쉬운 곳이 내 가족이다. 남편, 부인, 아들, 딸. 근데 내가 볼 때는 좀 웃기는 게 있어 부부 간에. 남편들이 지 덕 보려고 장가간 거지 마누라한테만 잘하려고 장가간 건 아닐 거거든요. 근데 자기한테만 잘해주는 거예요. 그러면 보살들도 지 덕 보려고 시집을 갔지 남편한테 무슨 헌신적으로 가려고 간 게 아니거든요. 서로 그걸 인정해서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다름을 인정하면 마음에 머물지 않습니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좋고, 참나무는 참나무대로 좋고, 황새 다리는 길어요 작아요, 짧아요? 참새 다리는 어떤 스님 닮아서 좀 짧단 말이야. 가만 보니 날 닮아서 짧다는 걸 알고 웃는데 겉으로 볼 때만 그렇지 속에는 내가 이제는 하심(下心)을 많이 해서 엄청 큰 사람이 나왔는데 당신들이 볼 줄 몰라 웃거든. 그러면 참새 다리는 짧고 황새 다리는 기니까 황새 다리 긴 걸 딱 끊어다가 참새 다리 끊어서 서로 꽃같이 맞추면 뭐가 돼? 둘 다 죽어버려. 둘 다 죽어버려. 아 큰 건 큰 것대로 작은 건 작은 것대로 이 자체가 불성(佛性)에서 볼 때 성(性)에서 볼 때는 평등이구나. 눈에 보이는 게 크고 작다는 여기에 넘어가지 말자. 잘해준다 못했는데 넘어가지 말자.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는 말은 눈에 보이는 모양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고 귓구멍으로 듣는 소리에 머물러서 내지 말고. 우리 귀로 듣는 소리에 정말 많이 머물러요. 누가 욕 한 번 하면 그게 꽉 남는 거예요. 전생에 내가 욕을 했던 사람이 욕이라도 해주지 전혀 인연 없는 사람은 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치치코프 새끼 미친 새끼라는 놈이 우리 욕해 줍디다. 욕 안 해요. 욕 안 해. 뭔가 욕을 들은 거는 인연이 있었구나. 내가 한 욕이 돌아왔으니 내 인생 오늘 해결됐네. 부처님 법이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하나만 하더라도 아, 저런 큰 스승이 이 세상에 오셔가지고 불법문 중에 불사일법(不捨一法)이라. 모든 것은 하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을 어떻게 응무소주 이생기심하고 있느냐. 그러면 여러분들은 진관사에 와서 해마다 수륙재만 동참하더라도 영가들에게 왕생극락(往生極樂)할 때는 아, 나부터 누구에게 서운한 마음, 마음의 상처 이거는 이 소중한 내 몸뚱이에다 이런 지저분한 오물을 내가 생각 그릇에 넣고 다니는 건 이건 냄새가 나도 너무 많이 난다. 여러분들 한번 들어보자 이 말이야. 눈으로 보면 여러분들이 나를 볼 때 저 스님은 세수를 잘 안 한다고 그러더니 오늘은 뭐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세수를 하고 왔는가 보네. 나는 여러분들을 볼 때 집에서는 머리를 부시시하니 펄렁 도깨비 모양으로 남편이나 아들딸 앞에서 잠옷 차림으로 꼭 어디 무슨 뭐 각설이처럼 돌아다니더니 나올 때는 뭘 바르고 뭘 주어 입고 그냥 예쁘게 차리고 왔네. 그건 눈으로 본 소리요. 눈으로. 내가 그렇게 봤다면 눈으로 본 소리야. 마음으로 보면 차려 입을 줄 알고 여기 올 줄 알고 이 말을 들어서 생각을 바꿀 줄 아는 마음 마음 마음. 마음으로 보면 내 마음이나 여러분들 마음이나 한 마음이란 말이에요. 다시 한 번 반복하겠습니다. 시간이 다 돼서. 금일 영가들이나 호국영령들이나 우리나 새나 노루나 우리 생명을 우리가 만들어 본 일이 없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만든 공기. 공기를 코로 호흡을 통해서 빌려다 쓰는 게 내 생명이요. 공기 10분만 못 빌리면 우리는 다 죽어. 떠다니던 구름이 비가 되면 물이 돼서 물에서 물을 얻어 마시고 있으니까 물에서 빌려온 생명이요. 태양열 에너지에서 열량, 대지에서 나오는 모든 음식. 그러면 그 우주 생명을 우리는 빌려다 쓰는 걸 이 몸뚱이라고 한단 말이야. 빌려온 거란 말이야. 내가 빌려온 데하고 여러분들 빌려온 데가 같아 안 같아. 한 생명이란 말이야. 한 생명. 그러면 호국영령과 모든 사람들도 그 생명에 의해서 살고 있어. 그러면 오늘 호국 영령이 마지막 들어야 할 건 응무소주 이생기심이 되려면 그때는 일본인들이 우리나라를 식민지 만들어 가지고 한국말을 못 쓰게 만들고 별별 고생을 다 하고 참 독립군들 고마운 건 그건 정말 어떻게 보면 말로 다 할 수가 없거든. 그런 환경에서 당신들을 독립을 했으면 지금도 그런 걸 미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서는 결코 왕생극락을 못한다. 아, 그때 우리나라 국력을 키워놓지를 못했구나. 사색 당파로 니가 옳다 내가 옳다 싸우면서 일본인들에게 우리가 식민지를 당했구나.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일본을 능가해서 이번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 몇 나라를 뽑는데 일본은 8위가 됐고 우리가 7위로 올라갔더라고. 일본이 그러면 그게 바로 이분들 덕이요. 박수 칠 수 있는 게 독립 호국영령들 우리 수륙재에 모시고 하는 그분들 덕이란 말이에요. 그러면 여러분들 덕인 줄 아는 후손들이 있으면 호국 영령들은 한국 땅에 진관사가 있어서 저런 신도들과 저런 분들이 해마다 이런 일을 해줬으니 나도 마음을 넓혀보자. 바다가 돼 보자. 섬진강, 낙동강이 하나라는 걸 한번 알아보자. 글로벌 시대 일본까지도 우리가 앞으로는 가르치자, 제도하자. 백제 불교가 전해져서 일본을 가르치듯이 내가 마음을 좀 더 넓게 쓰자. 그러려면 허공 영령들이여 이런 염불하고 이런 법문 듣고 이런 정성 들릴 때,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은 돌아가신 호국 영령들, 독립군들을 청에 모시고 죄를 지내는 줄 알지만 스님들은 영원히 죽음이 없는 진관사 단어, “당신은 부처님입니다.” 영원한 생명 부처님을 모셔놓고 법문을 하니 응무소주 이생기심이 길을 가면 부처이고 미운 마음, 원망하는 마음,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데를 따라가면 중생이니 내가 어떤 길을 가느냐는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래가지고 결국은 앙산스님께서 위산스님 스승에게 묻기를 “어떻게 하면 내가 내 안에 있는 부처님이 참 부처님이 있는 걸 알 수가 있습니까?” 하니까 “니가 이 세상에서 보고 듣고 있던 모든 거는 빌려온 남의 지식을 기억한 거니까 기억된 것을 생각이라고 그런다.” 그 생각을 딱 놔두고 생각 끊어진 나, 생각 끊어지니까 죽을 줄 알았더니 고요하고 고요하여 적적본고향(寂寂本故鄕)이라. 고요하고 고요하니 이게 내 고향이었구나. 그 고요한 걸 아는 호국영령들 죽음이 없는 나. “이 뭣고?” 이 뭣고 이 하는 놈이 안 죽고 있다는 걸 딱 믿음이 가면 이 하면 희망이 솟는 거예요. 아, 영원히 죽음이 없는 내가 있었구나. 그것이 모든 생각을 놔버려 두고 이 뭣고, 모르는 놈만 남는 거예요. 모르는 놈만. 모르니깐. 모른다는 건 뭐예요? 백지잖아 백지. 백지는 비교가 없어. 고요요, 고요. 모르는 것이 세상 사람이 볼 때는 답답인데, 호국영령과 수륙재에 모인 모든 영가들이 볼 때는 청정이요, 고요요, 고요. 고요하니.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지치코프 새끼 미친 새끼인가 어떤 사람. 미운 마음 나, 안 나? 그리운 마음 안 나? 평화요, 평화! 모르는 건 평화구나. 금일 영가요. 다만 모르는 이 뭣고? 이것을 참고하고 참고하면 고요하고 고요하게 되니 진관사 스님들과 신도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내가 고향이 멀리 있는 줄 알았더니 내 마음 한 번 바꾸니 거기가 내 고향이었네요. 그게 성성시아가(惺惺是我家)라. 거기에서 희망이 솟아서 살과 활이라. 하나는 죽이며 하나는 살리니. 생과 사가 둘이 아니니 현전고불로(現前古佛路)인데 부처님 걸어 가신 길이 바로 이 길이니 부처님 고마움이여. 누구나 부처라고, 당신도 부처 나도 부처 호국영령도 부처, 소속 제한된 모든 사람이 부처라고 해주신 분은 부처님밖에 안 계셔. 불교 신도들이 부처님 불교 믿는 그런 고마움을 모르면 그건 ‘리가대돌’이요. 뭐 리가대돌이라면 스님이 뭐 외국어를 좀 한다던데, 돌대가리를 거꾸로 하면 리가대돌이요. 돌대가리라 하면 기분 나빠하니까 이왕이면 “저놈들 리가대돌”하면 지는 못 알아들어 좋고 난 욕해서 좋고. 정말 부처님 고마운 줄 알아야 돼. 부처님 고마움으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거야. 고로 호국영령들이 부처님이 어디 계시냐 하니까 이 그 자리니라. 무엇고. 모를 뿐인 청정이여 모를 뿐인 고요요. 불매시하물(不昧是何物)이냐? 원컨대는 진관사에서 해마다 모든 백성 대신하여 지극정성 수륙재를 봉행하는 이 공덕으로 호국영령과 독립군으로 눈을 감을 때에 피눈물을 흘리신 독립군 영령들이여. 이러한 공덕으로 마음에 묻은 한을 한 생각에 놓아버리고, 이 뭣고 부처 성품이 당신 본고향이라. 부디부디 왕생극락 나라리라라리라라 태평가를 불러 봅시다. 나무아미타불. 다시 한 번 회주 스님과 주지 스님, 진관사 스님들 정말 마음으로부터 내가 못한 일을 해줘서 고맙습니다. 성불하십시오.
2025-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