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9

진관사 을사년 수륙무차대회
신심동참의 선망혼령(先亡魂靈)과 생존생령(生存生靈)과 보살행자가
동증불성수명(同證佛性壽命)하고 동왕불찰정토(同往佛刹淨土)를
일심발원(一心發願)하고 일심발원하옵니다. 나무아미타불
안녕하세요. 오늘 법문 주제는 불성삼매 구족수명(佛性三昧 具足壽命) 이런 내용입니다. 제목을 달기를, “보살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한다. 맞죠? 다 맞아요. 맞는데 보살행을 하든 안 하든 진관사 을사년 수륙무차대회에 신심 동참 신심으로 동참한 선망혼령, 일찍이 생명을 다한 혼령들과 현존생령, 현존한 살아있는 영가들과 보살행자가 보살행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증불성수명(同證佛性壽命)하고 불성의 수명을 다 함께 깨닫고 동행 동왕불찰정토(同往佛刹淨土)를 부처님 나라 서방정토, 극락 세계에 함께 가기를 일심발원하고 한마음으로 발원하고 한마음으로 발원합니다. 이런 내용으로 시작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불성삼매에 들면 삼매라고 하는 것은 멈추고 본다. 멈춘다. 본다. 이게 삼매인데 생각을 멈추고 평소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본다. 이게 삼매거든요. 생각을 딱 멈추면 보이는데 그 보이는 것은 생각을 멈추지 않고 볼 때 보지 못하던 것을 본다. 불성을 보면 그게 불성삼매예요.
불성삼매. 불성삼매에 들어가게 되면 무엇이 보이느냐 수명이 목숨 수, 목숨 명 이 수명이 구족해요.이걸 구족 수명이라고 그래요. 구족하다라는 거는 하나도 모자라는 게 없다 그런 뜻이에요.구족 수명, 불성삼매 구족수명.
호흡수명의 인생 일생(一生)이 초엽조로(草葉朝露)요
일장춘몽(一場春夢)이나
일체 중생의 불성수명(佛性壽命)은
상수상수(常壽常壽)라 구족수명(具足壽命)이로다
나무아미타불
그럼 우리가 생로병사 속에서 느끼는 수명은 호흡 수명이라. 호흡. 수명이 목숨 수 목숨 명 하니까 굉장한 것 같지만 숨 쉬는 게 수명이에요. 이걸 호흡 수명이라고 그래요. 이 숨 못 쉬면 수명이 끝나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사람이 까불거든요. 언제 숨을 못 쉴지 모르는데 그거는 생각하지 않고 딴 생각들만 하는 게 범부의 삶이에요. 호흡 수명은 인생 일생이, 인생의 한 평생이 초엽조로(草葉朝露)요. 풀잎에 아침 이슬이오.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한바탕 노근하게 꾸는 봄꿈과 같은 것이 호흡 수명의 인생 인생이라. 그런데 일체 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는데 일체 중생의 불성 수명은 항상 상 목숨 수 항상 상 목숨 수. 항상 하는 수명이요. 항상 하는 수명이라. 구족수명이로다. 구족이라는 건 하나도 모자라는 게 없는 걸 구족이라고 하거든요. 구족한 수명이로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이
본무일물(本無一物)하나 상자성성(常自惺惺)하니
사사물물(事事物物)을 무시불성(無始佛性)하되
무수물멸(無數物滅)하고 무수물생(無數物生)이로다
나무아미타불
그런데 이 수명은 불성수명인데 이 불성수명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이에요. 나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니고.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 참과 그대로 진실 여여 진실하고 여여한 그대로 불성인데 이거 본무일물(本無一物)이라 본래 한 물건도 없어요. 이 불성 안에는 본래 한 물건도 없으나 상자성성(常自惺惺)이라 항상 스스로 밝을 성자가 있는데 마음 심 옆에 별성한 건데 성성이라고 계속 쓰거든요. 이 성성이라는 게 뭐냐 하면 옛날에는 살살하다 이렇게 번역이 돼 살살하다 옛날 어록에 보면 그럼 살살하다라는 게 뭔가 하면 몸에 티끌 하나 없이 마음이 상쾌하다 이런 뜻이에요. 티끌 하나 없이 마음이 상쾌하다.
그런데 이거는 뭔 말이냐면은 신령스럽게 밝고 신령스럽게 밝다 이걸 성성하다 이래요. 아주 신령스럽게 밝아 신령스럽게 밝아 이걸 성성하다. 본무일물이나 본래 한 물건도 없으나 항상 스스로 신령스럽게 밝고 신령스럽게 밝다 이것이 불성이다 이렇게 가르치는 거예요.
유여허공(猶如虛空)에 운전뇌풍(雲電雷風)하고
시시강우(時時降雨)하나 공무시형(空無是形)이면
일락서산(日落西山)하고 일출동방(日出東方)에
상공동화(常空同華)하나 공무암명(空無暗明)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이걸 비유로 말하자면 유여 마치 뭐와 같냐? 허공에는 허공에는 운전뇌풍(雲電雷風)이 있고 구름이 있고 번개가 있고 우레가 있고 바람이 있고 이렇게 있으나, 허공에는 본래 구름도 번개도 우뢰도 바람도 없다. 허공에는 본래 구름이 없어요. 번개가 없어요. 우뢰가 없어 바람이 없어. 그리고 또 시시강우(時時降雨)하나. 때때로 비를 내려. 허공에는 다섯 가지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구름, 번개, 우뢰 또 바람, 비 이런 걸 허공에서 볼 수 있단 말이에요. 운전뇌풍하고 시시강우하나 때때로 비를 내리나 공무시형(空無是形)이라 허공에는 이런 형상이 없다. 허공에 비가 없잖아요. 근데 비가 내려요. 허공에 바람이 없는데 바람이 불어요. 없는데 나타난다. 또 그뿐 아니라 일락서산(日落西山)하고 해가 서산에 지고 일출동방(日出東方)에 또 해가 동방에서 솟아오름에 상공 동화 하나. 허공이 항상 해가 뜨면 온전히 밝아지고 해가 지면 온전히 어두워져요. 그래서 이 허공에는 낮에는 밝고 저녁에는 어두움이 항상 있어요. 그런데 허공은 본래 어떻게 되냐 공무암명(空無暗明)이라 허공에는 본래 어둡고 밝은 것이 없다.
허공은 해가 떴다고 그래서 밝아진 게 아니에요. 그냥 허공이에요. 해가 졌다고 해서 어두워진 게 아니에요. 그냥 허공이에요. 그런데 어두울 때는 온통 어두운 걸로 함께해요. 밝은 허공 따로 있고 어두운 허공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어두울 때는 온전히 어두워지고 밝을 때는 온전히 밝아지는데 밝아졌다고 그래서 허공은 밝은 게 아니고 어두워졌다고 그래서 허공은 어두운 것이 아니다.
이걸 불성에 비유한 거예요. 불성에는 본래 한 물건도 없기 때문에 생로병사가 아무리 왔다 갔다 해도 허공에 비바람이 없는 것처럼 불성에는 생로병사가 없어. 그래서 이 생로병사 없는 불성을 보려면 불성삼매에 들어서 본다. 생로병사를 보는 생각을 멈추고 조용히 오래오래 보고 있으면 구름 속에서 허공을 보듯이 생로병사에서 불성을 본다. 이게 불성삼매예요. 그러면 바람도 일어났다가 금방 사라지고 비도 왔다가 그치고 번개도 일어났다가 사라지지만 허공은 일어났다 사라짐이 없듯이 불성은 항상함을 본다.
구족 수명이 삼매 속에 그대로 나타난다 이거죠. 이게 불성법문이에요.
일체법(一切法)이 무생(無生)하고 역부무유멸(亦復無有滅)하니
약능여시해(若能如是解)하면 사인견여래(斯人見如來)니라
나무아미타불
화엄경, 야마궁중게찬품에 이런 법문이 있는데 일체법은 무생하고 일체법은 생긴 것이 없고 왜 생긴 것이 없느냐 허공에 구름이 일어난 거와 같이 허공에 구름이 일어났어도 일어난 것이 없고 일체 또 역부무유멸(亦復無有滅)이라 또한 다시 사라지는 것도 없다. 허공에 구름이 사라졌어도 허공에는 사라진 것이 없이 일체법은 무생하고 역부무유멸이라 일체법은 무유멸이라 없어지는 것이 없다. 이것이 본무일물하고 상자성성한 불성인데 본래 한 물건도 없고 항상 스스로 신령스럽게 밝고 신령스럽게 밝은 불성인데 이 불성삼매에 딱 들면 멀리 갈 거 없이 바로 이 불성을 보게 된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몽환포영(夢幻泡影)이요
진여불성(眞如佛性)은 적적성성(寂寂惺惺)이여
삼세여래(三世如來)는 상주불성(常住佛性)하야
원각대지(圓覺大智)가 상방광명(常方光明)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생로병사라고 하는 것이 뭐냐 있어도 없는 거와 똑같다. 이 말이에요. 생로병사라고 하는 것은 이 불성에 있어서 있어도 없는 거와 똑같다. 이 운전뇌풍 시시강우가 구름 번개 때때로 비 오는 것이 허공에 있어서 있어도 없는 거와 똑같듯이 생로병사라고 하는 것이 불성에 있어도 없는 거와 똑같다. 그럼 있어도 없는 거와 똑같은 것이 뭐냐 몽환포영이라는 거예요.
꿈 저녁마다 꿈이 있는데 그 꿈 그거 있어도 없는 거와 똑같아요. 어떤 사람은 꿈을 잘 꿨니 못 꿨니 심지어 꿈을 돈 주고 사고 돈 받고 판다는 말도 있는데 그거 다 헛거예요. 꿈은 있어도 없는 거나 똑같은 게 꿈이에요. 또 환 환이라는 건 허수아빈데 허수아비있어도 없는 거나 똑같아요. 물거품 물거품 그게 물이기 때문에 물거품이 있으나 없으나 똑같아요. 똑같이 물이야 또 그림자 그림자 보이나 안 보이나 있어도 없는 거나 똑같아요.
그래서 생로병사는 몽환포영이라 꿈과 같고 허수아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은데 이거를 몰라서 자기 꿈에 자기가 속고 자기 물거품에 자기가 속고 자기 허수아비에 자기가 속는다. 자기가 마음에 드는 허수아비를 하나 딱 만들어 놓고 내가 저거하고 똑같이 됐으면 좋겠다. 이래가지고 지가 만든 허수아비에 그 지가 똑같이 닮아가려고 무진 애를 쓴단 말이여.
이것이 이름에 속고 모양에 속고 고통에 빠진다. 이 이름 모양에 안 속으면 고통이 없어요. 전부 이게 허명 허상에 속아서 헛된 이름, 헛된 모양을 쫓아가다가 무진 고통이 생기는 게 본부의 생활이거든요. 그래서 이 생로병사 허수아비를 보지 말고 불생불멸 진여불성 그 불성을 보면 바로 해탈하고 바로 성불한다. 중생성불이 찰나중이라 이게 부처님 가르침이에요.
그러니까 이 불성삼매에 딱 들면 허수아비 보던 생각을 딱 멈추고 진여불성 보는 지혜 눈을 딱 바로 떠서 숨을 내쉬고 들여쉬는 걸로 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그런 호흡수명에서 불생불멸 진여불성의 부족한 수명으로 돌아가는 거. 그렇게 되면 선망혼령들이 다 극락세계 가고 해탈하고 또 현존생령 일체중생이 다 해탈하고 극락세계에 가고, 지금 도 닦고 있는 보살들이 다 해탈하고 극락세계에 가는데 그런 목적을 이루는 행사가 이게 수륙재예요. 그게 수륙재예요. 딴 게 아니에요.
삼세여래(三世如來)는 상주불성(常住佛性)하야
원각대지(圓覺大智)가 상방광명(常方光明)이로다. 나무아미타불
그러면 이제 보살 경지는 불성 삼매에 딱 들어야 불성이 보이는데, 삼세여래(三世如來)는 성불하신 삼세제불 일체의 여래는 상주불성(常住佛性)이요. 상주불성 항상 불성에 머물러 있어 허수아비를 보질 않아요. 자기 그림자를 보지를 않아 그건 있으나 마나 똑같으니까 참 이게 기가 막히네. 자기 그림자에 속아서 온갖 고생 다 하다가 또 죽어요. 그러다 내세에 또 그 그림자 쫓아서 또 태어나 또 그 그림자 그림자가 보이면 왜 더 잘생기지 그것밖에 안 생겼냐고 하고 그림자가 안 보이면 도대체 지금 어디 있느냐고 자꾸 이 모양을 한단 말이에요. 이거를 미혹범부(迷惑凡夫)라고 그래요. 자기 그림자에 속지 마라. 자기 꿈에 속지 마라. 자기 꿈은 평소 자기 경험으로 나타난 거거든요. 꿈이라는 게 이걸 불교에서 밝힌 거예요. 다른 데서는 못 밝혔는데. 꿈의 실체가 뭐냐 평소 자기 경험이다. 평소에 생각한 걸 보고 평소에 가본 데를 가고 평소에 듣던 거를 듣고 그래요. 그래서 꿈은 자기 경험이다.
이게 이제 여기에 속아가지고 속는 거를 불교에서는 미혹이라고 그래요. 미할 미 미혹할 혹 속는다. 이거는 우리 말이고 한자로 쓸 때는 미혹하다 미혹. 자기 그림자를 자기가 아닌 것으로 속아 그걸 미혹하다 그래요. 그래서 자기 그림자에 놀라고 자기 그림자에 기분 나쁘고 또 자기 그림자를 또 쫓아가고 자기 그림자를 찾고 이 모양을 한단 말이죠. 그런데 여래는 그런 걸 전혀 안 해요. 훤히 다 알아서 그 몽환포령 헛된 것을 아예 안 봐 볼 게 없어.
그림자 보나 마나 안 봐 그래가지고 상주불성이라 항상 한 물건도 없지만 항상 스스로 신령스럽게 밝은 거기에 머물러 있어요. 삼세여래는 상주불성하여 원각대지가 온전히 깨달은 온전한 지혜가 그림자에 속지 않는 걸 원각대지라고 그래요. 눈에 보이는 것도 그림자고 귀에 들리는 것도 그림자인데 거기에 미혹하고 속아서 듣는 대로 쫓아가고 보는 대로 구하다가 구하다 구하다 구할 수가 있나요?
구하는 마음을 채우지 못하고 죽어. 그래서 죽을 때는 평소 욕망을 다 못 채웠기 때문에 한탄과 슬픔뿐이여. 평생 살고 그거 한탄하다 죽는 게 말이 되나요?
그게 이제 불성을 못 봐서 그렇다 이거죠. 그 원각대지가 상방광명이라 항상 광명을 비춘다. 환해. 그래서 앉으면 앉은 대로 불성광명이요. 서면 선대로 불성광명이 누우면 눕는 대로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불성광명이기 때문에 이걸 상방광명이라 상방은 항상 비춘다 이거죠. 항상 불성광명을 비춘다. 이것이 삼세여래다 이 말씀이에요.
이 수륙재 일정표를 보니까 법문 시간이 45분에서 20분까지라고 딱 나와 있더라고. 그래서 그거 내가 꼭 지키지 안 지킬 리가 없지. 그래서 이제 불성 법문은 여기까지만 하고 이제 오늘 여기에 청해서 다 함께 동참한 모든 분들에게 회향법문을 이제 하게 되는데요.
회향일구廻向一句
여시우여시(如是又如是)하야 단일념회광(但一念廻光)하면
무생역무멸(無生亦無滅)하야 수광(壽光)이 상무량(常無量)이로다.
기혹미연(其或未然)이면 서방극락찰(西方極樂刹)에 장엄실구족(莊嚴悉具足)하니
십념즉왕생(十念卽往生)하야 성취대공덕(成就大功德) 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그러하고 그러하다. 불성의 법문이 그러하고 그러하다. 단일념회광(但一念廻光)하면 오직 한 생각이 안으로 돌이키면. 한 생각이 보고 듣는 티끌 경계에서 불성으로 딱 돌이키면 이렇게 생각 보고 듣는 티끌 경계로 나아가던 생각을 불성으로 돌이킨다. 이걸 생각의 빛이라고 그래서 빛 광자를 쓰고 돌이킨다고 그래서 돌이킬 회자를 써요. 회광.
생각을 범부로 있을 때는 계속 찾고 구하고 찾고 구한다고 밖으로만 나갔는데, 이 법문을 듣고 밖으로 구하던 생각을 밖으로 구하던 생각의 빛을 안으로 돌이킨다. 그래서 그 생각의 빛을 돌이킨다고 회광 돌이킬 회 빛 광. 한 생각 딱 돌이키면 삼세여래고 한 생각 흩어지면 육도범부다. 이 간단한 거여야죠. 한 생각 돌이키면 해탈 열반이고, 한 생각 밖으로 흩어지면 생로병사인 거예요. 이게 불교예요.
그래서 단 오직 일념이 회광하면 한 생각이 생각의 빛을 돌이키면 무생역무멸(無生亦無滅)하야. 이 불성에는 생기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어서. 수광(壽光)이 수명과 광명이 상무량(常無量)이로다. 항상 헤아릴 수가 없다. 저 허공의 수명을 저걸 천년이라고 계산할 수 있나 만년이라고 계산할 수 있나 허공 수명 10만 년이라고 계산할 수 있나 계산할 수 없어요. 허공의 수명도 무량수예요. 무량수 한 물건도 없이 항상 신령스러운 불성의 수명은 무량수다. 헤아릴 수 없는 수명이다. 그런데 자기 그림자에 속아서 온갖 고생하다가 눈물 흘리면서 죽고 또 고생하다 눈물 흘리면서 죽고 누가 열심히 살랬나. 참 죽을 때 울다가 죽어 그거 너무 허망하지 않아요.
이게 안으로 행복하지 못해서 그래요.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하고 살았는데 죽을 때 보니까 이거 헛거다. 선생님도 진실을 안 가르쳐주고, 부모도 진실을 안 가르쳐주고 내가 부모 따라서 선생님 따라서 열심히 살았는데 죽을 때 보니까 이상하다 허망하다. 그래서 울면서 죽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의 구족한 수명, 자기의 구족한 행복 이런 것이 충만하면 절대 울면서 안 죽어요. 수명이 충만하고 행복이 충만해서 죽는 사람은 죽음이 아주 좋은 거예요. 그게. 그런데 좋은 걸 좋은 줄 모르고 울면서 죽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렇게 하지 마라고 수륙재 하는 거예요.
오늘 법문은 박수 나올 법문이 아닌데 박수를 다 보내시네요.
서방극락찰(西方極樂刹)에 장엄실구족(莊嚴悉具足)하니
십념즉왕생(十念卽往生)하야 성취대공덕(成就大功德) 하십시오.
이게 하도 이게 절실해서 다시 한 번 읽었네요.
서방극락찰(西方極樂刹) 서방극락세계 찰이라는 건 세계를 말하는데 장엄실구족(莊嚴悉具足)이라 없는 게 없어요. 장엄은 여러 가지 꾸민 건데 없는 게 없이 구족하니 십념즉왕생(十念卽往生)하야. 아미타불 열번만 부르면 바로 간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불러보지도 않고 열번 불러서 정말 가느냐고 의심부터 해요. 한번 해보라고요. 안 가나. 십념으로 아미타불 열번 부르는 걸로 바로 왕생해서 성취대공덕(成就大功德) 하십시오. 대공덕을 이루십시오. 불성공덕 구족수명공덕을 이루십시오.
십념왕생으로 극락세계에 가니까 마지막에는 아미타불 생략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