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륙재법문

9월 28일 수륙재 3재 영진스님 법문 2025-12-19

반갑습니다. 오늘 옛날부터 국가에서 정식으로 행하던 또 왕실과 사대부까지 동원된 국행수륙대재 삼재의 날입니다.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 수륙이라는 것은 돌아가신 영가들을 총칭하는 이야기죠. 대개 무리나 육지에서 살다가 돌아가시니까 그런 분들을 위로하고 전도하고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장 우선돼야 될 건 전도도 자력으로 자력으로 간다면은 더 이상 할 일이 없겠죠.

 

자력으로 간다는 것은 내가 본래 부처임을 확인해서 부처로서 중생을 교화하는 삶이야말로 완벽한 삶이 되겠습니다. 그러지 못하면은 이제 부처님과 보살님과 큰 스님들의 힘을 빌려서 또 천도가 되는 것이고 또 우리는 그것을 힘을 모아서 함께 봉행해야 되는 것이죠.

제가 6년 전에 스님들 80명하고 티벳 수미산을 갔었는데 거기서 들은 이야기가 좀 인상 깊어서 그 말씀을 먼저 드리면 그 사람들은 모든 게 이제 종교적이에요. 모든 삶이 종교고 일어나면은 이렇게 수미산을 도는 방향으로 이렇게 늘 아침마다 이렇게 돌면서 기도합니다.

기도가 생활화돼 있습니다. 나는 좀 부끄러웠습니다. 그 이들은 염주를 돌리면서도 말을 하는데 나는 말을 하다 보면 염주가 끊어져요. 윤장대도 돌리고 정말 하나에서 열가지 부처님 제자로서 삶을 사는 걸 보았습니다. 힘들게 수미산을 한 바퀴 돌면서도 저 사람들은 나는 그냥 도는데도 호흡이 딸리는데 저 사람들은 바닥에서 엎드려 가지고 간단 말이야.

그래서 우리가 스승 아닌 게 없어요. 곳곳이 다 스승이에요. 눈 떠보면 전부 선지식이라고 그러잖아. 내 눈이 감겨 있으니까 선지식이 없고 부처님의 가피가 없고 그런 것이지 내 눈 뜨면 전부 가피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죽는 것도 스님들은 화장을 해요. 스님들은 화장합니다. 그런데 일반인은 화장을 안 해요. 죄가 없는 사람은 천장을 해 풍장 아시죠? 바위에다 올려놓는 거 그래가지고 다 먹기 좋게 발라가지고 먹도록 해. 그래서 남은 육신마저도 보시를 하는 겁니다. 하나도 안 남깁니다. 그리고 바람을 타고 그 영혼이 빨리 부처님의 세계에 도달하도록 그다음에 이제 다르쵸(경전을 적은 천)라고 다 써 있는 게 부처님 경전이거든요.

죄가 없는 죄가 없는 사람은 천장을 해요. 죄가 있는 사람은 천장 하지 않아요. 그러면 죄가 조금 있는 사람은 수장을 해요. 수장. 그래서 그 사람들은 먹을 게 없어도 물고기를 안 먹어요. 거기다가 물고기 한 마리나 야크 한 마리나 생명이 같은 거예요. 그래서 부득이해서 거기서 먹을 게 없어서 야크를 잡지만 그것은 살생을 위한 게 아니고 생존으로 하는 거죠.

그런데 물고기는 한 마리 먹어봐야 한 사람 배도 안 채우는데 거기에 알이 배어 있다면 몇 억 마리야 그래서 수장을 하기 때문에도 안 먹지만 생명 존중으로 안 먹어요.

죄가 많은 사람은 매장합니다. 우리는 매장이 옛날에는 이렇게 편히 쉬라고 했는데 그 사람 매장하는데 매장을 하되 구멍을 하나 내놓고 팔을 하나 끈으로 묶어서 밖으로 내놔요. 지나가는 사람마다 쉬려고 하면은 흔들어버리는 거예요. 이놈아 쉬지 마라 고통을 당하라. 이게 종교적으로 무장돼 있어요.

그러니까 죄 짓는 것을 아주 이 사람들 내생(來生)의 일로 연결되기 때문에 극도로 삼갑니다. 이런 방법도 있겠구나. 죄 안짓는 방법, 또 선행을 하는 방법이 그렇게 되면은 죽어서 갈 거 걱정 없잖아요.

 

내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어요. 그러면 그것을 누가 판단하느냐 화장은 당연히 들은 거기 스님들이 판단합니다. 그런데 스님들이 옛날에는 천장사(天葬師)라고 해서 천장을 쥐고 가는 걸 스님들이 했어요. 그런데 이제 스님들이 일이 많으니까 제자들 중에 재가자들 중에 아주 좀 좋은 분을 뽑아서 천장사를 만들어요.

그래서 그분이 사람이 죽으면 죄가 없으면 애기가 어머니 이 태속에서 있는 자세로 웅크린 자세로 시신을 묶어요. 그래가지고 자기 등으로 그 돌아가신 분 등을 대고 이고 가서 천장을 해요. 이 천장사가 직업이 괜찮아요. 돈이 많이 생겨요.

그러면 이 천장사는 무슨 장례를 치러야 되느냐 이 말이에요. 화장은 안 되죠. 스님 아니니까. 그 천장도 못 지내. 좋은 일 했지만 그래도 시신을 니가 발랐지 않느냐 해서 수장을 한 대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섬짓한 거야 이렇게 작은 죄도 이렇게 좋은 일 하면서도 우리는 실수하면서 본인이 합리화하잖아요. 그런데 거기는 그것마저도 용납을 안 해요.

 

오늘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자력의 힘으로 왕생극락 할 수 있으면 더없이 좋지만 안 되면 불보살님의 가피력, 또 위대하신 스님들의 법문과 이런 수륙재 의식을 통해서 천도할 수 있도록 발원하고 여러분들은 거기서 뒤로 밀어주고 하는 성스러운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제 기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여러분 만약에 사십구재 지낼 때 경을 뭘 읽어요? 금강경, 아미타경, 보현행원품이나 원각경 보안보살장 이런 거 읽잖아요. 전부 이 사상이 집대성되어있는 그런 말씀들입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의 진리를 그대로 법문을 해 줌으로 해서 그 법문을 영가가 들으면 영가는 육신을 떠났기 때문에 훨씬 식이 맑아 있어요. 우리가 못 보는 부분까지 보고 있다고요. 그래서 어려운 법문도 바로 이해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스님들 모셔다가 경을 읽어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오늘 기도도 이제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금강경을 오늘 한 편 읽어드리는 걸로 또 그걸로 기도를 통해서 천도하는 걸로 할게요. 그런데 금강경은 다 못 읽잖아요. 그래서 제가 간추려서 한 권을 오늘 끝내겠습니다.

 

금강경에 보면은 부처님이 600부 반야경을 21년간 법문하십니다. 그중에 577권째 단권으로 돼 있는 것이 우리가 지금 주로 접하는 금강반야바라밀경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뭐라고 쓰여 있어요?

 

如是我聞.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

여시아문. 일시불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구

 

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 乞食於其城中 次第乞已 還至本處

이시 세존 식시 착의지발 입사위대성 걸식어기성중 차제걸이 환지본처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반사흘 수의발 세족이 부좌이좌.

 

 

이게 제1대목이에요.

서론에 해당하는데 나는 이 서론을 놓치면 안 된다고 봐요.

부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인가? 부처님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여러분 생각해 보셨어요? 부처님은 어떤 모습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셨을까?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치셨을까?

그런데 여기에 다 들어 있어요. 여시아문(如是我聞). 이제 아난존자가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뜻으로 자기가 이렇게 시자를 제일 많이 했으니까 다 외우잖아요. 그래서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즉 이 말씀은 내 말씀이 아니고 부처님이 언제 어느 때 이렇게 했다.

 

다른 종교는 이렇게 육하원칙에 의해서 부처님 생활을 정리한 게 없어요. 부처님은 나이가 2600살이 넘어요. 2569 플러스 80. 부처님 80살까지 사셨어요. 돌아가신 해를 1년으로 친 거예요. 2569 플러스 80이니까 얼마나 많아요. 그때에도 부처님은 육하원칙에 의해서 생활이 정리된 거예요.

여시아문(如是我聞) 하사오니 일시에,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기원정사에 계셨다. 누구와? 1250인 제자와. 아라한 아라한과는 그냥 제자가 아니고 아주 공부가 깊은 아라한과를 증득한 훌륭한 제자가 1250명이었다. 이거예요. 즉 이 1250명은 늘 부처님을 모시고 다녔던 상주 대중입니다.

진관사에 상주대중 이십몇 명 되잖아요. 행사 때는 또 이렇게 저도 오고 다른 분들도 오시고 하잖아요. 상주 대중만 1250명이라는 대단한 겁니다.

 

이시 세존식시 착의지발(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부처님이 食時 공양 때가 돼요. 딱 사시에 한 번 드시잖아요. 착의지발 하셨다. 착의 가사를 수하고 이 남방에는 이 장삼이 없습니다. 이 가사가 옷입니다. 둘둘 말죠. 착의지발 가사를 수하시고 발우를 들고 입사위대성(入舍衛大城)하셨다. 사위 성에 들어가셨다. 그럼 어디 계시다가? 기원정사인데 기원 정사는 위치상 불교는 수행처를 아란야araṇya라고 그래요. 아란야는 적정처(寂靜處). 청정한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 고요한 곳이라는 이야기입니다. 1250명이 살지만 고요한 곳입니다. 수행하기 때문에.

 

그런데 1요자(요자나yojana, 유순由旬) 거리에 수행처가 있었다고 그래요. 1요자. 1요자는 옛날에는 숫자 개념이 없고 수리 개념이 없어. 그러니까 소가 음매하면은 이 들리는 마을에서의 거리. 왜 그래야 될까요? 제가 사는 백담사 같으면 굶어 죽습니다. 옛날 같으면 걸식을 해야 되지. 그러니까 마을에서 멀지 않아야 되고 마을 사람들 또 올 수 있는 곳이어야 돼요. 그래서 비산非山 비하非河 여기에 이제 수행처들이 있었던 곳이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진관사는 최적의 장소야. 옛날에는 좀 깊은 산중이었겠지만 지금은 뭐 오고 싶어서 그냥 유명한 분들마다 줄 서 있다고 그래요. 어 저는 진관사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사실은 여기만큼 큰 포교하는 도량도 없다. 우리 회주 스님이 돌아다니기 좋아하셨으면은 음식도 연구 못 하셨을 거야. 그런데 안 다니시잖아. 또 주지 스님은 회주 스님 잘 모시고 이렇게 잘 대중 거느리고 큰 행사하시니까 얼마나 멋져요 .

 

 

부처님이 공양 때가 돼서 착의지발(着衣持鉢)하시고 사유성에 가서 걸식을 차제걸이(次第乞已) 하셨다. 차제걸이 차제로. 걸식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부처님이 가섭 존자한테 물었어요. 가섭 자네는 어떻게 걸식을 하는가?”

예 저는 가난한 집만 일곱집을 합니다.” 아난은?”

저는 부잣집만 합니다.”

 

일곱 집. 일곱 집 이상 하면 안 돼요.

이유를 말해라

그러니까 가섭 존자는 두타 제일이잖아요.

가난한 자들에게 복을 짓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스님들은 복전이잖아요. 그래서 불전도 복전함 이러잖아요.

아난 존자는 가난한 자에게 부담을 안 주기 위해서. 다 뜻은 있는 거야. 그러니까 부처님이

그러지 말고 빼놓지 말고 일곱 집을 해라. 안 주어도 한 집이다 평등하게 하라

 

부처님 참 평등, 굉장한 거예요. 없는 자든 있는 자든 수분 수력으로 복을 짓게 하고.

그런데 지금도 남방에서는 걸식하지만 다 받고 끝에 가면 음식을 더는 곳이 있잖아. 많으니까. 시주 하는 분들을 거절할 수 없으니까 제대로 하고 마지막에는 다 덜고 당신이 먹을 만큼만 가져가고 (남은)그 음식은 아주 좋은 곳에 쓰이는 곳이죠. 어려운 곳에 차제걸이하셨다. 그다음에 도량으로 걸식을 하고 거기서 자시는 게 아니고 돌아오셔서 공양을 하시고 발을 씻고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여기까지가 서문이에요. 맨발로 다니셨으니까. 부처님도 걸식을 하셨어요.

그런데 이게 뭐 특별한 일인가? 근데 여러분 특별한 일이 진리는 아니에요 가장 평범한 거 가장 일상적인 것 그러면서도 법답게 법에 하나도 어그러지지 않는 것. 이게 도인 내지는 수행자들이 해야 될 일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제자 마승비구가 위의가 엄정하게 탁발하는 모습을 보고 거기를 뒤따라가서 저분이 저렇게 훌륭한데 스승은 얼마나 훌륭할까 보니까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거든. 그래서 출가한 게 목걸련 제자와 사리불 존자 아닙니까? 이교도였잖아요.

그렇게 여법하게 하는 모습. 자리를 피고 앉았다는 건 뭐예요? 법문하시려고 하는 거예요. 그럼 법문하려고 자리 피고 앉아 있는데 가만히 있으면 되겠어요 청법을 해야 될 거 아니야 그러니까 수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가지고 그 대중의 뜻을 알고 또 부처님 뜻을 알고는 대표로 수보리가 어떻게 해요? 편단우견(偏袒右肩) 가사를 이렇게 했다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잖아요. 그리고 한쪽을 우슬착지(右膝着地) . 한쪽 무릎 우슬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왼쪽 무릎 세우고 합장공경(合掌恭敬) 이백불언而百佛言)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이게 정말 멋진 장면이에요. 이걸 그림으로 한번 생각해 봐요. 그런데 여기다 뭐라고 해 희유하십니다. 부처님이셔 뭐가 희유했어요? 나는 희유하다는 말이 가장 내가 아껴 쓰는 말입니다.

전에도 없고 후회도 없을 일이다. 정말로 희귀한 일이다. 귀한 일이다. 수보리의 존자 안목으로 보니까 부처님의 이런 모습이 성스럽고 성스럽다. 어디에도 없었다. 부처님을 찬탄하는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처럼 되려면 우리 모두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 질문이 금강경을 꿰뚫는 질문입니다. 금강경의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한테 여쭙는 질문 하나입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마음을 발하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부처님이 깨치신 그 위대한 법을 저희들도 깨치기 위해서는 어떻게 응운하주(應云何住) 어떻게 마음을 머물러야 하며 운하항복기심(云何降伏其心)입니까?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됩니까?

이 질문을 놓치면 안 돼요. 열심히 읽기만 하지 말고. 어떻게 마음을 머물러야 되고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즉 항복이라는 말은 왜 나올까? 우리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찌들어 살아요. 그죠? 아무리 상을 놓았다 해도 안 그래 또 상이 남아 있어요.

나도 이 상 끊는 게 제일 어려워요. 작은 상도 상이거든. 다고 끊을 만큼 끊었는데 참을 만큼 참았는데 더는 못 참아. 이건 끊은 것도 아니고 참은 것도 아니야. 그러잖아. 법에서는 국가의 법에서는 참을 만큼 참다가 하면 정상 참작이 되는데 종교적으로는 그것도 죄야.

이 질문하니까 부처님이 수보리를 찬탄하십니다. 참 선재 선재다. 참 옳고 옳토다. 그래 너 질문 잘했다. 이러면서 쭉 법문하시는데 이렇게 하면 끝이 없으니까 가닥을 치면은 이제 게송으로 말하겠습니다. 게송이 사구게가 몇 개 나와요? 5분에 가면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존재하는 모든 모양은 범소유상 개시허망이다. 다 허망한 것이다. 영원한 거 있어요? 여러분들도 저보다 연세 더 드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다 젊었을 때 이뻤죠. 젊었죠. 날씬했죠. 그런데 세월이 가니까 안 그래. 나도 일찍 출가해가지고 나보다 후배 스님이 좀 들어왔으면 했어요. 그런데 내 나이 되면 조계종 출가를 못 해요. 늙었다고 안 받아줘요. 그렇게 지났어요. 근데 그것이 눈 깜짝할 사이야. 다 허망한 거예요. 허망하지 않은 건 아무것도 없어요. 모양 지어진 것은 다 허망한 겁니다. 어떤 것도 남아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이야. 만약 볼 것 같으면. 내 안목으로 제상이 비상임을. 모든 모양이 상이 아닌 줄을 제대로 볼 것 같으면 즉견여래다 곧 여래를 볼 것이다. 즉 부처님을 친견할 것이라는 말도 되지만 내가 부처임을 자각할 것이다. 상을 상으로 안 볼 것만 같으면은 그래. 즉 사상(四相)에 집착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런데 우리는 모양으로 따진다. 그러니까 고통이 오는 거예요. 고통은 따지니까 와요. 비교하니까 와요. 나는 늙었는데 너는 젊냐 너는 왜 안 늙냐 너는 왜 재산이 많냐 나는 적은데 이런 비교 때문에 고통이 오는 겁니다. 이것만 없어지면 고통은 사라져요. 죽는 건 안 억울할 걸 다 죽으니까 다만 먼저 죽느냐 뒤에 죽느냐의 문제지.

그 다음에 열 번째 대목에 가면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이 나옵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이 아까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에요. 질문에 대한 대답. 그전에 뭐가 나와 색에 머무르지 말고 마음을 내야 마음을 어떻게 머물러야 됩니까 하니까 마음을 어떻게 항복받아야 됩니까 하니까. 색 즉 모양에 머무르지 말고 마음을 내어야 되고, 귀 소리에 머무르지 말고 마음을 내야 된다. 왜 그래? 거친 소리는 거슬리잖아요. 근데 거기에 머무르지 말라니까 거기에 집착하지 말라는 거야. 그 다음에 냄새, 색성향미촉법 여기에 머무르지 말고 마음을 내어야 된다. 그것을 회통치는 말이 응당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써라. 응무소주 이생기심하라.

여기는 이 대목은 우리 선종(禪宗)의 위대한 조사인 육조 혜능 스님이 깨달은 곳입니다. 여기에서 완전히 열려버려요. 마음이 요만큼 미진한 게 있었다면 방아찧다가 이 대목에서 완전히 깨달아요. 그래서 이 금강경은 이 조계 선종의 소의경전이기도 해요.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경전이기도 합니다. 이 대목을 길게 하면 시간이 없어요.

그래 또 넘어가면 상에 머무르지 말라. 점심(點心)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점심. 여기서 또 깨친 분이 한 분 있어요.

금강경 주석서를 이고 젊은 스님이

 

저 남방의 호남성 강서성 중국의 이 선승들을 혼을 내주리라.

? 삼아승지겁을 닦아도 성불하기 어려운데 마음이 부처라고 내가 이 자들을 혼을 내주리라

 

하고 남행하다가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어느 절 동구 밖에서 떡을 파는 노인네를 만났어. 노파를. 그래서

 

노보살님 떡 좀 파세요.”

왜요?”

 

떡을 달라면 주지 왜요?’ 점심하게요.”

그러니까

스님 그 걸망에 뒤에 맨 게 뭐예요?” 금강경 주석서입니다.”

스님 금강경 좀 아십니까?” 내가 성은 주씨에다가 호가 금강입니다. 금강경을 좌로 우로 거꾸로 다 외웁니다. 궁금한 게 있습니까?”

예 스님 그러면 제가 질문하는 거에 대해서 대답해 주시면 떡을 팔겠거니와 질문(에 대답을) 못하면 떡 안 팝니다.”

아니 무슨 배짱이야 하하. 그때 도망가야 되는데,

 

물으시오

 

눈을 탁 감고 물어,

 

금강경에 과거심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이 있습니다. 이게 18번째 분에 나와요.

 

과거의 마음도 가히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는데 스님은 그 어디에다가 점심하려고 합니까? 지금 마음에 점을 찍으려고 합니까?”

 

이리 물었어요. 점심은요. 요즘은 잘 먹지만 아침 먹고 저녁 먹고 사이에 고구마나 뭐 하나로 이렇게 먹었다는 시늉하는 게 점만 찍는 게 점심이었어요.

 

그러니까 스님은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 가히 얻을 수 없다고 부처님이 분명히 금강경에 말씀하셨는데 어느 마음에 점심 할 겁니까? 딱 이러니까 꽉 막혀버린 거야. 이 점안법회도 점심의 또 다른 형식이에요.. 마음에 점찍는 게 최고죠. 이심전심 마음 깨치는 게. 그런데 이제 부처님 모시면은 눈에다가 생명력을 불어넣어서 우리의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게 점안 의식이잖아요. 여기에 꼼짝을 못해서 떡도 못 사 먹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다가 정신이 조금 들어가지고,

 

여기에 고승이 계십니까?” 여기에 고승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 어떤 용담이라는 노장이 계셔 한번 가보시오.”

가가지고 거기 가서 그 스님한테 낮에 들어가고 밤에 나올 때까지 금강경 법문을 들은 거예요. 그리고 그만 가서 쉬게노장님이. 나가니까 너무 어둡거든 밤이 됐어요. 스님 너무 어두워서 신을 못 찾습니다.” 불을 딱 비춰주다가 딱 내려서는 순간 훅 불어 꺼버리잖아.

얄밉잖아요. 그런데요. 여러분 스님들한테 가서 무슨 질문할 때 그냥 대답해봐야 그것은 상식밖에 안 돼요. 여러분이 절실하게 기회가 닿을 때 간절하게 여쭈어야지 그게 깨침으로 오지 그냥 지나가다가 한 번 물어봤어요. 궁금하면 500원 그래봐야 아무 필요 없어요.

금강경을 늘 법문하시다가 그만 가서 쉬게여기까지는 용담 큰스님이 이 사람 담금질 한 거예요. ‘가서 쉬게하는 순간 딱 불어 꺼버리니까 껌껌해져버렸잖아. 그 순간 혜안이 열려버린 거예요. 지혜의 눈이 열렸어요. 이걸 줄탁동시라고 그래. 선지식과 제자 간의 그 줄과 탁이. 줄은 알이 병아리가 알을 품었을 때 엄마 나 나갈까요?’ 하는 어미 닭만 느낄 수 있는 신호가 있대요. 어미 닭만 느끼지 그걸. 그러니까 그때 정확하게 딱 쪼아주는 것이 어미 닭이 이고 은 엄마 나갈게요 하는 거예요. , 이 동시라는 말은 선지식과 제자 간에 또 기도하는 자와 감흥을 주는 분에 이게 딱 맞아떨어지는 거예요. 기도에 영험이 있다 하지 마시고 그렇게 간극을 맞출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지 영험 없다는 말은 감히 할 말이 아니야. 자기 정성이 부족한 거예요. 기도는 일념으로 하는 거지 무슨 계산이 들어가요? 거기에.

 

아니 어느 분이 관세음보살열심히 찾다가 오래 전이에요. “나보고 스님 관세음보살보다 영험 있는 분 없어요?” “그래 왜요?” 그러니까 아니 기도가 잘 안 돼요. 그래서 내가 선방 가기 직전이야. “그러면 영진 대사를 찾아 봐요그러고 난 선방에 갔다. 해제하고 가니까 막 웃는 거예요. 스님들이.

왜 그러냐 하니까 어느 보살님이 기도하다가 영진 대사 영진 대사 영진 대사찾다가 어느 날 영진 대사가 진짜 관세음 보살보다 높아요?” 그러더래요. “그래서 어느 스님이 그래요?”그랬더니 누가 누가 하더라는 거야. 나는 그 보살님이 내 이름을 아는 줄 알았어. 내 법명 아는 줄 알았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어. 기도 제대로 했다. 마음이 부처라고 하는 즉심시불이나 짚신이 부처라고 하는 노파나 똑같단 말이야. 그 경계를 넘어서버리면 기도를.

그 전이니까 문제가 되는 거지. 일념으로 하면은 그게 무슨 필요가 있어요? 그러죠.

그 다음에 뒤에 게송으로 가면은 26번째 게송에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가 있어요. 부처님께서 그러셨어. 만약에 모양으로 형상으로서 나를 보려고 하거나 이음성구아 소리로써 나를 구하려고 하는 자는 시인행사도다. 이 사람은 삿된 길을 행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불능 견여래, 능히 여래를 친견할 수 없다. 모양으로 따지면 안 되죠. 모양에 머무르지 말고 마음을 내야 되고, 소리에 머무르지 말고 마음을 내라고 했는데 부처님은 이런 모습이다. 고정된 모습으로 보이려고 하거나 소리만 빽빽 지르고 정성이 안 들어가고 하는데 무슨 영험이 있겠어. 부처님도 챙겨 놓을 수 없을 뿐더러 본래 부처인 자기 자신도 자각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에 맨 마지막에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하라.

일체의 모든 현상은 여몽, 꿈과 같고 환, 환과 같고 포, 물거품 같고 영, 그림자 같다. 이건 실제로 존재하는 거 아니죠? 없죠. 존재하는 거 아니고 그 다음에 잠깐 머무르다 사라지는 거예요. 그 다음에 여로역여전 이슬같고 이슬 햇볕 뜨면 없어지고, 여전, 번갯불 같다. 번쩍하는 순간 사라져요. 응당히 이와 같이 관하라, 그러면 진리를 볼 것이다. 이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모양의 소리에 맛의 촉각에 이런 것에 머물러서 마음을 쓰면은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것은 돌아가신 수륙재의 대상이 되는 분이거나 수륙재를 모시는 우리거나 똑같은, 똑같이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되도록이면 이런 행사를 참여하시면서 정성껏 동참하시면서 이 업을 덜 수 있도록 늘 노력하고 좋은 일도 좀 앞서서 하시고, 그 다음에 좋은 일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수용될 수 있게끔 여러분들이 폭을 좀 넓히셔서 불자다운 그런 모습을 살다 보면은 반드시 부처님의 위신력이 아니더라도 여러분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그런 모습까지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러기 전까지는 날개가 안 날랐으니까 정성껏 기도하시고 수행하시고 동참하시길 바랍니다.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