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륙재법문

10월 12일 수륙재 5재 용학스님 법문 2025-12-19

네 반갑습니다.

오늘은 을사년 진관사 국행수륙대재 5재 법문. 오늘 저에게 이제 주어진 법문 주제는 <복이 따르는 사람들의 좋은 습관> 그래서 오늘은 이제 복이 따른다. 이 세상에서 복이 가장 많으신 분인 우리는 인류 역사상에 가장 복이 많으신 분을 석가모니 부처님이라.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흔히 화엄경 제일 마지막 게송 중에

 

찰진신념가수지 대해중수가음진

刹塵心念可數知 大海中水可飮盡

 

허공가량풍가계 무능진설불공덕

虛空可量風可繫 無能盡說佛功德

 

 

이라.

온 세상에 어떤 신통묘용 재주를 가지고 허공을 헤아리고 저 바닷물을 다 말리고 어떻고 저떻고 지나가는 바람까지 매는 재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의 공덕을 다 설할 수는 없다.

이래서 오늘 복이 따르는 사람들, 부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 흔히 이제 부처님을 귀의불 양족존이라 부처님의 복과 지혜가 원만하신 대도사라 삼계 대도사라 그러시는데, 그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우리 대승의 일승 가르침, 최고의 화엄경법화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행적을 석가모니 부처님의 행적을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짚어보고 복이 따르는 사람들의 좋은 습관을 한번 이렇게 법문의 주제로 드릴까 합니다.

그래서 화엄경 중에서는 입법게품에 대원정진력구호일체중생주야신이라고 하는 분이 계시죠. 그분이 이제 전생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다시 태어나셨다. 전생에 석가모니 부처님이셨다. ‘대원정진력구호그때 그분이 선복 태자로 계셨는데 그분을 괴롭히고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데바닷다였다. 이렇게 하면서 그 데바닷다까지도 포용하는 것이 복 있는 사람의 제일 미운 사람까지도 포용해야 복 있는 사람들이 수행자로서의 갈 길이다.

그래서 여러분들 마음속에도 밉고 싫고 짜증 나고 다시는 저 인간 안 봤으면 싶다. 그런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러나 이런 법문을 통해서 부처님의 경전을 통해서 오늘 이제 그 문제를 해결이 안 되면은 이번 달에 해결이 안 되면은 내년에 해결을 해야 될 것이고 내 죽기 전에는 내 마음속에 미운 사람들을 다 용서하고 다 포용하고 다 믿어주고 하는 것이 해결되지 않으면은 이런 수륙대재의 근본 목적이 잘 성취 못하고 수박 겉 핥기 식이 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 성불이라고 하는 시성정각(始成正覺)을 이루셨는데 그 시성정각했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당신께서 열반에 드시지 않고 미혹한 중생들을 위해서 설법을 하면서 진리의 법을 나누셨다고 하는 거 알아듣지도 못하는 새까만 중생들을 위해서 당신이 일생을 바쳐가면서 탁발하시면서 중생을 위해서 한 세상 사셨잖아요.

전생은 말할 것도 없고 금생도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보다 더 위대한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그 가르침보다도 더 위대한 것은 그 가르침 속에서 나타나는데 데바닷다라고 하는 부처님한테 엄청 되받아가지고 이름이 데바닷다 아니에요 데바닷다. 그래 데바닷다가 지옥 가서 이름을 바꿔서 죄받았다.

그런데 그 데바닷다를 큰 독극물을 먹고 소화를 하셨다. 자시고 마치 관세음 보살님께서 독극물을 입으로 삼키셔가지고 뱉으면은 저 중생의 바다에 뱉어버리면은 그 바닷물을 먹고 사는 중생들이 다 죽을까 싶어서 관세음보살이 그 독을 삼키면서 이 사바세계에서 사시는 그러니까 관세음보살을 청경 관세음보살이라 하잖아요. 목이 독에 중독이 돼서 새파랗게 그 독을 내가 삼키고 만다.

이것이 이제 복이 따르는 사람들의 습관 중에서 그 수행 중에서 인생살이 중에서 포함이 되는데 우리는 내 마음에 안들면은 전화번호부터 차단해 버리고 가족이고 동료고 함께 살아가는 천생연분이 아니라 평생 웬수비슷해 이런데 이런 기회를 통해서 수륙대재를 통해서 오늘도 수많은 생명들이 태어나기도 하지만은 많이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이 오늘 병원에서 또 저 바다에서 저 산에서 이 세상의 인연 따라서 왔다가 가고 돌아가시기도 하는데 그 많은 생명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이런 기회에서 좀 편안하게 마음을 다져야 안 되겠나 싶습니다.

 

그래서 화엄경, 입법게품의 선복 태자 얘기 다 할 수는 없겠지만은 여러분들 이렇게 유인물로 이제 한 6장 서너 장 이렇게 나눠드리는데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데바닷다가 도저히 해결이 안 되니까 불교의 공공의 적이잖아요. 그 공공의 적을 데바닷다는 나의 스승이었다. 데바닷다가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성불를 하고 중생 교화를 할 수 있겠느냐 이렇게 이제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리고 상불경 보살님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시는 항상 불경 남을 가엾이 여기지 않았다. 정법화경에는 상피경만(常被輕慢)이라고 나오죠. 상피경만 항상 남한테 업신여김과 멸시를 당했던 보살 상불경 보살 상불경 보살이 항상 남한테 당신은 부처님입니다. 훌륭한 분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정작 당신은 남에게 핍박을 당하는데 그 마지막 대목에 뭐라고 나옵니까? 그때 모든 중생들을 항상 존중하고 하심하면서 그렇게 살았던 상불경 보살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it’s me 바로 나 석가모니이다. 그 대목에서 법화경이 참 가슴을 울리잖아요. 바로 내가 그 사람이다. 석가모니 당신이 상불경 보살이였다 이렇게 이제 말씀하실 때 우리가 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느낌이 납니다.

범유하심자(凡有下心者)는 만복자귀의(萬福自歸依) 하심하는 사람은 아만심이 없는 사람은 아집이 없는 사람은 복이 저절로 굴러 들어온다 이런 말씀을 이제 하시게 되는 거죠.

그래서 그 아집없이 사는 사람들 중에 가장 대표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우리 수행자 중에서는 절에서는 한산 스님’, ‘습득 스님그분들이 존중하는 분을 미륵보살 게송을 통해서 여러분들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 건지 하는 걸 마지막에 이제 세 번째로 정리를 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시간은 아마 짧아서 다 정리는 못하겠지만은 삼지경 석 장 종이로 된 경전 그걸 잘 참고하셔가지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륵보살 게송에 보면은 누가 내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복 있는 사람은 침이 마를 때까지 닦지 않고 침 묻었는지 안 묻었는지도 모른다. 남이 나를 두드려 패면 어떻게 되냐 널브러지고 웅크러져가지고 가만히 두드려 맞고 있어라. 상불경 보살은 두드려 맞고 있지 않잖아요. 상불경 보살은 남이 두드려 패고 돌팔매질하면 어떻습니까? 멀리 도망을 가잖아요. 왜 죽으면 안 되거든 우리는 불법을 전해야 되기 때문에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이제 상불경 보살 이러한 내용들이 쭉 되어가 있는 게 오늘의 법문의 주제입니다.

하여튼 복이 많은 부처님의 석가모니의 수행법은 어땠느냐 배고픈 사람이 밥 찾듯이 목마른 사람이 물 찾듯이 병든 사람이 약 찾듯이 꿀벌이 꿀 찾듯이 그렇게 꽃을 찾아서 부지런히 수행하듯이 그것이 이제 석가모니의 수행이라고 화엄경에는 이제 얘기가 돼가 있죠.

 

특히 이제 올해 같은 때는 이제 광복 80주년이다. 그래서 한 115년 전에 경술년 국치를 당하고 백한 20년 전에 을사늑약을 당해 가지고 일본한테 온 강토가 주권을 뺏기고 우리 백성이 그냥 일본 일제 치하에서 그래 살았는데 그래서 이런 수륙대재를 통해서 올해는 특히 그 독립투사나 위국절사나 이름 없는 충의장졸들 이름 없이 이 땅에 큰 복을 심어가지고 이 조국이라는 큰 나무를 우리에게 선사를 해 주셨고, 이 조국이란 대한민국 땅이라는 이 땅에서 우리는 그분들이 심어놓은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으면서 하루하루 이렇게 사는 건데, 오늘 법문 주제는 <복이 따르는 사람들의 습관>, 좋은 습관인데 복이 따르는 사람들의 좋은 습관을 오늘 제가 이게 오늘 법문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어제 좀 정리하는 게 이렇게 정리해 놨어요.

아나식 법문아나식 법문 처음 들어보죠? 전에 보빼시는 들어보셨죠? 보리심 빼면 시체다. 아나식 법문 아나바다라고 혹시 아시나요?

아나바다도 알지만 이 아나심은 복을 짓는 사람들의 습관은

아 아껴라 이걸 우리 절에서는 석복(惜福)이라 합니다. 복을 잇는 복을 아껴라. 있는 복은 이제 이미 가지고 있는 복에 대해서 아껴라. 나 나는 뭐겠습니까? 분복(分福)이라 나누어 줘라.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재산과 능력을 나눌 수 있는 만큼 한껏 사회복지를 위해서 인류의 그런 인간 정토를 위해서 나누어 써야 된다. 그렇게 복을 지어야 된다. 그걸 분복이라고 합니다. 분복 흔히 이제 작복이라고 그러기도 하죠. 그래서 석복하고 복을 아끼고 복을 나누고,

그리고 식복(植福) 복을 심어라.

복을 심는 것은 마치 저 소나무 씨앗을 심듯이 이런 대들보를 만들듯이 우리 자신이 하나하나 금성에 내가 수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미래 중생들을 위해서 환경 보호라든지 자식들을 위한 또 후세들을 위한 그런 복을 심어야 된다. 식복 식복 심을 식자 식복 그래서 아끼고 나누고 심어라. 한번 우리가 한번 큰소리로 여기 진관사가 쩌렁쩌렁 울릴 때까지 해볼까요?

아껴라!

나누어라!

심어라!

언제? 그럼 이제 오늘 법문 끝난 거야. 이제 조용히 더 이상 이제부터는 참 군소리고 잔소리밖에 안 되는 거야. 좋게 보면 전부 꽃이고 나쁘게 보면은 전부 잡초인데, 복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들의 이런 전쟁터에 나갈 때 갑옷 이렇게 그런 구명조끼 같은 게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자비심이라고 그럽니다. 자비심 자비심으로써 우리를 다 감싸서 갑옷으로 삼고 그리고 복이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복이 있는 사람들이 무기를 가지고 있어요. 복이 있는 사람들을 항마의 무기라 항마진언 하듯이 마구니를 쳐부수는 무기가 있는데 그런 악마 악독한 사람들을 쳐 부술 수 있는 복 있는 사람들의 무기가 있는데 그 무기가 뭡니까? 여러분들 우리에게는 바라밀이 있다. 이거 한없이 자비로운 이런 미소가 있다.

그래서 내 눈에 눈물 나게 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 눈에는

누가 그런 악독하게 피눈물을

내 눈에 눈물 나게 하는 사람은 그 사람 눈에는 웃음꽃이 피게 한다. 이게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무기입니다. 복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내 가슴에 못을 박는 사람에게는? 아니 뻔하잖아요. 그 사람 가슴에는 나는 꽃다발을 안겨줄 것이다.

? 마치 저기 오늘 날이 꾸무리하잖아요. 그렇죠. 오늘 해가 안 떴죠 해가 안 뜨는 날 아무것도 없어요. 매일 해 뜹니다. 그래서 이제 복을 아끼고 복을 나누고 이럴 때 특히 이제 말 조심을 우리가 해야 되는데 말도 항상 이제 재미있게 웃으려고 해야 돼요. 그러니까 이런 수륙대재를 하는 목적이 아주 불리하고 서로 이렇게 당파 짓고 이런 것이 아니라 원만 융합형 인간을 만드는 거라. 원융화합이에요. 원융화합. 그래서 한산 스님은 항상 손에 꽃을 들고 계시고 습득 스님은 항상 이런 찬합 반합 이렇게 합을 들고 계세요.

그러니까 꽃을 화라 하고 합을 합이라 하면 두 개 합치면 뭡니까? 화합이잖아요. 그 한산, 습득스님은 그렇게 늘 들고 계시는 것이라.

 

그래서 한산 스님은 늘 저 하늘에 만고광명(萬古光明) 저 달을 봐라. 만고광명(萬古光明)의 장불멸(長不滅)이리라. 저 하늘의 달이 언제 진 적이 있느냐? 니 마음속에 달을 한번 잘 부처님의 그런 환한 마음과 같은 마음속에 지혜의 달빛 그것을 한번 묘광(妙光)을 살펴봐라. 그러니까 습득 스님은 손가락을 발바닥을 가리키면서 뭐라 합니까? 조고각하(照顧脚下). 당장 니가 지금 현실을 사는 모습이 그 모습이다. 이건 해인사 이제 법보단에 가면은 주련이 있습니다.

원각도량(圓覺度量)이 하처(何處)

 

극락 세계가 어디 있느냐 복 있는 사람들의 극락 세계가 도대체 어디 있느냐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是)니라

 

오늘 당장 정직하게 정직하게 아름다운 미소로 사는 것이 그대의 극락이다.

습득 스님이 어디로 발바닥을 이렇게 가르치면 조고각하라 그래요.

미소의 반대말은 뭡니까?

당기소.. 미소

 

그래서 우리가 무슨 말을 할 때도 특히 이제 음식을 이렇게 먹어보고 이렇게 차 같은 게 맛이 없으면 맛없다 이러면 안 되고 어떻게 해요? 참 신기하네요. 도저히 뭐 요거트 같은 거 먹는데 먹기 싫으면 한번 먹어보고 맛이 특이하네요. 이렇게 이제 얘기해야지 맛 없는데요. 이렇게 하면은 복 있는 사람들의 행동이 아니고 말씨도 아니다. 영어로는 어떻게 합니까? interesting! 정말로 영어로는 맛없다 할 때 교양 있는 사람들은 맛없다 소리 안 하고 인터레스팅이라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우리는 어쨌든지 누가 먹든지 간에 상관없이 오늘 이제 스피노자처럼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이렇게 수륙대재를 통해서 내 가슴에 심어서 온 데 말로도 심고 행동으로도 심고 생각으로도 심고 그래서 이제 우리의 미래 삶이 널리널리 확장되는 그런 모습을 기약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 같은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은 보배길이 열리고 히틀러 같이 못된 악인들의 길을 따라가면은 그 뒤에는 이제 가시밭길이 형성된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첫 구절부터 우리가 부처님의 화엄경, 입법게품 남겨놓으신 유음을 부처님이 남겨놓으신 그늘을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는 법음으로 읽어야 되는데 좀 빨리 읽겠습니다.

특히 그러나 경전은 어떤 시간이 됐든 빨리 읽어서도 안 되고 땡감 지르고 읽어서도 안 되고 경전은 부처님이 계시고 차경출이라 부처님께서 거기서 나오시기 때문에 항상 염불할 때도 그렇고, 정말 부처님을 면전에서 부처님하고 아주 고운 음성으로 아름답게 그렇게 이제 해야 되는 게 염불을 할 때는 절대 몇 자 빼먹더라도 급하게 읽어서는 안 되고 또 소리를 꽥꽥 질러서도 안 되고, 신심 없이 그때에~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아름다운 그 목소리처럼 그렇게 해야 된다고 그래요. 아주 존경하는 마음으로

 

화엄경, 입법게품 한 구절 읽어보겠습니다. 먼저

선남자여 그때에 태자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습니까. 저의 몸이 그 사람이니, 저는 옛적에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몸과 목숨과 재물을 버리어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였고,”

 

저는 옛날부터 복 있게 사는 모습이 어땠느냐 몸과 목숨 불석신명(不惜身命)이라 내 모든 것을 완전 연소해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했다. 수륙대재의 목적이 어디 있느냐 중생 구제다. 중생 구제는 부처님의 화두는 오직 중생이 잘 됐으면 싶고, 부모님의 화두는 자식이 부모님의 화두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기서 자비심이라고 하는 것은 삼매의 근본이 자비심이 됩니다. 자비심이 없는 사람들은 탐진치가 많은 사람들은 골 잘 내고 욕심 많은 사람은 삼매 들고 싶어도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삼매를 육조단경에서는 외도삼매라 그러죠. 기신론에서도 외도삼매에 든 사람들은 명리를 추구합니다.

그건 우리가 주장하는 일행삼매 기신론에서 얘기하는 진여삼매라고 하는 것은 그런 삼매가 아니라 대자대비심이라.

 

크게 보시하는 문을 열고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므로 이 해탈을 얻었습니다.” 크게 보시하는 문을 열고. 바라밀행의 1번이 보시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베풀지 않는 사람은 지키지 않습니다. 잘 계율을. 계율를 잘 지키지 못한 사람은 새치기 잘하고 준법 정신이 없는 사람은 인욕성이 없어요. 그래서 남을 해코지하고 또 이익이 있는 데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는 그런 또 고락에 아주 예민하고 괴롭고 즐거운데 예민하고 칭찬과 헐뜯는데 너무 예민한 사람들이 많거든요.

제법의 무아라든지 제행무상의 이치가 도대체 뚫고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베풀어야 일단은 아까는 아끼고 나누고 심어라 했잖아요. 그렇죠 우리 바라밀행은 딱 세 가지뿐입니다.

 

원래는 첫째 베풀고 해보세요. 지키고

참고

베풀고

지키고

참고

베풀고 지키고 잘 참고

 

그래 잘 베푸고 잘 지키고 잘 참고 요 세 가지를 보시 지계 인욕이라 하지 않습니까? 금강경에도 어떻게 해야 됩니까? 부주색보시(不住色布施)하고 부주성향미촉법보시(不住聲香味觸法布施)하라.

어디든지 보시가 제일 먼저 나오는 이유는 베풀지 않는 사람은 잘 지키지 않습니다.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은 잘 참을성이 없고 참을성이 없는 사람 이 세 가지가 근본 방편이고 이 세 가지가 계속 반복되는 것을 정진바라밀이라 합니다.

over and over again 정진바라밀이 돼야 이제 업장이 녹아지기 시작합니다.그래서 정진 바라밀을 계속하는 것을 우리는 보현행원이라 해서 화엄경에서는 10가지로 기신론에서는 5가지로 정진하는 사람들은

 

첫째 예경을 잘한다. 아만심이 없이.

둘째 참회를 한다.

셋째 수희동참을 한다. 넷째 권청을 한다.

다섯째 회향을 한다.

 

이 다섯 가지를 우리는 정진바라밀의 한 묶음이라죠.

그러면 어느 날 선정이 찾아오고 정혜쌍수가 되면서 지혜가 열리게 돼서 사리 분별이 또렷해지고 사람이 항상 중심, 추 저울추처럼 중심이 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여기서 그냥 크게 보시하는 문을 열고 그냥 쓰는 게 아닙니다. 일단 그것이 일번이야 그게 그래서 원효스님께서 일찍이 자비보시는 시법왕자요(慈悲布施 是法王子) 자비롭게 보시하는 사람 부처님의 왕자, 부처님의 자식들이고 불가의 왕자들이고 간탐어물은 시마권속이라(慳貪於物 是魔眷屬) 내거나 남의거나 놀부 심보로 탐내는 사람들은 아주 마구니의 권속이다 이랬어요.

진관사는 제가 여러분들한테 오늘 드린 것 중에 요 앞에 QR 코드가 하나 있죠. 거기 보면 진관사 태극기도 이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휴대폰으로 살짝 나중에 갖다 대보시면 돼요. 그리고 진관사 수륙대재하는 것도 여기 사진이 왕창 실어놨어요. 표지 대신에 그걸 실어놓고 뒤에는 여기 QR 코드 하나 더 있지요. 거기는 아주 잘생긴 스님 사진이 쫙 나올 거예요.

근데 이 진관사는 여러 군데 우리 회주 스님이나 주지 스님이나 이렇게 특히 이렇게 옛날 선대 스님들께서도 열심히 노력해오신 공덕으로 또 신심 있는 불자님들의 인연 공덕 그래서 오늘날까지 정말 우리 대한민국의 모범 사찰이 돼서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는데 저기 말 못하는 태극기가 제가 진관사를 먹여 살리는 것 같아 가지고 이 QR 코드 안에는 여기 로고 안에 있죠. 그거 나중에 사진 찍으면 태극기 열어놨습니다. 보입니까? 그 안에 중심에 있죠. 그 진관사 태극기 그거 우리 심장에 박듯이 꽉 박아놨어요. 그래서 말 못하는 진관사 태극기도 우리를 먹여 살리고 범어사는 계곡에 가면 돌이 많은데 말 못하는 돌이 범어사 중들을 다 먹여 살려요.

그런데 요즘 가을 산에 가보면은 범어산은 참나무가 유독히 많습니다.

그 계곡에 왜 저 나무가 왜 참나무인가 보니까 도토리 상수리를 열었다가 앙상한 겨울에 그 많은 다람쥐나 새를 먹여 살리니까 그 나무가 참나무라 중생을 먹여 살리는 나무가 참나무라 사람들 어떤 사람이 참 사람인가 모든 사람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사람이 참나무고 참선지식이라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크게 보시하는 문을 열고 부처님께 공격하였으면 이 해탈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중생을 먹여 살려야 되겠다. 근데 먹여 살리지는 못하고 동냥은 안 주고 쪽박은 깬다고 남은 거 뺏기는 왜 뺐냐 이거야.

불자여 마땅히 아십시오. 저는 그때 다만 일체의 중생을 이익되게 하려 하였을 뿐이고, 삼계에 애착하지도 않고, 과보를 구하지도 않고, 명예를 탐하지도 않고,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훼방하지도 않았으며, 모든 경계에 대하여 탐내어 물들지도 않고 두려워함도 없었으며, 다만 대승으로 벗어나는 길을 장엄하고, 항상 일체 지혜의 문을 관찰하기를 좋아하면서 고행을 닦아 이 해탈을 얻었습니다.”

불자여 마땅히 아십시오. 경상도 말로는 단디 아소. 나는 그때에 누구를 위해서 한두 중생도 아니고 일체 중생을 위해서 중생은 어떻게 되느냐 한 두 부처님이 아니고 일불이불삼사오불(一佛二佛三四五佛)이종선근이어무량천만불소(而種善根已於無量千萬佛所)

 

저는 이제 누가 이 떡이라도 이렇게 해 오시면 떡 되게 맛있습니다. 이러면 그럼 그다음에 하는 말이 있습니다. 계속 해 오이소. 예 누가 용돈이라도 이렇게 보시를 좀 하시면 어쩝니까 계속 주이소.

일불 이불 삼 사 오불이 아니라 한두분이 아니건데 이어무량천만불소

내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얻어먹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였을 뿐이고, 삼계에 애착하지도 않고 집착이 많은 사람들은 자꾸 드러내기를 좋아합니다. 한문으로도 붙을 착자가 드러낼 저명할 때 저 자하고 똑같이 쓰는데 어때 한문도 그렇게 잘 써놨어요? 착하는 사람은 드러내기를 좋아해요. 그리고 자기 잘난 척하고 고개 빳빳이 들고 있으면 저 사람 집착 많다. 저거는 인간이 안 되겠다 조심하자. 이러 그러니까 집착이 많은 사람들은 뭐냐 사치하고 교만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여기는 이제 옷을 저렇게 차분하게 이렇게 잘 입고 오셨는데 알록달록하게 머리에 브릿지 보라색 넣고 이런 사람들은 날 좀 보라고 저렇게 또 머리도 여기 어떤 분인데 또 제초제를 노리끼리하이 저리 뿌려오고 이러면 이제 난감한 기라

저렇게 사치 교만하면 스님들은 브릿지를 이게 뭐 이 물들이고 싶어도 못 들이잖아요. 이게 싹 깎아버렸는데 뭐 어디 있나 뭐 그게 스님들은 올백도 안 돼 한 올이라도 있어야 올백 될 거 아니야 가르마 좌우로도 안 되고 싹 깎으면 아무것도 없어 그냥 본래무일물이요 우리는

사치 교만하고 이런 분들은 어떠냐 갑질을 합니다. 갑질을

사치스러운 사람 딱 만나게 되면 가방이나 신발이나 좀 얄궂다 싶으면 조심해야 돼요. 그런 사람들이 일체 중생을 기만하고 갑질한다고 이렇게 해놨어요. 속인다

 

이 경전 그냥 써놓은 게 아닙니다. 삼계에 애착하지도 않았다 이런 거는 나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다 이런 말씀이에요. 그리고 어떻게 지어야 우리가 복 있게 사는 그런 선근을 짓는가 하는 게 명확하잖아요. 경전에는 과보를 구하지도 않고 이런 사람들을 귀하게 산다고 그럽니다. 우리는 부하다 귀하다 하는데 귀한 사람들은 설사 내가 쫄쫄 굶어 죽더라도 밥 한 그릇 이렇게 맛있는 거 먹자고 해서 내 정의나 양심을 팔지 않습니다. 일생을 걸고 하거든요. 일생을 걸고 하거든요.

 

제가 흔히 이런 얘기합니다. 법문하면서 오늘 제가 여기 왔는데 제 일생이 여기 앉아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한 사람이 오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에요. 부하게 사는 사람이 재물이 많고 뭐 어떤 부유하다 싶으면은 열심히 나눠주면 돼요. 부유한 사람이 또 귀한 자리를 탐하다 보면 다쳐요. 또 귀한 사람이 독립운동하고 또 수행하고 이런 사람들이 부유하게 살면 그건 또 똥이 묻은 것처럼 지저분해 그래서 귀한 거 하고 부유한 것을 부귀공명을 다 누리면 좋겠지만 부처님처럼 안 되면 우리는 차라리 귀한 쪽으로 사는 것이 복이 따르는 사람들이 그런 선근이라고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과보를 구하고 명예를 구하고 이런 사람 분수를 또 지나치게 넘게 바라면 안 돼요. 분수 넘게 바라면은 우리 삶 자체가 요동을 쳐 삶 자체가 요동을 치면은 지저분한 재산으로 가지고 자기를 막 채운다고 내 건지 아닌지. 그래서 절에서는 아예 남의 거 훔치지 마라. 계율을 정할 때 영취단수(寧就斷手)언정 불취비재(不取非財). 절에 들어오면 처음에 일년 때 배우는 게 있고 사미율의라

 

영취단수라 차라리 내 손을 자를지언정

불취비재라 내 것 아닌 것은 취하지 않는다.

이거 이것만 명심해도 오늘 수륙재 법문이 다 될 것 같은데

그런데 우리는 돌에 똥이 묻었든지 독이 묻었든지 이거 지저분하든지 아닌지 씻으면 그만이지 뭐 이러잖아요. 그런 사람들 뒤에 이름을 법명을 딱 지어죠. 폭망. 인생이 망한다고 인생이 다른 거 망해도 괜찮지만 사지가 떨어지고 눈이 나빠지고 이런 거는 괜찮지만 인생 자체가 그래 폭망해버리면 난감하잖아요. 그렇죠

 

 

인신난득이요 불법난봉이라(人身難得 佛法難捧) 참 만나기 힘든 불법 이 진관사 같은 데 저 소나무도 봐라. 흔들리지도 않고 법문 듣는다. 저거 보세요. 뒤에 저렇게 바람 부는데도 흔들리지도 않잖아 조용 하잖아. 자기를 칭찬하고 아까 자기 칭찬하는 사람들은 아집이 많은 사람이요. 드러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또 남을 훼방하는 사람들 이거 아주 악질들이죠. 훼방 잘하는 사람들이 골 잘 내거든 화 내는 사람들은 수준 이하에 최고 수준 낮은 사람이 화내는 사람이에요.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그렇죠

 

 

예를 들어서 제가 이제 가을만 되면 좀 분한 생각이 나는데 참지 뭐 어떻게. 제가 잘 가는 절에 밤이 많은 밤이 열리는 게 있었어요. 그 밤나무가 있었는데 그 밑에다가 어떤 처사가 잘한다고 소각장을 만들어 놔 가지고 밤을 지금도 못 먹게 돼 있잖아요. 밤나무가 다 죽어가지고 그리고

여기 밤나무 이게 그거 소각장 만들어 놓으면 이 연기 올라가면 나무 죽을 텐데” “스님 연기 올라가도 괜찮습니다.” 이러더라고 뭐라 하지는 못하고 화는 내면 안 되니까 저도 골 잘 내는 편인데 화 내면 안 된다고 써놨으니까 화는 내면 안 되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아이고 내년에 군밤 먹겠다 내년에 군밤 열리겠다이러고 돌아서는 거지

뭐 군밤은커녕 나무가 다 말라 죽어버렸다. 지금 예 그런 멍청한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 인생을 군밤 잘 밤 잘리는 나무에다가 밑에 소각장 만들어 가지고 지금도 생각해 화가 날라 하는데 안 내야지 그러니까.

 

모든 경계에 대해 탐내어 물들지 않고 두려워함이 없다.

탐진치가 사라지면 사람이 정신이고 몸이고 욕심이 사라지고 화가 사라지고 나면 여러분들 어떻습니까? 좀 홀가분해지잖아요. 그렇죠 그걸 경안(輕安)이라고 그럽니다. 경안 절에서는.

 

마음이 홀가분한 사람한테 찾아오는 것이 수리수리 마수리 수수리 사바 수리수리 몸수리 마음수리 말수리 사바하 예. 말도 수리하고 말도 좀 교양 있게 하고 행동도 좀 교양 있게 하고 생각도 사고 방식도 좀 수리하고 그게 수리 수리 마하수리 다 고쳐라. 잘 고쳐라 이 말 아닙니까? 그 수리 수리하는 걸 불방일이라고 그래요. 불방일 게으르지 않는다. 불방일 선근을 우리는 여기 선근인데 불방일 선근을 흔히 다른 말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선근이라고 최고의 선근으로 보거든요. 그렇게 마음과 몸이 좀 홀가분해가지고 병이 안 들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조금 이렇게 튼튼한 사람들이 이 불방일 정신이 있어요. 불방일 선근을 다른 말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선근이라 하고 보리심의 선근이라 보리심선근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어떠냐? 큰 백년 되고 천년 된 나무 뿌리가 깊듯이 불방일 선근이 그래 뿌리 깊은 선근이다. 그것이 이제 종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부처를 기약한다. 그래 게으르지 마라. 게으른 사람들은 악독합니다. 악독해. 그래서 게으르지 않고 불방일 하는 사람들한테 찾아오는 정신이 어떠냐 무사공평이라 아집이 사라지고 대원경상에는 절친소라(大圓鏡上 絶親疎) 큰 개울은 친한 사람, 안 친한 사람 없잖아요.

그래서 마음이 넓은 사람은 저 바다는 낙동강이든 두만강이든 압록강이든 영산강이든 동서남북 어디서 오더라도 저 바다가 태평양이 다 받아주는 것처럼 그렇게 마음이 확 넓어져서 그걸 무사공평 공명정대 그다음에 오는 현상이 우리가 흔히 잘 아는 불생불멸의 무생법인이 오고 우리 마음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고, 그때부터는 순풍에 돛단 듯이 에서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입에서 거짓말을 안 하고 눈에서 늘 미소가 이렇게 번지고 육문상방이 자금광(六門常放紫金光)이라 염도념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의 육문상방이 자금광(六門常放紫金光)이라 아미타불이 어디에 계시더냐 재하방이냐 아미타불재하방(阿彌陀佛在荷方) 착득심두절막망(着得心頭切莫忘) 간절하게 염불하고 염불 해 보니까 나중에 잡념이 다 끊어진 무념의 자리 제법무아 제행무상의 자리에 가니까 열반적정이더라. 내 눈에서도 자비가 넘쳐나고 들리는 소리에 귀에 거슬리는 게 없고 안이비설신의 모두 통째로 내가 아미타불처럼 됐다.

육문상방자금광이라 부처님의 눈빛으로 살 수 있겠다. 그게 이제 원리 전도몽상하니까 구경열반이라 그래서 대승으로 벗어나는 길을 장엄한다.

그다음에 또 한 꼭지를 항상 일체의 지혜의 문을 관찰하기를 좋아하면서 고행을 닦아서 이 해탈을 얻었다. 고행을 닦는데 어제난처무제난(於諸難處無諸難)이라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조건에서도 어려움이 없고 그 어제난처 어려움 속에서도 어렵지가 않다 이 말이죠.

부처님의 전생에 직업이 항상 자주 등장하는 게 약초꾼입니다. 약초꾼. 그래서 화엄경에 이르기를 약초가 가득 한 설산에 여러 사람이 같이 살지만 사냥꾼 눈에는 사냥감만 보이고 목동 눈에는 잡초 소꼴 풀만 보이고 약초꾼의 눈에는 약초만 보인다. 왜 약초는 중생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그래서 화엄경, 보현행원품의 항순중생편에 보면 우리가 오늘 또 여기서 법문할 때 사실 공양 올릴 때 했지만 <어제병고(於諸病苦) 위작양의(爲作良醫) 어실도자(於失道者) 시기정로(示其正路)> 어제병고 모든 중생들에게 병고에 든 사람들에게 좋은 의사가 되겠다.’ 이게 이제 석가모니가 전생에 했던 그 약초꾼의 얘기죠. 그 약초꾼 어떤 약초꾼의 얘기가 아주 아름다운 게송이 있습니다. 그 약초꾼이 불사불 시대의 약초꾼이 그 게송을 가지고 일주일 동안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는 그 어느 약초꾼의 게송이죠. 혹시 아십니까?

 

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무여불

 

十方世界亦無比

시방세계역무비

 

世間所有我盡見

세간소유아진견

 

一切無有如佛者

일체무유여불자

 

이 게송을 그 약초꾼은 일주일 동안 불사불 부처님의 성불을 찬탄하면서 머리가 좋아가지고 천 게송 만 게송도 할 수 있는데 일주일 동안 오직 이 한 게송만 가지고 일주일 동안 불사불 부처님을 찬탄합니다. 그 약초꾼의 이름이 석가모니 예 여러분 확실히 진관사는 수준이 달라요.

이렇게 이래서 제가 올 때마다 기분이 좋다니까 좀 그러니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약초꾼으로 사실 때 전생에 성불하기 직전에 당신이 다른 부처님을 찬탄하면서 했던 게송이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다.

천상천하에 부처님 같은 분이 없다.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라 온 세상 씻고 닦고 봐도 부처님 같은 분은 이 세상에 있을 수가 없다. 찬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비록 게송의 한 가지지만 뜻이 정성스럽고 지극하기 때문에 그 하나의 게송이 일주일 동안 한다 해도 뭐가 부족하겠습니까? 그렇죠

 

평생토록 한다 해도 나무아미타불하는데 뭐가 부족하겠습니까? 관세음보살이니 우리가 이게 진관사에 와서 단 하나의 진실한 게 있다면은 비록 작다 하더라도 다이아몬드 하나를 가지고 평생 살아가는데 뭐가 우리가 부족한 게 있겠습니까?그렇죠

 

인인(人人)이 전부 무연선교착여의(無緣善巧捉如意)라 여의주 같은 보배가 사람들마다 있는데 내한테 여의주가 있는데 무엇이 부족하냐 이 말이야.

 

그래서 사람이 이렇게 집착없이 뚝 부처님처럼 그렇게 살면 마지막에 종착역은 어디냐 불해(不害)라 남을 해코지하지 않는다. 남을 해코지하지 않는 자비심이 자라니까 항순중생의 마지막 편에 입법게품 보면 뭐라 합니까? 자비심이 자비심이 삼매를 얻은 사람은 자비심으로 가지고 살거든요. 그 자비심이 나중에 자라서 보리심이 되고 이 보리심이 자라서 발보리심이 자라고 자라서 정각심이 된다. 그래서 자비심이라고 하는 것은 복을 상징하는 것이고 보리심이라고 하는 것은 지혜를 상징하는 것이라. 그래서 보리심과 지혜가 보리심과 자비심이 합쳐져서 정각심은 복과 지혜를 구족하게 된다. 이렇게 이제 이미 화엄경 같은 데는 그렇게 써놨잖아요. 깨달은 사람은 자기가 저절로 중생을 위하게 돼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거울 앞에 서면은 거울에 비친 겉거죽 말고 거울에 비치지 않는 모습까지도 알 수가 있습니다.

 

자 그다음 구절 한번 봅시다.

 

불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때 나를 해하려던 오백 대신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습니까, 지금 제바달다의 오백무리이니, 이 모든 사람들도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다 같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야 될 것입니다.” 데바닷다가 성불해야 불교의 완성이라. 그리고 이제 쭉 넘어갑니다. 한 장 넘 가 보세요. 넘기니 뭐 나옵니까? 법화경, 상불경 보살품 바로 위에 거 예 그 한 장 최초의 부처님 이름은 대비(大悲)고 그 500명의 악독한 사람들이 승부를 하는데 이름이 뭐냐 선근이 뭐냐 대비 그다음에 둘째 이름은 요익세간(饒益世間) 요익 셋째 부처님은 대비사자(大悲師子) 넷째 부처님은 구호중생(救護衆生) 최후의 부처님 이름까지도 뭐가 된다 의왕(醫王) 의사가 된다. 오직 이타행뿐이에요. 불교는 그러니까.

 

말 한마디 천년 빚 갚는다고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진(百劫積集罪 一念頓蕩盡) 여화분고초 멸진무유여 (如火焚枯草 滅盡無有餘)>.

그래서 이런 수륙재 통해서 우리가 숨도 조절하고 호흡도 조절하고 잠도 조절하고 몸도 조절하고 말도 조절하고 그래서 절에서는 특히 이제 말을 적게 해야 성불을 할 가능성이 좀 많아요.

 

그 다음에는 한 구절 더 해보고 넘어갑시다. 어디요? 상불경 보살

시간이 조금 짜치지요. 짜친데 좀 모자라지요. 제가 전에도 항상 이렇게 말씀드린 저는 그래도 요즘은 경상도 사투리를 안 쓰니까 천만 다행이잖아요. 제가 전에 올라와서 서울에서 임플란트를 서울에서 했거든요. 그 뒤로부터는 아주 정확한 표준말을 쓴다고 그래요. 지금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나간 옛적 위음왕여래가 계시다가 열반에 들고 불법이 바르게 유지되던 정법 시대가 끝나고 상법(像法) 시대에 깨달은체하며 교만을 부리는 비구들이 큰 세력을 이루었다.”

아이고 똥을 깎아서 향기를 기대하지.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

교만하고 깨달은체하는 사람은 그거 성불하기 힘들어요. 사촌지식 해보세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이 귀로 듣고 한 치 두치 세치 네치 요까지 네 치라고 그럽니다. 귀로 듣고요. 눈으로 봤다 해가지고 입으로 나불나불 떠드는 사람들은 그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라 그래서 군자의 학문이라고 하는 거는 눈으로 보고 아금문견득수지(我今聞見得修持) 이 가슴에 수지를 해야 돼요.

내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던 것은 내 양심에 가슴에서 되새김질하고 되새김질하고 계속 반출해서 사지로 뻗어나가야 돼요. 손으로 따뜻한 손길이 되고 남을 찾아가는 자비의 발길이 되고 눈길 발길로 안이비설신으로 이 내 지식이 전체로 회향돼서 승화되어야 그리고 사지로 뻗어가서 이렇게 회향하는 것을 우리는 보살의 수행이라 하고 보살의 다문이라 하고 학문이라고 하잖아요. 그죠 그래서 여기서 깨달은 척하고 이렇게 교만한 척하는 사람은 성불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상불경 보살 이제

 

그때 상불경(常不輕)이란 보살비구가 계셨는데, 득대세야 대세지보살아 무슨 이유로 상불경이라고 부르게 되느냐, 항상 남을 가엾이 여기지 않았다 이 말이죠. 이 비구는 만나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마다 절을 하고 찬탄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그대들을 몹시 공경합니다. 감히 교만하게 가벼이 여기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모두 당신들이 모두가 보살의 도를 닦아 부처님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퀴즈를 하면은 촐랑촐랑 촐삭대는 그 앞에 쭉쟁이처럼 앞에 날아가면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 조리질을 이렇게 해가지고 뒤에 남을 때 쌀이 건져지고 뒤에 남는 게 돌이 남잖아요. 그렇게 너무 느슨하게 뒤에 남아서도 안 되고 앞에 촐랑거리고 가서도 안 되고 그래 우리가 너무 팽팽하게 하든지 너무 느슨하게 하든지 이거는 수행자가 갈 길이 아니다 이 말이죠. 그래서 늘 있는 듯이 없는 듯이 해가 휴가 안 가잖아요. 사람이나 가지. 그런 거듯이

 

그러나 이 비구는 경을 읽거나 외우지도 않고

 

보세요. 경을 읽거나 외우지도 않고 그런 지식적으로 하지 않았다 이 말입니다. 단지 이렇게 사람들에게 예배만 하였느니라 하심이 최고다. 예배를 절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심이 안 되고 아만심이 높아서 절을 못해요. 심지어 멀리서 사부대중을 봐도 멀리서 멀리서 쫓아간다는 것은 정말 존경해야 되거든. 원근 불구하고 청탁 불구하고 맑고 탁한 사람 불구하고 내가 죽든지 살든지 생사 불구하고 모든 사부대중들을 돌봐야 된다. 어떻게 찾아가느냐 일부러 찾아가 마음을 내서 찾아가야 돼. 그러니까 내가 시간 나면 갈게. 그건 빵점이야. 시간 나면 갈 게 아니고 시간 내서 말이 달라요. 뜻이 완전히 내가 시간 내서 어쨌든지 가겠습니다. 이래야지 실컷 놀다가 시간 나면 어째 짜투리 시간 한번 찾아가 볼게. 내가 다 먹고 남으면 니 줄게 소리 아이가 그게 그렇지 않고 일부러 경전에 이렇게 자세하게 써놨습니다.우리가 해야 될 일을 갖다가.

 

절을 하고 찬탄하면서 말하기를

감히 나는 그대들을 가벼이 보지 않습니다. 그대들은 부처님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부대중들 가운데서 성을 잘 내고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자가 추악한 말로 욕을 퍼붓기를 이 무지한 비구야 어디서 왔느냐

 

여기서 추악한 말로 욕 잘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천친보살(天親菩薩)이 불신종자(不信種子)라고 그랬어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욕을 잘하고 마음이 지저분한 것으로써 성품을 삼는다 그랬거든요. 그럼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어떠냐? 신심이 있는 사람들은 공덕을 귀하게 여긴다 해놨거든. 그래서 신심에 대해서는 화엄경 같은 데는 현수품에서 십사권, 십오권 한 권 반을 통째로 그냥 게송으로 써가지고 시를 써놨거든.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게 아니니까.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공덕을 귀하게 여긴다.

 

진관사 금방 와봤는데도 믿음이 있는 사람 없는 사람 금방 알 수 있잖아요. 우리가 그리고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도 없고, 저거는 불신종자 추악하구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구나 말만 보면 그 사람 마음까지 다 짐작하죠. 골 잘 내구나. 화를 잘 내는 거는 진에(嗔恚)를 하는 거는 남에게 손해를 끼칩니다. 그 탐심이 많은 사람들은 욕착이라 지저분한데, 똥파리가 구더기가 똥물에 있듯이 그렇게 지저분한 게 양심에 살면서도 그걸 틀어낼 줄 씻어낼 줄 모르거든. 그 추악한 말 많이 하고 이런 사람들은

 

제가 엊그제 어디 백화점 갔다가 엘리베이터 탔는데 헤드폰을 쓴 예쁜 저기 아가씨던데 헤드폰을 딱 끼고 음악을 듣더라고. 그게 그 백화점에. 근데 자기는 안 들리는지 방구를 뽕 끼더라고. 본인이 방구 꼈는데 모른 척하고 있더라고. 그런 사람들이 골 잘 내는 사람들이라. 아이고 냄새 아직까지 나는 것 같아

얼굴은 그럴싸하게 생각했는데 이 헤드폰 하나 딱 끼고 엘리베이터 안에 방구 끼놓으면 냄새가 어떨 것 같아요. 골 잘 내는 사람 이 무지한 그러니까 화를 내는 사람은 그렇다 이 말입니다. 자기는 딱 틀어막고 그래

 

골 잘 내는 사람 옆에 가만히 한번 얘기 한번 들어보십시오. 이제 이런 걸 자꾸 가르치고 관찰해야 돼. 남의 얘기 안 들어요. 화가 나면 날수록 있는 대로 데시벨이 올라가거든 안 들려서 그래요. 우리가 염불할 때 안 들려서 그래 염불할 때 이래 하거든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딱 당겨야 돼 당겨 뭔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래야 되는데 이 듣는 습관이 안 돼 놓으니까 계속 내질러

그래 옆에서 누가 골 잘 내고 목소리 막 목청 올리면 어떻게 돼요? 목소리 큽니다. 목소리 낮추세요. 목소리 낮추세요. 이래야 돼요. 숨 쉬고 목소리 낮춰야 목소리 낮춰

그것도 안 되는데 무슨 여기 와서 도 닦는다고 우리가 앉아 있겠노. 헤드폰 끼고 방구 끼지 말고 화내지 마라 이 말입니다. 그건 수준 이하의 수준이야.

이 무지한 비구야 어디서 왔느냐 너는 우리를 가벼이 보지 보지 않는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부처가 될 것이라고 수기를 하는데, 우리들은 이와 같은 허망한 수기는 필요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제 범은 참 생쥐를 잡지 않거든. 왕벌은 한 번 떠난 집에 미련이 없어요.

이렇게 여러 해를 지나면서 항상 욕을 먹었지만 성을 내지 않고 항상 말하기를 당신은 부처님이 될 것입니다.’라고

 

해서 우리는 이제 이 부처님처럼 이런 세계에 살아야 돼요. 범이 산에 안 살고 마실에 어슬렁거리면 똥개한테 물려요. 범이 또 개하고 싸워가지고 이겨도 창피시렵고 져도 창피시려워요 개판이다. 개판

용이 돼가지고 참 깊은 물에서 살고 이렇게 깨끗한 데 이렇게 살아야지. 쪼매난 또랑의 연못에 우물 같은 이런 데 가서 용이 살면은 새우한테 촛대뼈 까인다니까 그게

우리가 아니 그렇잖아요. 그렇죠 진관사 정도 우리가 이래 수륙대재 하는 사람이 됐으면 가슴이 꿈과 이상이 커야돼요

그래서 이런 말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몽둥이를 때리거나 기와로 던지면 먼 곳으로 피해서

 

왜 먼 곳으로 똥을 피해야지 그러면서 먼 곳을 가늘고 길게 살아야 되니까. 그렇죠 우리는 죽으면 안 돼 법을 전해야 돼요. 그리고

 

큰 소리로 부르짖기를

 

여기서 큰 소리를 부르짖는 이런 구절이 가슴에 와닿아야 돼요. 왜 큰 소리를 합니까? 확신이 있는 사람은 큰 소리를 하거든 사자후를 하거든. 그러니까 부처님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사자후는 온 세상의 중생들의 음성을 다 모아도 부처님의 가슴에서 울리는 진심에서 울리는 소리를 이길 수 없다 하거든. 그게 이게 소리가 바깥으로 나오는 게 아니거든. 진음(眞音)은 진짜 음성은 그러니까 이게 천년 만 년 이렇게 가면서 우리가 부처님을 매일 우리가 예경하고 그래 하지 않습니까? 그 부처님의 진짜의 음성을 우리가 들어버렸거든 우리가 들었는지도 모르고 들으면서 이렇게 살고 있잖아요.

부처님에게 백호상(白毫相)일분공덕이라고 하는 거는 모든 중생들의 부처님의 흰 백호 광명의 공덕을 다 모은다 하더라도 모든 세상 사람들의 공덕을 곱하기 10번 해가지고 천년 만년 지었던 공덕을 부처님의 공덕에 미칠 수 없다. 그러지 않습니까? 그래서

 

 

 

찰진신념가수지(刹塵心念可數知)

대해중수가음진(大海衆水可飮盡)

허공가량풍가계(虛空可量風可繫)

무능진설불공덕(無能盡說佛功德)이라

 

 

나는 그대들을 가벼이 보지 않습니다. 그대들은 모두 부처님이 될 것입니다.’ 그가 항상 이런 말을 했기 때문에 깨달은 체 하면서 교만 부리던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들이

 

중도 그렇고 신도도 그렇고 교만을 얼마나 부리는지 몰라 깨달은 체 하면서 저도 깨달은 지가 얼마 안 돼갑니다. 제가 깨달은 지는 다 알잖아요. 새벽 시장 가가지고 참깨를 사가지고 달아버렸다니까요. 깨를 달아버렸대. 깨를 달아버렸어요. 그래서 하도 전화 와서 스님 깨달았습니까? 깨 안 달았다 그러고 그다음에는 깨를 달아놓고 깨쳤다. 깨를 계속 친다 깨쳤다.

또 전화가 와서 스님 진짜 깨쳤습니까? 아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들깨 사가지고 내가 들깨달았다 이러고 이제 넘어가는 거죠.

이제 비구 비구니 우바세 우바이들이 상불경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득대세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때 상불경이 어찌 다른 사람이냐 바로 나(였느니라) it’s me

 

부처님 이게 드라마틱하잖아요.그렇죠 데바닷다품 여러분들 한번 읽어보시고 또 왜 그러십니까? 데바닷다품에도 읽어보면 우리가 이제 염불하는 장엄염불 중에 이런 게성이 있어요.

 

가사정대경진겁(假使頂戴經塵劫)

신위상좌변삼천(信爲床座偏三千)

약불전법도중생(若不傳法度衆生)

필경무능보은자(畢竟無能報恩者)

 

 

이런 게송이 있어요. 가사 가령 우리의 머리에 부처님을 이고 지고 평생 그리 예경하며 모시고 신위상좌변삼천이나 법문 있는 데 가서 모든 법문을 다 가슴에 새기고 듣고 한다 하더라도 그거 가지고는 우리 복 짓는 것이 아니다. 진짜 복은 어떤 거냐 약불전법도중생이라 오직 저 헤매는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고귀한 가르침을 전해야만이 필경무능보은자라. 이보제불막대은(以報諸佛莫大恩)이라. 그것이 이제 끝끝내 부처님의 은혜를 다 갚는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법문 듣고도 혼자서 얍삽하게 떼먹지 말고 어때요? 남들에게 전해야 되잖아요. 그렇죠. 오늘 그 종이 쪼가리 가져가셔가지고 몇 번 몇 번 복사해 가지고 옆에 좀 나눠 드리세요.

 

그리고 이제 한산, 습득 스님 얘기가 쭉 나와요. 쭉 바로 읽고 오늘 마치겠습니다. 시간이 많이 됐죠. 이런 시간을 통해서 점점 성장했는 거에서 우리가 성숙되어 가서 익어야 돼. 감도 익으면 부드러워지고 달콤해지고 밥도 쌀도 익으면은 부드럽고 달콤해지고 그게 사람도 보살도 자꾸 성숙시켜야 돼요. 우리가 보살도를 자꾸 성숙시켜야 돼요. 익은 사람은 부드럽고 달콤하고 그래요.

한산 스님 얘기 한번 보겠습니다.

옛날에 한산 스님과

 

한산 스님께서 습득 스님에게 물으셨는데 세상 사람들이 나를 비방하고, 속이고, 욕하고, 비웃고, 깔보고, 천대하고, 미워하고, 업신여기면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되겠습니까?

 

부처님은 이렇습니다. 대지도론을 보면은 그 아이는 우는 것으로써 힘을 삼고 여자는 질투 자 죄송합니다. 연약한 사람들은 질투로써 힘을 삼고 수행자는 인욕으로 힘을 삼고 아라한은 삼매로 힘을 삼고, 왕이나 이렇게 고관 대작들은 아만으로써 국회의원이나 이런 사람들 아만으로써 힘을 삼는다.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부처님은 대자대비로써 힘을 삼는다.

그럼 못난 지지리도 못난 중생들은 뭘로 힘을 삼는가? 오만과 편견으로 힘을 삼는다. 그러니까 오만 편견이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되겠습니까?

습득스님이 말씀하시기를 그저 참고, 양보하고, 그 뜻에 따르고 자리를 피하고, 견뎌내고, 그를 공경하고, 그 사람하고 불요(不要) 리타(理他)

 

그 사람 바로잡으려고 하면 안 돼요. 따지지 않으면은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불요(不要) 리타(理他) 해보세요. 남 바로잡으려 하지 마세요. 유타(由他) 그 세 번째 있잖아요. 그렇죠 유타는 뭐냐 자유 유타라 그 사람을 말미암는다 이 말입니다. 그 사람 하고자 하는 대로 좀 따라가줘요. 따라가죠. 제가 모시고 있는 우리 어른 스님이 무자비자 무비 스님인데 스님께서 제가 하도 별나고 이러니까 어릴 때부터 저를 가르친다고 여러 가지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시는데 나중에는 하다 하다 안 되시니까 우리 어른 스님께서 무비스님께서 저한테 하신 말씀이 있어요. 네 발우에 누가 똥을 싸놔도 시비하지 마라. 니 밥그릇에 똥을 싸도 시비 안 해야 된다. 그러니까 한산, 습득 스님이 이걸 읽으면서 많이 느끼겠습니다.

한산 : 그러면은 그런 것을 비켜 갈 비결은 없습니까?

습득 : 언제 미륵보살의 게송을 본 일이 있습니다.

 

쭉 읽겠습니다. 빨리.

늙은 몸에 누더기 옷 걸치고

찬 없는 밥으로 배를 불리며

해진 옷 기워 추위를 막고

모든 일에 그저 인연을 따를 뿐이네.

그 누가 나를 꾸짖으면

나는 그저 좋습니다 하고

그 누가 나를 공격하면

나는 쓰러져 웅크리고

얼굴에 침을 뱉어도

마를 때까지 그냥 두네. 내편에선 힘쓸 일 없고

저편에선 번뇌가 없으리.

 

이러한 바라밀이야말로

미묘한 삶의 보물이라

이 소식을 알기만 하면

도를 모른들 무슨 근심이리오.

 

사람은 약하나 마음은 약하지 않고

사람은 가난해도 도는 가난하지 않아 한결 같은 마음으로 행을 닦으면

언제나 진리 속에 살아가리.

세상 사람들 영화에 애착하지만

나는 도리어 보기를 원치 않고

명예와 재물 공한 줄 알기에

내 마음은 족히 싫어함이 없네.

황금이 산처럼 쌓였더라도

덧없는 목숨 살 수 없나니 동서고금에 그 잘난 사람들

지금은 몇 명이나 살아 있는가.

 

그래서 오늘 이제 우리가 수륙재를 마치면서 그렇습니다. 바다에 들어가면 천 년 전에 들어갔던 강물도 오늘 가는 강물도 다 바다가 되고 오늘 아침에 들어갔던 강물도 다 바다가 됐어요. 또 깊은 곳에 있거나 우리가 또 얕은 곳에 있거나 좀 많이 알거나 작게 알거나 다 상관없어.

그저 다 바닷물이요. 바닷가에 것도 바닷물이고 깊은 저기 심해도 바닷물이라. 그렇게 우리가 어떻게 하든지 간에 생각이 짧든지 생각이 깊든지 간에 전부 부처님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이라.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이제 제가 이번에 병원에 이렇게 가 보니까 중환자실에 여러 번 이렇게 병문안을 했는데 아시는 스님이 좀 입원해 계셔가지고 한 20, 열흘 이렇게 의식불명으로 계신데 그 눈 한 번 떠봐라도 눈은 못 떠, 못 뜨는 사람은 그렇게 힘들게 못 뜨지만은 우리는 수시로 눈꺼풀 뜨기도 하고 자기도 하고 그래 하잖아요.

뜨는 사람 입장에서 그렇게 쉬워, 그래 보니까 문제를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 문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인생 사는 데 그런데 수학 문제를 답을 모르는 사람 하기는 문제 그 자체가 늘 어려움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까?

예 그래서 우리가 문제가 어렵든지 쉽든지 간에 원래부터 문제가 없다. 이 사실만 제대로 알아차리면은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악몽을 꾸던 선몽을 꾸든 다 꿈이라 눈을 뜨고 나면 단지 침대일 뿐이지 어떤 꿈도 없는 것이다.

이 수륙재를 통해서 문제가 없다는 걸 알아차리면 답은 남한테 묻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한테 있다는 게 이제 짐작이 가고 불교 공부를 하는 이 서원으로 온갖 세상의 파도 속에서 세파 속에서 파란만장한 세파 속에서도 힘들지만은 아름다운 인생을 모두 완주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건강 건강 건강 건강 조심하시고 성불하십시오. 마지막으로 건강진언 다 같이 하고 마치겠습니다. 건강진언 다 아시죠?

 

옴 난다 난다 나지 나지 펄펄 난다 사바하

옴 난다 난다 나지 나지 펄펄 난다 사바하

옴 난다 난다 나지 나지 펄펄 난다 사바하

 

모두 펄펄 나십시오. 오늘 마치겠습니다.